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역사학자가 우리 현실 문제를 통해 살펴본 한국사의 쟁점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정치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추려본 한국사의 쟁점들을 정리한 글들이다. 2010년 안산의 농성현장에 들이닥친 용역회사 컨택터스를 보며 조선 초기 왕실의 사병 조직을 연상시켜 조명한다거나, 2009년 MBC-TV 「PD수첩」 사건에 대한 표적수사를 통해 역시 조선시대의 표적수사였던, 태종이 벌인 세종의 장인 심온에 대한 대역모반죄 사건을 돌아본다. 몇 년 전 외교통상부의 특채 비리와 비교해보는 조선시대의 상피법 제도나, 2011년 ‘반값등록금’ 문제로 짚어보는 조선 성종 때의 학전(學田)이나 권당(동맹휴학) 등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저자만의 고유한 관점을 드러내어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면 죽음으로써 남편의 뒤를 좇는 열행(烈行)은 성리학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성리학 포플리즘’이라고 저자는 규정짓는다. 또한 개혁 군주의 대명사이고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왕으로 여겨지는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이나 천주교 탄압 등 수구성을 보인다거나, 국민화가로 대접받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들여다보면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유쾌하고 유난히 살집이 좋아 보이는데 이는 당시 백성들의 결핍과 가난을 외면하고 정조와의 관계 속에서 김홍도가 체제 선전용 화보 식의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고려 팔만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에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벌인 사업이 아니라 당시 최씨 정권이 인적· 물적 자원의 보고인 남부 지방을 장악하고자 한 국책사업이었다고 보는 등 저자만의 관점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조명하고 있어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고 다양하게 하고 있다.
역설의 의미는
역설의 의미는 다면적이다. 역사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역설(歷說)이다. 그러나 저자가 현실에 관한 생각을 말하기 위해 역사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으므로 저자의 역설(力說)이다. 그리고 현실과 과거 사이에 존재하는 역설(逆說)을 드러내고자 하여 역설이기도 하다. 『역설』은 이 세 가지 뜻이 모이고 흩어지며 하나의 모양새를 이루어 한 권의 책이 됐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제1부 정도전의 꿈 조선 건국을 설계했던 정도전의 개혁의지를 살펴본다. 먼저 정도전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원칙으로 삼아 일대 토지개혁을 꾀했으나 구 세력의 힘에 밀려 수포로 돌아갔다. 일체의 무력은 공권력의 지배 아래에 두어야 한다며 사병 철폐를 선도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노비제도가 존속하며 허다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는데 조선 말기에는 ‘추노(推奴)’ 문제가 심각했다. 또한 사회적 모순이 누적되자 15세기 후반에는 홍길동과 같은 도적 떼가 출현해, ‘홍길동 증후군’이라 부르는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사회개혁 세력의 성장을 갈망하는 대중의 의지가 은연중 드러난 것이라고 저자는 보는데, 18세기부터는 이것이 『정감록』을 비롯한 정치적 예언서 운동으로 확산됐으며 그와 같은 움직임을 이끌었던 ‘평민지식인’은 이를테면 정도전의 후계자라고 본다.
제2부 세종의 길 역사를 통틀어서 세종만큼 탁월한 군주는 없었다. 통치 기간은 32년에 불과했지만 세종 시대는 우리 역사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인간 세종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도 행복하지만도 않았다. 동성애 등으로 말썽을 빚은 며느리와 건방지기 짝이 없던 매부 남휘가 있어 골칫거리였고, 부왕 태종은 정치적 걸림돌이라고 생각되면 처남도 사돈도 과거의 심복도 마구 목을 베어버렸다. 정치가 세종은 그런 부왕의 덕을 보기도 했을 것이나 세종은 자신이 펼친 헤아림의 정치로 훌륭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관비의 출산 휴가를 100일이나 준다거나, 효심이 깊어 자주 찾은 부왕과 모후를 합장(合葬)한 헌릉의 순행 길에서 백성에 피해가 가자 이를 충분히 배상해주도록 하는 등 세종은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다. 세종에게는 많은 조력자들이 있어, 그들 중 잊혀진 수학자 김담을 조명해보기도 하고, 세종에 가려져 망각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원래의 왕세자였던 똑똑했던 양녕대군이 왜 역사에 폄하되어 기록됐는지를 짚어본다.
