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 투퀴디데스의 역사는 틀렸다
- 도널드 케이건이 밝혀낸 수정주의 역사가 투퀴디데스의 본질
투퀴디데스와 그의 저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 헬라스(그리스) 시대 역사서 가운데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 서술로 인해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을 매혹하고 있는 역사가이며 고전이다. 그런데 투퀴디데스의 역사 서술이 틀렸다,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 책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Thucydides: The Reinvention of History)》의 저자 도널드 케이건이다.
투퀴디데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27년에 걸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8권의 역사책으로 기록한 그는 비록 이보다 60년 먼저 일어난 페르시아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빼앗겼지만, 신들의 개입과 무관하게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객관적인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실증적·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저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무릇 인간사가 그러하듯이 미래에 똑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벌어질 일을 명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고, 그 자신이 “영원한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저작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유일무이한 사료로 인정받아왔는데, 특히 동서양의 대립이 스파르타와 아테나이가 대립한 것과 비슷했던 냉전시대에 큰 관심을 받았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마셜이 “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대와 아테나이의 몰락을 적어도 한 번이라도 되새겨보지 않은 사람이 현대 국제관계의 몇몇 기본 문제들을 매우 지혜롭게 혹은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이 책은 오랫동안 역사 연구자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치학자 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투퀴디데스와 그의 저서는 오랫동안 고전으로 인정받아서, 그동안 사실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았다. 위대한 전통의 권위라도 과도하게 존경하지 말라는 투퀴디데스의 주장을 이어받은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저작을 단순히 이해하는 데서 더 나아가 투퀴디데스가 이 방대한 책을 쓰면서까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며, 그의 역사 서술은 올바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시대인이 제시했거나 받아들였던 설명과 투퀴디데스의 서술을 비교하는 수고로운 작업을 20년 동안 진행해왔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기술하면서 자신이 들은 것들을 기록하며 이 모든 일은 신이 한 일이라고 설파했지만, 그 자신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장군으로 선출된 경험이 있는 투퀴디데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관련된 사료를 모으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책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노력했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들려주려 한 역사는 무엇일까?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으며, 아테나이는 페리클레스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지만 그의 사후 똑똑하지 못한 후계자들이 그의 정책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전쟁이 장기화되고 결국 아테나이의 패배로 이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케이건은 이러한 주장은 당대 통용되던 역사적 해석과 다르며, 투퀴디데스는 이러한 당대의 해석을 잘못되었다고 믿고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이해를 교정하기 위해 역사를 서술했음을 밝혀냄으로써 마침내 ‘투퀴디데스는 최초의 수정주의 역사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특히 케이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투퀴디데스가 주장한 중요한 핵심 주장 여섯 가지의 ‘진실’을 파헤쳐나간다. 전쟁 발발 원인은 무엇인가,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은 타당했는가, 아테나이의 정체(政體)는 민주정이었나, 클레온에 대한 평가는 무엇이 올바른가, 시켈리아(시칠리아) 원정 결정은 누가 했으며, 또 이 원정이 재앙으로 끝나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해당 주제마다 투퀴디데스와 당대인의 이해와 얼마나 다르며, 투퀴디데스의 서술 기법에서 나타난 오류는 무엇인지를 살핌으로써 튀퀴디데스가 수정주의 역사가임을 논증한다.
투퀴디데스의 생각과 의도,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중요한 서술을 케이건 식의 해법으로 풀어나간 이 책의 미덕은 독자 또한 투퀴디데스의 ‘진실’과 케이건의 ‘진실’을 마주하면서 이 둘의 진실을 나(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이 책의 장점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그리고 투퀴디데스와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동시대인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당대인과 호흡하며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뿐 아니라 투퀴디데스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을 읽고 싶어지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2. 투퀴디데스는 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했는가
- 투퀴디데스가 수정한 여섯 가지 ‘사건’의 ‘진실’을 통해 살펴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탄생의 비밀
1)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불가피한 전쟁이었나?
