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고대 노예제사회에서 중세 농노제로의 이행을 다룬 국내 최초의 저서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중세 봉건사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고대에 발달했던 노예제는 어떻게 해서 쇠퇴하고 농노제가 형성되었을까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 옮아간 원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혹시 노예해방을 주장한 기독교 때문일까 중세 기사계급의 주종제도는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 형성과정에서 봉건적 유럽 탄생의 지도자 카롤루스 대제와 카롤링제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게르만족 대이동 후 건설된 게르만왕국들에서 로마인은 어떤 지위를 가졌을까 차별을 받았을까, 아니면 평등한 대우를 받았을까
이상은 서양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연구서가 없었으나, 드디어 이에 관한 저서가 출간됐다. 이기영 저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이 그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우리말 서적으로는 영국의 마르크시스트 역사가 P. 앤더슨이 오래전인 1974년에 저술하고 1990년에 유재건한정숙 교수가 공동 번역한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창작과비평사, 1990)이 있지만, 우리나라 학자의 저술은 처음이다. 그동안 우리말 저서가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서양사연구 역사가 짧고,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에 관한 정보자료를 입수하기 힘들며, 여러 외국어로 된 이 시기의 연구자료 해독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려운 연구환경 속에서 처음 저술되었다고 해서 서양 학자들의 영어로 된 일부 연구성과물에 의존해서 손쉽게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라틴어로 된 원사료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연구는 당연히 원사료에 기초해야 하며, 특히 우리의 서양사 지식이 서양 학자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연구한 결과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사료에 기초한 연구가 더더욱 필요하다는 저자의 평소 신념이 관철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한편으로는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서양 학자들의 여러 언어로 된 최신의 연구성과와 학설까지도 널리 이용한다. 다만 연구성과를 이용하더라도 논지 전개의 기초를 사료분석에 두고 이에 근거해서 비판적으로 이용하며, 중요한 학설은 가능한 한 사료를 통해 검증한다. 그리하여 저자 나름의 타당하고 설득력 높은 이행론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이나 봉건사회의 형성에 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식이 보다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 확실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며, 글머리에 제시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좋은 해답서가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제와 농노제의 개념은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파악되고 규정되어야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1부는 고대 노예제사회로부터 중세 농노제로의 이행에 관한 것이다. 제2부의 주제는 봉건적 주종관계가 고대로부터 중세 초기에 걸쳐 어떻게 형성되어 성립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2부로 구성된 것은 중세 봉건사회의 계급적 구조가 농민 대중에 대한 착취제도인 농노제와 농노 상태의 농민 대중을 지배하는 기사계급의 특권적 질서인 봉건적 주종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2부에다 추가된 제3부는 고대사회로부터 중세 봉건사회로의 이행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행기의 인종문제에 관한 것이다. 즉 게르만족의 서유럽 대이동 후 건설된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이 어떤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제1부에서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을 본격적으로 고찰하기 전에 먼저 제I장에서 농노제와 노예제의 개념을 규정한다. 저자는 기존의 학계에서 흔히 노예제와 농노제의 개념을 법적신분제적 특징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법적신분제적 주요 특징이란 것은 무엇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신분제적 측면에서 중요시하는 인격적 예속관계는 본질적으로 생산관계, 즉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의 표현이고 이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예제와 농노제의 개념은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파악되고 규정될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노예제란 사회의 일정 인간집단이 일체의 소유와 인격 및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적 폭력의 지배 아래 노동을 무제한으로 수탈당하는 소모적인 착취체제인 데 비해, 농노제는 생산의 여러 조건을 점유한 소농의 잉여노동이 영주계급의 토지와 경제외적 강제력 독점으로 인해 지대의 형태로 영주에게 수취되는 노동력 재생산적인 착취체제라고 규정된다.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개념규정 아래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을 고찰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주요 대목은 노예의 토지보유와 외거화(外居化) 및 가족생활 영위, 해방노예의 소농화, 자유농민의 토지 상실과 예속화, 그리고 이들 고대적 여러 신분의 예속적 소농화와 더불어 잉여노동이 부역노동 형태로 영주에게 수취되는 부역농민화 등이다. 제II장은 이와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을 문헌기록의 면밀한 검토 하에 추적한다. 저자에 의하면 프랑크왕국이 건설되는 5세기 말부터 7세기 말까지의 서유럽사회는 민족이동기의 분쟁과 혼란으로 조성된 노예제사회였으나, 7세기 말 이후 노예제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이 급속히 진행되어 생산관계 면에서 농노제는 9세기 초에 고전장원제의 성립과 더불어 성립된다. 저자는 G. 뒤비를 비롯한 ''봉건혁명''의 주창자들이 노예제가 10세기 말경까지 지속되다가 1000년을 전후해서 비로소 농노제로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예제와 농노제의 본질과 로마시대부터 노예를 지칭했던 ''servus''라는 말의 의미변화를 간파하지 못한 잘못된 결과라고 비판한다.
