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왜 어린이들은 슬프면 안 될까?
『아빠와 함께 춤을』은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이종은의 장편 동화다. 아주 오래 전 이종은 작가가 쓴 『할머니 뱃속의 크레파스』를 두고 유영진 문학평론가는‘마치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씹을수록 단물이 나는 하얀 쌀밥 같은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평했다. 이종은 작가의 작품은 떠들썩한 사건도 수다스러운 말잔치도 별로 없는 편이라 변화무쌍한 것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자칫 밋밋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 시점의 화자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주앉은 누군가에게 쉼 없이 들려주는 작가 특유의 내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하얀 쌀밥에서 우러나는 듯한 깊은 맛과 울림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아빠와 함께 춤을』에서도 이종은 작가는 특유의 글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긴 호흡으로 읽는 사람을 끝까지 끌고 간다. 왜 이종은 작가를 두고‘호흡이 긴 몇 안 되는 작가’라는 평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더 눈여겨 볼 일은 가장 슬픈 주제인 ‘죽음’을 그것도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을 견뎌내는 초등 2학년짜리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과감하게 썼다는 사실이다. 요즘 대부분의 동화를 보면 눈물 대신에 냉소, 의분, 미움에 가득 젖은 어린이들의 환상과 도전만이 그려져 있다. 어려서는 절대 슬픔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라도 있는 듯 슬픔을 다루는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슬픔이라는 감정을 아예 알지도 못하게 차단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의 내면에는 화가 많다. 화는 밖으로 표출하는 감정이다. 대신 슬픔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조용한 속삭임이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내면으로 향하는 조용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말고 ‘화’로 똘똘 뭉친 채 성장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슬픔은 남을 포옹할 수 있는 힘을 지녔지만, 화는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힘이 강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솔지와 발걸음을 나란히 한 채 자분자분 걸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애절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견뎌낸다. 절대 주저앉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의 무대는 산업화가 마악 시작되던 70년대의 농촌 풍경이다.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그 무렵의 이야기라는 것도 새롭지만, 한 편의 어린이 시를 읽는 듯한 서정적인 표현과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내용은 읽는 내내 색다른 느낌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리라 본다.
『아빠와 함께 춤을』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책은 전체적으로 참 슬픈데 전혀 슬프지 않다. 주인공인 솔지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따라다니다 보면 오히려 유쾌한 기분에 빠지게도 된다. 솔지는‘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천진무구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죽음을,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과 맞서고 있다. 솔지는 아빠의 죽음이 뭘 뜻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그저 상여 타고 떠나는 정도로만 인식한다. 그런데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너무 두렵고 무서우니까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은데 우는 대신 심술보를 터뜨린다. 아빠가 아프기 전까지 친하게 어울려 놀았던 동수, 성호, 경주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솔지는 자신이 그 애들을 괴롭히는 것은‘그 애들이 안 놀아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빠가 안 죽고 영원히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죽는다니까,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뜻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솔지는 그 친구들 곁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대신 아빠의 죽음도 서서히 현실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앞둔 아빠 곁에서 차츰 벗어나 친구들, 그러니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으로 서서히 옮겨간다.
이 동화에는 많은 장치가 있다. 날개를 다친 까치, 그 까치를 호시탐탐 엿보는 도둑고양이, 담장 너머 성호 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아빠가 오빠에게 선물한 드라이버, 솔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해피 등등. 날개를 다친 까치를 살리려고 애쓰는 솔지의 행동은 바로 아버지를 살리고 싶다는 욕망이고, 담장을 넘나들며 까치를 넘보는 도둑고양이는 솔지가 잡고 싶지만 절대 잡을 수 없는 아빠의 생명을 암시한다. 또한 아빠가 선물한 드라이버는 자식들이 세상을 스스로 조여가면서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기도 하고, 아빠 없는 세상에서 남은 가족이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예언이기도 하다.
강아지 해피는 항상 솔지 곁을 맴돈다. 심지어 아빠가 하늘로 떠난 날, 솔지가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할 때에도 해피는 솔지 곁으로 다가온다. 해피는 곧 행복이라는 뜻인 만큼 작가는 솔지가 제아무리 슬퍼도 행복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 듯싶다.
비록 꿈이었지만 솔지는 아빠와 신나게 춤을 춘다. 솔지와 아빠의 춤은 앞으로 솔지가 아빠를 슬프게만 기억하지 않을 거라는 짐작일 수 있다. 솔지는 그 꿈을 기억하면서 아빠가 저세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도 친했던 사람들과 매일 매일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믿을 것이다. 또한 그 춤은 솔지 가 하루하루를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리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아빠와 함께 춤을』의 주인공인 솔지는 슬퍼서 우는 일은 없다. 화나고 심술이 터졌을 때만 운다. 아직 뭘 몰라서일 수도 있고, 슬퍼서 울음을 터뜨린다면 영원히 울음을 못 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끝내 울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오히려 솔지는 글을 읽는 동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우리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괜찮아, 다 괜찮아지니까. 금방 지나갈 일이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작가 소개
이종은
<현대소설>로 등단해서 장편소설 <누드화가 있는 풍경>(전3권), 소설집 <공감> <스웨터 짜는 남자>등을 발표했고 <문학동네아동문학상>을 수상하고 동화 <할머니 뱃속의 크레파스> <아빠 아빠 아빠> <고양이가 물어간 엄마> <가을을 파는 마법사> <할머니의 특별한 여행> <멋지다! 얀별 가족> 등을 발표했으며 <MBC 창작대상>을 수상하고 청소년소설 <초콜릿이 맛었던 날> 등을 발표했다.
목 차
가슴이 왜 쿵쿵 뛸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껌
신발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토끼
뱀이 얼굴에 오줌을 쌌어
털이 반쯤 뽑힌 채 달아난 닭
늑대 뱃속을 탈출한 아이들
아빠와 함께 춤을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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