케이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투퀴디데스가 주장한 핵심 여섯 가지를 택해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들려준다. 먼저, 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 살펴보면,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나이의 힘이 날로 커지고 헬라스 대부분이 이미 아테나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모습을 두려워한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대인 대다수는 전쟁은 피할 수 있었으며, 메가라 봉쇄령을 비롯한 페리클레스의 실책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는데, 케이건 역시 이러한 당대의 인식이 더 올바른 판단이라 본다.
2)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은 타당했는가?
페리클레스는 전쟁 발발 후 절제 정책으로 스파르타를 압박했고,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에 평화파가 득세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스파르타가 지속적으로 항전해 결국 그의 전쟁 전략은 실패했으며, 그 또한 전쟁 발발 2년 6개월 후 사망한다. 대다수 당대인은 페리클레스의 정책으로 전쟁이 발발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전쟁이 장기전에 들어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정책은 타당했으며, 문제는 페리클레스 사후 그의 계획과 정반대로 나아간 무능한 아테나이 민주정 후계자들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주장의 빈틈을 통해 그의 주장이 올바른 해석이 아니었음을 논증한다.
3)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나이는 민주정이었나?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는 평화로운 때에 폴리스를 이끌면서 온건한 정책을 유지하고 폴리스를 안전하게 지켰다. 그가 이끄는 동안 아테나이는 가장 위대한 폴리스가 되었다”며, 그가 이끌던 시기에 “아테나이는 명목상 민주정이었으나 사실 점점 제1시민이 통치하는 정체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달리 페리클레스 시대는 명백하게 민주정이었다고 케이건은 반박한다. 투퀴디데스가 민주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 영역에서 성공하려면 탁월한 지혜(페리클레스)가 필요하며 정치적 재능을 갖추지 못한 다수의 의견을 우위에 두는 민주정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설파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고 말한다.
4) 클레온이 운이 좋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는 올바른가?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나이는 페리클레스의 온건 정책을 따르는 니키아스파와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 클레온파로 나뉘었고, 아테나이는 클레온의 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투퀴디데스는 클레온을 “시민 중 가장 난폭하고 당시 누구보다 가장 크게 시민에게 영향을 끼쳤다”라고 평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하나하나 살피면 클레온에 대한 아테나이 사람들의 믿음과 더불어 이를 왜곡하는 투퀴디데스의 수정 의견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건은 투퀴디데스가 클레온을 폄하하는 까닭은 페리클레스가 실수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기 위함이라 말한다. 특히 투퀴디데스 본인이 장군으로 선출된 당시 암피폴리스 전투를 서술한 부분에서는 전쟁에서 진 자신을 변론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객관적’이라는 외피를 씌우고 클레온의 정책이 틀렸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활용한다. 그럼에도 클레온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테나이 사람들의 모습은 그를 존경하고 성공한 장군으로 대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5·6) 시켈리아 원정 결정은 누가 했으며, 이 원정이 재앙으로 끝나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나이의 최종적 패배를 초래한 많은 실수 중에서도 시켈리아 원정을 꼭 집어서 이야기한다. 아테나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섬으로 대규모 원정대를 보내고 추가 원정대까지 파견했지만, 결국 전멸하고 만 이 재앙과도 같은 사건은 이후 아테나이를 더욱 쇠퇴의 길로 인도했다. 이 원정 작전이 실패한 까닭에 대해 투퀴디데스는 원정군을 내보낸 아테나이인이 실수한 것이라 결론짓는다. 과연 그러한가?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기술 내용을 따라가며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투퀴디데스가 “자기 시대에 그런 일을 당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사람”이라 불렀던 니키아스에게 책임이 있음을 밝혀낸다. 니키아스는 시켈리아 원정 전까지 아테나이의 존경받는 장군이었지만, 시켈리아 전사자를 기록한 비문에 그의 이름을 고의로 누락할 만큼 당대인들은 그에게 원정에 대한 오판과 실책의 책임을 물었는데, 케이건은 이들의 평가가 더 적절했고,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이러한 평가를 ‘수정’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상의 논점을 살펴봄으로써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관점보다 당대인들의 견해가 진실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투퀴디데스는 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당대의 역사 해석을 수정하려고 했을까? 여섯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와 그가 이끈 독재정이 틀렸다는 당대의 해석과 주장이 틀렸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역사를 수정해서 기술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2,400년 동안 정설로 굳어져왔다. 하지만 이제 케이건의 집요한 사료 읽기를 통해 결국 그가 당대인의 생각을 비롯해 이후 이 책을 “영원한 유산”으로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수정된 역사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으며, 투퀴디데스 또한 하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한 수정주의 역사가임을 밝힐 수 있었다.
