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932년 1월 8일, 대일본 제국의 중심부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 천황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 것. 이 사건의 주인공은 거사를 앞두고 찍은 사진에서 수류탄을 양손에 쥐고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그는 어떻게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초연할 수 있었을까?
이봉창의 이 기묘한 사진은 독립운동사에서 유명한 대표적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이 사진이 합성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언뜻 얼굴과 몸의 부조화만 봐도 의심이 들지만, 만들어진 사진이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의미를 쌓아가는 동안 당연해진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과 사실의 차이, 이봉창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인간과 영웅 사이, 박제된 독립운동사를 벗어나다
이봉창 의거를 기획한 김구는 사건 직후 〈동경작안의 진상〉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의거의 전모와 이봉창이 어떤 사람인지를 밝힌 이 글은 이봉창의 사진과 맞물려 이봉창에 관한 공식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고 있는 김구의 이 글은 이봉창에 대한 부분적 진실만을 보여 줄 뿐이다. 대일본 제국의 모던 보이로 쾌락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이봉창이 어떤 이유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로 변신했는지 이봉창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 조응하며 변해간 역동적인 면모를 박제된 독립운동사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의 공식 기억에 대한 도전이자 해체 작업으로 기획되었다. 국가의 공식 기억으로 박제된 독립운동사의 틀을 벗어나 인간의 역사로서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를 복원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용산-오사카-도쿄-상하이, 동북아시아를 횡단한 식민지 청년 이주 노동자
이봉창은 보통의 독립운동가와 다른 삶을 살았다. 문창 보통 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상급 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과자 가게 점원, 약국 점원, 용산역 연결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도항까지 결심하게 되는 그의 삶은 밥벌이와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일본에서 보낸 5년간 오카다 상회 총무, 표구점 심부름, 부두 노역, 스미토모 신동소 인부, 비누 가게 점원, 요리점 점원, 해산물 도매상 점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 나도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면 차별이나 학대를 받지 않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도 내가 조선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부탁하는 쪽이 나쁜 것이다. 유치한 것이다. 내가 조선인임을 생각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얼굴을 내미는 것이 잘못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같은 인간인데도 똑같이 대접해 주지 않는다. 나도 일본인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신일본인이다.
(…) 그때 내 삶이 가치 없다고 깨달았으며 이 세상이 얄궂다는 것을 았았다. 그러나 상대는 일본인이다. 나는 내가 조선인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혹 억울하게 내던져지고 차인다 하더라도 말없이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체념할 수밖에 없다. 나도 일본으로 태어났으면 차별이나 학대를 받지 않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 중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고민인 청년에게 ‘민족’은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일제 강점기라는 모순에 가득 찬 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용산역에서 일할 때에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진급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일본에서는 천황의 행차를 보러 갔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열흘간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부두 노역을 하면서도 기노시타 쇼조라는 일본 이름을 썼을 때와 이봉창이라는 한글 이름을 썼을 때 불과 하루 만에 임금이 달라지는 일도 있었다.
영화와 음악을 즐겼고 술 때문에 빚에 쪼들리면서도 카페와 유곽을 드나들며 근대 소비문화를 향유하던 모던 보이의 ‘신일본인’으로 살겠다는 꿈은 시대에 의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분노와 체념을 홀로 머금고 있던 이봉창은 김구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육신의 쾌락이 아닌 조국의 독립이라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 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픽션으로 새로운 역사 읽기
술은 한량이 없고, 여색은 제한이 없었다. 더구나 일본 노래는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훙커우에 거주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서 그의 친구가 된 왜인 남녀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왜 경찰까지 손아귀에 휘어 놓고 마음대로 현혹했고, ○○영사의 안마당에는 무상출입했다. 그가 상하이를 떠날 때에 그의 옷깃을 쥐고 눈물지은 아녀자도 적지 아니했지만 부두까지 나와 가는 길이 평안하기를 축하하는 친우 중에는 왜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 거짓 왜인 기노시타 쇼조가 왜황을 죽이려고 두 개의 작탄을 품고 가는 것은 그와 내가 알았을 뿐이다.
