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차이를 규정하고, 차별로써 지배하라
식민지배 구조의 이면을 들춰낸, 역사학의 새로운 관점
『규정과 지배: 원주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Define and Rule: Native as Political Identity)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19~20세기 식민지 지배구조 분석을 통해 현대의 종족적·인종적 갈등의 뿌리를 파헤치는 책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해석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론가”로 평가받는 인류학자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는 이 책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의 사건들을 엮어내 식민지배의 실상을 보는 폭넓은 시야를 탁월하게 제시한다. 멀게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가깝게는 21세기 초 탄자니아까지, 아프리카를 뛰어넘어 인도, 남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문제를 두루 살피며 각각의 식민지 운영방식이 원주민과 이주민의 차이를 규정하여 그 둘의 차별로 귀결되었음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맘다니는 정치·제도 면의 통치를 넘어 원주민의 사회·문화를 송두리째 통제하고자 했던 20세기 초 서구의 간접지배 이론이 결국에는 지금의 인종·종족 간 갈등을 낳았다고 통렬히 지적한다. 나아가 이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정체성 이론을 상상하는 데에 기반이 될 다양한 가능성의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탁월하게 해석해내다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단순히 비유럽 지역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려고만 한 게 아니라 이들 지역을 유럽화해야 한다는 ‘문명화 사명’을 품고 있었다. 식민지 곳곳에 유럽식 학교가 세워졌고, 유럽의 제도와 문화가 적극적으로 이식되었다. 하나의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완전히 바꾸는 일이었고 이는 강력한 직접지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이런 직접지배는 빈번한 대규모 무장 항쟁으로 귀결되었다.
1857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통치하고 있던 남아시아에서 세포이항쟁이 일어났다. 1년 가까이 계속된 항쟁은 영국이 맞이한 첫번째 대규모 무장항쟁이었고, 이 같은 반식민 저항투쟁은 인도를 넘어 아프리카로 번져나가 이슬람 부흥운동인 마흐디야, 아메리카의 자메이카 모랜트베이 반란으로 이어졌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통치는 실패를 선고받았다. 이에 새로운 통치기술과 지배이론에 대한 요구가 등장했다. 이에 화답한 이가 바로 영국의 식민지배 이론가 헨리 메인(Henry Maine)이다.
이 책의 1장은 헨리 메인이 문명화·영국화를 사명으로 내세웠던 기존의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을 버리고 인도 원주민의 제도와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정책으로 선회함으로써 직접지배가 아닌 간접지배라는 틀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한다.
세포이항쟁 진압 이후 메인은 인도인을 영국화하는, 다시 말해 원주민을 문명인으로 만드는 작업이 실패했으니 이제는 다른 방안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메인은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식민지에서 유럽을 ‘보편’으로 규정하고 유럽 아닌 곳을 유럽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다고 보았다. 메인에 따르면 식민지에는 절대 유럽처럼 될 수 없는 곳이 있고, 유럽인처럼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사람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찾아내고, 그들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규명해야 하며, 이 차이가 ‘보호’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메인은 이런 차이를 지닌 자들을 원주민(native)이라 정의했다. 정치적 주체가 아닌 정치적 객체로서만 존재하는 원주민의 발명이다. 유럽인이 1등 시민이라면, 2등 시민을 1등 시민으로 끌어올리려는 직접지배의 방식은 더이상 불필요했다. 오히려 원주민이 유럽인과 무엇이 다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차이가 잘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간접지배로 그 방향을 바꾼 것이다.
식민 통치의 위기가 만들어낸, 제도화된 차별의 어제와 오늘
간접지배란 무엇인가. 맘다니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시민사회 내의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정치사회에서의 평등한 시민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그것의 식민지적 버전은 정치와 사회 양쪽 모두에서 차이를 제도화”(7면)했다. 그리고 이 차이와 차별의 제도를 적용할 대상을 고안한다. 식민통치의 대상을 정착민과 원주민 두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정착민(이주민)은 자민족의 역사가 있으며 근대화 과정 중에 있는 이들이고, 원주민은 근대화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기보다는 보존과 보호에 주력할 대상이다. 이런 전제하에 인구조사, 거주지 분할, 행정제도 마련 등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정치적·사회적 틀은 간접지배를 완성한다.
