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박제가 된 그저 예전 일의 나열.. 이것이 역사인가?
유럽의 잘 보존된 유명한 성당, 박물관, 왕궁, 오래된 거리들을 돌아보고 오는 우리는 그들 나라의 문화유산을 부러워한다. “선조들이 훌륭한 문화재를 남겨줘서 이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겠다”고 속 쓰려 하면서.
그곳에 우리는 뭘 보고 왔길래?
우리는 본 것은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 강화조약에 서명한 곳, 피카소가 즐겨 찾던 카페, 모차르트 ‘돈 지오반니’가 초연된 곳.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혁명군에 체포되던 시간을 가리키던 시계, 콜럼버스의 관이 공중에 떠있게 된 사연 같은 것이다. 우리가 방문하는 유럽의 유물과 유적에는 이렇게 그곳에 스며든 스토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반면,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려의 대외관계’, ‘목탑에서 석탑으로의 변천’ 같은 지금의 나와는 별 상관없는 지식을 저장하는 사이 그들은 피카소가 점심을 먹던 식당의 그 자리에 앉아서 그와 잠시 시공을 초월한 일치성을 느낀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들춰보며 잠시 그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이 항복했다는 방에 가서 만약 독일이 전쟁에 이겼다면 그 후 세계는, 역사는 어찌 흘러갔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역사라는 게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이며 그것이 옛사람의 시대를 지나 이제 나의 시간대를 지나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떠난 이후에도 나와 내 시대가 남긴 흔적들이 미래세대에 전해져 강물처럼 영원히 흘러갈 것임을 깨닫는다.
자, 우리의 역사에는 그런 현재 진행형의 역사를 일깨울 스토리가 없는가?
아니다 있다. 오히려 더 풍부하게!!
동네 흔한 언덕배기에 걸터앉은 그저 그렇게 생겨먹은 수많은 바위에도 전설이 없는 곳이 없고 경치 좋은 계곡이면 으레 선녀들이 목욕하고 다녔다는 선녀탕이 널려 있는데 그런 선조들의 삶의 터전과 그들의 역사에 왜 스토리가 없겠는가?
다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깨닫지 못 했을 뿐이다.
창덕궁 대조전에는 동쪽에 흥복헌(興福軒)이란 이름의 부속건물이 붙어 있다. 조선의 500년 왕조가 생(生)을 다한 곳이 바로 이 흥복헌이다.
1910년 8월 22일. 월요일이었던 이날 오후 순종이 주재한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이완용과 박제순 등 부일 매국노들은 사실상 한일병합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으라고 황제를 겁박했다. 순종비 순종효 황후가 치마폭에 옥새를 감추며 저항했지만 결국 1시간여 만에 순종은 이완용에게 병합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라와 왕실이 흥하고 복되기를 빌어 흥복헌이란 이름을 단 중궁전 귀퉁이 전각에서 이렇게 조선은 숨이 끊어졌다.
500년을 이어온 조선 왕조의 역사가 멈춘 이 현장의 역사를 알리는 건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라는 초라한 안내판뿐이다.
백제 금동대향로를 보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당군이 야차처럼 수도 부여로 밀려드는 와중에 나라의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급히 땅을 파서 숨기고 죽음으로 비밀을 지킨 백제 왕사의 스님들 이야기이다.
정림사지 석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탑이 부여가 지옥이 되던 백제 멸망의 순간을 지켜본 현존하는 유일한 목격자라는 사실이다.
역사는 익히는 게 아니고 ‘구경하는 것’이다. 여행이다.
비행기 대신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현장으로 가보는 것이다.
이제 그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한산도 앞바다로 힘차게 출동하는 임진년 이순신 함대를 응원하러. 절대군주 태종에 맞서 춘추필법을 지키려던 조선 사관들의 토론장으로, 잃어버린 국보를 찾아 비상이 걸린 1960년대 경주 경찰서 수사본부로. 일본 군대가 나타나길 숨죽이며 기다리던 그날 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매복진지로.
▣ 작가 소개
저자 : 이호석
[내일 신문]과 [미디어 오늘]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대통령 비서실 홍보 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스토리에 담은 우리 유물, 우리 사람] 등 4편을 연재중이다.
