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우리 시각으로 영국의 역사를 깊이 읽다!
“영국 근대 사회에서 브렉시트Brexit까지”
근대 영국 사회는 우연한 사건과 요소에 의해 변화했을까,
합리적인 기획에 따른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까?
근대 영국과 다른 지역과의 관계 또는 접촉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근대 영국을 사회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세계사의 시각에서 영국의 근대화를
재조명하며 영제국의 형성과 변모까지 살핀다.
근대 영국의 역사를 ‘근대의 공간’, ‘영국사와 외부 세계’로 고찰하다
30여 년간 영국 근대사를 연구해온 저자 이영석 교수(광주대)가 동아시아 출신 연구자의 입장에서 근대 영국 역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하나는 전통 지배 세력이 근대화 과정에서 뒤처지거나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던 작은 섬나라가 근대 세계의 형성을 주도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전에 그가 펴낸 《근대의 풍경》, 《영국 제국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각 장마다 저자 특유의 쉽고도 유려한 서술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국이라는 타자의 경험에서 오늘 우리 삶의 문제를 되짚다
영국의 근대화 과정은 전통에 기반을 두었거나 전통과 혁신이 뒤섞인 모호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영국 근대사의 저변에 깔린 중요한 배경이며, 오늘날까지 영국 사회가 지속과 변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이라는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요인이다.
이 책이 근대 영국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는 우리가 비록 영국과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영국이라는 타자의 경험이 때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영국의 ‘근대 공간’, 어떻게 형성·변화되었나
《영국사 깊이 읽기》는 ‘근대의 공간’과 ‘영국사와 외부 세계’라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영국 근대사에 접근한다. 제1부는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영국 근대 생활공간의 형성과 변화를 살핀다. 근대 도시, 정기 시장, 소매업 같은 근대적 생활공간의 형성을 탐색하고, 농촌 생활공간의 직선화, 근대 산업 문명의 상징으로서 세계박람회 등을 세밀하게 재현한다. 특히 근대적 생활공간의 형성에서 합리적 기획에 따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연한 사건과 계기에 의해 촉발되거나 자극받은 현상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역사 서술의 지평을 넓힌다.
1장 ‘런던 대화재’는 1666년 구 런던 시 대부분을 삽시간에 불태운 대화재 사건을 꼼꼼하게 재현한다. 당대에 이를 기록한 두 사람의 일기를 분석해 미시사적 방식으로 나흘간에 걸친 대화재의 전개 과정을 재구성한 다음, 참화를 당한 일반 사람들의 공포와 종말론적 환상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조명한다. 군주제 아래서도 국왕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일반 시민과 함께 진화 작업에 참여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자칫 그들을 향해 터져 나올 수 있는 민중의 분노와 항의를 잠재우려는 노력이 오늘날의 정치 현실과 겹치기도 한다.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을 맡은 사람들은 직선으로 근대화된 도시 공간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자는 도시 재개발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어떠했는지를 추적한다.
2장 ‘템스 강 천막시장의 기억’은 1683년부터 1684년에 걸친 겨울 한 달 반 동안 템스 강 빙판 위에 펼쳐진 천막시장의 사회사적 의미를 복원한다. 저자는 전근대적 시장이 근대적 정기시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혹한기에 템스 강 위에 형성된 임시시장의 경험과 기억이 시장의 영업시간과 영업공간을 제약하던 중세적 규제가 사라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현존하는 몇몇 기록을 통해 천막시장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나서, 17세기 말과 다음 세기 초에 런던의 정기시장이 들어서는 과정을 개괄한다. 정기시장야말로 근대 도시 상업활동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3장 ‘런던의 소매업’에서는 17~18세기 런던 중심가에 소상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핀다. 소매점 또한 중세적 전통 아래서는 길드 제도의 보호를 받는 점포 경영 수공업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 대상이었다. 그러나 런던은 인구가 증가하고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중세적 규제를 넘어서 길드 전통과 관계없이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소매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증권거래소 같은 대형 건물 내 매장, 해외 수입 상점, 일반 소매점 등의 유형별 소매업의 발전 양상을 재구성한다. 소매점 또한 근대적 생활공간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4장 ‘런던, 두 세기의 변화’는 18~20세기 근대 도시 런던의 발전을 개괄한다. 18세기 런던 인구 증가의 사회적 요인을 검토하고 이런 증가와 함께 부의 양극화가 지리적 양극화로 직접 연결되는 과정을 살핀다. 19세기 영제국의 팽창과 함께 국제도시로서 런던의 성격과 이미지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리고 제국 해체 이후 문화 중심지로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오늘날의 런던까지, 두 세기의 변화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5장 ‘의회 인클로저와 근대성’은 영국 근대화 과정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18세기 인클로저를 다루었다. 기존 연구들이 인클로저 규모, 그에 따른 농업 생산성 문제, 인클로저 이후 이농 등 경제사의 해묵은 주제들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저자는 생활사 또는 문화사적 시각에서 인클로저의 의미와 영향을 다시 바라본다. 