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동북아시아-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른 진정한 동아시아사
지금껏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동북아시아’의 다른 말이었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동북아시아’라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부까지 다루며 동아시아의 지리적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동아시아라는 공통의 공간이 만들어 낸 세계성, 그리고 각자의 자연환경과 정치 문화가 빚어낸 고유한 지역성을 조화시킨 이제껏 본 적 없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처음으로 만난다.
1. 주제사와 통사의 결합으로 ‘동아시아사 읽기’의 전범을 제시하다
2007년, 고등학교에 ‘동아시아사’ 교육 과정이 새로 생겼다. ‘동아시아사’라고 일단 이름은 붙였지만 실상은 ‘동북아시아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중일 3국에 베트남을 더한 정도의 역사 교과서는 과목 개설의 취지에 아직 공감하지 못한 교사들에게 신설 과목이라는 부담만 한가득 안겨줬다.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수능에서 동아시아사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며 흥미를 보였으나 주제별 접근 방식은 어렵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동아시아사’를 제대로 다뤄 보자는 열망을 가지고 고등학교 역사 교사들과 대학에서 각각 한국사·일본사·중국사·베트남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모여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동아시아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북쪽의 몽골부터 남쪽의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까지, 동쪽으로는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서쪽의 미얀마와 중국 서부까지를 동아시아로 정의한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는 17개국의 광범하고 방대한 역사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주제별 접근 방식에 각국의 통사를 결합했다. 역사 초보자에게 동아시아사가 어려웠던 이유는 각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낯선 역사를 주제별로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동아시아를 지역권(동북아시아/중앙아시아사/동남아시아)으로 크게 나눈 다음, 다시 주제(국가 형성/인구 이동/경제 교류/종교와 사상의 전파 등)에 따라 각 지역(몽골 초원 지대/황허 유역/한반도/일본 열도/오아시스 도시/동남아 대륙부/동남아 도서부 등)을 쪼개고 합쳐 통사와 주제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집필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한 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만남이었다. 동아시아라는 차원에서 한반도 분단을 본다면, 냉전 체제라는 강 대 강 구도의 부산물만이 아니라 중국과 타이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등과 더불어 문제를 바라보게 되어 더욱 깊이 있는 고찰이 가능해진다. 1997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한국에까지 확산되자, 동남아시아 10개국이 가입한 아세안(ASEAN)과 한중일 3국은 ‘아세안+3’이라는 협력 기구를 만들어 이때부터 지역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기업의 현지화 전략 등으로 동아시아 인구가 활발하게 오가며 한국 역시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추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아직 동아시아라는 말조차 낯선 우리에게 동아시아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차곡차곡 쌓여 온 시간의 역사를 보여 주며 동아시아 이해의 초석을 마련해 줄 것이다.
2. 역사의 무대를 넓혀 세계성과 지역성을 조화시키다
7세기 동북아시아 일대를 장악한 당은 왜 나당 전쟁에서 신라에 패했을까? 한반도에서 일어난 나당 전쟁은 서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티베트 고원에까지 전운을 몰고 왔다. 당의 군사력이 한반도에 집중된 사이 티베트 고원에서 여러 부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한반도의 군대를 바로 이동시키지 못한 당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토번(오늘날의 티베트)에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의 대군이 뒤늦게 티베트 지역으로 향한 사이 이번에는 신라가 옛 백제 지역에 설치된 웅진도독부를 공격하여 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한국사에서 동북아시아사 그리고 동아시아사로, 지역사의 확장은 이렇게 익숙한 역사적 사건에서도 ‘숨은 장면’을 찾아낸다. 19세기 이전 한국사와 동북아시아사를 읽을 때 중국 문화권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특정 장면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돌려 동아시아로 무대를 확장하면,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서아시아와 유럽 세계까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더 커진 무대에는 이슬람 상인, 힌두교의 시바 신, 오스만 제국의 무기공, 몽골 제국에 파견된 교황의 사절단 등 다양한 배우가 등장해 동아시아라는 자기장 안에서 서로가 어떤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드러낸다.
