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린이와 아기 고양이와 여우와 너구리가 나란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돌아보는 어린이의 눈에 기대감이 빛나고, 꼭 붙어 앉은 고양이는 그런 어린이를 가만 바라본다. 올망졸망 앉은 어린 생명들은 친구인 게 틀림없다. 누구를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반가운 손님일 것이다. 그렇게 즐겁게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을 쓴 사람이 ‘이반디’ 작가이기 때문이다.
『누가 올까?』는 어린이의 마음을 오롯이 담은 유년 동화로 제2회 권태응 문학상을 받은 이반디 작가가 3년 만에 발표하는 동화집이다. 똑똑, 어린 동물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 순간, 신비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소박한 마법이 시작된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열린 마음, 도움을 청하면 누군가 반드시 도와 줄 거라는 믿음, 받은 마음에 정성을 다해 보답하는 예의. 어린 사람과 어린 동물이 당연한 듯 해내지만, 어른들은 점차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세 편의 동화에 오롯이 담겨 있다. 단순한 선과 고운 색감으로 생명에 대한 애정을 보여 준 그림책 『고양이』의 김혜원 화가가 섬세한 관찰자가 되어, 어린 동물들과의 사랑스러운 만남을 고운 수채화에 담았다.
어린 여우한테서 전화가 걸려오고, 놀이터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고양이 학교에 초대받고, 배고픈 아기 너구리가 찾아오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이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이 기다리는 것은 『누가 올까?』의 책장을 펼칠 당신일지도 모른다.
진심이 반짝, 빛나는 순간!
얼른 퇴근하고 아내에게 줄 여우 목도리를 사러 가려던 고야 씨의 병원에 전화가 걸려온다. 동생이 아프니 와 달라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망설이던 고야 씨는 마지못해 왕진을 나선다. 비바람에 흠뻑 젖은 채 낡은 판잣집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어린 여우다. 겨우 여우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다니! 고야 씨는 화가 났지만, 심하게 앓는 아기 여우를 외면하지 못하고 간단히 치료해 준다. 그런데 은혜에 보답할 것이 없다고 시무룩해하는 어린 여우 앞에서 고야 씨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엄마 여우를 기다리며, 아픈 동생을 위해 빗길을 헤치고 전화를 걸었을 어린 여우가 안쓰러워서다. 고야 씨는 괜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아, 백화점에 간다는 핑계로 급히 돌아선다. 그때 어린 여우가 달려와 무언가를 내민다. 바로, 자신의 ‘꼬리’다.
“선물이 마음에 안 드세요?”
어린 여우는 고야 씨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고야 씨는 몸을 낮추어 앉았습니다.
“가져가렴. 나는 이미 다른 걸 너에게 받았다.”
고야 씨는 어린 여우를 꼭 안았습니다.
“참 이상해요. 이렇게 친절한데, 왜 인간은 무섭다고 했을까요? 엄마가 오면 물어볼래요.” (32쪽)
첫 번째 작품 「여우 목도리」 속 어린 여우는 고야 씨가 수의사가 아닌 의사이고, 인간임을 알면서도 도움을 청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같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생의 생명을 구해 준 고야 씨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놓는다. 어린 여우가 환히 웃으며 꼬리를 내민 순간, 고야 씨의 마음속에 떠올랐을 수많은 감정은 독자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때 생명이었을 ‘여우 목도리’를 그저 사물로 보았던 죄책감, 도움을 청한 것이 여우임을 알고 화를 냈던 미안함,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어린 생명들을 외면하려 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중 가장 커다란 것은, 티 없이 순수한 마음을 받은 데서 오는 깊은 감동이다.
고야 씨는 몸을 낮추어 작은 여우를 안아 준다. 어린이와 어른,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 생명이 처음으로 마주보는 순간이다.
