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정조의 안경, 홍대용의 망원경, 흥선대원군의 자명종…
조선 지식인의 책상에 올라온 서양 물건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 후기에 들어온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 등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의 역사를 살펴본다. 서양 근대 문명사에서 그 의의가 큰 이 물건들은, 조선에서의 수용 양상이 각각 달랐다. 어떤 물건은 편리함과 유용성이 알려져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확산되었고, 어떤 물건은 완전히 조선화되어 조선 사회에 뿌리 내렸으며, 어떤 물건은 호기심 있는 양반 소수의 완호품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했다. 엄밀한 텍스트 분석과 날카로운 해석으로 역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저자 강명관은 각 물건이 언제 어떻게 조선에 들어왔는지, 조선 사회에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나아가 그 물건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과학적·기술적 이해까지 짚어낸다. 독자들은 다섯 가지 물건의 역사를 통해 조선 후기에 과학, 종교 등 서양 문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살펴보고, 이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세계 인식·과학 인식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사소한 물건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인식을 밝히다
- 이 책의 특징 1
조선은 서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였을까? 이 책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 등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이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고, 조선 사람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를 탐구한다. 저자 강명관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에 관해 조선 사람들이 남긴 모든 문헌을 샅샅이 섭렵하여 이 책을 저술했다. 각 물건에 최초로 언급된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기록이 어떤 중국 문헌을 참조했는지 근원을 밝히고, 이후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물건이 어떻게 서술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문헌에 관한 폭넓은 조사와 연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를 이를 통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인식’이라는 주제를 끄집어낸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섯 가지 물건들은 서양의 근대를 상징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망원경의 발명은 정확한 천체 관측을 가능하게 하여 서양 천문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고, 나아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세계관의 변화를 초래했다. 또한 원거리 항해에 사용되어 서구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명종은 천문학에서 정밀하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기였으며, 근대 산업사회에서 노동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필요했다. 안경과 유리거울, 양금은 서구인의 일상생활, 문화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된 물건이다. 이렇듯 각 물건은 서양 근대의 사상·문화와 긴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책과 사람으로만이 아니라 물건 속에 함축되어 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 지식인들은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은 어떻게 수용했고, 그 속에 담긴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왜 안경과 유리거울은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확산되었고, 양금은 조선화되었으며, 망원경과 자명종은 소수 양반의 완호품으로 전락해버렸는가? 이 책은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받아들인 조선 지식인의 인식을 들추어낸다.
2. 고립된 조선에 들어온 서양 물건의 흥미진진한 일대기
- 이 책의 특징 2
중국과 일본에 선교사와 무역선이 도착하여 세계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 조선 사회는 국제적 감각을 잃고 고립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부터 1876년 개항 때까지 조선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만 서양을 받아들였다. 조선 후기는 그야말로 세계사의 광풍으로부터 격리된 공간으로서 존재했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서양 물건들을 들여왔을까? 어떻게 정조는 안경을 사용할 수 있었고, 흥선대원군의 책상 위에 자명종이 놓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풍부한 텍스트 연구와 엄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최초로 접한 조선 사람은 누구인지, 그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남겼는지, 이후 조선 사회에 각 물건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건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반응은 자못 신선하다. 예컨대 이덕무는 〈소완정 동야소집〉이라는 시에서 유리거울에 대해 “서양 거울 맑으니 눈이 어지럽다”라고 했으며, 영조는 색 처리를 한 망원경이 임금을 상징하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불경한 물건이라며 부수어버렸다. 이처럼 각 물건에 담긴 생생한 이야기, 흥미진진한 일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의 풍경을 전한다.
이덕무는 〈소완정 동야소집〉, 곧 ‘겨울밤 소완정의 작은 모임’이란 제목의 시에서 “서양 거울 맑으니 눈이 어지럽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평소 서양 거울, 곧 북경에서 수입된 유리거울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사소절》에서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군자가 거울을 보고 의관을 정제하고 시선을 높게 하는 것은, 용모를 예쁘게 가다듬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거울을 손에서 떼지 않고 눈썹과 수염을 매만지며 날마다 곱게 꾸미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부녀자의 행동이다.”
_〈3장 유리거울에 비추어 본 조선〉 중에서(158쪽)
영조는 태양을 곧바로 쳐다보는 것이 매우 불경한 일이라고 말한다. 왜냐? 태양은 곧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규일(窺)’의 ‘규(窺)’ 자는 원래 ‘엿본다’는 의미가 있다. 즉 규일이란 말에는 임금의 의도를 엿본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임금의 뜻을 엿본다는 식의 해석을 망원경에 붙인 것은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지만, 이 자료에서 규일영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즉 규일영은 일식을 관찰하는 데 긴요한 것으로, 태양을 곧바로 쳐다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색 처리를 한 망원경이 틀림없다.
