책 소개
평범한 아이의 눈에 비친 전쟁의 상흔
서울 북쪽 홍제동 인근에 작은 내가 하나 흐른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냇물’이라는 뜻이 담긴, 홍제천이다. 어쩌다 작은 내의 이름에 이런 큰 뜻이 담겼을까? 그 까닭을 알려면 지금으로부터 38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636년 12월 9일 청의 군대가 조선을 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왔다. 청군은 닷새 만에 한양에 다다랐고, 조선의 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한다. 이틀 뒤 남한산성마저 포위당하고, 결국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도에서 치욕스럽게 항복하고 만다. 청군이 쳐들어온 지 47일 만에 끝난 이 전쟁이 작품의 배경인 병자호란이다. 전쟁에 패하고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은 헤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십만 명이 포로로 끌려가 청나라 노예로 전락했다.
『몸을 씻는 냇물』은 소와 말처럼 우직한 주인공 우마와 우마의 친구 쇠물이가 청에 끌려간 이 대감 댁의 딸 화홍 아씨를 찾는 길에 오르며 사건이 전개된다. 두 아이는 길을 가던 도중 청군에게 짐승처럼 끌려가는 포로 행렬에 놀라고, 쑥대밭이 된 마을과 사람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돌아온다. 그날 이후 우마는 말문을 닫고, 쇠물이는 화홍 아씨를 찾겠다며 길을 떠난다. 수송아지를 사서 농사짓는 게 꿈인 우마와 아버지처럼 쇠쟁이가 되는 게 꿈이던 쇠물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일 년이 지난 뒤, 우마는 다시 대감 댁으로 불려가 마님에게 비밀스러운 부탁을 받는다.
환향녀들의 눈물이 냇물이 되어 흐른 곳, 홍제천
속환사인 한양 나리를 따라나선 길에서 우마는 처참한 몰골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그들을 매몰차게 내치거나 돈벌이로 보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란다. 일 년 전 마을을 떠난 쇠물이 부자 역시 쇳물을 내려놓고 포로 장사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 덕에 우마는 무사히 화홍 아씨를 만날 수 있었지만 쇠쟁이질보다 돈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쇠물이를 보며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마가 화홍 아씨를 데리고 주막 근처에 다다랐을 때 둘은 냇물에 몸을 씻는 여자들을 만난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들이고, 임금이 명을 내린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몸을 씻는 것이었다. 그러면 죄를 묻지 않고 널리 구제해 준다고 했단다. 그래서 이 냇물의 이름이 ‘홍제천’이 되었단다. 화홍 아씨도 냇물에 몸을 씻고, 우마는 돌아갈 길이 생겼다며 안심한다. 하지만 곧 화홍 아씨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열병을 앓고 마는데……. 고향을 앞두고 주막에 발이 묶인 화홍 아씨는 어떻게 될까? 크게 앓고 일어난 우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
그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연대의 힘을 느낀다
작가는 아이의 눈으로 전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상을 그리고자 했다. 우직한 농사꾼의 아들 우마를 통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으며, 용기 있는 쇠쟁이의 아들 쇠물이를 통해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을 대변했다. 무엇보다 청에 끌려갔다 온 양반 댁 아씨, 화홍을 당당하게 그려내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일침을 놓았다.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에도 당당한 화홍은 “이보다 더한 일, 오랑캐들에게 많이 당했어요. 이제 무서운 것도 없고 서운한 것도 없어요. 창피하지도 않아요.”(168쪽), “모두들 이것으로 내가 목숨을 끊기를 바라겠지요? 그렇지요?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나는 안 죽어요. 절대로 죽을 수 없어요.”(178쪽)라고 외친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보듬고 지지하지는 못할망정 외면하고 혐오하는 모습이 비단 그때뿐일까? 화홍 아씨의 당찬 외침은 오늘의 우리 사회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그러는 한편 작가는 길잡이 아재처럼 든든한 어른의 존재를 통해 우마가 자기 길을 오롯이 걸어 나가며 희망을 놓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 주었다.
화홍 아씨는 가족과 인연을 끊는 대가로 받은 돈으로 땅을 사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 우마는 화홍 아씨와 걸음을 같이하고, 쇠물이는 좋은 세상에서 만나자며 최고의 쇠쟁이가 되기 위해 떠난다. 그 길은 나라가 버리고 가족이 버린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곁들여 살아갈 길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그 길에 고운 꽃잎을 주며 깔아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화홍 아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당당하고 따듯한 연대에 힘을 보태고 싶어질 것이다.
작가 소개
글 : 홍종의
충남 천안 목천의 이빠진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조망 꽃」이 당선되어 그 꿈을 펼칠 수 있었다, 「부처님의 코는 어디로 갔나」로 계몽아동문학상, 「줄동이 말동이」로 율목문학상, 대전일보 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구만이는 알고 있다』, 『초록말 벼리』, 『줄동이 말동이』, 『똥바가지』, 『반달역』, 『하늘매, 붕』, 『하늘음표』, 『곳니』, 『숲에서 온 전화』,『숲에서 온 전화』등이 있다.
그림 : 박세영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2014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5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지옥의 섬, 군함도』, 『우리 집 한 바퀴』,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 『하루와 미요』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목 차
까마귀 고기
세 번 큰절하기
큰사람
지옥을 보다
말 못 하고 못 보고 못 듣고
낯선 어른
마님의 부탁
쇠물이를 만나다
오랑캐보다 더 나쁜 사람
환향녀
화홍 아씨
몸을 씻는 냇물, 홍제천
좋은 세상에서 만나자
작가의 말 | 우리는 냇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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