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고객평점
저자미야지마 히로시
출판사항너머북스, 발행일:2015/11/30
형태사항p.628 국판:22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60639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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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서구와 근대가 만든 시간관(역사관)을 제거하고
동아시아 역사상을 다시 구축하자”

역사, 철학, 인류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30여 명의 연구자가
모여 진행한 세미나 40회, 워크숍과 학술대회 3차례의 성과를 담은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의 첫 책

이 책의 제목인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라는 질문은 서구적 근대가 만든 표준적인 발전론(목적론)의 역사인식이나 시간관으로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없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한국사회의 통념은 아직도 한국과 동아시아 세계의 ‘근대’를 19세기 중반 ‘서구의 충격’ 이후 형성된 것으로 바라본다. 능력에 기반을 둔 관료제와 과거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특권이 통하지 않는 토지소유구조, 당시로선 가장 개명한 합리적 사상이었던 주자학 등,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에 나타나는 많은 것들이 ‘서구적 근대’를 수용하기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으나 단지 그것이 ‘서구의 충격’을 받기 이전, 서구를 수용하기 이전의 현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근대적인 것’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을 규정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세계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대두하면서 ‘중국과 동아시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21세기 패러다임이 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또한 자본주의와 지속가능성, 환경과 생태 등 서구적 근대 문명의 부정적 측면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조차도 마치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서구 중심, 근대 중심주의의 시각에 포섭된 양상이다. 이 책이 던지는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의 질문은 동아시아 사회가 서구적 근대와 같은 시계를 차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와 ‘근대’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관념을 제거한 뒤 다시 동아시아 역사상을 구축하자는 촉구이다.

동아시아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 되었던 서구 중심적, 근대 중심적 인식을 넘어선 새로운 동아시아 역사상의 구축을 모토로 한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의 특징은 첫째, ‘19세기의 동아시아’에 주목한다. 19세기는 서구에서 형성되어간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가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수용되는 시기이자, 서구와 동아시아가 본격적으로 만나고, 전근대와 근대의 결절점을 이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위를 넘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운데 구체적인 사례연구로 동아시아 각국을 넘나들고 현재와 전근대를 연결하며 ‘어떻게’의 문제에 답변을 하고 있으며, 이를 더욱 근본적인 ‘무엇을 위해’, ‘왜’라는 질문에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셋째,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19세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만 서구적 근대를 향해 달려 나가는 종래의 시대 묘사나 연구들과 매우 다르고, 나아가ㅡ 연구시각에 대한 전복적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동아시아의 상호교류와 트랜스내셔널한 시점의 접근, 문화와 사유, 삶의 방식을 유교와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동아시아 역사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엮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의 미야지마 히로시, 배항섭 선생이 주도하는 ‘19세기의 동아시아’ 연구모임은 지난 4년 동안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대만사, 베트남사 등의 역사학과 철학, 인류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30여명의 연구자가 모여 세미나 40여회, 워크숍과 학술대회 각 3차례를 진행하였고, 그 성과를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로 담아낼 예정이다.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는 그 첫 책이다.