추천의 글
진정 인상적인 책이다. 총체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아울렀다. 드라마틱한 전쟁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건의 역사 서술은 탁월하다.
- 북리스트
도널드 케이건이 고전학자, 국제관계 이론가, 군사사학자로서 그 누구에 비길 수 없는 전문 지식에 근거해 쓴 이 책은 전쟁을 둘러싼 헬라스인들의 계산 착오와 오만, 전략적 과욕의 서사시를 관통하며 투퀴디데스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대한 깊은 고찰과 더불어 역사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 워싱턴포스트
▣ 작가 소개
저 : 도널드 케이건
Donald Kagan
서양고전학과 서양고대사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미국내 신보수주의자라도 잘 알려진 작가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은 예일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고대 헬라스(그리스) 역사를 가르쳤으며, 역사학과의 스털링 석좌교수로서 2002년도 국가 인권 메달을 수상했다.
『전쟁과 인간』은 냉전체제 붕괴 이후 발표된 책으로 1987년 출간된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 필적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작가가 쓴 네 권짜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 분야의 선도적 연구 업적이다. 이 책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후 최고의 역작이라고 평을 받기도 하면서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된다. 고대와 현대의 여러 주제들로 많은 책을 썼으며, 코네티컷 햄든에 살고 있다.
역 : 박재욱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전기 스파르타의 교육과 폴리스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와 상명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문자 이야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 등이 있다.
감수 : 한정숙
한정숙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여성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역사 관련 저서들을 다수 번역하고, 여성의 역사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튀빙겐Tubingen 대학교에서 혁명기 러시아의 경제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세종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러시아 역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한·러관계사료집 1990~2003(서울대출판부, 2005.05.05)』,『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사계절, 2002)』 ,『우크라이나의 이해』(공저),『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공저)『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등이 있다. 역서로는『봉건사회』(한길사, 2001),『유랑시인』,『노동의 역사』(한길사, 1981) ,『비잔티움 제국사』(공역, 까치, 1999)등이 있다.
원저 : 투퀴디데스
Thukydides, Thucydides
아테나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한 번 이상 장군으로 선출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이군을 지휘했으며,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패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었다. 20년간의 추방은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양쪽의 사료를 엄격한 기준으로 수집·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종교나 도덕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설명하였다. 국가 간의 관계를 패권에 기반하여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 관점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흐름을 뒤바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그는 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의 역사 기술서 중 최고의 역사서로 일컬어진다.
▣ 주요 목차
서론
1장 수정주의 역사가 투퀴디데스
2장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1 - 케르퀴라 위기
3장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2 - 케르퀴라 위기에서 메가라 봉쇄령까지
4장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
5장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나이는 민주정이었나
6장 클레온은 운이 좋아 승리했는가
7장 암피폴리스의 투퀴디데스와 클레온
8장 시켈리아 원정은 어떻게 결정되었나
9장 시켈리아의 재앙은 누구의 책임인가
결론
옮긴이의 글 - 수정주의 역사가 투퀴디데스를 읽는 즐거움
본문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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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 투퀴디데스의 역사는 틀렸다
- 도널드 케이건이 밝혀낸 수정주의 역사가 투퀴디데스의 본질
투퀴디데스와 그의 저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 헬라스(그리스) 시대 역사서 가운데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 서술로 인해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을 매혹하고 있는 역사가이며 고전이다. 그런데 투퀴디데스의 역사 서술이 틀렸다,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 책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Thucydides: The Reinvention of History)》의 저자 도널드 케이건이다.
