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영웅신화의 문법과 구조, 심층적 의미를 밝혀낸 20세기 명저술을 읽는다
영웅. 사람들은 영웅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며 열광한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현대판 영웅 서사시를 소비하고, 마블 히어로들이 극장가를 점령한다. 이 같은 판타지나 슈퍼히어로물의 기저에는 영웅 신화가 있다. 모세, 길가메시, 헤라클레스, 로물루스, 예수 등 설화와 전설 속 각양각색의 영웅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영웅 신화는 현대에 와서 문학, 영화, 드라마, 연극, 게임 등 다양한 문화의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이야기 원천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한 이야기의 분석·전개·구성은, 대개 세 연구자의 이론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저서 『민담 형태론』(1928년)에서 러시아 민담을 분석한 러시아 형식주의 민속학자인 블라디미르 프로프이다. 그는 모든 이야기는 단위 조합으로 구성된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도 프로프는, 등장인물을 영웅(주인공), 악당, 증여자(영웅에게 초능력, 무기, 기술 등을 전수), 조력자(위기의 영웅을 구출), 파견자(영웅에게 임무 부여, 파견), 공주(혹은 보물)와 아버지(공주는 영웅에게 가고, 아버지는 허락함), 가짜 영웅(결국 가짜임이 드러나 처벌받음)이라는 7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그의 연구는 구조 분석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둘째는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다. 그는 인류학과 민속학,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을 통해 신화 연구를 통해,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영웅의 모험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출발(모험으로의 소명-소명의 거부-초자연적 존재의 원조-첫 경계의 통과-고래 뱃속). 2.입문(시련-여신과 만남-유혹자 여성-아버지와 일체화-신격화/변신-보상). 3.귀환(귀환의 거부-주술적 도주-외부로부터의 구조-귀로-두 세계의 스승-삶의 자유). 이후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캠벨의 이론을 충실히 수용,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에 맞게 매뉴얼화 했다. 이를테면 영웅의 모험을 간략, 단순하게 구조화한 것이다.
세 번째 언급할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오토 랑크이다. 그는 이미 1909년에 『영웅의 탄생 Der Mythus von der Geburt des Helden』을 집필, 캠벨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로 꼽히는 캠벨도 랑크가 제시한 이론을 조금 더 세분화했을 뿐이다. 랑크의 연구는 프로프보다도 더 오래전이라 ‘구조’라는 개념은 없지만, 여러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영웅 탄생 신화에서의 문법을 추출해냈다. 그는 비정상적인 탄생으로 시작되는 영웅의 출생 신화에는 공통된 틀이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어머니가 특별한 아이를 낳다가 죽는 이야기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의 영웅 신화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 영웅은 지위가 높은 부모, 일반적으로 왕의 혈통을 이은 아이로 태어난다.
2. 그의 탄생을 전후로 부모는 여러 형태의 난관을 겪는다(이를테면 금욕이나 불임, 또는 외부의 통제를 무릅쓴 비밀스런 동침 등이다).
3. 영웅이 태어나기 전에 꿈이나 신탁을 통해 예언이 이루어진다. 영웅이 아버지나 군주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불길한 경고이다. 예언을 들은 아버지는 아이의 출생을 두려워한다.
4. 아이(영웅)를 상자나 바구니 등에 넣어 물가에 버린다. 즉, ‘흘려보내질’ 운명이다.
5. 아이는 늑대, 곰 등의 야생동물이나 양치기와 같은 하층민에게 구조되거나 비천한 여인의 젖을 먹고 자란다. 주인공은 진짜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채 자라거나 양부모가 키운다.
6.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7. 아이는 자신을 낳은 부모에게 복수한다.