서구중심주의의 쌍생아, 근대중심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우리는 ‘전근대적’ 운운하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정작 ‘전근대’와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몰상식한’, ‘무식한’이란 형용사를 ‘전근대적’이란 용어와 혼동하는 것이다. 역사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한국사의 경험과 현상을 ‘한계’나 ‘미흡’, ‘결함’이나 ‘비정상’으로 간주할 때 쓰인다.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가 시종 문제를 삼는 ‘근대 중심주의’에 압도된 영향 때문이다. 근대 중심주의 시간관(역사관)은, 근대는 새로운 체제·가속·혁명으로, 전근대는 낡고 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비가역적으로 지나가버리는 과거 전체를 처음부터 무(無)화한다. 근대를 목적론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대로 설정하며 ‘전근대’를 종속시키는 것, 그것이 근대 중심주의이다. 따라서 전근대-근대의 시기 구분은 처음부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전근대-근대의 시기 구분이 중국은 아편 전쟁, 일본은 메이지 유신, 한국은 개항기로 분기점을 나누어왔다. 역사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다. 이는 동아시아 세계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근대’를 선취한 ‘서구의 충격’에 따라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근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분하는 순간 동아시아 전근대의 개성적 경험이 지닌 풍부한 가치나 가능성을 스스로 봉인하며, 전근대는 근대에 종속된다. 이는 전근대로부터 근대의 너머를 바라볼 가능성마저 봉쇄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의 토지소유권은 서구의 중세와 달리 ‘근대적’ 내지 ‘일물일권적·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나 일본의 경우 지주제 역시 배타적 소유권이 확립된 ‘근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달리 조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적 질서와 무관한 ‘전근대’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들은“조선사회가 비근대사회였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여 소유권도 비근대성을 띠고 있었다.”거나, 대한제국기를 포함하여 조선 왕조는 어디까지나 전근대적 범주에 속하였다고 단정함으로써 기껏 발견한 조선사회의 주요한 특성을 서구와 근대중심주의의 인식틀 속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토지소유권에서 보이는 특징이 다른 분야와 어떤 내적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처음부터 차단해버렸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서구의 충격’을 일방적으로 강조해온 메이지유신의 연구와 반대로, 도쿠가와 일본의 막부체제가 ‘서구의 충격’ 이전에 이미 ‘유교적 영향’으로 동요·변질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메이지유신을 바라본 최근의 연구(이 책의 9장 박훈의 ‘사무라이의 ‘사화’,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참조)가 주목된다. 그 역시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 기반을 둔 설명틀을 거부한다. 종래의 주류적 견해에 따르면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일본은 유학의 영향력이 약해서 유학을 쉽게 버릴 수 있었다는 점, 곧 전통과 단절하기 쉬웠음이 강조되어왔다. 그러나 박훈 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는 오히려 유교라는 전통적 요소가 메이지유신의 성공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전통과 근대를 단절이 아닌 연속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역사상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배항섭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여 서구·근대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서구의 충격’이후 구성된 동아시아 역사상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며, 나아가 서구적 근대만을 향해 달려 나가는 근대 이후 동아시아의 학문과 지식체계에 대한 비판”이라 하며, 이를 위해 동아시아 세계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접근이나 비교사적 접근과 함께 ‘시간을 넘나드는’ 접근, 그리고 전근대와 근대를 비교하거나 서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접근을 제안한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위치와 새로운 질문들

배항섭 교수와 함께 이 책을 엮은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이른바 ‘소농사회론’이라는 담론으로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특질을 유럽적 기준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통성에 기반을 두고 이해함으로써 유럽과 다른 동아시아사의 독자적 모델을 제시한 바 있고, 중국의 명대 이후를 ‘근대’로 파악하는 ‘유교적 근대론’을 펼친 바 있다.(『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동아시아의 근대는 19세기가 아니라 가족이나 촌락 등 사회의 가장 기초적 단위를 구성하는 조직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한 16세기 이후로 보아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의 첫 장에 실린 「‘유교적 근대론’과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위치」는 일찍이 그가 제시한 유교적 근대론의 연장선에 있는 글이다. ‘유교적 근대론’의 요체를 중국과 한국, 일본이 오늘날까지도 유교적 근대의 규정성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을 이해하는 데 두고 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의 명·청기를 유교적 근대로, 20세기 이후를 유교적 근대와 서구적 근대가 병존(갈등, 대립, 수용 등)하는 시기로 파악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은 유교적 근대의 주변적 위치에서 서구적 근대의 주변적 위치로 이행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 글에서는 주변적 존재였던 일본과 한국이 보이는 주변적 자각과 아이덴티티 확립 면에서의 대조적 성격을 주자학이 수용되는 과정, 주자학에 대한 양국 지식인들의 태도 등과 연결하여 접근하고 있다.

