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고요하지 않다 이종찬 회고록 2

고객평점
저자이종찬
출판사항한울, 발행일:2015/09/14
형태사항p.567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4606051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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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상하이 독립운동가의 집에서 한국 정치의 중심부까지
좌절과 절망 위에 도전과 희망으로 그려낸 풍경

“나 자신의 삶 역시 숲 속의 그것이었다. 나를 가리켜 자랑스러운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남보다 먼저 군문에 들어가 힘 가진 사람들 옆에서 혹은 권력기관에서 승승장구해 정치적 기반을 쌓고, 나아가 서울의 정치 중심지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성장한 숲에는 그렇게 순탄한 길만 있지 않았다. 민족 해방과 더불어 고국으로 귀환해서 우리 가족이 꾸린 삶은 지극히 가난했고, 분단 이후로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가문에 불온의 딱지가 붙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뒤 군문과 중앙정보부에서, 또 민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내가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곡절과 심연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숲은 결코 밖에서 보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숲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뜻밖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달리 말하면, 진정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부단한 싸움임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고 선택해가는 과정, 그것이 내가 거쳐 간 길이었다. 나는 늘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다.” _ ‘책머리에’ 중에서

이종찬의 80년 삶은 대한민국의 시간과 고스란히 함께했다. 그는 1936년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상지인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0대 소년 시절 광복과 함께 환국해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는 어려서부터 존경했던 백범의 갑작스러운 죽음, 곧이어 닥친 한국전쟁의 비극,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몰락 등 정국의 극심한 혼란을 직접 목격하는 가운데 인생의 길을 가다듬게 된다. 이때 그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그의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길을 따라 참여와 행동으로 나라의 진운에 함께할 방도를 모색하면서 군인의 길을 선택했고, 군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일찍이 ‘정보’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이종찬은 1965년부터 1980년까지 역사의 격변기에 국가 정보기관에 복무하면서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각종 간첩단 사건과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락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보부의 선거 공작과 7·4 남북공동성명, 10월유신과 윤필용 사건, 10·26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이종찬은 나라의 살림살이와 위기관리, 사회 각 분야의 운영과 소통, 대립되는 입장의 조율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고 체득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익명의 삶’을 살았다. 그는 세대를 앞서 그렇게 익명으로 살았던 우당 선생의 정신과 삶이 자신에게서 똑같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고 ‘역사의 계승’에 무거운 책무감을 가졌다.

이종찬은 1980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자 이를 적극 활용해 이 시대와 나라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의 길에 나섰다. 제11대부터 제14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줄곧 서울 종로·중구 또는 종로의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민의의 엄중한 요구를 행동의 토대로 삼았다. ‘51% 의회주의자’였던 그는 여당 내에서 누구보다도 국민 앞에 겸허했으며, 국회 운영의 가장 중요한 토대도 야당과의 대화에서 찾았다. 이 시절 그는 자신이 속한 민주정의당을 ‘민족의 정당’,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그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1990년 무원칙한 3당 합당과 1992년 변칙적 대통령 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이종찬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10여 년간 몸담았던 정당을 떠나 한국 정치의 미래와 자신의 행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모색기를 보냈다. 이 시기는 그에게 쓰라린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간 걸어온 길을 자유롭고 허심탄회하게 돌아보며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값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모색은 귀중한 결실을 낳았다. 이종찬은 역사의 요청에 따라 1995년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했고, 마침내 1998년 ‘국민의 정부’ 탄생으로 자신이 주장해온 ‘수평적 정권 교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돌아와 이 기관의 개혁에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

이종찬은 20년에 걸친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부끄러움 없는 삶이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긴 스펙트럼의 삶을 마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와 같은 겸손한 자평을 넘어 ‘자유인’인 동시에 ‘민족주의자’로서 그가 걸어온 경이로운 행로를 만나게 된다. 그 행로는 결코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되 우리 사회 시민의 상식과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었으며, 이종찬 개인의 꿈을 모두 실현한 것은 아니었으되 한 인간이 의지와 성찰과 결단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감당해야 했던 분투 과정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종찬의 삶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숲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이종찬의 삶을 돌아보는 사적인 기록인 동시에, 그가 큰 기대를 안고 또 때로는 그만큼 큰 좌절을 맞보며 몸소 부딪혀온 대한민국 정치를 낱낱이 고하는 공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조부 이회영이 그러했듯 이종찬은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을 살고자 진력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은 그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았고,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대한민국 역사만큼이나 부침을 거듭했다.

