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목걸이-딜쿠샤 안주인 메리테일러의 서울살이191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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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메리 린리 테일러
출판사항책과함께, 발행일:2014/03/05
형태사항p.470p. 국판:23CM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773533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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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모험을 사랑한 메리의 인생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메리는 프랑스 신부학교를 거부하고 꿈에 그리던 연극배우가 되었다. 동양 각지를 순회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브루스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메리는, 1917년에 한국으로 왔다.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백계 러시아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며, 3?1만세운동과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직접 목격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광산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을 따라 광산촌을 방문하고, 소련이 점령한 시베리아를 기차로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결국 메리 가족은 일제에 의해 송환선에 실려 강제 추방되었다. 그녀는 그 뒤 1948년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남편의 유골을 묻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딜쿠샤를 짓고 살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림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한국에서 거주한 외국인의 시선
여인의 집안은 인도와 인연이 깊었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때로부터 선조 중 한 명은 성난 군중들로부터 충성스러운 토후의 목숨을 구해내었고, 할아버지는 딜쿠샤 궁전에서 적들을 물리쳤다. 인도와의 인연은 나중에 미국 남성 브루스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남성은 아버지와 동생과 한국에 와서 광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둘은 처음 만난다. 브루스의 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원래 광산 기술자였다가 한국으로 골드러시를 감행하여 알렌이 따낸 광산개발권을 인수한 인물로, 그 배경에는 고종에게 전기시설을 해준 대가였다는 설이 있다. 세계 3대 광산 중 하나인 운산광산은 그야말로 풍부한 금이 생산된 곳으로, 이로 인해 ‘No Touch!’, 즉 노다지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메리는 광산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살았다. 이때는 이미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시기로, 두 사람이 추방된 1942년은 그 전 해에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국내 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압박이 거세져 거의 모든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 때였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들이 교류한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당시는 외국인들이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지인인 에먼스는 중국 궁가 산(민야콩카)을 정복한 이야기를 담아 ≪구름에 맞선 사나이들≫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또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언더우드 가문의 2대와 3대와 교류했고, 주한 공사 핍스의 딸 조이스는 나중에 메리 부부의 아들 브루스(아버지의 애칭과 같은 이름)와 결혼을 한다. 윌리엄 C. 커는 한국에 개신교를 뿌리내린 인물로, 개신교 음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델이자 나가사키 구라바엔의 주인 미국 군인과 일본 여성의 딸과 결혼하여 제물포에서 양행을 운영하고 명예 영사를 지낸 조지 베넷도 등장한다. 한국에서 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상하이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를 진행하던 올콧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한국을 일정 기간 여행하거나 취재차 잠깐 들렀던 사람들과 다르다. 메리 부부는 한국에 딜쿠샤라는 저택을 짓고, 탄광마을을 방문하고, 금강산과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영국과 미국, 일본을 다니고, 외국 통신사 특파원을 겸하면서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과 일제 만행을 해외에 알리고, 무역업을 통해 조선호텔 근처에 상점을 운영하였다. 또한 선교사부터 사업가와 광산업자, 교사, 게다가 골수 모험가들까지 관심사가 크게 다른 이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따라 모임을 만들어 교류했는데, 메리의 표현에 의하면 “동양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우리 회원들만큼 속물적인 우월의식이 없고 소박한 이들도 드물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의 용광로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지냈다”고 한다.
서구 열강이 조선의 빗장을 강제로 열고 마구 들어오던 시기에 광산업자로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이 땅에 살았던 테일러 집안,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린 브루스 테일러, 남편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고 자신은 가택연금 된 채 이름 모를 한국인들이 가져다 준 달걀과 꿩고기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메리……. 그녀는 한국 땅에 묻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새로운 딜쿠샤를 짓고 살았다. 인생의 황금기를 이 땅에서 보낸 세 이방인에게 한국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이자 ‘사랑’과 ‘우정’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던 듯하다.