간접지배는 식민지 토착 엘리트만이 아니라 원주민 전체를 재구성·재규정하려는 원대한 야심이 숨겨진 개념이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 간접지배의 방식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데, 유럽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차이를 발견해 차별을 제도화해왔기 때문이다. 부룬디 학살(르완다 학살)처럼 아프리카를 비롯해 식민지 경험이 있는 곳에서 벌어진 비극들은 대부분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그 일련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세포이항쟁 이후 영국의 남아시아 지배 방식은 아프리카 식민지에 어떻게 적용되어 어떤 참극을 불러왔는가. 이는 원주민을 규정하는 방식이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책의 2장은 인종(race)과 부족(tribe)이 식민주의자에 의해 규정되는 방식을 깊이있게 다룬다. 아프리카 반제국주의운동인 마흐디야가 지역을 뛰어넘어 또다른 대륙의 식민지로 폭넓게 퍼지기 시작하자, 식민지배 당국은 다름 아닌 헨리 메인 식의 부족화(tribalization)로 대응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응이 제국의 영속을 담보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의 식민정책을 과거 로마제국과 비교함으로써 왜 영국의 정책이 로마의 정책보다 더 편협했는지, 결국에는 자신의 제국을 단명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107~20면).
3장은 나이지리아의 역사학자 우스만(Y. B. Usman)과의 학문적 만남을 실마리로 하여 서구 사회의 아프리카 식민정책과 이에 저항하는 탈식민운동의 방향을 분석한다. 특히 탄자니아 대통령 니에레레(M. J. Nyerere)의 탈식민전략이 서구의 ‘규정과 지배’에 맞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151~74면). 식민지기구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레닌 식 ‘국가소멸론’ 전략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는 옳은 전략이 아니었으며, 그보다는 “지속적이면서도 평화적인 개혁을 통해 간접지배 구조를 벗어나려는 시도”(151면)가 충분히 가능하고 도리어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맘다니의 일침은 귀기울일 만하다.
맘다니는 니에레레의 정치노선이 새로운 중도노선으로서 기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좌파적 전략과 탕카니카 통일당(UTP)의 우파적 전략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냈음을 밝혀낸다. 맘다니는 이 같은 예시를 통해 원주민이 외부의 지배를 받는 대신,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급진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차이를 찾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차별하기 위함일까
만들어진 차이와, 제도화된 차별의 기원을 찾아가는 인류학 여정
직접지배는 실패했다. 원주민 일부를 엘리트집단으로 만들어 원주민 전체를 문명화하겠다는 무모한 목표를 세웠으므로. 그리고 직접지배보다 더 큰 야망을 품었던 간접지배 또한 실패했다. 식민지 원주민, 토착민의 정치적 정체성을 새롭게 창조해 식민지 당국의 특정한 목표와 전략에 맞추고자 했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전체 주민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로 주조하고자 했던 간접지배의 야망은 지금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이 민주적으로 재편되는 데에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맘다니는 아프리카의 인종화와 종족화가 독립 후 아프리카의 민주화를 크게 방해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간접지배의 구조와 양태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객관성’이라는 서구적 겉치레를 들춰내 그 안에서 인종적 편견을 낱낱이 고발해낸다. 맘다니는 탈식민 시기 아프리카 연구가 앞으로 식민지배의 역사를 거울삼아 새로운 주체를 생성해낼 가능성을 찾아보자고 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주민과 정착민(이주민)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착민이 원주민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필자는 이와 동일한 질문을 이미 1998년 케이프타운대학 취임연설에서 제기했는데,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도 함께 내놓았다. 정착민과 원주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양자 모두가 정치적 정체성으로서 존재하길 그만두는 것이다. (9~10면)
▣ 작가 소개
저자 : 마흐무드 맘다니
저자 마흐무드 맘다니 Mahmood Mamdani는 우간다 마케레레(Makerere)대학 마케레레 사회조사연구소 소장, 미국 컬럼비아 허버트 레먼 정부학 석좌교수. 1946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우간다 캄팔라에서 자랐으며 1963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입학한 뒤 당시 시민권운동에 참여했다. 1974년 하바드대학에서 ‘우간다의 정치와 계급 형성’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해석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론가”라는 평을 받는다. 주요 저서로 『구원자와 생존자: 다르푸르, 정치, 대테러전쟁』(Saviors and Survivors: Darfur, Politics, and the War on Terror) 『착한 무슬림, 나쁜 무슬림: 미국과 냉전 그리고 테러의 기원』(Good Muslim, Bad Muslim: America, the Cold War, and the Roots of Terror) 등이 있다.
