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인류 문화 속에서 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호모 루덴스』와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중세의 가을』로 널리 알려진 요한 하위징아가 쓴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에 대한 귀중한 기록 에라스뮈스 평전.
"에라스뮈스가 가는 길은 중도 또는 중도라고 보는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타협자가 아니었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만이 영원한 회귀성을 갖기에 에라스뮈스의 이상은 평가절하되지 않는다.” -슈테판 츠바이크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문화사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뮈스를 다룬 평전이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인류 문화 속에서 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호모 루덴스』와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중세의 가을』로 널리 알려진 하위징아가 쓴 에라스뮈스 평전은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에 대한 귀중한 기록이다.
20세기 최고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쓴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 평전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는 로테르담 사제와 의사의 딸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런 출생의 불우함을 딛고 학문의 길에 매진하여 후일 북부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이 되었다. 그는 성경이든 세속 문헌이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학식을 쌓아서 유럽의 왕족들과 대학들이 그의 자문을 간청할 정도로 학문의 거목이 되었다. 꼼꼼한 조사 연구와 아름다운 문장이 돋보이는 이 훌륭한 평전에서, 저명한 학자인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의 생애와 저작을 추적하고 있다.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가 수도원의 일개 무명 수도사에서 당대의 저명한 휴머니스트로 탁월한 역할을 하고, 또 종교개혁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불우하고 빈한했던 청소년 시절, 순회 학자로서의 고단한 삶,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체재, 토머스 모어와의 긴밀한 우정, 마르틴 루터와의 신학적 논쟁 등 에라스뮈스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불후의 사상가인 에라스뮈스는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후대의 서양 사상과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에서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주요 저서들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비평한다. 특히 에라스뮈스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 『우신 예찬』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신약성경 라틴어 번역본에 대해서도 논평한다.
▣ 작가 소개
저 :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
하위징아는 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호이징하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 어, 아랍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덴스』에도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1897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는 생계를 위해 하를렘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흐로닝언 대학에서 고대 인도 문화사와 종교사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점차 연구 중심을 역사학에서 서구 중세사에 두게 되었다. 1905년에는 은사이며 역사학자인 P. J. 블로크의 도움으로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 교수가 되었다. 1915년에는 레이던 대학의 일반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40년 그 대학이 독일군의 점령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2년 석방되어 가족의 면허조차 금지된 데스테흐의 작은 시골집에서 1945년 2월 1일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하를렘의 기원들』(1905),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1914), 『중세의 가을』(1919), 『에라스뮈스와 종교 개혁의 시대』(1924), 『얀 베트의 생애와 저작』(1927), 『호모 루덴스』(1938),『에라스무스』(1924),『문화사로의 길』(1930),『역사의 매력』(1942),『에라스뮈스』, 자서전인 『역사로의 나의 길』(1947) 등이 있다.
역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번역했고 최근에는 E.M.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5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20만 매에 달하는 번역 원고를 주무르는 동안 글에 대한 안목이 희미하게 생겨났고 번역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유현한 문장의 숲을 방황하는 동안 흘낏 엿본 기화요초의 추억 덕분에 산문 30여 편을 모아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자일득(愚者一得: 어리석은 자도 많은 궁리를 하다 보면 한 가지 기특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의 넉자를 마음에 새기며 더 좋은 번역, 글을 써 볼 생각을 갖고 있다.
번역서로는 『촘스키, 사상의 향연』『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오픈북』『나를 디자인하라』『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고전 읽기의 즐거움』『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더링: 아버지가 된다는 것』『백만장자 파트너십』『촘스키 이펙트』,『프로이트와 모세』,『에라스뮈스』등이 있고, 저서로는 『번역은 내 운명』(공저)와 『지하철 헌화가』가 있다.
