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조선 선비들의 삶에서 오늘을 직시하다
150여 회 무등산 역사길 답사의 경험
개정판으로 담아
무등산은 삶 속에 살아 있는 산이다. 무등산 ‘역사길’은 무등산 옛길 3구간의 후반부로 총 길이는 6km다. 무등산 ‘역사길’에 들면 풍문으로 떠도는 조선이 아닌 실체의 조선을 만나게 된다. 호남 선비들의 정치적 꿈은 무등산 ‘역사길’, 그 어딘가에서 장엄하게 피어났다.
무등산 역사길이 오랜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로 온다. 지금까지 150여 회에 달하는 무등산 역사길 트래킹을 경험 삼아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문학들 刊)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11년에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만들고 교장을 맡았던 저자는 기존에 펴낸 동명의 책이 무엇보다도 역사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아쉬움을 바탕으로 지난 4년 동안 더욱 치열한 공부와 탐사를 거듭하여 써낸 이번 개정판은 임진왜란의 침입에 맞서 스스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었던 장군 신립의 패배 이후 왕이었던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간다. 한양에서 한 번, 평양에서 한 번, 그리고 망명까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충으로 삼아 스스로 일어선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의병의 기치를 내세운 사람은 곡성의 선비 유팽로였고, 그가 대장으로 추대한 이는 제봉 고경명이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있었고 고령의 김면이 산야에서 세상으로 나왔고, 창의사 김천일도 있었다. 왜군은 이들을 ‘고라이잇키’라 불렀다. ‘조선의 농민봉기군’이라는 뜻이다. 당시 왜군에게는 도통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불러서 일어난 게 아닌, 스스로의 부름을 듣고 일어섰다. 그것이 바로 조선 선비의 ‘소신’이었다.
이렇듯 송갑석은 무등산 역사길에서 조선 선비들의 소신을 읽어냈다. 그는 “조선은 ‘소신’의 사회였다. 옳다고 믿는 일에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족의 생사가 자기 소신에 달려 있었지만 굽히지 않았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고, 강한 소신들이 모아져 다스린 나라였다. 조선만큼 소신으로 무장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는 역사에 없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공부 자체가 마음의 공부였고, 그들은 체득한 것을 반드시 실천하는 삶을 삶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무등산 역사길’에는 조선 선비들의 숨결이 깊게 살아 있다. 무등산 ‘역사길’은 충장사에서 시작해 취가정에서 끝난다. 시작도 김덕령이고, 끝도 김덕령이다. 의병장 김덕령은 권력의 음모에 갇혀 엿새 동안 여섯 차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김덕령은 무거운 고문을 이겨내고,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약한 손에 마땅히 칼을 잡겠나이다.”라는 말과 함께 계의의병장의 자리를 맡았던 김덕령은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죽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나라의 왕에게 죽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무등산 ‘역사길’ 사이사이 선비들의 삶이 스민다. 살아 있는 호남 사림의 정점이라 불렸던 사촌 김윤제, 올곧음 위에 지극한 정치를 놓으려 했던 최부, 언제나 목숨을 걸고 사회 변혁을 꿈꾼 박상, 현실 안에서 유학의 완벽한 근본주의를 실현한 조광조, 스승이 사약을 마시고 죽자 소쇄원에 은거한 양산보, 왕의 추국으로 형이었던 덕령이 죽었음에도 나라가 또 한 번 위기에 빠지자 기꺼이 의병에 참가한 김덕보, 5만 석 재산을 백성의 것으로 되돌린 조선의 3대 갑부 박광옥의 삶이 오롯하게 살아 있다.
특히 조선의 의병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극치이며 이 정신은 곧 ‘시티즌 오블리주’로 빛났다. 평생 칼을 버리고 문장을 섬겼던 조선의 선비들은 나라가 위태로던 순간 분연히 일어나 칼을 들었다. 제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방식으로 나라를 구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과 고경명, 김면, 최경회가 실천했던 자기희생은 구한말 황현과 고광순에게로 이어졌다.
송갑석은 “조선에서는 귀족만 도덕적 책무를 가졌던 게 아니다. 조선은 왕의 나라였고, 선비의 나라였으며, 결국 백성들의 나라였다. 조선은 문민질서가 정착된 나라였다. 무기를 싫어했던 백성들이 나라가 위급해진 순간 모두 칼을 들었다. 귀족들의 책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넘어선 ‘시티즌 오블리주’, 그것은 조선이 5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송갑석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지방대학 최초의 전대협 의장으로 활동했다. 수배와 구속, 투옥은 예정된 것이었고, 5년 2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 출옥 후에는 NGO 활동과 정치활동을 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2011년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세우고 교장을 맡고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송갑석
송갑석은 여산 송씨 원윤공파 29세 손이다.