역자 : 최대희
역자 최대희 崔大熙는 대구가톨릭대학교 다문화연구원에서 이주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역사의 섬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외에 몇권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장 원주민성: 이론 │ 헨리 메인 경과 1857년 이후 대영제국의 위기
2장 원주민성: 실제
3장 정착민과 원주민을 넘어서 │ 탈식민지화의 이론과 실제
감사의 글
주석
용어 해설
역자 후기
찾아보기
차이를 규정하고, 차별로써 지배하라
식민지배 구조의 이면을 들춰낸, 역사학의 새로운 관점
『규정과 지배: 원주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Define and Rule: Native as Political Identity)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19~20세기 식민지 지배구조 분석을 통해 현대의 종족적·인종적 갈등의 뿌리를 파헤치는 책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해석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론가”로 평가받는 인류학자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는 이 책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의 사건들을 엮어내 식민지배의 실상을 보는 폭넓은 시야를 탁월하게 제시한다. 멀게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가깝게는 21세기 초 탄자니아까지, 아프리카를 뛰어넘어 인도, 남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문제를 두루 살피며 각각의 식민지 운영방식이 원주민과 이주민의 차이를 규정하여 그 둘의 차별로 귀결되었음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맘다니는 정치·제도 면의 통치를 넘어 원주민의 사회·문화를 송두리째 통제하고자 했던 20세기 초 서구의 간접지배 이론이 결국에는 지금의 인종·종족 간 갈등을 낳았다고 통렬히 지적한다. 나아가 이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정체성 이론을 상상하는 데에 기반이 될 다양한 가능성의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탁월하게 해석해내다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단순히 비유럽 지역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려고만 한 게 아니라 이들 지역을 유럽화해야 한다는 ‘문명화 사명’을 품고 있었다. 식민지 곳곳에 유럽식 학교가 세워졌고, 유럽의 제도와 문화가 적극적으로 이식되었다. 하나의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완전히 바꾸는 일이었고 이는 강력한 직접지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이런 직접지배는 빈번한 대규모 무장 항쟁으로 귀결되었다.
1857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통치하고 있던 남아시아에서 세포이항쟁이 일어났다. 1년 가까이 계속된 항쟁은 영국이 맞이한 첫번째 대규모 무장항쟁이었고, 이 같은 반식민 저항투쟁은 인도를 넘어 아프리카로 번져나가 이슬람 부흥운동인 마흐디야, 아메리카의 자메이카 모랜트베이 반란으로 이어졌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통치는 실패를 선고받았다. 이에 새로운 통치기술과 지배이론에 대한 요구가 등장했다. 이에 화답한 이가 바로 영국의 식민지배 이론가 헨리 메인(Henry Maine)이다.
이 책의 1장은 헨리 메인이 문명화·영국화를 사명으로 내세웠던 기존의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을 버리고 인도 원주민의 제도와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정책으로 선회함으로써 직접지배가 아닌 간접지배라는 틀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한다.
세포이항쟁 진압 이후 메인은 인도인을 영국화하는, 다시 말해 원주민을 문명인으로 만드는 작업이 실패했으니 이제는 다른 방안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메인은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식민지에서 유럽을 ‘보편’으로 규정하고 유럽 아닌 곳을 유럽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다고 보았다. 메인에 따르면 식민지에는 절대 유럽처럼 될 수 없는 곳이 있고, 유럽인처럼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사람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찾아내고, 그들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규명해야 하며, 이 차이가 ‘보호’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메인은 이런 차이를 지닌 자들을 원주민(native)이라 정의했다. 정치적 주체가 아닌 정치적 객체로서만 존재하는 원주민의 발명이다. 유럽인이 1등 시민이라면, 2등 시민을 1등 시민으로 끌어올리려는 직접지배의 방식은 더이상 불필요했다. 오히려 원주민이 유럽인과 무엇이 다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차이가 잘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간접지배로 그 방향을 바꾼 것이다.
식민 통치의 위기가 만들어낸, 제도화된 차별의 어제와 오늘
간접지배란 무엇인가. 맘다니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시민사회 내의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정치사회에서의 평등한 시민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그것의 식민지적 버전은 정치와 사회 양쪽 모두에서 차이를 제도화”(7면)했다. 그리고 이 차이와 차별의 제도를 적용할 대상을 고안한다. 식민통치의 대상을 정착민과 원주민 두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정착민(이주민)은 자민족의 역사가 있으며 근대화 과정 중에 있는 이들이고, 원주민은 근대화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기보다는 보존과 보호에 주력할 대상이다. 이런 전제하에 인구조사, 거주지 분할, 행정제도 마련 등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정치적·사회적 틀은 간접지배를 완성한다.