“일본과 조선, 한국의 대조적인 모습은 국가를 파악하는 방법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일본에서 국가를 상대화하고 초월하는 이념에 기반을 두고 현실의 국가를 비판하는 사상은 여태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도쿠가와 시대의 유교부터 전전의 마르크스주의, 전후의 민주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며, 민족주의는 의식되지 않고 체질화된 듯하다. 그에 반해 주자학을 수용한 조선에서 유교적 이념은 왕조국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앞서 소개한 요코이와 같이 조리를 지키는 것이 나라의 존망보다 중요하다는 사고는 일본에서는 드문 예였으나 조선에서는 무척 흔한 것이었다. 18세기 말 가톨릭에 입신했던 사람 사이에서는 정부의 탄압정책에 대항해 유럽에 군사개입을 호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4년 8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라 전체가 환영하는 방식은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58쪽 ‘국가를 절대화하는 일본과 상대화하는 한국’ 중에서

동아시아사 연구가 왜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시각 내지 방법을 가지고 접근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이 책의 1부 ‘동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는 앞의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글 외에도 3편이 더 실려 있다. 배항섭 교수의 글은 동아시아 연구가 서구중심주의는 물론, 그 쌍생아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전근대와 근대, 양자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하나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황쥔지에 교수(국립대만대)는 서구중심적 패러다임을 넘어서기 위한 동아시아적 관점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정리하였다. 존 던컨 교수(UCLA)는 최근 세계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근세(early modern)'' 개념이 조선시대에 적용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그 대신 잭 골드스톤의 ‘선진화한 유기적 사회(advanced organic society)'' 개념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아시아 사회들이 왜 19세기 말 서구제국주의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데 실패했는지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선진화한 유기적 사회’의 어떠한 측면이 동아시아가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를 따라잡거나 심지어 능가하게 했는지를 묻는 것으로 학문적 초점을 변화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연동하는 동아시아

이 책의 2부 ‘연동하는 동아시아’는 모두 일국사적 시각을 넘어 변경사적 시각, 동아시아 혹은 그 범위를 벗어나는 맥락에서 이루어진 상호교류와 연동하는 역사를 그려낸 글들이다. 이러한 접근은 동일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일국사나 전통적인 국가 중심적 인식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왕의 역사상과는 얼마나 다른 역사상을 구축해나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내현 교수(고려대 역사교육과)는 17세기 후반 이후 조선을 매개로 한 한중일 ‘은’ 교역 체제가 조선 내부는 물론 동아시아 각 지역과 각국 간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트랜스내셔널한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 은의 이동로에 위치한 쓰시마나 조선의 도시들에도 경제적 혜택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 가까운 중국 변방 지역의 경제와 상인들의 성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김선민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는 여진-만주와 조선의 관계에 대한 일부 연구들이 ‘관계사’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일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진-만주족을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 고정적 집단으로 보는 국가중심적 인식틀을 대신하여 변경사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그들과 조선의 관계를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조성산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서구의 충격’ 이후 동아시아 유교 지식인들의 사유변화를 한문을 매개로 한 동문(同文)의식과 연결하여 파악한 글이다. 18세기 이래 전례 없이 강화된 동문의식은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전개된 ‘아시아 연대론’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윤대영 교수(서강대 동아연구소)는 베트남 하이퐁의 풍경과 애환을 다룬다. 하이퐁이 이미 전통시대부터 중국, 동남아, 서구와 맺고 있던 대외관계와 1870년대부터 프랑스에 의해 구축된 항만 인프라 등에 주목하면서 하이퐁이 근대 항구로 등장해나가는 과정을 검토하며 전통과 근대를 연결하는 접근을 보여준다.