딜쿠샤 이야기
갓 결혼한 메리는 1917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광산사업을 하던 한국에 도착하여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메리와 남편 브루스는 1923년에 인왕산 자락 지금의 사직공원 뒤에 1만 5000평의 땅을 매입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권율 장군의 집터로 장군이 손수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이 400여 년에 달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부부는 이곳에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큰 개인 벽돌 저택을 짓고 ‘딜쿠샤’라고 이름 붙이고, 머릿돌에 ‘Dilkusha 1923’과 ‘P. S. ALM CXXVII-I’을 새겨 넣었다. 힌디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이 집에서 메리는 남편과 함께 서울살이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한국에 온 최초의 금광 사업가인 시아버지는 1908년에 한국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으며, 브루스의 동생 윌리엄 웬트워스 테일러도 거의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 언니 베티와 여동생 우나도 동생을 만나러 딜쿠샤를 다녀갔고, 메리 부부에게 딜쿠샤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직업의 외국인들과 친교를 나누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1948년 메리의 마지막 방문 이후로, 2006년에 메리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공부를 위해 딜쿠샤를 떠났지만, 그곳은 늘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이로써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품어온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 집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었다. 머릿돌에 새겨진 ‘딜쿠샤’라는 이름과 함께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테일러 부부의 드라마틱한 사연이 되살아났다. 메리 테일러가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 뒤에 일본인들이 딜쿠샤에 있던 물건들을 가져다 팔아버렸으며, 지키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없던 딜쿠샤에 가난한 피난민들이 찾아들자 딜쿠샤는 그들을 어머니처럼 품어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먼저 살던 거주자로부터 거주권을 구입한 새 거주자가 다음 거주자에게 다시 거주권을 넘기는 식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품기 위해 넓은 방들이 칸막이로 조각조각 나뉘어야 했던 딜쿠샤는 현재 국유재산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문화재로 등록될 기쁨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 127장 1절)

▣ 작가 소개

저자 :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1889년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연극배우가 되어 동양 각지를 순회 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미국인 브루스(본명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17년에 한국으로 왔다.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 그 후 남편의 유언에 따라 1948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시아버지 무덤 옆에 남편을 묻었고, 1982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생을 마쳤다. 시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한국에 온 최초의 금광사업가로서 아들과 함께 운산금광을 운영했다. 1992년에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메리의 유고를 정리하여 자서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를 출간하였다.

역자 : 송영달
193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1960년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62년에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1967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행정학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한 뒤 명예교수로 은퇴하고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거주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한국을 다룬 서양 고서와 그림 들을 모으던 중,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옮긴 책으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2006),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2012)가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며
구슬 하나 - 깊어지는 전운, 1941
구슬 둘 - 불안한 정세
구슬 셋 - 일본과의 불화가 가져다준 시련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
구슬 일곱 -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구슬 여덟 - 배우의 꿈을 이루다
구슬 아홉 - 일본에서 주고받은 마음
구슬 열 ? 청혼
구슬 열하나 - 한국으로 가는 신혼여행길
구슬 열둘 -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구슬 열셋 - 한국에서 시작한 신혼생활
구슬 열넷 - 실수하고 오해하며
구슬 열다섯 - 황금의 나라를 찾아온 이방인들
구슬 열여섯 - 익숙해져가는 한국
구슬 열일곱 - 일만이천봉 금강산 여행
구슬 열여덟 - 만세 소리와 함께 아들이 태어나다
구슬 열아홉 - 전국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구슬 스물 - 한국인과의 충돌
구슬 스물하나 - 갈마 해변에서 보낸 여름
구슬 스물둘 - 원산의 백계 러시아인
구슬 스물셋 - 우리 집을 짓기로 하다
구슬 스물넷 -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구슬 스물다섯 - 폐허가 된 딜쿠샤
구슬 스물여섯 - 서울살이의 친구들
구슬 스물일곱 - 사랑과 우정의 나날들
구슬 스물여덟 - 시베리아 횡단 여행
구슬 스물아홉 ? 캘리포니아에서
구슬 서른 - 광산 사업가의 아내로서
구슬 서른하나 -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구슬 서른둘 -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
구슬 서른셋 - 조선의 양반 김 주사
구슬 서른넷 - 6년 만의 서울 방문, 1948
옮긴이의 글

작가 소개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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