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선생은 1863년 12월 27일 서울 왜송동(倭松洞: 貞洞)에서 태어나 20세까지는 한문을 공부하다가 1883년 재동(齋洞)에 자리 잡은 관립 영어학숙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영어를 배운 사람이었다. 영어학숙은 통리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동문학(同文學)에 소속된 최초의 외국어학교였다. 선생은 한말에서 일제기간에 걸치는 전 생애를 구국, 사회계몽, 민족 부활운동에 헌신한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조선의 역사를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저술한 역사학자인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민의 정서를 함양할 여러 편의 노래 가사를 지은 작사가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 입교하여 한국적인 찬송가를 작사하고, 서양 음악에 번안한 가사를 지어 시련에 처한 민족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다.
국한문 혼용의 《황성신문》
남궁억 선생은 1898년 9월 5일 《황성신문》이 창간될 때 초대 사장으로 선출되면서 신문발행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였다. 1898년에는 언론사(言論史)를 장식하는 한말의 대표적 민족지 3개가 새롭게 창간되었다. 서재필이 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을 창간한 이후인 1898년 1월 1일에는 배재학당 학생회인 협성회(協成會)가 주간신문 《협셩회회보》를 창간했다가 4월 9일부터는 제호를 《매일신문》으로 바꾸어 일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3월 2일에는 주 2회 발행의 《경성신문》(京城新聞)이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제호를 《대한황성신문》으로 바꾸었다가 《황성신문》(皇城新聞)으로 다시 한 번 제호를 바꾸면서 일간 발행으로 발전시켰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 신문이었다. 《황성신문》이 국한문을 혼용하면서부터 신문은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의 두 종류로 양분되었다. 국한문을 혼용한 《황성신문》의 독자는 중류 이상의 지식층이었고, 한글전용의 《제국신문》은 서민층과 부녀자들이 많이 읽었다. 그래서 《황성신문》을 수(雄)신문, 《제국신문》을 암(雌)신문으로 불렀다.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
남궁억 선생은 《황성신문》의 초대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초창기 한국 언론의 기틀을 잡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몇 차례의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된 일도 있었으나 의연히 대처하여 언론의 전통 수립에 시범적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1933년 12월의 경찰 신문(訊問)에서 토로했던 아래와 같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눈을 감는 순간까지 지니고 있었다.
“조선민족으로서 민족애 정신을 가지고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여튼 나의 죄로 벌을 받더라도 죽어도 조금도 아까울 것은 없으나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을 그대로 두고 내가 죽는다는 것만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조선민족의 비참한 실정을 말한다면 온몸이 전율하여 견딜 수가 없으니 그 점만은 생각해주기 바란다. 조선민족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 죽어도 좋으니 불쌍한 민족만 구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서재필기념회 선정 ‘올해의 민족 언론인’
남궁억 선생은 1918년 12월 선조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서면 보리울[모곡牟谷]로 낙향하였다. 그곳에서 선생은 교회와 학교를 세운 뒤 무궁화를 심어 민족애를 고취하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가르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다가 1939년 4월 5일 영면했다. 정부는 1977년 12월 13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2004년 6월 29일에는 모곡에 ‘한서 남궁억기념관’이 개관되었다.
올해 서거 75주년을 맞아 서재필기념회(이사장 안병훈)는 ‘올해의 민족 언론인’으로 남궁억 선생을 선정, 언론회관 20층에 부조상(浮彫像)을 헌정하는 등 그 업적을 언론계와 일반에 널리 알리는 행사를 4월 9일 언론회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정진석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석사. 런던대학교 치경제대학(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 박사. 한국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방송위원 역임. 현재 한국외국어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서재필기념회 이사. 한국신문협회 정책자문위원장. 위암 장지연기념사업회 이사. 주요 저서; 『일제하 한국언론 투쟁사』 (1975, 정음사),『한국언론사연구』(1983, 일조각), 『극비, 조선총독부의 언론검열과 통제』(2007, 커뮤니케이션 북스), 『제국의 황혼』(2011, 공저, 21세기북스), 『두 언론 대통령 이승만과 박은식』(2012, 기파랑)
▣ 주요 목차
제1장; 영어 공부, 고종의 통역
제2장; 《황성신문》 초대 사장
제3장; 세 차례의 필화
제4장; 잡지 발행과 교육
제5장; 역사를 가르치고 무궁화를 심으며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선생은 1863년 12월 27일 서울 왜송동(倭松洞: 貞洞)에서 태어나 20세까지는 한문을 공부하다가 1883년 재동(齋洞)에 자리 잡은 관립 영어학숙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영어를 배운 사람이었다. 영어학숙은 통리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동문학(同文學)에 소속된 최초의 외국어학교였다. 선생은 한말에서 일제기간에 걸치는 전 생애를 구국, 사회계몽, 민족 부활운동에 헌신한 언론인이자 정치가, 교육가,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조선의 역사를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저술한 역사학자인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민의 정서를 함양할 여러 편의 노래 가사를 지은 작사가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 입교하여 한국적인 찬송가를 작사하고, 서양 음악에 번안한 가사를 지어 시련에 처한 민족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다.