유교와 동아시아

19세기 동아시아사를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유교이다. 유교는 동아시아 각국의 전통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와 상호 교섭하고 갈등, 대립, 경쟁하면서 형성되어간 근대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박훈 교수의 글은 앞서 소개한 것처럼 메이지유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18세기 후반부터 유교가 확산되고 그에 따라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형성되면서 무사의 ‘사(士)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소현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법문학적 관점에서 유교적 사법전통이 보여주는 정(情), 리(理), 법(法)의 복합적 상호작용과 의미를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이분법적으로 단절하여 이해해온 전통법과 근대법 간의 괴리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본다. 유교적 사법전통에서 보이는 정리(情理)와 법의 관계는 재판관의 자의적 변덕이나 법에 대한 무지를 은폐하는 변명이 아니라, 일종의 내면화된 실천원리로 작동한 것이었으며, 이는 현재 법문학 운동가들에게도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김건태 교수(서울대 국사학과)는 19세기 김흥락의 가작 경영에서 보이는 핵심적 특징으로 집약화와 다각화를 통한 자급, 안민(安民) 추구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겨냥하여 소품종 대량생산을 추구한 자본주의적 농업과는 성격을 상당히 달리하는 것으로 그 바탕에는 맹자 이래 추구되어온 유교의 가르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이해하였다. 송양섭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의 글은 정약용의 지방재정 개혁 방안을 중국 고대의 유교적 제도문물의 이상과 관련지어 분석한 것이다.

비교사로 본 동아시아

조선과 명·청의 재정운영, 식민지 시기 조선과 대만의 자치운동을 비교사적으로 접근한 이 책의 4부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조선, 조선과 대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각국의 제도가 보이는 공통점과 차이를 상호 유기적으로 관련지어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 근대 이후의 사회현상 내지 사상적 지형의 차이를 전근대사회의 경험과 연결하여 해명함으로써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손병규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조선후기와 명·청시대 재정운용의 원리와 방식을 비교한다. 조선의 재정은 중국에 비해 중앙집권화 정도 면에서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조세의 금납화 수준이나 시장의 발달 정도와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는 상업의 발달에 따라 조세를 은으로 납부하고 수송비용은 시장에 맡길 수 있었지만, 조선의 경우 후기에도 현물경제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폐로 통일되지 못한 여러 형태의 세물이 중앙재무기관을 경과하지 않는 분배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명기 교수(국민대 국사학과)는 1920년대 대만의 자치운동이 한국의 자치운동과 달리 ‘독립’을 궁극적 목표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러한 차이를 식민지화 이전 두 지역 지배층의 존재양태와 관련하여 이해하고자 하였다. 조선 지배층은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정치사회적 이익과 밀접하게 열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소멸’에 적극 저항한 반면, 대만의 지배층은 국가와의 교섭과 정치경제적 이익의 교환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권력의 교체라는 사태에 대하여 저항보다는 적응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 작가 소개

공편 :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카이(東海)대학 문명학부 강사,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0년부터는 도쿄대학 명예교수도 맡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조선시대와 근대시기의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분야에 집중적인 연구를 하했고 동시에 한국사의 특징을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파악함으로써 한국 학계와 외국 학계의 소통을 위해 고민해왔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1991년,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兩班』(1995년, 중공신서, 한국어판: 『양반』 노영구 옮김, 1996년, 도서출판 강), 『明淸と李朝の時代』(공저, 1998년, 중앙공론사, 한국어판: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김현영, 문순실 옮김, 2003년, 역사비평사) 등이 있다.
공편 : 배항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 재직 중이다. 19세기 민중운동사를 전공했다. 최근에는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곧 전근대-근대의 시기 구분이 가지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의미에 대한 비판과 근대를 상대화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 『19세기 민중사 연구의 시각과 방법』, 「근대이행기의 민중의식 - 근대와 반근대의 너머」,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 역사인식의 天網인가」 등이 있다.

“근대중심주의는 전근대는 물론 근대에 대해서도 왜곡된 이해를 초래한다. 또한 그것은 식민주의와도 밀접한 관련 속에서 만들어졌다. 항상 심판자로서 특권만 누리는 근대는 그 속에서 사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전근대로 근대를 심문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근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방범이 될 수도 있다.”

