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29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천재, 천재 사학자가 혼자 29개 언어로 된
사서들을 전부 독파한 후 각 사서들의 내용을 교차 체크하고
각 언어의 변천과정을 면밀히 추적한 결과 밝혀낸 놀라운 비밀;
칭기스 칸은 고구려 발해
왕가의 후손이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몽골인” 출신으로 “세계정복자”라고 알고 있는 칭기스 칸의 선조는 “고구려(高句麗) 주몽(朱蒙)의 후손 발해(渤海) 왕족이었다”는 내용의 놀라운 책이 나왔다.
지금부터 약 800년 전에 칭기스 칸(1162?~1227년)의 선조와 그 자신의 행적에 관해 기록한 사서 《몽골비사(元朝秘史)》가 있다. 이 사서는 그 첫줄에서 “칭기스칸의 뿌리는 높은 하늘이 점지하여 태어난 부르테 치노(蒼狼, 푸른 이리)”라고 했다.
그런데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외무부 유엔국 유네스코담당 자문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체첸전쟁 현장주재관을 거쳐, 미국에서 법학박사(JD)를 딴 후, 미국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했고, 귀국 후에는 고구려 발해학회 회원으로도 참가한 저자는 한·몽 수교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몽골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독학 교재로 쓴 《몽골비사(元朝秘史)》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부터 한 가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사서의 제목은 왜 그저 《몽골사》나 《칭기스칸사》가 아니라, 《-비밀스러운(숨겨진)=秘-》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저자는 그후 내내 자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 물음을 끈질기게 추궁했다. 그 결과 “부르테 치노”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오늘날 몽골족의 선조라고 하는 그 전설적 “푸른 이리”와는 전혀 다른 말로, 그것은 고구려-말갈어 “부여대씨랑(夫餘-大氏-郞, *부려-테치-농)”이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치노(氏郞, 씨랑)”라는 말은 오늘날 씨족의 “종친회장” 격으로 고구려 시대에 쓰이기 시작하여 원(元, 1271~1368년)나라, 북원(北元, 1368~1388년)과 그 뒤에도 몽골어로 “지농”이라는 말로 계승되었다.
이 때문에 본격적 연구를 한 결과,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칸의 뿌리가 사실은 1045년에 쓰인 《무경총요(武經總要)》가 “부여별류(夫餘別類)”로 기록한 발해고왕(渤海高王) 대조영(大祚榮) 가계의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이 발해 초대왕이자 진국왕(震國王)인 대조영(大祚榮)의 가계 출신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칭기스 칸은 그 아우 반안군왕(盤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의 제 19대손임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또 학자들이 “철인”, “(쇠를 다루는)대장장이” 등으로 잘못 풀이해 온 “칭기스 칸”의 어릴 적 이름 “테무진(鐵木眞)”은 사실은 “테무진” 자신이 “부여별종(夫餘別種)” 가계인 주몽(朱蒙)의 손자로 고구려 3대왕이 된 “무쿠리(無恤, 무휼)”, 다른 이름으로 “마크리(莫來, 막래)”였던 “대무신(大武神)” 왕(王), 달리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의 후손임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밝혔다.
테무진의 왕호인 “칭기스 칸(Chinghiz Khan/Ghenghiz Khan)”을 라시드 웃딘(Rashid alDin)이 1310년 경에 쓴 《집사(集史)》와, 지난 세기 미국학자 해롤드 램(Harold Lamb) 등은 “왕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잘못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왕호가 사실은 대조영과 그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쓴 고구려-말갈어(靺鞨語) “진국왕(震國王)”의 투르크어 식 소리 “팅기즈 칸(Tinggiz Khan)”이 바뀐 말임을 밝힌다. 칭기스 칸의 손자로 원(元)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을 1266년경 만났다고 전하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년)의 《동방견문록》에서, 폴로는 칭기스 칸의 이름을 25번이나 언급하면서 24번이나 그의 이름을 “칭기 칸(Chinghi Kane)”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바로 “진국왕(震國王)”의 당시 소리 “친구이 칸(Chinghui Kan)”과 같다는 사실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1330년에 함둘라 카즈비니(Hamdallah Qazvini)가 쓴 《선별된 역사(Tarikh-i Gojide)》는 테무진이 나기 전까지는 그 이름조차도 없던 땅을 테무진이 통일하고는 자신이 창출한 나라 이름을 “몽골”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일부 몽골학자들은 이것이 송(宋)나라 팽대아(彭大雅)가 칭기스 칸 시대의 몽골을 방문하고 1237년에 쓴 《흑달사략(黑事略)》에 근거하여 “멍거(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몽골”은 사실은 칭기스 칸의 선조의 나라인 “말갈(靺鞨, 勿吉)”, 곧 조선시대의 학자가 “마읍(馬邑)”이라고도 본 “말[키우는] 고을(馬忽)”에 어원을 둔 말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구려(高句麗)는 수도 평양성(平壤城) 등 오늘날 성시(城市)를 말하는 여러 개의 “고을=구려(句麗)”와 “일곱 개의 말 골(말갈)”로 이루어져 커진(高) 나라 “커구려(高句麗)”였기 때문이다.
