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검은 대륙’에 대한 편견과 무지
소잉카는 이 책에서 서구인들, 아니 전 세계인에게 뿌리 깊은 편견에서부터 아프리카 내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주 열정적으로 사유의 세계를 펼친다. 아프리카를 대하는 세계의 편견과 위선에 맞서고 있지만, 때로는 종족이나 종교, 정치를 빌미로 대륙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아프리카 정치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냉소와 분노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제국주의 쟁탈전이 된 대륙이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20세기 내내 국가와 인종, 종교를 바탕으로 한 근본주의와 배타주의에 시달려야 했던 전쟁과 갈등의 역사가 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가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종교와 아프리카 영성의 실체를 제시함으로써 ‘세계의 종교’들, 특히 이분법과 근본주의로 치닫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오리사교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은 선악 논리에 입각한 패권적인 종교들과 달리, 편을 갈라 특정 집단이나 종교나 문화를 배척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다른 타자를 수용하면서 인간적인 가치를 공유한다. 그래서 소잉카의 산문은 크게 보면, 아프리카의 과거를 응시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뒤로 갈수록 실례를 들어 가며 아프리카의 종교와 영성을 강조 하는 쪽으로 옮아간다.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이 표방하는 지혜와 타협, 공존의 정신을 배우라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후예들, 노예의 후예들
소잉카는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호메로스와 헤로도투스, 셰익스피어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모험가 오디세우스를 탄생시킨 호메로스, 아프리카 내륙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헤로도토스, 오셀로라는 허구의 인물을 그린 셰익스피어는 아프리카와 대륙의 사람들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왜곡함으로써 그들의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세계인들에게 허구화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그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다음과 같은 풍자를 인용하고 있다. “지리학자들은 아프리카 지도의 공간을 야만적인 그림들로 채우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구릉과 도시들이 없는 곳에 코끼리들을 그려 넣는다.” 이른바 ‘헤로도토스의 후예’들은 심지어 아프리카를 ‘만들어냈다.’ 오죽했으면 시인 에메 세제르가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은 자들이여, 만세!”라고 노래했겠는가.
나아가, 백내장의 막을 수백 년에 걸쳐 딱딱해지게 만들어 대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 자기 탐닉의 전통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은 대륙’에 그렇게도 붙이려고 했던 어둠은 사실, 바라보는 자의 눈에 있는 자의적인 백내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루오족의 후예인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케냐에서 만들어진 가장 인기 있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루오족이 우간다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미국 대통령이 되는 쪽이 더 쉽네.” 이 노래는 21세기에도 아프리카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근원과 정서를 절묘하게 보여 준다. 미국마저도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빠져나오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 차원에서 인간성을 배제당한 역사를 갖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여전히 배제의 정신 구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날 기독교 세계에서는 탐험가와 선교사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왔음에도 지금껏 그 누구도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처럼 아프리카를 ‘발견했다’고 한 적이 없다. 이것은 아프리카 대륙이 스스로 설정한 정체성, 즉 다른 대륙과 아대륙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자생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쟁탈전은 민족과 언어, 문화와 관계없이 직선을 그어 그것을 국경으로 삼았다. 아프리카를 누비이불처럼 만든 행위의 결과는 끔찍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나눈 냉전 이데올로기가 다시 아프리카를 갈라놓았다. 소말리아, 르완다, 수단의 다르푸르 내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외세와 결탁한 군부독재, 기독교와 이슬람, 자원과 권력을 둘러싼 종족간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 어린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은 일본군 ‘위안부,’ 미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인류의 본성, 휴머니즘에 치명타를 가한 20세기의 사건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의 제노사이드, 디아스포라 문제도 함께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잉카는 독자들을 아프리카로 데려가 노예수용소와 지하 감옥, 노예를 배에 싣기 전에 가둬 놓던 바라쿤, 노예들이 차고 있던 쇠사슬, 산 채로 묻힌 노예를 기리는 기념비, 기억을 감퇴시키는 우물과 ‘망각의 나무’ 앞에 갖다 놓는다.
