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노근리 사건부터 미선이 효순이 사건까지
주한 미국 외교관이 바라본 한국의 반미 현상
이 책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대사관에서 정치과장으로 근무한 저자 데이비드 스트라우브가 당시 한국 사회에 분출했던 반미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하며, 실제 미국 대사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국 사회에 반미 감정이 연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던 시기였다. AP 통신의 노근리 사건 보도를 시작으로,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이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제초제에 노출됐다고 미국 업체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제기, 매향리 사격장 사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의 갈등, 오노 사건으로 일컫는 쇼트트랙 사건, 그리고 미선이 효순이 사건 등이 있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수십만 명이 서울과 각 지역에서 촛불 시위를 벌이며 극에 달했던 반미 현상은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끝났다. 저자는 한국의 반미 감정 표현이 1999년에 급증하여 그렇게 빠르게 사라져버린 것은 무엇인지, 과연 이것이 반미주의인지 등을 추적하고, 공식적 통속적 한미 관계를 돌아보며, 앞으로 한미 양국 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이 책의 해제를 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의 한미 관계를 연구하는 데 필독서일 것이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외교관이었다는 평을 받았는데, 저자가 머리말에서 “전직 외교관이 쓴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관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소중한 내부 정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한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21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한미 관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했던 아버지에게서 한국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랐던 유년의 기억이 선명하고, 미국 국무부 한국과와 주한 미국 대사관에 근무했다. 지금은 스탠퍼드 대학의 신기욱 교수의 초대로 같은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의 부소장을 지내고 있다. 40년 넘게 한국과 긴밀하게 관련을 맺으며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2006년 조기 은퇴했으며 현재도 대북 문제나 한미 관계에 관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직 미국 외교관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이 책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한미 관계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데에 소중한 참고 도서가 될 것이고, 더불어 한국의 정부, 정치, 언론 그리고 사회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의 특징은
- 주한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반미 감정 표출을 직접 경험한 외교관의 기록이라서 언론이나 여타 보고서 등에서 볼 수 없는 현대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노근리 사건을 조사하는 등 여러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2002년 우라늄 농축 사건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저자가 북한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은 눈여겨볼 만하다.
- 노근리 사건의 AP 보도부터 미선이 효순이 사건까지 각 장마다 우리가 직접 겪거나 기억하고 있는 최근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반미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전 미국 외교관의 경험과 시각으로 이를 소개하고 있어, 같은 사건들인데도 생각지 못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으며 민족주의적 관념에 젖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굵직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곳곳에서 곁들이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타자의 시선에 의해 드러나는 한국인의 민낯들이어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 종종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라고 번역되고 있으나 실제 영어로는 ‘평화, 우호, 통상, 항해의 조약(Treaty of Peace, Amity, Commerce, and Navigation)’으로 미국과 1882년 첫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미 관계의 변화했던 역사를 짚어보며, 한미 동맹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 한미 관계의 미래적 가치를 생각하는 등 한미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유익하다.
이 책의 내용은
제1장 한국 반미주의의 기원
이 책에서 말하는 ‘반미주의’의 뜻과 한국인이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한국 민족주의와 한미 관계의 특정한 측면을 설명한다. 그리고 한국 반미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1990년에 반미 감정을 일으킨 주변 정황을 살펴본다. 1882년 처음으로 미국과 서구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식민지 시기, 광복과 식탁통치, 한국전쟁, 전후의 이승만·박정희 정권, 그리고 80년 광주 항쟁과 전두환·노태우 정권, 김영삼·김대중·노문현 정권 등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한미 관계를 살펴본다. 이런 한미 관계 속에서 어떻게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에 반미 시위가 두드러지게 됐는지, 그원인과 현상을 짚어본다. 이 장에서는 80년 광주 항쟁 당시 미 대사관의 영사과에서 근무하면서 겪었던 저자의 경험도 소개하고 있다.