11대 할아버지 간(侃)은 단종 때 형조참판을 지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의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흥에 은거했다. 그의 시호를 따서 고흥의 송씨들은 『충강공파』로도 불린다. 이 책에 나오는 조선수군의 송희립 장군도 저자의 할아버지다.
고흥에서 초·중학교를 나오고 광주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녔다. 수감생활과 미국유학을 제외하고는 광주에서 살고 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은 그 시대의 청춘들이 그러했듯 송갑석에게 운명이고 사명이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지방대학 최초의 전대협의장이 되었고 수배와 구속, 투옥은 예정된 길이었다. 다만, 주요 학생운동 출신 중 유일하게 사면도 가석방도 없는 5년 2개월의 옥살이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출옥 후에도 자격정지에 묶여 있다가 김대중 정부 때 사면·복권되어 비로소 온전한 시민이 되었다. 그 후 10여 년은 NGO활동과 정치활동, 유학과 강의, 월급쟁이와 자영업자로 살아왔다.
2011년, 『광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입니다』라는 모토로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만들고 광주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무등산 역사길 트래킹』을 직접 해설하며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그것을 위한 조사와 공부의 결과물이자 지금까지 총 150여 회에 걸친 무등산 역사길 답사의 기록이다.
▣ 주요 목차
차례
개정판을 펴내며
작가의 말
충장사, 의병장 김덕령의 기념의 영토
한 동네에 세 군데의 명승이 있다
임진년, 전쟁이 시작되다
전쟁의 서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
수도 한양의 함락
조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다
준비없이 맞이한 예고된 전쟁
신립과 함께 무너진 조선의 마지노선
조선, 압록강까지 내몰리다
호남, 홀로 남아 나라의 심장이 되다
호남으로 향하는 일본의 칼끝
권율과 전라도 육군, 호남땅을 지켜내다
이순신과 전라도 수군, 남쪽 바다를 지배하다
의병, 스스로 일어선 의로운 사람들
곽재우와 김면, 경상도의 레지스탕스
창의사 김천일, 근왕의 깃발을 들다
제봉 고경명, 조선을 울리고 호남을 움직이다
아! 진주성, 호남의병들의 장엄한 소멸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의 혼으로 사라진 외로운 여인
김덕령, 의를 이어받은 의병장이 되다
미약한 손에 칼을 잡겠나이다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
귀후제, 사촌 김윤제의 지극한 삶
서로의 생각이 발로 내통하는 길
고귀한 신분은 책임이 있다
김윤제, 후덕함으로 돌아오다
면앙정 송순, 지극한 관용의 삶
회재 박광옥, 5만 석의 재산을 세상의 가치로 되돌리다
풍암정, 김덕보의 은둔의 영토
초광대역지진계와 와송정
풍암정, 『바라보는』정자
풍암정, 은둔과 슬픔의 정자
서경식, 우리 시대의 김덕보
안방준, 곧고 바른 선비의 전형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남의 것인가?
찔레꽃,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산 아래 마을에 『꽃』핀다
무등산의 산비탈을 깎아 만든 삶의 자리 18
금곡동, 무등산수박 마을
분청사기, 자연보다 자연스러운 그릇
삼괴정, 부끄러워서 사람이다
바람의 언덕, 그리고 소나무 한 그루
충효분교, 작지만 큰 학교
정려비각, 왕이 마을 이름을 짓다
왕버들, 오래된 시간의 장엄한 회고
환벽당, 선비들의 푸른 혼
김정호의 하얀 나비, 세습적으로 물려받은 소리
호남 사림, 『절의』 속에 피어난 꽃
환벽당, 푸르름으로 둘러쌓인 집
불타는 성산삼승, 재로 변한 선비정신의 거처
취가정, 취해서 부르는 노래 아무도 듣는 이 없네
취시가, 술 취한 자의 깊게 흐르는 노래
이몽학의 난, 음모의 그림자
선조, 용맹한 신하를 두려워했던 왕
김덕령,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
참고문헌
조선 선비들의 삶에서 오늘을 직시하다
150여 회 무등산 역사길 답사의 경험
개정판으로 담아
무등산은 삶 속에 살아 있는 산이다. 무등산 ‘역사길’은 무등산 옛길 3구간의 후반부로 총 길이는 6km다. 무등산 ‘역사길’에 들면 풍문으로 떠도는 조선이 아닌 실체의 조선을 만나게 된다. 호남 선비들의 정치적 꿈은 무등산 ‘역사길’, 그 어딘가에서 장엄하게 피어났다.