전쟁과 갈등, 난민
2015년 4월에는 난민 2천 명을 태운 선박 5척이 지중해에서 한꺼번에 난파되어 약 1,2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로도 지중해 또는 남동유럽을 통해 유럽연합 안으로 망명하는 난민과 이민자가 급증했고, 유럽연합은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지중해 국경순찰대 예산 증가, 소피아 작전을 시작, 새로운 난민 할당제, 유럽연합의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 유럽연합 외부 국경에 대한 비용 지원 등 위기 대처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연 아프리카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런 비극의 씨앗이 1884년의 악명 높은 베를린회의에서 뿌려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국가와 인종, 종교를 바탕으로 한 근본주의와 배타주의
아프리카는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나갔지만, 신생 독립국의 정치가와 군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과거의 외부 세력보다 더 극악무도한 폭압으로 내몰았다. 이디 아민, 마시아스 응구에마, 장 베델 보카사, 세세 세코 모부투, 사이드 바레, 로버트 무가베, 오마르 알바시르……. 소잉카는 아프리카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폭거를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외국 열강과 초국적 기업들은 독재정권과 상대하기를 좋아한다. 기관을 통한 감독이 느슨해서 계약이 훨씬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원주민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독재자의 이익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부는 빨려 나가고 땅은 광산 개발로 퇴화되고 석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가스 불빛이 동물의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한다. 예로부터 물고기를 잡아 오던 웅덩이는 오염되고 새들은 죽어서 땅바닥에 떨어진다. 나아가 중독과 폐 질환이 사람들의 활력을 고갈시킨다. 이렇게 해서 아프리카의 허구적인 과거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 폭력적인 정권 탈취와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일당독재가 합리화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아프리카의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지껄인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을 근대 세계의 주된 흐름에 합류시키려면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통상 사절이 떠받드는 복음이 된다. 배냉공화국의 마티유 케레쿠(1933~2015), 잠비아의 프레더릭 칠루바(1943~2011), 나이지리아의 아메드 예리마(1960~ ) 같은 이들에게 통치의 공간은 골프장이나 카지노와 다를 바 없었다.”(32쪽)
현재에도 아프리카 대륙은 르완다 제노사이드 이래로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등으로 유례가 없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네그리튀드, 범아프리카주의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정신을 통해 현대 세계에 큰 족적을 남긴 사상가들도 소개한다. 하지만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세네갈 초대 대통령), 에메 세제르(프랑스령 기아나), 니콜라스 기옌(쿠바), 치누아 아체베를 비롯한 문학가에서 조모 케냐타(케냐), 콰메 은크루마(가나), 줄리어스 니에레레(탄자니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다.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을 주도한 실베스터 윌리엄스, W. E. B. 듀보이스 같은 미국의 법률가와 학자도 마찬가지이다.
이 밖에도 최초로 흑인공화국을 탄생시킨 18세기의 아이티혁명과 아프리카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는 20세기의 네그리튀드 운동은 다가올 인류의 세계사를 밀고 가는 추동력이자 다가올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확신한다.
21세기 새로운 문명을 위한 희망, 아프리카
소잉카는 1934년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사회의 기독교 목사이자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성장 과정에서 체득한 토착 종교를 바탕으로 한 신화, 전설, 찬양시 등 요루바족의 풍부한 문학적 자산은 소잉카 작품에서 영감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보이지 않는’ 종교 가운데 하나인 오리사의 전통과 역할을 소개하는데, 특히 유년 시절 고향 마을에서 오두막 진료소를 운영한 전통 치료사인 바발라우(babalawo)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이웃 사람이 찾아오면 마주 앉아 얘기를 듣고, 병을 진료하고, 약초를 처방하고, 주문을 외우게 하는 등 서양에서 미신이라고 할 만한 신비로움, 환자가 의사의 진료와 처방, 치료에 의존하는 서양식 병원과 달리 바발라우의 진료소에서 환자는 직접 치료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과정에서 치료사 바발라우는 의사처럼 위협적이지 않다.