제2장 촉매: 노근리 학살 돌아보기
한미 관계는 언제나 격렬하고 때로는 힘들기도 했지만 1999년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시기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IMF의 경제 자유화 요구를 수락하고 큰 회복세를 보였던 때였다. 그해 9월 말 AP 통신은 한국전쟁 초기 1950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근리 근처 마을에서 미군이 무고한 한국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탐사 보도를 연속 내보냈다. AP는 50년 전에 발생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어렵다고도 하며 한국인과 미국인의 엇갈리는 진술도 보도했으나, 노근리 사건이 1968년 베트남전쟁에서의 미라이 학살과 함께 20세기 대규모 전쟁들 중 미군 지상군이 비전투원을 대규모로 살해한 사례라고 군법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보도 이후에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규명, 평화공원 조성 등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15개월 동안 큰 이슈였고, 그 이후 몇 년 동안에도 주요 관심사였다. 저자는 노근리 사건이 불러일으킨 대중 감정과 언론의 후폭풍이 이후 3년간 한국 언론이 미국에 대해 취했던 비판적 태도를 낳는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제3장 한미 관계의 악화: 에이전트 오렌지와 포름알데히드
1999년 9월 30일 AP에서 노근리 사건 보도가 나온 다음 날,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단체가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를 생산한 미국의 화학회사를 상대로 한국 법정에 5조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6월 14일 녹색연합은 주한 미군이 독성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서울 시민의 식수원인 한강에 몰래 방류했다고 발표했다. 1969, 70년대의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고엽제의 독성을 몰랐을 수도 있으나, 2000년대에 포름알데히드의 독성을 미국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한국인의 반미 감정에 불을 지폈다.
제4장 공평과 평등: 매향리 사격장 사건과 한미SOFA 개정
포름알데히드 사건 이후 2개월 뒤에 매향리 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5월 8일 월요일에 미 공군 A-10 공격기가 기계적 결함이 생겨 매향리 사격장에 폭탄 여섯 발을 투하한 것이다. 이에 매향리 인근 주민은 당시의 폭발로 부상을 당하고 거주 지역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주민들의 비난을 계속 보도했으며 이런 한국 여론의 압박으로 8월 예정이던 ‘불공평한’ 한미 SOFA(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의 협상이 개정됐다. 더불어 포름알데히드 사건이 SOFA에 환경 관련 사항을 추가하는 역할을 했다.
제5장 부시의 역습: 대북 정책
주로 주한 미군과 관련된 사건들이 한국의 반미 감정을 자극했는데, 김대중(1998∼2003) 노무현(2003
∼2008) 정권에서의 반미 감정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7개월 뒤에 부시 정권이 들어섰으며,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에 회의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부시 정권과의 조기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고 2001년 3월 7일 워싱턴에서 최초로 회담을 했는데, 부시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This man”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키자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번역하며 한국 대통령을 무시했다고 부시를 비난했다. 저자는 1년 반 전부터 한국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던 주한 미군의 오만함과 한국 사람에 대한 불손함 등의 스토리라인이 이런 사건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특히 이 장에서 주목할 것은 저자의 방북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2002년 10월 3∼5일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였던 제임스 켈리가 이끄는 소규모 미국 사절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미국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업을 알게 됐으니, 중단하라고 북한에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평양에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있었던 일들이나, 북핵 문제에 대한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 등 한국 관계자들과의 갈등과 오해 등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6장 쇼트트랙 사건
이 장에서는 1998년부터 2003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여론 선호도를 최악으로 만든 스포츠 경기 판정을 다룬다. 2002년 2월 8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유타 주에서 열린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1,500미터 쇼트트랙 경주에서 한국 선수인 김동성이 실격당한 사건으로, 흔히 ‘오노 사건’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계 미국인 운동선수인 아폴로 오노가 한국 선수가 땄어야 할 금메달을 빼앗았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은 한미 관계에서 정체성과 민족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잘 보여주는데, 저자는 미국 언론도 선정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사건 보도에 일조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7장 클라이맥스: 56번 지방도의 비극
2002년 서울에서는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었는데, 6월 13일 중학생 심미선과 신효순 양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려고 양주의 56번 지방도 옆 끝을 따라 걷다가 주한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한국 반미주의 현상의 클라이맥스였다. 비극적 사고이긴 했으나, 한국인은 이 사건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하면서 모든 언론이 미국을 심하게 비난했다. 미 군사재판에 회부된 주한 미군의 운전병 워커와 관제병 니노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시위는 더욱 커졌고, 서울 시내의 미군 시설에 화염병을 던지는 일도 있었으며, 시위와 집회 등 분노의 물결이 거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주한 미군이 감축되거나 철수할 수 있었을 텐데,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촛불시위가 잦아들었다. 