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기록으로 되살려낸 갈등의 현장
때로는 치열함이, 때로는 애잔함이······
처가와 대립각을 세우는 사위
아내의 재산을 상속받고자 일으킨 소송
사위 장응필은 내 딸이 죽을병을 얻어 고생할 때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딸에게) 죽을 날이 임박해오자 예천 집에 있던 딸의 재물을 모두 자기 노(奴)의 집으로 옮겼고 ···(중략)··· (처모인) 내가 몸져누워 신음할 때도 한번 와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라도 문안 한 번 하지 않았으니 더욱 무정하다 하겠다. 이에 이미 허급(許給)한 노비라 하더라도 모두 빼앗아도 되겠지만 ···(중략)··· 딸의 봉사조(奉祀條)로 딸의 신노비(新奴婢) 등을 허급하니 ···(하략)···
―안계종 처 김씨 분급문기, 1535년
조선시대에 사위는 재산상속에서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실제로 분재기(分財記) 등의 고문서를 보면 처가의 제사를 모시는 사위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위와 처가의 갈등이 종종 일어났다. 위 문서는 안계종의 처 의성 김씨가 딸이 죽을병을 얻어 힘들어하는데도 막내 사위 장응필이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그 재물을 탐하고 장모에게 문안 한 번 하지 않았다면서 원망하는 내용이다. 김씨는 사위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으나 딸의 제사 명목으로 결국 일부 재산을 상속했다.
혼인은 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요절한 여성의 경우, 그 여성의 재산을 둘러싸고 처가와 시가에서 분쟁이 일어났는데,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소송으로까지 나아간 경우도 있었다. 이 책에는 1560년(명종 15) 양동 손씨와 화순 최씨 간에 전개된 소송과 1583년(선조 16) 재령 이씨와 안동 김씨 간에 벌어진 소송의 사례를 소개하여 자식 없이 죽은 부인의 재산을 둘러싸고 분재(分財)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소송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내려졌는지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재산상속 갈등은 현대사회에서도 일어나는 것이지만, 법(法)이 우위를 차지하지 않고, 법과 도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갔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갈등과는 그 성격과 내용이 다르다.
『미암일기』의 주인공이자 사헌부 사간인 유희춘과 일개 율생 허관손의 소송
처자식이 노비가 되어버렸으니, 이를 바로잡아달라는 처절한 사연
수청의 사위 율생 허관손이 본 주인을 배반하기로 도모하여 여러 차례 거짓으로 꾸며 정소하여 신해년(1551)에는 공정하지 못한 법관(權纘)으로 인하여 주인을 배반하고 신의 어미를 욕보이는데 이르러 죽을 만큼 분하고 원통하였습니다. ···(중략)··· 지금 들으니 허관손이 소장을 올린 상언에 신이 무장현감 당시 법을 어기고 청탁하여 양인을 눌러 천인으로 하였다고 하는데, 이 소장의 허실과 곡직은 공론에 있습니다.
―『미암일기』 1568년(선조 1) 3월 24일.
유배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유희춘은 사헌부 사간으로서 빠른 승진이 기다리고 있던 차에 공교롭게 소송에 걸려든다. 말단 향리 허관손이 일으킨 소송이다. 유희춘 측에서는 유희춘의 외증조부인 정귀감의 처삼촌이 되는 차헌의 천첩 자손을 자신의 노비로 확인받고자 했고, 허관손은 자신의 아내가 양인임을 확인받으려 했다. 이 소송은 적자와 서자 간의 신분 결정 문제로 37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공양미 300석에 자신을 판 심청,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자신을 팔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도광 17년 정유(1837) 2월 26일 조광득에게 드리는 명문
이 명문하는 일은 제가 이번에 큰 흉년을 당해 춘궁(春窮)이 심하여 부모를 살릴 길이 전혀 없으므로 만부득이 저를 전문(錢文) 13냥으로 쳐서 수대로 받아 부모를 살리고, 저를 위 사람에게 법률에 의하여 후소생(後所生)과 함께 관의 입지에 따라 영영 자매하니, 뒤에 친족들이나 자손 중에 만약 잡담하는 이가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변정(辨正)할 일입니다.
