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조선 독립의 맹렬한 불꽃’이 되고자 했던 청년
정율성이 맨처음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이 되기 위해서였다. 의열단이 어떤 결사체인가? 1919년 결성된 의열단은 3년 동안 총 6차례의 공격을 감행했다. 박재혁은 고서(古書) 상인으로 위장해 부산경찰서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책 사이에 숨겨온 폭탄을 책상에 내리쳐 하시모토 서장을 즉사시켰고, 1921년 9월 12일에는 의열단원 김익상이 조선총독부 청사 안에 폭탄 두 개를 던져 대소동을 일으킨 뒤 유유히 빠져나왔다. 1923년 1월 12일에는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6일 동안이나 추격하는 수백 명의 일본 경찰들과 홀로 총격전을 벌였다. 또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의열단원 김지섭은 일본의 천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그런데 의열단이 되기 위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마친 정율성은 난징 시내의 한 전화국에서 직원으로 가장해 첩보활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상하이에서 러시아 음악교수인 크리노바로부터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던 의열단과 김원봉은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한다. 이에 실망한 정율성은 누나(정봉은)와 매형(박건웅)의 도움으로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으로 떠난다.
옌안에서 그는 훗날 중국의 아리랑이 된 [옌안송], [팔로군행진곡](훗날 중국 공식 군가가 된다) 등을 작곡하여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일본군과 맞선 타이항산 전선에 투입되어 2년여 동안 활약하기도 했다. 그 사이 옌안에서 만난 여성 동지 딩쉐쑹과 결혼을 했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과 인연을 이어가며 활동하다가 1945년 8월을 맞이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했으나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김일성 주도로 이루어지는 권력 재편 작업과 아내 딩쉐쑹의 활동반경 제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6.25 전쟁 즈음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중국인이 가장 사랑한 한국인
2014년 7월 4일,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이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10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언급했다. 그 때 최치원, 허균, 김구 등과 더불어 등장한 이름이 정율성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한국인이며, 또한 오늘날 중국인들이 여전히 즐겨 부르는 노래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은 국민당의 장제스가 공산당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5000여 명의 홍군을 이끌고 고향인 산시성의 핵심도시인 옌안을 확보했다. 마오쩌둥의 대장정 행렬이 1년여 만에 옌안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시중쉰의 공로였다. 그렇게 시중쉰이 개척하고 마오쩌둥이 자리잡은 옌안을 노래한 [옌안송]의 작곡가가 정율성이었고, 시중쉰과 마오쩌둥은 휘하 병력들과 함께 정율성이 만든 노래 [팔로군행진곡]을 부르며 싸웠다. 타이항산 전투에서 팔로군에 소속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조선의용군 역시 정율성의 노래를 불렀다. 정율성은 그 외에도 [우리는 행복해요] 같은 동요, 민요와 연가의 작곡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광복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과 6.25전쟁을 거친 우리나라에서 정율성의 행적들 중 일부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그의 노래는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의 사기를 높였고, 그들은 한때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에 앞서 그의 삶을 이해하며 공감하는 일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는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을 품고 최선의 길을 선택하려 했던 그 시대의 아름답고 의로우며 뜨거운 젊은이였다. 일본과 맞서기 위해 가장 위험하고 치열한 전장(戰場)을 찾아 떠돌았다. 무자비한 일제 치하에서 가족과 함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꿈,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을 우리는 절대 비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다. 그가 마오쩌둥과 김일성에 대한 지나친 숭배에 대해 용감히 비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이며 비극이다. 불우했던 시대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의 삶을 살다간 그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감동과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김은식
글쓰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며 활동하고 있다. 음식, 역사, 인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소재에서 끌어낸 진정성 있는 문장을 신문, 잡지 등에 실어 많은 공감을 얻어왔고, EBS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과 공간에서 글쓰기와 인터뷰 기법 등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2003년 출간한 음식에세이 『맛있는 추억』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30여 권의 단행본을 집필해온 치열한 문화생산자인 동시에 스포츠 다큐멘터리 「인천, 야구의 추억」, 「기억, 타이거즈」 등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등 끊임없이 활동영역을 넓혀가며 진화하고 있는 미완성의 문화게릴라이기도 하다.
