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책 소개
"책에서 말한 바가 요즘 학자들이 고질병에 적중했으니, 그들은 반드시 나를 죽이고 싶겠지.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태우려 했으니, [분서]라는 책제목은 응당 불태워 없애야 하고 남겨두면 안 되는 사정을 말한 것이다." [분서]의 서문에서 탁오는 작명의 이유를 위와 같이 셜명한다. [분서]는 봉건의 폐단이 켜켜이 누적되어 더 이상 사회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던 명대 말기에 명확한 논조로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펼쳐 보인 책이다.
서신. 잡문. 역사평론. 시가 등 다양한 문체를 구사하며 뛰어난 위트와 문학감각을 보여주었고, 반봉건. 반전통. 반도학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군림한다는 데 지금까지 이의가 없다.
탁오는 책에서 이학의 기반이 되는 성현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하고, 주체적인 의식과 아울러 평등사상을 고취시켰으며, 근대적 인문주의로 일컬을 수 있는 계몽사상의 발휘에 온 힘을 다한다. 봉건적인 교조와 예교의 속박은 탁오가 평생을 두고 거부했던 투쟁대상이었고, 치열한 구도정신과 열정으로 이뤄낸 지식의 세계는 한마디로 광대무변 그 자체였다.
▣ 작가 소개
원래 이름은 제지, 호는 탁오이다. 조상 중에는 페르시안 만을 오가며 무역을 하다가 색목녀를 아내로 맞거나 이슬람교를 믿은 이도 있었지만, 이지 본인은 중국의 전통문화 안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훗날 노장과 선종, 기독교까지 두루 섭렵한 이력으로 인해 그의 사상은 중국 근대 남방문화의 결정체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는 26세 때 거인에 합격해 하남. 남경. 북경 등지에서 줄곧 하급 관료생활을 하다가 54세 되던 해 운남의 요안지부를 끝으로 퇴직했다. 이지는 40세 전후 북경의 예부사무로 근무하던 중 왕양명과 왕용계의 저작을 처음 접한 뒤 심하에 몰두했다. 나이가 들어 불교에 심취하고는 62세에 정식으로 출가해 절에서 기했다. 그는 유불선의 종지가 동일하다고 인식했고, 유가에 대한 법가의 우위를 주장했으며, 소설과 희곡 같은 통속문화의 가치를 긍정하는 평론 활동을 폈다. 유가의 전통관념에 도전하는 [장서]를 집필했고, 공자가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경전을 해설한 [사서평]을 출간했으며, 선진 이래 줄곧 관심 밖에 있던 [묵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도 했다. 이렇듯 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하고 송명이학의 위선을 폭로한 그에게 세인은 양쪽으로 갈려 극단적은 평가를 부여했다. 결국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있던 중 7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저작들은 명.청대의 가장 유명한 금서였지만 대부분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빌린 수많은 위작 또한 횡행하고 있다.
▣ 신문 서평
내 책을 불태워라" 당당했던 사상가
‘탁오’라는 호로 더 알려진 이지(李贄·1527∼1602·사진)의 삶은 여러모로 허균(許筠·1569∼1618)과 닮았다.
명나라 말기의 손꼽히는 사상가였던 이지는 복건성의 천주에서 태어났다. 조상 가운데 페르시아만을 오가며 무역을 하다가 이슬람교에 귀의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의 집안은 개방적이었다. 수도 남경과 떨어져 있는 지리적 여건도 그가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요인이 됐다. 이지는 노장사상, 선불교, 기독교까지 두루 섭렵했다.
조선 중기 문인인 허균은 강릉 태생이다. 허성, 허봉, 허난설헌 등 쟁쟁한 형과 누이를 둔 그는 아버지와 형들이 당쟁의 화를 당하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뜬다. 여기에 서자 출신인 스승 이달은 개혁 사상을 심어주었다.