결국 테무진은 자신의 이름 “테무진/대무신(大武神)”과 왕호 “칭기스 칸/진국왕(震國王)”, 그리고 자기 나라 이름을 “몽골 / 몰골 / 말골(靺鞨)”이라고 붙임으로써 자신이 고구려(高句麗) 왕족의 후손이자, 발해(渤海) “진국왕(震國王)”의 후손이요, “말갈국왕”, 곧 새로운 “발해국왕”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결론을 얻는 과정에서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칸 일가의 후손 “칸(황제)”들이 자신들의 조상에 관해 세계 곳곳에서 남긴 《황금의 책(Altan Daftar)》에 해당하는 책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칭기스 칸의 뿌리가 바로 고구려(高句麗) 시조 주몽(朱蒙)의 후손인 발해 왕족 대조영 가문임을 밝힌다. 《황금의 책》은 약 705년 전 일칸국 황제 가잔 칸의 명으로 《집사》를 쓴 라시드 웃딘이 “칸(황제)의 재고에는 항상 대 아미르들이 지키고 있어서... 황족이 아닌 외부인들은 절대로 보도록 허락되지 않는 책이 한 권 있다”고 한 전설적인 책이다. 이 《황금의 책》은 왜 철저하게 외부인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칸(황제) 가문의 “족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신·구 당서》, 《삼국사기》, 《고려사》 등 한문으로 된 고대 동방사서는 물론, 《집사》, 《사국사》, 《투르크의 계보》, 《칭기스의 서》 등 페르시아, 중세 투르크어, 타타르어로 된 서방 사서, 《몽골비사》, 《셀렝게 부랴트종족의 역사》 등 중세 몽골어와 부랴트어 등으로 쓰인 사서를 중심으로 최대 무려 29개 국어로 쓰인 사서들과 사료들을 서로 비교, 대조하고, 그 텍스트를 해독하여, 숨겨진 우리 역사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혔다.
발해 멸망에 관해서는 거란의 정복설, 백두산 폭발에 의한 멸망설 등이 있다. 그러나 그 뒤 발해인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관해서는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발해 왕가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건의 고려와 금나라, 또 오늘날 우리가 “몽골제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 제국은 오늘날 몽골이라고 부르는 땅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물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의 반대편 홍해의 아라비아 반도, 러시아, 동구 및 오스트리아, 독일 변경까지 뻗어나간 방대한 세계제국이었다. 한 마디로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서구 몇 나라만 뺀 당시의 “전세계”이다. 그렇다면 지난 1995년 21세기의 새로운 “밀레니엄(천년)”의 도래를 앞두고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가 20세기까지 지난 천 년간의 역사 속에서 최고의 인물로 선정한 사람이 바로 칭기스칸이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칭기스 칸이 탄생한 지 850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 누구도 그 위대한 인물의 “뿌리”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국내외 저명한 사학자, 교수, 전문가들 가운데 그 누구도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던 고대와 중세, 근세에 걸쳐 기록된 동·서방의 여러 가지 어렵고도 다양한 언어로 된 사서들을 해독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천재적인 추론과 법학도 다운 논리정연한 추리를 통해 칭기스 칸의 뿌리를 꼼꼼하게 한 세대 한 세대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이 《고구려-발해인 칭기스칸》이다. 이 책은 668년 고구려가 망한 이래 지난 1300년간의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할” 놀랍고도 치밀한 연구 결과물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고구려는 우리요, 말갈은 우리와 관계없는 퉁구스 종족이다” 고 보는 일부 우리 국사학자들과 러시아, 중국 등 주류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저자는 놀랍게도 “고구려와 말갈은 다 같이 고구려 왕족으로 주몽의 후예”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이 글은 이러한 새 학설을 애써 무시하려는 국내외 전문가, 교수들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하나, 아니면 발해왕조의 민족적 성격에 관해 그들 사이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저자는 사라진 고구려가 발해-고려-금나라-원나라-청나라로 이어졌다는 엄청난 역사적 진실도 밝힌다. 저자는 《집사》에 “모든 콩그라트 종족의 시조”로 기록된 “황금항아리(Bastu-i jarrin)”가 몽골인들이 금(金)나라 황제를 부르는 “황금의 칸(Altan Khan)”이며, 그가 바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나오는 “금행(金幸, *황금의 칸)”임을 밝힌다. “황금항아리”는 칭기스 칸의 부인 부르테 우진(Bu''te Kujin)의 가계로 《집사》에 기록된 콩그라트(Qongrat) 종족, 또 원(元)나라 제2황후들의 가계인 예키라스(Yikiras) 종족, 그리고 칭기스 칸의 직계 선조 가문인 코를라스(Korulas) 종족 등 콩그라트 주요 3지파의 공통선조이다.