8. 친부모는 아이가 자기 자식임을 인정하고, 아이는 최고의 영예를 얻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오이디푸스 신화’나, 영화 [스타워즈]에 대입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들어맞는다. 데즈카 오사무(일본의 만화가이자 감독, 대표작 [우주소년 아톰])를 비롯한 숱하게 많은 일본 만화, 아니메의 등장인물 중에는 랑크가 제시한 구조와 동일한 것이 많다. 랑크가 연구한 영웅담에는 ‘어머니의 죽음’이나 ‘아버지 살해’라는 주제가 포함된다. 말하자면 ‘출생 트라우마’를 소재로 삼아 비교신화학의 중요한 이미지를 제시한 것이다. 예컨대 영화 [스타워즈]에서 랑크가 언급한 ‘아버지 찾기’의 구조를 찾아보자.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제다이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탄생이 제국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예언 때문에 변경 행성의 숙부 집에서 자랐고, 마지막에는 진짜 아버지인 다스베이더를 쓰러뜨리게 된다. [스타워즈]에는 모자 근친상간 내용은 없다. 다만 레이아 공주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루크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결국 남매라는 것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근친상간 금기’가 담겨져 있다.
랑크가 말하는 신화 속 영웅이 부모를 제거하려고 한다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 살해’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위해서 과거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시의 자연을 지배하고 신으로 존재하던 거대한 몸집의 동물 형상의 신들은 파괴되고 극복되어야 할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이다. 그들의 머리는 기요틴에서 처형된 혁명기의 절단된 두상들과 유사하다. 중국의 반고 신화나 북구의 위미르 신화와 같은 최초의 거인 살해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고 새 세계의 도래를 의미한다. 혼돈적 카오스를 해체하여 질서 잡힌 코스모스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는 구체제(status quo)의 붕괴, 아버지 살해로 이룩된다.
헤라클레스와 헤라, 로물루스 형제와 암늑대에서 다른 예를 찾을 수 있다. 영웅의 출생은 어머니-아내에 의한 재탄생을 나타내기 때문에 영웅은 종종 두 어머니를 갖는다는 것이다. 영웅은 자주 버림받고 그래서 자주 양부모가 키운다. 이런 식으로 영웅은 두 어머니를 만난다. 영웅은 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로서 인간의 무의식적 자기이다. 영웅은 자기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스로 자신을 낳는 자이다. 그들은 주체가 해야 할 만한 것, 할 수 있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 그러나 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 특히 가족과 집을 떠나는 것은 영웅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또 영웅은 괴물에게서 어렵게 얻을 수 있는 보물을 빼앗아 온다.
프로이트에 반기를 든 반항아이자,
심층심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 ‘오토 랑크’를 만난다.
이 책의 다른 의미는 심리학사적인 의의이다. 오토 랑크는 현대 심리학의 3가지 관점을 구성하는 대학자인데 반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층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 알프레드 아들러, 오토 랑크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대상 관계(object relations)를 중시한다], 2.아들러의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 3.융 학파: 칼 융, 오토 랑크의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과 힐맨(James Hilman)의 원형심리학(archetypal psychology).
특히 융은 랑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신화의 정의에 대해서도, 꿈이 개인의 신화라면 신화는 한 민족의 ‘유아기적 정신생활’이 보존되어 있는 한 부분(프란츠 리클린)이라는 주장에 반해, 융은 유아기적이라기보다는 신화는 모든 민족의 ‘성숙한 단계’에서 소망하고 환상하는 것으로, 초기 인류가 꿈꿨던 세속적 바람이라고 보았다. 랑크가 신화를 민족의 집단적 꿈으로 여겼다는 점이 유사하다.
오토 랑크는 청년시절에 알프레드 아들러의 소개로 49세의 프로이트를 만났고, 단박에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프로이트는 20년을 곁에 두고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으며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랑크는 자신의 이론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스승의 주요 이론에 도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랑크가 1924년 발표한, 엄마와 아이의 정신적 관계를 새로이 조명한 책 [출생의 외상]은 충실한 프로이트주의자들에게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핵심으로 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뒤흔드는 위험한 것이었기에, 그는 프로이트 학회에서 쫓겨났으며 학계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랑크는 빈을 떠나 프랑스를 거쳐 말년에는 미국에서 활동했다.
