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뉴베리 수상작 《달빛 마신 소녀》
켈리 반힐이 5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
시공간을 구부러뜨리는 우리 시대의 우화
냉소적으로 변해 가는 우리 마음에
훈기를 불어넣어 줄 신비로운 상상력, 기분 좋은 유머
이 이야기는 마을의 모든 역사와 비밀을 지켜봐 온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한다. 해설자에 따르면 어느 오거와, 어느 고아 가족과, 어느 용, 그리고 어느 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거대한 몸집에 화강암처럼 단단한 살갗, 겉모습으로 보자면 괴물 같은 거인이지만 별 헤아리기와 텃밭 가꾸기, 빵 굽기가 취미인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어느 오거,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고아 가족, 성질 고약하고 게으르고 탐욕스런 어느 용, 그리고 한때 유서 깊은 도서관과 나무로 유명했던 마을…. 작가는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이야기의 그물을 펼치며 ‘협곡의 바위’ 마을로 독자를 데려간다.
여러 이야기를 이음매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엮어 내며 곳곳에 마법의 가루를 흩뿌려 놓았다. 시공간을 구부러뜨리는 책, 스스로 서가의 크기를 조절하는 고아들의 집 도서실, 꿈을 꾸고 말을 하는 나무들, 까마귀들의 오래된 언어, 신성한 용족의 전설, 수천 년을 살고 나서 죽으면 바위로 변하는 오거족, 신비한 지식을 가진 고양이들…. 신비로운 상상력이 현실적인 공감 위로 얽히고설키면서, 마법은 아니지만 마법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것이 꼭꼭 닫아건 독자들 마음에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공기를 불어넣어 준다.
전작에 비해 한결 유머러스하고 편안하게 읽힌다.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 줘도 좋을 만큼 자연스러운 입말들이 독자의 눈앞에 생생한 정경을 펼쳐 보이며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어느 순간 넓게 펼쳐 놓았던 그물들은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속도를 낸다. “400쪽이 넘는 분량인데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버렸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여기에 고아들의 집에 사는 열다섯 아이가 어우러지면서 한층 역동성을 띤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지만 너무 늙어서 기운이 달리는 원장 부부와, 열네 살 맏이 앤시아부터 아기들까지, 나이도 성격도 제각각인 호기심 많은 열다섯 아이들이 사는 집을 상상해 보라. 더구나 아이들 이름은 알파벳순으로 정렬되어 알기도 쉽고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그 밖에도 한 마을을 통째로 옮겨 온 듯 여러 인물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이야기를 단단하게 받쳐 주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웃이란 무엇인가? 내 이웃은 누구인가?
사랑하는 공동체가 마음의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켈리 반힐의 신작은 아름답고 유쾌하다. 그러나 사실 저자는 이 책이 현실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다 보면 최근의 세상,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겹쳐진다.
한때 사랑스러웠던 마을 ‘협곡의 바위’에서 어느 날 밤 도서관이 불타면서 모든 게 변해 버렸다. 고대 공동체처럼 산책로나 광장에 모여 문학이나 정치나 철학, 예술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위했던 사람들은 이제 문을 닫아걸고 눈과 귀와 마음마저 닫아 버렸다. 옛 도서관은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었고, 어려운 이웃은 누구나 고아들의 집에 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가질수록 주변에서 더 많이 노린다는 시장 말에 따라 주머니를 꼭꼭 여민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인가?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하거나 악한가?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이 가득하다. 아이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아이들은 구체적인 것까지 눈치채긴 어렵겠지만, 어른들이라면 특히나 이 마을 시장의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번쩍번쩍 빛나는 미소와 눈부신 금발을 휘날리며 이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시장. 그는 문을 닫아걸어야 안전하다고 사람들을 구슬린다. 어딘가 익숙한 광경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라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씁쓸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몇 년 동안 걱정과 분노, 슬픔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너무 낙담해서 다시는 책을 출판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까지 했단다. “지난 정부 동안 뉴스가 한결같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잔인함이 일상이 되었고, 추악함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였으며, 정의와 평등을 향한 우리의 모든 진보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동화를 썼다. 핸드폰은 서랍에, 컴퓨터도 치우고 매일매일, 날마다 종이 위에 거칠게 동화를 써 나갔다. 그 이야기 속에 끈질기게 남는 질문이 있었다.
“이웃이란 무엇인가? 내 이웃은 누구인가? 사랑하는 공동체가 마음과 양심의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독창적인 이야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켜켜이 담겨 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기리고 배우는 방식 또한 담겨 있다. 함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화자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을 택한 의도도 짐작이 간다. 마지막에는 눈과 귀를 닫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진실을 볼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이 상쾌하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강력한 지도자 한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가 모두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세계는 새로워진다
이 이야기가 다른 동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인간 세상의 것들을 제외하면 등장인물에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용족 가운데 어느 용, 오거족 가운데 어느 오거, 까마귀 떼 가운데 어느 까마귀…. 집단으로 묶이면서도 하나하나 개별 존재로서 빛난다. 여기에 전형성을 모조리 전복시키며 복합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고정 관념을 따라가는데, 때로는 우리들 모습 같아서 불안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뭐가 진실이지?
또 보통 동화에는 이야기를 이끌고 가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 같은 한 명의 중심인물이 있지만, 이 책에는 성격도 개성도 모두 다른 여러 중심인물이 있다.
켈리 반힐은 독자가 집단을 생각하되, 하나하나 사연을 지닌 저마다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놓았다. 비록 그 얼굴들 하나하나는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구멍들을 메우며 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새롭게 만든다.
혼자서 읽는 책도 좋지만 같이 읽고 토론하며 더 큰 생각으로 나아가듯이, 마음도 그렇다는 걸 새삼 알게 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것도. 함께라서 가능한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무지한 대중과 집단지성 사이에서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공동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이미 우리는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서로 좋은 생각을 공유하고 각자가 읽은 책들을 나누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지도! 그저 “반가워요!” 인사를 나누고 싶어질지도!
이야기가 끝에 다다르면, 우리의 바람대로, 이제 마을은 망가진 것들을 회복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완전한 채로 미완이다. 독자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야기는 비로소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이웃이나 공동체보다는 칙칙하고 흉흉한 지금 협곡의 바위만을 알고 있을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심장과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켈리 반힐의 이야기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켈리 반힐
미네소타에서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산다. 첫 소설 《거의 사실인 잭의 이야기The Mostly True Story of Jack》로 평단의 관심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두 번째 책 《철심장 바이올릿Iron Hearted Violet》은 전미 학부모들이 선정하는 ‘페어런츠 초이스 골드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2014년 출간된 《마녀의 시동The Witch's Boy》은 여러 매체에서 그해 최고의 책으로 뽑혔다. 그리고 오랜 구상 끝에 탄생한 네 번째 책 《달빛 마신 소녀》는 “이 소설 자체가 순수한 마법”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2017년 뉴베리 수상작에 선정되었다.
옮긴이 : 이민희
언어의 조각들을 오래도록 매만지고 싶어 번역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낯선 이야기 속을 극도로 천천히 헤엄치는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화장실 벽에 쓴 낙서》 《드라이》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우리가 함께 달릴 때》 《내가 지워진 날》 《슬프니까 멋지게, 애나 언니로부터》를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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