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주요 목차
1.관직생활
2.살림살이
3.나들이
4.재산증식
5.부부갈등
6.노후생활
▣ 출판사 서평
생활사의 중요성
한국사 연구가 정치사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은 이미 새롭지 않고, 생활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생활사 연구 성과는 그리 흔하지 않은데, 학자들은 무엇보다도 그 원인으로 구체적인 일상 생활에 대한 기초자료 연구 부족을 지적한다. 개인일기나 시문 등 이른바 일차적인 사료로 취급되지 못하던 문헌들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정치사의 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역사적 풍경을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성리학에 기초한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그 정치 이념이 언제 어떻게 각 지방의 생활문화로 정착되었는지는 다만 왕조사를 통해서는 도저히 포착되지 않는 지점들이다.
이 책은 정치사를 넘어서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생활사 연구의 중요한 시도로 평가할 만 하다. 몇 시에 출근을 했는지, 용변을 본 후에는 어떻게 처리를 하였는지 등 시시콜콜한 생활 이야기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주고 받는 대화와 그들이 맺는 사회관계 등 문화적 함의가 깊은 내용까지 당시의 생활상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 신문 서평
사대부도 꼼짝못했던 조선시대 ''여성의 힘''
"서울로 올라와 관직 생활을 하면서 홀로 지낸 지 서너 달. 그간 일절 여색(女色)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아시오."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겨우 몇 달 독숙(獨宿)했다고 고결한 체하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시오. 당신은 아무래도 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4백여년 전인 1570년 6월 조선시대의 양반 내외간에 오간 편지의 일부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한다''면서 정결한 생활을 자랑하는 남편에게 괜히 생색내지 말라며 대거리하는 부인의 꾸중이 매섭다.
주인공은 학자이자 관료인 미암 유희춘(1513~1577)과, 역시 학식과 예술에 능해 ''덕봉집''이란 시집까지 남긴 부인 송덕봉. 부인의 힐난에 미암이 "당신의 말과 뜻이 다 좋아 탄복을 금할 수 없다"며 순순히 어리석음을 인정했다고 하니 우리가 아는 조선의 남녀관계와는 사뭇 다른 부부 간 권력관계가 보인다.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질서가 유례없이 강했던 시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7세기 이전엔 꽤 열린 사회였다는 게 최근 연구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앞의 편지에서 보듯 16세기를 전후한 조선 중기엔 여성의 발언권과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들과 딸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나눠줬고, 여성의 바깥 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학문과 예술도 장려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신사임당.허난설헌.황진이.이매창 등의 여성예술가가 대거 탄생할 수 있었다. 미암과 송덕봉의 관계가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당시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이 책은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1567년부터 11년간 미암이 거의 매일 기록한 한문 일기(미암일기.眉巖日記)를 토대로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것이다. 관직생활.살림살이.나들이.재산증식.부부갈등.노후생활의 여섯 편으로 나눠 저자의 해석과 상상력을 곁들여 현대식으로 풀어냈다. 남자가 첩을 얻는 게 용납되던 시대였지만 그 경우 정부인의 ''혹독한 보복''을 각오해야 했다는 점, 양반과 노비의 관계는 일방적 억압이 아니라 매달 봉급을 지급하고 때때로 휴가를 보내줄 만큼 계약적인 성격이 강했다는 점 등 당시 사람들의 심리 및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다.
미암이 전라감사 시절 성병의 일종인 임질에 걸려 덕봉에게까지 옮기게 되자 "순행(巡行)을 할 때 오랫동안 오줌을 못누고 참았기 때문에 걸린 병"이라고 둘러대는 장면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다. 학문적인 엄밀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건 이 책의 약점이자 강점. 이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라면 논문의 참고도서 리스트에 올리기에 미흡할 수도 있겠으나, 역사 대중화라는 명제를 실천한 좋은 읽을거리임은 분명하다. 일반독자라면 가벼운 콩트처럼 읽어가면서 역사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2003.1.25 중앙일보 이영기 기자]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남자들이 귀를 뚫어 귀고리를 하는 풍습이 항간에 널리 퍼지자 임금이 ‘중국인에게 웃음을 사는 오랑캐 풍습을 혁파하라’고 사헌부에 지시를 내린다. 이것이 조선 중기 풍속도라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부장제적 전통과 여필종부(女必從夫)식의 남존여비 사상 등 TV 사극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조선은 거의 전부가 임진왜란뒤 조선 후기의 모습일 뿐이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또 하나의 조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16세기 호남 사림학파를 대표하는 미암 유희춘이 1567년에서 1577년까지 11년간 거의 매일 한문으로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개인일기인 ‘미암일기’(보물260호)를 통해 조선 중기 중소지주출신 양반의 생활상이 복원된다. 미암은 20여년의 귀양살이 끝에 선조 즉위후 복직돼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에까지 오른 당대 최고 지식인. ‘미암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미암의 부인으로, 시적 감각을 지닌 송덕봉. 한국여성문학회 이사를 지낸 저자는 ‘미암일기’를 중심으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며 16세기의 관직생활, 양반들의 살림살이, 부녀자의 나들이, 양반층의 재산증식법, 부부갈등, 노후생활등 양반 가정의 소소한 일상사까지 소설 문법을 차용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미암의 가정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혼인풍속과 결혼생활. 당시까지만 해도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따지지 않았다. 당시 풍속도를 보면 남자가 여자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사는 처가살이가 널리 유행했다. 이같은 한국 고유의 혼인풍속이 바뀌는 것은 17세기 조선후기부터다. 중국의 주자학에 입각한 혼인풍속이 도입되면서 여자가 남자집으로 가서 사는 시집살이로 돌변한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아들과 딸의 차별없이 재산을 균등하게 나눴다. 3남2녀 중 막내인 덕봉은 친정 부모 제사도 직접 지낸다. 당시 조상의 제사는 자녀들이 서로 돌려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관행이었다.
