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교토에서 만나는 일본문화의 진면목
한반도 도래인 문화, 일본 국풍(國風)문화로 꽃피다
누적 판매부수 350만, 명실상부한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 전국토를 박물관으로 만들며 문화유산답사 붐을 이끌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국내편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일본으로 발길을 돌린 지 1년 만에 드디어 일본문화의 본고장인 교토(京都)를 찾았다.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는 천년 고도(古都) 교토의 진면목을 살피기 위해 헤이안시대 이전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 교토의 역사를 씨줄로 삼아 유물과 유적을 선보이는 한층 진화한 ‘답사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한반도 도래인의 문화를 토대로 발전시켜 오늘날 일본의 ‘국풍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현장감 넘치는 설명과 이미지로 그려낸다.
교토의 공간을 낙중(洛中)과 낙외(洛外)로 나누고 그 위에 일본의 역사를 따라가는 동선까지 고려해 설계한, 유홍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교토 답사의 미적분 풀이’인 이 책의 추천 코스를 따라가다보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교토 답사의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과 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답사기’ 본래의 읽는 재미까지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문화답사 1번지, 교토를 가다
: 교토의 문화유산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읽는다
경주를 빼놓고 한국의 문화를 논할 수 없듯 교토를 빼고 일본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1천년간 수도(首都)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문화의 진수가 다 모여 있고,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위상은 숫자로도 증명되는바, 교토부(府) 전체에 사찰이 3,030곳, 신사는 1,770곳이 넘는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 해도 사찰이 13곳, 신사가 3곳, 성이 1곳으로 모두 17곳이나 된다. 이를 보기 위해 해마다 국내외에서 8백만명이 모여들어, 교토는 세계적인 역사관광 도시가 되었다.
유홍준 교수가 교토를 찾은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가, 교토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적함으로써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집필 의도를 책 곳곳에서 드러내 보여준다. 그 어느 곳보다 교토는 한반도 도래인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황폐한 교토에 댐을 세우고 수로를 만들어 비옥한 땅으로 일군 하타씨(秦氏)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 천도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본문 44~49면 참조). 일본 국보 1호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광륭사(廣隆寺, 고류지)에는 신라계 도래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당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는 원효와 의상의 실물과 가장 가까운 초상화가 인화사(仁和寺, 닌나지)에 보관돼 있다. 또 신안 해저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복사(東福寺, 도후쿠지)는 수많은 보물을 실은 ‘신안선’이 목적지로 삼은 당대의 대찰(大刹)이었다.
이처럼 ‘답사기 교토편’은 교토를 단순히 관광지가 아닌 우리의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친숙한 곳으로 바꿔놓는다.
낯선 땅에서 하나가 된 고구려?백제?신라
: 일본의 산(고구려)과 들(백제)과 강(신라)에 자리잡은 삼국
한반도 도래인의 흔적은 교토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3대 마쓰리(축제, 제의) 중 하나인 기온마쓰리를 주관하는 야사카 신사(八坂神社)는 고구려계 도래인 야사카씨(八坂氏)가 세운 신사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불과 20~30년 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나 관광 안내판에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빠뜨리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하타씨(秦氏)의 경우에는 학계에서 신라계 도래인이 확실하다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진시황의 후손이라는 잘못된 상식이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의 관광 안내판이 아닌 일본의 역사 속에서 유물과 유적을 바라보면 도래인의 흔적은 금세 눈에 들어온다. 유홍준 교수가 처음 찾아간 광륭사와 그 일대의 신사가 대표적인 장소다. 일본에 비단 직조 기술을 전수한 것은 신라계인 하타씨이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5세기 말에 백제계의 한직(漢織)과 고구려계의 오직(吳織)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유홍준 교수가 찾아간 오사케 신사는 신라계 하타씨, 백제계 아야씨(漢氏), 고구려계의 구레씨(吳氏)를 함께 모셔 제사 지내는 곳으로 한반도에서는 삼국의 다툼이 치열했지만 일본에선 삼국이 평화롭게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본문 65~69면). 도래인이 정착한 지역을 모두 둘러본 저자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개척한 곳을 보면 신라계 하타씨는 가쓰라 강변의 습지, 고구려계 야사카씨는 히가시야마의 산자락, 백제계 아야씨는 아스카의 들판이었다. 산과 들과 강, 여기에서도 삼국의 특성이 그렇게 읽힌다.”고 말한다.