또 한 가지, 우리 일부 학자들은 금나라와 청나라 황실이 신라왕족 김씨(金氏)의 후손이라고 잘못 보아왔다. 이와는 달리, 《지봉유설(芝峰類說, 1614년)》은 “후금(後金)”, 곧 청(淸)나라의 태조인 아이신교로누르하치(愛新覺羅努爾哈赤建)의 가문이 “전조(前朝)”, 곧 우리 고려(高麗)의 “왕씨(王氏)의 후손(裔)”이라고 했다. 신라 김씨가 아니라 고려 왕건의 후손이 청나라 황실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침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명으로 지은 《만주원류고, 1778년》에서 청황실은 스스로가 발해 말갈의 대씨(大氏)와 금나라 왕가 “왕씨(王氏)”인 완안씨(完顔氏)의 후손이라고 자처한다. 저자에 따르면, 두 기록은 결국 같은 말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저자는 “고려(高麗) 공비(?妃)의 아들 영락(永樂) 황제의 명(明)나라를 빼더라도,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는 놀랍게도 고려(高麗), 금(金), 원(元), 청(淸)나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唐), 송(宋) 이래 이 두 왕조를 제외하고 지난 1000년간의 이른바 “중국왕조”들 모두가 우리 “조선민족의 왕조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실감나게 하는 연구결과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2004년의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충격적 사건 이래, 우리 정부는 국가적 정책으로 엄청난 재원을 동원하여, 수백 명의 직원과 연구원을 채용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처해 왔다. 그러나 그 연구결과는 대개 고구려 발해가 중원의 역사적 왕조와는 별개의 독립된 국가라는 정도의 외곽만 두드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한 외로운 연구가의 분투로 이를 둘러싼 한판 승부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제 “역(逆)동북공정” 또는 “대륙공정”이라는 열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여튼 역사의 진실게임의 결과는 이제 명백해 보인다.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통해 오늘날 형체도 없는 “코리안 웨이브(Korean Waves)”를 자랑삼아 떠들면서도 방향 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나침반 없이 우왕좌왕하는 우리가 잊어버린 우리 역사의 진실을 다시 찾고, 이를 돌아봄으로써 장차 세계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에 관해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도록 우리에게 촉구한다. 과연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
▣ 작가 소개
저자 : 전원철
저자 전원철은 중앙아시아 및 북방민족 사학가 / 고구려 발해학회 회원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아이오와대학교 로스쿨 법학박사(JD) 학위 취득, 뉴욕주립대학교 법학박사후과정(LLM)을 밟고, 미국로펌(변호사)에서 근무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체첸전쟁 현장주재관, 외무부 유엔국인권사회과 유네스코담당 자문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근무, 공군학사장교를 역임했다. 저서로는『고구려-발해족장(渤海族帳)의 칭기스 칸(2011.7.)』,『고구려-발해왕족의 후손 칭기스 칸(2015.5.)』등이 있다.
▣ 주요 목차
/ 서 문 /
1. 칭기스 칸의 선조를 적은 황금의 책과의 만남
2. 칭기스 칸의 뿌리 이야기, 이 책의 줄거리
3. 말탄 야만 유목민의 세계 정복설이라는 기존의 관점에 관해 생각해 볼 문제
4. 권두에 쓰는 저자의 후기
I. 서 론
1. ‘칭기스 칸의 뿌리’에 관한 9가지 다른 설 개관
2. 칭기스 칸의 뿌리에 관한 집사의 에르게네 쿤 전설
3. 칭기스 칸의 선조에 관한 사국사“타타르와 모골 종족의 대전쟁”
4. 사국사의 “타타르모골의 대전쟁”은 “발해와 당나라 간의 대전쟁”
II. 칭기스 칸의 전설적 선조 “키얀”의 “아르카나 쿤” 전설
1. 칭기스 칸의 전설적인 선조 “키얀Qiyan”은 누구인가?
