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폭동인가, 항쟁인가―사건을 둘러싼 역사의 왜곡과 진실
저자 김상숙은 ‘10월 사건(폭동, 소요)’이 아닌 민중 항쟁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10월 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심지어 ‘10·1폭동’이라는 명칭에는 소수의 ‘좌익 분자’들이 일으킨 소요로서 ‘사건’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군정과 경찰이 ‘폭동’ 또는 ‘소요’라고 규정하고 반공이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항쟁은 오랜 시간 그렇게 인식되었다.
10월 항쟁이 민중 항쟁 또는 시민 항쟁으로서 평가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시위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조선공산당(조공)과 이후 무장투쟁을 이끈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반공 국가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며 항쟁 자체가 ‘좌익’의 권력 투쟁이나 반란으로 오인되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10월 항쟁이 좌익 전위 엘리트가 선도한 ‘소요’와 ‘반란’이 아니라 노동자, 학생들과 더불어 기층 민중이 전면에 나선 시민 항쟁이었음을 90년대 이후 공개된 미군 문서와 항쟁 참여자 및 목격자의 증언 구술을 통해 새롭게 입증하고 있다.
미완의 시민혁명,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선산 인민위원회 및 민전 간부)가 항쟁 중에 경찰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로 더 잘 알려진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었다.
10월 항쟁은 식민 통치와 봉건제 유산의 청산을 시도했던 미완의 시민혁명이자, 미군정과 친일 경찰로부터 건국의 주권을 탈환하기 위한 숭고한 항거였으며, 전국으로 확산된 항쟁이라는 점에서 ‘제2의 3·1운동’이라고 부를 만했다. 농민의 자발적 봉기 양상은 19세기 농민 항쟁(1862년 농민 봉기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계승이었다.
도시에서의 항쟁은 미군정의 계엄령 하에 진압되었다.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청년들은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다. 군경 토벌대는 빨치산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학살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과거 사회운동에 관여했다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수많은 사람들이 값없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바로 초기 현대 국가로서 반공 우익 국가인 한국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학살은 한 세대 사회운동의 절멸을 의미했으며, 국가 권력의 토대를 강화하는 폭력적 방법이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성립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10여년 후 4·19라는 뒤늦은 시민혁명이 뒤따랐고, 쿠데타로 인해 좌절된 시민혁명의 이상은 다시 20년 후 5·18항쟁으로 현현했다.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으로 한국인의 무의식중에 살아 있었다. 이제 봉인된 시간 속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2016년 10월 1일은 항쟁 70주년이다.
저자 김상숙은 2007~2010년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대구 10월 사건’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담당한 조사관이었다. 2010년 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뒤 더 이상 조사관의 신분이 아니면서도 항쟁 참여자 및 목격자, 유족의 증언 구술을 찾아 다녔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그러면서 ‘대구 10월 사건’이 시민 항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10월 항쟁』은 9년 동안 진행한 조사와 연구의 결과물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상숙
1980년대 대구의 사회운동 단체에서 일했다. 노동운동 관련 연구를 하다가 2007년에 ‘1980년대 대구 지역 여성노동운동사’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경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일을 했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고려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사회학 과목을 강의하고 한국 현대사와 사회운동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5·18기념재단,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등 여러 기관의 구술조사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지역민들을 만나 과거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국가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사라지고 숨겨진 이야기를 복원하여 사회적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농민 항쟁의 측면에서 본 1946년 10월 사건」, 「1948~1949년 지역 내전과 마을 청년들의 경험」, 「가톨릭 노동운동의 재평가를 통한 현 노동운동의 대안 모색」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며.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를 따라