그의 연구업적은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나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 헨리 밀러, 안나 닌 등 각계의 인물들에 의해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며, 심리학, 예술학, 철학, 종교학, 문화사 전반에 걸친 영향력이 재조명되었다. 기억이나 과거보다 현재와 실제 관계, 의식적 의지를 중시하는 랑크의 심리학은 대상관계 이론, 여성심리학, 심리치료 모델 연구 등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클라인, 로저스, 하인츠 코헛, 해리 건트립 등 주요 학자들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기존의 이론들에 반기를 들었고, 개인의 의식적 의지와 창조성의 힘을 믿었으며 말년에는 그의 유작이 된 책 제목처럼 ‘심리학을 넘어서’ 기계주의적 세계관을 넘어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세계로 초대하고자 했던 랑크. 그의 심리학은 죄의식과 투사, 자기합리화, 부정과 왜곡으로 억눌린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더욱 의미가 크다. 오늘날 그의 이론은 ‘의지 심리학’, ‘창조성의 심리학’이라 불리며 심리 상담과 치료, 집단적 문제해결, 리더십과 팀 러닝 등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영웅의 탄생』은 1909년 독일어로 출간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그가 프로이트의 지원 속에서 열정적으로 철학과 심리학 공부에 열중하던 시절에 출판한 책이다.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최고의 교과서이자 인류의 보고인 신화를 통해 오랫동안 축적된 상징적인 인간의 역사와 원초적 무의식에 대한 랑크의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책에서는 15명의 대표적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심리, 정신의 원형을 탐구하고 있다. 사르곤, 모세, 카르나, 오이디푸스, 파리스, 텔레포스, 페르세우스, 길가메시, 키루스, 트리스탄, 로물루스, 헤라클레스, 예수, 지크프리트, 로엔그린의 탄생 과정과 그 상호 유사성을 짚어보며 심리학적 해석을 제시한다.
오토 랑크는 결론에서 신화 속 영웅을 집단적 자아로 바라보며 심리학적 해석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꿈의 상징의 연구에 접목시키며 아이가 자라며 부모의 권위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스럽고도 필수적인 성장 과정과 성취로 해석을 시도한다. 그 밖에도 유아기의 상상력, 억압된 무의식의 판타지, 정신질환자의 편집증적인 과대망상, 근친상간의 모티브, 아버지와 아들의 정체성의 문제 등을 다룬다.
국내 처음 번역 출간되는 『영웅의 탄생』에서는 영웅 신화의 이해를 도와줄 관련 삽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천재적 심리학자 오토 랑크와 함께 그리스와 로마, 기독교, 힌두신화 등 다양한 문화권의 영웅신화를 통해 매력적인 신화학과 심리학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오토 랑크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알프레드 아들러와 함께 심층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손꼽힌다. 1905년에 아들러의 소개로 프로이트와 인연을 맺으면서 20년간 프로이트의 애제자이자 오른팔로서 활약했다. 프로이트가 ‘리틀 랑크’라고 부르며 친아들처럼 아꼈던 그는 정신분석협회 주요 저널의 편집자로서 일하는 한편 심리학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으나, 자신의 이론을 펼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에 반기를 들고 결별했다. 1926년 빈을 떠나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 뒤 1935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1939년에 신장 감염으로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심리치료사로 활동했다.
기억이나 과거보다 현재와 실제 관계, 의식적 의지를 중시하는 랑크의 심리학은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나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 헨리 밀러, 안나 닌 등 각계의 인물들에 의해 한때 정신분석계의 이단아로 낙인찍혔던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며, 심리학, 예술학, 철학, 종교학, 문화사 전반에 걸친 영향력이 재조명되었다. 그의 이론은 대상관계 이론, 여성심리학, 심리치료 모델 연구... 등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오늘날 ‘의지 심리학’, ‘창조성의 심리학’이라 불리며 심리 상담과 치료, 집단적 문제해결, 리더십과 팀 러닝 등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저서로 『심리학을 넘어서Beyond Psychology』, 『출생의 외상The Trauma of Birth』, 『예술가The Artist』, 『더블The Double』 등이 있다.