2. 키얀의 일행 전설적인 “네쿠즈Nekuz”는 누구인가?
3. 네쿠즈의 후손 “다를라킨Durlikin” 종족은 ‘도리행’의 후손 종족
4. 키얀의 아버지 “일 한Il Han”은 누구인가?
5. “일 한”의 아버지 “팅기즈 칸”은 ‘진국왕’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
6. “팅기즈 칸”, 곧 ‘진국왕’ 대조영의 자리에 기록된 아우 야발
7. “칭기스 칸”의 어원과 참뜻은 “팅기즈 칸” ‘진국왕’
III. 전설적 “타타르모골의 대전쟁”은 ‘발해당나라 전쟁’
1. “다를라킨”은 ‘도리행’임을 보여주는 발해당나라 전쟁
2. 당에 귀부한 흑수말갈을 친 발해(모골)와 “파리둔의 아들 투르” 곧 ‘대문예大門藝’의 당나라 망명
3. 발해(모골)와 당현종(키르기르 칸) 사이의 대전쟁의 배경 흑수말갈(모바라운 나흐르) 이야기
4. 발해당나라 전쟁 곧 “모골-타타르 전쟁”의 발발과 그 경과
5. 발해당 전쟁의 진정한 결과는 불행히도 발해(모골)의 참혹한 패배
6. “타타르모골 종족의 대전쟁”과 ‘발해당나라 전쟁’은 같은 전쟁
IV. “타타르의 8대 칸”과 “수윤지 칸”의 정체
1. 중앙아시아 “타타르인Tatar”에 관한 상식적 관점
2. “타타르” 족칭의 어원에 관한 서방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
3. “타타르” 족칭의 어원은 고구려어 ‘대대로’
4. “모골말갈”과 같은 가문 출신인 “타타르대대로” 가문
5. “타타르 8칸”과 “모골 9칸”의 전설에서 본 타타르(대대로) 가문의 계보 이야기
6. ‘대대로’가 투르크 계 “타타르” 족칭으로 쓰이게 된 역사적 계기
7. “타타르 8칸”들은 ‘대대로 개금’ 가문의 ‘8명의 대대로’
9. “말갈”, “말갈”, “말갈칠부”와 “구려”와 “구려”, 여러 구려를 합친 “커구려”
10. ‘대대로타타르와 말갈모골 가문 사이 전쟁’의 애초의 원인은 ‘대대로(대대로)’ 가문의 고향으로의 환국
V. 전설적인 투르크와 모골 종족의 고향 “아르가나 쿤”은 우리 땅 “압록강의 군”
1. 주류설이 말하는 “에르게네 쿤Ergene Qu’n”은 아무르강 상류 “아르군 강”이라는 관점의 문제점
2. “에르게네 쿤”이 투바공화국 “탄누 우량하이”라는 소수설과 문제점
3. “아르카나 쿤” 소리로 기록된 발해서경 ‘압록군(鴨軍)’
4. “발해서경 압록군”은 발해의 전시 및평시의 요충지
5. 압록강군은 키얀의 조부 야발의 “반안군왕” 영지
6. 압록강군(鴨江郡)에 있는 “부르(沸流)테(大)치노(氏郞)”의 관향
7. 또 다시 드러나는 오윤달라이와 조릭투예프의 주류설의 문제점
8. 키얀 일행이 들어간 “아르가나 쿤 산”은 ‘압록산’
9. 사국사가 말하는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 한 폭의 산”은바로 ‘하늘을 찌르는 재’, 곧 충천령
10. 아르가나 쿤 주변의 “알란 고와”의 관향 함흥의 ‘아란(阿)’
11. 도리행, 곧 ‘도을한 봉화대’가 있는 땅
12. 압록강군의 압록산, 적유령에 살았던 집사의 “우량카트” 곧 ‘오랑케’ 종족
13. “아르가나 쿤”을 보여주는 후대의 키얀과 타카즈의 친족의 근거지들
14. 아르가나 쿤은 ‘압록강나의 군’이라는 결론
VI. 결 론
1.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
2. 오직 한 사람의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
3. 현대 세계를 창조한 칭기스 칸 일가와 우리의 미래
29개 국어에 통달한 언어의 천재, 천재 사학자가 혼자 29개 언어로 된
사서들을 전부 독파한 후 각 사서들의 내용을 교차 체크하고
각 언어의 변천과정을 면밀히 추적한 결과 밝혀낸 놀라운 비밀;
칭기스 칸은 고구려 발해
왕가의 후손이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몽골인” 출신으로 “세계정복자”라고 알고 있는 칭기스 칸의 선조는 “고구려(高句麗) 주몽(朱蒙)의 후손 발해(渤海) 왕족이었다”는 내용의 놀라운 책이 나왔다.