이 행위의 치료적인 가치는 탄원자를 심리적으로 부족의 역사를 포함한 치유 문화 안에 있는 힘들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러한 기도는 처방받은 약과 제물과 더불어, 탄원자의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바발라우가 일부 탄원자들에게 주문을 완전하게 외울 때까지 지도를 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처방, 제물, 혹은 일상적인 과정이 효험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 후의 과정은 시냇물에서 몸을 씻는 것에서부터 조상들의 묘나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주문은 약이 갖고 있는 본연의 속성에 호소하여 그 효험을 증대시켰으며, 치유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고통을 겪었던 신들과 조상들을 불러왔다.
미국 영주권을 버린 아프리카의 문호
지난해 11월 2일 소잉카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강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가장 먼저 그린카드 소지자 전원이 영주권을 다시 신청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면서 “트럼프 승리가 발표되는 순간 그린카드를 찢어 버리고 짐을 싸서 출국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 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소잉카는 2017년 1월 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나는 영주권을 버렸고 내가 항상 있던 곳으로 이사를 왔다. …… 나는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 작가 소개
저 : 올레 소잉카
Wole Soyinka
아프리카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자 아프리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시인. ''검은 대륙을 고발한 흑인 문학의 승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가 쓴 「해설자들」은 언론인, 관리, 대학 교수, 화가, 엔지니어 등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데 부패하고 천박한 가치가 지배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을 통렬히 비판함으로서 아프리카 최고의 민족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소잉카는 나이지리아 군사정부에 신랄한 비판을 해왔으며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94년 11월 미국에 망명했었고 이라크전쟁과 관련해 미국대통령 부시를 비판하는 등 인권작가로서도 유명하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 출신이며 요루바족인 소잉카는 1958년 영국의 리즈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인류발달의 장애물들을 비극적으로 느끼며 풍자적 문체로 현대 서아프리카에 대한 글을 써왔으며 반어법과 유머, 시적 문체를 통해 소설과 희곡들을 발표해왔다. 1967년에서 1969년에는 나이지리아로부터 독립하려는 비아프라전쟁을 비판했다가 2년간 투옥됐으며 그 당시 「그는 죽었다」등 많은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바단대학교 연극과 주임교수를 거쳐 비교문학교수로 있으며 아프리카 근대 연극계의 권위자로, 현대 서양연극에 드럼·춤·가면 등 요루바족의 전통적 기법을 절충한 독자적 예술경지를 개척한 극작가이자 소설가, 시인, 비평가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희곡 「사자와 보석」,「숲의 춤」,「길」,「해설자들」 등이 있다.
역 :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클래리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이프타운 대학, 이어하트 재단,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 및 학술진흥 재단 해외파견 교수를 역임했으며,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2년간, 그리고 워싱턴 대학에서 1년간 객원교수로 있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자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북대학교 학술상 및 수업상을 다수 수상하고, 2011년 제5회 유영번역상과 2012년 제2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쿳시의 『어둠의 땅』『야만인을 기다리며』『마이클 K』『철의 시대』『페테르부르크의 대가』『추락』『소년 시절』『엘리자베스 코스텔로』『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슬로우 맨』을 비롯하여 고디머의『거짓의 날들』,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웰티의 『낙천주의자의 딸』,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 하 진의 『니하오 미스터 빈』『카우보이 치킨』『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남편 고르기』『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전쟁 쓰레기』『광인』 등 30여 권의 역서와 『배반과 도덕적 상상력』『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상호텍스트성과 탈식민주의』(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문학의 거장들』 등의 저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부 살아 있는 과거
1. ‘검은 대륙’을 바라보는 편견과 오류
2. 헤로도토스의 후예들
3. ‘만들어진’ 아프리카
4. 다르푸르에 살아 있는 망각의 나무
2부 몸과 영혼
5. 근본주의의 족쇄
6. 토착 종교, 존재의 안내자
7. 대륙의 영성
8. 오룬밀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 중재의 목소리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검은 대륙’에 대한 편견과 무지