제3부 정조의 문화투쟁 개혁 군주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고,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총명한 왕으로 알려진 정조의 보수성을 짚어본다. 18세기 정조의 시대에는 음악이 빨라지며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으며, 화단의 화풍도 선비들이 선호하는 문체도 바뀌고 있었다. 그러자 정조는 낡은 가치관 수호에 매달리며 문체반정이라는 수구적인 처방으로 맞섰다. 또한 ‘바람직한 화풍의 진작’을 위해 김홍도 같은 어용화가를 후원했다. 격쟁이라는 일종의 구두(口頭) 상소를 장려했는데 이는 정조가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활용한 통치술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당시 커다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천주교의 유행이었는데, 왕이 사랑한 측근 신하 정약용도 천주교 문제에 걸려 귀향을 가게 됐다. 2009년에 공개된 정조의 비밀어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정조가 어찰로서 당쟁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여기지만, 저자는 그와 정반대라는 것이 이에 대한 견해다.
제4강 협상의 기술 한반도는 북쪽으로 중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북방의 호전적인 여러 민족들 그리고 남쪽으로는 틈만 나면 한반도를 넘겨보는 일본을 이웃으로 두었기에 늘 주변 강대국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조건에 있었다. 주위의 강대국과 외교적· 군사적 현안을 풀어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역사에서도 국제적 협상 능력이 국가의 존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가 많았다. 신라 왕 김춘추는 외교를 통해 삼국통일의 길을 닦았으며, 고구려 광개토대왕도 무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역사의식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정복 왕이 됐다. 고구려 산상왕도, 만일 돌발 상황을 돌파할 협상의 지혜가 없었다면 대권은 차치하고 생명도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협상의 대가로 기록되는 고려의 서희는 자국의 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 요나라의 침략을 차단했으며 영토까지 늘렸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서는 해외파병이 국제 정치사의 일부였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한국이 무역 강국이 되면서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함대가 원정에 나섰다. 형태는 비록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의 압력과 간섭에 시달리는데, 이때 주목해볼 만한 인물로는 명나라를 통제했던 조선 초기의 정도전이 있다. 그리고 몽골 침입 때 거국적으로 추진된 팔만대장경의 판각사업이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사업이었다기보다는 집권층의 정치적 의도가 다각적으로 반영된 국책사업이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제5강 뜻밖의 성리학 서구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한국 사회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을 보이며 성리학도 재평가하게 됐다. 그러면서 성리학의 진면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죽음으로써 남편의 뒤를 좇는 열행(烈行)은 과연 성리학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까. 유교의 기본 경전에서 얘기하는 충효열(忠孝烈)에 대한 정의를 들여다보며 이는 성리학의 본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것으로 ‘성리학 포퓰리즘’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중시한 기본 경전 중에 『소학』이 있었다. 이는 왕이 존재하는 이유가 백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는 등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뜻밖의 정의들을 담고 있으며, 이는 한때 『소학』이 금서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국공립학교에는 공납금 같은 것이 없고, 도리어 학생들에게는 숙식까지 무료로 제공됐다. 성균관 유생들은 권당(捲堂), 즉 동맹휴학을 통해 현실정치에 깊이 개입했으며 조선 사회는 지식인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에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성리학 사회의 특징이었던 접빈객 문화도 다각적으로 짚어보고, 송덕봉이라는 50대 여성이 남편에게 쓴 편지를 통해 조선시대 양반 여성의 재량권 문제를 살펴보았다.