〈1부: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은 동아시아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산발적으로 교류가 시작되는 과정이다. 저마다 중앙 집권화 정도가 달랐지만 오아시스 길과 바닷길을 따라 사람들과 불교, 유교, 율령 등이 오가며 동아시아 국가들은 체제를 정비해 나간다. 〈2부: 연결되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이 등장하여 동서 교역로가 연결되고, 중국의 책봉-조공 무역이 동남아시아의 중계 무역을 매개로 서아시아, 유럽 무역권과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16~17세기 동남아시아가 누린 ‘교역의 시대’와 동북아시아를 휩쓴 ‘전쟁의 시대’는 관계사의 정수를 보여 준다.
독자들이 광활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책 속에 38개의 지도를 넣었다. 교역의 내용과 방향, 국가 간의 대립 형세, 종교의 확산, 전쟁의 진행 과정 등을 지도에 담았다. 더불어 해당 시기 동아시아 각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반영하여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3. 공존의 바다가 둘러싼 동남아시아의 고유한 역사에 주목하다
동남아시아와 급속도로 교류가 늘어나고 있지만 감정적 거리는 더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를 제대로 알 수 있는 텍스트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동북아시아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쌓아 온 동남아시아의 고유한 특징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인구 밀도가 낮았던 동남아시아에서는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루기보다는 군장 사회와 소국이 곳곳에 산재하면서 강과 바다를 이용해 일찍부터 외부와의 교역에 집중했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해금 정책을 반복한 동북아시아와 달리 동남아시아의 바다는 교역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 있었다. 그 덕분에 인도와 서아시아의 이슬람 상인,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일본 상인, 유럽의 상인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갔고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힌두 양식으로 지어진 드막의 모스크, 실론(오늘날의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소승 불교의 사원들, 동남아시아의 토착신인 나가 위에서 참선하는 부처상, 중국인 마을과 일본인 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가 중계 무역을 통해 얻은 부는 항구 도시 국가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항구 도시의 부를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 중 대륙부의 아유타야 왕국(오늘날의 타이)은 상당한 번영을 누렸다. 17세기 아유타야 왕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절단은 일본제 고급 실내복, 중국과 이란에서 만든 고급 비단, 프랑스산 포도주, 영국산 맥주를 대접받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서부에서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무슬림 상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왕국들이 강세를 보였다. 수마트라 섬 북부의 사무드라-파사이 왕국은 같은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제국에 후추를 수출하고 이들로부터 대포를 수입해 군사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베트남 남부의 참파 왕국, 타이 북부의 란나 왕국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다가 17~18세기에 멸망했다. 각각 베트남 북부, 타이 남부의 왕조 국가와 다른 흐름을 갖고 있었기에 최근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들을 현대의 영토 국가 시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현지의 연구 경향에 발맞춰 당대의 눈으로 동남아시아 왕국들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려 했다.
4. 동아시아 공간의 숨겨진 의미와 역사를 누빈 인물을 새롭게 발굴하다
둔황 모가오 굴의 먼지더미에서 발견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처럼 역사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광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느라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공간과 인물에 얽힌 사연들을 각 장의 마무리에서 〈동아시아 인물찾기〉와 〈동아시아 역사공간〉이라는 칼럼으로 다뤘다.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는 일본의 오키나와 섬,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은 단순히 자연환경이 빼어난 관광지만은 아니다. 관광지 속 ‘볼거리’는 류큐 왕국과 란쌍 왕국이라는 사라진 왕국들의 흔적이다. 류큐 왕국은 명·청과 동남아시아 무역권을 이어 주는 중계 무역의 중심지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중국식 복식을 한 류큐 왕국의 사절단(389쪽 그림)은 당대의 에도 사람들에게도 큰 구경거리였다. ‘100만 마리 코끼리’라는 뜻의 란쌍 왕국은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정복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크메르 왕국에서 바친 ‘왕의 불상(프라방)’을 상징으로 삼아 부처의 가호로 나라를 수호하고자 했다.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고선지 장군도 동아시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이다. 고구려 유민 출신인 그가 당에서 출세할 수 있었던 길은 오직 무장이 되는 것이었다. 영국의 탐험가 오렐 스타인은 파미르 고원을 넘어 토번을 기습한 그의 작전에 대해 “나폴레옹의 알프스 돌파보다 성공적이었다. 유럽의 어느 사령관보다 전략과 통솔력이 탁월했다.”라며 극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중상모략에 의해 사형당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명과 후금, 조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광해군을 골치 아프게 했던 명의 장수 모문룡도 흥미롭다. 말로만 랴오둥 수복을 표방하며 조선의 가도를 차지하고 앉아 평안도 일대를 약탈한 이 희대의 악당은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에 대한 갑질이 하늘을 찌르다가 진상을 파악한 명 조정에 의해 랴오둥으로 소환된 뒤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작가 소개
신주백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 《역사화해와 동아시아형 미래 만들기》, 《미래를 여는 역사》(공저), 《동아시아사》 교과서(공저, 교학사) 등이 있다.