두 세대 사이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의회 인클로저’에서 저자는 당대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에 생활공간의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느리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곡선의 세계가 빠르게 이동하고 변모하는 직선의 생활세계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클로저의 중요성은 농업의 합리적 경영이라는 슬로건보다 오히려 생활세계의 효율성 증대라는 문화적 측면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 한국 농촌사회에서 전개된 새마을운동과의 비교 연구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6장 ‘런던 세계박람회’는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는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의 준비에서 폐막까지 그 전 과정을 당대 기록에 의거해 재구성하고, 박람회가 브리튼이라는 국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박람회는 단순히 브리튼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산업문명의 요체를 형상화한 근대성의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지구사적 시각에서 근대 영국을 바라보다
제2부는 근대 영국을 국내 요인들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는 이전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최근 지구사 또는 세계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반영한다. 지구사적 시각에서 영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다시 조명하고, 19세기 영국 사회의 변화가 제국 경험 또는 주변부 지역의 문화적 영향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살핀다.
7장 ‘대분기大分岐와 근면혁명’은 넓게는 서유럽의 근대화, 좁게는 영국의 산업화를 바라보는 유럽 중심적 견해를 재검토한다. 16세기 이래 유럽의 대두를 유럽 사회 내부의 여러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해온 전통적인 견해는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케네스 포머란츠의 《대분기》는 출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포머란츠는 비교경제사, 즉 18세기 말 중국 양쯔 강 델타 지역과 잉글랜드의 경제를 비교해 잉글랜드의 우월성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18세기 말 영국의 대두는 오직 아메리카 대륙의 전유와 영국의 지리적 행운(값싼 석탄)에 힘입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포머란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특히 ‘근면혁명’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좀 더 상세하게 같은 시기 중국 경제와 잉글랜드 경제를 비교하면서 포머란츠의 견해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8장 ‘면綿의 세계사와 근대문명’도 지구사적 시각에서 영국 면 공업의 발전을 재해석한 내용이다. 조지오 리엘로는 최근 《면》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면 공업이 인도양 무역을 통해 인도 가내수공업으로부터의 학습, 모방, 경쟁 등의 오랜 과정을 거쳐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달리 말해, 영국의 산업화는 다른 세계와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인도면의 영향이 매우 중요했으며, 인도 면업과 경쟁 및 극복 과정이 영국 산업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저자는 리엘로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영국 산업혁명의 재해석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9장 ‘그들은 왜 기계를 예찬했는가’는 8장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내용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산업혁명기 작업기에 관한 여러 지식인의 담론을 분석한 끝에, 그들의 기계 예찬이 상당히 과장되었으며, 이러한 과장이 다분히 애국적인 수사와 섞여 있다고 단정한다. 왜 산업혁명기 지식인들은 작업기, 특히 자동뮬방적기를 높이 평가했을까? 그것은 인도 면업과 영국 섬유산업의 오랜 경쟁의 영향 탓이다. 영국의 면 방적기가 인도산에 못지않은 실을 뽑아내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이런 점에서 영국에서 방적기는 진보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인도 수공업자들의 손기술에 맞서기 위한 ‘열등성의 상징’이었다. 기계 개량이 진척된 1830년대 기계예찬론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의 기계예찬론에 애국적 서사가 포함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동시대 지식인들은 작업기에 주로 초점을 맞췄을 뿐, 증기기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 산업혁명의 특수성은 작업기를 지속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동력기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 있다. 값싼 석탄이 그 요체였다. 어쨌든 이 기계예찬론이 마르크스, 아널드 토인비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영국 산업혁명기의 급격한 기술혁신과 사회 변동을 강조하는 격변론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10장 ‘이와쿠라 사절단이 바라본 영국의 공업도시’는 1972년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영국에 3개월간 머물며 여러 산업도시를 방문한 여정을 뒤따른다. 저자는 사절단 일행이 영국의 산업문명과 영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탐색한다. 물론 주된 초점은 유럽 문명에 대한 아시아인의 인식이지만, 그들의 인상기를 통해 당시 영국 경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진단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사절단 보고서는 물론, 동시대 신문, 의사록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절단의 영국 체류 전 과정을 재구성했다.