제6강 선비의 길 16세기 말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황윤길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경고했으나 당시 집권층은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황윤길의 보고를 외면했고, 결국 무고한 백성들이 전란을 겪어야 했다. 조선의 뜻있는 선비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들에게 아프다고 ‘칭병(稱病)’하며 소극적이나마 대항했다. 또한 조선에는 ‘피혐(避嫌)’ 제도가 있어, 논란 중인 사건에 혐의가 있으면 이가 풀릴 때까지 관직을 떠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세상을 외면한다는 폐문자수(閉門自守)를 하기도 했다. 제도적으로는 상피법(相避法)이 있어 가까운 친척들이 주요 관직을 독점하지 못하게 막았으나, 숙종 이후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해 결국 조선 말기 권신의 등장을 허용하기도 했다. 조선에는 청렴한 재상들도 많아서 그들은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셋집에 살며 나물국과 나물반찬을 먹었다. 금전과 재물에 대한 태도도 자본주의가 유입되기 이전의 조선에서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제7부 과거시험 조선시대는 엄밀한 의미로 왕이 통치하던 시대라기보다 선비들이 권력을 쥐고 다스리던 시기였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조선의 건국 초부터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시행됐다.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정규적인 과거시험만 시행됐으나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명칭의 별시(別試) 즉, 특별시험이 정규시험보다 많았다. 거기서 선발된 인원이 정규시험을 크게 앞질렀다. 과거 열풍이 그만큼 거셌기 때문이다. 과거, 특히 문과시험에 급제하지 않고서는 청요직(淸要職)에 오를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비라면 누구나 문과급제를 열망했다. 그러나 문과급제자도 성적순이 아니라 가문의 배경에 따라 높고 귀한 벼슬에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그리고 무과(武科)의 중요 시험과목이었던 활쏘기와 영조와 활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제8부 역사의 어두운 주름 최근에도 우리 사회에는 수뢰 혐의로 공직을 더럽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뇌물의 유래를 알아본다. 조선시대에 한정된 이야기이지만, 매관매직으로 악명이 높았던 몇몇 신하와 왕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매관매직의 악순환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 원리를 따져본다. 또한 나라의 기강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기 쉬운 공신에 대해 살펴본다. 공신의 횡포는 실로 만만치 않았다. 더러는 김안로처럼 공신은 아니었을지언정 명실상부한 실권자가 되어 조정을 어지럽히며 횡포를 부린 자들도 있었다. 공직 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지면 교양과 품위를 중시하는 관료 사회에서도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조선에서도 직접 폭력을 휘두르거나 교사(敎唆)하는 관리들이 존재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의 죽음을 속이고 권력을 휘두른 희대의 아첨꾼 조고(趙高)의 악행을 소개한다. 또한 부정부패에 푹 절은 관리들이 백성들의 몫이 되어야 할 면세의 혜택까지도 훔치고 있는 세금 도둑질의 실태를 들여다본다.
제9부 광화문에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의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곳인 광화문에 대한 역사적 단상들을 모았다. 수도 한성의 홍수 이야기부터 시작해, 광화문 현판의 유래를 소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선시대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는데, 중앙정부는 지방관의 재량권을 보장해줌으로써 지방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는 오늘날에 지역 통합이라고 해서 중앙이 지방을 종속하려고 하는 것과 비교해 일종의 식민화라고 저자는 간주한다.
제10부 매국노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는 과연 부귀와 명예를 마다하고 일본 군국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회주의자 이완용의 매국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의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행로를 훑어보며, 남몰래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과 아직도 정당한 보상은커녕 과거사를 사죄도 하지 않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의 행태를 짚어본다. 그리고 매국노의 전형으로 지탄을 받아온 중국 송나라 때의 진회(秦檜) 등을 살펴본다.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애국자의 대명사인 매천 황현과 안중근 안태훈 부자의 행적을 소개한다.