기독교전파설과 계급투쟁설은 설득력 없어
제III장과 제IV장에서는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동인으로서 그 동안 거론되어 온 기독교, 계약, 인구 및 노동력, 생산력발전, 계급투쟁을 검토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노예제의 쇠퇴와 농노제의 형성에 관한 기독교 전파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고대고 중세 초기고 기독교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노예제를 인정하고 노예에 대한 노예주의 소유권과 지배권을 정당화하는 태도로 일관했을 뿐이다. 또한 농노제는 영주와 농노 사이에 서로 필요한 부역노동과 보호 및 재판을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계약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계약설 역시 역사적 사실과 배치된다. 중세 초기의 문헌기록들에 의하면 농민들은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력가들의 직간접적인 압력과 기만적인 술책으로 토지를 빼앗기고 예속되었다.
한편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이 노예제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농노제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한 결정적 동인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주장 역시 온전히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제정 시대에는 노예제적 생산양식의 해체를 초래할 만한 수준의 생산력발전이 없었고, 다만 중세에 들어 7세기 말경 이후 봉건적 생산력의 기초를 형성하는 농기구와 농업기술의 발명과 보급이 제법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도 로마제정 후기에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전개된 바가우다이 난이 노예제도와 권력당국에 일대 타격을 입히기는 했지만, 중세 초기에는 대규모의 계급투쟁이 없었다.
로마제정 후기부터 카롤링시대에 이르는 시기를 관통하는 분명하고 중요한 사실은 전반적으로 대토지소유제가 확대발전하는 가운데 인구감소 추세와 노동력 부족 사태가 지속되는 한편 로마제정 성립 이후 정복전쟁 종식으로 노예제가 쇠퇴하고 농노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유럽에서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은 정복전쟁 중단으로 노예노동력이 급감한 반면에 대토지소유는 확대되는 역사적 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주가 소모적인 노예노동으로부터 노동력이 자체적으로 재생산되는 농노노동으로 피착취노동의 구조적 변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력 차원의 조건변화를 원동력으로 하고, 로마제정 후기에 격렬하게 전개된 도망노예 등의 계급투쟁과 중세 초기의 농업생산력 발전을 추동력으로 해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은 자유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열등한 지위 가져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을 다루는 제2부의 첫 장에서는 봉건적 주종관계가 카롤링시대에 성립하기 전인 고대와 메로빙시대의 주종관계를 살핀다. 로마사회에는 ''clientela''라는 보호-피보호 관계의 주종제도가 존재했지만, 무장종사들의 조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로마에 정복되기 전의 켈트족사회에는 ''ambactus''라는 무장종사 조직이 존재하여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봉건적 주종관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게르만족사회의 종사제도(comitatus)였다. 메로빙시대에 접어들면 주로 게르만족 전래의 종사제도를 중심으로 한 고대적 형태의 주종제도와 보호관계가 서유럽 곳곳에서 존속하고 확산되어 나갔다. 메로빙시대 후기에는 무장종사의 충성과 군사봉사에 대한 대가로 은대지가 수여되는 변화가 일어난다.