이제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가 그가 살아온 시간들의 연장선상에 놓인 우리의 미래를 가꾸는 데 작은 밑거름으로 쓰인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한 것이다.

책의 구성과 특징

이 책은 총 2권, 15개 장으로 구성되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간다. 1권(1~8장)은 해방 이후 귀국해 육군과 중앙정보부를 거쳐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던 시기까지를 다룬다. 이어서 2권(9~15장)은 제12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시작해 직선제 개헌과 노태우 정권의 탄생, 3당 합당 이후의 방황, 그리고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김대중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취임해 이 기관을 개혁하던 시기까지를 다룬다.
회고록은 한 개인의 기억을 담은 기록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실관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한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에 나아가 생명력을 얻는다. 이 회고록에서 소개된 몇몇 기록들, 예컨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이시영에 관한 평가, 유신 선포 및 유신 정권의 경과, 김대중의 대권 도전 과정,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 김대중 정권의 공과 등에 관한 기록만 보더라도, 이종찬이 이 책을 통해 애써 남기고 전하려 한 기억들이 그저 다들 아는 옛날이야기나 자극적인 비화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엮는 과정에서 그는 한국 현대사의 미세한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기억과 주관을 바탕으로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나간다. 그럼으로써 더욱더 역동적인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런 한 개인의 기록이 같은 시간을 훑어낸 역사 기록보다도 오히려 더 생생하고 흥미로운 역사 읽기로 독자를 이끌 수 있는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종찬은 이 회고록에서 사건과 현장을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물론 이는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꼼꼼하게 모으고 기록해둔 엄청난 분량의 자료가 있기에 가능했다. 상하이에서 맞은 광복의 날 풍경, 소년의 눈으로 본 김구 암살 이후의 현장, 한국전쟁 당시 모습 등을 기록한 글을 읽다 보면, 그때 그곳의 정경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중앙정보부 재직 시절 김형욱·이후락 부장과 얽힌 일화에서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마저 느끼게 된다. 조영래가 변호사가 된 과정이라든가 부인 윤장순 여사와 어느 장군 부인의 만남에 얽힌 이야기에서도 특유의 구체적이고 현장감 있는 기술이 빛을 발한다. 이렇게 서술된 이야기들은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후대에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원할 것이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남길 때에도 그런 욕망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너무 노골적이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할 지경에 이르러 읽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회고록에서 이종찬은 자신은 물론 다른 누구도 미화하지 않고자 한 마디 평가를 위해 먼저 백 마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며, 그렇게 도달한 평가에서도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예컨대 민정당 해체부터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탈당, 신당 창당과 국민당 합류, 그리고 파탄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에 관한 처절한 자기고백이다. 사실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취사하고 자타를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자신의 치적을 앞세우는 회고록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지은이 자신의 생각이 회고록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솔직한 자기고백이 있기에 실패를 딛고 내딛은 새로운 발걸음도 더욱더 설득력을 얻는다.

버린 것이 더 많았다는데도 글자 수 77만 자, 200자 원고지 약 4000매에 달하는 기록 속에서 지은이는 지면을 포장과 자랑으로 채워 자기만족을 삼으려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엮고 군데군데 자극적인 비화로 양념해 눈길을 사로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힌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그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바를 솔직하게 고백했기 때문일 것이다.

※ 이 책 내용 중 일부는 ≪동아일보≫에 “憧憬 이종찬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41회 연재되어 소개된 바 있습니다.
※ 2015년 9월 17일 15시 프레스센터에서 『숲은 고요하지 않다』 출간기념회가 열렸습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종찬
호는 삼인(森人)이다.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아버지 이규학(이회영의 아들)과 어머니 조계진(대원군의 외손녀)의 3남으로 태어나 광복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해 서울에 정착했다.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에 제16기로 입교해 졸업과 함께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초등학교에서 만난 윤장순과 소위 시절에 결혼해 이후 1남 2녀를 두었다.