지금부터 약 800년 전에 칭기스 칸(1162?~1227년)의 선조와 그 자신의 행적에 관해 기록한 사서 《몽골비사(元朝秘史)》가 있다. 이 사서는 그 첫줄에서 “칭기스칸의 뿌리는 높은 하늘이 점지하여 태어난 부르테 치노(蒼狼, 푸른 이리)”라고 했다.
그런데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외무부 유엔국 유네스코담당 자문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체첸전쟁 현장주재관을 거쳐, 미국에서 법학박사(JD)를 딴 후, 미국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했고, 귀국 후에는 고구려 발해학회 회원으로도 참가한 저자는 한·몽 수교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몽골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독학 교재로 쓴 《몽골비사(元朝秘史)》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부터 한 가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사서의 제목은 왜 그저 《몽골사》나 《칭기스칸사》가 아니라, 《-비밀스러운(숨겨진)=秘-》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저자는 그후 내내 자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 물음을 끈질기게 추궁했다. 그 결과 “부르테 치노”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오늘날 몽골족의 선조라고 하는 그 전설적 “푸른 이리”와는 전혀 다른 말로, 그것은 고구려-말갈어 “부여대씨랑(夫餘-大氏-郞, *부려-테치-농)”이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치노(氏郞, 씨랑)”라는 말은 오늘날 씨족의 “종친회장” 격으로 고구려 시대에 쓰이기 시작하여 원(元, 1271~1368년)나라, 북원(北元, 1368~1388년)과 그 뒤에도 몽골어로 “지농”이라는 말로 계승되었다.
이 때문에 본격적 연구를 한 결과,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칸의 뿌리가 사실은 1045년에 쓰인 《무경총요(武經總要)》가 “부여별류(夫餘別類)”로 기록한 발해고왕(渤海高王) 대조영(大祚榮) 가계의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이 발해 초대왕이자 진국왕(震國王)인 대조영(大祚榮)의 가계 출신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칭기스 칸은 그 아우 반안군왕(盤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의 제 19대손임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저자는 또 학자들이 “철인”, “(쇠를 다루는)대장장이” 등으로 잘못 풀이해 온 “칭기스 칸”의 어릴 적 이름 “테무진(鐵木眞)”은 사실은 “테무진” 자신이 “부여별종(夫餘別種)” 가계인 주몽(朱蒙)의 손자로 고구려 3대왕이 된 “무쿠리(無恤, 무휼)”, 다른 이름으로 “마크리(莫來, 막래)”였던 “대무신(大武神)” 왕(王), 달리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의 후손임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밝혔다.
테무진의 왕호인 “칭기스 칸(Chinghiz Khan/Ghenghiz Khan)”을 라시드 웃딘(Rashid alDin)이 1310년 경에 쓴 《집사(集史)》와, 지난 세기 미국학자 해롤드 램(Harold Lamb) 등은 “왕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잘못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왕호가 사실은 대조영과 그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쓴 고구려-말갈어(靺鞨語) “진국왕(震國王)”의 투르크어 식 소리 “팅기즈 칸(Tinggiz Khan)”이 바뀐 말임을 밝힌다. 칭기스 칸의 손자로 원(元)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을 1266년경 만났다고 전하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년)의 《동방견문록》에서, 폴로는 칭기스 칸의 이름을 25번이나 언급하면서 24번이나 그의 이름을 “칭기 칸(Chinghi Kane)”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바로 “진국왕(震國王)”의 당시 소리 “친구이 칸(Chinghui Kan)”과 같다는 사실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1330년에 함둘라 카즈비니(Hamdallah Qazvini)가 쓴 《선별된 역사(Tarikh-i Gojide)》는 테무진이 나기 전까지는 그 이름조차도 없던 땅을 테무진이 통일하고는 자신이 창출한 나라 이름을 “몽골”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일부 몽골학자들은 이것이 송(宋)나라 팽대아(彭大雅)가 칭기스 칸 시대의 몽골을 방문하고 1237년에 쓴 《흑달사략(黑事略)》에 근거하여 “멍거(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몽골”은 사실은 칭기스 칸의 선조의 나라인 “말갈(靺鞨, 勿吉)”, 곧 조선시대의 학자가 “마읍(馬邑)”이라고도 본 “말[키우는] 고을(馬忽)”에 어원을 둔 말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구려(高句麗)는 수도 평양성(平壤城) 등 오늘날 성시(城市)를 말하는 여러 개의 “고을=구려(句麗)”와 “일곱 개의 말 골(말갈)”로 이루어져 커진(高) 나라 “커구려(高句麗)”였기 때문이다.