이지가 수호전의 서문(‘충효수호전서’)을 쓰고 허균이 수호전을 본뜬 ‘홍길동전’을 저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 이단을 자처했던 이지는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있던 중 자살로써 삶을 마감했다. 사회개혁을 꿈꾸었던 허균은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 반란을 도모하다 참형을 당했다.
둘은 생전에 나란히 시문집을 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이 오래 전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들은 각각 ‘분서’와 ‘성소부부고’라고 이름 붙였다. ‘분서(焚書)’는 ‘태워없애야 할 책’이라는 뜻이고 ‘부부고(覆부藁)’는 된장독이나 덮을 하찮은 원고(‘성소’는 허균의 호)라는 뜻이다.
이지 사후 다행히 ‘분서’는 불태워지지 않았다. 대신 명·청대 내내 금서목록 1호로 지목됐다. 중화민국이 들어서야 비로소 해금됐다. 몇해전에는 국내에 분서 내용을 발췌한 번역본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총서 59, 60권으로 출간된 ‘분서’는 국내 첫 완역본이다. 형식상으로는 서간문, 수필, 논설류 등을 모은 것으로 일반적인 문집류와 같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여느 유학자들의 글과 크게 다르다. 특히 수필, 논설 등의 산문에서 이지의 사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불교 관련 글이 많이 실려있는 게 눈에 띈다. 공맹사상, 주자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자주 보인다. ‘심경해설’, ‘염불에 관한 문답’, ‘육바라밀 풀이’, ‘관음의 질문’ 등은 불교에 대한 깊은 조예를 보여준다. ‘부부론’, ‘귀신론’, ‘동심론’ 등은 당시로서는 이단적인, 오늘날에 봐서는 매우 선진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는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중략)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동심설’)
완역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는 한밭대 김혜경 교수(중문학)는 이지의 사상을 ‘통합적 사유와 비판정신’으로 요약한 뒤 그를 ‘자유와 다양성을 사랑한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라고 평했다. 각 2만5천원, 3만원.[2004.7.17 경향신문 조운찬 기자]
"책에서 말한 바가 요즘 학자들이 고질병에 적중했으니, 그들은 반드시 나를 죽이고 싶겠지.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태우려 했으니, [분서]라는 책제목은 응당 불태워 없애야 하고 남겨두면 안 되는 사정을 말한 것이다." [분서]의 서문에서 탁오는 작명의 이유를 위와 같이 셜명한다. [분서]는 봉건의 폐단이 켜켜이 누적되어 더 이상 사회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던 명대 말기에 명확한 논조로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펼쳐 보인 책이다.
서신. 잡문. 역사평론. 시가 등 다양한 문체를 구사하며 뛰어난 위트와 문학감각을 보여주었고, 반봉건. 반전통. 반도학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군림한다는 데 지금까지 이의가 없다.
탁오는 책에서 이학의 기반이 되는 성현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하고, 주체적인 의식과 아울러 평등사상을 고취시켰으며, 근대적 인문주의로 일컬을 수 있는 계몽사상의 발휘에 온 힘을 다한다. 봉건적인 교조와 예교의 속박은 탁오가 평생을 두고 거부했던 투쟁대상이었고, 치열한 구도정신과 열정으로 이뤄낸 지식의 세계는 한마디로 광대무변 그 자체였다.