1972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중국의 행정제도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3년부터 영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해, 중앙정보부 국제문제담당 부국장, 총무국장, 기조실장을 두루 거치면서 10·26 사태 이후 중앙정보부 개혁에 앞장섰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게 되면서 중앙정보부를 떠났으며,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서울 종로·중구)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제14대 국회의원까지 4선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국회 운영위원장,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한영의원친선협회 회장, 한중문화협회 회장, 정무1장관, 당 사무총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

3당 합당 이후 1992년 민주자유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불공정 경선에 항의해 경선을 거부하고 탈당했다. 같은 해 새한국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 및 대통령 후보에 선임되어 대선에 도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한 뒤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부총재가 되어 1997년 제15대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여야 간 정권 인수·인계 작업을 지휘했다.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명칭 변경) 부장으로 취임해 17여 년 만에 국가 정보기관으로 돌아왔다. 1999년 다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부총재로 위촉되었으며,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가 해체됨과 동시에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새천년민주당 고문직과 서울 종로지구당 위원장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 동북아경제연구소(Northeast Economic Forum)와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Korea Institute)에서 한국의 물류 발전 가능성 등에 관해 연구했다. 2005년 한국선진화포럼 창립에 참여해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는 IBC(International Business Center)포럼의 이사장으로도 재직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독립운동사를 기리는 데도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이종찬은, 국회의원 시절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추진위원과 민주정의당 민족사관정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바른 역사 세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조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우당기념관을 세우고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를 창립했으며, 현재도 우당장학회를 이끌며 독립운동 가족을 후원하고 있다. 2005년에는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으며, 2015년부터는 사단법인 광복회 이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념하고 알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보국훈장 삼일장, 홍조근정훈장, 청조근정훈장, 영국 정부의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 훈장을 수여받았다. 저서로는 『민족의 종을 울리며 민주의 탑을 쌓으며』(1987), 『개혁과 온건주의』(1987), 『무엇을 말했는가: 이종찬 의원 국회발언 모음』(1992), 『디지털로 확 바꿔라』(2000), 『세계로 가는 길목을 잡아라』(2002)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9_ ‘정치 복원’ 시대
2·12 총선에서 ‘민심의 홍수’를 만나다 / 전례 없는 개원 협상: ‘대화’로 ‘돌파구’를 마련하다 / 학원안정법의 희생양들 / 노태우, ‘박종철 사건’으로 경쟁자들 정리 / ‘6월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 / ‘지는 해’의 착각, ‘뜨는 해’의 술수 / “소선거구제는 망국적 제도!” / 정말 힘들게 오른 ‘3선 고지’ / ‘여소야대’의 뜨거운 맛 / ‘중간평가’로 정국 돌파하라 했건만 / 징검다리 ‘동해 재선거’

10_ 망국적 3당 합당
‘허공의 메아리’ 혹은 역린 / 무력하게 지켜본 3당 합당

11_ 민주자유당 대선 후보 경선
제14대 총선 참패와 김영삼의 ‘국면 뒤집기’ / 청와대의 ‘박태준 비토’ / 김종필의 밀약 / 민정계 후보 단일화 / 경선 전초전 / “김영삼과 김종필의 시대는 갔다” / 아내가 김옥숙 여사를 만나다 / 최후의 선택을 향해 /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12_ 새로운 모색
‘새정치모임’ 결성과 YS의 ‘백기 투항’ 요구 / ‘독립운동 세력이 왜 퇴조했는지 알겠다!’ / 신당 창당 작업과 김우중의 아리송한 행보 / 새한국당 창당: ‘수평적 정권 교체’를 위해 / 눈물의 합당 / 처절한 파탄 / ‘야당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 민주당 합류: ‘정치 초심’으로 돌아가기 / 1995년 지방선거의 명암

13_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15대 총선 패배를 딛고 대선기획팀을 꾸리다 / DJ 비서실장직을 고사하다 / 야권 단일화 작업에 끼어든 JP의 ‘정치적 음모’ / ‘DJP’를 넘어 ‘DJT’로! / ‘준비된 대통령’론으로 ‘비자금’ 파고를 넘다 / 외래형 책사 vs. 토착형 책사 / 마지막 고빗길 ‘외환 사태’

14_ 헌정 사상 최초의 인수위 활동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의 나날들 / 사상 첫 정권인수위원회의 명과 암 / ‘국민의 정부’의 새 지평을 열다

15_ 국정원에서 바라본 세상
17년 5개월 만의 귀향 / 북풍과 총풍의 전모 / IMF 사태에 자극받아 국제경제조사연구소 신설: 경제 시스템 붕괴되면 국가 안보도 동반 약화 / 북한 읽기의 어려움 / 국내정보에서 손 떼기는 쉽지 않았다: 방향 전환을 위한 시도와 시행착오 / 국가 정보기관장의 평양행: 그곳에는 무슨 좋은 것이 있을까 / 대우 해체의 막전 막후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야기 / ‘통신감청 논란’의 뿌리 /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작가 소개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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