소잉카는 이 책에서 서구인들, 아니 전 세계인에게 뿌리 깊은 편견에서부터 아프리카 내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주 열정적으로 사유의 세계를 펼친다. 아프리카를 대하는 세계의 편견과 위선에 맞서고 있지만, 때로는 종족이나 종교, 정치를 빌미로 대륙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아프리카 정치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냉소와 분노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제국주의 쟁탈전이 된 대륙이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20세기 내내 국가와 인종, 종교를 바탕으로 한 근본주의와 배타주의에 시달려야 했던 전쟁과 갈등의 역사가 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가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종교와 아프리카 영성의 실체를 제시함으로써 ‘세계의 종교’들, 특히 이분법과 근본주의로 치닫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오리사교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은 선악 논리에 입각한 패권적인 종교들과 달리, 편을 갈라 특정 집단이나 종교나 문화를 배척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다른 타자를 수용하면서 인간적인 가치를 공유한다. 그래서 소잉카의 산문은 크게 보면, 아프리카의 과거를 응시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뒤로 갈수록 실례를 들어 가며 아프리카의 종교와 영성을 강조 하는 쪽으로 옮아간다.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이 표방하는 지혜와 타협, 공존의 정신을 배우라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후예들, 노예의 후예들
소잉카는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호메로스와 헤로도투스, 셰익스피어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모험가 오디세우스를 탄생시킨 호메로스, 아프리카 내륙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헤로도토스, 오셀로라는 허구의 인물을 그린 셰익스피어는 아프리카와 대륙의 사람들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왜곡함으로써 그들의 시대에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세계인들에게 허구화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그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다음과 같은 풍자를 인용하고 있다. “지리학자들은 아프리카 지도의 공간을 야만적인 그림들로 채우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구릉과 도시들이 없는 곳에 코끼리들을 그려 넣는다.” 이른바 ‘헤로도토스의 후예’들은 심지어 아프리카를 ‘만들어냈다.’ 오죽했으면 시인 에메 세제르가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은 자들이여, 만세!”라고 노래했겠는가.
나아가, 백내장의 막을 수백 년에 걸쳐 딱딱해지게 만들어 대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 자기 탐닉의 전통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은 대륙’에 그렇게도 붙이려고 했던 어둠은 사실, 바라보는 자의 눈에 있는 자의적인 백내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루오족의 후예인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케냐에서 만들어진 가장 인기 있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루오족이 우간다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미국 대통령이 되는 쪽이 더 쉽네.” 이 노래는 21세기에도 아프리카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근원과 정서를 절묘하게 보여 준다. 미국마저도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빠져나오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 차원에서 인간성을 배제당한 역사를 갖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여전히 배제의 정신 구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날 기독교 세계에서는 탐험가와 선교사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왔음에도 지금껏 그 누구도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처럼 아프리카를 ‘발견했다’고 한 적이 없다. 이것은 아프리카 대륙이 스스로 설정한 정체성, 즉 다른 대륙과 아대륙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자생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쟁탈전은 민족과 언어, 문화와 관계없이 직선을 그어 그것을 국경으로 삼았다. 아프리카를 누비이불처럼 만든 행위의 결과는 끔찍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나눈 냉전 이데올로기가 다시 아프리카를 갈라놓았다. 소말리아, 르완다, 수단의 다르푸르 내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외세와 결탁한 군부독재, 기독교와 이슬람, 자원과 권력을 둘러싼 종족간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 어린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은 일본군 ‘위안부,’ 미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인류의 본성, 휴머니즘에 치명타를 가한 20세기의 사건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의 제노사이드, 디아스포라 문제도 함께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잉카는 독자들을 아프리카로 데려가 노예수용소와 지하 감옥, 노예를 배에 싣기 전에 가둬 놓던 바라쿤, 노예들이 차고 있던 쇠사슬, 산 채로 묻힌 노예를 기리는 기념비, 기억을 감퇴시키는 우물과 ‘망각의 나무’ 앞에 갖다 놓는다.