답사기의 진화, 유홍준표 교토 답사 코스
: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낳는다
유홍준의 교토 답사기는 한반도 도래인이 남긴 자취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교토 땅을 문명의 터전으로 일군 도래인의 노력과 뒤이은 당나라 문화 배우기(당풍唐風), 헤이안시대 중엽(후지와라시대) 이래 스스로의 힘으로 문화를 일궈내려는 시도(국풍國風) 등을 거치며 교토가 일본문화의 수도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과정을 교토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소상히 알려준다.
이러한 교토의 위상만큼이나 교토를 소개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대다수 책은 교통의 편리와 시간 절약만을 내세워 길 따라 나오는 유적지를 소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공간만 생각하고 시간의 유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교토는 제대로 알기 어려운 곳이다. 유홍준 교수는 교토를 다운타운인 낙중과 그 바깥쪽인 낙외라는 공간을 기본 줄기로 하고, 헤이안 이전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의 역사적 시간까지 안배해 다섯 갈래의 교토 답사 ‘모범 코스’를 제시한다. 헤이안시대 이전에 형성되어 신라계 도래인 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광륭사에서 시작해 가마쿠라시대 일본 왕실 사찰의 진수를 보여주는 인화사로 끝나는 유홍준표 교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갈래: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 유적인 광륭사?대언천?후시미 이나리 신사?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 고구려계 도래인이 세운 야사카 신사?법관사 오중탑?고려사터.
둘째 갈래: 헤이안시대 개막과 함께 창건된 동사와 연력사.
셋째 갈래: 헤이안시대의 실세 후지와라씨의 씨사인 우지의 평등원.
넷째 갈래: 백제계 도래인이 세운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가마쿠라시대 조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육바라밀사와 삼십삼간당.
다섯째 갈래: 가마쿠라시대에 건립된 교토 최대의 선종 사찰 동복사, 일본 왕실 사찰의 품위를 보여주는 인화사, 원효와 의상의 초상을 모신 고산사.
유물·유적에 대한 미학적 설명과 의의를 설명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역사를 따라가는 동선까지 고려해 설계한 모범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여기에 더해 인간과 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답사기’의 참맛을 이 책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다섯 갈래의 코스 중에서 일본문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특유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으로 독자들의 안목을 틔운다. 일본문화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평등원의 봉황당 건물(표지 이미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답해 21세기에 만들어진 평등원의 보물 전시관인 봉상관을 비롯해, 391개의 기둥을 세우고 허공을 메워 스펙터클한 무대공간을 만들어낸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일본인들이 말하는 스산함의 미학(寂しい, 사비시이)을 보여주는 동사(東寺, 도지)의 오중탑과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백사로만 꾸민 동복사의 마른 산수(枯山水, 가레산스이) 정원 등 일본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누적 판매부수 350만, ‘답사기’의 신화는 계속된다
: 이와나미쇼텐 ‘답사기 일본편’ 출간 결정
유홍준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일본을 오가면서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번 ‘교토의 역사’ 편을 구상했고, 최종적으로 사실 관계 확인 등을 위해 각계 전문가를 동원한 답사단을 꾸려 본격적으로 교토의 이곳저곳을 밟았다. 또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탈고할 즈음에는 스승인 상허 안병주(동양사상) 선생을 비롯하여 오찬욱(일본 문학), 안병욱(역사학), 김정헌, 임옥상(화가) 등 자문단이 되어줄 ‘유홍준의 친구들’을 대동하고 또다시 교토를 답사했다. 이러한 과정은 SBS 특집다큐멘터리를 통해 7월경에 방영될 예정이다.