역자 : 이유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술관에서 일반인을 위한 예술 교육과 전시기획, 출판활동을 하고 있다. 편저로는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옮긴 책으로는 『마녀의 망치』(근간)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론
1. 사르곤
2. 모세
3. 카르나
4. 오이디푸스
5. 파리스
6. 텔레포스
7. 페르세우스
8. 길가메시
9. 키루스
10. 트리스탄
11. 로물루스
12. 헤라클레스
13. 예수
14. 지크프리트
15. 로엔그린
결론
영웅신화의 문법과 구조, 심층적 의미를 밝혀낸 20세기 명저술을 읽는다
영웅. 사람들은 영웅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며 열광한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현대판 영웅 서사시를 소비하고, 마블 히어로들이 극장가를 점령한다. 이 같은 판타지나 슈퍼히어로물의 기저에는 영웅 신화가 있다. 모세, 길가메시, 헤라클레스, 로물루스, 예수 등 설화와 전설 속 각양각색의 영웅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영웅 신화는 현대에 와서 문학, 영화, 드라마, 연극, 게임 등 다양한 문화의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이야기 원천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한 이야기의 분석·전개·구성은, 대개 세 연구자의 이론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저서 『민담 형태론』(1928년)에서 러시아 민담을 분석한 러시아 형식주의 민속학자인 블라디미르 프로프이다. 그는 모든 이야기는 단위 조합으로 구성된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도 프로프는, 등장인물을 영웅(주인공), 악당, 증여자(영웅에게 초능력, 무기, 기술 등을 전수), 조력자(위기의 영웅을 구출), 파견자(영웅에게 임무 부여, 파견), 공주(혹은 보물)와 아버지(공주는 영웅에게 가고, 아버지는 허락함), 가짜 영웅(결국 가짜임이 드러나 처벌받음)이라는 7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그의 연구는 구조 분석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둘째는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다. 그는 인류학과 민속학, 비교종교학과 분석심리학을 통해 신화 연구를 통해,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신화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영웅의 모험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출발(모험으로의 소명-소명의 거부-초자연적 존재의 원조-첫 경계의 통과-고래 뱃속). 2.입문(시련-여신과 만남-유혹자 여성-아버지와 일체화-신격화/변신-보상). 3.귀환(귀환의 거부-주술적 도주-외부로부터의 구조-귀로-두 세계의 스승-삶의 자유). 이후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캠벨의 이론을 충실히 수용,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에 맞게 매뉴얼화 했다. 이를테면 영웅의 모험을 간략, 단순하게 구조화한 것이다.
세 번째 언급할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오토 랑크이다. 그는 이미 1909년에 『영웅의 탄생 Der Mythus von der Geburt des Helden』을 집필, 캠벨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로 꼽히는 캠벨도 랑크가 제시한 이론을 조금 더 세분화했을 뿐이다. 랑크의 연구는 프로프보다도 더 오래전이라 ‘구조’라는 개념은 없지만, 여러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영웅 탄생 신화에서의 문법을 추출해냈다. 그는 비정상적인 탄생으로 시작되는 영웅의 출생 신화에는 공통된 틀이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어머니가 특별한 아이를 낳다가 죽는 이야기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의 영웅 신화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 영웅은 지위가 높은 부모, 일반적으로 왕의 혈통을 이은 아이로 태어난다.
2. 그의 탄생을 전후로 부모는 여러 형태의 난관을 겪는다(이를테면 금욕이나 불임, 또는 외부의 통제를 무릅쓴 비밀스런 동침 등이다).
3. 영웅이 태어나기 전에 꿈이나 신탁을 통해 예언이 이루어진다. 영웅이 아버지나 군주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불길한 경고이다. 예언을 들은 아버지는 아이의 출생을 두려워한다.
4. 아이(영웅)를 상자나 바구니 등에 넣어 물가에 버린다. 즉, ‘흘려보내질’ 운명이다.
5. 아이는 늑대, 곰 등의 야생동물이나 양치기와 같은 하층민에게 구조되거나 비천한 여인의 젖을 먹고 자란다. 주인공은 진짜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채 자라거나 양부모가 키운다.
6.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고귀한 혈통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7. 아이는 자신을 낳은 부모에게 복수한다.