조선 후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노비나 고공(雇工)으로 파는 행위를 자매(自賣)라고 한다. 위 문서는 1837년(헌종 3) 소녀 유득열이 자신과 부모를 살리고자 자신과 자신의 미래 후손까지 매매한다는 자매문기이다. 득열은 본래 양인이었지만 이 자매를 통해 노비와 다름없는 천인 신분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매수인 중에는 자매문기를 관으로부터 공증받아 뒷날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분쟁에 대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토지나 물건과 달리 사람은 나중에 마음이 변심하여 도망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국가에서는 ‘효’라는 명분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해 빈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자매 행위를 공공연히 공인해주었다.
공재 윤두서, 그의 묘가 일곱 번이나 천장을 당한 사연
천장 과정에서 문중과 전개된 묘지 소송
윤두서는 1715년(숙종 41) 세상을 떠나 강진 백도면에 안장되었다가 그 뒤 100여 년 동안 일곱 차례나 천장(遷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천장 이유는 묏자리가 좋지 않다는 풍수가의 견해에 따라 길지로 옮긴 것이 중심을 이룬다. 그런데 4차 천장을 하는 과정에서 문중의 족인들과 소송까지 이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송의 발단은 천장하려는 곳이 역장(逆葬)의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윤두서의 손자 윤굉은 이장하려는 곳이 역장의 혐의가 있긴 하지만 문중 대표로부터 입장(入葬) 허락을 받았고 문중에서 역장의 선례도 있었기에 진행했지만, 묏자리 조성 과정에서 문중의 다른 족인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았다. 결국 이장을 반대한 윤흥호 측은 강진현감에게 소장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 소송은 강진현에서 마무리되지 않고 전라도 관찰사에게까지 넘어갔으며, 소송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직감한 윤흥호 측이 윤두서 부부 묘를 파내는 극단적인 사태로 나아갔다.
분쟁의 발생 원인부터 해결까지,
법정의 모습부터 소송의 전 과정 묘사까지,
개개인의 경제생활 분쟁부터 국가적 차원의 갈등까지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도입부’ 성격을 갖는다. 조선시대 소송의 기본 원리 및 운영 시스템을 제도사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다. 다양한 소송 사례의 전말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무장을 갖추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분쟁의 원리와 재판에 대한 인식을 검토하여 조선 사회의 소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틀을 제공하였다. 소(訴) 제기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소송의 전 과정을 섭렵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소송관 및 소송 기관의 역할, 변호사에 비견되는 외지부의 존재를 통해 전통시대 송정(訟庭)의 모습을 오늘날 법정의 풍경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4부는 각각 ‘경제생활과 소송’, ‘신분 사회와 소송’, ‘공동체·국가와 소송’이라는 테마로 구성하여 다양한 소송 사례를 제시하였다. 고문서에 나타난 사실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원고와 피고의 주장,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 책에 소개된 소송은 개인 간의 분쟁이 중심을 이루지만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한 소송이나 국가적 차원의 저항과 분쟁도 담아냈다.
▣ 작가 소개
저자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의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보존을 위해 1991년 4월에 창립된 한국고문서학회는 고문서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인 곳으로, 월례발표회, 지방학술대회,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해 열린 학술 공간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한 사회사·경제사·법제사·국어사 등 고문서를 활용한 여러 연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학제 간 연구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었다.
한국고문서학회에서는 그동안 『조선시대 생활사』 1·2·3, 『조선 전기 고문서집성』(15세기편), 『16세기 한국고문서연구』, 『동아시아 근세사회의 비교』 등 대중 교양서뿐 아니라 고문서 자료집과 연구서를 만들어왔으며, 학회지인 『고문서연구』를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우리 삶의 모습이 담겨 있는 고문서 자료를 통해 인간 중심의 역사를 탐구하고 서술하는 일, 다양한 고문서 자료집의 체계적인 간행, 전문성을 띤 고문서 연구를 통해 한국사 연구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한국고문서학회가 걸어온 길이고,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다.
