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처음이라 그래요>는 윤동미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2008년 《아동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2015년 ‘눈높이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첫 동시집은 시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동시 농사의 첫 수확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인의 작품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첫 시집을 보면 대개 그 향방을 알 수 있다. 첫 시집에서 드러난 특징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에서도 계속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동미 동시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 동시집에는 모두 54편의 작품이 실렸는데, 그 가운데 딱 절반인 27편이 10행 이내의 동시이다. 15행 이내의 동시로 넓혀 보면, 무려 49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윤동미는 긴 동시를 쓰기보다, 시어를 아끼고 시상을 함축하여 짧은 동시를 쓰는 시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점/점/배흘림기둥을 닮아가는/엄마//두 팔로/꼭/꼭/안아주고 싶은 기둥이에요.
―「엄마」 전문
저기 가로등 아래/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저씨//그림자가 길게 따라가더니/점점 기어올라 등에 업힌다.//지치고 힘든 하루를/아저씨가 업고 간다.
―「힘든 하루」 전문
장갑 끼고 목도리 하는 사이//그쳐 버렸다.
―「첫눈」 전문
위 작품들은 모두 10행 이내의 동시이다. 그중에서 「첫눈」은 연 구분을 포함시키면 겨우 3행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짧은 시들이 감동을 주는 것은, 많은 이야기가 담긴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는 배흘림기둥이 나온다. 배흘림기둥의 사전식 풀이는 ‘기둥의 중간이 배가 부르고 아래위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게 만든 기둥’이다. ‘건물의 구조를 안정되어 보이게 하고, 기둥의 가운데가 가늘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양식’이란다. 이 배흘림기둥은 우리 옛 건축 양식으로 오래 전부터 사랑받아 왔는데, 고구려 벽화를 비롯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무위사 극락전, 화엄사 대웅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배흘림기둥은 건축 양식이 아니라, 배가 몹시 나온 중년의 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날씬하던 20대의 몸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민흘림기둥에서 배흘림기둥으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위 작품에서도 엄마는 ‘점/점/배흘림기둥을 닮아’간다. 하지만 화자는 그 엄마를 ‘두 팔로/꼭/꼭/안아주고 싶은 기둥’이라며 강한 애정을 표시한다. 화자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날씬하던 엄마가 자식을 낳아 기르며 온갖 고생을 하느라 배흘림기둥이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시에 엄마의 희생적인 자식 사랑, 그런 엄마에 대한 자식의 고마워하는 마음, 끈끈한 가족애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런 메시지들이 큰 울림을 주기에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 동시보다 독자들에게 더 큰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힘든 하루」도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단순명쾌한 이미지와 강렬한 메시지로 시적 감동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이 동시는 노동자로 보이는 아저씨의 퇴근길 풍경을 그려 보인다. 가로등 아래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저씨와, 아저씨 뒤를 길게 따라가다가 점점 기어올라 등에 업히는 그림자……. 그런데 이 작품이 단순한 스케치로 끝나지 않는 것은 ‘지치고 힘든 하루를/아저씨가 업고 간다.’는 마지막 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한 대목만 읽더라도 귀가하는 이 아저씨가 얼마나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생계를 위해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힘든 하루를 보내다가 돌아오는지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아, 아저씨가 집에 도착하면 지치고 힘든 하루를 내려놓고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짧은 시의 장점은 이렇듯 에피소드가 담긴 생활 이야기 시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첫눈」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극히 짧은 시다. 본문은 ‘장갑 끼고 목도리 하는 사이//그쳐 버렸다.’ 딱 두 줄뿐이다. 물론 한 줄짜리 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짧아도 너무 짧다. 내용을 읽어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첫눈이 얼마나 쬐끔, 짧게 오는지 장갑 끼고 목도리 하는 사이 그쳐 버렸다니 말이다. ‘첫눈은 첫눈이라서 연습 삼아 쬐끔 온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이 시만큼 첫눈이 내린 상황을 효과적이고 실감나게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첫눈은 누구나 간절히 기다리지만 슬그머니 내리다가 이내 그쳐 버리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렇기에 이 시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윤동미 동시는 언어의 낭비, 감정의 낭비가 별로 없다. 짧은 시라는 특성을 살려 동심적 발상을 단순 명쾌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유머 감각을 발휘해 동시의 재미성을 추구한다.
축구할 때 벗어둔 잠바/깜빡 잊고 집에 왔다.//헐레벌떡 찾으러 가니/철봉에 아직 걸려 있었다.//―나 여기 있어!//바람에 통통해진 팔 하나/반갑게 흔들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전문
잘 익은 수수에/그물망이 씌어졌다.//멀찍이서 엿보던 참새들 소곤거린다.//―쩝, 맛집 하나 줄었군.