투퀴디데스는 누구인가.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27년에 걸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8권의 역사책으로 기록한 그는 비록 이보다 60년 먼저 일어난 페르시아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빼앗겼지만, 신들의 개입과 무관하게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객관적인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실증적·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저작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무릇 인간사가 그러하듯이 미래에 똑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벌어질 일을 명확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고, 그 자신이 “영원한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저작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유일무이한 사료로 인정받아왔는데, 특히 동서양의 대립이 스파르타와 아테나이가 대립한 것과 비슷했던 냉전시대에 큰 관심을 받았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마셜이 “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대와 아테나이의 몰락을 적어도 한 번이라도 되새겨보지 않은 사람이 현대 국제관계의 몇몇 기본 문제들을 매우 지혜롭게 혹은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이 책은 오랫동안 역사 연구자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치학자 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투퀴디데스와 그의 저서는 오랫동안 고전으로 인정받아서, 그동안 사실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았다. 위대한 전통의 권위라도 과도하게 존경하지 말라는 투퀴디데스의 주장을 이어받은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저작을 단순히 이해하는 데서 더 나아가 투퀴디데스가 이 방대한 책을 쓰면서까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며, 그의 역사 서술은 올바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시대인이 제시했거나 받아들였던 설명과 투퀴디데스의 서술을 비교하는 수고로운 작업을 20년 동안 진행해왔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기술하면서 자신이 들은 것들을 기록하며 이 모든 일은 신이 한 일이라고 설파했지만, 그 자신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장군으로 선출된 경험이 있는 투퀴디데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관련된 사료를 모으고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책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노력했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들려주려 한 역사는 무엇일까?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으며, 아테나이는 페리클레스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지만 그의 사후 똑똑하지 못한 후계자들이 그의 정책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전쟁이 장기화되고 결국 아테나이의 패배로 이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케이건은 이러한 주장은 당대 통용되던 역사적 해석과 다르며, 투퀴디데스는 이러한 당대의 해석을 잘못되었다고 믿고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이해를 교정하기 위해 역사를 서술했음을 밝혀냄으로써 마침내 ‘투퀴디데스는 최초의 수정주의 역사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특히 케이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투퀴디데스가 주장한 중요한 핵심 주장 여섯 가지의 ‘진실’을 파헤쳐나간다. 전쟁 발발 원인은 무엇인가,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은 타당했는가, 아테나이의 정체(政體)는 민주정이었나, 클레온에 대한 평가는 무엇이 올바른가, 시켈리아(시칠리아) 원정 결정은 누가 했으며, 또 이 원정이 재앙으로 끝나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해당 주제마다 투퀴디데스와 당대인의 이해와 얼마나 다르며, 투퀴디데스의 서술 기법에서 나타난 오류는 무엇인지를 살핌으로써 튀퀴디데스가 수정주의 역사가임을 논증한다.
투퀴디데스의 생각과 의도,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중요한 서술을 케이건 식의 해법으로 풀어나간 이 책의 미덕은 독자 또한 투퀴디데스의 ‘진실’과 케이건의 ‘진실’을 마주하면서 이 둘의 진실을 나(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이 책의 장점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그리고 투퀴디데스와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동시대인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당대인과 호흡하며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뿐 아니라 투퀴디데스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을 읽고 싶어지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2. 투퀴디데스는 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했는가
- 투퀴디데스가 수정한 여섯 가지 ‘사건’의 ‘진실’을 통해 살펴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탄생의 비밀
1)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불가피한 전쟁이었나?