▣ 작가 소개
저 : 백승종
독일 튀빙겐대학교 중국 및 한국학과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이래, 오랫동안 유럽의 여러 대학교를 순례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는 (재직기간 1990∼1999) 9년 동안 한국의 역사, 문화, 종교, 문학 등을 가르쳤으며 독일 보훔대학교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도 역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원에서도 여러 차례 특강을 했고, 독일의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에서는 초빙교수로서 미시사 연구에 종사했다. 국내에서는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한국 사회사 연구』,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편저), 『그 나라의 역사와 말』,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한국의 예언문화사』,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조선의 통치철학』(공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정감록 미스터리』,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 ,『역설』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제1부 정도전의 꿈
정도전의 토지개혁안 / 사병의 철폐 / 추노의 역사 / 홍길동 증후군 / 『정감록』 예언의 유행
제2부 세종의 길
인간 세종 / 사돈도 꺾은 아버지 태종 / 세종의 해답 / 잊힌 수학자 김담 / 효행의 헌릉 길 / 세종의 건방진 매부 / 똑똑했던 양녕대군
제3부 정조의 문화투쟁
느릿한 박자 / 문체반정 / 신윤복과 김홍도 / 격쟁 / 정약용의 거짓말 / 정조의 비밀편지
제4부 협상의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김춘추 / 김유신은 신라의 CEO / 광개토대왕의 국민대통합 / 정치 협상으로 왕이 된 산상왕 / 국제 협상의 달인, 서희 / 해외파병의 국제정치사 / 패권주의와 해적의 탄생 / 강대국 요리 / 팔만대장경은 정치 프로젝트
제5부 뜻밖의 성리학
열녀 / 우리가 몰랐던 성리학 / 『소학』 탄압 / 성종의 학전 / 권당 / 접빈객 / 재량권
제6부 선비의 길
황윤길의 경고 / 칭병(稱病) / 피혐(避嫌) / 언로의 개방 / 폐문자수 / 상피법 / 셋집의 정승판서 / 부자의 책무
제7부 과거시험
과거시험이라는 휜 낚시 / 개천의 용 / 별시 / 영조와 활
제8부 역사의 어두운 주름
뇌물의 유래 / 매관매직의 약사(略史) / 매관매직의 작동원리 / 공신의 횡포 / 김안로의 전횡 / 주먹다짐하는 나리들 / 아첨꾼 조고 / 세금 도둑질
제9부 광화문에서
한성의 홍수 / 광화문 현판 / 지방관의 전단(專斷) / 행정구역 통합
제10부 매국노
이완용을 위하여 / 오적 / 매국노 / 배신 / 매천 황현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역사학자가 우리 현실 문제를 통해 살펴본 한국사의 쟁점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정치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추려본 한국사의 쟁점들을 정리한 글들이다. 2010년 안산의 농성현장에 들이닥친 용역회사 컨택터스를 보며 조선 초기 왕실의 사병 조직을 연상시켜 조명한다거나, 2009년 MBC-TV 「PD수첩」 사건에 대한 표적수사를 통해 역시 조선시대의 표적수사였던, 태종이 벌인 세종의 장인 심온에 대한 대역모반죄 사건을 돌아본다. 몇 년 전 외교통상부의 특채 비리와 비교해보는 조선시대의 상피법 제도나, 2011년 ‘반값등록금’ 문제로 짚어보는 조선 성종 때의 학전(學田)이나 권당(동맹휴학) 등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저자만의 고유한 관점을 드러내어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면 죽음으로써 남편의 뒤를 좇는 열행(烈行)은 성리학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성리학 포플리즘’이라고 저자는 규정짓는다. 또한 개혁 군주의 대명사이고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왕으로 여겨지는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이나 천주교 탄압 등 수구성을 보인다거나, 국민화가로 대접받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들여다보면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유쾌하고 유난히 살집이 좋아 보이는데 이는 당시 백성들의 결핍과 가난을 외면하고 정조와의 관계 속에서 김홍도가 체제 선전용 화보 식의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고려 팔만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에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벌인 사업이 아니라 당시 최씨 정권이 인적· 물적 자원의 보고인 남부 지방을 장악하고자 한 국책사업이었다고 보는 등 저자만의 관점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조명하고 있어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고 다양하게 하고 있다.