▣ 주요 목차
옮긴이의 말
서문: G. N. 클라크
제1장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1466-88)
탄생의 시대적 배경 |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 | 에라스뮈스의 가계와 사생아로 탄생 | 에라스뮈스라는 이름의 유래 | 수도원에 들어간 에라스뮈스 형제
제2장 스테인 수도원(1488-95)
스테인 수도원에서 사귄 친구들 | 라틴어에 몰두하며 시인을 꿈꾸다 | 신부 서임 | 실의 속의 면학
제3장 파리 대학교(1495-99)
15세기 말의 파리 지성계 |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감 | 로베르 가갱과의 만남 | 고단한 문필가 생활
제4장 최초의 영국 체류(1499-1500)
존 콜렛과 토머스 모어 | 에라스뮈스의 유머 감각 | 문학에서 신학으로 관심이 확대되다 | 도버 세관에서의 봉변 | 연속되는 고난과 궁핍
제5장 휴머니스트 저자인 에라스뮈스
출세작 『격언집』 | 고전 숭상에 대한 현대인의 의문 | 에라스뮈스가 라틴어로 집필한 이유 | 조국에 대한 양가감정 | 네덜란드 정체성에 기여한 부르고뉴 문화
제6장 신학적 열망(1501)
히에로니무스 편집과 그리스어 공부 | 『기독교 전사를 위한 지침서』 |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 | 순수한 신학의 회복
제7장 루뱅, 파리, 두 번째 영국 체류
루뱅 방문과 파리 귀환 | 로렌초 발라의 신약성경 주석 | 두 번째 영국 체류 | 말 탄 사람의 노래
제8장 이탈리아 체류(1506-09)
토리노와 볼로냐 방문 | 베네치아의 인쇄소 | 인쇄술의 혜택과 피해 | 로마 방문과 헨리 8세의 등극
제9장 『우신 예찬』
모리아이 엔코미움 |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 크레타인의 역설 | 어리석음은 인생의 치료약 | 『우신 예찬』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 | 모어의 재담과 라블레의 풍자 | 『우신 예찬』은 에라스뮈스의 대표작이며 최고 걸작
제10장 세 번째 영국 체류(1509-14)
메세나를 찾아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 조세 바디우스와 요하네스 프로벤 | 1510년대의 유럽 상황 | 전쟁에 반대하는 에라스뮈스
제11장 신학의 빛(1514-16)
스테인 수도원의 귀환 명령 | 바젤의 인쇄소 | 히에로니무스 편집과 신약성경 주석 | 『기독교 군주의 교육』 | 수도자 서원을 풀어 준 교황청의 관면장 | 점점 높아지는 국제적 명성 | 편지의 역할과 기능 | 에라스미아니의 출현
제12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1
형식에 대한 혐오증 | 고전 사상과 기독교 정신의 융합 |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 | 에라스뮈스의 문장론 | 언어, 윤리, 미학 | 자연 회귀 사상
제13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2
성경적 휴머니즘 | 불가타에 대한 입장 | 레나스켄티아와 르네상스 | 사상의 의도와 표현의 형식 | 놀이와 진지함의 경계선상
제14장 에라스뮈스의 성품
질병에 대한 공포 |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 | 기질과 확신의 위험한 융합 자기중심적이고 은둔자적인 심성 | 친구들을 의심하는 성격 |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에라스뮈스 | 남의 거짓과 나의 거짓 | 남을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제15장 루뱅 대학 시절
내일 또 내일 | 신앙과 학문 | 신학자들과의 논쟁 |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반격 | 학문과 교리의 상충 | 보나이 리터라이에 대한 음모
제16장 종교개혁의 초창기
면죄부의 판매 | 루터의 95개조 | 소인 에라스뮈스와 대인 에라스뮈스 | 조정자 역할의 포기 | 두 세력의 협력 강요 | 보름스 제국의회
제17장 바젤 시절
개인적 도덕과 정신적 계몽 | 너무 순진한 정치사상 | 기독교 문헌의 편집과 번역 | 동시대인들을 조롱한 『대화집』 | 울리히 폰 후텐과의 논쟁
제18장 루터와의 논쟁과 짙어지는 보수 색채
에라스뮈스와 루터의 논쟁 | 자유 의지론과 예정론 |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지지하다 | 교회의 예식에 관한 의견 차이 | 종교개혁의 배후로 의심받다
제19장 휴머니스트와 종교개혁가들과의 전쟁(1528-29)
순수 기독교 정신을 위한 라틴어 | 키케로니아누스에 대한 비판 | 바젤 시의 상황 변화6 | 바젤에서 프라이부르크로 이주 | 종교개혁에서 멀어지다 | 재세례파의 정신적 아버지
제20장 에라스뮈스의 말년
1530년대의 시대 상황 | 만년의 저서 『설교론』 | 토머스 모어의 죽음 | 파울루스 3세의 종교회의 소집 | 에라스뮈스의 마지막 논문
제21장 결론
에라스뮈스에 대한 부정적 평가 | 에라스뮈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 | 종교와 정치에 미친 영향
인명·용어 풀이
해설: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에라스뮈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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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 속에서 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호모 루덴스』와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중세의 가을』로 널리 알려진 요한 하위징아가 쓴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에 대한 귀중한 기록 에라스뮈스 평전.
