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 지구를 한 바퀴 돈 한글운동가 이극로 박사의 파란만장한 40년 인생 역경
- 독립군이 되기 위해 서간도로 떠났다가 독일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한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된 일화
이극로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서간도 동창학교 및 백산학교 교사로 활약하였고, 상하이와 독일,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미국을 시찰하고서 귀국하여 한글운동가로서 조선어학회를 이끌며 조선말큰사전 편찬 등 한국근현대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극로가 1947년에 남긴 <고투사십년>은 자서전과 자작시, 그리고 부록으로 제자의 열전 두 편을 포함하고 있다. 자서전은 가족과 고향 이야기, 서간도 교사 시절, 중국 상해와 독일, 그리고 영국 유학기, 미국 시찰기, 길돈사건, 조선어학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역자는 지난 8년 간 <고투사십년>에 기록된 이극로의 유럽(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에스토니아 등) 행적을 일일이 추적하였고, 특히 독일 베를린대학(현 훔볼트대학), 독일국립도서관, 프로이센 문화예술문서보관소,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 그가 남긴 자취와 관련 사료를 다수 발굴하였다.
유럽 현지답사 및 고증 결과를 반영하고 관련 사진과 상세한 주석을 달아 <고투사십년>을 온전히 복간함으로써 이극로 박사에 대한 선양은 물론, 국어국문학계와 역사학계, 그리고 일반 독자에게 도움을 주고, 역사적인 출간 의미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구문일치의 한글문법 정리와 수호의 역사에서 한힘샘 주시경이 원대한 한글문법 정리 프로젝트의 단초를 열었다면, 이극로 선생은 그 사업을 완성한 이다. 1929년 귀국하여 조선어 교육의 현상을 조사하는 일에 착수하고 여러 동지들에게 어문운동을 일으켜야 함을 말한 것은 “언어문제가 곧 민족문제의 중심이 되는 까닭”이고 “당시 일본 통치의 조선민족은 이 언어의 멸망이 곧 따라올 것”임을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반병률, <추천사> 중
근대 민족운동사와 한글 연구에 있어서 이극로에 대한 조명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것은 첫째, 월북학자라는 선입견, 둘째,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집’이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이극로를 연구하는데 필독서인 그의 자서전 <고투사십년>(1947)은 종이 질이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하였고 오탈자도 많았다. 이극로가 남긴 신문 칼럼이나 다른 자료들은 산재되어 있어서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조차 곤란한 현실이다.
그간 <고투사십년>을 복간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역사학자에 의해 완벽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밀한 현지답사와 고증을 통해 현대적으로 복간된 <고투사십년>은 그 출간의 의의가 크다. 금지곡이 되었던 그의 「한글노래」 악보도 수록함으로써, 생애의 말년을 북에서 보낸 이극로 박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재평가가 남북 이념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리라 본다.
▣ 작가 소개
이극로
경남 의령 출신 한글학자.독립운동가다. 마산 창신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일제강점 후 도만하여 회인현 동창학교와 무송현 백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상해 동제대학을 졸업했다. 1922년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지금의 훔볼트대학)에 입학해 1927년 <중국의 생사공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벨기에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영국.프랑스.미국.일본을 시찰한 뒤 귀국해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조선말 큰사전> 첫째 권을 간행하고서 남북연석회의에 조선건민회 대표로 참석, 평양에 잔류해 북한 국어학의 토대를 닦았다.
저서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독일어), <한국, 그리고 일제에 맞선 독립투쟁>(독일어), <고투사십년>, <음성학>, <국어학논총>이 있다.
