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한량 남편과 고된 결혼 생활
사임당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난 때는 강릉 친정집에서 성장하던 유년 시절이었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외에도 외할아버지 이사온, 외할머니 강릉 최씨 모두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이들로 사임당의 유년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신진 사림으로 개혁파에 속했던 아버지에게서 유교 경전을 배우고 문?사?철의 학문과 시?서?화의 교양을 쌓았다. 아버지 신명화도 둘째 딸 사임당을 유달리 아껴서 사임당이 결혼할 때는 사위 이원수에게 “내가 딸이 많은데 다른 딸은 시집을 가도 서운하질 않더니 그대의 처만은 내 곁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네그려.”라며 허전함을 내비쳤다.
사임당이 결혼했을 때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청년으로 막 접어든 시기, 한량 남편과 결혼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사임당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든든한 아버지 신명화는 사임당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고 남편 이원수는 말년에야 한미한 관직을 음직으로 얻었을 뿐 평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채 무능하게 지냈다. 사임당은 홀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홀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자녀들을 길렀다. 그 와중에 틈틈이 어려운 형편에 보태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자수를 놓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임당의 작품 대다수는 자수를 놓기 전에 먼저 본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사임당이 47세 되던 해 여름에 남편 이원수가 드디어 관직을 얻었다. 수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수운판관이라는 미관말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사임당은 안정의 행복감을 누려 보기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향년 48세였다.
힘겨운 삶을 지탱해 준 예술
사임당의 예술 세계는 시와 글씨, 그림과 자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림이다. 앞서 말했듯 결혼 이후 자수는 살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림은 자수를 위한 수본이 되었다. 사임당에게 예술 활동은 생활비를 버는 생활의 방편이자 고단했던 삶의 한 줄기 위안이었다. 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 대다수가 초충도인 것은 당시 규중의 아낙네들이 선호하여 안방에 걸어 두던 화목이 초충도였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사임당은 유년 시절 뜰에서 보고 관찰한 꽃과 풀과 벌레, 채소 등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는데 사임당이 작품에 구현한 살아 있는 것들의 모습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려운 것이었다. 사임당보다 200년쯤 후에 등장한 화조도 화가인 심사정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생동감이나 정밀도, 색채의 조화와 구도에 있어 사임당 작품의 우수성이 확인된다. 심사정이 사물을 직접 관찰하지 않고 다른 화보에 의존한 데 비해 사임당은 자연 속에서 온갖 생명체들을 접하면서 직접 사생하여 조선의 토착적인 초충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훗날 겸재 정선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사임당이 그렸던 풀과 열매와 꽃, 곤충과 동물들이 그대로 소재로 선택되었고 사임당의 표현 기법인 몰골법(윤곽선 없이 한 붓에 그리는 화법)도 계승 발전되었다.
풀이여 벌레여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중략)
채색만을 쓴 것이라 한결 더 아름다워
그 무슨 법인가 무골법이 이것이네
― 숙종이 사임당의 초충도에 부친 시
결혼 생활과 자기실현을 함께 이룬 조선 시대의 ‘워킹맘’
저자는 사임당이 현모양처였느냐, 훌륭한 예술가였느냐 하는 이분법적 논의가 ‘사임당의 예술적 성취와 자아실현이 현모양처 역할에 누가 되었는가? 과연 모성과 여성 주체성은 상호 갈등 관계인가?’ 하는 명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임당의 예술은 결코 여유로운 귀족 취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임당은 결혼 이후 모든 살림의 부담을 떠안고 고군분투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혼 생활이 완전히 자기희생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사임당에게서 결혼 생활과 자아실현은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남편 이원수도, 훗날 사임당에게 ‘휼륭한 어머니상’을 덧씌웠다고 언급되는 송시열도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부정하지 않았고 도리어 높이 칭송했다.
결론적으로 사임당은 결혼 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함께 이룬 여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어려운 일을 전통 유교 사회에서 해낸 것이다.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학문적 토대 위에 타고난 소질과 탁월한 감수성으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낸 사임당은 조선 시대 최초의 시?서?화 삼절이자 여성 선비의 전범(典範)이라는 찬사를 들어 마땅하다.
▣ 작가 소개
저 : 정옥자
정옥자는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인문대학 국사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유네스코 문화분과위원회 위원,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문제 자문위원회 위원,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서평위원회 위원장, 행정안전부 국새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4년 비추미여성대상 별리상(교육ㆍ연구개발 부문), 2007년 국무총리 공로상, 2010년 민세상(학술부문)을 수상했으며, ‘2011년 자랑스러운 서울대 사학인’으로 선정되었다. 또 2012년에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조선후기 지성사』,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역사에서 희망읽기』,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연구』, 『조선후기 중인문화연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조선시대 문화사』(공저),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등이 있다. 펼처보기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면서
1부 사임당의 삶, 그 빛과 그림자
1_아들 이이가 그린 어머니 사임당의 생애
2_유년의 뜰
3_연하고질(煙霞痼疾)
4_아버지에게 이어받은 학문과 수양
5_고단한 결혼 생활
2부 사임당의 예술혼
6_사임당의 시와 글씨
7_사임당의 그림과 자수
3부 길이 보배가 되리라
8_사임당의 자녀 이야기
9_사임당에 대한 기록
나가면서
주
연보
한량 남편과 고된 결혼 생활
사임당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난 때는 강릉 친정집에서 성장하던 유년 시절이었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외에도 외할아버지 이사온, 외할머니 강릉 최씨 모두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이들로 사임당의 유년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신진 사림으로 개혁파에 속했던 아버지에게서 유교 경전을 배우고 문?사?철의 학문과 시?서?화의 교양을 쌓았다. 아버지 신명화도 둘째 딸 사임당을 유달리 아껴서 사임당이 결혼할 때는 사위 이원수에게 “내가 딸이 많은데 다른 딸은 시집을 가도 서운하질 않더니 그대의 처만은 내 곁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네그려.”라며 허전함을 내비쳤다.