김형열
동의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난징대학 역사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도시화와 사회갈등의 역사》(공저), 《동아시아사의 인물과 라이벌》(공저), 《중국 근현대 주요인물 연구》(공저) 등이 있다.
박삼헌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및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소장. 일본역사문화학회 회장.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베대학 문화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문화콘텐츠잡지 《Boon》, 타이완문화콘텐츠잡지 《Plum Boon》을 기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체제》,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1,2(공저) 등이 있다.
오민영
세화고등학교 역사 교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연수부)과 내당서사, 동방의숙에서 유교 경전을 배웠다.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동양과학사》 등이 있다.
윤대영
서강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7대학 LCAO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마주보는 두 역사, 인천과 하이 퐁》, 《1862~1945, 한국과 베트남의 조우》 등이 있다.
한기모
가재울고등학교 역사 교사.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마주보는 한일사》1(공저), 《동아시아사》 교과서(공저, 교학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_ 동아시아의 자연환경과 선사 문화
1부_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
1장 국가의 성립과 발전
1. 황허 유역과 중앙아시아에서 국가가 성립하다
2. 만주·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국가가 성립하다
3. 동북아시아가 정치적으로 연결되다
4. 동남아시아에서 국가가 성립하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정략에 의해 이역만리로 보내진 공주들
- [동아시아 역사공간] 중국의 울타리, 만리장성
2장 인구 이동과 문화 교류
1. 3~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다
2. 오아시스 길을 따라 동아시아 문화가 흘러가다
3. 바닷길을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고선지 장군
- [동아시아 역사공간]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던 오아시스 도시, 둔황
3장 왕권을 떠받치는 두 힘, 율령과 종교
1. 군주를 부모처럼 섬기라고 가르친 유교
2. 율령으로 왕권을 옹호하고 백성을 다스리다
3. 중생의 해탈을 추구한 대승 불교
- [동아시아 인물찾기] 불교의 성인이 된 왕자, 쇼토쿠 태자
- [동아시아 역사공간] 사일렌드라 왕조의 영광을 간직한 인도네시아의 불교 사원들
2부 연결되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1장 세계 제국 몽골과 동아시아
1. 유목 국가가 ‘중원’을 차지하다
2. 몽골족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다
3. 몽골 제국과 주변 세계가 영향을 주고받다
4. 몽골 제국이 문화 교류의 통로가 되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라시드웃딘, 최초의 세계사 《집사》를 쓰다
- [동아시아 역사공간] 중국의 왕도 변천사
2장 동아시아의 새로운 지배세력과 통치이념
1. 동아시아에서는 어떻게 관리를 뽑았을까
2. 사대부와 무사가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하다
3. 상좌 불교와 이슬람교가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등장하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유학자가 된 무사, 아라이 하쿠세키
- [동아시아 역사공간] 100만 마리 코끼리의 나라, 란쌍 왕국
3장 전쟁과 교역의 시대, 16~17세기 동아시아
1.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새롭게 관계를 맺다
2. 전쟁으로 동북아시아 정치가 요동치다
3. 교역의 확대로 동남아시아 정치가 바뀌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전쟁을 초래한 갑질의 달인, 모문룡
- [동아시아 역사공간] 교역의 시대, 브루나이 왕국과 필리핀 제도
4장 동아시아의 경제 교류와 기술 교류
1. 동북아시아에서 경제 교류가 전개되다
2. 동남아시아에서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다
3. 동남아시아에서 군사 기술 교류가 활발해지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타이완 독립의 상징, 정성공
- [동아시아 역사공간] 중계 무역이 빚어낸 흥망사, 류큐 왕국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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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른 진정한 동아시아사
지금껏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동북아시아’의 다른 말이었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동북아시아’라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부까지 다루며 동아시아의 지리적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동아시아라는 공통의 공간이 만들어 낸 세계성, 그리고 각자의 자연환경과 정치 문화가 빚어낸 고유한 지역성을 조화시킨 이제껏 본 적 없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처음으로 만난다.