새로운 정부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고, 미국과의 반목이 계속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은 물론 노무현 정부의 이익과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강력한 내러티브를 갖게 됐던 것은 사건 그 자체의 극적인 면, 즉 무고한 두 어린 소녀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것과 가해자가 주한 미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한 미군이 한국인들에게 무례함, 오만함, 잔혹함, 그리고 이중성을 보여왔다는 비난을 받던 중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진보 활동가나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접근해 미국 관계자들의 노력이 무성의하다고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8장 한국의 반미주의: 잊혀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한국 반미주의는 왜 분출됐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갑자기 끝났는가. 그 이후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 대중의 지지가 극적으로 증가한 것은 왜인가. 이제 더는 한국에서 반미주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러한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고, 미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노근리 사건에서부터 에이전트 오렌지 사건, 매향리 사건, 한미 SOFA, 아폴로 오노 사건,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실제로 일어난 일들은 무엇인지를 정리한다. 한국에서 반미주의 분출은 역사, 문화, 정치, 그리고 다른 여러 상황들의 연속에 의한 것이었으며 일부는 뿌리가 깊었고 다른 것들은 일시적이었다. 한편 한국인은 미국을 모방의 대상, 또는 최소한 배울 점이 있는 나라라고 여기는데, 신기욱 교수는 현대 한국인의 삶에 미국이 차지하는 이러한 중심성이 한국인의 국가적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보수는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확신하는 반면 진보는 한미 동맹의 이익과 불이익의 균형에 대해 양가적인 입장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의식에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미국의 존재가 외세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자국의 역사를 특히 근대사에서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희생양이 되어온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희생양의 렌즈와, 1999년의 특수한 상황이었던 진보의 발흥, 이에 따른 언론의 역할,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관심의 비대칭성 등이 어우러져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반미주의의 분출이 있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 작가 소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1954년 미국 켄터키 주에서 출생했고 켄터키 주 루이스빌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76년부터 미국 국무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근무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관 정치과장을 역임했다. 워싱턴의 국무부에서 세 차례 한국과에서 일했으며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베이징에서 열린 6자 회담의 첫 세 차례 회담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다. 2006년 국무부에서 퇴직한 뒤 존스홉킨스 대학 고등국제학대학원(SAIS)과 서울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스탠퍼드 대학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의 팬택 객원 연구위원이었으며, 2008년부터 2016년까지는 같은 센터의 한국학 프로그램 부소장을 지냈다. 북한을 다섯 차례 방문했는데, 2009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하여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인 기자 두 명을 귀환시켰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머리말
연대표
제1장 한국 반미주의의 기원
한국의 민족 정체성과 반미주의/ 세계를 보는 다른 ‘렌즈들’/ 한국 반미주의의 역사적 기원: 1945년 이전/ 광복과 전쟁: 한미 관계의 모든 것이 변하다/ 남한의 전후 경제 및 정치 발전에서 미국의 역할/ 광주, 그리고 새로운 한국
의 반미주의/ 한국의 민주화와 반미주의의 징후/ 진보의 득세/ 한국 언론의 문제적 역할
제2장 촉매: 노근리 학살 돌아보기
노근리 사건의 보도/ 조사/ 조사 결과의 발표/ 추모 사업에 관한 협상/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우연의 역할과 노근리의 영향
제3장 한미 관계의 악화: 에이전트 오렌지와 포름알데히드
에이전트 오렌지 논란/ 포름알데히드: 또 다른 화학물질 논란
제4장 공평과 평등: 매향리 사격장 사건과 한미SOFA 개정
매향리 사격장 사건/ 한미 SOFA 개정
제5장 부시의 역습: 대북 정책
김대중의 ‘햇볕정책’/ 클린턴 행정부가 보조를 맞추다/ 조지 W. 부시: 북한에 대한 매우 다른 관점/ 북한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악화되다
제6장 쇼트트랙 사건
사건의 배경/ 오노 사건/ 사건의 여파/ 사건의 결말/ 에필로그: 오노의 유산
제7장 클라이맥스: 56번 지방도의 비극
사고의 발생/ 미국의 초기 반응/ 한국의 초기 반응/ 진보 NGO들이 개입하고 언론이 뒤따르다/ 한국 언론이 뒤따르다/ 한미 SOFA 논란/ 무죄 선고로 인한 논란/ 시위는 더욱 번지고/ 한국 시위에 대한 미국의 반응/ 용두사미: 대선의 여파
제8장 한국의 반미주의: 잊혀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원인은 무엇이었나/ 반미주의란 무엇인가/ 얼마나 심각했나/ 왜 반미주의의 분출이 끝났나/ 한국에서 다시 반미주의가 일어날 수 있을까/ 미국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위한 교훈
주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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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 그것은 반미주의였다(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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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사건부터 미선이 효순이 사건까지
주한 미국 외교관이 바라본 한국의 반미 현상