_〈2장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중에서(105쪽)
3. 조선의 과학사와 기술사를 새롭게 살펴보다
- 이 책의 특징 3
저자는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의 역사를 ‘어떤 물건이 언제 어떻게 들어왔다’는 식으로 평범하게 서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다섯 가지 물건이 서양의 근대 문명을 함축하고 있는 만큼, 각 물건 배후에 존재하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이해는 어땠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리학적 세계관과 당시 사회의 특성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과학 인식을 분석하고, 중국·일본과 조선의 과학기술 수용 양상을 비교하여 조선 후기 과학사를 다층적으로 확인했다. 조선 후기의 과학사와 기술사의 결정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다.
각 물건에 대한 각기 다른 수용 양상, 제작 양상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바로 ‘원리에 대한 조선의 무관심’이었다. 물건 이면에 담긴 과학적 원리, 즉 광학적·화학적 지식 등은 자세히 탐구하지 않았다. 물론 과학적·기술적 원리를 탐구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의 자연학자 이규경은 〈유리변증설〉과 〈유리류〉를 통해 유리 제조법을 밝혔다. 실제로 유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론적 차원에서 제조법을 서술했던 그의 저술은 과학사에 의의를 지닌다. 최재륜, 이민철 등 자명종을 제작한 사례는 다수 확인된다. 이는 모두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사실이며, 조선 과학사·기술사의 새로운 발견이다.
기술이나 기술학에 지나친 흥미를 보이는 것은 완물상지의 도덕적 경계에 저촉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만약 유가가 말하는 정당한 생산 활동, 곧 의·식·주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곧 완호품이나 사치품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내면의 탐구, 인격의 수양을 해친다는 관념이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기술의 발달을 저해했다.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자명종을 고치는 데 힘을 쏟은 황윤석은 완물상지에 빠져 시간을 허비했다고 자신을 비판했다. 안경과 거울, 유리에 깊은 관심을 보인 강세황은 중국인이 그토록 깊은 관심을 보인 프리즘에 대해 희한한 물건이지만 ‘모두 쓸 수 없는 것’, 곧 무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_〈맺음말〉 중에서(298~299쪽)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이 온전하게 수용되지 않은 것과 그 원리에 대한 무관심, 제조 기술의 부족 등을 굳이 조선의 실패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한역서양서를 통해 조선에 전해진 서양 과학의 일부 지식을 이해하거나 차용한 것을 무슨 대단한 진보적 성취처럼 여겨 특화하는 것과 동일한 오류다. 곧 다섯 가지 물건은 서구의 매우 복잡한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예컨대 망원경의 이면에는 유리공업과 광학, 천문학이 있었고, 그것들은 또 각각 복합적인 사회적.문화적 요소의 구성물이었다. 따라서 이 복합적 구성물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것은 곧 완전히 이질적인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던져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조선이 그것들을 자신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_〈맺음말〉 중에서(296~297쪽)
▣ 작가 소개
저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그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들의 역사적 실체와 그들의 문학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 한문학의 연구 지평을 넓힌 역저(『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문화일보)".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지적 편력을 담아 내고 있다. 정작 문학 텍스트 자체에 논의를 거의 할애하지 않았는데도, 논의 전개 과정에서 그 시대와 함께 문학 텍스트의 의미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한양대 정민)." 등의 호평을 받았다.