국한문 혼용의 《황성신문》
남궁억 선생은 1898년 9월 5일 《황성신문》이 창간될 때 초대 사장으로 선출되면서 신문발행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였다. 1898년에는 언론사(言論史)를 장식하는 한말의 대표적 민족지 3개가 새롭게 창간되었다. 서재필이 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을 창간한 이후인 1898년 1월 1일에는 배재학당 학생회인 협성회(協成會)가 주간신문 《협셩회회보》를 창간했다가 4월 9일부터는 제호를 《매일신문》으로 바꾸어 일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3월 2일에는 주 2회 발행의 《경성신문》(京城新聞)이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제호를 《대한황성신문》으로 바꾸었다가 《황성신문》(皇城新聞)으로 다시 한 번 제호를 바꾸면서 일간 발행으로 발전시켰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 신문이었다. 《황성신문》이 국한문을 혼용하면서부터 신문은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의 두 종류로 양분되었다. 국한문을 혼용한 《황성신문》의 독자는 중류 이상의 지식층이었고, 한글전용의 《제국신문》은 서민층과 부녀자들이 많이 읽었다. 그래서 《황성신문》을 수(雄)신문, 《제국신문》을 암(雌)신문으로 불렀다.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
남궁억 선생은 《황성신문》의 초대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초창기 한국 언론의 기틀을 잡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몇 차례의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된 일도 있었으나 의연히 대처하여 언론의 전통 수립에 시범적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1933년 12월의 경찰 신문(訊問)에서 토로했던 아래와 같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눈을 감는 순간까지 지니고 있었다.
“조선민족으로서 민족애 정신을 가지고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하여튼 나의 죄로 벌을 받더라도 죽어도 조금도 아까울 것은 없으나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을 그대로 두고 내가 죽는다는 것만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조선민족의 비참한 실정을 말한다면 온몸이 전율하여 견딜 수가 없으니 그 점만은 생각해주기 바란다. 조선민족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 죽어도 좋으니 불쌍한 민족만 구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서재필기념회 선정 ‘올해의 민족 언론인’
남궁억 선생은 1918년 12월 선조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서면 보리울[모곡牟谷]로 낙향하였다. 그곳에서 선생은 교회와 학교를 세운 뒤 무궁화를 심어 민족애를 고취하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가르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다가 1939년 4월 5일 영면했다. 정부는 1977년 12월 13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2004년 6월 29일에는 모곡에 ‘한서 남궁억기념관’이 개관되었다.
올해 서거 75주년을 맞아 서재필기념회(이사장 안병훈)는 ‘올해의 민족 언론인’으로 남궁억 선생을 선정, 언론회관 20층에 부조상(浮彫像)을 헌정하는 등 그 업적을 언론계와 일반에 널리 알리는 행사를 4월 9일 언론회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정진석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신문학과 석사. 런던대학교 치경제대학(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 박사. 한국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방송위원 역임. 현재 한국외국어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서재필기념회 이사. 한국신문협회 정책자문위원장. 위암 장지연기념사업회 이사. 주요 저서; 『일제하 한국언론 투쟁사』 (1975, 정음사),『한국언론사연구』(1983, 일조각), 『극비, 조선총독부의 언론검열과 통제』(2007, 커뮤니케이션 북스), 『제국의 황혼』(2011, 공저, 21세기북스), 『두 언론 대통령 이승만과 박은식』(2012, 기파랑)
▣ 주요 목차
제1장; 영어 공부, 고종의 통역
제2장; 《황성신문》 초대 사장
제3장; 세 차례의 필화
제4장; 잡지 발행과 교육
제5장; 역사를 가르치고 무궁화를 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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