특히 2006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100회에 걸쳐 연재한 뒤 세 권의 책으로 출간한 『야구의 추억』은 한국 야구의 스토리텔링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뒤로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두산 베어스 때문에 산다』, 『야구상식사전』을 쓰고 테드 윌리암스의 『타격의 과학』을 번역하는 등 여러 야구 관련서들을 내면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글쟁이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
『마지막 국가대표』는 그가 시도하는 첫 번째 스포츠 팩션이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그 대회 국가대표팀의 핵심을 이루었던 6인의 보류선수들에 얽힌 역사와 사연들을, 오밀조밀한 문학적 상상력과 공감적 시선을 통해 녹여낸 ‘허구적 사실’이다. 그것은 ‘논픽션’의 영역에서만 활동해온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지만,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유감없이 녹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보다 적절한 무대로의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역전 우승이라는 두 개의 사건과 그것에 대한 기억은 그 해 열 살이었던 김은식이라는 어린이를 작가의 길로 이끈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그 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다룬 『마지막 국가대표』는 그의 전작들이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다룬 한국 야구사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조명 작업을 시작하는 출발점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 원더스 이야기』에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쥐어짜 도전하며 희로애락, 성공과 실패와 희열과 좌절 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야구 선수들의 인생에 매력을 느끼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외 저서로는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야구-삶의 여백 혹은 심장』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스무 살, 바다를 건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자식의 운명
헤이안마루호 위에서
의열단 간부학교에 들어가다
비밀공작과 음악수업
왜 싸우지 않는가
상하이에서 누나와 재회하다
딜레마에 빠진 의열단
공산주의자의 조국
멀기만 한 조선 독립의 길
꽃 한 다발이면 충분한 수업료
옌안으로 떠나다
2장. 아, 옌안
혁명의 도시, 옌안
중국을 뒤흔든 중일전쟁
처음 만든 노래, 옌안송
조선인은 모두 간첩인가
딩쉐쑹과 결혼하다
3장. 전쟁 속에서 피어난 노래
조선의용군, 타이항산 전선에 서다
노래와 함께 싸운 사람들
타이항산 전투에 몸을 바치다
딸을 살린 바이올린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
4장. 다시 조국을 떠나다
압록강 앞에서 발이 묶인 사람들
신중국의 탄생
평양에서 어머니와 재회하다
다시 베이징으로 떠나다
또다시, 전쟁
5장. 중국의 별이 되다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르는 노래
문화대혁명의 광풍
끝내 음표를 낚지 못하고
노래와 함께 영원히 잠들다
‘조선 독립의 맹렬한 불꽃’이 되고자 했던 청년
정율성이 맨처음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이 되기 위해서였다. 의열단이 어떤 결사체인가? 1919년 결성된 의열단은 3년 동안 총 6차례의 공격을 감행했다. 박재혁은 고서(古書) 상인으로 위장해 부산경찰서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책 사이에 숨겨온 폭탄을 책상에 내리쳐 하시모토 서장을 즉사시켰고, 1921년 9월 12일에는 의열단원 김익상이 조선총독부 청사 안에 폭탄 두 개를 던져 대소동을 일으킨 뒤 유유히 빠져나왔다. 1923년 1월 12일에는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6일 동안이나 추격하는 수백 명의 일본 경찰들과 홀로 총격전을 벌였다. 또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의열단원 김지섭은 일본의 천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그런데 의열단이 되기 위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마친 정율성은 난징 시내의 한 전화국에서 직원으로 가장해 첩보활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상하이에서 러시아 음악교수인 크리노바로부터 음악 수업을 받았다. 그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던 의열단과 김원봉은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한다. 이에 실망한 정율성은 누나(정봉은)와 매형(박건웅)의 도움으로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으로 떠난다.