근래 중세사 학계에는 ''봉건제''라는 개념과 이와 관련된 기타 개념들은 중세 및 근대의 법률가들이 만들어낸 순전히 이론적인 구조물이며, 적어도 11세기까지는 봉건적 주종관계와 봉토의 실재에 대한 확실하면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 S. 레이놀즈 등에 의해 제기되었다. 제2부의 2개 장에서 저자는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과 확산에 관해 칙령들을 비롯한 카롤링시대의 문헌기록을 꼼꼼히 분석하여 일종의 봉건제 허구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한다. 그 결과 이런 학설과는 달리, 카롤루스 대제시절 말까지는 봉건적 주종관계의 내용을 이루는 봉주와 봉신의 주요 의무들과 봉건적 주종관계 특유의 체결의식이 성립했고, 기병들의 전투장비도 11세기 이후의 기사 전성시대의 것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으며, 마상창시합과 사냥과 같은 기사문화도 형성되어 있었거나 형성되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9세기 말엽까지는 서유럽의 광대한 지역에서 봉건적 주종관계가 다층적으로 형성되고 공고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봉건적 주종관계와 은대지가 세습되고 봉신이 재판권과 같은 일부 공권을 사유화하여 행사하는 수준까지 봉건적 주종관계는 발전한다.
제3부에서는 "초기 프랑크사회에서의 로마인의 지위"라는 주제 아래 이행기의 인종문제를 논한다. 중세사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은 차별받지 아니했다는 여러 평등설이 지배적이었다. 프랑크왕국 초기의 살리법에서 로마인의 살인배상금이 프랑크인 배상금의 절반에 불과한 것은 로마인에게는 살인배상금을 나눠 갖는 게르만족의 친족제도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친족설, 프랑크 법 속의 ''Romanus''라는 말은 인종적 의미의 로마인이 아니라 천민 취급을 받았던 ''농민''이나 로마사회의 ''시의원(curiales)''이라는 학설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연구결과를 이용하여 이들 학설을 자세하게 따져 반박하고,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은 자유인으로 인정받았지만 프랑크자유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작가 소개
이기영
2017년 현 동아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졸업. 동 대학 원 서양사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문학박사). 여러 차례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의 대학 연구소와 도서관에 서 서양 중세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며 연구한 바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중세 전기의 봉건사회 구조와 형성이다.
전공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이 있으며, 단독 저서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고전장원제와 봉건적 부역노동제도의 형성 - 서유럽 대륙지 역을 중심으로』(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이르미노 저,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한국문화사, 2014), M. 블로크 저,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나남, 2007), M. 블로크 저, 『서양의 장원제 -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 한 비교사적 고찰』(까치, 2002), B. 슬리허 반 바트 저, 『서유럽농업사 500-1850』(까치, 1999).
▣ 주요 목차
책 머리말
제1부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
I. 농노제와 노예제의 개념- 기존의 개념규정에 대한 재검토
1. 머리말
2. 농노제와 노예제의 개념에 대한 기존 학계의 규정
3. 기존 개념규정의 문제점과 새로운 개념규정의 모색
4. 맺음말
II. 중세 초기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
1. 머리말
2. 중세 초의 서유럽사회는 노예제사회였는가?
3. 부자유인의 농노화 과정
4. 자유인의 농노화 과정과 통합적인 농노계급의 형성
5. 맺음말
III. 이행동인으로서의 기독교, 계약, 인구 및 노동력에 대한 검토
1. 머리말
2. 기독교 및 계약
3. 로마제정시대와 중세 초기의 인구동향
4. 노예노동력의 감퇴와 생산관계의 변화
5. 맺음말
IV. 이행동인으로서의 생산력발전 및 계급투쟁에 대한 검토 158
1. 머리말
2. 생산력발전
3. 계급투쟁
4. 맺음말
제2부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
V. 고대의 주종관계와 메로빙시대의 주종관계 발전 219
1. 머리말
2. 고대사회의 주종관계
3. 메로빙시대 전기의 주종관계
4. 메로빙시대 후기의 주종관계 발전
5. 맺음말
VI. 카롤링왕조와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
1. 머리말 267
2. 기본적 의무관계의 형성실태
3. 기타 여러 측면의 봉건적 주종제도 형성실태
4. 맺음말
VII. 카롤링시대의 봉건적 주종관계 확산
1. 머리말
2. 봉건적 주종관계의 다층화와 공고화
3. 봉건적 주종관계의 공간적 확산
4. 맺음말
제3부 이행기의 인종문제
VIII. 초기 프랑크사회에서의 로마인의 지위
1. 머리말
2. 살인배상금과 친족
3. 프랑크법 속의 ''Romanus''의 의미
4. 로마인 차별과 그 성격
5. 맺음말
전체 맺음말- 봉건사회의 성립시기에 대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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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노예제사회에서 중세 농노제로의 이행을 다룬 국내 최초의 저서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중세 봉건사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고대에 발달했던 노예제는 어떻게 해서 쇠퇴하고 농노제가 형성되었을까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 옮아간 원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혹시 노예해방을 주장한 기독교 때문일까 중세 기사계급의 주종제도는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 형성과정에서 봉건적 유럽 탄생의 지도자 카롤루스 대제와 카롤링제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게르만족 대이동 후 건설된 게르만왕국들에서 로마인은 어떤 지위를 가졌을까 차별을 받았을까, 아니면 평등한 대우를 받았을까