"에라스뮈스가 가는 길은 중도 또는 중도라고 보는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타협자가 아니었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만이 영원한 회귀성을 갖기에 에라스뮈스의 이상은 평가절하되지 않는다.” -슈테판 츠바이크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문화사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뮈스를 다룬 평전이 연암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인류 문화 속에서 놀이가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호모 루덴스』와 ‘중세 유럽의 문화와 사상을 집대성한’ 『중세의 가을』로 널리 알려진 하위징아가 쓴 에라스뮈스 평전은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에 대한 귀중한 기록이다.
20세기 최고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쓴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 평전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는 로테르담 사제와 의사의 딸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런 출생의 불우함을 딛고 학문의 길에 매진하여 후일 북부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이 되었다. 그는 성경이든 세속 문헌이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학식을 쌓아서 유럽의 왕족들과 대학들이 그의 자문을 간청할 정도로 학문의 거목이 되었다. 꼼꼼한 조사 연구와 아름다운 문장이 돋보이는 이 훌륭한 평전에서, 저명한 학자인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의 생애와 저작을 추적하고 있다.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가 수도원의 일개 무명 수도사에서 당대의 저명한 휴머니스트로 탁월한 역할을 하고, 또 종교개혁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불우하고 빈한했던 청소년 시절, 순회 학자로서의 고단한 삶,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체재, 토머스 모어와의 긴밀한 우정, 마르틴 루터와의 신학적 논쟁 등 에라스뮈스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불후의 사상가인 에라스뮈스는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후대의 서양 사상과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에서 하위징아는 에라스뮈스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주요 저서들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비평한다. 특히 에라스뮈스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 『우신 예찬』을 탁월하게 분석하고,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신약성경 라틴어 번역본에 대해서도 논평한다.
▣ 작가 소개
저 :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
하위징아는 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호이징하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 어, 아랍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덴스』에도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1897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는 생계를 위해 하를렘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흐로닝언 대학에서 고대 인도 문화사와 종교사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점차 연구 중심을 역사학에서 서구 중세사에 두게 되었다. 1905년에는 은사이며 역사학자인 P. J. 블로크의 도움으로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 교수가 되었다. 1915년에는 레이던 대학의 일반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40년 그 대학이 독일군의 점령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2년 석방되어 가족의 면허조차 금지된 데스테흐의 작은 시골집에서 1945년 2월 1일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하를렘의 기원들』(1905),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1914), 『중세의 가을』(1919), 『에라스뮈스와 종교 개혁의 시대』(1924), 『얀 베트의 생애와 저작』(1927), 『호모 루덴스』(1938),『에라스무스』(1924),『문화사로의 길』(1930),『역사의 매력』(1942),『에라스뮈스』, 자서전인 『역사로의 나의 길』(1947) 등이 있다.
역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번역했고 최근에는 E.M.포스터, 존 파울즈, 폴 오스터, 제임스 존스 등 현대 영미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5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20만 매에 달하는 번역 원고를 주무르는 동안 글에 대한 안목이 희미하게 생겨났고 번역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유현한 문장의 숲을 방황하는 동안 흘낏 엿본 기화요초의 추억 덕분에 산문 30여 편을 모아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자일득(愚者一得: 어리석은 자도 많은 궁리를 하다 보면 한 가지 기특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의 넉자를 마음에 새기며 더 좋은 번역, 글을 써 볼 생각을 갖고 있다.
번역서로는 『촘스키, 사상의 향연』『폴 오스터의 뉴욕 통신』『오픈북』『나를 디자인하라』『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고전 읽기의 즐거움』『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더링: 아버지가 된다는 것』『백만장자 파트너십』『촘스키 이펙트』,『프로이트와 모세』,『에라스뮈스』등이 있고, 저서로는 『번역은 내 운명』(공저)와 『지하철 헌화가』가 있다.