▣ 주요 목차
발 간 사
추천의 글_반병률
일러두기
Ⅰ. 머리말
Ⅱ. 수륙 이십만 리 주유기
1. 가정 형편과 조선 내의 교육과 서간도 행
2.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랑 생활하던 때와 그 뒤
3. 중국 상해에서 유학하던 때와 그 뒤
4.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때와 그 뒤
5. 영국 런던에서 유학하던 때와 그 뒤
6. 귀국 도중에 미국 시찰하던 때와 그 뒤
Ⅲ. 길돈사건 진상 조사와 재만 동포 위문
Ⅳ. 조선어학회와 나의 반생
Ⅴ. 노래
Ⅵ. 조선어학회 사건: 함흥지방법원 예심 종결서 일부_안석제
Ⅶ. 스승님의 걸어오신 길_유열
<고투사십년> 원문
<고투사십년> 해제
저자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 지구를 한 바퀴 돈 한글운동가 이극로 박사의 파란만장한 40년 인생 역경
- 독립군이 되기 위해 서간도로 떠났다가 독일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한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된 일화
이극로는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서간도 동창학교 및 백산학교 교사로 활약하였고, 상하이와 독일,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미국을 시찰하고서 귀국하여 한글운동가로서 조선어학회를 이끌며 조선말큰사전 편찬 등 한국근현대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극로가 1947년에 남긴 <고투사십년>은 자서전과 자작시, 그리고 부록으로 제자의 열전 두 편을 포함하고 있다. 자서전은 가족과 고향 이야기, 서간도 교사 시절, 중국 상해와 독일, 그리고 영국 유학기, 미국 시찰기, 길돈사건, 조선어학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역자는 지난 8년 간 <고투사십년>에 기록된 이극로의 유럽(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에스토니아 등) 행적을 일일이 추적하였고, 특히 독일 베를린대학(현 훔볼트대학), 독일국립도서관, 프로이센 문화예술문서보관소,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 그가 남긴 자취와 관련 사료를 다수 발굴하였다.
유럽 현지답사 및 고증 결과를 반영하고 관련 사진과 상세한 주석을 달아 <고투사십년>을 온전히 복간함으로써 이극로 박사에 대한 선양은 물론, 국어국문학계와 역사학계, 그리고 일반 독자에게 도움을 주고, 역사적인 출간 의미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구문일치의 한글문법 정리와 수호의 역사에서 한힘샘 주시경이 원대한 한글문법 정리 프로젝트의 단초를 열었다면, 이극로 선생은 그 사업을 완성한 이다. 1929년 귀국하여 조선어 교육의 현상을 조사하는 일에 착수하고 여러 동지들에게 어문운동을 일으켜야 함을 말한 것은 “언어문제가 곧 민족문제의 중심이 되는 까닭”이고 “당시 일본 통치의 조선민족은 이 언어의 멸망이 곧 따라올 것”임을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반병률, <추천사> 중
근대 민족운동사와 한글 연구에 있어서 이극로에 대한 조명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것은 첫째, 월북학자라는 선입견, 둘째,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집’이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이극로를 연구하는데 필독서인 그의 자서전 <고투사십년>(1947)은 종이 질이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하였고 오탈자도 많았다. 이극로가 남긴 신문 칼럼이나 다른 자료들은 산재되어 있어서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조차 곤란한 현실이다.
그간 <고투사십년>을 복간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역사학자에 의해 완벽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밀한 현지답사와 고증을 통해 현대적으로 복간된 <고투사십년>은 그 출간의 의의가 크다. 금지곡이 되었던 그의 「한글노래」 악보도 수록함으로써, 생애의 말년을 북에서 보낸 이극로 박사의 삶과 활동에 대한 재평가가 남북 이념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리라 본다.
▣ 작가 소개
이극로
경남 의령 출신 한글학자.독립운동가다. 마산 창신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일제강점 후 도만하여 회인현 동창학교와 무송현 백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상해 동제대학을 졸업했다. 1922년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지금의 훔볼트대학)에 입학해 1927년 <중국의 생사공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벨기에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영국.프랑스.미국.일본을 시찰한 뒤 귀국해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지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조선말 큰사전> 첫째 권을 간행하고서 남북연석회의에 조선건민회 대표로 참석, 평양에 잔류해 북한 국어학의 토대를 닦았다.
저서에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침략정책>(독일어), <한국, 그리고 일제에 맞선 독립투쟁>(독일어), <고투사십년>, <음성학>, <국어학논총>이 있다.
▣ 주요 목차
발 간 사
추천의 글_반병률
일러두기
Ⅰ. 머리말
Ⅱ. 수륙 이십만 리 주유기
1. 가정 형편과 조선 내의 교육과 서간도 행
2.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랑 생활하던 때와 그 뒤
3. 중국 상해에서 유학하던 때와 그 뒤
4.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때와 그 뒤
5. 영국 런던에서 유학하던 때와 그 뒤
6. 귀국 도중에 미국 시찰하던 때와 그 뒤
Ⅲ. 길돈사건 진상 조사와 재만 동포 위문
Ⅳ. 조선어학회와 나의 반생
Ⅴ. 노래
Ⅵ. 조선어학회 사건: 함흥지방법원 예심 종결서 일부_안석제
Ⅶ. 스승님의 걸어오신 길_유열
<고투사십년> 원문
<고투사십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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