1. 주제사와 통사의 결합으로 ‘동아시아사 읽기’의 전범을 제시하다
2007년, 고등학교에 ‘동아시아사’ 교육 과정이 새로 생겼다. ‘동아시아사’라고 일단 이름은 붙였지만 실상은 ‘동북아시아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중일 3국에 베트남을 더한 정도의 역사 교과서는 과목 개설의 취지에 아직 공감하지 못한 교사들에게 신설 과목이라는 부담만 한가득 안겨줬다.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수능에서 동아시아사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며 흥미를 보였으나 주제별 접근 방식은 어렵다는 평이 많았다. 이에 ‘동아시아사’를 제대로 다뤄 보자는 열망을 가지고 고등학교 역사 교사들과 대학에서 각각 한국사·일본사·중국사·베트남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모여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동아시아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북쪽의 몽골부터 남쪽의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까지, 동쪽으로는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서쪽의 미얀마와 중국 서부까지를 동아시아로 정의한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는 17개국의 광범하고 방대한 역사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주제별 접근 방식에 각국의 통사를 결합했다. 역사 초보자에게 동아시아사가 어려웠던 이유는 각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낯선 역사를 주제별로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동아시아를 지역권(동북아시아/중앙아시아사/동남아시아)으로 크게 나눈 다음, 다시 주제(국가 형성/인구 이동/경제 교류/종교와 사상의 전파 등)에 따라 각 지역(몽골 초원 지대/황허 유역/한반도/일본 열도/오아시스 도시/동남아 대륙부/동남아 도서부 등)을 쪼개고 합쳐 통사와 주제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
집필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한 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만남이었다. 동아시아라는 차원에서 한반도 분단을 본다면, 냉전 체제라는 강 대 강 구도의 부산물만이 아니라 중국과 타이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등과 더불어 문제를 바라보게 되어 더욱 깊이 있는 고찰이 가능해진다. 1997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한국에까지 확산되자, 동남아시아 10개국이 가입한 아세안(ASEAN)과 한중일 3국은 ‘아세안+3’이라는 협력 기구를 만들어 이때부터 지역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기업의 현지화 전략 등으로 동아시아 인구가 활발하게 오가며 한국 역시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추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아직 동아시아라는 말조차 낯선 우리에게 동아시아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차곡차곡 쌓여 온 시간의 역사를 보여 주며 동아시아 이해의 초석을 마련해 줄 것이다.
2. 역사의 무대를 넓혀 세계성과 지역성을 조화시키다
7세기 동북아시아 일대를 장악한 당은 왜 나당 전쟁에서 신라에 패했을까? 한반도에서 일어난 나당 전쟁은 서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티베트 고원에까지 전운을 몰고 왔다. 당의 군사력이 한반도에 집중된 사이 티베트 고원에서 여러 부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한반도의 군대를 바로 이동시키지 못한 당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토번(오늘날의 티베트)에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의 대군이 뒤늦게 티베트 지역으로 향한 사이 이번에는 신라가 옛 백제 지역에 설치된 웅진도독부를 공격하여 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한국사에서 동북아시아사 그리고 동아시아사로, 지역사의 확장은 이렇게 익숙한 역사적 사건에서도 ‘숨은 장면’을 찾아낸다. 19세기 이전 한국사와 동북아시아사를 읽을 때 중국 문화권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특정 장면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돌려 동아시아로 무대를 확장하면,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서아시아와 유럽 세계까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더 커진 무대에는 이슬람 상인, 힌두교의 시바 신, 오스만 제국의 무기공, 몽골 제국에 파견된 교황의 사절단 등 다양한 배우가 등장해 동아시아라는 자기장 안에서 서로가 어떤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드러낸다.