이상은 서양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연구서가 없었으나, 드디어 이에 관한 저서가 출간됐다. 이기영 저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이 그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우리말 서적으로는 영국의 마르크시스트 역사가 P. 앤더슨이 오래전인 1974년에 저술하고 1990년에 유재건한정숙 교수가 공동 번역한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창작과비평사, 1990)이 있지만, 우리나라 학자의 저술은 처음이다. 그동안 우리말 저서가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서양사연구 역사가 짧고,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에 관한 정보자료를 입수하기 힘들며, 여러 외국어로 된 이 시기의 연구자료 해독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려운 연구환경 속에서 처음 저술되었다고 해서 서양 학자들의 영어로 된 일부 연구성과물에 의존해서 손쉽게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라틴어로 된 원사료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연구는 당연히 원사료에 기초해야 하며, 특히 우리의 서양사 지식이 서양 학자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연구한 결과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사료에 기초한 연구가 더더욱 필요하다는 저자의 평소 신념이 관철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한편으로는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행에 관한 서양 학자들의 여러 언어로 된 최신의 연구성과와 학설까지도 널리 이용한다. 다만 연구성과를 이용하더라도 논지 전개의 기초를 사료분석에 두고 이에 근거해서 비판적으로 이용하며, 중요한 학설은 가능한 한 사료를 통해 검증한다. 그리하여 저자 나름의 타당하고 설득력 높은 이행론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이나 봉건사회의 형성에 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식이 보다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 확실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며, 글머리에 제시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좋은 해답서가 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제와 농노제의 개념은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파악되고 규정되어야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1부는 고대 노예제사회로부터 중세 농노제로의 이행에 관한 것이다. 제2부의 주제는 봉건적 주종관계가 고대로부터 중세 초기에 걸쳐 어떻게 형성되어 성립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2부로 구성된 것은 중세 봉건사회의 계급적 구조가 농민 대중에 대한 착취제도인 농노제와 농노 상태의 농민 대중을 지배하는 기사계급의 특권적 질서인 봉건적 주종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2부에다 추가된 제3부는 고대사회로부터 중세 봉건사회로의 이행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행기의 인종문제에 관한 것이다. 즉 게르만족의 서유럽 대이동 후 건설된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이 어떤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제1부에서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을 본격적으로 고찰하기 전에 먼저 제I장에서 농노제와 노예제의 개념을 규정한다. 저자는 기존의 학계에서 흔히 노예제와 농노제의 개념을 법적신분제적 특징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법적신분제적 주요 특징이란 것은 무엇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신분제적 측면에서 중요시하는 인격적 예속관계는 본질적으로 생산관계, 즉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의 표현이고 이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예제와 농노제의 개념은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파악되고 규정될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노예제란 사회의 일정 인간집단이 일체의 소유와 인격 및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적 폭력의 지배 아래 노동을 무제한으로 수탈당하는 소모적인 착취체제인 데 비해, 농노제는 생산의 여러 조건을 점유한 소농의 잉여노동이 영주계급의 토지와 경제외적 강제력 독점으로 인해 지대의 형태로 영주에게 수취되는 노동력 재생산적인 착취체제라고 규정된다.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개념규정 아래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을 고찰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주요 대목은 노예의 토지보유와 외거화(外居化) 및 가족생활 영위, 해방노예의 소농화, 자유농민의 토지 상실과 예속화, 그리고 이들 고대적 여러 신분의 예속적 소농화와 더불어 잉여노동이 부역노동 형태로 영주에게 수취되는 부역농민화 등이다. 제II장은 이와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을 문헌기록의 면밀한 검토 하에 추적한다. 저자에 의하면 프랑크왕국이 건설되는 5세기 말부터 7세기 말까지의 서유럽사회는 민족이동기의 분쟁과 혼란으로 조성된 노예제사회였으나, 7세기 말 이후 노예제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이 급속히 진행되어 생산관계 면에서 농노제는 9세기 초에 고전장원제의 성립과 더불어 성립된다. 저자는 G. 뒤비를 비롯한 ''봉건혁명''의 주창자들이 노예제가 10세기 말경까지 지속되다가 1000년을 전후해서 비로소 농노제로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예제와 농노제의 본질과 로마시대부터 노예를 지칭했던 ''servus''라는 말의 의미변화를 간파하지 못한 잘못된 결과라고 비판한다.