11장과 12장은 19세기 영국 사회와 문화를 제국적 맥락에서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본국 사회와 문화가 주변부에 미친 영향 못지않게, 주변부의 문화와 또는 그 관계가 영국에 미친 영향이 중요하며,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비로소 근대 영국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영석
서양사학자 이영석은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클레어홀과 울프슨 칼리지 초빙교수를 지냈고, 한국서양사학회와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19세기 영국 사회사, 노동사, 생활사, 사학사 분야의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2012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우수학자로 선정되었다. 30여 년 동안 서양사, 특히 영국 근대사를 꾸준히 천착해온 그는 초창기에 19세기 사회경제사, 주로 공장법과 19세기 후반 경제 쇠퇴를 집중 연구하여 《산업혁명가 노동정책》(1994), 《다시 돌아본 자본의 시대》(1999) 등의 결과물을 냈다. 그 후 근대 영국의 다양한 사회계층의 일상사 또는 일반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인식 등의 주제를 미시사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근대의 풍경》(2003), 《영국 제국의 초상》(2009) 등의 결실로 맺었다. 또한 공장제도의 변천과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 같은 단일 주제를 연구해 《공장의 역사》(2012), 《지식인과 사회》(2004) 등을 출간했으며, 영국 사학사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사회사의 유혹》(2006),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 2015) 같은 저서도 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수공업 장인의 작업에 비유한다. 수공업 장인이 더 완벽한 작품을 구현해내기 위해 온힘을 쏟듯, 역사가도 자료와 텍스트라는 원재료를 갈고 다듬어 자기 나름으로 과거를 재현하고자 힘쓰며, 그러한 작업이 불완전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다는 것이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제1부 근대의 공간
1장 런던 대화재
일기로 보는 ‘대화재’|유언비어와 묵시록적 환상|사회불안과 당국의 대처|재건축과 도시 재개발|근대적 도시공간의 꿈
2장 템스 강 천막시장의 기억
템스 강 결빙과 천막시장|정기시에서 상설시장으로|경제사의 공백 메우기
3장 근대 초 런던의 소매업
도시 길드의 유산과 변화|해외무역과 소매점의 세계|소비 담론과 소매업|소비자혁명으로의 길
4장 런던, 두 세기의 변화
새뮤얼 존슨의 런던|도시의 팽창|지리적 양극화|제국도시와 이민|밀레니엄 축제, 그 이후
5장 의회 인클로저와 근대성
의회 인클로저와 산업혁명|공간의 재구성―곡선에서 직선으로|근대적 생활세계의 출현|비교의 필요성
6장 1851년 런던박람회, 신화와 현실
전시회에서 세계박람회로|왕립위원회와 자발적 동원의 정치|팍스 브리태니커와 국민 통합?|기억의 보존과 확인
제2부 영국사와 외부세계
7장 대분기와 근면혁명
포머란츠의 비교경제사|‘대분기’ 논쟁|근면혁명 문제|유럽중심적 역사상의 극복?
8장 면綿의 세계사와 근대문명
면과 인도양무역|유럽인의 등장과 새로운 교환체제|산업혁명의 재해석|몇 가지 문제
9장 그들은 왜 기계를 예찬했는가?
방적기와 인도산 면직물|인도 수공업에 대한 동시대인의 견해|산업혁명 다시 보기|격변론의 기원과 인도수공업
10장 이와쿠라 사절단이 탐방한 영국의 공업도시
이와쿠라 사절단의 영국 여정|산업문명에 대한 이해|공업도시의 명암|사절단 방문이 남긴 것
11장 영제국사 서술과 지구사
내국사와 제국사|네트워크로서의 제국|제국 경영의 동력과 지정학적 요인|역사 서술과 지구적 차원
12장 제국 경험과 문화
문화접변과 정체성|제국사 서술에서 문화의 문제|변용과 혼종으로서의 역사|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
책을 마치며
주석
찾아보기
우리 시각으로 영국의 역사를 깊이 읽다!
