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기반 문화대국 조선 -조선사에서 법고창신의 길을 찾다-

고객평점
저자정옥자
출판사항돌베개, 발행일:2012/12/17
형태사항p.304p. A5판:21cm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7199517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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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법고창신의 문화대국, 한국의 미래를 꿈꾸다

이 책은 일제에 의해 가장 심하게 평가 절하된 조선의 역사를 문화사적으로 재정립한 것이다. 사회와 학계에 만연한 식민사관을 ‘문화사관’으로 걷어내고 도덕과 자존, 평화를 지향하는 문치주의 전통을 찾아내어 조선시대가 지식에 기반을 둔 문화국가임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맑음의 정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선비정신을 재조명했으며, 조선후기 문화 중심국으로서의 역사적 경험과 그 이론적 근거였던 조선중화사상을 통해 상호 투쟁하는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변방의식을 탈피하기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또한 조선말기 양반 사대부의 퇴조에 따라 새로운 사회 세력이자 문화집단으로 성장한 중인계층의 독특한 문화를 탐구하고, 소개했다.
이 책은 시대에 따라 전개되는 조선왕조의 역동적인 자기 극복 모습을 단계적으로 밝혀냄으로써,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성론, 사대주의론, 당파성론, 문화적 비독창성론 등의 허구성을 밝혔으며, 나아가 지식기반 문화대국 조선의 전통이 새로운 시대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한국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정옥자 교수는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이 우리의 뿌리를 밝히는 작업으로서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비춰 보는 거울로서 앞으로 다가오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은 다가오는 미래에 또 하나의 문화대국을 이룩해야 한다는 꿈을 담은 희망의 메시지다.

식민사관의 극복. 조선왕조를‘문화’코드로 재조명하다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는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왜곡되고 오류가 심한 부분이다. 이는 조선왕조가 망국으로 끝맺고, 그 뒤 우리의 현실이 고난과 질곡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제는 한국 침략과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를 진행해왔다.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사 발전 과정을 부정하고, 한국사에서 타율적이고 정체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한 것이다. 일제가 조선을 이씨들의 왕조라 해서 ‘이조’(李朝)라고 부른 데서도 일제의 제국주의 역사관, 전쟁사관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으며, 조선의 역사와 관련해 사색당쟁론(四色黨爭論), 사대주의론(事大主義論), 문화적 비독창성론 등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조선 역사에서 사색당쟁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대부분 양당체제를 통해 견제와 균형, 부정부패 방지 등을 도모해 왔다고 주장한다. 또 전통 시대에 외교의 한 형태로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던 ‘사대’는 있었지만 ‘사대주의’는 없었고,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문화를 창조해 낸 예 또한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으므로 문화적 비독창성도 허구라고 말한다.
조선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문(文)을 중시하던 나라였다. 국가의 기본 방향을 도덕적 문화국가로 설정해 예치(禮治)를 행하면서 동아시아의 문화 중심국으로 확고한 위상을 다졌다. 또 법에 의한 강제보다는 교화를 통해 자율성을 제고하는 덕치(德治)를 이상으로 왕도(王道)정치를 지향했다. 다시 말해 “조선은 칼을 든 무사의 나라가 아니라 붓을 든 선비의 나라였고, 힘으로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성에 기반을 둔 논리로써 통치하는 평화 지향의 문치주의 국가였다.”
한마디로 조선은 우리 역사상 가장 인간다운 삶을 성취한 시대였으며, 현대 물질주의 사회와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한 사회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오늘날 공리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이해관계가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 있는 것과 달리 의리(義理)와 명분(名分)을 시대의 가치기준으로 삼았으며,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았고, 상공업 사회가 되어 물질문명의 한계점에 도달해 있는 오늘날에 비해 자급자족하는 농업 사회였던 것이다.