학생 때 ‘답사기’를 읽었던 학부모가 다시 자녀들에게 권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테디셀러인 ‘답사기’ 일본편은 일본 독자들에게도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답사기 일본편’을 차례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명쾌하지 않고 일본 총리와 관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 등 여전히 한일 관계는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체로 그 갈등이 확산되어가는 형편이다. 앞선 일본편 1·2권에서 일본의 대국적이지 못한 면모를 날카롭게 지적했던 유홍준 교수는, 이번 교토편에서 한일 간의 문화적인 연결고리를 하나씩 찾아내고 해석해내는 데에 주력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2014년 하반기에는 교토의 명소를 다룬 일본편 4권 ‘교통의 명소’가 출간될 계획이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국내편 답사기도 내년에는 다시 이어질 예정이다.
▣ 작가 소개
저 : 유홍준
Yu Hong-june,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교수 및 문화예술 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주 추사관 명예관장도 맡고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정직한 관객』, 답사기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전6권), 미술사 저술로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전2권), 『완당평전』(전3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등이 있다. 간행물윤리위 출판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제1부 헤이안 이전
광륭사 · 일본 국보 1호와 도래인 진하승
하타씨 유적 순례 · 도래인 하타씨의 교토 개척사
야사카 신사와 기온마쓰리 · 기온이 있어서 교토는 시들지 않는다
제2부 헤이안시대
후시미 이나리 신사와 고려사터 · 지나가는 이여, 마음속에 기려보렴
헤이안쿄 동사 ·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는 걸
히에이산 연력사 · 영산에 서린 빛과 그림자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 ‘청수의 무대’ 전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었네
우지 평등원 · 극락이 보고 싶으면 여기로 오라
낙중의 육바라밀사와 삼십삼간당 ·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제3부 가마쿠라시대
낙남의 동복사 · 전설은 절집에 연륜을 얹어주고
인화사와 고산사 · 우리와 인연이 있어서 그 절에 가고 싶었다
교토에서 만나는 일본문화의 진면목
한반도 도래인 문화, 일본 국풍(國風)문화로 꽃피다
누적 판매부수 350만, 명실상부한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 전국토를 박물관으로 만들며 문화유산답사 붐을 이끌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국내편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일본으로 발길을 돌린 지 1년 만에 드디어 일본문화의 본고장인 교토(京都)를 찾았다.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는 천년 고도(古都) 교토의 진면목을 살피기 위해 헤이안시대 이전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 교토의 역사를 씨줄로 삼아 유물과 유적을 선보이는 한층 진화한 ‘답사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한반도 도래인의 문화를 토대로 발전시켜 오늘날 일본의 ‘국풍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현장감 넘치는 설명과 이미지로 그려낸다.
교토의 공간을 낙중(洛中)과 낙외(洛外)로 나누고 그 위에 일본의 역사를 따라가는 동선까지 고려해 설계한, 유홍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교토 답사의 미적분 풀이’인 이 책의 추천 코스를 따라가다보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교토 답사의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과 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답사기’ 본래의 읽는 재미까지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문화답사 1번지, 교토를 가다
: 교토의 문화유산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읽는다
경주를 빼놓고 한국의 문화를 논할 수 없듯 교토를 빼고 일본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1천년간 수도(首都)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문화의 진수가 다 모여 있고, 일본미의 꽃이 여기에서 활짝 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위상은 숫자로도 증명되는바, 교토부(府) 전체에 사찰이 3,030곳, 신사는 1,770곳이 넘는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 해도 사찰이 13곳, 신사가 3곳, 성이 1곳으로 모두 17곳이나 된다. 이를 보기 위해 해마다 국내외에서 8백만명이 모여들어, 교토는 세계적인 역사관광 도시가 되었다.