광범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들을 다양하게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 유통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 그리하여 어떤 인간형이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조선의 뒷골목 풍경』,『근대 계몽기 시가 자료집』,『안쪽과 바깥쪽』,『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농압잡지평석』,『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언
머리말: 서양에서 온 다섯 물건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1장 안경, 조선인의 눈을 밝히다
1. 안경은 언제 조선에 들어왔을까
2. 안경으로 밝아진 조선 사회
3. 안경의 이치를 논하다
2장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1. 조선이 이해한 서양 천문학
2. 조선에 들어온 망원경의 운명
3. 천체 관측 기능을 잃어버리다
3장 유리거울에 비추어 본 조선
1. 청동거울에서 유리거울로
2. 맑아서 눈이 어지러운 서양 거울
3. 한 번도 만들지 못했던 유리거울
4장 자명종이 맞닥뜨린 조선의 시간
1. 때에 맞춰 소리를 내는 보물
2. 조선 사대부를 매혹시킨 서양 시계들
3. 시계가 아닌 완호품으로 남다
5장 양금, 국악기가 된 서양 악기
1. 중국 악기를 거쳐 조선 악기로
2. 경화세족의 풍류를 담아내다
맺음말: 격리된 공간으로 존재한 조선 후기의 지식 사회
주
그림 출처
정조의 안경, 홍대용의 망원경, 흥선대원군의 자명종…
조선 지식인의 책상에 올라온 서양 물건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 후기에 들어온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 등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의 역사를 살펴본다. 서양 근대 문명사에서 그 의의가 큰 이 물건들은, 조선에서의 수용 양상이 각각 달랐다. 어떤 물건은 편리함과 유용성이 알려져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확산되었고, 어떤 물건은 완전히 조선화되어 조선 사회에 뿌리 내렸으며, 어떤 물건은 호기심 있는 양반 소수의 완호품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했다. 엄밀한 텍스트 분석과 날카로운 해석으로 역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저자 강명관은 각 물건이 언제 어떻게 조선에 들어왔는지, 조선 사회에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나아가 그 물건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과학적·기술적 이해까지 짚어낸다. 독자들은 다섯 가지 물건의 역사를 통해 조선 후기에 과학, 종교 등 서양 문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살펴보고, 이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세계 인식·과학 인식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사소한 물건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인식을 밝히다
- 이 책의 특징 1
조선은 서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였을까? 이 책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 등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이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고, 조선 사람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를 탐구한다. 저자 강명관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에 관해 조선 사람들이 남긴 모든 문헌을 샅샅이 섭렵하여 이 책을 저술했다. 각 물건에 최초로 언급된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기록이 어떤 중국 문헌을 참조했는지 근원을 밝히고, 이후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물건이 어떻게 서술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문헌에 관한 폭넓은 조사와 연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를 이를 통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인식’이라는 주제를 끄집어낸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섯 가지 물건들은 서양의 근대를 상징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망원경의 발명은 정확한 천체 관측을 가능하게 하여 서양 천문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고, 나아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세계관의 변화를 초래했다. 또한 원거리 항해에 사용되어 서구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명종은 천문학에서 정밀하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기였으며, 근대 산업사회에서 노동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필요했다. 안경과 유리거울, 양금은 서구인의 일상생활, 문화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된 물건이다. 이렇듯 각 물건은 서양 근대의 사상·문화와 긴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책과 사람으로만이 아니라 물건 속에 함축되어 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 지식인들은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은 어떻게 수용했고, 그 속에 담긴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왜 안경과 유리거울은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확산되었고, 양금은 조선화되었으며, 망원경과 자명종은 소수 양반의 완호품으로 전락해버렸는가? 이 책은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받아들인 조선 지식인의 인식을 들추어낸다.
2. 고립된 조선에 들어온 서양 물건의 흥미진진한 일대기
- 이 책의 특징 2
중국과 일본에 선교사와 무역선이 도착하여 세계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 조선 사회는 국제적 감각을 잃고 고립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부터 1876년 개항 때까지 조선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만 서양을 받아들였다. 조선 후기는 그야말로 세계사의 광풍으로부터 격리된 공간으로서 존재했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서양 물건들을 들여왔을까? 어떻게 정조는 안경을 사용할 수 있었고, 흥선대원군의 책상 위에 자명종이 놓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풍부한 텍스트 연구와 엄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최초로 접한 조선 사람은 누구인지, 그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남겼는지, 이후 조선 사회에 각 물건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건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반응은 자못 신선하다. 예컨대 이덕무는 〈소완정 동야소집〉이라는 시에서 유리거울에 대해 “서양 거울 맑으니 눈이 어지럽다”라고 했으며, 영조는 색 처리를 한 망원경이 임금을 상징하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불경한 물건이라며 부수어버렸다. 이처럼 각 물건에 담긴 생생한 이야기, 흥미진진한 일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의 풍경을 전한다.
이덕무는 〈소완정 동야소집〉, 곧 ‘겨울밤 소완정의 작은 모임’이란 제목의 시에서 “서양 거울 맑으니 눈이 어지럽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평소 서양 거울, 곧 북경에서 수입된 유리거울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사소절》에서도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군자가 거울을 보고 의관을 정제하고 시선을 높게 하는 것은, 용모를 예쁘게 가다듬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거울을 손에서 떼지 않고 눈썹과 수염을 매만지며 날마다 곱게 꾸미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부녀자의 행동이다.”
_〈3장 유리거울에 비추어 본 조선〉 중에서(158쪽)
영조는 태양을 곧바로 쳐다보는 것이 매우 불경한 일이라고 말한다. 왜냐? 태양은 곧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또 ‘규일(窺)’의 ‘규(窺)’ 자는 원래 ‘엿본다’는 의미가 있다. 즉 규일이란 말에는 임금의 의도를 엿본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임금의 뜻을 엿본다는 식의 해석을 망원경에 붙인 것은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지만, 이 자료에서 규일영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즉 규일영은 일식을 관찰하는 데 긴요한 것으로, 태양을 곧바로 쳐다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색 처리를 한 망원경이 틀림없다.
