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부귀와 권세를 멀리하고 자기를 지켜 뜻을 높이다
성혼은 1535년(중종 35년) 청송 성수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성수침은 조광조의 문인이 되어 벼슬을 포기하고 깨끗한 재야 선비의 길을 걸었는데, 벼슬이 없는 성수침의 삶은 곤궁하여 종종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가난했다. 넉넉지 않은 가세는 아들 성혼에게도 이어져 환곡을 받지 않으면 봄철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항상 생활에 곤궁을 느끼고 살았다. 그나마 가솔이 많지 않아 겨우 자립은 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처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왜란 때 집이 불타 버리고 먹을 양식도 없어 절에서 밥을 얻어먹는가 하면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고 친구에게 옷을 부탁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궁핍한 생활에도 성혼은 수십 차례 거듭된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고 부귀영화를 멀리한 채 파주 우계의 오두막집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절친한 친구 이이에게도 가정 형편을 이유로 벼슬하면 언젠가는 이욕에 매달리는 타락한 선비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이의 벼슬살이를 지켜보며 선조가 진정으로 선비를 등용하고 받아들이는 임금이 아님을 알았기에 더욱 조정에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깥세상에 대해 관심을 거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한시도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벼슬자리에 갇히거나 당파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꼿꼿이 지킴으로써 임금을 향한 자신의 직언에 더욱 큰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결국 성혼의 삶은 선조의 미움과 반대파의 거센 공격 속에 쓸쓸히 끝나고 말았다.
전하께서는 …… 인재를 등용할 때 모나지 않고, 무르고 잘 따르며, 침묵을 지키는 무능한 자들을 뽑아 발탁하고 총애하십니다. 이런 무리들이 높은 자리와 중요한 지위에 가득 찼기 때문에 매양 벼슬을 내리는 특명이 있을 때마다 유식한 사람들은 모두 걱정하고 한탄합니다. …… 유속의 사람들은 고상한 뜻이 없이 오직 관작만을 좋아하여 정사를 할 때 문서를 대조하고, 옛날부터 해 온 고사(故事)를 따라 자신의 벼슬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 신은 차라리 말씀을 드렸다가 죄를 받을지언정 차마 말씀드리지 아니하여 전하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127~128쪽)
이이를 알아야 성혼을 알고, 성혼을 알아야 이이를 안다
저자 한영우 교수는 전작 『율곡 이이 평전』을 저술하면서 이이와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는 또 한 사람, 성혼을 만났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살아서도 한 몸 같았고, 죽은 뒤에도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다. 성혼은 아버지 성수침의 영향으로 성리학 전도사이자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친구 이이의 영향으로 이기설의 새로운 경지와 나라를 경영하는 경세를 터득했다.
성혼은 스무 살 때 한 살 아래인 이이와 교유를 시작했다. 성혼은 열 살 때 서울에서 파주로 옮겨 와 살게 되었는데 강릉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이도 어머니 사임당을 여읜 뒤 선대의 고향인 파주에 오면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후 둘은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치열하게 논쟁했고 서로의 학문을 발전시켰다. 성혼과 이이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평생 동지였다.
성혼과 이이는 모두 경장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자신들이 처한 시대가 토붕와해(土崩瓦解), 즉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시급히 경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임금을 압박했다. 둘은 여러 차례 만 언(萬言)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와 경연에서의 서슴없는 직언으로 현명한 인재 등용과 공납제도 개선 등을 임금에게 강력히 역설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고, 그 결과는 임진왜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혼과 이이 사이에 오간 교류와 토론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연 큰 스승들의 학문과 정치적 식견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 준다. 조선 후기 붕당의 정쟁으로 인해 굳어진 ‘이이는 노론, 성혼은 소론’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본래 한 몸이었던 두 물줄기의 원류를 바로 보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을을 불사르고 후학을 길러 낸 참선비의 모습을 찾는다.