8. 친부모는 아이가 자기 자식임을 인정하고, 아이는 최고의 영예를 얻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오이디푸스 신화’나, 영화 [스타워즈]에 대입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들어맞는다. 데즈카 오사무(일본의 만화가이자 감독, 대표작 [우주소년 아톰])를 비롯한 숱하게 많은 일본 만화, 아니메의 등장인물 중에는 랑크가 제시한 구조와 동일한 것이 많다. 랑크가 연구한 영웅담에는 ‘어머니의 죽음’이나 ‘아버지 살해’라는 주제가 포함된다. 말하자면 ‘출생 트라우마’를 소재로 삼아 비교신화학의 중요한 이미지를 제시한 것이다. 예컨대 영화 [스타워즈]에서 랑크가 언급한 ‘아버지 찾기’의 구조를 찾아보자.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제다이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탄생이 제국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예언 때문에 변경 행성의 숙부 집에서 자랐고, 마지막에는 진짜 아버지인 다스베이더를 쓰러뜨리게 된다. [스타워즈]에는 모자 근친상간 내용은 없다. 다만 레이아 공주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루크와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결국 남매라는 것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근친상간 금기’가 담겨져 있다.
랑크가 말하는 신화 속 영웅이 부모를 제거하려고 한다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 살해’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위해서 과거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시의 자연을 지배하고 신으로 존재하던 거대한 몸집의 동물 형상의 신들은 파괴되고 극복되어야 할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이다. 그들의 머리는 기요틴에서 처형된 혁명기의 절단된 두상들과 유사하다. 중국의 반고 신화나 북구의 위미르 신화와 같은 최초의 거인 살해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고 새 세계의 도래를 의미한다. 혼돈적 카오스를 해체하여 질서 잡힌 코스모스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는 구체제(status quo)의 붕괴, 아버지 살해로 이룩된다.
헤라클레스와 헤라, 로물루스 형제와 암늑대에서 다른 예를 찾을 수 있다. 영웅의 출생은 어머니-아내에 의한 재탄생을 나타내기 때문에 영웅은 종종 두 어머니를 갖는다는 것이다. 영웅은 자주 버림받고 그래서 자주 양부모가 키운다. 이런 식으로 영웅은 두 어머니를 만난다. 영웅은 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로서 인간의 무의식적 자기이다. 영웅은 자기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스로 자신을 낳는 자이다. 그들은 주체가 해야 할 만한 것, 할 수 있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 그러나 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 특히 가족과 집을 떠나는 것은 영웅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또 영웅은 괴물에게서 어렵게 얻을 수 있는 보물을 빼앗아 온다.
프로이트에 반기를 든 반항아이자,
심층심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 ‘오토 랑크’를 만난다.
이 책의 다른 의미는 심리학사적인 의의이다. 오토 랑크는 현대 심리학의 3가지 관점을 구성하는 대학자인데 반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층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 알프레드 아들러, 오토 랑크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대상 관계(object relations)를 중시한다], 2.아들러의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 3.융 학파: 칼 융, 오토 랑크의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과 힐맨(James Hilman)의 원형심리학(archetypal psychology).
특히 융은 랑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신화의 정의에 대해서도, 꿈이 개인의 신화라면 신화는 한 민족의 ‘유아기적 정신생활’이 보존되어 있는 한 부분(프란츠 리클린)이라는 주장에 반해, 융은 유아기적이라기보다는 신화는 모든 민족의 ‘성숙한 단계’에서 소망하고 환상하는 것으로, 초기 인류가 꿈꿨던 세속적 바람이라고 보았다. 랑크가 신화를 민족의 집단적 꿈으로 여겼다는 점이 유사하다.
오토 랑크는 청년시절에 알프레드 아들러의 소개로 49세의 프로이트를 만났고, 단박에 그의 비범함을 알아본 프로이트는 20년을 곁에 두고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으며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랑크는 자신의 이론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스승의 주요 이론에 도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랑크가 1924년 발표한, 엄마와 아이의 정신적 관계를 새로이 조명한 책 [출생의 외상]은 충실한 프로이트주의자들에게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핵심으로 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뒤흔드는 위험한 것이었기에, 그는 프로이트 학회에서 쫓겨났으며 학계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랑크는 빈을 떠나 프랑스를 거쳐 말년에는 미국에서 활동했다.