전쟁과 갈등, 난민
2015년 4월에는 난민 2천 명을 태운 선박 5척이 지중해에서 한꺼번에 난파되어 약 1,20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로도 지중해 또는 남동유럽을 통해 유럽연합 안으로 망명하는 난민과 이민자가 급증했고, 유럽연합은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지중해 국경순찰대 예산 증가, 소피아 작전을 시작, 새로운 난민 할당제, 유럽연합의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 유럽연합 외부 국경에 대한 비용 지원 등 위기 대처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연 아프리카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런 비극의 씨앗이 1884년의 악명 높은 베를린회의에서 뿌려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국가와 인종, 종교를 바탕으로 한 근본주의와 배타주의
아프리카는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나갔지만, 신생 독립국의 정치가와 군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과거의 외부 세력보다 더 극악무도한 폭압으로 내몰았다. 이디 아민, 마시아스 응구에마, 장 베델 보카사, 세세 세코 모부투, 사이드 바레, 로버트 무가베, 오마르 알바시르……. 소잉카는 아프리카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폭거를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외국 열강과 초국적 기업들은 독재정권과 상대하기를 좋아한다. 기관을 통한 감독이 느슨해서 계약이 훨씬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원주민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독재자의 이익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부는 빨려 나가고 땅은 광산 개발로 퇴화되고 석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가스 불빛이 동물의 생태계와 환경을 파괴한다. 예로부터 물고기를 잡아 오던 웅덩이는 오염되고 새들은 죽어서 땅바닥에 떨어진다. 나아가 중독과 폐 질환이 사람들의 활력을 고갈시킨다. 이렇게 해서 아프리카의 허구적인 과거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 폭력적인 정권 탈취와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일당독재가 합리화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아프리카의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지껄인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을 근대 세계의 주된 흐름에 합류시키려면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통상 사절이 떠받드는 복음이 된다. 배냉공화국의 마티유 케레쿠(1933~2015), 잠비아의 프레더릭 칠루바(1943~2011), 나이지리아의 아메드 예리마(1960~ ) 같은 이들에게 통치의 공간은 골프장이나 카지노와 다를 바 없었다.”(32쪽)
현재에도 아프리카 대륙은 르완다 제노사이드 이래로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등으로 유례가 없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네그리튀드, 범아프리카주의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정신을 통해 현대 세계에 큰 족적을 남긴 사상가들도 소개한다. 하지만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세네갈 초대 대통령), 에메 세제르(프랑스령 기아나), 니콜라스 기옌(쿠바), 치누아 아체베를 비롯한 문학가에서 조모 케냐타(케냐), 콰메 은크루마(가나), 줄리어스 니에레레(탄자니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다.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을 주도한 실베스터 윌리엄스, W. E. B. 듀보이스 같은 미국의 법률가와 학자도 마찬가지이다.
이 밖에도 최초로 흑인공화국을 탄생시킨 18세기의 아이티혁명과 아프리카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는 20세기의 네그리튀드 운동은 다가올 인류의 세계사를 밀고 가는 추동력이자 다가올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확신한다.
21세기 새로운 문명을 위한 희망, 아프리카
소잉카는 1934년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사회의 기독교 목사이자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성장 과정에서 체득한 토착 종교를 바탕으로 한 신화, 전설, 찬양시 등 요루바족의 풍부한 문학적 자산은 소잉카 작품에서 영감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보이지 않는’ 종교 가운데 하나인 오리사의 전통과 역할을 소개하는데, 특히 유년 시절 고향 마을에서 오두막 진료소를 운영한 전통 치료사인 바발라우(babalawo)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이웃 사람이 찾아오면 마주 앉아 얘기를 듣고, 병을 진료하고, 약초를 처방하고, 주문을 외우게 하는 등 서양에서 미신이라고 할 만한 신비로움, 환자가 의사의 진료와 처방, 치료에 의존하는 서양식 병원과 달리 바발라우의 진료소에서 환자는 직접 치료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과정에서 치료사 바발라우는 의사처럼 위협적이지 않다.