유홍준 교수가 교토를 찾은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가, 교토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적함으로써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집필 의도를 책 곳곳에서 드러내 보여준다. 그 어느 곳보다 교토는 한반도 도래인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황폐한 교토에 댐을 세우고 수로를 만들어 비옥한 땅으로 일군 하타씨(秦氏)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 천도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본문 44~49면 참조). 일본 국보 1호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 광륭사(廣隆寺, 고류지)에는 신라계 도래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당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는 원효와 의상의 실물과 가장 가까운 초상화가 인화사(仁和寺, 닌나지)에 보관돼 있다. 또 신안 해저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복사(東福寺, 도후쿠지)는 수많은 보물을 실은 ‘신안선’이 목적지로 삼은 당대의 대찰(大刹)이었다.
이처럼 ‘답사기 교토편’은 교토를 단순히 관광지가 아닌 우리의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친숙한 곳으로 바꿔놓는다.
낯선 땅에서 하나가 된 고구려?백제?신라
: 일본의 산(고구려)과 들(백제)과 강(신라)에 자리잡은 삼국
한반도 도래인의 흔적은 교토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3대 마쓰리(축제, 제의) 중 하나인 기온마쓰리를 주관하는 야사카 신사(八坂神社)는 고구려계 도래인 야사카씨(八坂氏)가 세운 신사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불과 20~30년 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나 관광 안내판에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빠뜨리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하타씨(秦氏)의 경우에는 학계에서 신라계 도래인이 확실하다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진시황의 후손이라는 잘못된 상식이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의 관광 안내판이 아닌 일본의 역사 속에서 유물과 유적을 바라보면 도래인의 흔적은 금세 눈에 들어온다. 유홍준 교수가 처음 찾아간 광륭사와 그 일대의 신사가 대표적인 장소다. 일본에 비단 직조 기술을 전수한 것은 신라계인 하타씨이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5세기 말에 백제계의 한직(漢織)과 고구려계의 오직(吳織)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유홍준 교수가 찾아간 오사케 신사는 신라계 하타씨, 백제계 아야씨(漢氏), 고구려계의 구레씨(吳氏)를 함께 모셔 제사 지내는 곳으로 한반도에서는 삼국의 다툼이 치열했지만 일본에선 삼국이 평화롭게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본문 65~69면). 도래인이 정착한 지역을 모두 둘러본 저자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개척한 곳을 보면 신라계 하타씨는 가쓰라 강변의 습지, 고구려계 야사카씨는 히가시야마의 산자락, 백제계 아야씨는 아스카의 들판이었다. 산과 들과 강, 여기에서도 삼국의 특성이 그렇게 읽힌다.”고 말한다.
답사기의 진화, 유홍준표 교토 답사 코스
: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낳는다
유홍준의 교토 답사기는 한반도 도래인이 남긴 자취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교토 땅을 문명의 터전으로 일군 도래인의 노력과 뒤이은 당나라 문화 배우기(당풍唐風), 헤이안시대 중엽(후지와라시대) 이래 스스로의 힘으로 문화를 일궈내려는 시도(국풍國風) 등을 거치며 교토가 일본문화의 수도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과정을 교토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소상히 알려준다.
이러한 교토의 위상만큼이나 교토를 소개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대다수 책은 교통의 편리와 시간 절약만을 내세워 길 따라 나오는 유적지를 소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공간만 생각하고 시간의 유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교토는 제대로 알기 어려운 곳이다. 유홍준 교수는 교토를 다운타운인 낙중과 그 바깥쪽인 낙외라는 공간을 기본 줄기로 하고, 헤이안 이전부터 가마쿠라시대까지의 역사적 시간까지 안배해 다섯 갈래의 교토 답사 ‘모범 코스’를 제시한다. 헤이안시대 이전에 형성되어 신라계 도래인 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광륭사에서 시작해 가마쿠라시대 일본 왕실 사찰의 진수를 보여주는 인화사로 끝나는 유홍준표 교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갈래: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 유적인 광륭사?대언천?후시미 이나리 신사?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 고구려계 도래인이 세운 야사카 신사?법관사 오중탑?고려사터.
둘째 갈래: 헤이안시대 개막과 함께 창건된 동사와 연력사.
셋째 갈래: 헤이안시대의 실세 후지와라씨의 씨사인 우지의 평등원.