〈1부: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은 동아시아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산발적으로 교류가 시작되는 과정이다. 저마다 중앙 집권화 정도가 달랐지만 오아시스 길과 바닷길을 따라 사람들과 불교, 유교, 율령 등이 오가며 동아시아 국가들은 체제를 정비해 나간다. 〈2부: 연결되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몽골 제국이 등장하여 동서 교역로가 연결되고, 중국의 책봉-조공 무역이 동남아시아의 중계 무역을 매개로 서아시아, 유럽 무역권과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16~17세기 동남아시아가 누린 ‘교역의 시대’와 동북아시아를 휩쓴 ‘전쟁의 시대’는 관계사의 정수를 보여 준다.
독자들이 광활한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책 속에 38개의 지도를 넣었다. 교역의 내용과 방향, 국가 간의 대립 형세, 종교의 확산, 전쟁의 진행 과정 등을 지도에 담았다. 더불어 해당 시기 동아시아 각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반영하여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3. 공존의 바다가 둘러싼 동남아시아의 고유한 역사에 주목하다
동남아시아와 급속도로 교류가 늘어나고 있지만 감정적 거리는 더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를 제대로 알 수 있는 텍스트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동북아시아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쌓아 온 동남아시아의 고유한 특징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인구 밀도가 낮았던 동남아시아에서는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루기보다는 군장 사회와 소국이 곳곳에 산재하면서 강과 바다를 이용해 일찍부터 외부와의 교역에 집중했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해금 정책을 반복한 동북아시아와 달리 동남아시아의 바다는 교역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 있었다. 그 덕분에 인도와 서아시아의 이슬람 상인,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일본 상인, 유럽의 상인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갔고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힌두 양식으로 지어진 드막의 모스크, 실론(오늘날의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소승 불교의 사원들, 동남아시아의 토착신인 나가 위에서 참선하는 부처상, 중국인 마을과 일본인 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가 중계 무역을 통해 얻은 부는 항구 도시 국가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항구 도시의 부를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 중 대륙부의 아유타야 왕국(오늘날의 타이)은 상당한 번영을 누렸다. 17세기 아유타야 왕국을 방문한 프랑스 사절단은 일본제 고급 실내복, 중국과 이란에서 만든 고급 비단, 프랑스산 포도주, 영국산 맥주를 대접받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서부에서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무슬림 상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왕국들이 강세를 보였다. 수마트라 섬 북부의 사무드라-파사이 왕국은 같은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제국에 후추를 수출하고 이들로부터 대포를 수입해 군사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베트남 남부의 참파 왕국, 타이 북부의 란나 왕국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다가 17~18세기에 멸망했다. 각각 베트남 북부, 타이 남부의 왕조 국가와 다른 흐름을 갖고 있었기에 최근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들을 현대의 영토 국가 시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처음 읽는 동아시아사’는 현지의 연구 경향에 발맞춰 당대의 눈으로 동남아시아 왕국들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려 했다.
4. 동아시아 공간의 숨겨진 의미와 역사를 누빈 인물을 새롭게 발굴하다
둔황 모가오 굴의 먼지더미에서 발견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처럼 역사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광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느라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공간과 인물에 얽힌 사연들을 각 장의 마무리에서 〈동아시아 인물찾기〉와 〈동아시아 역사공간〉이라는 칼럼으로 다뤘다.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는 일본의 오키나와 섬,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은 단순히 자연환경이 빼어난 관광지만은 아니다. 관광지 속 ‘볼거리’는 류큐 왕국과 란쌍 왕국이라는 사라진 왕국들의 흔적이다. 류큐 왕국은 명·청과 동남아시아 무역권을 이어 주는 중계 무역의 중심지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중국식 복식을 한 류큐 왕국의 사절단(389쪽 그림)은 당대의 에도 사람들에게도 큰 구경거리였다. ‘100만 마리 코끼리’라는 뜻의 란쌍 왕국은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정복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크메르 왕국에서 바친 ‘왕의 불상(프라방)’을 상징으로 삼아 부처의 가호로 나라를 수호하고자 했다.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고선지 장군도 동아시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이다. 고구려 유민 출신인 그가 당에서 출세할 수 있었던 길은 오직 무장이 되는 것이었다. 영국의 탐험가 오렐 스타인은 파미르 고원을 넘어 토번을 기습한 그의 작전에 대해 “나폴레옹의 알프스 돌파보다 성공적이었다. 유럽의 어느 사령관보다 전략과 통솔력이 탁월했다.”라며 극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었지만 중상모략에 의해 사형당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명과 후금, 조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광해군을 골치 아프게 했던 명의 장수 모문룡도 흥미롭다. 말로만 랴오둥 수복을 표방하며 조선의 가도를 차지하고 앉아 평안도 일대를 약탈한 이 희대의 악당은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에 대한 갑질이 하늘을 찌르다가 진상을 파악한 명 조정에 의해 랴오둥으로 소환된 뒤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작가 소개
신주백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 《역사화해와 동아시아형 미래 만들기》, 《미래를 여는 역사》(공저), 《동아시아사》 교과서(공저, 교학사) 등이 있다.