집필진
정긍식 :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 임상혁 :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조윤선 :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전문위원 /... 이헌창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문숙자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 김경옥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 이성임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박경 : 하버드대학교 방문연구원 / 김경숙 : 조선대학교 부교수 / 이수환 :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김헌영 :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 / 양진석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관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며 : 분쟁과 소송으로 읽는 조선시대의 삶
제1부|조선시대 소송이란
1장|분쟁과 재판
분쟁은 인간의 원죄?|무엇 때문에 다투는가|어쨌든 해결해야 할 분쟁|왜 재판을 하는 걸까|재판을 바라보는 관점
2장|법정의 풍경
송정, 전통 시대 법정의 모습|결송입안, 소송의 모든 과정이 나타나는 판결문|학봉의 판결문, 숨어 있던 서민 사회상의 보고|시송다짐, 어렵게 이루어지는 소송의 개시|원척의 대립, 압량위천인가? 반주설계인가?|암록, 호적을 이용한 소송 사기|호적, 신분 증명의 기능과 한계|광주관 소송, 이례적인 중간확인의 소|보충대, 노비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판결, 근면한 법관의 모범 재판
3장|법관과 변호사
무송에서 청송으로|수령과 관찰사는 어떻게 재판했나|여러 사송아문의 재판 기능|양반을 위한 의금부와 추국청|변호사 구실을 했던 사람들
제2부|경제생활과 소송
1장|매매 분쟁-재산권과 계약 제도의 발달
시장의 성장과 다양한 상품의 거래|‘내 것’이라는 관념의 성장|중요한 재산은 매매계약서로|국가의 소유권 공증|매매 분쟁의 조정에 꼭 필요한 매매계약서|매매 분쟁의 다양한 사례들|18세기의 조선, 계약 사회가 성립하다
2장|상속 분쟁-법과 도덕 사이에서 유지된 균형
상속 분쟁은 언제 발생했나|아내의 죽음으로 처가와 의절하는 사위들|자식 없이 죽은 여성의 재산은 어디로?|입양을 하지 않은 것과 한 것의 차이|상속 분쟁이 의미하는 것
3장|토지소유권 분쟁-하의삼도 주민들의 300여 년에 걸친 항거
300년 동안 이어진 소송|하의삼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정명공주 이야기|정명공주방에서 올린 소지|왕실을 상대로 한 소송|면세전인가, 절수지인가|경성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마침내 승인된 섬 주민들의 토지소유권
제3부|신분 사회와 소송
1장|축첩-올바르지 못한 남녀 관계와 그 자녀의 문제
유희춘이 사직상소를 올린 까닭|유희춘과 허관손의 송사|양반 남성의 기녀 솔휵|여비는 갓김치종|첩 들이기|불안정한 첩살이
2장|자매-자신을 팔아 삶을 연명한 사람들
자신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자매를 원하는 한 소녀의 소지|자매를 돕는 관청|공증도 가능했던 자매|가족 매매, 법적 사회적으로 용인되다|신분 하락보다 ‘효’가 우선|빈민 구제에만 한정되지 않은 자매
3장|천장과 산송-종법 질서가 빚어낸 묘지 소송
윤두서 묘를 일곱 번 천장한 사연|산송의 발단, 역장|강진현감의 판결|사굴한 죄인은 유배형|산송의 출현과 역사적 배경
제4부|국가·공동체와 소송
1장|향전-향촌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분쟁
노론 정권하 지방 사림의 처지|향촌 사림의 당파 간 분열|위패의 서열은 곧 현실의 서열|학문적 연원을 둘러싼 문중 간 갈등|향촌 사족의 확대되는 갈등이 불러온 폐단
2장|물싸움-등장과 발괄에 나타난 민중 의식
조선 후기 등장과 발괄이 성행한 까닭|경주 양좌동에 내려오는 문서들|16세기 말 관개를 둘러싼 갈등|17세기 이후 산천 관리와 마을 운영|관권과 민권의 충돌 현장, 만석보|사발통문과 민중 의식의 성장
3장|부세 문제-잘못된 세 부과에 대한 저항
세금에 대하여|부세 문제를 개선하려는 논의와 그 한계|온갖 부가세가 붙은 전세|군정의 문란과 군역의 각종 폐해|
폐단의 온상, 환곡|수령과 감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다|민원에 대한 어사의 처분|집단적 행동을 통한 문제 제기|중앙에 호소하는 방법, 상언과 격쟁|부세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기록으로 되살려낸 갈등의 현장