선비정신,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할 희망적 담론

조선시대의 지식인 ‘선비’는 오늘날의 왜소한 지식인과 곧잘 비교된다. 특히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 불요불굴의 정신력, 청정한 마음가짐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선비상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려 518년 동안 이어진 조선왕조를 지탱한 힘의 원천이었던 선비는 한 시대를 이끌어 간 지식 생산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핵심 세력이었다.
조선시대에 선비가 부상한 것은 건국과 궤를 같이한다. 고려 말 불교의 세습화, 부의 축적, 권력화, 귀족화 등의 부작용을 경험한 조선은 건국 초부터 문치주의를 표방하고 지식에 기반을 둔 문화국가를 지향했는데, 바로 그러한 국가를 만들어 간 대표적 지식인이 선비였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지식과 교양을 갖춘 인문학도로, 학문과 예술을 겸수해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인간형을 추구했다. 이들의 특징적인 면모는 일관주의(一貫主義)에서 잘 나타나는데, 일관된 가치 지향과 행동 규범인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이념이 선비의 앎과 행동을 규정했다. 이 일관성은 세력에 따라 변화하는 기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았으니, 지조와 절개는 선비로서의 징표 같은 것이었다. 그 밖에 여러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학행일치(學行一致)의 방향성이다. 선비들은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그 배움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실천 단계에서 가장 중요시되던 것이 의리(義理)와 명분(名分)이었다. 그러나 의리를 지키되 인정(人情)과 조화시키려고 애를 썼다. 의리만을 따지면 세상살이가 삭막하기 쉽고, 인정만을 베풀면 기준이 없이 혼란스러워지므로 의리와 인정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는 균형감을 중시한 것이다.
이 같은 의리와 명분을 핵심으로 하는 선비정신은 선비들의 가치이자 조선왕조가 추구하던 당대의 공동가치였고, 선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지침이었다. 그리고 그 전형은 바로 ‘청백리’(淸白吏)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청백리는 곧 선비의 이상적인 역할 모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선비’란 자기 수양 위에서 공동체에 헌신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태도, 인정과 의리,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품격아라고 하며, 한마디로 말하면 ‘맑음’의 정신이라고 결론짓는다.
식민사관의 강력한 중독성과 최면효과에도 왜곡되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 역사와 전통의 마지막 보루 선비정신! 저자는 이 선비정신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로서 다가오는 평화와 문화의 시대에 고품격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며, 그래서 가장 주목할 만한 희망적 담론이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이러한 선비정신이 전 분야에서 빛을 발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회 주도층에는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선비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렵겠지만 분야마다 필요한 만큼 적용한다면, 이를테면 관료사회가 공적인 것을 먼저 하고 사적인 것을 뒤에 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실현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선진화된 나라가 될 것이다.

조선중화사상, 조선 문화 자존의식의 발로다!

조선중화사상은 조선후기의 시대정신이자 문화자존의식이었다. 조선후기는 양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문치주의를 더욱 강화해 문화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한 평화의 시대였다. 17세기가 국가 재건기라면, 18세기는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운 문예부흥기였던 것이다. 특히 정조시대 규장각은 그 극점으로 문화전성기를 구가하는 구심점이었다.
여기서 ‘중화’(中華)란 인륜을 중요시하는 유교문화를 담지하고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용어다. 따라서 유교문화의 중심이 조선으로 이동해서 조선이 바로 유교 문명권의 중심이라고 인식하고, ‘조선이 바로 중화’라고 자부하던 문화자존의식을 ‘조선중화사상’이라고 한 것이다.
조선에서 중화사상은 전기에는 소중화(小中華)의식으로 나타났다. 소중화의식에 따르면 조선은 중화문화의 정수를 지닌 문화국가였고, 단지 그 규모에서 중국보다 작은 국가였을 뿐이다. 그런데 16세기 말 일본과 왜란을 치르고, 17세기 전반에는 호란을 겪는 등 40년 간격으로 두 번의 세계대전을 당하고 나서 명이 멸망하는 상황에 이르자, 이제 유교문화의 정통성은 조선에 있으므로 조선이 곧 중화이고, 조선의 문화가 중화의 문화라는 조선중화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조선중화주의는 주(周)나라를 존중하자는 공자의 춘추대의에서 출발한 존주론(尊周論)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존주론의 입장에서 보면 ‘존주’(尊周)의 대상이 주나라에서 명나라, 조선으로 변화한 것인데, 이러한 관념은 조선을 동아시아의 문화 중심국에 위치시킴으로써 오랑캐의 침략으로 상처받은 당시 조선의 자존심을 치유하고, 자국의 문화전통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조선후기의 지식인은 조선중화주의에 의거해 자국의 문화 수준에 깊은 자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조선중화주의는 18세기 문예부흥의 추진력으로 작동해서 조선 고유문화 창달에 기여했고,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에는 재야 유림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위정척사사상의 근거가 되었으며, 이후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처럼 조선이 문화국가로 거듭나면서 문화 중심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그 자부심으로 조선 고유문화를 이룩한 문예부흥의 과정을 심도 있게 살펴봄으로써, 일제에 의한 망국과 6ㆍ25전쟁 등으로 상처받은 국민적 자부심을 회복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오늘날 상호 쟁투하는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평화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데 유효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중인, 역사의 흐름을 바꾼 새로운 사회세력이자 문화집단이다