▣ 작가 소개
저자 : 한영우
1938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인문대학에 재직하였고 2003년 정년퇴직 후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소장, 규장각관장, 인문대학장을 지냈으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한국사연구회장, 국사편찬위원,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이화학술원장을 역임했다. 경암학술상, 수당학술상, 민세안재홍상 등 학술상을 아홉 차례 수상했다.
저서로는 『정도전 사상의 연구』, 『조선 전기 사학사 연구』, 『조선 전기 사회 경제 연구』, 『조선 후기 사학사 연구』, 『한국 민족주의 역사학』, 『다시 찾는 우리 역사』(한국어본, 영어본, 일어본, 러시아본), 『조선 시대 신분사 연구』, 『정조의 화성 행차 그 8일』,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역사학의 역사』, 『조선 왕조 의궤』, 『명성황후, 제국을 일으키다』,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 『조선 수성기의 제갈량 양성지』, 『규장각 ? 문화 정치의 산실』, 『한국 선비 지성... 사』(한국어본, 영어본), 『과거, 출세의 사다리 ? 족보를 통해 본 조선 문과 급제자의 신분 이동』(1~4), 『율곡 이이 평전』, 『미래와 만나는 한국의 선비 문화』,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 『나라에 사람이 있구나 ? 월탄 한효순 이야기』 등 총 57권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면서
이이를 알아야 성혼을 알고, 성혼을 알아야 이이를 안다
1_ 학문과 도덕을 겸비한 가풍
성혼의 직계 조상
위기지학의 처사, 아버지 성수침
2_ 청년 시절, 평생의 지우를 만나다
백인걸 문하로 들어가다
율곡 이이, 구봉 송익필과 벗이 되다
3_ 우계서실을 세우고 학문도 깊어지다
여섯 차례 벼슬을 거부하다
이이와 사단칠정을 토론하다
최영경, 정인홍, 심예겸 등과 교유하다
4_ 불러들이는 선조, 은거를 고집한 성혼
동서 분당의 와중에 「기묘봉사」를 올려 직언하다
정구, 송익필, 이제신 등과 교유하다
임금을 만나 「신사봉사」를 올리다
경연에 참여하고, 정3품 당하관을 거부하다
이이를 위기에서 구하다
동서 갈등의 격화 속에 이조 참의와 참판에 제수되다
자신을 반성하는 묵암병사의 자성록
5_ 벗과의 이별, 미증유의 전란
30년 지기 이이와의 사별
동인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다
송익필과 생이별하다
스스로 묘지명을 짓다
정여립 사건으로 동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재기하다
「경인봉사」를 올리다
세자 책봉 사건으로 서인이 몰락하다
왜란 중에 「시무편의」를 올려 난국의 정책을 제시하다
의주에서 임금을 만나다
처참한 전란의 피해
해주 석담에서 머물며 이이의 문인들을 만나다
6_ 쓰라린 삶을 뒤로하고 영면하다
비변사 당상으로 「시무 14조」를 올리다
강화 문제로 임금의 미움을 받다
황해도 연안으로 낙향하다
회갑에 파주로 돌아오고 가족이 모두 모이다
정유재란의 혼란과 곤궁 속에 눈을 감다
7_ 관작 삭탈과 명예 회복
북인의 공격으로 관작이 삭탈되고, 서인이 몰락하다
광해군 대 신원 운동
인조 대에 이르러 명예를 되찾다
8_ 문묘에 종사되다
문묘 종사 청원 운동이 일어나다
효종 대의 문묘 종사 청원 운동
현종 대의 문묘 종사 청원 운동
숙종 8년 경신환국으로 문묘에 종사되다
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문묘에서 폐출되다
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문묘에 다시 종사되다
9_ 조선 후기 정치에 성혼이 미친 영향
영조 대의 성혼 추앙
정조 대의 성혼 추앙
헌종, 철종 대 성근묵의 등용
노론, 소론 분당 이후 성혼에 대한 평가
나가면서
종과 횡으로 들여다본 성혼의 삶과 학문
주
연보
찾아보기
부귀와 권세를 멀리하고 자기를 지켜 뜻을 높이다
성혼은 1535년(중종 35년) 청송 성수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성수침은 조광조의 문인이 되어 벼슬을 포기하고 깨끗한 재야 선비의 길을 걸었는데, 벼슬이 없는 성수침의 삶은 곤궁하여 종종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가난했다. 넉넉지 않은 가세는 아들 성혼에게도 이어져 환곡을 받지 않으면 봄철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항상 생활에 곤궁을 느끼고 살았다. 