옌안에서 그는 훗날 중국의 아리랑이 된 [옌안송], [팔로군행진곡](훗날 중국 공식 군가가 된다) 등을 작곡하여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일본군과 맞선 타이항산 전선에 투입되어 2년여 동안 활약하기도 했다. 그 사이 옌안에서 만난 여성 동지 딩쉐쑹과 결혼을 했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과 인연을 이어가며 활동하다가 1945년 8월을 맞이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했으나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김일성 주도로 이루어지는 권력 재편 작업과 아내 딩쉐쑹의 활동반경 제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6.25 전쟁 즈음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중국인이 가장 사랑한 한국인
2014년 7월 4일,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이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10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언급했다. 그 때 최치원, 허균, 김구 등과 더불어 등장한 이름이 정율성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한국인이며, 또한 오늘날 중국인들이 여전히 즐겨 부르는 노래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은 국민당의 장제스가 공산당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5000여 명의 홍군을 이끌고 고향인 산시성의 핵심도시인 옌안을 확보했다. 마오쩌둥의 대장정 행렬이 1년여 만에 옌안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시중쉰의 공로였다. 그렇게 시중쉰이 개척하고 마오쩌둥이 자리잡은 옌안을 노래한 [옌안송]의 작곡가가 정율성이었고, 시중쉰과 마오쩌둥은 휘하 병력들과 함께 정율성이 만든 노래 [팔로군행진곡]을 부르며 싸웠다. 타이항산 전투에서 팔로군에 소속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조선의용군 역시 정율성의 노래를 불렀다. 정율성은 그 외에도 [우리는 행복해요] 같은 동요, 민요와 연가의 작곡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광복 이후 극심한 이념 대립과 6.25전쟁을 거친 우리나라에서 정율성의 행적들 중 일부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그의 노래는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의 사기를 높였고, 그들은 한때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에 앞서 그의 삶을 이해하며 공감하는 일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는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을 품고 최선의 길을 선택하려 했던 그 시대의 아름답고 의로우며 뜨거운 젊은이였다. 일본과 맞서기 위해 가장 위험하고 치열한 전장(戰場)을 찾아 떠돌았다. 무자비한 일제 치하에서 가족과 함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꿈,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을 우리는 절대 비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다. 그가 마오쩌둥과 김일성에 대한 지나친 숭배에 대해 용감히 비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이며 비극이다. 불우했던 시대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의 삶을 살다간 그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감동과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김은식
글쓰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며 활동하고 있다. 음식, 역사, 인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소재에서 끌어낸 진정성 있는 문장을 신문, 잡지 등에 실어 많은 공감을 얻어왔고, EBS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과 공간에서 글쓰기와 인터뷰 기법 등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2003년 출간한 음식에세이 『맛있는 추억』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30여 권의 단행본을 집필해온 치열한 문화생산자인 동시에 스포츠 다큐멘터리 「인천, 야구의 추억」, 「기억, 타이거즈」 등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등 끊임없이 활동영역을 넓혀가며 진화하고 있는 미완성의 문화게릴라이기도 하다.
특히 2006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100회에 걸쳐 연재한 뒤 세 권의 책으로 출간한 『야구의 추억』은 한국 야구의 스토리텔링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뒤로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두산 베어스 때문에 산다』, 『야구상식사전』을 쓰고 테드 윌리암스의 『타격의 과학』을 번역하는 등 여러 야구 관련서들을 내면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글쟁이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
『마지막 국가대표』는 그가 시도하는 첫 번째 스포츠 팩션이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그 대회 국가대표팀의 핵심을 이루었던 6인의 보류선수들에 얽힌 역사와 사연들을, 오밀조밀한 문학적 상상력과 공감적 시선을 통해 녹여낸 ‘허구적 사실’이다. 그것은 ‘논픽션’의 영역에서만 활동해온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지만,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유감없이 녹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보다 적절한 무대로의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역전 우승이라는 두 개의 사건과 그것에 대한 기억은 그 해 열 살이었던 김은식이라는 어린이를 작가의 길로 이끈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그 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다룬 『마지막 국가대표』는 그의 전작들이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다룬 한국 야구사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조명 작업을 시작하는 출발점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 원더스 이야기』에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쥐어짜 도전하며 희로애락, 성공과 실패와 희열과 좌절 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야구 선수들의 인생에 매력을 느끼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외 저서로는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야구-삶의 여백 혹은 심장』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스무 살, 바다를 건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자식의 운명
헤이안마루호 위에서
의열단 간부학교에 들어가다
비밀공작과 음악수업
왜 싸우지 않는가
상하이에서 누나와 재회하다
딜레마에 빠진 의열단
공산주의자의 조국
멀기만 한 조선 독립의 길
꽃 한 다발이면 충분한 수업료
옌안으로 떠나다
2장. 아, 옌안
혁명의 도시, 옌안
중국을 뒤흔든 중일전쟁
처음 만든 노래, 옌안송
조선인은 모두 간첩인가
딩쉐쑹과 결혼하다
3장. 전쟁 속에서 피어난 노래
조선의용군, 타이항산 전선에 서다
노래와 함께 싸운 사람들
타이항산 전투에 몸을 바치다
딸을 살린 바이올린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
4장. 다시 조국을 떠나다
압록강 앞에서 발이 묶인 사람들
신중국의 탄생
평양에서 어머니와 재회하다
다시 베이징으로 떠나다
또다시, 전쟁
5장. 중국의 별이 되다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르는 노래
문화대혁명의 광풍
끝내 음표를 낚지 못하고
노래와 함께 영원히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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