기독교전파설과 계급투쟁설은 설득력 없어
제III장과 제IV장에서는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동인으로서 그 동안 거론되어 온 기독교, 계약, 인구 및 노동력, 생산력발전, 계급투쟁을 검토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노예제의 쇠퇴와 농노제의 형성에 관한 기독교 전파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고대고 중세 초기고 기독교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노예제를 인정하고 노예에 대한 노예주의 소유권과 지배권을 정당화하는 태도로 일관했을 뿐이다. 또한 농노제는 영주와 농노 사이에 서로 필요한 부역노동과 보호 및 재판을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계약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계약설 역시 역사적 사실과 배치된다. 중세 초기의 문헌기록들에 의하면 농민들은 자발적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력가들의 직간접적인 압력과 기만적인 술책으로 토지를 빼앗기고 예속되었다.
한편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이 노예제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농노제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한 결정적 동인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주장 역시 온전히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제정 시대에는 노예제적 생산양식의 해체를 초래할 만한 수준의 생산력발전이 없었고, 다만 중세에 들어 7세기 말경 이후 봉건적 생산력의 기초를 형성하는 농기구와 농업기술의 발명과 보급이 제법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도 로마제정 후기에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전개된 바가우다이 난이 노예제도와 권력당국에 일대 타격을 입히기는 했지만, 중세 초기에는 대규모의 계급투쟁이 없었다.
로마제정 후기부터 카롤링시대에 이르는 시기를 관통하는 분명하고 중요한 사실은 전반적으로 대토지소유제가 확대발전하는 가운데 인구감소 추세와 노동력 부족 사태가 지속되는 한편 로마제정 성립 이후 정복전쟁 종식으로 노예제가 쇠퇴하고 농노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유럽에서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은 정복전쟁 중단으로 노예노동력이 급감한 반면에 대토지소유는 확대되는 역사적 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주가 소모적인 노예노동으로부터 노동력이 자체적으로 재생산되는 농노노동으로 피착취노동의 구조적 변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력 차원의 조건변화를 원동력으로 하고, 로마제정 후기에 격렬하게 전개된 도망노예 등의 계급투쟁과 중세 초기의 농업생산력 발전을 추동력으로 해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은 자유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열등한 지위 가져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을 다루는 제2부의 첫 장에서는 봉건적 주종관계가 카롤링시대에 성립하기 전인 고대와 메로빙시대의 주종관계를 살핀다. 로마사회에는 ''clientela''라는 보호-피보호 관계의 주종제도가 존재했지만, 무장종사들의 조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로마에 정복되기 전의 켈트족사회에는 ''ambactus''라는 무장종사 조직이 존재하여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봉건적 주종관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게르만족사회의 종사제도(comitatus)였다. 메로빙시대에 접어들면 주로 게르만족 전래의 종사제도를 중심으로 한 고대적 형태의 주종제도와 보호관계가 서유럽 곳곳에서 존속하고 확산되어 나갔다. 메로빙시대 후기에는 무장종사의 충성과 군사봉사에 대한 대가로 은대지가 수여되는 변화가 일어난다.