김형열
동의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 부산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난징대학 역사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도시화와 사회갈등의 역사》(공저), 《동아시아사의 인물과 라이벌》(공저), 《중국 근현대 주요인물 연구》(공저) 등이 있다.
박삼헌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및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소장. 일본역사문화학회 회장.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베대학 문화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문화콘텐츠잡지 《Boon》, 타이완문화콘텐츠잡지 《Plum Boon》을 기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체제》,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1,2(공저) 등이 있다.
오민영
세화고등학교 역사 교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연수부)과 내당서사, 동방의숙에서 유교 경전을 배웠다.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동양과학사》 등이 있다.
윤대영
서강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7대학 LCAO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마주보는 두 역사, 인천과 하이 퐁》, 《1862~1945, 한국과 베트남의 조우》 등이 있다.
한기모
가재울고등학교 역사 교사.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마주보는 한일사》1(공저), 《동아시아사》 교과서(공저, 교학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_ 동아시아의 자연환경과 선사 문화
1부_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
1장 국가의 성립과 발전
1. 황허 유역과 중앙아시아에서 국가가 성립하다
2. 만주·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국가가 성립하다
3. 동북아시아가 정치적으로 연결되다
4. 동남아시아에서 국가가 성립하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정략에 의해 이역만리로 보내진 공주들
- [동아시아 역사공간] 중국의 울타리, 만리장성
2장 인구 이동과 문화 교류
1. 3~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다
2. 오아시스 길을 따라 동아시아 문화가 흘러가다
3. 바닷길을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고선지 장군
- [동아시아 역사공간]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던 오아시스 도시, 둔황
3장 왕권을 떠받치는 두 힘, 율령과 종교
1. 군주를 부모처럼 섬기라고 가르친 유교
2. 율령으로 왕권을 옹호하고 백성을 다스리다
3. 중생의 해탈을 추구한 대승 불교
- [동아시아 인물찾기] 불교의 성인이 된 왕자, 쇼토쿠 태자
- [동아시아 역사공간] 사일렌드라 왕조의 영광을 간직한 인도네시아의 불교 사원들
2부 연결되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1장 세계 제국 몽골과 동아시아
1. 유목 국가가 ‘중원’을 차지하다
2. 몽골족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다
3. 몽골 제국과 주변 세계가 영향을 주고받다
4. 몽골 제국이 문화 교류의 통로가 되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라시드웃딘, 최초의 세계사 《집사》를 쓰다
- [동아시아 역사공간] 중국의 왕도 변천사
2장 동아시아의 새로운 지배세력과 통치이념
1. 동아시아에서는 어떻게 관리를 뽑았을까
2. 사대부와 무사가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하다
3. 상좌 불교와 이슬람교가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등장하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유학자가 된 무사, 아라이 하쿠세키
- [동아시아 역사공간] 100만 마리 코끼리의 나라, 란쌍 왕국
3장 전쟁과 교역의 시대, 16~17세기 동아시아
1.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새롭게 관계를 맺다
2. 전쟁으로 동북아시아 정치가 요동치다
3. 교역의 확대로 동남아시아 정치가 바뀌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전쟁을 초래한 갑질의 달인, 모문룡
- [동아시아 역사공간] 교역의 시대, 브루나이 왕국과 필리핀 제도
4장 동아시아의 경제 교류와 기술 교류
1. 동북아시아에서 경제 교류가 전개되다
2. 동남아시아에서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다
3. 동남아시아에서 군사 기술 교류가 활발해지다
- [동아시아 인물찾기] 타이완 독립의 상징, 정성공
- [동아시아 역사공간] 중계 무역이 빚어낸 흥망사, 류큐 왕국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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