▣ 주요 목차
[1부]
누구나 알지만 잘 모르는 윤봉길
“장부 출가 생불환.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윤봉길)
황포탄 의거 주역들의 엇갈린 운명
“식민지 민중이 뺏긴 나라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모든 수단은 정의롭다.” (신채호)
들불 같던 그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나
“곽재우가 김수를 죽이려는 것은 힘을 믿고 그런 것이 아닌가. 곽재우는 도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 (선조)
훼손 도난 강탈 어이 상실 국보 수난사
“세상에 돈이면 다 되지, 돈으로 안되는 게 어디 있나”
“문화재의 원형 복원은 돈으로도 안 됩니다.”
국왕과도 맞서던 조선의 기자들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그 위엔 하늘이 있습니다.”(태종 때 사관 민인생)
놀랍도록 똑같이 재현된 반대파 숙청 사건
무오사화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사초를 들춰 모함으로 반대파를 숙청하다
적국에서 드날린 조선 왕자들의 기개
글로벌 엘리트 소현세자, 만족 의식에 눈 뜬 흥영군 이우
임진년 순 왜가 일제 친일파에게 묻다
“우리 국민은 문맹자도 많고 경제 자립도 어려워 일본과 싸워 이길 힘이 없습니다.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소. (춘원 이광수)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몰랐다.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 (미당 서정주)
[2부]
1000년을 묻혀있던 고통을 아시나요?
“만약 그때 제가 빛을 못 봤다면 아마 저는 아직도 주차장이나 전시관 같은 걸 머리에 이고 가쁜 숨을 쉬고 있었을 겁니다.” (백제 금동 대향로)
안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지
“신라고적 가운데 최고라면서 일제는 어떻게 도굴꾼이 저를 폭파하는 지경까지 놔뒀을까요?” (경주 장항리 사지 석탑)
이름 되찾기까지 72년 파란만장 궁궐 수난사
“사도세자, 임오화변은 제가 기억하는 가장 비통한 이야기입니다.” (창경궁 명정전)
국정 역사서만 있었다면 고조선도 없었다.
“이치의 떳떳함으로 일어날 때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전하는 것을 영구히 해서 후세의 배우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경주부윤 이계복)
한반도 유일 고구려비에서 사라진 글씨들의 비밀
“저는 유독 뒷면이 심하게 닳아 있습니다. 그 글씨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충주 고구려비)
[3부]
이순신의 마지막을 둘러싼 논쟁들
“평소 나라를 욕되게 한 사람이라 오직 한번 죽는 것만 남았노라 하시더니 이제 나라를 찾았고 큰 원수마저 갚았거늘 무엇 때문에 평소의 맹세를 실천하셨던가.” (명 수군제독 진린)
독립영웅이 몸 일으킨 그곳 이젠 쓸쓸한 자취만이
“빨갱이들도 독립 운동한 거는 맞지만 그거는 뭐 그냥 그랬구나 정도지. 뭘 기리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연변에 온 한 나이 지긋한 한국관광객)
조선최고 침의가 된 노비
“6품직의 허임에게 한때 조그마한 공로가 있다 해도 어찌 통정대부의 가자를 제수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물정이 경악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거두어 주소서.” (사헌부 장령 최동식)
조선의 무자비한 여성 제왕 문정왕후
“문정왕후와 그의 아우 윤원형이 중외에서 권력을 전천하매 20년 사이에 조정의 정사가 탁란하고 염치가 땅을 쓸어낸 듯 없어지며 생민이 곤궁하고 국맥이 끊어졌으니 종사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다.(명종실록)
납치와 고문에 스러져간 천재 작곡가 윤이상
중앙정보부에 끌려와 자살을 시도한 그가 벽에 피로 쓴 글.
“아이들아, 아버지는 스파이가 아니다.” (윤이상)
[4부]
내 목은 잘라도 우리 땅은 자를 수 없다
“여기에 나라의 오래된 증거가 있는데 어찌 이리도 나를 겁박하느냐.” (이중하)
조선 여성의 재능은 축복 아닌 재앙 이었다.
“스물일곱 송이 아름다운 연꽃 늘어져 / 달빛 찬서리에 붉게 떨어 지누나 (허초희)
나라의 아버지 국부를 찾습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은 정부와 군을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이승만)
15만 원 군자금 탈취사건을 아십니까?
“용정으로 오는 일본 은행 현금수송대를 공격할 겁니다. 그 정보를 주십시오.” (윤준희)
사과 않는 일본, 쓸개 없는 조선
“조선과 짧은 시간 안에 화친함으로써 조선의 일본 본토 침공을 막았다.” (아메노모리 호슈)
박제가 된 그저 예전 일의 나열.. 이것이 역사인가?