“영국 근대 사회에서 브렉시트Brexit까지”
근대 영국 사회는 우연한 사건과 요소에 의해 변화했을까,
합리적인 기획에 따른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까?
근대 영국과 다른 지역과의 관계 또는 접촉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근대 영국을 사회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세계사의 시각에서 영국의 근대화를
재조명하며 영제국의 형성과 변모까지 살핀다.
근대 영국의 역사를 ‘근대의 공간’, ‘영국사와 외부 세계’로 고찰하다
30여 년간 영국 근대사를 연구해온 저자 이영석 교수(광주대)가 동아시아 출신 연구자의 입장에서 근대 영국 역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하나는 전통 지배 세력이 근대화 과정에서 뒤처지거나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던 작은 섬나라가 근대 세계의 형성을 주도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전에 그가 펴낸 《근대의 풍경》, 《영국 제국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각 장마다 저자 특유의 쉽고도 유려한 서술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국이라는 타자의 경험에서 오늘 우리 삶의 문제를 되짚다
영국의 근대화 과정은 전통에 기반을 두었거나 전통과 혁신이 뒤섞인 모호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영국 근대사의 저변에 깔린 중요한 배경이며, 오늘날까지 영국 사회가 지속과 변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이라는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요인이다.
이 책이 근대 영국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는 우리가 비록 영국과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영국이라는 타자의 경험이 때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영국의 ‘근대 공간’, 어떻게 형성·변화되었나
《영국사 깊이 읽기》는 ‘근대의 공간’과 ‘영국사와 외부 세계’라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영국 근대사에 접근한다. 제1부는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영국 근대 생활공간의 형성과 변화를 살핀다. 근대 도시, 정기 시장, 소매업 같은 근대적 생활공간의 형성을 탐색하고, 농촌 생활공간의 직선화, 근대 산업 문명의 상징으로서 세계박람회 등을 세밀하게 재현한다. 특히 근대적 생활공간의 형성에서 합리적 기획에 따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연한 사건과 계기에 의해 촉발되거나 자극받은 현상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역사 서술의 지평을 넓힌다.
1장 ‘런던 대화재’는 1666년 구 런던 시 대부분을 삽시간에 불태운 대화재 사건을 꼼꼼하게 재현한다. 당대에 이를 기록한 두 사람의 일기를 분석해 미시사적 방식으로 나흘간에 걸친 대화재의 전개 과정을 재구성한 다음, 참화를 당한 일반 사람들의 공포와 종말론적 환상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조명한다. 군주제 아래서도 국왕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일반 시민과 함께 진화 작업에 참여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자칫 그들을 향해 터져 나올 수 있는 민중의 분노와 항의를 잠재우려는 노력이 오늘날의 정치 현실과 겹치기도 한다.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을 맡은 사람들은 직선으로 근대화된 도시 공간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자는 도시 재개발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어떠했는지를 추적한다.
2장 ‘템스 강 천막시장의 기억’은 1683년부터 1684년에 걸친 겨울 한 달 반 동안 템스 강 빙판 위에 펼쳐진 천막시장의 사회사적 의미를 복원한다. 저자는 전근대적 시장이 근대적 정기시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혹한기에 템스 강 위에 형성된 임시시장의 경험과 기억이 시장의 영업시간과 영업공간을 제약하던 중세적 규제가 사라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현존하는 몇몇 기록을 통해 천막시장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나서, 17세기 말과 다음 세기 초에 런던의 정기시장이 들어서는 과정을 개괄한다. 정기시장야말로 근대 도시 상업활동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3장 ‘런던의 소매업’에서는 17~18세기 런던 중심가에 소상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살핀다. 소매점 또한 중세적 전통 아래서는 길드 제도의 보호를 받는 점포 경영 수공업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 대상이었다. 그러나 런던은 인구가 증가하고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중세적 규제를 넘어서 길드 전통과 관계없이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소매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증권거래소 같은 대형 건물 내 매장, 해외 수입 상점, 일반 소매점 등의 유형별 소매업의 발전 양상을 재구성한다. 소매점 또한 근대적 생활공간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4장 ‘런던, 두 세기의 변화’는 18~20세기 근대 도시 런던의 발전을 개괄한다. 18세기 런던 인구 증가의 사회적 요인을 검토하고 이런 증가와 함께 부의 양극화가 지리적 양극화로 직접 연결되는 과정을 살핀다. 19세기 영제국의 팽창과 함께 국제도시로서 런던의 성격과 이미지가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리고 제국 해체 이후 문화 중심지로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오늘날의 런던까지, 두 세기의 변화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5장 ‘의회 인클로저와 근대성’은 영국 근대화 과정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18세기 인클로저를 다루었다. 기존 연구들이 인클로저 규모, 그에 따른 농업 생산성 문제, 인클로저 이후 이농 등 경제사의 해묵은 주제들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저자는 생활사 또는 문화사적 시각에서 인클로저의 의미와 영향을 다시 바라본다. 