서장. 10월 항쟁은 무엇이었는가
1부. 10월 항쟁
1장. 건국의 푸른 꿈
1. 건국운동의 열기
해방 직후 건국운동의 조직|노동자의 조직 과정|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의 활기|빈민조직의 부재|정당과 통일전선조직|경북정치학교, 건국의 푸른 꿈과 지역운동의 도전|농촌조직의 영향력과 폐쇄성
2. 되풀이되는 식민지의 악몽
점령군의 등장, 친일파의 귀환|지방 보수세력의 형성|식량난과 사회·경제적 불안정성|대중투쟁의 폭발|좌우 합작과 대구공동위원회|미군정의 탄압과 9월 총파업
3. 혼돈 속의 건국운동과 항쟁 전야
2장. 대구, 10월 항쟁의 서막
1. 대구역 광장 시위와 경찰의 발포
10월 1일: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시위 그리고 경찰의 발포|10월 2일: 시위의 전개와 경찰의 발포 시점|10월 1일 경찰 발포 피살자는 누구인가|10월 2일 경찰 발포 피살자의 신원 추정
2. 청년·학생 연합 시위와 시민 항쟁
시신 시위의 조직과 청년·학생 연합 시위의 지도부|시위의 실질적 지도부는 누구였는가|10월 2일 오전: 청년·학생 연합 시위, 시민 항쟁으로의 전환|10월 2일 오후: 지도부 없는 기층 민중의 봉기, 사회적 트라우마의 폭발|10월 2일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의 반응
3. 시민 항쟁으로서의 대구 항쟁의 의의와 한계
3장. 농촌으로 간 10월 항쟁
1. 경북 전역으로 번지는 항쟁
제2의 3·1운동|항쟁의 지역별 양상과 전개 과정
2. 농민 항쟁으로서의 영천 항쟁
항쟁의 배경과 원인|영천읍, 항쟁의 폭발|면 단위로 확산되는 항쟁|항쟁의 전파 경로|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3. 항쟁의 조직 기반과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하층민 조직: 계급적 동질성에 의한 결합|친족 관계: 일가주의적 동질성에 의한 결합|마을 자치조직의 전통: 마을공동체의 동질성에 의한 결합|19세기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4. 10월 항쟁, 도시에서 농촌으로
2부. 작은 전쟁과 학살
4장. 삐라를 뿌리는 소년들
1. 항쟁의 진압과 민간인 학살
2. 항쟁 이후의 사회운동
남로당의 결성과 민전의 활동|노동운동의 탄압과 학생운동의 성장|이름도 무덤도 없는 청년·학생 운동가들|대중화하는 농민운동과 학생운동
3. 대중운동의 탄압과 무장투쟁의 발전
당국의 탄압과 통제|지방 보수세력의 강화|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반대 운동|무장투쟁의 발전, 야산대에서 유격대로
4. 대중운동의 재편과 좌우의 분열
5장. 산으로 간 청년들과 작은 전쟁
1. 대중운동에서 무장투쟁으로
대구 제6연대 사건과 유격대의 형성|군경의 빨치산 토벌|1949년 대구 지역의 투쟁 활동|1949년 무장투쟁기의 남로당
2. 빨치산과 군경 사이에서
산사람과 들군|빨치산의 생활과 활동|낮에는 군경이 밤에는 빨치산이
3. 빨치산에 대한 기억과 집단적 트라우마
‘빨갱이 고수’와 ‘지방 빨갱이’|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생긴|우익이 좋은동, 좌익이 좋은동, 알아야 뭘 하지요
4. 반공의 사회심리와 냉전 통치성
6장. 학살과 통제
1. 민간인 학살과 체제 통제
정부 수립기 대구 지역의 민간인 학살|정부 수립기 경북 지역의 민간인 학살: 영천의 사례|국민보도연맹과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
2. 기록으로 본 학살 사건
경주·월성|경산·청도·영일|칠곡·고령·성주·군위·김천·금릉|영덕|영양·안동·영주·예천·의성·봉화·문경|학살의 유형
3. 피학살자들은 누구인가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나|언제, 어떤 지역에서 학살되었나|피학살자의 사회인구학적 구성
4. 학살, 진보의 절멸과 국가 권력의 토대 강화
에필로그: 10월 항쟁의 유산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1. 10월 항쟁, 미완의 시민혁명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대중운동이자 사회운동|항쟁 지도부와 조직 역량의 부족|전통적 농민 항쟁의 전승이자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
2. 남겨진 이야기: 전쟁 후의 또 다른 전쟁
아홉 살 ‘이쁜이’는 왜 ‘10·1폭동 처형자’로 기록되었나|학살 후 홀로 된 여성들|70년간의 기다림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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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인가, 항쟁인가―사건을 둘러싼 역사의 왜곡과 진실
저자 김상숙은 ‘10월 사건(폭동, 소요)’이 아닌 민중 항쟁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10월 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심지어 ‘10·1폭동’이라는 명칭에는 소수의 ‘좌익 분자’들이 일으킨 소요로서 ‘사건’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군정과 경찰이 ‘폭동’ 또는 ‘소요’라고 규정하고 반공이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항쟁은 오랜 시간 그렇게 인식되었다.