간접지배는 식민지 토착 엘리트만이 아니라 원주민 전체를 재구성·재규정하려는 원대한 야심이 숨겨진 개념이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 간접지배의 방식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데, 유럽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차이를 발견해 차별을 제도화해왔기 때문이다. 부룬디 학살(르완다 학살)처럼 아프리카를 비롯해 식민지 경험이 있는 곳에서 벌어진 비극들은 대부분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그 일련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세포이항쟁 이후 영국의 남아시아 지배 방식은 아프리카 식민지에 어떻게 적용되어 어떤 참극을 불러왔는가. 이는 원주민을 규정하는 방식이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책의 2장은 인종(race)과 부족(tribe)이 식민주의자에 의해 규정되는 방식을 깊이있게 다룬다. 아프리카 반제국주의운동인 마흐디야가 지역을 뛰어넘어 또다른 대륙의 식민지로 폭넓게 퍼지기 시작하자, 식민지배 당국은 다름 아닌 헨리 메인 식의 부족화(tribalization)로 대응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응이 제국의 영속을 담보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의 식민정책을 과거 로마제국과 비교함으로써 왜 영국의 정책이 로마의 정책보다 더 편협했는지, 결국에는 자신의 제국을 단명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107~20면).
3장은 나이지리아의 역사학자 우스만(Y. B. Usman)과의 학문적 만남을 실마리로 하여 서구 사회의 아프리카 식민정책과 이에 저항하는 탈식민운동의 방향을 분석한다. 특히 탄자니아 대통령 니에레레(M. J. Nyerere)의 탈식민전략이 서구의 ‘규정과 지배’에 맞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151~74면). 식민지기구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레닌 식 ‘국가소멸론’ 전략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는 옳은 전략이 아니었으며, 그보다는 “지속적이면서도 평화적인 개혁을 통해 간접지배 구조를 벗어나려는 시도”(151면)가 충분히 가능하고 도리어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맘다니의 일침은 귀기울일 만하다.
맘다니는 니에레레의 정치노선이 새로운 중도노선으로서 기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좌파적 전략과 탕카니카 통일당(UTP)의 우파적 전략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냈음을 밝혀낸다. 맘다니는 이 같은 예시를 통해 원주민이 외부의 지배를 받는 대신,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급진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차이를 찾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차별하기 위함일까
만들어진 차이와, 제도화된 차별의 기원을 찾아가는 인류학 여정
직접지배는 실패했다. 원주민 일부를 엘리트집단으로 만들어 원주민 전체를 문명화하겠다는 무모한 목표를 세웠으므로. 그리고 직접지배보다 더 큰 야망을 품었던 간접지배 또한 실패했다. 식민지 원주민, 토착민의 정치적 정체성을 새롭게 창조해 식민지 당국의 특정한 목표와 전략에 맞추고자 했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전체 주민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로 주조하고자 했던 간접지배의 야망은 지금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이 민주적으로 재편되는 데에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맘다니는 아프리카의 인종화와 종족화가 독립 후 아프리카의 민주화를 크게 방해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간접지배의 구조와 양태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객관성’이라는 서구적 겉치레를 들춰내 그 안에서 인종적 편견을 낱낱이 고발해낸다. 맘다니는 탈식민 시기 아프리카 연구가 앞으로 식민지배의 역사를 거울삼아 새로운 주체를 생성해낼 가능성을 찾아보자고 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주민과 정착민(이주민)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착민이 원주민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필자는 이와 동일한 질문을 이미 1998년 케이프타운대학 취임연설에서 제기했는데,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도 함께 내놓았다. 정착민과 원주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양자 모두가 정치적 정체성으로서 존재하길 그만두는 것이다. (9~10면)
▣ 작가 소개
저자 : 마흐무드 맘다니
저자 마흐무드 맘다니 Mahmood Mamdani는 우간다 마케레레(Makerere)대학 마케레레 사회조사연구소 소장, 미국 컬럼비아 허버트 레먼 정부학 석좌교수. 1946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우간다 캄팔라에서 자랐으며 1963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입학한 뒤 당시 시민권운동에 참여했다. 1974년 하바드대학에서 ‘우간다의 정치와 계급 형성’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해석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론가”라는 평을 받는다. 주요 저서로 『구원자와 생존자: 다르푸르, 정치, 대테러전쟁』(Saviors and Survivors: Darfur, Politics, and the War on Terror) 『착한 무슬림, 나쁜 무슬림: 미국과 냉전 그리고 테러의 기원』(Good Muslim, Bad Muslim: America, the Cold War, and the Roots of Terror) 등이 있다.
역자 : 최대희
역자 최대희 崔大熙는 대구가톨릭대학교 다문화연구원에서 이주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역사의 섬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외에 몇권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장 원주민성: 이론 │ 헨리 메인 경과 1857년 이후 대영제국의 위기
2장 원주민성: 실제
3장 정착민과 원주민을 넘어서 │ 탈식민지화의 이론과 실제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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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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