유럽의 잘 보존된 유명한 성당, 박물관, 왕궁, 오래된 거리들을 돌아보고 오는 우리는 그들 나라의 문화유산을 부러워한다. “선조들이 훌륭한 문화재를 남겨줘서 이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겠다”고 속 쓰려 하면서.
그곳에 우리는 뭘 보고 왔길래?
우리는 본 것은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 강화조약에 서명한 곳, 피카소가 즐겨 찾던 카페, 모차르트 ‘돈 지오반니’가 초연된 곳.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혁명군에 체포되던 시간을 가리키던 시계, 콜럼버스의 관이 공중에 떠있게 된 사연 같은 것이다. 우리가 방문하는 유럽의 유물과 유적에는 이렇게 그곳에 스며든 스토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반면,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려의 대외관계’, ‘목탑에서 석탑으로의 변천’ 같은 지금의 나와는 별 상관없는 지식을 저장하는 사이 그들은 피카소가 점심을 먹던 식당의 그 자리에 앉아서 그와 잠시 시공을 초월한 일치성을 느낀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들춰보며 잠시 그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이 항복했다는 방에 가서 만약 독일이 전쟁에 이겼다면 그 후 세계는, 역사는 어찌 흘러갔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역사라는 게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이며 그것이 옛사람의 시대를 지나 이제 나의 시간대를 지나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떠난 이후에도 나와 내 시대가 남긴 흔적들이 미래세대에 전해져 강물처럼 영원히 흘러갈 것임을 깨닫는다.
자, 우리의 역사에는 그런 현재 진행형의 역사를 일깨울 스토리가 없는가?
아니다 있다. 오히려 더 풍부하게!!
동네 흔한 언덕배기에 걸터앉은 그저 그렇게 생겨먹은 수많은 바위에도 전설이 없는 곳이 없고 경치 좋은 계곡이면 으레 선녀들이 목욕하고 다녔다는 선녀탕이 널려 있는데 그런 선조들의 삶의 터전과 그들의 역사에 왜 스토리가 없겠는가?
다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깨닫지 못 했을 뿐이다.
창덕궁 대조전에는 동쪽에 흥복헌(興福軒)이란 이름의 부속건물이 붙어 있다. 조선의 500년 왕조가 생(生)을 다한 곳이 바로 이 흥복헌이다.
1910년 8월 22일. 월요일이었던 이날 오후 순종이 주재한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이완용과 박제순 등 부일 매국노들은 사실상 한일병합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으라고 황제를 겁박했다. 순종비 순종효 황후가 치마폭에 옥새를 감추며 저항했지만 결국 1시간여 만에 순종은 이완용에게 병합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는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라와 왕실이 흥하고 복되기를 빌어 흥복헌이란 이름을 단 중궁전 귀퉁이 전각에서 이렇게 조선은 숨이 끊어졌다.
500년을 이어온 조선 왕조의 역사가 멈춘 이 현장의 역사를 알리는 건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라는 초라한 안내판뿐이다.
백제 금동대향로를 보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당군이 야차처럼 수도 부여로 밀려드는 와중에 나라의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 급히 땅을 파서 숨기고 죽음으로 비밀을 지킨 백제 왕사의 스님들 이야기이다.
정림사지 석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탑이 부여가 지옥이 되던 백제 멸망의 순간을 지켜본 현존하는 유일한 목격자라는 사실이다.
역사는 익히는 게 아니고 ‘구경하는 것’이다. 여행이다.
비행기 대신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현장으로 가보는 것이다.
이제 그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한산도 앞바다로 힘차게 출동하는 임진년 이순신 함대를 응원하러. 절대군주 태종에 맞서 춘추필법을 지키려던 조선 사관들의 토론장으로, 잃어버린 국보를 찾아 비상이 걸린 1960년대 경주 경찰서 수사본부로. 일본 군대가 나타나길 숨죽이며 기다리던 그날 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매복진지로.
▣ 작가 소개
저자 : 이호석
[내일 신문]과 [미디어 오늘]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대통령 비서실 홍보 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스토리에 담은 우리 유물, 우리 사람] 등 4편을 연재중이다.