사임당이 결혼했을 때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청년으로 막 접어든 시기, 한량 남편과 결혼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사임당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든든한 아버지 신명화는 사임당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고 남편 이원수는 말년에야 한미한 관직을 음직으로 얻었을 뿐 평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채 무능하게 지냈다. 사임당은 홀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홀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자녀들을 길렀다. 그 와중에 틈틈이 어려운 형편에 보태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자수를 놓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임당의 작품 대다수는 자수를 놓기 전에 먼저 본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사임당이 47세 되던 해 여름에 남편 이원수가 드디어 관직을 얻었다. 수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수운판관이라는 미관말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사임당은 안정의 행복감을 누려 보기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향년 48세였다.
힘겨운 삶을 지탱해 준 예술
사임당의 예술 세계는 시와 글씨, 그림과 자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림이다. 앞서 말했듯 결혼 이후 자수는 살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림은 자수를 위한 수본이 되었다. 사임당에게 예술 활동은 생활비를 버는 생활의 방편이자 고단했던 삶의 한 줄기 위안이었다. 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 대다수가 초충도인 것은 당시 규중의 아낙네들이 선호하여 안방에 걸어 두던 화목이 초충도였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사임당은 유년 시절 뜰에서 보고 관찰한 꽃과 풀과 벌레, 채소 등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는데 사임당이 작품에 구현한 살아 있는 것들의 모습은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려운 것이었다. 사임당보다 200년쯤 후에 등장한 화조도 화가인 심사정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생동감이나 정밀도, 색채의 조화와 구도에 있어 사임당 작품의 우수성이 확인된다. 심사정이 사물을 직접 관찰하지 않고 다른 화보에 의존한 데 비해 사임당은 자연 속에서 온갖 생명체들을 접하면서 직접 사생하여 조선의 토착적인 초충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훗날 겸재 정선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사임당이 그렸던 풀과 열매와 꽃, 곤충과 동물들이 그대로 소재로 선택되었고 사임당의 표현 기법인 몰골법(윤곽선 없이 한 붓에 그리는 화법)도 계승 발전되었다.
풀이여 벌레여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중략)
채색만을 쓴 것이라 한결 더 아름다워
그 무슨 법인가 무골법이 이것이네
― 숙종이 사임당의 초충도에 부친 시
결혼 생활과 자기실현을 함께 이룬 조선 시대의 ‘워킹맘’
저자는 사임당이 현모양처였느냐, 훌륭한 예술가였느냐 하는 이분법적 논의가 ‘사임당의 예술적 성취와 자아실현이 현모양처 역할에 누가 되었는가? 과연 모성과 여성 주체성은 상호 갈등 관계인가?’ 하는 명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임당의 예술은 결코 여유로운 귀족 취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임당은 결혼 이후 모든 살림의 부담을 떠안고 고군분투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혼 생활이 완전히 자기희생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사임당에게서 결혼 생활과 자아실현은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남편 이원수도, 훗날 사임당에게 ‘휼륭한 어머니상’을 덧씌웠다고 언급되는 송시열도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부정하지 않았고 도리어 높이 칭송했다.
결론적으로 사임당은 결혼 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함께 이룬 여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어려운 일을 전통 유교 사회에서 해낸 것이다.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학문적 토대 위에 타고난 소질과 탁월한 감수성으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낸 사임당은 조선 시대 최초의 시?서?화 삼절이자 여성 선비의 전범(典範)이라는 찬사를 들어 마땅하다.
▣ 작가 소개
저 : 정옥자
정옥자는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인문대학 국사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유네스코 문화분과위원회 위원,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문제 자문위원회 위원,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서평위원회 위원장, 행정안전부 국새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4년 비추미여성대상 별리상(교육ㆍ연구개발 부문), 2007년 국무총리 공로상, 2010년 민세상(학술부문)을 수상했으며, ‘2011년 자랑스러운 서울대 사학인’으로 선정되었다. 또 2012년에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조선후기 지성사』,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역사에서 희망읽기』,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연구』, 『조선후기 중인문화연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조선시대 문화사』(공저),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등이 있다. 펼처보기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면서
1부 사임당의 삶, 그 빛과 그림자
1_아들 이이가 그린 어머니 사임당의 생애
2_유년의 뜰
3_연하고질(煙霞痼疾)
4_아버지에게 이어받은 학문과 수양
5_고단한 결혼 생활
2부 사임당의 예술혼
6_사임당의 시와 글씨
7_사임당의 그림과 자수
3부 길이 보배가 되리라
8_사임당의 자녀 이야기
9_사임당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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