- 김구, 〈동경작안의 진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는 극소수에 불과한 직업이었다. 이들은 가문으로 연결되거나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전문적 교육을 받은 직업적 혁명가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일본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이봉창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봉창의 의거는 김구가 비밀리에 추진한 거사였기에 의거 이후 이봉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위인전의 공식을 따르는 전형적 삶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봉창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번 개정판의 목표는 식민지 청년 노동자의 삶과 일제 식민 통치 정책의 실패를 보여 주고, 이봉창의 삶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현재성의 문제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봉창의 옥중수기인 〈상신서〉, 김구가 쓴 〈동경작안의 진상〉 등 1차 자료를 토대로 일제 강점기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하려 했다. 다큐멘터리 픽션 형식으로 새롭게 집필된 원고는 한 장의 사진에 갇혀 있던 이봉창의 다양한 삶의 면모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배경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에 한국역사연구회에 연구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했고, 현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중이다. 석사과정 때부터 한국현대사를 공부했고,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담보한 대중적인 역사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향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1,2,3)』(역사비평사)의 공동기획과 집필에 참여했고,『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를 기획했다. 1876년의 백범의 출생으로부터 백범이 살았던 70여 년의 활동을 추적하고 객관적인 자료와 비교 검토하는 작업은 고단한 번역작업과 함께 오랜 시간의 인내와 준비를 요구했다. 그래서『백범일지』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해제와 새로운 해석을 꼼꼼히 달아 일반 독자들이 『백범일지』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읽도록 하는 작업을 끝마치는 데 저자는 10여 년 동안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을 “필자의 새로운 삶의 ‘탄생’을 알리는 이정표이자, 필자가 구상하는 ‘백범학 시리즈’의 첫 결실이다”라고 선언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 두 장의 사진, 역사의 진실에 의문을 던지다
1932년 1월 8일, 운명의 그날
취중진담, “왜 천황을 죽이지 못하오?”
용산 도락가 이진구의 둘째 아들
식민지 청년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행을 결심하다
‘신일본인’ 기노시타 쇼조
유치장에 갇혀 민족을 발견하다
나는 누구인가?
도쿄에도 희망은 없었다
상하이에서 천황 폭살을 결심하다
거사 준비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
영원한 작별
다시 일본으로
현장 답사
의혹과 진실
이봉창의 힘
왜 천황을 죽여야 하는가?
에필로그 | 박제된 독립운동사를 벗어나 이봉창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화보 | 이봉창과 동북아시아 근대의 풍경
참고 문헌
찾아보기
1932년 1월 8일, 대일본 제국의 중심부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 천황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 것. 이 사건의 주인공은 거사를 앞두고 찍은 사진에서 수류탄을 양손에 쥐고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그는 어떻게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초연할 수 있었을까?
이봉창의 이 기묘한 사진은 독립운동사에서 유명한 대표적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이 사진이 합성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언뜻 얼굴과 몸의 부조화만 봐도 의심이 들지만, 만들어진 사진이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의미를 쌓아가는 동안 당연해진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과 사실의 차이, 이봉창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인간과 영웅 사이, 박제된 독립운동사를 벗어나다
이봉창 의거를 기획한 김구는 사건 직후 〈동경작안의 진상〉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의거의 전모와 이봉창이 어떤 사람인지를 밝힌 이 글은 이봉창의 사진과 맞물려 이봉창에 관한 공식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고 있는 김구의 이 글은 이봉창에 대한 부분적 진실만을 보여 줄 뿐이다. 대일본 제국의 모던 보이로 쾌락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이봉창이 어떤 이유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로 변신했는지 이봉창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 조응하며 변해간 역동적인 면모를 박제된 독립운동사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의 공식 기억에 대한 도전이자 해체 작업으로 기획되었다. 국가의 공식 기억으로 박제된 독립운동사의 틀을 벗어나 인간의 역사로서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를 복원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용산-오사카-도쿄-상하이, 동북아시아를 횡단한 식민지 청년 이주 노동자
이봉창은 보통의 독립운동가와 다른 삶을 살았다. 문창 보통 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상급 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과자 가게 점원, 약국 점원, 용산역 연결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도항까지 결심하게 되는 그의 삶은 밥벌이와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일본에서 보낸 5년간 오카다 상회 총무, 표구점 심부름, 부두 노역, 스미토모 신동소 인부, 비누 가게 점원, 요리점 점원, 해산물 도매상 점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 나도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면 차별이나 학대를 받지 않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도 내가 조선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부탁하는 쪽이 나쁜 것이다. 유치한 것이다. 내가 조선인임을 생각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얼굴을 내미는 것이 잘못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같은 인간인데도 똑같이 대접해 주지 않는다. 나도 일본인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신일본인이다.
