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나 만고역적의 대명사가 된 불우한 영웅
삼봉 정도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
1997년 초판 출간 당시 ‘정도전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의 관심과 더불어 정도전 재조명 열풍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 17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왔다. 당시 《말》지 기자였던 저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세대교체를 이루는 데 주인공 역할을 한 혁명가 정도전에게 마음을 빼앗겨 3년간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한 끝에 이 책을 출간했다. 탐사 기자 특유의 취재 능력을 바탕으로 정도전에 관한 수많은 사료와 연구 성과를 섭렵해 재구성해낸 이 책은 그간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료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정도전을 새롭게 조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봉 정도전, 그는 누구인가? 고려 말의 구습을 청산하고 이성계와 더불어 새로운 조선을 건국함으로써 정치적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이 바로 정도전이다. 선비인가 하면 정략가였고, 유교 이론가인가 하면 군사 지휘자였으며,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거시적 안목으로 읽어내고 새로운 유교사상을 받아들인 사상가이자 정치가이자 시대의 혁명가였다.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고, 백성은 먹을 것이 하늘’이며,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 조선의 문물제도를 만들었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의 기본을 설계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과 성 안의 동네 이름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시와 음악과 병법에도 능통했으며, 《불씨잡변》, 《경제문감》, 《조선경국전》과 같은 수많은 저술을 남긴 뛰어난 사상가였다. 그러나 태조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500년간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왔다. 그는 왜 역적의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을까? 이 책은 정도전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을 집요하게 파고든 기록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역사의 진실을 들려준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 1398년 8월 26일, 정도전이 생을 마감한 날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토대로 이어지는 그의 삶의 기록에는 난세를 이끌어간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저자의 날카로운 역사 해석과 비평은 고려 말부터 조선 개국의 숨 가쁜 역사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놓았을 뿐 아니라 정몽주, 최영, 이성계, 이방원 등 그동안 하나의 이미지로만 다가왔던 역사적 인물들을 정도전의 굴곡 많은 생애와 더불어 살아 숨 쉬는 인물들로 거듭나게 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꾸었기에 동지에서 적으로 서로의 운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책은 난세의 시대에 민본주의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을 꿈꾸고 설계한 혁명가 정도전의 생애를 복원함으로써 오늘날의 정치는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 철인정치란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숨 쉬는 오늘 이 나라도 이러한 건강한 전통과 잇닿아 있다. 남달리 민주주의가 강하고 배움에 개방성이 강한 우리의 특성은 예로부터 쉼 없이 계발되어온 것이겠지만, 특히 정도전의 혁명에 적잖이 빚지고 있을 것이다. - 4쪽([2판 서문] 중에서)
책은 본연의 목표를 이루어냈다. 정도전은 충분히 변명되었다. 그러나 변명이 이루어졌다고 모두 끝난 게 아니다. 정도전은 더욱더 소개되고 알려져야 할 인물이다. 그가 이루어낸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서도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 박시백 화백(《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저자)
실천적 지식인 정도전 사상의 바탕, ‘민본주의’와 ‘합리주의’
정도전은 《논어》와 《맹자》 같은 유교 경전뿐 아니라 병법서를 비롯한 수많은 경전을 읽고 이를 체화한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불씨잡변》, 《경제문감》, 《조선경국전》을 비롯해 《삼봉집》에 함께 엮이어 있는 다수의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가장 근간이 되는 민본주의 사상은 일찍이 부모상을 3년 동안 치르면서 정몽주가 보내준 《맹자》를 읽으며 형성되었는데, 《맹자》는 《논어》와 비교해 특히 민본과 민생을 더 강조하고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뚜렷이 밝혀놓았다. 정도전은 공민왕 시해 사건 이후 이인임 세력에 의해 귀양을 떠나 10년 동안, 특히 나주 거평부곡에서 민초들과 부대끼며 이들에게 배운 바가 컸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정도전이 주장한 전제개혁안과 노비 해방 정책은 모두 민본 사상에 바탕한 것들이다. 자질이 일정치 않은 세습 군주가 전권을 행사하는 왕권 중심주의보다 천하 인재 가운데 선발된 재상이 국정의 중심이 되는 재상 중심주의를 주장한 것 또한 유가의 철인 정치 사상을 계승하면서 그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며, 대외관계에서도 사대외교의 기초를 만들었으면서 요동정벌과 같은 항쟁을 통한 자주노선을 택한 것 또한 백성과 국가의 보전을 위해서 이 두 정책이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반해 있다. 