때로는 치열함이, 때로는 애잔함이······
처가와 대립각을 세우는 사위
아내의 재산을 상속받고자 일으킨 소송
사위 장응필은 내 딸이 죽을병을 얻어 고생할 때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딸에게) 죽을 날이 임박해오자 예천 집에 있던 딸의 재물을 모두 자기 노(奴)의 집으로 옮겼고 ···(중략)··· (처모인) 내가 몸져누워 신음할 때도 한번 와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라도 문안 한 번 하지 않았으니 더욱 무정하다 하겠다. 이에 이미 허급(許給)한 노비라 하더라도 모두 빼앗아도 되겠지만 ···(중략)··· 딸의 봉사조(奉祀條)로 딸의 신노비(新奴婢) 등을 허급하니 ···(하략)···
―안계종 처 김씨 분급문기, 1535년
조선시대에 사위는 재산상속에서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실제로 분재기(分財記) 등의 고문서를 보면 처가의 제사를 모시는 사위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위와 처가의 갈등이 종종 일어났다. 위 문서는 안계종의 처 의성 김씨가 딸이 죽을병을 얻어 힘들어하는데도 막내 사위 장응필이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그 재물을 탐하고 장모에게 문안 한 번 하지 않았다면서 원망하는 내용이다. 김씨는 사위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으나 딸의 제사 명목으로 결국 일부 재산을 상속했다.
혼인은 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요절한 여성의 경우, 그 여성의 재산을 둘러싸고 처가와 시가에서 분쟁이 일어났는데,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소송으로까지 나아간 경우도 있었다. 이 책에는 1560년(명종 15) 양동 손씨와 화순 최씨 간에 전개된 소송과 1583년(선조 16) 재령 이씨와 안동 김씨 간에 벌어진 소송의 사례를 소개하여 자식 없이 죽은 부인의 재산을 둘러싸고 분재(分財)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소송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내려졌는지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재산상속 갈등은 현대사회에서도 일어나는 것이지만, 법(法)이 우위를 차지하지 않고, 법과 도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갔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갈등과는 그 성격과 내용이 다르다.
『미암일기』의 주인공이자 사헌부 사간인 유희춘과 일개 율생 허관손의 소송
처자식이 노비가 되어버렸으니, 이를 바로잡아달라는 처절한 사연
수청의 사위 율생 허관손이 본 주인을 배반하기로 도모하여 여러 차례 거짓으로 꾸며 정소하여 신해년(1551)에는 공정하지 못한 법관(權纘)으로 인하여 주인을 배반하고 신의 어미를 욕보이는데 이르러 죽을 만큼 분하고 원통하였습니다. ···(중략)··· 지금 들으니 허관손이 소장을 올린 상언에 신이 무장현감 당시 법을 어기고 청탁하여 양인을 눌러 천인으로 하였다고 하는데, 이 소장의 허실과 곡직은 공론에 있습니다.
―『미암일기』 1568년(선조 1) 3월 24일.
유배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유희춘은 사헌부 사간으로서 빠른 승진이 기다리고 있던 차에 공교롭게 소송에 걸려든다. 말단 향리 허관손이 일으킨 소송이다. 유희춘 측에서는 유희춘의 외증조부인 정귀감의 처삼촌이 되는 차헌의 천첩 자손을 자신의 노비로 확인받고자 했고, 허관손은 자신의 아내가 양인임을 확인받으려 했다. 이 소송은 적자와 서자 간의 신분 결정 문제로 37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공양미 300석에 자신을 판 심청,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자신을 팔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도광 17년 정유(1837) 2월 26일 조광득에게 드리는 명문
이 명문하는 일은 제가 이번에 큰 흉년을 당해 춘궁(春窮)이 심하여 부모를 살릴 길이 전혀 없으므로 만부득이 저를 전문(錢文) 13냥으로 쳐서 수대로 받아 부모를 살리고, 저를 위 사람에게 법률에 의하여 후소생(後所生)과 함께 관의 입지에 따라 영영 자매하니, 뒤에 친족들이나 자손 중에 만약 잡담하는 이가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변정(辨正)할 일입니다.