그나마 가솔이 많지 않아 겨우 자립은 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처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왜란 때 집이 불타 버리고 먹을 양식도 없어 절에서 밥을 얻어먹는가 하면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고 친구에게 옷을 부탁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궁핍한 생활에도 성혼은 수십 차례 거듭된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고 부귀영화를 멀리한 채 파주 우계의 오두막집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절친한 친구 이이에게도 가정 형편을 이유로 벼슬하면 언젠가는 이욕에 매달리는 타락한 선비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이의 벼슬살이를 지켜보며 선조가 진정으로 선비를 등용하고 받아들이는 임금이 아님을 알았기에 더욱 조정에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깥세상에 대해 관심을 거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한시도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벼슬자리에 갇히거나 당파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꼿꼿이 지킴으로써 임금을 향한 자신의 직언에 더욱 큰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결국 성혼의 삶은 선조의 미움과 반대파의 거센 공격 속에 쓸쓸히 끝나고 말았다.
전하께서는 …… 인재를 등용할 때 모나지 않고, 무르고 잘 따르며, 침묵을 지키는 무능한 자들을 뽑아 발탁하고 총애하십니다. 이런 무리들이 높은 자리와 중요한 지위에 가득 찼기 때문에 매양 벼슬을 내리는 특명이 있을 때마다 유식한 사람들은 모두 걱정하고 한탄합니다. …… 유속의 사람들은 고상한 뜻이 없이 오직 관작만을 좋아하여 정사를 할 때 문서를 대조하고, 옛날부터 해 온 고사(故事)를 따라 자신의 벼슬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 신은 차라리 말씀을 드렸다가 죄를 받을지언정 차마 말씀드리지 아니하여 전하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127~128쪽)
이이를 알아야 성혼을 알고, 성혼을 알아야 이이를 안다
저자 한영우 교수는 전작 『율곡 이이 평전』을 저술하면서 이이와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는 또 한 사람, 성혼을 만났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살아서도 한 몸 같았고, 죽은 뒤에도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다. 성혼은 아버지 성수침의 영향으로 성리학 전도사이자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친구 이이의 영향으로 이기설의 새로운 경지와 나라를 경영하는 경세를 터득했다.
성혼은 스무 살 때 한 살 아래인 이이와 교유를 시작했다. 성혼은 열 살 때 서울에서 파주로 옮겨 와 살게 되었는데 강릉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이도 어머니 사임당을 여읜 뒤 선대의 고향인 파주에 오면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후 둘은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치열하게 논쟁했고 서로의 학문을 발전시켰다. 성혼과 이이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평생 동지였다.
성혼과 이이는 모두 경장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자신들이 처한 시대가 토붕와해(土崩瓦解), 즉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시급히 경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임금을 압박했다. 둘은 여러 차례 만 언(萬言)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와 경연에서의 서슴없는 직언으로 현명한 인재 등용과 공납제도 개선 등을 임금에게 강력히 역설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고, 그 결과는 임진왜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혼과 이이 사이에 오간 교류와 토론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연 큰 스승들의 학문과 정치적 식견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 준다. 조선 후기 붕당의 정쟁으로 인해 굳어진 ‘이이는 노론, 성혼은 소론’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본래 한 몸이었던 두 물줄기의 원류를 바로 보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을을 불사르고 후학을 길러 낸 참선비의 모습을 찾는다.