이렇듯 정도전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 키워드는 ‘민본’이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의 핵심 사상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로, 그는 불교의 윤회설에 대해서도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비판했으며, 조선 개국 이후 한양 천도시 풍수설에 입각한 논의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 책은 민본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한 정도전 사상의 핵심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상 사회를 이룩하고자 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여정 또한 밀도 있게 들려준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민초들과 만나며 정도전은 ‘민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공자나 맹자의 가르침을 피부로 실감하고, 정치란 결국 벼슬아치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사짓는 백성들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가슴 깊이 깨우쳤다. - 본문 129~130쪽
임금은 존귀한 존재지만 그보다 더 존귀한 것은 천하 민심이다. 천하 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민심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오직 백성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민심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씨다. 한없는 포용으로 구석구석 미치는 자애의 마음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는 도덕과 양심의 정치다. 정도전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였다. - 본문 152쪽
당시에 전제개혁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정도전 외에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정도전만큼 철저히 가난한 농민의 입장에 서서 개혁안을 만든 사람은 없었다. 정도전의 개혁안은 전국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해 나라 안의 모든 농민에게 식구 수대로 분배하는 이른바 ‘계민수전(計民受田)’ 방식으로 철저한 개혁을 지향했다. (중략) 나라 안의 모든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한다는 정도전의 발상은 조선 후기 실학파에 와서야 본격화되는 토지 사상으로, 시대를 초월한 진보적 의의를 띠고 있다. 또한 모든 토지를 국가에 귀속한다는 발상 역시 오늘날의 토지공개념에 비견되는 진보적 토지 사상이다. - 본문 192~193쪽
정도전은 불교의 윤회설과 인과응보설에 대해서도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을 가했다. 유가의 합리적 관점에서 볼 때 불가의 윤회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또한 상대적으로 합리주의를 추구하던 유교 지식인들이 불교에 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이상 공격하기 쉬운 약점도 없었을 것이다. - 본문 210쪽
백성들의 고초를 직접 목격하고 스스로 체험한 정도전으로서는 비합리적인 풍수설에 얽매여 천도를 서둘러서 민생고를 가중시키는 것은 정치가로서 차마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략) 상당수의 중신이 풍수나 비기에 연연할 때 정도전은 그 비과학성을 지적하면서 인본주의와 합리적 이성을 추구한 군계일학의 인물이었다. - 본문 292쪽
정도전이 다른 정치가들과 다른 면모가 있다면, 이처럼 이상의 가치를 알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정치가였다는 점이다. 또한 정도전이 다른 지식인들과 다른 면모가 있다면, 이상을 추구하되 백성의 실용에 도움이 되는 바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중략)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 - 본문 304쪽
정도전의 이상은 도덕적 인간들의 공동체 건설에 있었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우선 민생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즉, 관중(管仲)이 말했듯이 “의식이 풍족해야 염치를 알고 창고가 가득 차야 예의가 일어난다”(《조선경국전》)는 것이다. 소수의 의식화된 선비들은 빈한한 가운데서도 도의를 실천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하지만, 평범한 필부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도 배려하고 도덕도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조선경국전》)고 했다. - 본문 305~306쪽
정몽주 ? 이성계 ? 이방원,
지금의 정도전을 있게 한 역사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해석
이 책은 정도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세 인물, 즉 정몽주?이성계?이방원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그간 고려의 충신으로 박제화되어 있는 정몽주를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려 한 개혁파 인물이었음을 부각하고 있다. 정도전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마음을 같이하는 벗(同心友)’이자 우왕과 창왕을 함께 폐하고 공양왕을 세운 9공신의 혁명동지였지만 결국 왕조 교체에는 반대하면서 다른 길을 선택했던 정몽주, 그는 정적이 된 정도전과 이성계를 먼저 제거하려고 한 노련한 정치가였다. 정도전이 함주 막사로 찾아간 1383년 가을 이후 군신관계를 뛰어넘는 동지적 관계를 이어온 이성계, 세자 책봉 과정과 요동정벌을 둘러싼 명과의 관계 설정, 왕권과 신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으로 결국 정도전을 죽음으로 내몰고 만고역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방원에 대한 묘사와 해석은 이들이 주요 정국마다 어떻게 관계를 달리해오며 역사를 만들어왔는지를 세밀하게 들려준다.