조선 후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노비나 고공(雇工)으로 파는 행위를 자매(自賣)라고 한다. 위 문서는 1837년(헌종 3) 소녀 유득열이 자신과 부모를 살리고자 자신과 자신의 미래 후손까지 매매한다는 자매문기이다. 득열은 본래 양인이었지만 이 자매를 통해 노비와 다름없는 천인 신분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매수인 중에는 자매문기를 관으로부터 공증받아 뒷날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분쟁에 대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토지나 물건과 달리 사람은 나중에 마음이 변심하여 도망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국가에서는 ‘효’라는 명분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해 빈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자매 행위를 공공연히 공인해주었다.
공재 윤두서, 그의 묘가 일곱 번이나 천장을 당한 사연
천장 과정에서 문중과 전개된 묘지 소송
윤두서는 1715년(숙종 41) 세상을 떠나 강진 백도면에 안장되었다가 그 뒤 100여 년 동안 일곱 차례나 천장(遷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천장 이유는 묏자리가 좋지 않다는 풍수가의 견해에 따라 길지로 옮긴 것이 중심을 이룬다. 그런데 4차 천장을 하는 과정에서 문중의 족인들과 소송까지 이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송의 발단은 천장하려는 곳이 역장(逆葬)의 혐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윤두서의 손자 윤굉은 이장하려는 곳이 역장의 혐의가 있긴 하지만 문중 대표로부터 입장(入葬) 허락을 받았고 문중에서 역장의 선례도 있었기에 진행했지만, 묏자리 조성 과정에서 문중의 다른 족인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았다. 결국 이장을 반대한 윤흥호 측은 강진현감에게 소장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 소송은 강진현에서 마무리되지 않고 전라도 관찰사에게까지 넘어갔으며, 소송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직감한 윤흥호 측이 윤두서 부부 묘를 파내는 극단적인 사태로 나아갔다.
분쟁의 발생 원인부터 해결까지,
법정의 모습부터 소송의 전 과정 묘사까지,
개개인의 경제생활 분쟁부터 국가적 차원의 갈등까지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도입부’ 성격을 갖는다. 조선시대 소송의 기본 원리 및 운영 시스템을 제도사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다. 다양한 소송 사례의 전말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무장을 갖추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분쟁의 원리와 재판에 대한 인식을 검토하여 조선 사회의 소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틀을 제공하였다. 소(訴) 제기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소송의 전 과정을 섭렵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소송관 및 소송 기관의 역할, 변호사에 비견되는 외지부의 존재를 통해 전통시대 송정(訟庭)의 모습을 오늘날 법정의 풍경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4부는 각각 ‘경제생활과 소송’, ‘신분 사회와 소송’, ‘공동체·국가와 소송’이라는 테마로 구성하여 다양한 소송 사례를 제시하였다. 고문서에 나타난 사실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원고와 피고의 주장,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 책에 소개된 소송은 개인 간의 분쟁이 중심을 이루지만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한 소송이나 국가적 차원의 저항과 분쟁도 담아냈다.
▣ 작가 소개
저자 : 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의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보존을 위해 1991년 4월에 창립된 한국고문서학회는 고문서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인 곳으로, 월례발표회, 지방학술대회,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해 열린 학술 공간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한 사회사·경제사·법제사·국어사 등 고문서를 활용한 여러 연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학제 간 연구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었다.
한국고문서학회에서는 그동안 『조선시대 생활사』 1·2·3, 『조선 전기 고문서집성』(15세기편), 『16세기 한국고문서연구』, 『동아시아 근세사회의 비교』 등 대중 교양서뿐 아니라 고문서 자료집과 연구서를 만들어왔으며, 학회지인 『고문서연구』를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우리 삶의 모습이 담겨 있는 고문서 자료를 통해 인간 중심의 역사를 탐구하고 서술하는 일, 다양한 고문서 자료집의 체계적인 간행, 전문성을 띤 고문서 연구를 통해 한국사 연구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한국고문서학회가 걸어온 길이고,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다.