10월 항쟁이 민중 항쟁 또는 시민 항쟁으로서 평가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시위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조선공산당(조공)과 이후 무장투쟁을 이끈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반공 국가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며 항쟁 자체가 ‘좌익’의 권력 투쟁이나 반란으로 오인되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10월 항쟁이 좌익 전위 엘리트가 선도한 ‘소요’와 ‘반란’이 아니라 노동자, 학생들과 더불어 기층 민중이 전면에 나선 시민 항쟁이었음을 90년대 이후 공개된 미군 문서와 항쟁 참여자 및 목격자의 증언 구술을 통해 새롭게 입증하고 있다.
미완의 시민혁명,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선산 인민위원회 및 민전 간부)가 항쟁 중에 경찰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로 더 잘 알려진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었다.
10월 항쟁은 식민 통치와 봉건제 유산의 청산을 시도했던 미완의 시민혁명이자, 미군정과 친일 경찰로부터 건국의 주권을 탈환하기 위한 숭고한 항거였으며, 전국으로 확산된 항쟁이라는 점에서 ‘제2의 3·1운동’이라고 부를 만했다. 농민의 자발적 봉기 양상은 19세기 농민 항쟁(1862년 농민 봉기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계승이었다.
도시에서의 항쟁은 미군정의 계엄령 하에 진압되었다.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청년들은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다. 군경 토벌대는 빨치산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학살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과거 사회운동에 관여했다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수많은 사람들이 값없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바로 초기 현대 국가로서 반공 우익 국가인 한국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학살은 한 세대 사회운동의 절멸을 의미했으며, 국가 권력의 토대를 강화하는 폭력적 방법이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성립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10여년 후 4·19라는 뒤늦은 시민혁명이 뒤따랐고, 쿠데타로 인해 좌절된 시민혁명의 이상은 다시 20년 후 5·18항쟁으로 현현했다.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으로 한국인의 무의식중에 살아 있었다. 이제 봉인된 시간 속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2016년 10월 1일은 항쟁 70주년이다.
저자 김상숙은 2007~2010년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대구 10월 사건’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담당한 조사관이었다. 2010년 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뒤 더 이상 조사관의 신분이 아니면서도 항쟁 참여자 및 목격자, 유족의 증언 구술을 찾아 다녔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그러면서 ‘대구 10월 사건’이 시민 항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10월 항쟁』은 9년 동안 진행한 조사와 연구의 결과물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상숙
1980년대 대구의 사회운동 단체에서 일했다. 노동운동 관련 연구를 하다가 2007년에 ‘1980년대 대구 지역 여성노동운동사’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경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일을 했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고려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사회학 과목을 강의하고 한국 현대사와 사회운동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5·18기념재단,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등 여러 기관의 구술조사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지역민들을 만나 과거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국가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사라지고 숨겨진 이야기를 복원하여 사회적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농민 항쟁의 측면에서 본 1946년 10월 사건」, 「1948~1949년 지역 내전과 마을 청년들의 경험」, 「가톨릭 노동운동의 재평가를 통한 현 노동운동의 대안 모색」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며.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를 따라