인물과 그 인물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물을 재해석해내는 저자의 탁월한 해석 능력은 여타 다른 정도전 관련 도서와의 차별점이 어디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조선시대 이래 무조건적 충성의 상징으로 박제화된 정몽주와 실제 정몽주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정몽주는 보수적이기보다는 개혁적이었으며,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지향하는 개혁 인사였다. 다만 정몽주는 고려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계 내에서 개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었기에 왕조 교체를 추구했던 정도전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 본문 200~01쪽
이색을 죽이려 하지 않는 정도전은 정도전일 수 없고, 정도전을 죽이려 하지 않는 정몽주 역시 정몽주일 수 없다. 그러한 정도전과 정몽주라면 비록 사제 의리와 우정은 지켰을지 몰라도 역사 발전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정도전과 정몽주 같은 인간형, 역사는 그들처럼 정치적 선이 분명한 사람들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 본문 237~238쪽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한나라를 세운 주역은 유방이요, 장량은 조역이다. 그러나 대세의 흐름을 기획하고 창조해내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 건국의 주역은 장량이고 유방은 조역이다. 마찬가지로 조선 창업의 정치적 주역은 이성계다. 그러나 그 역사적 주역은 정도전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해 정도전이 가졌던 자부심이었다. - 본문 161쪽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뒤 술이 거나하게 취할 때마다,“ 삼봉이 아니면 내가 어찌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정도전의 공을 치하했으며, 정도전 역시 술이 취하면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참모 장량(張良)의 관계에 비유하며 “한 고조가 자방(子房, 장량의 자)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방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했다. - 본문 41~42쪽
태종은 그 옛날 자신이 선죽교에서 몽둥이로 격살한 정몽주를 집권 첫해에 영의정으로 추증하며 만고충신으로 복권했으나, 송현에서 참수한 정도전에게는 만고역적의 족쇄를 풀어주지 않았다. 정도전은 권세욕에 눈먼 모반자요, 인격 파탄자였을 뿐이다. - 본문 40쪽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관철해나가는 데서 보여준 집념이라든가, 욕을 먹을지라도 일은 되게 만드는 불같은 추진력 면에서는 정적 정도전과 유사한 점도 많았다. 그러나 정도전의 인생이 이상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 과정이었다면, 이방원은 현실적인 것이 곧 이상적인 것이라는 논리로 평생을 일관했다. - 본문 239~240쪽
▣ 작가 소개
저자 : 조유식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말》지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인터넷 서점 알라딘 대표로 있다. 기자 시절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을 담은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집필했다.
▣ 주요 목차
차례
2판 서문 : 그만이 혁명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었다
초판 서문 : 의로운 자는 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하는가
추천사 : 정도전에 대한 재조명은 이제 시작이다
프롤로그 최후의 그날
역모의 주체는 누구였던가
1398년 8월 26일, 만 하루 동안의 기록 | 마지막 유언
재현, 변란의 현장
완벽한 기습 | 연이은 패착 | 그날 밤의 카멜레온들
삼봉의 신원을 위하여
역적 정도전, 500년 동안의 굴레 | 정의로 속을 채운 영웅
1막 두 고려인
천민의 피
청백리 아버지의 유산 | 승려와 노비의 핏줄
개혁파 정치학교 ‘이색 학당’
영주 산골에서 개경의 명문 사학으로 | 개혁과 자주의 파도
또 하나의 인물,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의 탁월한 선택 | 체두변발 자르고 고려의 장수가 되다
2막 난세와 영웅
개혁당의 출현
난세를 구할 풍운아| 마음을 같이하는 동지들
신돈의 비극
공민왕은 왜 노비의 자식을 파격 발탁했는가 | 개혁가에서 요승으로
성균관, 개혁 주체의 양성소
철학과 역사, 과학과 예술을 넘나들다 | 개경의 벗들을 그리워하다 | 명륜당의 치열한 세미나
3막 군자의 길
선배 정몽주
선배이자 동지이자 그리운 벗 | 정치 교과서 《맹자》를 탐독하다
정치는 군자의 소명
자신을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 정치란 내가 먼저 하기를 게을리 않는 것
명리인이냐 군자사냐
인생무상, 정치무상 | 하루를 살아도 높고 높은 구름처럼
4막 탁류에는 발끝조차 담그지 않는다
거꾸로 가는 역사의 시곗바늘
개혁군주 공민왕의 비참한 말로 | 비극의 여인, 반야 | 개혁당 최초의 연대, 친원 반대투쟁
재야 10년
유배지에서 만난 민초들 | 농사꾼과 벗하다
새벽닭이 좀처럼 울지 않으니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 유배당한 자의 고독
5막 하늘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보라
민초가 나라의 주인이다
어느 농부와 나눈 대화 | 지혜로운 민, 허울뿐인 선비
왜 의로운 자는 곤궁하고 불의한 자는 부귀한가
과연 정의는 존재하는가 | 문제는 인간이다 | 지란은 불탈수록 향기 더하고