집필진
정긍식 :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 임상혁 :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조윤선 :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전문위원 /... 이헌창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문숙자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 김경옥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 이성임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박경 : 하버드대학교 방문연구원 / 김경숙 : 조선대학교 부교수 / 이수환 :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김헌영 :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 / 양진석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관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며 : 분쟁과 소송으로 읽는 조선시대의 삶
제1부|조선시대 소송이란
1장|분쟁과 재판
분쟁은 인간의 원죄?|무엇 때문에 다투는가|어쨌든 해결해야 할 분쟁|왜 재판을 하는 걸까|재판을 바라보는 관점
2장|법정의 풍경
송정, 전통 시대 법정의 모습|결송입안, 소송의 모든 과정이 나타나는 판결문|학봉의 판결문, 숨어 있던 서민 사회상의 보고|시송다짐, 어렵게 이루어지는 소송의 개시|원척의 대립, 압량위천인가? 반주설계인가?|암록, 호적을 이용한 소송 사기|호적, 신분 증명의 기능과 한계|광주관 소송, 이례적인 중간확인의 소|보충대, 노비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판결, 근면한 법관의 모범 재판
3장|법관과 변호사
무송에서 청송으로|수령과 관찰사는 어떻게 재판했나|여러 사송아문의 재판 기능|양반을 위한 의금부와 추국청|변호사 구실을 했던 사람들
제2부|경제생활과 소송
1장|매매 분쟁-재산권과 계약 제도의 발달
시장의 성장과 다양한 상품의 거래|‘내 것’이라는 관념의 성장|중요한 재산은 매매계약서로|국가의 소유권 공증|매매 분쟁의 조정에 꼭 필요한 매매계약서|매매 분쟁의 다양한 사례들|18세기의 조선, 계약 사회가 성립하다
2장|상속 분쟁-법과 도덕 사이에서 유지된 균형
상속 분쟁은 언제 발생했나|아내의 죽음으로 처가와 의절하는 사위들|자식 없이 죽은 여성의 재산은 어디로?|입양을 하지 않은 것과 한 것의 차이|상속 분쟁이 의미하는 것
3장|토지소유권 분쟁-하의삼도 주민들의 300여 년에 걸친 항거
300년 동안 이어진 소송|하의삼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정명공주 이야기|정명공주방에서 올린 소지|왕실을 상대로 한 소송|면세전인가, 절수지인가|경성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마침내 승인된 섬 주민들의 토지소유권
제3부|신분 사회와 소송
1장|축첩-올바르지 못한 남녀 관계와 그 자녀의 문제
유희춘이 사직상소를 올린 까닭|유희춘과 허관손의 송사|양반 남성의 기녀 솔휵|여비는 갓김치종|첩 들이기|불안정한 첩살이
2장|자매-자신을 팔아 삶을 연명한 사람들
자신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자매를 원하는 한 소녀의 소지|자매를 돕는 관청|공증도 가능했던 자매|가족 매매, 법적 사회적으로 용인되다|신분 하락보다 ‘효’가 우선|빈민 구제에만 한정되지 않은 자매
3장|천장과 산송-종법 질서가 빚어낸 묘지 소송
윤두서 묘를 일곱 번 천장한 사연|산송의 발단, 역장|강진현감의 판결|사굴한 죄인은 유배형|산송의 출현과 역사적 배경
제4부|국가·공동체와 소송
1장|향전-향촌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분쟁
노론 정권하 지방 사림의 처지|향촌 사림의 당파 간 분열|위패의 서열은 곧 현실의 서열|학문적 연원을 둘러싼 문중 간 갈등|향촌 사족의 확대되는 갈등이 불러온 폐단
2장|물싸움-등장과 발괄에 나타난 민중 의식
조선 후기 등장과 발괄이 성행한 까닭|경주 양좌동에 내려오는 문서들|16세기 말 관개를 둘러싼 갈등|17세기 이후 산천 관리와 마을 운영|관권과 민권의 충돌 현장, 만석보|사발통문과 민중 의식의 성장
3장|부세 문제-잘못된 세 부과에 대한 저항
세금에 대하여|부세 문제를 개선하려는 논의와 그 한계|온갖 부가세가 붙은 전세|군정의 문란과 군역의 각종 폐해|
폐단의 온상, 환곡|수령과 감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다|민원에 대한 어사의 처분|집단적 행동을 통한 문제 제기|중앙에 호소하는 방법, 상언과 격쟁|부세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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