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도외시되었던 존재들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
자연에 대한 감각을 충족시키는 동시집
『재운이』 『서울 아이들』 이후 윤동재 시인이 20년 만에 선보이는 동시집 『씨앗 두 알』이 출간되었다. 『씨앗 두 알』에는 그간 도외시되었던 존재들을 다정히 살펴보고, 삶의 지혜를 발견해 온 시인의 기록이 담겨 있다. 씨앗과 새싹에서부터 논밭을 일구는 농사꾼, 나물을 캐는 우리네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주목한 대상은 작고 평범하다. 하지만 햇볕 아래 자란 생명은 강하며, 자연의 흐름에 가만히 함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세상의 이치가 있다. 시인은 이를 포착해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감각을 선사하며, 우리 삶에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온기가 필요함을 알려 준다. 오랜만에 독자 곁에 찾아온 시인이 꾹꾹 눌러쓴 동시들은 소박하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진한 감동을 전할 것이다.
맑고 깨끗한 마음이 모여 만들어 내는
더불어 사는 세계
우리 할아버지/밭에다 씨앗을 심을 때 보면/한 구멍에다 꼭 두 알씩 심지요//한 알만 심지 않고/왜 두 알씩 심어요?/물어보면//두 알씩 심으면/서로서로 잘 자라려고 애쓰느라/둘 다 쑥쑥 자란다지요//두 알씩 심으면/서로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느라/둘 다 무럭무럭 큰다지요_「씨앗 두 알」 전문
『씨앗 두 알』 속 존재들은 모두 ‘상생’의 마음을 갖고 있다. 두 알씩 심은 씨앗은 서로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며 무럭무럭 자라고(「씨앗 두 알」), 새들은 목마를 다른 새를 위해 북두칠성 국자를 비켜 조심조심 날고(「북두칠성 국자」), 밤나무는 엄마 다람쥐와 아기 다람쥐를 위해 기꺼이 알밤을 떨구어 준다(「알밤 도톨밤은 줍고 도사리 밤은 냅두고」). 이러한 동시들은 욕심부리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본질적인 가르침을 강요나 훈계가 아닌, 하나의 장면으로 쉽고 따스하게 알려 준다.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아버지 시골에 와서/처음으로 밭 갈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 때/이웃 사람들이 말하기를/여기는 심을 게 없다고//고구마 심으면/멧돼지가 먹고/수수 심으면/참새가 먹고//땅콩 심으면/너구리가 파헤치고/콩이나 상추 심으면/고라니가 먹고//우리 아버지 그 말 듣고/멧돼지와 참새와 너구리와 고라니와/오손도손 나눠 먹으면 되지/서로서로 나눠 먹으면 되지_「오손도손 서로서로」 전문
시인의 동시에는 어린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어른들이 자주 등장한다. 야생 동물들과 농작물을 나누는 아버지(「오손도손 서로서로」), 옆집을 위해 쑥을 남겨 두는 할머니(「쑥」), 힘들여 뜯은 봄나물을 아픈 이웃 먼저 가져다주는 안덕 할매(「봄나물」)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말로만 가르치지 않는다.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여 어린이의 마음에 자연스레 가닿는다. 동시 속의 청자, 그리고 동시 밖의 독자일 어린이들은 정직한 사랑과 살뜰한 보살핌 아래 따뜻한 심성을 가진 또 하나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
어린이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동시
윤동재는 동시를 쓰는데, 동시라야 제대로 된 시이다. 동심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누구나 자기 동심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동심이 죽어 병든 이 시대가 살아나려면, 가장 순수한 동시가 있어야 한다. 윤동재는 이런 요청에 응답했다._발문 「동심・천심・시심」 부분
조동일의 발문처럼 진지한 태도로 오랫동안 동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 온 시인은 동시란 ‘진실에 말 걸기’라는 자신의 신념을 잊지 않고 어린이가 처한 현실을 잘 담아냈다. 학원과 숙제에 매여 있는 어린이의 바람을 그린 「선물」에서는 놀 권리를 잃어버린 어린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나고, 폐교가 된 학교와 텅 빈 운동장의 모습을 담은 「고추」에서는 어린이가 사라지는 시대에 대한 씁쓸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걱정과 우려를 늘어놓는 대신 순수한 즐거움과 정이 넘치는 농촌의 전경을 보여 주기를 택했다. 밤하늘의 별과 마음을 나누거나(「별 동무」) 모래밭에 발자국을 찍으며 노는(「모래밭」) 어린이들은 어린이답게 해맑고, 마당에 찾아온 참새가 불편하지 않게 애써 모른 척하는(「우리 집 마당을 찾아온 참새」) 어린이는 생명의 소중함을 스스로 배운다. 그 어느 때보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우려가 깊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기조차 어색한 지금, 공생을 말하는 그의 동시는 현재 우리에게 꼭 필요한 동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동시에 대한 애정과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동시와 살고 동시가 되자”고 외친다. 그런 시인이 산과 들을 누비며 자랐던 경험을 고이 간직해 써낸 동시가 세대를 건너 진한 울림을 선사하길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동재
1958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과 고려대학교 강사를 지냈습니다. 1982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동시집 『재운이』 『서울 아이들』 『윤동재 동시선집』, 시그림책 『영이의 비닐우산』, 시집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마다 좋은 날』 『대표작』, 학술서 『한국현대시와 한시의 상관성』 등을 썼습니다.
그린이 : 해미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와 강아지 같은 사람 한 명을 관찰하고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사』 『모두 잘 지내겠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목 차
서시|동시와 살고 동시가 되자
제1부
발자국 소리 | 씨앗 두 알 | 상추 새싹 | 흙 | 딱한 사람 | 쑥 | 우리 집 마당을 찾아온 참새 | 알밤 도톨밤은 줍고 도사리 밤은 냅두고 | 오리 뿔났다 | 정구지 | 할머니 귀 | 봄나물 | 봄 호수 | 봄꽃 | 벚꽃역 | 고추 | 대곡분교 | 질경이 | 할머니 내게 시를 써 보라 하시네 | 북두칠성 국자 | 오손도손 서로서로 | 보름달 메달 | 잎과 입
제2부
모래밭 | 그림 그리는 미루나무 | 고마리꽃 | 감나무집 할매 | 부지런한 손 | 충무김밥 | 방귀 노래 | 뿔논병아리 어미 새 | 밀양 얼음골 사과 | 산수유 마을 | 눈 내린 겨울 아침 | 꽃 부자 | 가장 좋은 공부 | 그 말 | 선물 | 별 동무 | 봄이 오면 | 우리 산마을로 가요 | 살구꽃 활짝 핀 봄날 아침 | 이 좋은 일을 내가 먼저 해야지! | 작은 호수 | 햇빛의 무게 | 달은 누가 충전하나
발문|동심・천심・시심_조동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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