정치 활동이 금지된 시절
유배에서 풀려나다 | 철거민과 농부의 삶으로 | 지음을 찾아서
6막 개혁가에서 혁명가로
역성혁명을 꿈꾸며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 아니다 | 정도전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
정도전은 왜 이성계를 선택했는가
두 영웅, 최영과 이성계 | 이성계를 선택한 이유 | 운명의 첫 만남 | 장량이 유방을 이용했듯이 | 운명에 대한 확신
정몽주, 디딤돌을 놓다
포은, 삼봉에게 손을 내밀다 | 누구를 위한 붉은 마음인가
정도전의 지략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 자진하여 하방한 이유
7막 이중권력
위화도 회군
회군 전야와 두 가지 전술 |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반대한 진짜 이유 | 개경으로, 개경으로! | 누구를 왕위에 올릴 것인가
백성이라면 누구나 땅을 가져야 한다
삼봉의 정국 주도 해법 |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 | 적과 동지의 갈림길
혁명파의 정권 장악
이성계 암살 미수 사건 | 역성혁명파의 흥국사 반격 | 보수파 축출과 9공신 정국 | 구신들, 불타는 땅문서를 보며 눈물 흘리다
사상혁명으로서의 역성혁명
도덕정치와 참여정치의 깃발 아래 | 인간에 대한 사랑 | 이념투쟁의 선두에 서다
8막 결정적인 순간들
역성혁명파와 온건보수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 정변이 아니라 혁명이다 |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
덕장 이성계와 혁명가 정도전
보수파의 공격 | 혁명파의 역공 | 환상의 콤비
다시 유배지로
삭탈관직, 그리고 다시 나주로 | 절망에 빠졌을 때의 자기 관리법
정몽주의 반격
정도전을 처형하소서 | 정몽주의 친위 쿠데타와 일촉즉발의 위기
이방원의 등장
정몽주 선죽교 피살 사건 | 그가 죽자 고려도 죽었다
9막 개국, 그리고 혁명
고려도 조선도 아니었던 닷새간
고려의 마지막 날 | 역사는 때로 집념 어린 소수의 것
철인정치를 위하여
민본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 권력의 기원은 백성과 통치자의 계약이다 | 덕성과 철학을 겸비한 자의 문인정치
10막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다
숙청, 그리고 맹세
냉정한 숙청의 칼날 | 혁명 동지들의 헛된 맹세 | 비주류와 소외 세력의 혁명
이방원은 왜 세자가 되지 못했나
비극의 서막, 세자 책봉 | 사초를 임금에게 보이지 않는 까닭 | 정도전과 이방원, 손잡을 수는 없었나
왕권 대 신권
군주 독재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 재상 중심의 정치 시스템
한양 천도
사람의 도리를 다한 뒤에 점을 치라 | 정도전, 수도 한양을 설계하고 지휘하다 | 술 한 잔 마시고 지은 이름, 경복궁
실천적 지식인의 소명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의 근심도 품어야 한다 |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11막 요동정벌운동
고토 회복론
요동을 되찾아야 한다 | 700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
어째서 너희 조선은 전쟁을 하자고 서두르는가
요동을 넘보지 마라 | 조심스런 사대와 외유내강 | 민족적 자부심이 담긴 국호, 조선
사대와 자주의 삼봉식 외교론
말로는 신하라 하고 | 명 황제의 조선 사신 몽둥이 구타 사건 | 주원장과 정도전의 신경전
삼봉의 군사 리더십
군령을 어긴 자들의 볼기를 치다 | 국방이 민생보다 우선이다 | 비상시국의 금주령 | 병사를 보살피는 장수의 다섯 가지 지침 | 적을 알아 승리하는 네 가지 계책 | 명 선비들, 이방원을 ‘조선 세자’라 부르다
12막 미완의 신화
왕씨 대학살의 참극
얼어붙은 정국과 위기의식 | 조선 왕조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
이방원 세력의 부상
정도전을 의심한다면 누구를 믿겠는가 | 말에서 떨어졌을 때를 잊지 말기 바랍니다
정도전 대 주원장
표전문의 교정자 정도전을 압송하라 | 삼봉을 압송하지 못하는 이유 | 후원자 강비의 죽음 | 백전노장 주원장의 원격 조종술 | 만일 조선이 군대를 내어 쳐들어온다면
조선은 중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느냐
정도전, 요동정벌론을 공식화하다 | 백의종군 | 송헌 거사 이성계가 삼봉에게
전쟁이냐, 굴복이냐
더 이상 당하고만 살 수는 없다 | 일대 논쟁
최후의 일격은 빗나가고
마침내 찾아온 기회 | 왕자들의 사보타주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
이방원의 승부수 | 이기고 지는 것은 인간의 책임일 뿐
에필로그 그날 이후
정도전 연보
참고문헌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나 만고역적의 대명사가 된 불우한 영웅
삼봉 정도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
1997년 초판 출간 당시 ‘정도전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의 관심과 더불어 정도전 재조명 열풍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 17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왔다. 당시 《말》지 기자였던 저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세대교체를 이루는 데 주인공 역할을 한 혁명가 정도전에게 마음을 빼앗겨 3년간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한 끝에 이 책을 출간했다. 탐사 기자 특유의 취재 능력을 바탕으로 정도전에 관한 수많은 사료와 연구 성과를 섭렵해 재구성해낸 이 책은 그간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료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정도전을 새롭게 조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봉 정도전, 그는 누구인가? 