이 책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대사관에서 정치과장으로 근무한 저자 데이비드 스트라우브가 당시 한국 사회에 분출했던 반미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하며, 실제 미국 대사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국 사회에 반미 감정이 연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던 시기였다. AP 통신의 노근리 사건 보도를 시작으로,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이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제초제에 노출됐다고 미국 업체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제기, 매향리 사격장 사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의 갈등, 오노 사건으로 일컫는 쇼트트랙 사건, 그리고 미선이 효순이 사건 등이 있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수십만 명이 서울과 각 지역에서 촛불 시위를 벌이며 극에 달했던 반미 현상은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끝났다. 저자는 한국의 반미 감정 표현이 1999년에 급증하여 그렇게 빠르게 사라져버린 것은 무엇인지, 과연 이것이 반미주의인지 등을 추적하고, 공식적 통속적 한미 관계를 돌아보며, 앞으로 한미 양국 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이 책의 해제를 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의 한미 관계를 연구하는 데 필독서일 것이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외교관이었다는 평을 받았는데, 저자가 머리말에서 “전직 외교관이 쓴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관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소중한 내부 정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한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21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한미 관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했던 아버지에게서 한국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랐던 유년의 기억이 선명하고, 미국 국무부 한국과와 주한 미국 대사관에 근무했다. 지금은 스탠퍼드 대학의 신기욱 교수의 초대로 같은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의 부소장을 지내고 있다. 40년 넘게 한국과 긴밀하게 관련을 맺으며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권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2006년 조기 은퇴했으며 현재도 대북 문제나 한미 관계에 관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강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직 미국 외교관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이 책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한미 관계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데에 소중한 참고 도서가 될 것이고, 더불어 한국의 정부, 정치, 언론 그리고 사회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의 특징은
- 주한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반미 감정 표출을 직접 경험한 외교관의 기록이라서 언론이나 여타 보고서 등에서 볼 수 없는 현대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노근리 사건을 조사하는 등 여러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2002년 우라늄 농축 사건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저자가 북한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은 눈여겨볼 만하다.
- 노근리 사건의 AP 보도부터 미선이 효순이 사건까지 각 장마다 우리가 직접 겪거나 기억하고 있는 최근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반미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전 미국 외교관의 경험과 시각으로 이를 소개하고 있어, 같은 사건들인데도 생각지 못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으며 민족주의적 관념에 젖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굵직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곳곳에서 곁들이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타자의 시선에 의해 드러나는 한국인의 민낯들이어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 종종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라고 번역되고 있으나 실제 영어로는 ‘평화, 우호, 통상, 항해의 조약(Treaty of Peace, Amity, Commerce, and Navigation)’으로 미국과 1882년 첫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미 관계의 변화했던 역사를 짚어보며, 한미 동맹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 한미 관계의 미래적 가치를 생각하는 등 한미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유익하다.
이 책의 내용은
제1장 한국 반미주의의 기원
이 책에서 말하는 ‘반미주의’의 뜻과 한국인이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한국 민족주의와 한미 관계의 특정한 측면을 설명한다. 그리고 한국 반미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1990년에 반미 감정을 일으킨 주변 정황을 살펴본다. 1882년 처음으로 미국과 서구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식민지 시기, 광복과 식탁통치, 한국전쟁, 전후의 이승만·박정희 정권, 그리고 80년 광주 항쟁과 전두환·노태우 정권, 김영삼·김대중·노문현 정권 등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에서 한미 관계를 살펴본다. 이런 한미 관계 속에서 어떻게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에 반미 시위가 두드러지게 됐는지, 그원인과 현상을 짚어본다. 이 장에서는 80년 광주 항쟁 당시 미 대사관의 영사과에서 근무하면서 겪었던 저자의 경험도 소개하고 있다.
제2장 촉매: 노근리 학살 돌아보기
한미 관계는 언제나 격렬하고 때로는 힘들기도 했지만 1999년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시기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IMF의 경제 자유화 요구를 수락하고 큰 회복세를 보였던 때였다. 그해 9월 말 AP 통신은 한국전쟁 초기 1950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노근리 근처 마을에서 미군이 무고한 한국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탐사 보도를 연속 내보냈다. AP는 50년 전에 발생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어렵다고도 하며 한국인과 미국인의 엇갈리는 진술도 보도했으나, 노근리 사건이 1968년 베트남전쟁에서의 미라이 학살과 함께 20세기 대규모 전쟁들 중 미군 지상군이 비전투원을 대규모로 살해한 사례라고 군법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보도 이후에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규명, 평화공원 조성 등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15개월 동안 큰 이슈였고, 그 이후 몇 년 동안에도 주요 관심사였다. 저자는 노근리 사건이 불러일으킨 대중 감정과 언론의 후폭풍이 이후 3년간 한국 언론이 미국에 대해 취했던 비판적 태도를 낳는 촉매제가 됐다고 본다.