똑똑,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봄 손님」의 아기 너구리는 이제 막 문을 닫으려던 국숫집 할아버지 앞에 나타난다. 장사가 끝났다는데도, 배가 고파 집까지 갈 힘이 없다며 보챈다. 할아버지가 국수를 만들어 주자, 콧노래를 부르며 두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이번엔 은혜를 갚기 전엔 갈 수 없단다. 이 못 말리는 사랑스러움에는 할아버지의 마음도, 독자의 마음도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는 국숫값 대신,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함께 듣던 음악 한 곡을 함께 듣자고 제안한다.
아기 너구리는 가끔 하품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졸지 않으려고 애쓰며, 한자리에 앉아 떠들지도 않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악이 끝나자 아기 너구리는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습니다. (80쪽)
할아버지가 국수를 만드는 내내 쉼 없이 재잘거렸던 입을 꼭 다물고, 지루함을 애써 참으며, 아기 너구리는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할아버지 곁을 지킨다. 어린이에게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면, 아기 너구리가 은혜 갚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누가 올까?』 속 어린 동물들은 하나같이 불쑥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만약 고야 씨가 어린 여우의 전화를 무시했더라면, 할아버지가 아기 너구리에게 따뜻한 국물을 대접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따뜻한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는 문을 열어 줄 것, 나를 도와 준 이에게는 반드시 보답할 것! 옛이야기에서부터 이어져 온 이 소박한 진리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언젠가 나의 도움이 간절한 누군가를 만났을 때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 보답은 돈보다 훨씬 더 귀한 몇 분간의 위로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지!
「고양이의 수프」 주인공 아라는 놀이터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들이 오지 않자, 솜사탕을 먹으며 노래를 부른다. 같이 놀 누군가, 아무나 빨리 오라고. 그러자 “우리 왔어.” 하는 말과 함께,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눈앞에 나타난다. 다른 이야기 속 어른들과 달리 아라는 고양이들과 금세 친해진다. 아껴 먹던 솜사탕을 고양이들에게 내주고, 고양이들의 초대에 ‘기다렸다는 듯 “응!” 하고 대답’한다. 그렇게 방문한 고양이 학교에서 멋진 공연을 감상하고, 점심 식사를 대접받고, 헤어질 때는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아이와 금세 친구가 되고,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건 어린이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다. 어려서 그렇다고?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이 마냥 쉬울 리 없다. 아라와 고양이들의 만남을 조금만 지켜보아도 그렇다.
아라는 고양이들이 내놓은 생선 대가리 수프를 보고 깜짝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준비한 마음을 생각해서다. 버려진 가구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지 않는다. ‘고양이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어린이와 어린이, 어린이와 동물뿐 아니라 어른과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단,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지혜가 『누가 올까?』에 담겨 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어린이와 어린이가, 아라와 고양이들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려서’가 아니라, 그 어린이다운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 유년 동화의 계보를 이을 작가로 손꼽히는 이반디 작가가 생각하는 ‘어린이의 마음’, 동심은 어른들이 흔히 ‘착하다’는 말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 작고 약할지 몰라도 누구보다 건강하고 씩씩한 어린이의 마음을 믿는다는 것이 작품 전체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어버린 이라면 누구나,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여기 있다. 모든 존재와 나란한 눈높이에서 기꺼이 어우러지려는 태도가 정말로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반디
대학에서 의류환경학을 공부한 뒤, 지금은 동화를 쓰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소중한 마음을 알려 준 아기 너구리처럼, 어린 여우처럼 불쑥 동화가 찾아왔다. 제2회 권태응 문학상을 받았고, 쓴 책으로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수상작 『꼬마 너구리 삼총사』와 『호랑이 눈썹』, 『꼬마 너구리 요요』 등이 있다.
그린이 : 김혜원
일상 속 사소한 소재와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어린이와 고양이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올까?』 속의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을 그리면서, 그다음엔 어떤 이야기와 생명들이 나를 찾아올까 하는 호기심도 갖게 되었다. 『고양이』, 『정말 멋진 날이야』, 『아기 북극곰의 외출』을 쓰고 그렸고, 『오빠가 미운 날』, 『여름방학 제주』, 『찰방찰방 밤을 건너』 등에 그림을 그렸다.
목 차
여우 목도리
고양이의 수프
봄 손님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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