고려 말의 구습을 청산하고 이성계와 더불어 새로운 조선을 건국함으로써 정치적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이 바로 정도전이다. 선비인가 하면 정략가였고, 유교 이론가인가 하면 군사 지휘자였으며,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거시적 안목으로 읽어내고 새로운 유교사상을 받아들인 사상가이자 정치가이자 시대의 혁명가였다.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고, 백성은 먹을 것이 하늘’이며, ‘정치란 무릇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 조선의 문물제도를 만들었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서울 도심의 기본을 설계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과 성 안의 동네 이름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시와 음악과 병법에도 능통했으며, 《불씨잡변》, 《경제문감》, 《조선경국전》과 같은 수많은 저술을 남긴 뛰어난 사상가였다. 그러나 태조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500년간 만고역적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왔다. 그는 왜 역적의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을까? 이 책은 정도전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을 집요하게 파고든 기록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역사의 진실을 들려준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 1398년 8월 26일, 정도전이 생을 마감한 날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토대로 이어지는 그의 삶의 기록에는 난세를 이끌어간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저자의 날카로운 역사 해석과 비평은 고려 말부터 조선 개국의 숨 가쁜 역사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놓았을 뿐 아니라 정몽주, 최영, 이성계, 이방원 등 그동안 하나의 이미지로만 다가왔던 역사적 인물들을 정도전의 굴곡 많은 생애와 더불어 살아 숨 쉬는 인물들로 거듭나게 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꾸었기에 동지에서 적으로 서로의 운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책은 난세의 시대에 민본주의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을 꿈꾸고 설계한 혁명가 정도전의 생애를 복원함으로써 오늘날의 정치는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 철인정치란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가 숨 쉬는 오늘 이 나라도 이러한 건강한 전통과 잇닿아 있다. 남달리 민주주의가 강하고 배움에 개방성이 강한 우리의 특성은 예로부터 쉼 없이 계발되어온 것이겠지만, 특히 정도전의 혁명에 적잖이 빚지고 있을 것이다. - 4쪽([2판 서문] 중에서)
책은 본연의 목표를 이루어냈다. 정도전은 충분히 변명되었다. 그러나 변명이 이루어졌다고 모두 끝난 게 아니다. 정도전은 더욱더 소개되고 알려져야 할 인물이다. 그가 이루어낸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서도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 박시백 화백(《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저자)
실천적 지식인 정도전 사상의 바탕, ‘민본주의’와 ‘합리주의’
정도전은 《논어》와 《맹자》 같은 유교 경전뿐 아니라 병법서를 비롯한 수많은 경전을 읽고 이를 체화한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불씨잡변》, 《경제문감》, 《조선경국전》을 비롯해 《삼봉집》에 함께 엮이어 있는 다수의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가장 근간이 되는 민본주의 사상은 일찍이 부모상을 3년 동안 치르면서 정몽주가 보내준 《맹자》를 읽으며 형성되었는데, 《맹자》는 《논어》와 비교해 특히 민본과 민생을 더 강조하고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뚜렷이 밝혀놓았다. 정도전은 공민왕 시해 사건 이후 이인임 세력에 의해 귀양을 떠나 10년 동안, 특히 나주 거평부곡에서 민초들과 부대끼며 이들에게 배운 바가 컸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정도전이 주장한 전제개혁안과 노비 해방 정책은 모두 민본 사상에 바탕한 것들이다. 자질이 일정치 않은 세습 군주가 전권을 행사하는 왕권 중심주의보다 천하 인재 가운데 선발된 재상이 국정의 중심이 되는 재상 중심주의를 주장한 것 또한 유가의 철인 정치 사상을 계승하면서 그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며, 대외관계에서도 사대외교의 기초를 만들었으면서 요동정벌과 같은 항쟁을 통한 자주노선을 택한 것 또한 백성과 국가의 보전을 위해서 이 두 정책이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반해 있다. 이렇듯 정도전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 키워드는 ‘민본’이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의 핵심 사상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합리주의’로, 그는 불교의 윤회설에 대해서도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비판했으며, 조선 개국 이후 한양 천도시 풍수설에 입각한 논의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 책은 민본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한 정도전 사상의 핵심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상 사회를 이룩하고자 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여정 또한 밀도 있게 들려준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민초들과 만나며 정도전은 ‘민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공자나 맹자의 가르침을 피부로 실감하고, 정치란 결국 벼슬아치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사짓는 백성들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가슴 깊이 깨우쳤다. - 본문 129~130쪽