결국 테무진은 자신의 이름 “테무진/대무신(大武神)”과 왕호 “칭기스 칸/진국왕(震國王)”, 그리고 자기 나라 이름을 “몽골 / 몰골 / 말골(靺鞨)”이라고 붙임으로써 자신이 고구려(高句麗) 왕족의 후손이자, 발해(渤海) “진국왕(震國王)”의 후손이요, “말갈국왕”, 곧 새로운 “발해국왕”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결론을 얻는 과정에서 저자는 “세계정복자” 칭기스칸 일가의 후손 “칸(황제)”들이 자신들의 조상에 관해 세계 곳곳에서 남긴 《황금의 책(Altan Daftar)》에 해당하는 책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칭기스 칸의 뿌리가 바로 고구려(高句麗) 시조 주몽(朱蒙)의 후손인 발해 왕족 대조영 가문임을 밝힌다. 《황금의 책》은 약 705년 전 일칸국 황제 가잔 칸의 명으로 《집사》를 쓴 라시드 웃딘이 “칸(황제)의 재고에는 항상 대 아미르들이 지키고 있어서... 황족이 아닌 외부인들은 절대로 보도록 허락되지 않는 책이 한 권 있다”고 한 전설적인 책이다. 이 《황금의 책》은 왜 철저하게 외부인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칸(황제) 가문의 “족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신·구 당서》, 《삼국사기》, 《고려사》 등 한문으로 된 고대 동방사서는 물론, 《집사》, 《사국사》, 《투르크의 계보》, 《칭기스의 서》 등 페르시아, 중세 투르크어, 타타르어로 된 서방 사서, 《몽골비사》, 《셀렝게 부랴트종족의 역사》 등 중세 몽골어와 부랴트어 등으로 쓰인 사서를 중심으로 최대 무려 29개 국어로 쓰인 사서들과 사료들을 서로 비교, 대조하고, 그 텍스트를 해독하여, 숨겨진 우리 역사의 비밀을 하나하나 밝혔다.
발해 멸망에 관해서는 거란의 정복설, 백두산 폭발에 의한 멸망설 등이 있다. 그러나 그 뒤 발해인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관해서는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발해 왕가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건의 고려와 금나라, 또 오늘날 우리가 “몽골제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 제국은 오늘날 몽골이라고 부르는 땅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물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의 반대편 홍해의 아라비아 반도, 러시아, 동구 및 오스트리아, 독일 변경까지 뻗어나간 방대한 세계제국이었다. 한 마디로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서구 몇 나라만 뺀 당시의 “전세계”이다. 그렇다면 지난 1995년 21세기의 새로운 “밀레니엄(천년)”의 도래를 앞두고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가 20세기까지 지난 천 년간의 역사 속에서 최고의 인물로 선정한 사람이 바로 칭기스칸이었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칭기스 칸이 탄생한 지 850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 누구도 그 위대한 인물의 “뿌리”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국내외 저명한 사학자, 교수, 전문가들 가운데 그 누구도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던 고대와 중세, 근세에 걸쳐 기록된 동·서방의 여러 가지 어렵고도 다양한 언어로 된 사서들을 해독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천재적인 추론과 법학도 다운 논리정연한 추리를 통해 칭기스 칸의 뿌리를 꼼꼼하게 한 세대 한 세대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이 《고구려-발해인 칭기스칸》이다. 이 책은 668년 고구려가 망한 이래 지난 1300년간의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할” 놀랍고도 치밀한 연구 결과물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고구려는 우리요, 말갈은 우리와 관계없는 퉁구스 종족이다” 고 보는 일부 우리 국사학자들과 러시아, 중국 등 주류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저자는 놀랍게도 “고구려와 말갈은 다 같이 고구려 왕족으로 주몽의 후예”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이 글은 이러한 새 학설을 애써 무시하려는 국내외 전문가, 교수들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하나, 아니면 발해왕조의 민족적 성격에 관해 그들 사이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저자는 사라진 고구려가 발해-고려-금나라-원나라-청나라로 이어졌다는 엄청난 역사적 진실도 밝힌다. 저자는 《집사》에 “모든 콩그라트 종족의 시조”로 기록된 “황금항아리(Bastu-i jarrin)”가 몽골인들이 금(金)나라 황제를 부르는 “황금의 칸(Altan Khan)”이며, 그가 바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나오는 “금행(金幸, *황금의 칸)”임을 밝힌다. “황금항아리”는 칭기스 칸의 부인 부르테 우진(Bu''te Kujin)의 가계로 《집사》에 기록된 콩그라트(Qongrat) 종족, 또 원(元)나라 제2황후들의 가계인 예키라스(Yikiras) 종족, 그리고 칭기스 칸의 직계 선조 가문인 코를라스(Korulas) 종족 등 콩그라트 주요 3지파의 공통선조이다.