―「사라진 맛집」 전문
어항 속 금붕어들//텔레비전 보이는 곳에/몰려 있다.//우리가 축구 본다고/덩달아 보고 싶은가 보다.//그런데 금붕어는/ 어느 편을 응원할까?
―「축구 보는 금붕어」 전문
위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물과 동물의 인간화이다. 축구할 때 벗어둔 잠바이든, 수수를 좋아하는 참새들이든, 어항 속 금붕어들이든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찌나 능청스럽게 처신하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이 동시들은 그런 상황을 재치 있게 그려내어 웃음을 준다.
「여기야, 여기」는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 보았을 일을 다루고 있다. 화자는 축구할 때 벗어둔 잠바를 깜빡 잊고 집에 왔다가 헐레벌떡 찾으러 간다. 하지만 그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철봉에 아직 걸려 있었던 잠바가 “나 여기 있어!” 하고 바람에 통통해진 팔 하나로 반갑게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듯한 상황을 잘 포착해 시적 재미를 극대화해 보여 준 작품이다.
「축구 보는 금붕어」 역시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길 일을 한 편의 동화처럼 재미있게 형상화했다. 요즘은 해외 축구까지 실시간으로 TV 중계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축구 보는 금붕어’라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이 있는 방이나 거실에 금붕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남다른 관찰력과 유머 감각이 낳은 동시이다.
「사라진 맛집」은 ‘맛집 열풍’에 휩싸인 우리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방송 매체에 소개된 음식점은 맛집이라 하여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를 누린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는 맛집 정보가 넘치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맛집 검색을 하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다. 이 동시에서도 참새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리는 것이 이른바 ‘맛집’이다. 이 작품은 너나 할 것 없이 맛집으로 몰려드는 인간들의 세태를 간접적으로 꼬집는다. 아울러 ‘수수 맛집’을 잃은 참새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 웃음 끝에 긴 여운을 남긴다.
윤동미 동시는 매우 짧다는 것과 재미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특징을 살려 기존 동시와 차별되는 작품 세계를 얼마나 탄탄하게 구축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윤동미는 이제 첫 시집을 낸 시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패기와 참신함으로 무장하여 개성 있는 시적 행보를 계속 보인다면 시인으로서 충분히 일가를 이루리라 기대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동미
경북 영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8년 『아동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15년 제23회 『눈높이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이라 그래요』는 첫 동시집입니다.
그린이 : 손호경
글과 그림을 같이 작업하는 글그림 작가이며
직접 쓰고 그린 작품으로는 『우포늪엔 공룡똥구멍이 있다』,
『꾸물꼬물 지렁이를 키워봐』 등이 있습니다.
목 차
시인의 말 • 4
제1부
맛있는 변신
봄비 • 12
봄꽃 • 13
여기야, 여기 • 14
총각 선생님 • 15
이럴 수가 • 16
맛있는 변신 • 17
무 이야기 • 18
훈이와 할머니 • 19
오늘은 쉽니다 • 20
송홧가루 • 21
반쪽 나무 • 22
꽃비 • 23
벌 • 24
달콤한 여행 • 26
제2부
엄마 아빠 나
비 오는 날 • 30
순돌이 • 31
축구 보는 금붕어 • 32
엄마 아빠 나 • 33
아빠 없는 날 • 34
빈자리 • 35
오래오래 • 36
소나기 • 37
나랑 똑같네 • 38
접시꽃 • 39
엄마 • 40
벌서는 밤 • 42
무더운 날 • 43
제3부
랄랄라 토요일
OK마트는 아빠와 • 46
랄랄라 토요일 • 47
고마워 • 48
민수 형이 뿔났다 • 49
사라진 맛집 • 50
속 터진 밤 • 51
석류 • 52
단풍잎 • 53
대추 • 54
송아지 이름 • 56
부들 • 58
바람 부는 날 • 60
힘든 하루 • 61
웃는 염소 • 62
제4부
도둑고양이네 잔칫날
곶감 속에 • 66
추운 밤 • 67
못 참겠다, 꼬르르 • 68
라면 • 69
오빠와 멸치 • 70
시래기 • 71
처음이라 그래요 • 72
고양이 루이 • 74
꽁꽁 • 76
가마솥 달래기 • 77
도둑고양이네 오늘 잔칫날이겠다 • 78
첫눈 • 79
눈사람 • 81
시집을 읽고 • 82
작가 소개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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