이 행위의 치료적인 가치는 탄원자를 심리적으로 부족의 역사를 포함한 치유 문화 안에 있는 힘들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러한 기도는 처방받은 약과 제물과 더불어, 탄원자의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바발라우가 일부 탄원자들에게 주문을 완전하게 외울 때까지 지도를 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처방, 제물, 혹은 일상적인 과정이 효험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 후의 과정은 시냇물에서 몸을 씻는 것에서부터 조상들의 묘나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주문은 약이 갖고 있는 본연의 속성에 호소하여 그 효험을 증대시켰으며, 치유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고통을 겪었던 신들과 조상들을 불러왔다.
미국 영주권을 버린 아프리카의 문호
지난해 11월 2일 소잉카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강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가장 먼저 그린카드 소지자 전원이 영주권을 다시 신청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면서 “트럼프 승리가 발표되는 순간 그린카드를 찢어 버리고 짐을 싸서 출국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 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소잉카는 2017년 1월 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나는 영주권을 버렸고 내가 항상 있던 곳으로 이사를 왔다. …… 나는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 작가 소개
저 : 올레 소잉카
Wole Soyinka
아프리카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자 아프리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시인. ''검은 대륙을 고발한 흑인 문학의 승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가 쓴 「해설자들」은 언론인, 관리, 대학 교수, 화가, 엔지니어 등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데 부패하고 천박한 가치가 지배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지식인들을 통렬히 비판함으로서 아프리카 최고의 민족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소잉카는 나이지리아 군사정부에 신랄한 비판을 해왔으며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94년 11월 미국에 망명했었고 이라크전쟁과 관련해 미국대통령 부시를 비판하는 등 인권작가로서도 유명하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 출신이며 요루바족인 소잉카는 1958년 영국의 리즈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인류발달의 장애물들을 비극적으로 느끼며 풍자적 문체로 현대 서아프리카에 대한 글을 써왔으며 반어법과 유머, 시적 문체를 통해 소설과 희곡들을 발표해왔다. 1967년에서 1969년에는 나이지리아로부터 독립하려는 비아프라전쟁을 비판했다가 2년간 투옥됐으며 그 당시 「그는 죽었다」등 많은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바단대학교 연극과 주임교수를 거쳐 비교문학교수로 있으며 아프리카 근대 연극계의 권위자로, 현대 서양연극에 드럼·춤·가면 등 요루바족의 전통적 기법을 절충한 독자적 예술경지를 개척한 극작가이자 소설가, 시인, 비평가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희곡 「사자와 보석」,「숲의 춤」,「길」,「해설자들」 등이 있다.
역 :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클래리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이프타운 대학, 이어하트 재단,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 및 학술진흥 재단 해외파견 교수를 역임했으며,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2년간, 그리고 워싱턴 대학에서 1년간 객원교수로 있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자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북대학교 학술상 및 수업상을 다수 수상하고, 2011년 제5회 유영번역상과 2012년 제2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
쿳시의 『어둠의 땅』『야만인을 기다리며』『마이클 K』『철의 시대』『페테르부르크의 대가』『추락』『소년 시절』『엘리자베스 코스텔로』『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슬로우 맨』을 비롯하여 고디머의『거짓의 날들』,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웰티의 『낙천주의자의 딸』,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 하 진의 『니하오 미스터 빈』『카우보이 치킨』『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남편 고르기』『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전쟁 쓰레기』『광인』 등 30여 권의 역서와 『배반과 도덕적 상상력』『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상호텍스트성과 탈식민주의』(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문학의 거장들』 등의 저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부 살아 있는 과거
1. ‘검은 대륙’을 바라보는 편견과 오류
2. 헤로도토스의 후예들
3. ‘만들어진’ 아프리카
4. 다르푸르에 살아 있는 망각의 나무
2부 몸과 영혼
5. 근본주의의 족쇄
6. 토착 종교, 존재의 안내자
7. 대륙의 영성
8. 오룬밀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 중재의 목소리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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