또 한 가지, 우리 일부 학자들은 금나라와 청나라 황실이 신라왕족 김씨(金氏)의 후손이라고 잘못 보아왔다. 이와는 달리, 《지봉유설(芝峰類說, 1614년)》은 “후금(後金)”, 곧 청(淸)나라의 태조인 아이신교로누르하치(愛新覺羅努爾哈赤建)의 가문이 “전조(前朝)”, 곧 우리 고려(高麗)의 “왕씨(王氏)의 후손(裔)”이라고 했다. 신라 김씨가 아니라 고려 왕건의 후손이 청나라 황실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침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명으로 지은 《만주원류고, 1778년》에서 청황실은 스스로가 발해 말갈의 대씨(大氏)와 금나라 왕가 “왕씨(王氏)”인 완안씨(完顔氏)의 후손이라고 자처한다. 저자에 따르면, 두 기록은 결국 같은 말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저자는 “고려(高麗) 공비(?妃)의 아들 영락(永樂) 황제의 명(明)나라를 빼더라도,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는 놀랍게도 고려(高麗), 금(金), 원(元), 청(淸)나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唐), 송(宋) 이래 이 두 왕조를 제외하고 지난 1000년간의 이른바 “중국왕조”들 모두가 우리 “조선민족의 왕조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실감나게 하는 연구결과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2004년의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충격적 사건 이래, 우리 정부는 국가적 정책으로 엄청난 재원을 동원하여, 수백 명의 직원과 연구원을 채용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처해 왔다. 그러나 그 연구결과는 대개 고구려 발해가 중원의 역사적 왕조와는 별개의 독립된 국가라는 정도의 외곽만 두드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한 외로운 연구가의 분투로 이를 둘러싼 한판 승부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제 “역(逆)동북공정” 또는 “대륙공정”이라는 열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여튼 역사의 진실게임의 결과는 이제 명백해 보인다.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통해 오늘날 형체도 없는 “코리안 웨이브(Korean Waves)”를 자랑삼아 떠들면서도 방향 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나침반 없이 우왕좌왕하는 우리가 잊어버린 우리 역사의 진실을 다시 찾고, 이를 돌아봄으로써 장차 세계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에 관해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도록 우리에게 촉구한다. 과연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
▣ 작가 소개
저자 : 전원철
저자 전원철은 중앙아시아 및 북방민족 사학가 / 고구려 발해학회 회원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아이오와대학교 로스쿨 법학박사(JD) 학위 취득, 뉴욕주립대학교 법학박사후과정(LLM)을 밟고, 미국로펌(변호사)에서 근무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체첸전쟁 현장주재관, 외무부 유엔국인권사회과 유네스코담당 자문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근무, 공군학사장교를 역임했다. 저서로는『고구려-발해족장(渤海族帳)의 칭기스 칸(2011.7.)』,『고구려-발해왕족의 후손 칭기스 칸(2015.5.)』등이 있다.
▣ 주요 목차
/ 서 문 /
1. 칭기스 칸의 선조를 적은 황금의 책과의 만남
2. 칭기스 칸의 뿌리 이야기, 이 책의 줄거리
3. 말탄 야만 유목민의 세계 정복설이라는 기존의 관점에 관해 생각해 볼 문제
4. 권두에 쓰는 저자의 후기
I. 서 론
1. ‘칭기스 칸의 뿌리’에 관한 9가지 다른 설 개관
2. 칭기스 칸의 뿌리에 관한 집사의 에르게네 쿤 전설
3. 칭기스 칸의 선조에 관한 사국사“타타르와 모골 종족의 대전쟁”
4. 사국사의 “타타르모골의 대전쟁”은 “발해와 당나라 간의 대전쟁”
II. 칭기스 칸의 전설적 선조 “키얀”의 “아르카나 쿤” 전설
1. 칭기스 칸의 전설적인 선조 “키얀Qiyan”은 누구인가?
