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유은실 작가의 유년동화 ‘정이 이야기’ 완간
가장 어린이답고 가장 정이다운 마지막 이야기
2011년 『나도 편식할 거야』로 독자들을 처음 만난 ‘정이 이야기’가 다섯 번째 책 『나는 따로 할 거야』로 완간된다. 목소리가 크고 저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내세운 주인공들 옆에서 정이는 손을 반짝 들었다. “편식하는 아이한테만 맛있는 걸 준다면, 나도 편식할래요!”
그 다짐은 많은 어린이들을 웃게 하고, 어떤 어른들을 뜨끔하게 했다. 잘 자고 잘 먹는 정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건강한 아이는 목소리도 클 거라고, 순한 아이 마음속에는 응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유쾌하게 깨뜨리고, 늘 단순한 존재로 여겨져 온 어린이들에게 통쾌한 공감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다섯 권의 책이 나오는 동안 정이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누군가와 비슷해지고 싶던 정이는 실패마저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품고 주변을 생각하느라 망설이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나는 따로 할 거야』는 이제 누구와 닮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인 채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정이를 담았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말할 줄 알고, 온전히 자기 힘으로 시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하늘 높이 올리며 기쁨을 느끼는 정이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정이 이야기’를 맺기에 이렇게 정이다운 마무리가 또 있을까.
그 이름만으로 독자들에게 믿음과 기대를 주는 유은실 작가에게 정이는 작가 내면의 어린이, 그리고 20여 년간 만나온 어린이 독자들을 많이 닮은 각별한 주인공이다. ‘정이 이야기’에는 그가 문학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가치는 물론,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한 어린이에게 보내는 존중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정이 이야기’는 이 책으로 마무리되지만,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하는 어린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가장 나다운 모습일 때 진심으로 함께일 수 있음을 전하는 유년동화로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많이 컸다는 건, 다른 사람의 쓸쓸함을 아는 것
어느 날, 정이는 한쪽 귀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염증이 생긴 것 같아 이비인후과에 가기로 한다. 정이를 잘 아는 독자들이라면 아마 정이네 엄마처럼 말할 것이다. “살다 보니 우리 정이가 아픈 날도 있구나.” 예방 주사를 맞으러 소아과에 간 것 말고는 병원에 간 적이 없을 만큼 건강한 정이가 아프다니! ‘정이 이야기’ 다섯 권 만에 처음 생긴 사건에 엄마도 독자들도 놀라지만, 오빠 혁이만은 침착하다. 이비인후과 단골인 오빠는 체온계를 가져와 정이의 열을 재고, 출근해야 하는 엄마 대신 정이를 병원에 데려간다. 정이의 증상을 수첩에 꼼꼼히 적고, 걱정하는 정이 손을 꼭 잡아 준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귀에서 커다란 귀지를 꺼내자마자 정이는 금세 괜찮아지는데, 오빠는 왠지 조금 힘없어 보인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해 오늘 일어난 일을 웃으며 들려준다. 정이는 아픈 게 아니었다고, 오빠가 병원 단골이라서 다행이라고. 그런데 가만 듣던 정이가 엄마를 말리며 귓속말을 한다.
“엄마, 단골은 쓸쓸해. 아프면 함께하려고 했는데…… 내 손을 잡아 주려고 했는데…… 내가 금방 나아서. 그리고…… 오빠는 나으려면 오래 걸려서.” (28쪽)
‘정이 이야기’는 다섯 권에 걸쳐 정이와 혁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다루어 왔다. 잘 먹고 잘 자고 조금 순진한 정이와 편식하고 예민하며 아는 게 많은 혁이. 두 아이는 달라서 아웅다웅하는 만큼이나 서로를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 하고, 이해하는 사이이다.
전작 『나는 망설일 거야』에서 혁이는 엄마 아빠에게 속은 정이의 억울함에 유일하게 귀 기울인 사람이다. 혁이는 정이와 힘을 모아 어른들의 사과를 받아낸다. 『나는 따로 할 거야』에서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혁이의 속마음을 정이만 알아차린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정이가 혁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정이는 오빠처럼 편식하는 아이가 되겠다고 결심할망정 혁이의 편식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혁이에게 ‘나처럼 건강해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아프면 오래가는 오빠의 쓸쓸함을 이해한다.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 두 살 터울의 남매는 현실에서도 동화에서도 흔히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누구처럼 되라는 말, 누구를 좀 닮으라는 말에는 이미 경쟁과 평가가 담겨 있다. ‘정이 이야기’는 어린이를 평가하고 비교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정이와 혁이를 통해 시기하거나 경쟁하지 않고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 가는 관계를 보여 준다. 유은실 작가는 ‘정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꾸준히 말해 왔다.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며, 그 당연한 진리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를 견줄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즐거울 수 있을까?
정이와 오빠, 아빠가 함께 공원으로 나간다. 정이는 오빠랑 시소에 마주 앉아, 오빠를 높이 올려 준다. 그다음에는 오빠가 정이를 올려 주려고 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시소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그사이 정이가 오빠보다 무거워졌나 보다. 오빠는 시소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버리지만, 정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를 따라간다. 그다음에는 둘이서 자가발전 자전거를 탔는데, 오빠가 또 불쑥 화를 내고 가 버린다. 정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빠를 이겨 버린 거다. 정이는 그냥 놀고 싶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추운 데서 같이 놀았는데 오빠만 감기에 걸린다. 결국 온 가족이 함께 건강해지기 위해서 헬스장을 찾아간다. 새도 나무도 없는 헬스장이 답답했던 정이는 참았던 말을 꺼낸다. 오빠가 들을까 봐 조그맣게 묻는다. “나는 공원에서 따로 놀고 싶어. (중략) 따로 놀면 안 돼?”
엄마 아빠는 따로 하는 것도 소중하다고, 정이를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근육이 부족한 엄마와 오빠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사이, 근육이 많은 아빠와 정이는 공원에서 자가발전 자전거를 탄다.
우리는 만날 ‘자가발전 자전거’를 탄다.
“헬스장에선 전기를 쓰거든. 엄마랑 오빠가 많이 쓰니까, 우리는 열심히 만들자.”
아빠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근육이 많으니까.”
근육은 소중하다. 무거운 걸 들 수 있다. 전기를 만들 수 있다.
(56쪽)
누구와 닮고 싶어 했던 정이는 이제 자기 힘으로 누군가를 시소 반대편에서 하늘 높이 올리는 것을 뿌듯해하고, 몸이 약한 아이와 몸이 튼튼한 아이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정이가 ‘착한 아이’가 되려고 무조건 참지도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오빠랑 같이 노는 게 즐겁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소중하지만,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을 누리는 순간 역시 더없이 중요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참 좋다.”는 정이의 마지막 말은 ‘정이 이야기’가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려던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대사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유은실
밖에 나가면 순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식구들에겐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어린이였어요. 그동안 쓴 책으로 ‘정이 이야기’ 시리즈,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멀쩡한 이유정』, 『순례 주택』, 『2미터 그리고 48시간』 등이 있어요.
그린이 : 김유대
왁자지껄, 허둥지둥, 천방지축 말괄량이예요. 요기조기 히죽거리면서 낙서하는 걸 무지 좋아하지요. 내가 그린 그림들을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동안 그린 책으로 『나는 기억할 거야』, 『나도 예민할 거야』, 『엄순대의 막중한 임무』, 『일기 도서관』, 『안녕, 첫 짝꿍』, 『들키고 싶은 비밀』 등이 있어요.
목 차
단골은 쓸쓸해
근육은 소중해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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