흔히 조선시대 양반 여성은 집에만 틀어박힌 채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16세기 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양반여성은 오늘날 핵가족사회 여성보다 훨씬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다. 덕봉은 대규모 살림을 하는 틈틈이 매달 한두번 부녀모임을 가졌고, 광화문 산대놀이나 임금행차등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을 때마다 나가 구경을 했다. 당시는 남녀간 애정표현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특히 16세기 양반 여성들은 남편이 첩을 두는 문제로 심각한 부부불화를 겪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신의를 저버린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남편과 심하게 부부싸움을 벌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기록들도 눈에 띈다.
지방 출신 양반들은 서울에서 집을 빌려 살아야 했다. 미암이 낸 집세는 계약금조의 선물로 포육 한묶음과 꿩을 먼저 준 뒤 매달 쌀이나 고기, 생선같은 반찬거리를 집세 대신 내야 했다. 이밖에 왕비와 궁녀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틈틈이 민간의 부녀자를 돌봐주고 식량이나 반찬거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의녀들, 책을 반값에 사서 정가에 파는 책장수등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군상의 면면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2003.1.24 문화일보 정충신 기자]
1.관직생활
2.살림살이
3.나들이
4.재산증식
5.부부갈등
6.노후생활
▣ 출판사 서평
생활사의 중요성
한국사 연구가 정치사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은 이미 새롭지 않고, 생활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생활사 연구 성과는 그리 흔하지 않은데, 학자들은 무엇보다도 그 원인으로 구체적인 일상 생활에 대한 기초자료 연구 부족을 지적한다. 개인일기나 시문 등 이른바 일차적인 사료로 취급되지 못하던 문헌들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정치사의 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역사적 풍경을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성리학에 기초한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그 정치 이념이 언제 어떻게 각 지방의 생활문화로 정착되었는지는 다만 왕조사를 통해서는 도저히 포착되지 않는 지점들이다.
이 책은 정치사를 넘어서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생활사 연구의 중요한 시도로 평가할 만 하다. 몇 시에 출근을 했는지, 용변을 본 후에는 어떻게 처리를 하였는지 등 시시콜콜한 생활 이야기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주고 받는 대화와 그들이 맺는 사회관계 등 문화적 함의가 깊은 내용까지 당시의 생활상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 신문 서평
사대부도 꼼짝못했던 조선시대 ''여성의 힘''
"서울로 올라와 관직 생활을 하면서 홀로 지낸 지 서너 달. 그간 일절 여색(女色)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아시오."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겨우 몇 달 독숙(獨宿)했다고 고결한 체하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시오. 당신은 아무래도 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4백여년 전인 1570년 6월 조선시대의 양반 내외간에 오간 편지의 일부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한다''면서 정결한 생활을 자랑하는 남편에게 괜히 생색내지 말라며 대거리하는 부인의 꾸중이 매섭다.