넷째 갈래: 백제계 도래인이 세운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가마쿠라시대 조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육바라밀사와 삼십삼간당.
다섯째 갈래: 가마쿠라시대에 건립된 교토 최대의 선종 사찰 동복사, 일본 왕실 사찰의 품위를 보여주는 인화사, 원효와 의상의 초상을 모신 고산사.
유물·유적에 대한 미학적 설명과 의의를 설명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역사를 따라가는 동선까지 고려해 설계한 모범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여기에 더해 인간과 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답사기’의 참맛을 이 책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다섯 갈래의 코스 중에서 일본문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특유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으로 독자들의 안목을 틔운다. 일본문화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평등원의 봉황당 건물(표지 이미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답해 21세기에 만들어진 평등원의 보물 전시관인 봉상관을 비롯해, 391개의 기둥을 세우고 허공을 메워 스펙터클한 무대공간을 만들어낸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일본인들이 말하는 스산함의 미학(寂しい, 사비시이)을 보여주는 동사(東寺, 도지)의 오중탑과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백사로만 꾸민 동복사의 마른 산수(枯山水, 가레산스이) 정원 등 일본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누적 판매부수 350만, ‘답사기’의 신화는 계속된다
: 이와나미쇼텐 ‘답사기 일본편’ 출간 결정
유홍준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일본을 오가면서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번 ‘교토의 역사’ 편을 구상했고, 최종적으로 사실 관계 확인 등을 위해 각계 전문가를 동원한 답사단을 꾸려 본격적으로 교토의 이곳저곳을 밟았다. 또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탈고할 즈음에는 스승인 상허 안병주(동양사상) 선생을 비롯하여 오찬욱(일본 문학), 안병욱(역사학), 김정헌, 임옥상(화가) 등 자문단이 되어줄 ‘유홍준의 친구들’을 대동하고 또다시 교토를 답사했다. 이러한 과정은 SBS 특집다큐멘터리를 통해 7월경에 방영될 예정이다.
학생 때 ‘답사기’를 읽었던 학부모가 다시 자녀들에게 권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테디셀러인 ‘답사기’ 일본편은 일본 독자들에게도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답사기 일본편’을 차례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명쾌하지 않고 일본 총리와 관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 등 여전히 한일 관계는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체로 그 갈등이 확산되어가는 형편이다. 앞선 일본편 1·2권에서 일본의 대국적이지 못한 면모를 날카롭게 지적했던 유홍준 교수는, 이번 교토편에서 한일 간의 문화적인 연결고리를 하나씩 찾아내고 해석해내는 데에 주력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2014년 하반기에는 교토의 명소를 다룬 일본편 4권 ‘교통의 명소’가 출간될 계획이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국내편 답사기도 내년에는 다시 이어질 예정이다.
▣ 작가 소개
저 : 유홍준
Yu Hong-june,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학교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학교 교수 및 문화예술 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주 추사관 명예관장도 맡고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정직한 관객』, 답사기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전6권), 미술사 저술로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전2권), 『완당평전』(전3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등이 있다. 간행물윤리위 출판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제1부 헤이안 이전
광륭사 · 일본 국보 1호와 도래인 진하승
하타씨 유적 순례 · 도래인 하타씨의 교토 개척사
야사카 신사와 기온마쓰리 · 기온이 있어서 교토는 시들지 않는다
제2부 헤이안시대
후시미 이나리 신사와 고려사터 · 지나가는 이여, 마음속에 기려보렴
헤이안쿄 동사 ·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는 걸
히에이산 연력사 · 영산에 서린 빛과 그림자
히가시야마의 청수사 · ‘청수의 무대’ 전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었네
우지 평등원 · 극락이 보고 싶으면 여기로 오라
낙중의 육바라밀사와 삼십삼간당 ·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제3부 가마쿠라시대
낙남의 동복사 · 전설은 절집에 연륜을 얹어주고
인화사와 고산사 · 우리와 인연이 있어서 그 절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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