▣ 주요 목차
[1부]
누구나 알지만 잘 모르는 윤봉길
“장부 출가 생불환.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윤봉길)
황포탄 의거 주역들의 엇갈린 운명
“식민지 민중이 뺏긴 나라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모든 수단은 정의롭다.” (신채호)
들불 같던 그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나
“곽재우가 김수를 죽이려는 것은 힘을 믿고 그런 것이 아닌가. 곽재우는 도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 (선조)
훼손 도난 강탈 어이 상실 국보 수난사
“세상에 돈이면 다 되지, 돈으로 안되는 게 어디 있나”
“문화재의 원형 복원은 돈으로도 안 됩니다.”
국왕과도 맞서던 조선의 기자들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그 위엔 하늘이 있습니다.”(태종 때 사관 민인생)
놀랍도록 똑같이 재현된 반대파 숙청 사건
무오사화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사초를 들춰 모함으로 반대파를 숙청하다
적국에서 드날린 조선 왕자들의 기개
글로벌 엘리트 소현세자, 만족 의식에 눈 뜬 흥영군 이우
임진년 순 왜가 일제 친일파에게 묻다
“우리 국민은 문맹자도 많고 경제 자립도 어려워 일본과 싸워 이길 힘이 없습니다.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소. (춘원 이광수)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몰랐다.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 (미당 서정주)
[2부]
1000년을 묻혀있던 고통을 아시나요?
“만약 그때 제가 빛을 못 봤다면 아마 저는 아직도 주차장이나 전시관 같은 걸 머리에 이고 가쁜 숨을 쉬고 있었을 겁니다.” (백제 금동 대향로)
안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지
“신라고적 가운데 최고라면서 일제는 어떻게 도굴꾼이 저를 폭파하는 지경까지 놔뒀을까요?” (경주 장항리 사지 석탑)
이름 되찾기까지 72년 파란만장 궁궐 수난사
“사도세자, 임오화변은 제가 기억하는 가장 비통한 이야기입니다.” (창경궁 명정전)
국정 역사서만 있었다면 고조선도 없었다.
“이치의 떳떳함으로 일어날 때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전하는 것을 영구히 해서 후세의 배우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경주부윤 이계복)
한반도 유일 고구려비에서 사라진 글씨들의 비밀
“저는 유독 뒷면이 심하게 닳아 있습니다. 그 글씨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충주 고구려비)
[3부]
이순신의 마지막을 둘러싼 논쟁들
“평소 나라를 욕되게 한 사람이라 오직 한번 죽는 것만 남았노라 하시더니 이제 나라를 찾았고 큰 원수마저 갚았거늘 무엇 때문에 평소의 맹세를 실천하셨던가.” (명 수군제독 진린)
독립영웅이 몸 일으킨 그곳 이젠 쓸쓸한 자취만이
“빨갱이들도 독립 운동한 거는 맞지만 그거는 뭐 그냥 그랬구나 정도지. 뭘 기리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연변에 온 한 나이 지긋한 한국관광객)
조선최고 침의가 된 노비
“6품직의 허임에게 한때 조그마한 공로가 있다 해도 어찌 통정대부의 가자를 제수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물정이 경악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거두어 주소서.” (사헌부 장령 최동식)
조선의 무자비한 여성 제왕 문정왕후
“문정왕후와 그의 아우 윤원형이 중외에서 권력을 전천하매 20년 사이에 조정의 정사가 탁란하고 염치가 땅을 쓸어낸 듯 없어지며 생민이 곤궁하고 국맥이 끊어졌으니 종사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다.(명종실록)
납치와 고문에 스러져간 천재 작곡가 윤이상
중앙정보부에 끌려와 자살을 시도한 그가 벽에 피로 쓴 글.
“아이들아, 아버지는 스파이가 아니다.” (윤이상)
[4부]
내 목은 잘라도 우리 땅은 자를 수 없다
“여기에 나라의 오래된 증거가 있는데 어찌 이리도 나를 겁박하느냐.” (이중하)
조선 여성의 재능은 축복 아닌 재앙 이었다.
“스물일곱 송이 아름다운 연꽃 늘어져 / 달빛 찬서리에 붉게 떨어 지누나 (허초희)
나라의 아버지 국부를 찾습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은 정부와 군을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이승만)
15만 원 군자금 탈취사건을 아십니까?
“용정으로 오는 일본 은행 현금수송대를 공격할 겁니다. 그 정보를 주십시오.” (윤준희)
사과 않는 일본, 쓸개 없는 조선
“조선과 짧은 시간 안에 화친함으로써 조선의 일본 본토 침공을 막았다.” (아메노모리 호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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