‘중인’(中人)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계층이다. 좁게는 역관ㆍ의관ㆍ율관ㆍ산관ㆍ화원 등 기술직 중인을 말하는데, 오늘날로 보면 통역사ㆍ의사ㆍ법관ㆍ회계사ㆍ화가에 해당한다. 범위를 더 넓히면 서울 지역의 아전과 서얼을 포함한다. 지금으로 보면 전문직과 말단 공무원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인들은 신라시대 이후 격변기 때마다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은 중요한 신분계층이었다. 저자는 중인들이 각 시대에 걸쳐 사회변혁의 주역이었으며, 새로운 국가를 열었던 주체 세력이었다고 말한다.
조선후기 중인계층은 사대부에 버금가는 차지식층으로, 조선말기에 이르면 신라 말 고려 초의 육두품과 고려 말 조선 초의 향리층에 비견되는 독특한 존재감을 갖는다. 최치원(崔致遠)ㆍ최언위(崔彦爲)ㆍ최승우(崔承祐) 등 경주 최씨로 대표되는 신라 말의 육두품이 신라 사회의 골품제도에 묶인 한계인으로서 당나라 유학으로 탈출구를 마련해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는 데 참모 역할을 담당했듯이, 이제현(李齊賢)ㆍ이곡(李穀)ㆍ이색(李穡)ㆍ정도전(鄭道傳) 등 고려 말의 향리층은 말폐현상을 드러낸 불교에 대체되는 신학문인 성리학을 연마해 그 사상을 건국이념으로 하는 조선왕조를 건설하는 데 한목을 담당했다.
이후 중인은 조선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해체된 사회를 재건하는 상황에서 성리학적 명분과 질서를 강화하면서 17세기에는 사회계층으로서의 존재를 분명히 했다. 또 이들의 활약은 매우 두드러져 18세기에는 위항학문(委巷學問)운동 등 신분상승운동을 벌였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근대화운동 등 정치적 결사로까지 나아가면서 사대부를 대체하는 사회변혁 세력으로 결집하는 등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문집, 시집, 전기 등을 발간하는 등 양반 사대부 문화와 구별되는 개성 있는 중인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같은 조선시대 중인계층의 형성과 성장, 신분상승운동, 양반 사대부에 버금가는 사회계층으로서의 특수성은 조선왕조의 자기 변혁 과정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새로운 시대사상으로 부상하던 북학사상이 사회적으로 저변 확대되면서 중인층의 성장과 맞물려 있고, 다시 개화사상으로 전환되면서 개화운동의 전위대로서 중인계층의 역할이 주목된다고 말한다. 비록 이들이 새 시대를 열 만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기도 전에 일제의 강점으로 다음 시대를 여는 시대적 과제를 다하지 못한 채 일제의 정책에 함몰되고 말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가장 각광받는 전문직 종사자들로서 일제시대에는 문화운동의 기수로, 다시 테크노크라트로 변신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라고 제언한다.
사대부가 이룩한 문화 전성기를 지나면서 조선사회의 역동적 자기 극복의 현상으로 나타난 중인계층의 성장과 그 문화는 우리나라 왕조 교체기마다 나타난 차지식층의 대두와 다음 시대에 대한 전망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 작가 소개

저 : 정옥자

정옥자는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인문대학 국사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유네스코 문화분과위원회 위원,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문제 자문위원회 위원,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서평위원회 위원장, 행정안전부 국새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4년 비추미여성대상 별리상(교육ㆍ연구개발 부문), 2007년 국무총리 공로상, 2010년 민세상(학술부문)을 수상했으며, ‘2011년 자랑스러운 서울대 사학인’으로 선정되었다. 또 2012년에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조선후기 지성사』,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역사에서 희망읽기』,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연구』, 『조선후기 중인문화연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조선시대 문화사』(공저), 『한국의 리더십 선비를 말하다』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1장 | 조선왕조의 기본성격
머리말
1 우리 역사를 보는 눈
2. 조선시대 이해의 걸림돌 식민사관의 극복
3. 조선왕조의 시기구분
맺음말

2장 |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선비정신
머리말
1. 선비의 수기: 무엇을 공부했나?
2. 선비의 치인: 어떻게 활동했나?
3. 선비의 가치지향: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안으로 갖는 마음가짐
4. 선비의 멋: 어떻게 놀았나?
5. 선비의 좌절과 종결: 고난의 시기에 어떻게 대처했나? 선비의 마지막은?
6. 선비정신의 관료 청백리: 바람직한 관리의 역할모델은?
7. 청백리의 예화: 세종 대의 황희·맹사성·유관
맺음말

3장 | 조선중화사상의 성립과 전개 과정
머리말
1. 시대배경
2. 대명의리론과 대청복수론
3. 조선중화주의와 대보단
4. 존주론의 정리와 대보단 향사 인물
5. 존주론 → 존화론 → 위정론의 실제
6. 척사론의 역사적 전개 과정
맺음말

4장 | 조선왕조의 문예부흥: 정조와 규장각
머리말
1. 정조의 생애
2. 정조의 사상적 지향
3. 왕권강화를 위한 장치
4. 새로운 사회경제정책
5. 규장각
맺음말

5장 | 중인계층의 성장과 그 문화
1. 총론
2. 중인명칭의 유래
3. 중인계층의 구성과 신분상승운동
4. 위항문학운동의 정점 옥계시사
5. 중인계층의 저작활동
6. 중인계층의 근대적 역할
7. 결론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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