임금은 존귀한 존재지만 그보다 더 존귀한 것은 천하 민심이다. 천하 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민심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오직 백성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민심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씨다. 한없는 포용으로 구석구석 미치는 자애의 마음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는 도덕과 양심의 정치다. 정도전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였다. - 본문 152쪽
당시에 전제개혁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정도전 외에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정도전만큼 철저히 가난한 농민의 입장에 서서 개혁안을 만든 사람은 없었다. 정도전의 개혁안은 전국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해 나라 안의 모든 농민에게 식구 수대로 분배하는 이른바 ‘계민수전(計民受田)’ 방식으로 철저한 개혁을 지향했다. (중략) 나라 안의 모든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한다는 정도전의 발상은 조선 후기 실학파에 와서야 본격화되는 토지 사상으로, 시대를 초월한 진보적 의의를 띠고 있다. 또한 모든 토지를 국가에 귀속한다는 발상 역시 오늘날의 토지공개념에 비견되는 진보적 토지 사상이다. - 본문 192~193쪽
정도전은 불교의 윤회설과 인과응보설에 대해서도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을 가했다. 유가의 합리적 관점에서 볼 때 불가의 윤회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또한 상대적으로 합리주의를 추구하던 유교 지식인들이 불교에 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이상 공격하기 쉬운 약점도 없었을 것이다. - 본문 210쪽
백성들의 고초를 직접 목격하고 스스로 체험한 정도전으로서는 비합리적인 풍수설에 얽매여 천도를 서둘러서 민생고를 가중시키는 것은 정치가로서 차마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략) 상당수의 중신이 풍수나 비기에 연연할 때 정도전은 그 비과학성을 지적하면서 인본주의와 합리적 이성을 추구한 군계일학의 인물이었다. - 본문 292쪽
정도전이 다른 정치가들과 다른 면모가 있다면, 이처럼 이상의 가치를 알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정치가였다는 점이다. 또한 정도전이 다른 지식인들과 다른 면모가 있다면, 이상을 추구하되 백성의 실용에 도움이 되는 바를 추구함으로써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중략)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 - 본문 304쪽
정도전의 이상은 도덕적 인간들의 공동체 건설에 있었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우선 민생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즉, 관중(管仲)이 말했듯이 “의식이 풍족해야 염치를 알고 창고가 가득 차야 예의가 일어난다”(《조선경국전》)는 것이다. 소수의 의식화된 선비들은 빈한한 가운데서도 도의를 실천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하지만, 평범한 필부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도 배려하고 도덕도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조선경국전》)고 했다. - 본문 305~306쪽
정몽주 ? 이성계 ? 이방원,
지금의 정도전을 있게 한 역사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해석
이 책은 정도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세 인물, 즉 정몽주?이성계?이방원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그간 고려의 충신으로 박제화되어 있는 정몽주를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가려 한 개혁파 인물이었음을 부각하고 있다. 정도전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마음을 같이하는 벗(同心友)’이자 우왕과 창왕을 함께 폐하고 공양왕을 세운 9공신의 혁명동지였지만 결국 왕조 교체에는 반대하면서 다른 길을 선택했던 정몽주, 그는 정적이 된 정도전과 이성계를 먼저 제거하려고 한 노련한 정치가였다. 정도전이 함주 막사로 찾아간 1383년 가을 이후 군신관계를 뛰어넘는 동지적 관계를 이어온 이성계, 세자 책봉 과정과 요동정벌을 둘러싼 명과의 관계 설정, 왕권과 신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으로 결국 정도전을 죽음으로 내몰고 만고역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방원에 대한 묘사와 해석은 이들이 주요 정국마다 어떻게 관계를 달리해오며 역사를 만들어왔는지를 세밀하게 들려준다.