제3장 한미 관계의 악화: 에이전트 오렌지와 포름알데히드
1999년 9월 30일 AP에서 노근리 사건 보도가 나온 다음 날,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단체가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를 생산한 미국의 화학회사를 상대로 한국 법정에 5조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6월 14일 녹색연합은 주한 미군이 독성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서울 시민의 식수원인 한강에 몰래 방류했다고 발표했다. 1969, 70년대의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고엽제의 독성을 몰랐을 수도 있으나, 2000년대에 포름알데히드의 독성을 미국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한국인의 반미 감정에 불을 지폈다.
제4장 공평과 평등: 매향리 사격장 사건과 한미SOFA 개정
포름알데히드 사건 이후 2개월 뒤에 매향리 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5월 8일 월요일에 미 공군 A-10 공격기가 기계적 결함이 생겨 매향리 사격장에 폭탄 여섯 발을 투하한 것이다. 이에 매향리 인근 주민은 당시의 폭발로 부상을 당하고 거주 지역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한국 언론은 주민들의 비난을 계속 보도했으며 이런 한국 여론의 압박으로 8월 예정이던 ‘불공평한’ 한미 SOFA(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의 협상이 개정됐다. 더불어 포름알데히드 사건이 SOFA에 환경 관련 사항을 추가하는 역할을 했다.
제5장 부시의 역습: 대북 정책
주로 주한 미군과 관련된 사건들이 한국의 반미 감정을 자극했는데, 김대중(1998∼2003) 노무현(2003
∼2008) 정권에서의 반미 감정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7개월 뒤에 부시 정권이 들어섰으며,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에 회의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부시 정권과의 조기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고 2001년 3월 7일 워싱턴에서 최초로 회담을 했는데, 부시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This man”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을 가리키자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번역하며 한국 대통령을 무시했다고 부시를 비난했다. 저자는 1년 반 전부터 한국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던 주한 미군의 오만함과 한국 사람에 대한 불손함 등의 스토리라인이 이런 사건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특히 이 장에서 주목할 것은 저자의 방북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2002년 10월 3∼5일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였던 제임스 켈리가 이끄는 소규모 미국 사절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미국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업을 알게 됐으니, 중단하라고 북한에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평양에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있었던 일들이나, 북핵 문제에 대한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 등 한국 관계자들과의 갈등과 오해 등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6장 쇼트트랙 사건
이 장에서는 1998년부터 2003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여론 선호도를 최악으로 만든 스포츠 경기 판정을 다룬다. 2002년 2월 8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유타 주에서 열린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1,500미터 쇼트트랙 경주에서 한국 선수인 김동성이 실격당한 사건으로, 흔히 ‘오노 사건’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계 미국인 운동선수인 아폴로 오노가 한국 선수가 땄어야 할 금메달을 빼앗았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은 한미 관계에서 정체성과 민족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잘 보여주는데, 저자는 미국 언론도 선정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사건 보도에 일조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7장 클라이맥스: 56번 지방도의 비극
2002년 서울에서는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었는데, 6월 13일 중학생 심미선과 신효순 양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가려고 양주의 56번 지방도 옆 끝을 따라 걷다가 주한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한국 반미주의 현상의 클라이맥스였다. 비극적 사고이긴 했으나, 한국인은 이 사건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하면서 모든 언론이 미국을 심하게 비난했다. 미 군사재판에 회부된 주한 미군의 운전병 워커와 관제병 니노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시위는 더욱 커졌고, 서울 시내의 미군 시설에 화염병을 던지는 일도 있었으며, 시위와 집회 등 분노의 물결이 거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주한 미군이 감축되거나 철수할 수 있었을 텐데,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촛불시위가 잦아들었다. 