역설의 의미는
역설의 의미는 다면적이다. 역사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역설(歷說)이다. 그러나 저자가 현실에 관한 생각을 말하기 위해 역사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으므로 저자의 역설(力說)이다. 그리고 현실과 과거 사이에 존재하는 역설(逆說)을 드러내고자 하여 역설이기도 하다. 『역설』은 이 세 가지 뜻이 모이고 흩어지며 하나의 모양새를 이루어 한 권의 책이 됐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제1부 정도전의 꿈 조선 건국을 설계했던 정도전의 개혁의지를 살펴본다. 먼저 정도전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원칙으로 삼아 일대 토지개혁을 꾀했으나 구 세력의 힘에 밀려 수포로 돌아갔다. 일체의 무력은 공권력의 지배 아래에 두어야 한다며 사병 철폐를 선도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노비제도가 존속하며 허다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는데 조선 말기에는 ‘추노(推奴)’ 문제가 심각했다. 또한 사회적 모순이 누적되자 15세기 후반에는 홍길동과 같은 도적 떼가 출현해, ‘홍길동 증후군’이라 부르는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사회개혁 세력의 성장을 갈망하는 대중의 의지가 은연중 드러난 것이라고 저자는 보는데, 18세기부터는 이것이 『정감록』을 비롯한 정치적 예언서 운동으로 확산됐으며 그와 같은 움직임을 이끌었던 ‘평민지식인’은 이를테면 정도전의 후계자라고 본다.
제2부 세종의 길 역사를 통틀어서 세종만큼 탁월한 군주는 없었다. 통치 기간은 32년에 불과했지만 세종 시대는 우리 역사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인간 세종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도 행복하지만도 않았다. 동성애 등으로 말썽을 빚은 며느리와 건방지기 짝이 없던 매부 남휘가 있어 골칫거리였고, 부왕 태종은 정치적 걸림돌이라고 생각되면 처남도 사돈도 과거의 심복도 마구 목을 베어버렸다. 정치가 세종은 그런 부왕의 덕을 보기도 했을 것이나 세종은 자신이 펼친 헤아림의 정치로 훌륭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관비의 출산 휴가를 100일이나 준다거나, 효심이 깊어 자주 찾은 부왕과 모후를 합장(合葬)한 헌릉의 순행 길에서 백성에 피해가 가자 이를 충분히 배상해주도록 하는 등 세종은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다. 세종에게는 많은 조력자들이 있어, 그들 중 잊혀진 수학자 김담을 조명해보기도 하고, 세종에 가려져 망각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원래의 왕세자였던 똑똑했던 양녕대군이 왜 역사에 폄하되어 기록됐는지를 짚어본다.
제3부 정조의 문화투쟁 개혁 군주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고,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총명한 왕으로 알려진 정조의 보수성을 짚어본다. 18세기 정조의 시대에는 음악이 빨라지며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으며, 화단의 화풍도 선비들이 선호하는 문체도 바뀌고 있었다. 그러자 정조는 낡은 가치관 수호에 매달리며 문체반정이라는 수구적인 처방으로 맞섰다. 또한 ‘바람직한 화풍의 진작’을 위해 김홍도 같은 어용화가를 후원했다. 격쟁이라는 일종의 구두(口頭) 상소를 장려했는데 이는 정조가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활용한 통치술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당시 커다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천주교의 유행이었는데, 왕이 사랑한 측근 신하 정약용도 천주교 문제에 걸려 귀향을 가게 됐다. 2009년에 공개된 정조의 비밀어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정조가 어찰로서 당쟁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여기지만, 저자는 그와 정반대라는 것이 이에 대한 견해다.