▣ 작가 소개
원래 이름은 제지, 호는 탁오이다. 조상 중에는 페르시안 만을 오가며 무역을 하다가 색목녀를 아내로 맞거나 이슬람교를 믿은 이도 있었지만, 이지 본인은 중국의 전통문화 안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훗날 노장과 선종, 기독교까지 두루 섭렵한 이력으로 인해 그의 사상은 중국 근대 남방문화의 결정체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는 26세 때 거인에 합격해 하남. 남경. 북경 등지에서 줄곧 하급 관료생활을 하다가 54세 되던 해 운남의 요안지부를 끝으로 퇴직했다. 이지는 40세 전후 북경의 예부사무로 근무하던 중 왕양명과 왕용계의 저작을 처음 접한 뒤 심하에 몰두했다. 나이가 들어 불교에 심취하고는 62세에 정식으로 출가해 절에서 기했다. 그는 유불선의 종지가 동일하다고 인식했고, 유가에 대한 법가의 우위를 주장했으며, 소설과 희곡 같은 통속문화의 가치를 긍정하는 평론 활동을 폈다. 유가의 전통관념에 도전하는 [장서]를 집필했고, 공자가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경전을 해설한 [사서평]을 출간했으며, 선진 이래 줄곧 관심 밖에 있던 [묵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도 했다. 이렇듯 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하고 송명이학의 위선을 폭로한 그에게 세인은 양쪽으로 갈려 극단적은 평가를 부여했다. 결국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있던 중 7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저작들은 명.청대의 가장 유명한 금서였지만 대부분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빌린 수많은 위작 또한 횡행하고 있다.
▣ 신문 서평
내 책을 불태워라" 당당했던 사상가
‘탁오’라는 호로 더 알려진 이지(李贄·1527∼1602·사진)의 삶은 여러모로 허균(許筠·1569∼1618)과 닮았다.
명나라 말기의 손꼽히는 사상가였던 이지는 복건성의 천주에서 태어났다. 조상 가운데 페르시아만을 오가며 무역을 하다가 이슬람교에 귀의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의 집안은 개방적이었다. 수도 남경과 떨어져 있는 지리적 여건도 그가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요인이 됐다. 이지는 노장사상, 선불교, 기독교까지 두루 섭렵했다.
조선 중기 문인인 허균은 강릉 태생이다. 허성, 허봉, 허난설헌 등 쟁쟁한 형과 누이를 둔 그는 아버지와 형들이 당쟁의 화를 당하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뜬다. 여기에 서자 출신인 스승 이달은 개혁 사상을 심어주었다.
이지가 수호전의 서문(‘충효수호전서’)을 쓰고 허균이 수호전을 본뜬 ‘홍길동전’을 저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 이단을 자처했던 이지는 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있던 중 자살로써 삶을 마감했다. 사회개혁을 꿈꾸었던 허균은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 반란을 도모하다 참형을 당했다.
둘은 생전에 나란히 시문집을 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이 오래 전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들은 각각 ‘분서’와 ‘성소부부고’라고 이름 붙였다. ‘분서(焚書)’는 ‘태워없애야 할 책’이라는 뜻이고 ‘부부고(覆부藁)’는 된장독이나 덮을 하찮은 원고(‘성소’는 허균의 호)라는 뜻이다.
이지 사후 다행히 ‘분서’는 불태워지지 않았다. 대신 명·청대 내내 금서목록 1호로 지목됐다. 중화민국이 들어서야 비로소 해금됐다. 몇해전에는 국내에 분서 내용을 발췌한 번역본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총서 59, 60권으로 출간된 ‘분서’는 국내 첫 완역본이다. 형식상으로는 서간문, 수필, 논설류 등을 모은 것으로 일반적인 문집류와 같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여느 유학자들의 글과 크게 다르다. 특히 수필, 논설 등의 산문에서 이지의 사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불교 관련 글이 많이 실려있는 게 눈에 띈다. 공맹사상, 주자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자주 보인다. ‘심경해설’, ‘염불에 관한 문답’, ‘육바라밀 풀이’, ‘관음의 질문’ 등은 불교에 대한 깊은 조예를 보여준다. ‘부부론’, ‘귀신론’, ‘동심론’ 등은 당시로서는 이단적인, 오늘날에 봐서는 매우 선진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는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중략)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동심설’)
완역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는 한밭대 김혜경 교수(중문학)는 이지의 사상을 ‘통합적 사유와 비판정신’으로 요약한 뒤 그를 ‘자유와 다양성을 사랑한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라고 평했다. 각 2만5천원, 3만원.[2004.7.17 경향신문 조운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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