새로운 정부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고, 미국과의 반목이 계속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은 물론 노무현 정부의 이익과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강력한 내러티브를 갖게 됐던 것은 사건 그 자체의 극적인 면, 즉 무고한 두 어린 소녀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것과 가해자가 주한 미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한 미군이 한국인들에게 무례함, 오만함, 잔혹함, 그리고 이중성을 보여왔다는 비난을 받던 중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진보 활동가나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접근해 미국 관계자들의 노력이 무성의하다고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8장 한국의 반미주의: 잊혀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한국 반미주의는 왜 분출됐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갑자기 끝났는가. 그 이후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 대중의 지지가 극적으로 증가한 것은 왜인가. 이제 더는 한국에서 반미주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러한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고, 미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노근리 사건에서부터 에이전트 오렌지 사건, 매향리 사건, 한미 SOFA, 아폴로 오노 사건,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실제로 일어난 일들은 무엇인지를 정리한다. 한국에서 반미주의 분출은 역사, 문화, 정치, 그리고 다른 여러 상황들의 연속에 의한 것이었으며 일부는 뿌리가 깊었고 다른 것들은 일시적이었다. 한편 한국인은 미국을 모방의 대상, 또는 최소한 배울 점이 있는 나라라고 여기는데, 신기욱 교수는 현대 한국인의 삶에 미국이 차지하는 이러한 중심성이 한국인의 국가적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보수는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확신하는 반면 진보는 한미 동맹의 이익과 불이익의 균형에 대해 양가적인 입장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의식에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미국의 존재가 외세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자국의 역사를 특히 근대사에서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희생양이 되어온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희생양의 렌즈와, 1999년의 특수한 상황이었던 진보의 발흥, 이에 따른 언론의 역할,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관심의 비대칭성 등이 어우러져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반미주의의 분출이 있었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 작가 소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1954년 미국 켄터키 주에서 출생했고 켄터키 주 루이스빌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76년부터 미국 국무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근무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관 정치과장을 역임했다. 워싱턴의 국무부에서 세 차례 한국과에서 일했으며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베이징에서 열린 6자 회담의 첫 세 차례 회담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다. 2006년 국무부에서 퇴직한 뒤 존스홉킨스 대학 고등국제학대학원(SAIS)과 서울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스탠퍼드 대학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의 팬택 객원 연구위원이었으며, 2008년부터 2016년까지는 같은 센터의 한국학 프로그램 부소장을 지냈다. 북한을 다섯 차례 방문했는데, 2009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하여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인 기자 두 명을 귀환시켰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머리말
연대표
제1장 한국 반미주의의 기원
한국의 민족 정체성과 반미주의/ 세계를 보는 다른 ‘렌즈들’/ 한국 반미주의의 역사적 기원: 1945년 이전/ 광복과 전쟁: 한미 관계의 모든 것이 변하다/ 남한의 전후 경제 및 정치 발전에서 미국의 역할/ 광주, 그리고 새로운 한국
의 반미주의/ 한국의 민주화와 반미주의의 징후/ 진보의 득세/ 한국 언론의 문제적 역할
제2장 촉매: 노근리 학살 돌아보기
노근리 사건의 보도/ 조사/ 조사 결과의 발표/ 추모 사업에 관한 협상/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우연의 역할과 노근리의 영향
제3장 한미 관계의 악화: 에이전트 오렌지와 포름알데히드
에이전트 오렌지 논란/ 포름알데히드: 또 다른 화학물질 논란
제4장 공평과 평등: 매향리 사격장 사건과 한미SOFA 개정
매향리 사격장 사건/ 한미 SOFA 개정
제5장 부시의 역습: 대북 정책
김대중의 ‘햇볕정책’/ 클린턴 행정부가 보조를 맞추다/ 조지 W. 부시: 북한에 대한 매우 다른 관점/ 북한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악화되다
제6장 쇼트트랙 사건
사건의 배경/ 오노 사건/ 사건의 여파/ 사건의 결말/ 에필로그: 오노의 유산
제7장 클라이맥스: 56번 지방도의 비극
사고의 발생/ 미국의 초기 반응/ 한국의 초기 반응/ 진보 NGO들이 개입하고 언론이 뒤따르다/ 한국 언론이 뒤따르다/ 한미 SOFA 논란/ 무죄 선고로 인한 논란/ 시위는 더욱 번지고/ 한국 시위에 대한 미국의 반응/ 용두사미: 대선의 여파
제8장 한국의 반미주의: 잊혀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원인은 무엇이었나/ 반미주의란 무엇인가/ 얼마나 심각했나/ 왜 반미주의의 분출이 끝났나/ 한국에서 다시 반미주의가 일어날 수 있을까/ 미국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위한 교훈
주 석
더 읽어볼 책
해 제 - 그것은 반미주의였다(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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