케이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투퀴디데스가 주장한 핵심 여섯 가지를 택해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들려준다. 먼저, 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 살펴보면,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나이의 힘이 날로 커지고 헬라스 대부분이 이미 아테나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모습을 두려워한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대인 대다수는 전쟁은 피할 수 있었으며, 메가라 봉쇄령을 비롯한 페리클레스의 실책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는데, 케이건 역시 이러한 당대의 인식이 더 올바른 판단이라 본다.
2)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은 타당했는가?
페리클레스는 전쟁 발발 후 절제 정책으로 스파르타를 압박했고,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에 평화파가 득세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스파르타가 지속적으로 항전해 결국 그의 전쟁 전략은 실패했으며, 그 또한 전쟁 발발 2년 6개월 후 사망한다. 대다수 당대인은 페리클레스의 정책으로 전쟁이 발발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전쟁이 장기전에 들어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정책은 타당했으며, 문제는 페리클레스 사후 그의 계획과 정반대로 나아간 무능한 아테나이 민주정 후계자들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주장의 빈틈을 통해 그의 주장이 올바른 해석이 아니었음을 논증한다.
3)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나이는 민주정이었나?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는 평화로운 때에 폴리스를 이끌면서 온건한 정책을 유지하고 폴리스를 안전하게 지켰다. 그가 이끄는 동안 아테나이는 가장 위대한 폴리스가 되었다”며, 그가 이끌던 시기에 “아테나이는 명목상 민주정이었으나 사실 점점 제1시민이 통치하는 정체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달리 페리클레스 시대는 명백하게 민주정이었다고 케이건은 반박한다. 투퀴디데스가 민주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 영역에서 성공하려면 탁월한 지혜(페리클레스)가 필요하며 정치적 재능을 갖추지 못한 다수의 의견을 우위에 두는 민주정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설파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고 말한다.
4) 클레온이 운이 좋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는 올바른가?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나이는 페리클레스의 온건 정책을 따르는 니키아스파와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 클레온파로 나뉘었고, 아테나이는 클레온의 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투퀴디데스는 클레온을 “시민 중 가장 난폭하고 당시 누구보다 가장 크게 시민에게 영향을 끼쳤다”라고 평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하나하나 살피면 클레온에 대한 아테나이 사람들의 믿음과 더불어 이를 왜곡하는 투퀴디데스의 수정 의견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건은 투퀴디데스가 클레온을 폄하하는 까닭은 페리클레스가 실수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기 위함이라 말한다. 특히 투퀴디데스 본인이 장군으로 선출된 당시 암피폴리스 전투를 서술한 부분에서는 전쟁에서 진 자신을 변론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객관적’이라는 외피를 씌우고 클레온의 정책이 틀렸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활용한다. 그럼에도 클레온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테나이 사람들의 모습은 그를 존경하고 성공한 장군으로 대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5·6) 시켈리아 원정 결정은 누가 했으며, 이 원정이 재앙으로 끝나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나이의 최종적 패배를 초래한 많은 실수 중에서도 시켈리아 원정을 꼭 집어서 이야기한다. 아테나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섬으로 대규모 원정대를 보내고 추가 원정대까지 파견했지만, 결국 전멸하고 만 이 재앙과도 같은 사건은 이후 아테나이를 더욱 쇠퇴의 길로 인도했다. 이 원정 작전이 실패한 까닭에 대해 투퀴디데스는 원정군을 내보낸 아테나이인이 실수한 것이라 결론짓는다. 과연 그러한가?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기술 내용을 따라가며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투퀴디데스가 “자기 시대에 그런 일을 당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사람”이라 불렀던 니키아스에게 책임이 있음을 밝혀낸다. 니키아스는 시켈리아 원정 전까지 아테나이의 존경받는 장군이었지만, 시켈리아 전사자를 기록한 비문에 그의 이름을 고의로 누락할 만큼 당대인들은 그에게 원정에 대한 오판과 실책의 책임을 물었는데, 케이건은 이들의 평가가 더 적절했고,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이러한 평가를 ‘수정’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상의 논점을 살펴봄으로써 케이건은 투퀴디데스의 관점보다 당대인들의 견해가 진실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투퀴디데스는 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당대의 역사 해석을 수정하려고 했을까? 여섯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투퀴디데스는 ‘페리클레스’와 그가 이끈 독재정이 틀렸다는 당대의 해석과 주장이 틀렸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역사를 수정해서 기술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2,400년 동안 정설로 굳어져왔다. 하지만 이제 케이건의 집요한 사료 읽기를 통해 결국 그가 당대인의 생각을 비롯해 이후 이 책을 “영원한 유산”으로 읽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수정된 역사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으며, 투퀴디데스 또한 하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한 수정주의 역사가임을 밝힐 수 있었다.