주인공은 학자이자 관료인 미암 유희춘(1513~1577)과, 역시 학식과 예술에 능해 ''덕봉집''이란 시집까지 남긴 부인 송덕봉. 부인의 힐난에 미암이 "당신의 말과 뜻이 다 좋아 탄복을 금할 수 없다"며 순순히 어리석음을 인정했다고 하니 우리가 아는 조선의 남녀관계와는 사뭇 다른 부부 간 권력관계가 보인다.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질서가 유례없이 강했던 시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7세기 이전엔 꽤 열린 사회였다는 게 최근 연구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앞의 편지에서 보듯 16세기를 전후한 조선 중기엔 여성의 발언권과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들과 딸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나눠줬고, 여성의 바깥 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학문과 예술도 장려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신사임당.허난설헌.황진이.이매창 등의 여성예술가가 대거 탄생할 수 있었다. 미암과 송덕봉의 관계가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당시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이 책은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1567년부터 11년간 미암이 거의 매일 기록한 한문 일기(미암일기.眉巖日記)를 토대로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것이다. 관직생활.살림살이.나들이.재산증식.부부갈등.노후생활의 여섯 편으로 나눠 저자의 해석과 상상력을 곁들여 현대식으로 풀어냈다. 남자가 첩을 얻는 게 용납되던 시대였지만 그 경우 정부인의 ''혹독한 보복''을 각오해야 했다는 점, 양반과 노비의 관계는 일방적 억압이 아니라 매달 봉급을 지급하고 때때로 휴가를 보내줄 만큼 계약적인 성격이 강했다는 점 등 당시 사람들의 심리 및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다.
미암이 전라감사 시절 성병의 일종인 임질에 걸려 덕봉에게까지 옮기게 되자 "순행(巡行)을 할 때 오랫동안 오줌을 못누고 참았기 때문에 걸린 병"이라고 둘러대는 장면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다. 학문적인 엄밀함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건 이 책의 약점이자 강점. 이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라면 논문의 참고도서 리스트에 올리기에 미흡할 수도 있겠으나, 역사 대중화라는 명제를 실천한 좋은 읽을거리임은 분명하다. 일반독자라면 가벼운 콩트처럼 읽어가면서 역사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2003.1.25 중앙일보 이영기 기자]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남자들이 귀를 뚫어 귀고리를 하는 풍습이 항간에 널리 퍼지자 임금이 ‘중국인에게 웃음을 사는 오랑캐 풍습을 혁파하라’고 사헌부에 지시를 내린다. 이것이 조선 중기 풍속도라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부장제적 전통과 여필종부(女必從夫)식의 남존여비 사상 등 TV 사극을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조선은 거의 전부가 임진왜란뒤 조선 후기의 모습일 뿐이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또 하나의 조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16세기 호남 사림학파를 대표하는 미암 유희춘이 1567년에서 1577년까지 11년간 거의 매일 한문으로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개인일기인 ‘미암일기’(보물260호)를 통해 조선 중기 중소지주출신 양반의 생활상이 복원된다. 미암은 20여년의 귀양살이 끝에 선조 즉위후 복직돼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에까지 오른 당대 최고 지식인. ‘미암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미암의 부인으로, 시적 감각을 지닌 송덕봉. 한국여성문학회 이사를 지낸 저자는 ‘미암일기’를 중심으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며 16세기의 관직생활, 양반들의 살림살이, 부녀자의 나들이, 양반층의 재산증식법, 부부갈등, 노후생활등 양반 가정의 소소한 일상사까지 소설 문법을 차용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미암의 가정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혼인풍속과 결혼생활. 당시까지만 해도 가족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따지지 않았다. 당시 풍속도를 보면 남자가 여자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사는 처가살이가 널리 유행했다. 이같은 한국 고유의 혼인풍속이 바뀌는 것은 17세기 조선후기부터다. 중국의 주자학에 입각한 혼인풍속이 도입되면서 여자가 남자집으로 가서 사는 시집살이로 돌변한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아들과 딸의 차별없이 재산을 균등하게 나눴다. 3남2녀 중 막내인 덕봉은 친정 부모 제사도 직접 지낸다. 당시 조상의 제사는 자녀들이 서로 돌려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관행이었다.
흔히 조선시대 양반 여성은 집에만 틀어박힌 채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16세기 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양반여성은 오늘날 핵가족사회 여성보다 훨씬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다. 덕봉은 대규모 살림을 하는 틈틈이 매달 한두번 부녀모임을 가졌고, 광화문 산대놀이나 임금행차등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을 때마다 나가 구경을 했다. 당시는 남녀간 애정표현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특히 16세기 양반 여성들은 남편이 첩을 두는 문제로 심각한 부부불화를 겪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신의를 저버린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남편과 심하게 부부싸움을 벌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기록들도 눈에 띈다.
지방 출신 양반들은 서울에서 집을 빌려 살아야 했다. 미암이 낸 집세는 계약금조의 선물로 포육 한묶음과 꿩을 먼저 준 뒤 매달 쌀이나 고기, 생선같은 반찬거리를 집세 대신 내야 했다. 이밖에 왕비와 궁녀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틈틈이 민간의 부녀자를 돌봐주고 식량이나 반찬거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의녀들, 책을 반값에 사서 정가에 파는 책장수등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군상의 면면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2003.1.24 문화일보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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