그의 연구업적은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나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 헨리 밀러, 안나 닌 등 각계의 인물들에 의해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며, 심리학, 예술학, 철학, 종교학, 문화사 전반에 걸친 영향력이 재조명되었다. 기억이나 과거보다 현재와 실제 관계, 의식적 의지를 중시하는 랑크의 심리학은 대상관계 이론, 여성심리학, 심리치료 모델 연구 등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클라인, 로저스, 하인츠 코헛, 해리 건트립 등 주요 학자들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기존의 이론들에 반기를 들었고, 개인의 의식적 의지와 창조성의 힘을 믿었으며 말년에는 그의 유작이 된 책 제목처럼 ‘심리학을 넘어서’ 기계주의적 세계관을 넘어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세계로 초대하고자 했던 랑크. 그의 심리학은 죄의식과 투사, 자기합리화, 부정과 왜곡으로 억눌린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더욱 의미가 크다. 오늘날 그의 이론은 ‘의지 심리학’, ‘창조성의 심리학’이라 불리며 심리 상담과 치료, 집단적 문제해결, 리더십과 팀 러닝 등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영웅의 탄생』은 1909년 독일어로 출간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그가 프로이트의 지원 속에서 열정적으로 철학과 심리학 공부에 열중하던 시절에 출판한 책이다.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최고의 교과서이자 인류의 보고인 신화를 통해 오랫동안 축적된 상징적인 인간의 역사와 원초적 무의식에 대한 랑크의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책에서는 15명의 대표적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심리, 정신의 원형을 탐구하고 있다. 사르곤, 모세, 카르나, 오이디푸스, 파리스, 텔레포스, 페르세우스, 길가메시, 키루스, 트리스탄, 로물루스, 헤라클레스, 예수, 지크프리트, 로엔그린의 탄생 과정과 그 상호 유사성을 짚어보며 심리학적 해석을 제시한다.
오토 랑크는 결론에서 신화 속 영웅을 집단적 자아로 바라보며 심리학적 해석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꿈의 상징의 연구에 접목시키며 아이가 자라며 부모의 권위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스럽고도 필수적인 성장 과정과 성취로 해석을 시도한다. 그 밖에도 유아기의 상상력, 억압된 무의식의 판타지, 정신질환자의 편집증적인 과대망상, 근친상간의 모티브, 아버지와 아들의 정체성의 문제 등을 다룬다.
국내 처음 번역 출간되는 『영웅의 탄생』에서는 영웅 신화의 이해를 도와줄 관련 삽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천재적 심리학자 오토 랑크와 함께 그리스와 로마, 기독교, 힌두신화 등 다양한 문화권의 영웅신화를 통해 매력적인 신화학과 심리학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오토 랑크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알프레드 아들러와 함께 심층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손꼽힌다. 1905년에 아들러의 소개로 프로이트와 인연을 맺으면서 20년간 프로이트의 애제자이자 오른팔로서 활약했다. 프로이트가 ‘리틀 랑크’라고 부르며 친아들처럼 아꼈던 그는 정신분석협회 주요 저널의 편집자로서 일하는 한편 심리학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갔으나, 자신의 이론을 펼치는 과정에서 프로이트에 반기를 들고 결별했다. 1926년 빈을 떠나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 뒤 1935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1939년에 신장 감염으로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심리치료사로 활동했다.
기억이나 과거보다 현재와 실제 관계, 의식적 의지를 중시하는 랑크의 심리학은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나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 헨리 밀러, 안나 닌 등 각계의 인물들에 의해 한때 정신분석계의 이단아로 낙인찍혔던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며, 심리학, 예술학, 철학, 종교학, 문화사 전반에 걸친 영향력이 재조명되었다. 그의 이론은 대상관계 이론, 여성심리학, 심리치료 모델 연구... 등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오늘날 ‘의지 심리학’, ‘창조성의 심리학’이라 불리며 심리 상담과 치료, 집단적 문제해결, 리더십과 팀 러닝 등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저서로 『심리학을 넘어서Beyond Psychology』, 『출생의 외상The Trauma of Birth』, 『예술가The Artist』, 『더블The Double』 등이 있다.
역자 : 이유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술관에서 일반인을 위한 예술 교육과 전시기획, 출판활동을 하고 있다. 편저로는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옮긴 책으로는 『마녀의 망치』(근간)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론
1. 사르곤
2. 모세
3. 카르나
4. 오이디푸스
5. 파리스
6. 텔레포스
7. 페르세우스
8. 길가메시
9. 키루스
10. 트리스탄
11. 로물루스
12. 헤라클레스
13. 예수
14. 지크프리트
15. 로엔그린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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