(…) 그때 내 삶이 가치 없다고 깨달았으며 이 세상이 얄궂다는 것을 았았다. 그러나 상대는 일본인이다. 나는 내가 조선인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혹 억울하게 내던져지고 차인다 하더라도 말없이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체념할 수밖에 없다. 나도 일본으로 태어났으면 차별이나 학대를 받지 않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 중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고민인 청년에게 ‘민족’은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일제 강점기라는 모순에 가득 찬 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용산역에서 일할 때에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진급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일본에서는 천황의 행차를 보러 갔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열흘간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부두 노역을 하면서도 기노시타 쇼조라는 일본 이름을 썼을 때와 이봉창이라는 한글 이름을 썼을 때 불과 하루 만에 임금이 달라지는 일도 있었다.
영화와 음악을 즐겼고 술 때문에 빚에 쪼들리면서도 카페와 유곽을 드나들며 근대 소비문화를 향유하던 모던 보이의 ‘신일본인’으로 살겠다는 꿈은 시대에 의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분노와 체념을 홀로 머금고 있던 이봉창은 김구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육신의 쾌락이 아닌 조국의 독립이라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 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픽션으로 새로운 역사 읽기
술은 한량이 없고, 여색은 제한이 없었다. 더구나 일본 노래는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훙커우에 거주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서 그의 친구가 된 왜인 남녀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심지어 왜 경찰까지 손아귀에 휘어 놓고 마음대로 현혹했고, ○○영사의 안마당에는 무상출입했다. 그가 상하이를 떠날 때에 그의 옷깃을 쥐고 눈물지은 아녀자도 적지 아니했지만 부두까지 나와 가는 길이 평안하기를 축하하는 친우 중에는 왜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 거짓 왜인 기노시타 쇼조가 왜황을 죽이려고 두 개의 작탄을 품고 가는 것은 그와 내가 알았을 뿐이다.
- 김구, 〈동경작안의 진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는 극소수에 불과한 직업이었다. 이들은 가문으로 연결되거나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전문적 교육을 받은 직업적 혁명가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일본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이봉창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봉창의 의거는 김구가 비밀리에 추진한 거사였기에 의거 이후 이봉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위인전의 공식을 따르는 전형적 삶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봉창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번 개정판의 목표는 식민지 청년 노동자의 삶과 일제 식민 통치 정책의 실패를 보여 주고, 이봉창의 삶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현재성의 문제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봉창의 옥중수기인 〈상신서〉, 김구가 쓴 〈동경작안의 진상〉 등 1차 자료를 토대로 일제 강점기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하려 했다. 다큐멘터리 픽션 형식으로 새롭게 집필된 원고는 한 장의 사진에 갇혀 있던 이봉창의 다양한 삶의 면모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배경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에 한국역사연구회에 연구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했고, 현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중이다. 석사과정 때부터 한국현대사를 공부했고, 박사과정에 들어오면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담보한 대중적인 역사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향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1,2,3)』(역사비평사)의 공동기획과 집필에 참여했고,『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를 기획했다. 1876년의 백범의 출생으로부터 백범이 살았던 70여 년의 활동을 추적하고 객관적인 자료와 비교 검토하는 작업은 고단한 번역작업과 함께 오랜 시간의 인내와 준비를 요구했다. 그래서『백범일지』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해제와 새로운 해석을 꼼꼼히 달아 일반 독자들이 『백범일지』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읽도록 하는 작업을 끝마치는 데 저자는 10여 년 동안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을 “필자의 새로운 삶의 ‘탄생’을 알리는 이정표이자, 필자가 구상하는 ‘백범학 시리즈’의 첫 결실이다”라고 선언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 두 장의 사진, 역사의 진실에 의문을 던지다
1932년 1월 8일, 운명의 그날
취중진담, “왜 천황을 죽이지 못하오?”
용산 도락가 이진구의 둘째 아들
식민지 청년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행을 결심하다
‘신일본인’ 기노시타 쇼조
유치장에 갇혀 민족을 발견하다
나는 누구인가?
도쿄에도 희망은 없었다
상하이에서 천황 폭살을 결심하다
거사 준비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
영원한 작별
다시 일본으로
현장 답사
의혹과 진실
이봉창의 힘
왜 천황을 죽여야 하는가?
에필로그 | 박제된 독립운동사를 벗어나 이봉창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화보 | 이봉창과 동북아시아 근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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