두 세대 사이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의회 인클로저’에서 저자는 당대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에 생활공간의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것은 느리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곡선의 세계가 빠르게 이동하고 변모하는 직선의 생활세계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클로저의 중요성은 농업의 합리적 경영이라는 슬로건보다 오히려 생활세계의 효율성 증대라는 문화적 측면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 한국 농촌사회에서 전개된 새마을운동과의 비교 연구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6장 ‘런던 세계박람회’는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는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의 준비에서 폐막까지 그 전 과정을 당대 기록에 의거해 재구성하고, 박람회가 브리튼이라는 국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박람회는 단순히 브리튼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산업문명의 요체를 형상화한 근대성의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지구사적 시각에서 근대 영국을 바라보다
제2부는 근대 영국을 국내 요인들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는 이전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최근 지구사 또는 세계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반영한다. 지구사적 시각에서 영국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다시 조명하고, 19세기 영국 사회의 변화가 제국 경험 또는 주변부 지역의 문화적 영향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살핀다.
7장 ‘대분기大分岐와 근면혁명’은 넓게는 서유럽의 근대화, 좁게는 영국의 산업화를 바라보는 유럽 중심적 견해를 재검토한다. 16세기 이래 유럽의 대두를 유럽 사회 내부의 여러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해온 전통적인 견해는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케네스 포머란츠의 《대분기》는 출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포머란츠는 비교경제사, 즉 18세기 말 중국 양쯔 강 델타 지역과 잉글랜드의 경제를 비교해 잉글랜드의 우월성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18세기 말 영국의 대두는 오직 아메리카 대륙의 전유와 영국의 지리적 행운(값싼 석탄)에 힘입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포머란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특히 ‘근면혁명’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좀 더 상세하게 같은 시기 중국 경제와 잉글랜드 경제를 비교하면서 포머란츠의 견해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8장 ‘면綿의 세계사와 근대문명’도 지구사적 시각에서 영국 면 공업의 발전을 재해석한 내용이다. 조지오 리엘로는 최근 《면》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면 공업이 인도양 무역을 통해 인도 가내수공업으로부터의 학습, 모방, 경쟁 등의 오랜 과정을 거쳐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달리 말해, 영국의 산업화는 다른 세계와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인도면의 영향이 매우 중요했으며, 인도 면업과 경쟁 및 극복 과정이 영국 산업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저자는 리엘로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영국 산업혁명의 재해석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9장 ‘그들은 왜 기계를 예찬했는가’는 8장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내용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산업혁명기 작업기에 관한 여러 지식인의 담론을 분석한 끝에, 그들의 기계 예찬이 상당히 과장되었으며, 이러한 과장이 다분히 애국적인 수사와 섞여 있다고 단정한다. 왜 산업혁명기 지식인들은 작업기, 특히 자동뮬방적기를 높이 평가했을까? 그것은 인도 면업과 영국 섬유산업의 오랜 경쟁의 영향 탓이다. 영국의 면 방적기가 인도산에 못지않은 실을 뽑아내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이런 점에서 영국에서 방적기는 진보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인도 수공업자들의 손기술에 맞서기 위한 ‘열등성의 상징’이었다. 기계 개량이 진척된 1830년대 기계예찬론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의 기계예찬론에 애국적 서사가 포함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동시대 지식인들은 작업기에 주로 초점을 맞췄을 뿐, 증기기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 산업혁명의 특수성은 작업기를 지속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동력기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 있다. 값싼 석탄이 그 요체였다. 어쨌든 이 기계예찬론이 마르크스, 아널드 토인비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영국 산업혁명기의 급격한 기술혁신과 사회 변동을 강조하는 격변론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10장 ‘이와쿠라 사절단이 바라본 영국의 공업도시’는 1972년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영국에 3개월간 머물며 여러 산업도시를 방문한 여정을 뒤따른다. 저자는 사절단 일행이 영국의 산업문명과 영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탐색한다. 물론 주된 초점은 유럽 문명에 대한 아시아인의 인식이지만, 그들의 인상기를 통해 당시 영국 경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진단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사절단 보고서는 물론, 동시대 신문, 의사록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절단의 영국 체류 전 과정을 재구성했다.