무등산 역사길이 오랜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로 온다. 지금까지 150여 회에 달하는 무등산 역사길 트래킹을 경험 삼아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문학들 刊)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11년에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만들고 교장을 맡았던 저자는 기존에 펴낸 동명의 책이 무엇보다도 역사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아쉬움을 바탕으로 지난 4년 동안 더욱 치열한 공부와 탐사를 거듭하여 써낸 이번 개정판은 임진왜란의 침입에 맞서 스스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었던 장군 신립의 패배 이후 왕이었던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간다. 한양에서 한 번, 평양에서 한 번, 그리고 망명까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충으로 삼아 스스로 일어선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의병의 기치를 내세운 사람은 곡성의 선비 유팽로였고, 그가 대장으로 추대한 이는 제봉 고경명이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있었고 고령의 김면이 산야에서 세상으로 나왔고, 창의사 김천일도 있었다. 왜군은 이들을 ‘고라이잇키’라 불렀다. ‘조선의 농민봉기군’이라는 뜻이다. 당시 왜군에게는 도통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불러서 일어난 게 아닌, 스스로의 부름을 듣고 일어섰다. 그것이 바로 조선 선비의 ‘소신’이었다.
이렇듯 송갑석은 무등산 역사길에서 조선 선비들의 소신을 읽어냈다. 그는 “조선은 ‘소신’의 사회였다. 옳다고 믿는 일에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족의 생사가 자기 소신에 달려 있었지만 굽히지 않았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고, 강한 소신들이 모아져 다스린 나라였다. 조선만큼 소신으로 무장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는 역사에 없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공부 자체가 마음의 공부였고, 그들은 체득한 것을 반드시 실천하는 삶을 삶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무등산 역사길’에는 조선 선비들의 숨결이 깊게 살아 있다. 무등산 ‘역사길’은 충장사에서 시작해 취가정에서 끝난다. 시작도 김덕령이고, 끝도 김덕령이다. 의병장 김덕령은 권력의 음모에 갇혀 엿새 동안 여섯 차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김덕령은 무거운 고문을 이겨내고,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약한 손에 마땅히 칼을 잡겠나이다.”라는 말과 함께 계의의병장의 자리를 맡았던 김덕령은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죽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나라의 왕에게 죽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무등산 ‘역사길’ 사이사이 선비들의 삶이 스민다. 살아 있는 호남 사림의 정점이라 불렸던 사촌 김윤제, 올곧음 위에 지극한 정치를 놓으려 했던 최부, 언제나 목숨을 걸고 사회 변혁을 꿈꾼 박상, 현실 안에서 유학의 완벽한 근본주의를 실현한 조광조, 스승이 사약을 마시고 죽자 소쇄원에 은거한 양산보, 왕의 추국으로 형이었던 덕령이 죽었음에도 나라가 또 한 번 위기에 빠지자 기꺼이 의병에 참가한 김덕보, 5만 석 재산을 백성의 것으로 되돌린 조선의 3대 갑부 박광옥의 삶이 오롯하게 살아 있다.
특히 조선의 의병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극치이며 이 정신은 곧 ‘시티즌 오블리주’로 빛났다. 평생 칼을 버리고 문장을 섬겼던 조선의 선비들은 나라가 위태로던 순간 분연히 일어나 칼을 들었다. 제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방식으로 나라를 구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과 고경명, 김면, 최경회가 실천했던 자기희생은 구한말 황현과 고광순에게로 이어졌다.
송갑석은 “조선에서는 귀족만 도덕적 책무를 가졌던 게 아니다. 조선은 왕의 나라였고, 선비의 나라였으며, 결국 백성들의 나라였다. 조선은 문민질서가 정착된 나라였다. 무기를 싫어했던 백성들이 나라가 위급해진 순간 모두 칼을 들었다. 귀족들의 책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넘어선 ‘시티즌 오블리주’, 그것은 조선이 5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송갑석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지방대학 최초의 전대협 의장으로 활동했다. 수배와 구속, 투옥은 예정된 것이었고, 5년 2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 출옥 후에는 NGO 활동과 정치활동을 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2011년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세우고 교장을 맡고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송갑석
송갑석은 여산 송씨 원윤공파 29세 손이다.