▣ 주요 목차
옮긴이의 말
서문: G. N. 클라크
제1장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1466-88)
탄생의 시대적 배경 |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 | 에라스뮈스의 가계와 사생아로 탄생 | 에라스뮈스라는 이름의 유래 | 수도원에 들어간 에라스뮈스 형제
제2장 스테인 수도원(1488-95)
스테인 수도원에서 사귄 친구들 | 라틴어에 몰두하며 시인을 꿈꾸다 | 신부 서임 | 실의 속의 면학
제3장 파리 대학교(1495-99)
15세기 말의 파리 지성계 |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감 | 로베르 가갱과의 만남 | 고단한 문필가 생활
제4장 최초의 영국 체류(1499-1500)
존 콜렛과 토머스 모어 | 에라스뮈스의 유머 감각 | 문학에서 신학으로 관심이 확대되다 | 도버 세관에서의 봉변 | 연속되는 고난과 궁핍
제5장 휴머니스트 저자인 에라스뮈스
출세작 『격언집』 | 고전 숭상에 대한 현대인의 의문 | 에라스뮈스가 라틴어로 집필한 이유 | 조국에 대한 양가감정 | 네덜란드 정체성에 기여한 부르고뉴 문화
제6장 신학적 열망(1501)
히에로니무스 편집과 그리스어 공부 | 『기독교 전사를 위한 지침서』 |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 | 순수한 신학의 회복
제7장 루뱅, 파리, 두 번째 영국 체류
루뱅 방문과 파리 귀환 | 로렌초 발라의 신약성경 주석 | 두 번째 영국 체류 | 말 탄 사람의 노래
제8장 이탈리아 체류(1506-09)
토리노와 볼로냐 방문 | 베네치아의 인쇄소 | 인쇄술의 혜택과 피해 | 로마 방문과 헨리 8세의 등극
제9장 『우신 예찬』
모리아이 엔코미움 |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 크레타인의 역설 | 어리석음은 인생의 치료약 | 『우신 예찬』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 | 모어의 재담과 라블레의 풍자 | 『우신 예찬』은 에라스뮈스의 대표작이며 최고 걸작
제10장 세 번째 영국 체류(1509-14)
메세나를 찾아다니는 불안정한 생활 | 조세 바디우스와 요하네스 프로벤 | 1510년대의 유럽 상황 | 전쟁에 반대하는 에라스뮈스
제11장 신학의 빛(1514-16)
스테인 수도원의 귀환 명령 | 바젤의 인쇄소 | 히에로니무스 편집과 신약성경 주석 | 『기독교 군주의 교육』 | 수도자 서원을 풀어 준 교황청의 관면장 | 점점 높아지는 국제적 명성 | 편지의 역할과 기능 | 에라스미아니의 출현
제12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1
형식에 대한 혐오증 | 고전 사상과 기독교 정신의 융합 |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 | 에라스뮈스의 문장론 | 언어, 윤리, 미학 | 자연 회귀 사상
제13장 에라스뮈스의 사상 2
성경적 휴머니즘 | 불가타에 대한 입장 | 레나스켄티아와 르네상스 | 사상의 의도와 표현의 형식 | 놀이와 진지함의 경계선상
제14장 에라스뮈스의 성품
질병에 대한 공포 |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 | 기질과 확신의 위험한 융합 자기중심적이고 은둔자적인 심성 | 친구들을 의심하는 성격 |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에라스뮈스 | 남의 거짓과 나의 거짓 | 남을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제15장 루뱅 대학 시절
내일 또 내일 | 신앙과 학문 | 신학자들과의 논쟁 |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반격 | 학문과 교리의 상충 | 보나이 리터라이에 대한 음모
제16장 종교개혁의 초창기
면죄부의 판매 | 루터의 95개조 | 소인 에라스뮈스와 대인 에라스뮈스 | 조정자 역할의 포기 | 두 세력의 협력 강요 | 보름스 제국의회
제17장 바젤 시절
개인적 도덕과 정신적 계몽 | 너무 순진한 정치사상 | 기독교 문헌의 편집과 번역 | 동시대인들을 조롱한 『대화집』 | 울리히 폰 후텐과의 논쟁
제18장 루터와의 논쟁과 짙어지는 보수 색채
에라스뮈스와 루터의 논쟁 | 자유 의지론과 예정론 |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지지하다 | 교회의 예식에 관한 의견 차이 | 종교개혁의 배후로 의심받다
제19장 휴머니스트와 종교개혁가들과의 전쟁(1528-29)
순수 기독교 정신을 위한 라틴어 | 키케로니아누스에 대한 비판 | 바젤 시의 상황 변화6 | 바젤에서 프라이부르크로 이주 | 종교개혁에서 멀어지다 | 재세례파의 정신적 아버지
제20장 에라스뮈스의 말년
1530년대의 시대 상황 | 만년의 저서 『설교론』 | 토머스 모어의 죽음 | 파울루스 3세의 종교회의 소집 | 에라스뮈스의 마지막 논문
제21장 결론
에라스뮈스에 대한 부정적 평가 | 에라스뮈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 | 종교와 정치에 미친 영향
인명·용어 풀이
해설: 둘케 데시페레 인 로코
에라스뮈스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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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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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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