추천의 글
진정 인상적인 책이다. 총체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아울렀다. 드라마틱한 전쟁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건의 역사 서술은 탁월하다.
- 북리스트
도널드 케이건이 고전학자, 국제관계 이론가, 군사사학자로서 그 누구에 비길 수 없는 전문 지식에 근거해 쓴 이 책은 전쟁을 둘러싼 헬라스인들의 계산 착오와 오만, 전략적 과욕의 서사시를 관통하며 투퀴디데스의 고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대한 깊은 고찰과 더불어 역사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 워싱턴포스트
▣ 작가 소개
저 : 도널드 케이건
Donald Kagan
서양고전학과 서양고대사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미국내 신보수주의자라도 잘 알려진 작가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은 예일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고대 헬라스(그리스) 역사를 가르쳤으며, 역사학과의 스털링 석좌교수로서 2002년도 국가 인권 메달을 수상했다.
『전쟁과 인간』은 냉전체제 붕괴 이후 발표된 책으로 1987년 출간된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 필적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작가가 쓴 네 권짜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 분야의 선도적 연구 업적이다. 이 책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이후 최고의 역작이라고 평을 받기도 하면서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된다. 고대와 현대의 여러 주제들로 많은 책을 썼으며, 코네티컷 햄든에 살고 있다.
역 : 박재욱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전기 스파르타의 교육과 폴리스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와 상명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문자 이야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 등이 있다.
감수 : 한정숙
한정숙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여성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역사 관련 저서들을 다수 번역하고, 여성의 역사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튀빙겐Tubingen 대학교에서 혁명기 러시아의 경제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세종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러시아 역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한·러관계사료집 1990~2003(서울대출판부, 2005.05.05)』,『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사계절, 2002)』 ,『우크라이나의 이해』(공저),『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공저)『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등이 있다. 역서로는『봉건사회』(한길사, 2001),『유랑시인』,『노동의 역사』(한길사, 1981) ,『비잔티움 제국사』(공역, 까치, 1999)등이 있다.
원저 : 투퀴디데스
Thukydides, Thucydides
아테나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한 번 이상 장군으로 선출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이군을 지휘했으며,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패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었다. 20년간의 추방은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양쪽의 사료를 엄격한 기준으로 수집·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종교나 도덕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설명하였다. 국가 간의 관계를 패권에 기반하여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 관점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흐름을 뒤바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그는 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의 역사 기술서 중 최고의 역사서로 일컬어진다.
▣ 주요 목차
서론
1장 수정주의 역사가 투퀴디데스
2장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1 - 케르퀴라 위기
3장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2 - 케르퀴라 위기에서 메가라 봉쇄령까지
4장 페리클레스의 전쟁 전략
5장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나이는 민주정이었나
6장 클레온은 운이 좋아 승리했는가
7장 암피폴리스의 투퀴디데스와 클레온
8장 시켈리아 원정은 어떻게 결정되었나
9장 시켈리아의 재앙은 누구의 책임인가
결론
옮긴이의 글 - 수정주의 역사가 투퀴디데스를 읽는 즐거움
본문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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