서장. 10월 항쟁은 무엇이었는가
1부. 10월 항쟁
1장. 건국의 푸른 꿈
1. 건국운동의 열기
해방 직후 건국운동의 조직|노동자의 조직 과정|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의 활기|빈민조직의 부재|정당과 통일전선조직|경북정치학교, 건국의 푸른 꿈과 지역운동의 도전|농촌조직의 영향력과 폐쇄성
2. 되풀이되는 식민지의 악몽
점령군의 등장, 친일파의 귀환|지방 보수세력의 형성|식량난과 사회·경제적 불안정성|대중투쟁의 폭발|좌우 합작과 대구공동위원회|미군정의 탄압과 9월 총파업
3. 혼돈 속의 건국운동과 항쟁 전야
2장. 대구, 10월 항쟁의 서막
1. 대구역 광장 시위와 경찰의 발포
10월 1일: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시위 그리고 경찰의 발포|10월 2일: 시위의 전개와 경찰의 발포 시점|10월 1일 경찰 발포 피살자는 누구인가|10월 2일 경찰 발포 피살자의 신원 추정
2. 청년·학생 연합 시위와 시민 항쟁
시신 시위의 조직과 청년·학생 연합 시위의 지도부|시위의 실질적 지도부는 누구였는가|10월 2일 오전: 청년·학생 연합 시위, 시민 항쟁으로의 전환|10월 2일 오후: 지도부 없는 기층 민중의 봉기, 사회적 트라우마의 폭발|10월 2일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의 반응
3. 시민 항쟁으로서의 대구 항쟁의 의의와 한계
3장. 농촌으로 간 10월 항쟁
1. 경북 전역으로 번지는 항쟁
제2의 3·1운동|항쟁의 지역별 양상과 전개 과정
2. 농민 항쟁으로서의 영천 항쟁
항쟁의 배경과 원인|영천읍, 항쟁의 폭발|면 단위로 확산되는 항쟁|항쟁의 전파 경로|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3. 항쟁의 조직 기반과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하층민 조직: 계급적 동질성에 의한 결합|친족 관계: 일가주의적 동질성에 의한 결합|마을 자치조직의 전통: 마을공동체의 동질성에 의한 결합|19세기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
4. 10월 항쟁, 도시에서 농촌으로
2부. 작은 전쟁과 학살
4장. 삐라를 뿌리는 소년들
1. 항쟁의 진압과 민간인 학살
2. 항쟁 이후의 사회운동
남로당의 결성과 민전의 활동|노동운동의 탄압과 학생운동의 성장|이름도 무덤도 없는 청년·학생 운동가들|대중화하는 농민운동과 학생운동
3. 대중운동의 탄압과 무장투쟁의 발전
당국의 탄압과 통제|지방 보수세력의 강화|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반대 운동|무장투쟁의 발전, 야산대에서 유격대로
4. 대중운동의 재편과 좌우의 분열
5장. 산으로 간 청년들과 작은 전쟁
1. 대중운동에서 무장투쟁으로
대구 제6연대 사건과 유격대의 형성|군경의 빨치산 토벌|1949년 대구 지역의 투쟁 활동|1949년 무장투쟁기의 남로당
2. 빨치산과 군경 사이에서
산사람과 들군|빨치산의 생활과 활동|낮에는 군경이 밤에는 빨치산이
3. 빨치산에 대한 기억과 집단적 트라우마
‘빨갱이 고수’와 ‘지방 빨갱이’|똑똑하고 말 잘하고 잘생긴|우익이 좋은동, 좌익이 좋은동, 알아야 뭘 하지요
4. 반공의 사회심리와 냉전 통치성
6장. 학살과 통제
1. 민간인 학살과 체제 통제
정부 수립기 대구 지역의 민간인 학살|정부 수립기 경북 지역의 민간인 학살: 영천의 사례|국민보도연맹과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
2. 기록으로 본 학살 사건
경주·월성|경산·청도·영일|칠곡·고령·성주·군위·김천·금릉|영덕|영양·안동·영주·예천·의성·봉화·문경|학살의 유형
3. 피학살자들은 누구인가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나|언제, 어떤 지역에서 학살되었나|피학살자의 사회인구학적 구성
4. 학살, 진보의 절멸과 국가 권력의 토대 강화
에필로그: 10월 항쟁의 유산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1. 10월 항쟁, 미완의 시민혁명
노동자·시민이 연대한 대중운동이자 사회운동|항쟁 지도부와 조직 역량의 부족|전통적 농민 항쟁의 전승이자 현대 민중 항쟁의 원형
2. 남겨진 이야기: 전쟁 후의 또 다른 전쟁
아홉 살 ‘이쁜이’는 왜 ‘10·1폭동 처형자’로 기록되었나|학살 후 홀로 된 여성들|70년간의 기다림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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