인물과 그 인물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물을 재해석해내는 저자의 탁월한 해석 능력은 여타 다른 정도전 관련 도서와의 차별점이 어디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조선시대 이래 무조건적 충성의 상징으로 박제화된 정몽주와 실제 정몽주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정몽주는 보수적이기보다는 개혁적이었으며,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지향하는 개혁 인사였다. 다만 정몽주는 고려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계 내에서 개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었기에 왕조 교체를 추구했던 정도전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 본문 200~01쪽
이색을 죽이려 하지 않는 정도전은 정도전일 수 없고, 정도전을 죽이려 하지 않는 정몽주 역시 정몽주일 수 없다. 그러한 정도전과 정몽주라면 비록 사제 의리와 우정은 지켰을지 몰라도 역사 발전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정도전과 정몽주 같은 인간형, 역사는 그들처럼 정치적 선이 분명한 사람들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 본문 237~238쪽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한나라를 세운 주역은 유방이요, 장량은 조역이다. 그러나 대세의 흐름을 기획하고 창조해내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 건국의 주역은 장량이고 유방은 조역이다. 마찬가지로 조선 창업의 정치적 주역은 이성계다. 그러나 그 역사적 주역은 정도전이다. 이것이 역사에 대해 정도전이 가졌던 자부심이었다. - 본문 161쪽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뒤 술이 거나하게 취할 때마다,“ 삼봉이 아니면 내가 어찌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정도전의 공을 치하했으며, 정도전 역시 술이 취하면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참모 장량(張良)의 관계에 비유하며 “한 고조가 자방(子房, 장량의 자)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방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했다. - 본문 41~42쪽
태종은 그 옛날 자신이 선죽교에서 몽둥이로 격살한 정몽주를 집권 첫해에 영의정으로 추증하며 만고충신으로 복권했으나, 송현에서 참수한 정도전에게는 만고역적의 족쇄를 풀어주지 않았다. 정도전은 권세욕에 눈먼 모반자요, 인격 파탄자였을 뿐이다. - 본문 40쪽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관철해나가는 데서 보여준 집념이라든가, 욕을 먹을지라도 일은 되게 만드는 불같은 추진력 면에서는 정적 정도전과 유사한 점도 많았다. 그러나 정도전의 인생이 이상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 과정이었다면, 이방원은 현실적인 것이 곧 이상적인 것이라는 논리로 평생을 일관했다. - 본문 239~240쪽
▣ 작가 소개
저자 : 조유식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말》지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인터넷 서점 알라딘 대표로 있다. 기자 시절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을 담은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집필했다.
▣ 주요 목차
차례
2판 서문 : 그만이 혁명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었다
초판 서문 : 의로운 자는 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하는가
추천사 : 정도전에 대한 재조명은 이제 시작이다
프롤로그 최후의 그날
역모의 주체는 누구였던가
1398년 8월 26일, 만 하루 동안의 기록 | 마지막 유언
재현, 변란의 현장
완벽한 기습 | 연이은 패착 | 그날 밤의 카멜레온들
삼봉의 신원을 위하여
역적 정도전, 500년 동안의 굴레 | 정의로 속을 채운 영웅
1막 두 고려인
천민의 피
청백리 아버지의 유산 | 승려와 노비의 핏줄
개혁파 정치학교 ‘이색 학당’
영주 산골에서 개경의 명문 사학으로 | 개혁과 자주의 파도
또 하나의 인물,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의 탁월한 선택 | 체두변발 자르고 고려의 장수가 되다
2막 난세와 영웅
개혁당의 출현
난세를 구할 풍운아| 마음을 같이하는 동지들
신돈의 비극
공민왕은 왜 노비의 자식을 파격 발탁했는가 | 개혁가에서 요승으로
성균관, 개혁 주체의 양성소
철학과 역사, 과학과 예술을 넘나들다 | 개경의 벗들을 그리워하다 | 명륜당의 치열한 세미나
3막 군자의 길
선배 정몽주
선배이자 동지이자 그리운 벗 | 정치 교과서 《맹자》를 탐독하다
정치는 군자의 소명
자신을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 정치란 내가 먼저 하기를 게을리 않는 것
명리인이냐 군자사냐
인생무상, 정치무상 | 하루를 살아도 높고 높은 구름처럼
4막 탁류에는 발끝조차 담그지 않는다
거꾸로 가는 역사의 시곗바늘