저 자 소 개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건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김선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문명기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
박소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배항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손병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송양섭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윤대영 서강대 동아연구소 HK교수
조성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존 던컨 UCLA 아시아언어학부 교수
황쥔지에 국립대만대 인문사회고등연구원 원장

▣ 주요 목차

머리말

1부_ 동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장‘유교적 근대론’과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위치
1.‘유교적 근대론’에 관하여
2. 일본에서의 유교 문맥
3.‘재발견된 주자학’론의 문제점
4. 유교언설의 지형학

2장 동아시아사 연구의 시각: 서구·근대 중심주의 비판과 극복
1.‘새로운 세계사’와 동아시아
2. 서구중심주의의 쌍생아, 근대중심주의
3. 동아시아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4.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연구의 방향
5. 전근대로 근대를 심문하는 것

3장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1. 20세기의 동아시아적 관점
2.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3.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4. 동아시아적 관점과 주체성

4장 한국사 연구자의 딜레마
1. 새로운 패러다임
2. 세계사 속에서 본 한국사
3. 조선을 근세국가로 보는 근거
4. 대안적 접근방식인 ‘선진화된 유기적 사회’
5. 선진화된 유기적 사회

2부_ 연동하는 동아시아

5장 동아시아 은 교역과 조선
1. 조선과 은
2. 인식과 상황의 전환
3. 동아시아의 은 교역 체제
4. 은 유통의 여파
5. 연동하는 동아시아

6장 일국사를 너머 변경사로: 여진-만주족과 조선의 관계
1. 몽케 테무르와 조선 변경
2. 일국사적 관점
3. 만주중심주의
4. 신청사와 변경사
5. 한중관계사를 너머 변경사로

7장 19세기 조선의 동문의식과 한문 근대
1. 왜 19세기의 동문의식인가
2. 동문의식의 기원
3. 『사고전서』의 편찬과 동문의식의 강화
4. 청일전쟁 이후 동문의식의 변용
5. 19세기 동문의식의 의미

8장 인도차이나의 ‘열린’ 바다: ‘근대’ 하이퐁의 풍경과 애환
1. 식민지 ‘근대화’를 통해 형성된 하이퐁의 실상
2. 하이퐁의 전통과 ‘근대’로의 이행
3. 하이퐁의 교류 양상과 현지 사회
4.‘근대’ 하이퐁의 치열한 ‘삶’

3부_ 유교와 동아시아

9장 사무라이의 ‘사화’: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1.‘근세사’ 연구의 방법론적 문제
2.‘근세’ 동아시아 정치사와 ‘정치문화론’: ‘유교핵 정치문화론’에 대한 평가와 비판
3.‘근세’ 동아시아 정치사 이해를 위한 개념으로서의‘사대부적 정치문화’
4. 중국·조선에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행방
5.‘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의외의 출현, 막말 일본
6. 메이지유신 후의 행방

10장 법문학적 관점에서 본 유교적 사법전통
1. 문제의 제기
2. 법문학 운동이란 무엇인가?
3. 유교적 사법전통과 법문학 운동의 관계
4. 동아시아 사법전통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11장 “광작을 자제하라”: 19세기 어느 성리학자의 가작과 그 지향
1. 성리학자는 농사에 무관심했을까
2. 김씨가의 농업사 관련 자료
3. 노비 규모와 가작 면적 추이
4. 가작지의 생산성
5. 집약화와 다각화를 통한 자급, 그리고 안민

12장 『목민심서』에 나타난 다산 정약용의 ‘인시순속’적 지방재정운영론
1. 정약용이 본 지방재정, 무엇이 문제였나?
2. 대동법 실시와 지방재정운영의 모순
3. 지방재정운영과 방납·은여결 문제의 인식
4.‘인시순속’의 지방재정운영론
5. 『주례』의 이상과 국법의 준수, 그리고 인시순속의 구상

4부_ 비교사로 본 동아시아

13장 조선의 『부역실총』과 명·청의 『부역전서』 비교
1. 비총제=총액제적인 지역별 재원 액수의 설정 기준은?
2. 『부역실총』의 비총제적 성격
3. 『부역전서』에서 본 명·청대 재정
4. 18세기 비총제 재정의 조선적 특성
5. 『부역전서』와 『부역실총』 그 이후

14장 1920년대 한국과 대만의 자치운동
1. 식민지 경험에 대한 기억의 차이는 왜 생겼는가
2. 식민지자치운동의 전개과정과 이론 구조
3. 두 지역의 지배층과 문화적 개성
4.‘중국’ 요인과 두 지역의 민족운동
5. 식민지화 전후의 역사에 대한 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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