2. 키얀의 일행 전설적인 “네쿠즈Nekuz”는 누구인가?
3. 네쿠즈의 후손 “다를라킨Durlikin” 종족은 ‘도리행’의 후손 종족
4. 키얀의 아버지 “일 한Il Han”은 누구인가?
5. “일 한”의 아버지 “팅기즈 칸”은 ‘진국왕’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
6. “팅기즈 칸”, 곧 ‘진국왕’ 대조영의 자리에 기록된 아우 야발
7. “칭기스 칸”의 어원과 참뜻은 “팅기즈 칸” ‘진국왕’
III. 전설적 “타타르모골의 대전쟁”은 ‘발해당나라 전쟁’
1. “다를라킨”은 ‘도리행’임을 보여주는 발해당나라 전쟁
2. 당에 귀부한 흑수말갈을 친 발해(모골)와 “파리둔의 아들 투르” 곧 ‘대문예大門藝’의 당나라 망명
3. 발해(모골)와 당현종(키르기르 칸) 사이의 대전쟁의 배경 흑수말갈(모바라운 나흐르) 이야기
4. 발해당나라 전쟁 곧 “모골-타타르 전쟁”의 발발과 그 경과
5. 발해당 전쟁의 진정한 결과는 불행히도 발해(모골)의 참혹한 패배
6. “타타르모골 종족의 대전쟁”과 ‘발해당나라 전쟁’은 같은 전쟁
IV. “타타르의 8대 칸”과 “수윤지 칸”의 정체
1. 중앙아시아 “타타르인Tatar”에 관한 상식적 관점
2. “타타르” 족칭의 어원에 관한 서방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
3. “타타르” 족칭의 어원은 고구려어 ‘대대로’
4. “모골말갈”과 같은 가문 출신인 “타타르대대로” 가문
5. “타타르 8칸”과 “모골 9칸”의 전설에서 본 타타르(대대로) 가문의 계보 이야기
6. ‘대대로’가 투르크 계 “타타르” 족칭으로 쓰이게 된 역사적 계기
7. “타타르 8칸”들은 ‘대대로 개금’ 가문의 ‘8명의 대대로’
9. “말갈”, “말갈”, “말갈칠부”와 “구려”와 “구려”, 여러 구려를 합친 “커구려”
10. ‘대대로타타르와 말갈모골 가문 사이 전쟁’의 애초의 원인은 ‘대대로(대대로)’ 가문의 고향으로의 환국
V. 전설적인 투르크와 모골 종족의 고향 “아르가나 쿤”은 우리 땅 “압록강의 군”
1. 주류설이 말하는 “에르게네 쿤Ergene Qu’n”은 아무르강 상류 “아르군 강”이라는 관점의 문제점
2. “에르게네 쿤”이 투바공화국 “탄누 우량하이”라는 소수설과 문제점
3. “아르카나 쿤” 소리로 기록된 발해서경 ‘압록군(鴨軍)’
4. “발해서경 압록군”은 발해의 전시 및평시의 요충지
5. 압록강군은 키얀의 조부 야발의 “반안군왕” 영지
6. 압록강군(鴨江郡)에 있는 “부르(沸流)테(大)치노(氏郞)”의 관향
7. 또 다시 드러나는 오윤달라이와 조릭투예프의 주류설의 문제점
8. 키얀 일행이 들어간 “아르가나 쿤 산”은 ‘압록산’
9. 사국사가 말하는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 한 폭의 산”은바로 ‘하늘을 찌르는 재’, 곧 충천령
10. 아르가나 쿤 주변의 “알란 고와”의 관향 함흥의 ‘아란(阿)’
11. 도리행, 곧 ‘도을한 봉화대’가 있는 땅
12. 압록강군의 압록산, 적유령에 살았던 집사의 “우량카트” 곧 ‘오랑케’ 종족
13. “아르가나 쿤”을 보여주는 후대의 키얀과 타카즈의 친족의 근거지들
14. 아르가나 쿤은 ‘압록강나의 군’이라는 결론
VI. 결 론
1.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
2. 오직 한 사람의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
3. 현대 세계를 창조한 칭기스 칸 일가와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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