개혁군주 공민왕의 비참한 말로 | 비극의 여인, 반야 | 개혁당 최초의 연대, 친원 반대투쟁
재야 10년
유배지에서 만난 민초들 | 농사꾼과 벗하다
새벽닭이 좀처럼 울지 않으니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 유배당한 자의 고독
5막 하늘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보라
민초가 나라의 주인이다
어느 농부와 나눈 대화 | 지혜로운 민, 허울뿐인 선비
왜 의로운 자는 곤궁하고 불의한 자는 부귀한가
과연 정의는 존재하는가 | 문제는 인간이다 | 지란은 불탈수록 향기 더하고
정치 활동이 금지된 시절
유배에서 풀려나다 | 철거민과 농부의 삶으로 | 지음을 찾아서
6막 개혁가에서 혁명가로
역성혁명을 꿈꾸며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 아니다 | 정도전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
정도전은 왜 이성계를 선택했는가
두 영웅, 최영과 이성계 | 이성계를 선택한 이유 | 운명의 첫 만남 | 장량이 유방을 이용했듯이 | 운명에 대한 확신
정몽주, 디딤돌을 놓다
포은, 삼봉에게 손을 내밀다 | 누구를 위한 붉은 마음인가
정도전의 지략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 자진하여 하방한 이유
7막 이중권력
위화도 회군
회군 전야와 두 가지 전술 |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반대한 진짜 이유 | 개경으로, 개경으로! | 누구를 왕위에 올릴 것인가
백성이라면 누구나 땅을 가져야 한다
삼봉의 정국 주도 해법 |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 | 적과 동지의 갈림길
혁명파의 정권 장악
이성계 암살 미수 사건 | 역성혁명파의 흥국사 반격 | 보수파 축출과 9공신 정국 | 구신들, 불타는 땅문서를 보며 눈물 흘리다
사상혁명으로서의 역성혁명
도덕정치와 참여정치의 깃발 아래 | 인간에 대한 사랑 | 이념투쟁의 선두에 서다
8막 결정적인 순간들
역성혁명파와 온건보수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 정변이 아니라 혁명이다 |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
덕장 이성계와 혁명가 정도전
보수파의 공격 | 혁명파의 역공 | 환상의 콤비
다시 유배지로
삭탈관직, 그리고 다시 나주로 | 절망에 빠졌을 때의 자기 관리법
정몽주의 반격
정도전을 처형하소서 | 정몽주의 친위 쿠데타와 일촉즉발의 위기
이방원의 등장
정몽주 선죽교 피살 사건 | 그가 죽자 고려도 죽었다
9막 개국, 그리고 혁명
고려도 조선도 아니었던 닷새간
고려의 마지막 날 | 역사는 때로 집념 어린 소수의 것
철인정치를 위하여
민본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 권력의 기원은 백성과 통치자의 계약이다 | 덕성과 철학을 겸비한 자의 문인정치
10막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다
숙청, 그리고 맹세
냉정한 숙청의 칼날 | 혁명 동지들의 헛된 맹세 | 비주류와 소외 세력의 혁명
이방원은 왜 세자가 되지 못했나
비극의 서막, 세자 책봉 | 사초를 임금에게 보이지 않는 까닭 | 정도전과 이방원, 손잡을 수는 없었나
왕권 대 신권
군주 독재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 재상 중심의 정치 시스템
한양 천도
사람의 도리를 다한 뒤에 점을 치라 | 정도전, 수도 한양을 설계하고 지휘하다 | 술 한 잔 마시고 지은 이름, 경복궁
실천적 지식인의 소명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의 근심도 품어야 한다 |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11막 요동정벌운동
고토 회복론
요동을 되찾아야 한다 | 700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
어째서 너희 조선은 전쟁을 하자고 서두르는가
요동을 넘보지 마라 | 조심스런 사대와 외유내강 | 민족적 자부심이 담긴 국호, 조선
사대와 자주의 삼봉식 외교론
말로는 신하라 하고 | 명 황제의 조선 사신 몽둥이 구타 사건 | 주원장과 정도전의 신경전
삼봉의 군사 리더십
군령을 어긴 자들의 볼기를 치다 | 국방이 민생보다 우선이다 | 비상시국의 금주령 | 병사를 보살피는 장수의 다섯 가지 지침 | 적을 알아 승리하는 네 가지 계책 | 명 선비들, 이방원을 ‘조선 세자’라 부르다
12막 미완의 신화
왕씨 대학살의 참극
얼어붙은 정국과 위기의식 | 조선 왕조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
이방원 세력의 부상
정도전을 의심한다면 누구를 믿겠는가 | 말에서 떨어졌을 때를 잊지 말기 바랍니다
정도전 대 주원장
표전문의 교정자 정도전을 압송하라 | 삼봉을 압송하지 못하는 이유 | 후원자 강비의 죽음 | 백전노장 주원장의 원격 조종술 | 만일 조선이 군대를 내어 쳐들어온다면
조선은 중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느냐
정도전, 요동정벌론을 공식화하다 | 백의종군 | 송헌 거사 이성계가 삼봉에게
전쟁이냐, 굴복이냐
더 이상 당하고만 살 수는 없다 | 일대 논쟁
최후의 일격은 빗나가고
마침내 찾아온 기회 | 왕자들의 사보타주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
이방원의 승부수 | 이기고 지는 것은 인간의 책임일 뿐
에필로그 그날 이후
정도전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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