11대 할아버지 간(侃)은 단종 때 형조참판을 지내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의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흥에 은거했다. 그의 시호를 따서 고흥의 송씨들은 『충강공파』로도 불린다. 이 책에 나오는 조선수군의 송희립 장군도 저자의 할아버지다.
고흥에서 초·중학교를 나오고 광주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녔다. 수감생활과 미국유학을 제외하고는 광주에서 살고 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은 그 시대의 청춘들이 그러했듯 송갑석에게 운명이고 사명이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지방대학 최초의 전대협의장이 되었고 수배와 구속, 투옥은 예정된 길이었다. 다만, 주요 학생운동 출신 중 유일하게 사면도 가석방도 없는 5년 2개월의 옥살이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출옥 후에도 자격정지에 묶여 있다가 김대중 정부 때 사면·복권되어 비로소 온전한 시민이 되었다. 그 후 10여 년은 NGO활동과 정치활동, 유학과 강의, 월급쟁이와 자영업자로 살아왔다.
2011년, 『광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입니다』라는 모토로 사단법인 광주학교를 만들고 광주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무등산 역사길 트래킹』을 직접 해설하며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그것을 위한 조사와 공부의 결과물이자 지금까지 총 150여 회에 걸친 무등산 역사길 답사의 기록이다.
▣ 주요 목차
차례
개정판을 펴내며
작가의 말
충장사, 의병장 김덕령의 기념의 영토
한 동네에 세 군데의 명승이 있다
임진년, 전쟁이 시작되다
전쟁의 서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
수도 한양의 함락
조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다
준비없이 맞이한 예고된 전쟁
신립과 함께 무너진 조선의 마지노선
조선, 압록강까지 내몰리다
호남, 홀로 남아 나라의 심장이 되다
호남으로 향하는 일본의 칼끝
권율과 전라도 육군, 호남땅을 지켜내다
이순신과 전라도 수군, 남쪽 바다를 지배하다
의병, 스스로 일어선 의로운 사람들
곽재우와 김면, 경상도의 레지스탕스
창의사 김천일, 근왕의 깃발을 들다
제봉 고경명, 조선을 울리고 호남을 움직이다
아! 진주성, 호남의병들의 장엄한 소멸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의 혼으로 사라진 외로운 여인
김덕령, 의를 이어받은 의병장이 되다
미약한 손에 칼을 잡겠나이다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
귀후제, 사촌 김윤제의 지극한 삶
서로의 생각이 발로 내통하는 길
고귀한 신분은 책임이 있다
김윤제, 후덕함으로 돌아오다
면앙정 송순, 지극한 관용의 삶
회재 박광옥, 5만 석의 재산을 세상의 가치로 되돌리다
풍암정, 김덕보의 은둔의 영토
초광대역지진계와 와송정
풍암정, 『바라보는』정자
풍암정, 은둔과 슬픔의 정자
서경식, 우리 시대의 김덕보
안방준, 곧고 바른 선비의 전형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남의 것인가?
찔레꽃,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산 아래 마을에 『꽃』핀다
무등산의 산비탈을 깎아 만든 삶의 자리 18
금곡동, 무등산수박 마을
분청사기, 자연보다 자연스러운 그릇
삼괴정, 부끄러워서 사람이다
바람의 언덕, 그리고 소나무 한 그루
충효분교, 작지만 큰 학교
정려비각, 왕이 마을 이름을 짓다
왕버들, 오래된 시간의 장엄한 회고
환벽당, 선비들의 푸른 혼
김정호의 하얀 나비, 세습적으로 물려받은 소리
호남 사림, 『절의』 속에 피어난 꽃
환벽당, 푸르름으로 둘러쌓인 집
불타는 성산삼승, 재로 변한 선비정신의 거처
취가정, 취해서 부르는 노래 아무도 듣는 이 없네
취시가, 술 취한 자의 깊게 흐르는 노래
이몽학의 난, 음모의 그림자
선조, 용맹한 신하를 두려워했던 왕
김덕령, 충효로써 죽음을 삼은 죄밖에 없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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