제4강 협상의 기술 한반도는 북쪽으로 중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북방의 호전적인 여러 민족들 그리고 남쪽으로는 틈만 나면 한반도를 넘겨보는 일본을 이웃으로 두었기에 늘 주변 강대국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조건에 있었다. 주위의 강대국과 외교적· 군사적 현안을 풀어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역사에서도 국제적 협상 능력이 국가의 존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가 많았다. 신라 왕 김춘추는 외교를 통해 삼국통일의 길을 닦았으며, 고구려 광개토대왕도 무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역사의식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정복 왕이 됐다. 고구려 산상왕도, 만일 돌발 상황을 돌파할 협상의 지혜가 없었다면 대권은 차치하고 생명도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협상의 대가로 기록되는 고려의 서희는 자국의 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 요나라의 침략을 차단했으며 영토까지 늘렸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서는 해외파병이 국제 정치사의 일부였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한국이 무역 강국이 되면서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함대가 원정에 나섰다. 형태는 비록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의 압력과 간섭에 시달리는데, 이때 주목해볼 만한 인물로는 명나라를 통제했던 조선 초기의 정도전이 있다. 그리고 몽골 침입 때 거국적으로 추진된 팔만대장경의 판각사업이 불법(佛法)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사업이었다기보다는 집권층의 정치적 의도가 다각적으로 반영된 국책사업이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제5강 뜻밖의 성리학 서구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한국 사회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을 보이며 성리학도 재평가하게 됐다. 그러면서 성리학의 진면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죽음으로써 남편의 뒤를 좇는 열행(烈行)은 과연 성리학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까. 유교의 기본 경전에서 얘기하는 충효열(忠孝烈)에 대한 정의를 들여다보며 이는 성리학의 본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것으로 ‘성리학 포퓰리즘’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중시한 기본 경전 중에 『소학』이 있었다. 이는 왕이 존재하는 이유가 백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는 등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뜻밖의 정의들을 담고 있으며, 이는 한때 『소학』이 금서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국공립학교에는 공납금 같은 것이 없고, 도리어 학생들에게는 숙식까지 무료로 제공됐다. 성균관 유생들은 권당(捲堂), 즉 동맹휴학을 통해 현실정치에 깊이 개입했으며 조선 사회는 지식인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에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성리학 사회의 특징이었던 접빈객 문화도 다각적으로 짚어보고, 송덕봉이라는 50대 여성이 남편에게 쓴 편지를 통해 조선시대 양반 여성의 재량권 문제를 살펴보았다.
제6강 선비의 길 16세기 말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황윤길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경고했으나 당시 집권층은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황윤길의 보고를 외면했고, 결국 무고한 백성들이 전란을 겪어야 했다. 조선의 뜻있는 선비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들에게 아프다고 ‘칭병(稱病)’하며 소극적이나마 대항했다. 또한 조선에는 ‘피혐(避嫌)’ 제도가 있어, 논란 중인 사건에 혐의가 있으면 이가 풀릴 때까지 관직을 떠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세상을 외면한다는 폐문자수(閉門自守)를 하기도 했다. 제도적으로는 상피법(相避法)이 있어 가까운 친척들이 주요 관직을 독점하지 못하게 막았으나, 숙종 이후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해 결국 조선 말기 권신의 등장을 허용하기도 했다. 조선에는 청렴한 재상들도 많아서 그들은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셋집에 살며 나물국과 나물반찬을 먹었다. 금전과 재물에 대한 태도도 자본주의가 유입되기 이전의 조선에서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제7부 과거시험 조선시대는 엄밀한 의미로 왕이 통치하던 시대라기보다 선비들이 권력을 쥐고 다스리던 시기였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조선의 건국 초부터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시행됐다.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정규적인 과거시험만 시행됐으나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명칭의 별시(別試) 즉, 특별시험이 정규시험보다 많았다. 거기서 선발된 인원이 정규시험을 크게 앞질렀다. 과거 열풍이 그만큼 거셌기 때문이다. 과거, 특히 문과시험에 급제하지 않고서는 청요직(淸要職)에 오를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비라면 누구나 문과급제를 열망했다. 그러나 문과급제자도 성적순이 아니라 가문의 배경에 따라 높고 귀한 벼슬에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더더욱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그리고 무과(武科)의 중요 시험과목이었던 활쏘기와 영조와 활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제8부 역사의 어두운 주름 최근에도 우리 사회에는 수뢰 혐의로 공직을 더럽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뇌물의 유래를 알아본다. 조선시대에 한정된 이야기이지만, 매관매직으로 악명이 높았던 몇몇 신하와 왕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매관매직의 악순환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 원리를 따져본다. 또한 나라의 기강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기 쉬운 공신에 대해 살펴본다. 공신의 횡포는 실로 만만치 않았다. 더러는 김안로처럼 공신은 아니었을지언정 명실상부한 실권자가 되어 조정을 어지럽히며 횡포를 부린 자들도 있었다. 공직 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지면 교양과 품위를 중시하는 관료 사회에서도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조선에서도 직접 폭력을 휘두르거나 교사(敎唆)하는 관리들이 존재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의 죽음을 속이고 권력을 휘두른 희대의 아첨꾼 조고(趙高)의 악행을 소개한다. 또한 부정부패에 푹 절은 관리들이 백성들의 몫이 되어야 할 면세의 혜택까지도 훔치고 있는 세금 도둑질의 실태를 들여다본다.