▣ 작가 소개
저자 : 한영우
1938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인문대학에 재직하였고 2003년 정년퇴직 후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소장, 규장각관장, 인문대학장을 지냈으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한국사연구회장, 국사편찬위원,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이화학술원장을 역임했다. 경암학술상, 수당학술상, 민세안재홍상 등 학술상을 아홉 차례 수상했다.
저서로는 『정도전 사상의 연구』, 『조선 전기 사학사 연구』, 『조선 전기 사회 경제 연구』, 『조선 후기 사학사 연구』, 『한국 민족주의 역사학』, 『다시 찾는 우리 역사』(한국어본, 영어본, 일어본, 러시아본), 『조선 시대 신분사 연구』, 『정조의 화성 행차 그 8일』,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역사학의 역사』, 『조선 왕조 의궤』, 『명성황후, 제국을 일으키다』,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 『조선 수성기의 제갈량 양성지』, 『규장각 ? 문화 정치의 산실』, 『한국 선비 지성... 사』(한국어본, 영어본), 『과거, 출세의 사다리 ? 족보를 통해 본 조선 문과 급제자의 신분 이동』(1~4), 『율곡 이이 평전』, 『미래와 만나는 한국의 선비 문화』,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 『나라에 사람이 있구나 ? 월탄 한효순 이야기』 등 총 57권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면서
이이를 알아야 성혼을 알고, 성혼을 알아야 이이를 안다
1_ 학문과 도덕을 겸비한 가풍
성혼의 직계 조상
위기지학의 처사, 아버지 성수침
2_ 청년 시절, 평생의 지우를 만나다
백인걸 문하로 들어가다
율곡 이이, 구봉 송익필과 벗이 되다
3_ 우계서실을 세우고 학문도 깊어지다
여섯 차례 벼슬을 거부하다
이이와 사단칠정을 토론하다
최영경, 정인홍, 심예겸 등과 교유하다
4_ 불러들이는 선조, 은거를 고집한 성혼
동서 분당의 와중에 「기묘봉사」를 올려 직언하다
정구, 송익필, 이제신 등과 교유하다
임금을 만나 「신사봉사」를 올리다
경연에 참여하고, 정3품 당하관을 거부하다
이이를 위기에서 구하다
동서 갈등의 격화 속에 이조 참의와 참판에 제수되다
자신을 반성하는 묵암병사의 자성록
5_ 벗과의 이별, 미증유의 전란
30년 지기 이이와의 사별
동인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다
송익필과 생이별하다
스스로 묘지명을 짓다
정여립 사건으로 동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재기하다
「경인봉사」를 올리다
세자 책봉 사건으로 서인이 몰락하다
왜란 중에 「시무편의」를 올려 난국의 정책을 제시하다
의주에서 임금을 만나다
처참한 전란의 피해
해주 석담에서 머물며 이이의 문인들을 만나다
6_ 쓰라린 삶을 뒤로하고 영면하다
비변사 당상으로 「시무 14조」를 올리다
강화 문제로 임금의 미움을 받다
황해도 연안으로 낙향하다
회갑에 파주로 돌아오고 가족이 모두 모이다
정유재란의 혼란과 곤궁 속에 눈을 감다
7_ 관작 삭탈과 명예 회복
북인의 공격으로 관작이 삭탈되고, 서인이 몰락하다
광해군 대 신원 운동
인조 대에 이르러 명예를 되찾다
8_ 문묘에 종사되다
문묘 종사 청원 운동이 일어나다
효종 대의 문묘 종사 청원 운동
현종 대의 문묘 종사 청원 운동
숙종 8년 경신환국으로 문묘에 종사되다
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문묘에서 폐출되다
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문묘에 다시 종사되다
9_ 조선 후기 정치에 성혼이 미친 영향
영조 대의 성혼 추앙
정조 대의 성혼 추앙
헌종, 철종 대 성근묵의 등용
노론, 소론 분당 이후 성혼에 대한 평가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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