_〈2장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중에서(105쪽)
3. 조선의 과학사와 기술사를 새롭게 살펴보다
- 이 책의 특징 3
저자는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의 역사를 ‘어떤 물건이 언제 어떻게 들어왔다’는 식으로 평범하게 서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다섯 가지 물건이 서양의 근대 문명을 함축하고 있는 만큼, 각 물건 배후에 존재하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이해는 어땠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리학적 세계관과 당시 사회의 특성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과학 인식을 분석하고, 중국·일본과 조선의 과학기술 수용 양상을 비교하여 조선 후기 과학사를 다층적으로 확인했다. 조선 후기의 과학사와 기술사의 결정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다.
각 물건에 대한 각기 다른 수용 양상, 제작 양상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바로 ‘원리에 대한 조선의 무관심’이었다. 물건 이면에 담긴 과학적 원리, 즉 광학적·화학적 지식 등은 자세히 탐구하지 않았다. 물론 과학적·기술적 원리를 탐구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의 자연학자 이규경은 〈유리변증설〉과 〈유리류〉를 통해 유리 제조법을 밝혔다. 실제로 유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론적 차원에서 제조법을 서술했던 그의 저술은 과학사에 의의를 지닌다. 최재륜, 이민철 등 자명종을 제작한 사례는 다수 확인된다. 이는 모두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사실이며, 조선 과학사·기술사의 새로운 발견이다.
기술이나 기술학에 지나친 흥미를 보이는 것은 완물상지의 도덕적 경계에 저촉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만약 유가가 말하는 정당한 생산 활동, 곧 의·식·주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곧 완호품이나 사치품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내면의 탐구, 인격의 수양을 해친다는 관념이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기술의 발달을 저해했다.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자명종을 고치는 데 힘을 쏟은 황윤석은 완물상지에 빠져 시간을 허비했다고 자신을 비판했다. 안경과 거울, 유리에 깊은 관심을 보인 강세황은 중국인이 그토록 깊은 관심을 보인 프리즘에 대해 희한한 물건이지만 ‘모두 쓸 수 없는 것’, 곧 무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_〈맺음말〉 중에서(298~299쪽)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이 온전하게 수용되지 않은 것과 그 원리에 대한 무관심, 제조 기술의 부족 등을 굳이 조선의 실패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한역서양서를 통해 조선에 전해진 서양 과학의 일부 지식을 이해하거나 차용한 것을 무슨 대단한 진보적 성취처럼 여겨 특화하는 것과 동일한 오류다. 곧 다섯 가지 물건은 서구의 매우 복잡한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예컨대 망원경의 이면에는 유리공업과 광학, 천문학이 있었고, 그것들은 또 각각 복합적인 사회적.문화적 요소의 구성물이었다. 따라서 이 복합적 구성물이 조선에 들어왔다는 것은 곧 완전히 이질적인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던져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조선이 그것들을 자신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_〈맺음말〉 중에서(296~297쪽)
▣ 작가 소개
저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그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들의 역사적 실체와 그들의 문학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 한문학의 연구 지평을 넓힌 역저(『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문화일보)".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지적 편력을 담아 내고 있다. 정작 문학 텍스트 자체에 논의를 거의 할애하지 않았는데도, 논의 전개 과정에서 그 시대와 함께 문학 텍스트의 의미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한양대 정민)." 등의 호평을 받았다.
광범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들을 다양하게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 유통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 그리하여 어떤 인간형이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조선의 뒷골목 풍경』,『근대 계몽기 시가 자료집』,『안쪽과 바깥쪽』,『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농압잡지평석』,『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언
머리말: 서양에서 온 다섯 물건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1장 안경, 조선인의 눈을 밝히다
1. 안경은 언제 조선에 들어왔을까
2. 안경으로 밝아진 조선 사회
3. 안경의 이치를 논하다
2장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1. 조선이 이해한 서양 천문학
2. 조선에 들어온 망원경의 운명
3. 천체 관측 기능을 잃어버리다
3장 유리거울에 비추어 본 조선
1. 청동거울에서 유리거울로
2. 맑아서 눈이 어지러운 서양 거울
3. 한 번도 만들지 못했던 유리거울
4장 자명종이 맞닥뜨린 조선의 시간
1. 때에 맞춰 소리를 내는 보물
2. 조선 사대부를 매혹시킨 서양 시계들
3. 시계가 아닌 완호품으로 남다
5장 양금, 국악기가 된 서양 악기
1. 중국 악기를 거쳐 조선 악기로
2. 경화세족의 풍류를 담아내다
맺음말: 격리된 공간으로 존재한 조선 후기의 지식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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