제9부 광화문에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의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곳인 광화문에 대한 역사적 단상들을 모았다. 수도 한성의 홍수 이야기부터 시작해, 광화문 현판의 유래를 소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선시대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는데, 중앙정부는 지방관의 재량권을 보장해줌으로써 지방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는 오늘날에 지역 통합이라고 해서 중앙이 지방을 종속하려고 하는 것과 비교해 일종의 식민화라고 저자는 간주한다.
제10부 매국노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는 과연 부귀와 명예를 마다하고 일본 군국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회주의자 이완용의 매국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의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행로를 훑어보며, 남몰래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과 아직도 정당한 보상은커녕 과거사를 사죄도 하지 않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의 행태를 짚어본다. 그리고 매국노의 전형으로 지탄을 받아온 중국 송나라 때의 진회(秦檜) 등을 살펴본다.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애국자의 대명사인 매천 황현과 안중근 안태훈 부자의 행적을 소개한다.
▣ 작가 소개
저 : 백승종
독일 튀빙겐대학교 중국 및 한국학과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이래, 오랫동안 유럽의 여러 대학교를 순례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는 (재직기간 1990∼1999) 9년 동안 한국의 역사, 문화, 종교, 문학 등을 가르쳤으며 독일 보훔대학교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도 역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했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원에서도 여러 차례 특강을 했고, 독일의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에서는 초빙교수로서 미시사 연구에 종사했다. 국내에서는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한국 사회사 연구』,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편저), 『그 나라의 역사와 말』,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한국의 예언문화사』,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조선의 통치철학』(공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정감록 미스터리』,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 ,『역설』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제1부 정도전의 꿈
정도전의 토지개혁안 / 사병의 철폐 / 추노의 역사 / 홍길동 증후군 / 『정감록』 예언의 유행
제2부 세종의 길
인간 세종 / 사돈도 꺾은 아버지 태종 / 세종의 해답 / 잊힌 수학자 김담 / 효행의 헌릉 길 / 세종의 건방진 매부 / 똑똑했던 양녕대군
제3부 정조의 문화투쟁
느릿한 박자 / 문체반정 / 신윤복과 김홍도 / 격쟁 / 정약용의 거짓말 / 정조의 비밀편지
제4부 협상의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김춘추 / 김유신은 신라의 CEO / 광개토대왕의 국민대통합 / 정치 협상으로 왕이 된 산상왕 / 국제 협상의 달인, 서희 / 해외파병의 국제정치사 / 패권주의와 해적의 탄생 / 강대국 요리 / 팔만대장경은 정치 프로젝트
제5부 뜻밖의 성리학
열녀 / 우리가 몰랐던 성리학 / 『소학』 탄압 / 성종의 학전 / 권당 / 접빈객 / 재량권
제6부 선비의 길
황윤길의 경고 / 칭병(稱病) / 피혐(避嫌) / 언로의 개방 / 폐문자수 / 상피법 / 셋집의 정승판서 / 부자의 책무
제7부 과거시험
과거시험이라는 휜 낚시 / 개천의 용 / 별시 / 영조와 활
제8부 역사의 어두운 주름
뇌물의 유래 / 매관매직의 약사(略史) / 매관매직의 작동원리 / 공신의 횡포 / 김안로의 전횡 / 주먹다짐하는 나리들 / 아첨꾼 조고 / 세금 도둑질
제9부 광화문에서
한성의 홍수 / 광화문 현판 / 지방관의 전단(專斷) / 행정구역 통합
제10부 매국노
이완용을 위하여 / 오적 / 매국노 / 배신 / 매천 황현 / ‘그 아버지에 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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