11장과 12장은 19세기 영국 사회와 문화를 제국적 맥락에서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본국 사회와 문화가 주변부에 미친 영향 못지않게, 주변부의 문화와 또는 그 관계가 영국에 미친 영향이 중요하며,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비로소 근대 영국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영석
서양사학자 이영석은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클레어홀과 울프슨 칼리지 초빙교수를 지냈고, 한국서양사학회와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19세기 영국 사회사, 노동사, 생활사, 사학사 분야의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2012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우수학자로 선정되었다. 30여 년 동안 서양사, 특히 영국 근대사를 꾸준히 천착해온 그는 초창기에 19세기 사회경제사, 주로 공장법과 19세기 후반 경제 쇠퇴를 집중 연구하여 《산업혁명가 노동정책》(1994), 《다시 돌아본 자본의 시대》(1999) 등의 결과물을 냈다. 그 후 근대 영국의 다양한 사회계층의 일상사 또는 일반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인식 등의 주제를 미시사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근대의 풍경》(2003), 《영국 제국의 초상》(2009) 등의 결실로 맺었다. 또한 공장제도의 변천과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 같은 단일 주제를 연구해 《공장의 역사》(2012), 《지식인과 사회》(2004) 등을 출간했으며, 영국 사학사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사회사의 유혹》(2006),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 2015) 같은 저서도 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수공업 장인의 작업에 비유한다. 수공업 장인이 더 완벽한 작품을 구현해내기 위해 온힘을 쏟듯, 역사가도 자료와 텍스트라는 원재료를 갈고 다듬어 자기 나름으로 과거를 재현하고자 힘쓰며, 그러한 작업이 불완전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다는 것이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제1부 근대의 공간
1장 런던 대화재
일기로 보는 ‘대화재’|유언비어와 묵시록적 환상|사회불안과 당국의 대처|재건축과 도시 재개발|근대적 도시공간의 꿈
2장 템스 강 천막시장의 기억
템스 강 결빙과 천막시장|정기시에서 상설시장으로|경제사의 공백 메우기
3장 근대 초 런던의 소매업
도시 길드의 유산과 변화|해외무역과 소매점의 세계|소비 담론과 소매업|소비자혁명으로의 길
4장 런던, 두 세기의 변화
새뮤얼 존슨의 런던|도시의 팽창|지리적 양극화|제국도시와 이민|밀레니엄 축제, 그 이후
5장 의회 인클로저와 근대성
의회 인클로저와 산업혁명|공간의 재구성―곡선에서 직선으로|근대적 생활세계의 출현|비교의 필요성
6장 1851년 런던박람회, 신화와 현실
전시회에서 세계박람회로|왕립위원회와 자발적 동원의 정치|팍스 브리태니커와 국민 통합?|기억의 보존과 확인
제2부 영국사와 외부세계
7장 대분기와 근면혁명
포머란츠의 비교경제사|‘대분기’ 논쟁|근면혁명 문제|유럽중심적 역사상의 극복?
8장 면綿의 세계사와 근대문명
면과 인도양무역|유럽인의 등장과 새로운 교환체제|산업혁명의 재해석|몇 가지 문제
9장 그들은 왜 기계를 예찬했는가?
방적기와 인도산 면직물|인도 수공업에 대한 동시대인의 견해|산업혁명 다시 보기|격변론의 기원과 인도수공업
10장 이와쿠라 사절단이 탐방한 영국의 공업도시
이와쿠라 사절단의 영국 여정|산업문명에 대한 이해|공업도시의 명암|사절단 방문이 남긴 것
11장 영제국사 서술과 지구사
내국사와 제국사|네트워크로서의 제국|제국 경영의 동력과 지정학적 요인|역사 서술과 지구적 차원
12장 제국 경험과 문화
문화접변과 정체성|제국사 서술에서 문화의 문제|변용과 혼종으로서의 역사|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
책을 마치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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