근래 중세사 학계에는 ''봉건제''라는 개념과 이와 관련된 기타 개념들은 중세 및 근대의 법률가들이 만들어낸 순전히 이론적인 구조물이며, 적어도 11세기까지는 봉건적 주종관계와 봉토의 실재에 대한 확실하면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 S. 레이놀즈 등에 의해 제기되었다. 제2부의 2개 장에서 저자는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과 확산에 관해 칙령들을 비롯한 카롤링시대의 문헌기록을 꼼꼼히 분석하여 일종의 봉건제 허구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한다. 그 결과 이런 학설과는 달리, 카롤루스 대제시절 말까지는 봉건적 주종관계의 내용을 이루는 봉주와 봉신의 주요 의무들과 봉건적 주종관계 특유의 체결의식이 성립했고, 기병들의 전투장비도 11세기 이후의 기사 전성시대의 것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으며, 마상창시합과 사냥과 같은 기사문화도 형성되어 있었거나 형성되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9세기 말엽까지는 서유럽의 광대한 지역에서 봉건적 주종관계가 다층적으로 형성되고 공고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봉건적 주종관계와 은대지가 세습되고 봉신이 재판권과 같은 일부 공권을 사유화하여 행사하는 수준까지 봉건적 주종관계는 발전한다.
제3부에서는 "초기 프랑크사회에서의 로마인의 지위"라는 주제 아래 이행기의 인종문제를 논한다. 중세사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은 차별받지 아니했다는 여러 평등설이 지배적이었다. 프랑크왕국 초기의 살리법에서 로마인의 살인배상금이 프랑크인 배상금의 절반에 불과한 것은 로마인에게는 살인배상금을 나눠 갖는 게르만족의 친족제도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친족설, 프랑크 법 속의 ''Romanus''라는 말은 인종적 의미의 로마인이 아니라 천민 취급을 받았던 ''농민''이나 로마사회의 ''시의원(curiales)''이라는 학설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연구결과를 이용하여 이들 학설을 자세하게 따져 반박하고, 프랑크왕국에서 로마인은 자유인으로 인정받았지만 프랑크자유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작가 소개
이기영
2017년 현 동아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졸업. 동 대학 원 서양사학과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문학박사). 여러 차례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의 대학 연구소와 도서관에 서 서양 중세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며 연구한 바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중세 전기의 봉건사회 구조와 형성이다.
전공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이 있으며, 단독 저서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고전장원제와 봉건적 부역노동제도의 형성 - 서유럽 대륙지 역을 중심으로』(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이르미노 저,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의 영지명세장』(한국문화사, 2014), M. 블로크 저,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나남, 2007), M. 블로크 저, 『서양의 장원제 -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 한 비교사적 고찰』(까치, 2002), B. 슬리허 반 바트 저, 『서유럽농업사 500-1850』(까치, 1999).
▣ 주요 목차
책 머리말
제1부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
I. 농노제와 노예제의 개념- 기존의 개념규정에 대한 재검토
1. 머리말
2. 농노제와 노예제의 개념에 대한 기존 학계의 규정
3. 기존 개념규정의 문제점과 새로운 개념규정의 모색
4. 맺음말
II. 중세 초기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
1. 머리말
2. 중세 초의 서유럽사회는 노예제사회였는가?
3. 부자유인의 농노화 과정
4. 자유인의 농노화 과정과 통합적인 농노계급의 형성
5. 맺음말
III. 이행동인으로서의 기독교, 계약, 인구 및 노동력에 대한 검토
1. 머리말
2. 기독교 및 계약
3. 로마제정시대와 중세 초기의 인구동향
4. 노예노동력의 감퇴와 생산관계의 변화
5. 맺음말
IV. 이행동인으로서의 생산력발전 및 계급투쟁에 대한 검토 158
1. 머리말
2. 생산력발전
3. 계급투쟁
4. 맺음말
제2부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
V. 고대의 주종관계와 메로빙시대의 주종관계 발전 219
1. 머리말
2. 고대사회의 주종관계
3. 메로빙시대 전기의 주종관계
4. 메로빙시대 후기의 주종관계 발전
5. 맺음말
VI. 카롤링왕조와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
1. 머리말 267
2. 기본적 의무관계의 형성실태
3. 기타 여러 측면의 봉건적 주종제도 형성실태
4. 맺음말
VII. 카롤링시대의 봉건적 주종관계 확산
1. 머리말
2. 봉건적 주종관계의 다층화와 공고화
3. 봉건적 주종관계의 공간적 확산
4. 맺음말
제3부 이행기의 인종문제
VIII. 초기 프랑크사회에서의 로마인의 지위
1. 머리말
2. 살인배상금과 친족
3. 프랑크법 속의 ''Romanus''의 의미
4. 로마인 차별과 그 성격
5. 맺음말
전체 맺음말- 봉건사회의 성립시기에 대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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