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그들은 왜 조선을 찾아왔는가
그들의 여행엔 어떤 숨은 목적이 있었을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조선 및 식민지근대 탐방기를
철저한 사료 검토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되살렸다
청나라 사행들이 벌인 조선에서의 은사냥
정묘호란이 끝나고 기어코 한양 상행을 감행한 일본 사행
36명 네덜란드인이 펼친 조선에서의 혹독한 생존기
좌파 작가 잭 런던은 왜 한국인을 보고 살인충동을 느꼈나
유럽 몰락 귀족에게 기회의 땅이 된 대한제국
일본 문화재학 대부가 조선 고적조사를 벌인 진짜 이유
규장각 교양총서 6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조선 땅 밟은 외국인 여행기록 유형별 망라
규장각 교양총서 제6권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조선초기부터 근대시기까지 조선을 다녀간 이방인들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세종 시기 명나라 칙사들부터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사행과 같은 국가간 사신 왕래들부터 하멜로 대표되는 표류, 학술조사 차 배를 타고 건너온 학자들의 여행까지 다양한 형태의 여행기록을 전문가들의 꼼꼼한 사료검토와 풍부한 상상력 및 관련된 도판으로 입체적으로 다루었다.
이방인들에게 조선과 식민지 근대는 어떤 나라였을까?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조선에 와서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그들의 기록엔 우리의 어떤 모습이 그려져 있을까? 이번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에서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인조차 함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되었고, 합법적으로 우리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의 범위도 제한되어 있었지만, 조선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외교와 문화 전파의 통로이기도 했던 중국의 칙사와 일본 통신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독해하여 명나라와 청나라 칙사들의 유형과 방문 행태, 그리고 조선 측의 접대 방식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중화 체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면, 임진왜란 직후에 굳이 한양에 입성하겠다는 일본 사신 일행에 대해 책임지고 접대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적국에 대해서도 예를 다하는 조선의 문화를 발견하게 된다.
조선이라는 ‘엘도라도’에 은 사냥 오기 위해 막대한 뇌물까지 바쳤던 청 환관들
무엇보다 조선을 가장 많이 다녀간 이들은 중국 사신들이었다. 학계에서는 1392년부터 1634년까지 명이 사신을 파견했던 횟수를 188회라고 추산하며, 청은 많이 잡아 245회 칙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당연히 국왕을 만나 외교업무만 보고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조선 땅을 여행했으며, 거기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교류의 반대편에는 임진왜란처럼 적대적인 전쟁 상황에서 조선을 찾은 이방인의 모습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로 티베트, 미얀마군까지 조선에 들어왔음을 알 수는 있으되 그들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적국의 군인 신분으로 조선 땅을 밟아 귀화한 김충선을 비롯한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확인할 따름이지만, 그 행간에서 성리학적 화이론으로 묶인 동아시아 삼국 간의 전쟁이 갖는 복잡한 면모를 맛보게 된다.
일반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은 훨씬 세밀하고, 지배층에 대한 반감 훨씬 커
17세기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 이외의 이방인도 눈에 띈다. 방문 목적이 아닌 풍랑으로 인한 표류로 조선 땅을 밟게 된 하멜 일행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인 하멜 일행은 이를테면 조선인 최부 일행이 제주 바다를 못 넘어가고 중국 연안 방향으로 떠내려간 것과 반대로,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항해하다가 폭풍우에 휘말려 제주도로 떠내려왔다. 최부 일행이 왜구의 혐의를 벗고 한양으로 돌아오기까지 반년이 걸린 데 비해, 하멜 일행은 조선 정부의 감독과 관리를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또한 최부 일행은 전원이 생존하여 귀향했으나 하멜 일행은 절반 정도만 귀향했다는 점이 다르다. 하멜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래는 본문에 나오는 몇몇 대목을 정리한 내용이다.
19세기 중엽 천주학이 금지된 조선에 죽을 각오로 몰래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에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문화권에 비교적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 사회의 속살을 만난 이방인이 가질 수 있는 다층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유럽 중심적인 시각에서 조선의 정치제도와 문화는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따뜻한 가족 사랑과 이웃의 정을 보여주는 이교도의 생활 풍습은 기독교도인 유럽인으로서 당혹스러운 자기 성찰의 계기였다.
1884년 조선이 세계 각국에 문호를 개방해 서양인의 입국과 거주가 허가된 뒤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방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외교관은 물론이고 성직자, 기자, 기업인, 의사, 군인, 학자, 여행가, 사진가, 상인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서로 다른 깊이로 조선 사람과 문화를 만났다. 더욱이 일본에 강제병합된 후에는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은 물론이고 학생이나 문인,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조선을 다녀갔고, 식민 통치를 위한 각종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고자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듯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은 상당수였고, 이들이 남긴 기록물 또한 방대하다. 백과사전류, 동양학서지, 여행안내서, 지도첩, 한국 방문자들의 전기, 선교활동, 선교문학 등 종류 또한 다양하다.
다양한 배경과 여행 목적 지닌 사람들의 기록 선별
이 책에서는 개항 이후 조선에 온 이방인 중에서 이사벨라 비숍여사처럼 일찍이 알려진 인물을 제외하고 다양한 배경과 여행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록을 선별했다. 조선 정부가 채용한 최초의 서양인이자 거주가 허용된 최초의 서양인인 독일 사람 묄렌도르프의 사례를 통해 19세기 유럽을 강타한 동양학 열풍의 배경을 알게 된다. 동양 식민지와 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엘리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출세를 보장하는 기회의 땅이었던 것이다.
1880년대부터 약 30년간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남긴 100권이 넘는 박물지적 저서 중 대표격은 카를로 로제티의 저서 『꼬레아 꼬레아니』이다. 그는 1902년 불과 8개월간 주한 이탈리아 총영사로 근무했을 뿐인데 수백 쪽에 달하는 한국 종합안내서를 발간했다. 이 『꼬레아 꼬레아니』를 통해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근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대한제국 정부가 남긴 여러 면모를, 그러나 오늘날 없어져 볼 수 없는 대한제국 수도 서울의 풍경을 읽어볼 수 있다.
“한 마리당 10엔 주겠다”하자 결혼식 하객과 신랑까지 나서서 북새통
우리 땅에서 멸종하고 탈취된 식물과 동물의 종류와 모양 그리고 그들과 얽혀 산 조선의 풍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은 스웨덴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의 『한국의 야생동물지』에서다. 식민지와 미개발된 지역의 자연을 자신들이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조선총독부의 협조를 받아 관찰활동과 조사 연구를 수행하고, 수백 가지의 동식물 표본과 박제를 가지고 간 베리만의 활동은 제국주의적 박물학 연구의 생생한 사례다.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열다섯 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문화유산 조사보고서인 『조선고적도보』를 남긴 일본의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의 활동은 더욱 체계적이고 방대하다. 이 보고서는 1902년부터 1934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조선 여행과 답사를 기록하는 성실한 조사의 결과이며 6300여 장의 사진을 실은 귀중한 자료의 보고寶庫이지만, “이 문화를 일구고 가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지 않은 사진 (…) 다만 다스리게 된 땅의 ‘물건’을 재고 기록한 엄정한, 그렇지만 차가운 눈이 있을 따름”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하다.
진보작가 잭 런던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와 자살하고 싶은 욕구”에서 갈등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모든 서양인이 공유하던, 나아가 조선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개화지식인들까지 적극 동참한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사회진화론이다. 잭 런던처럼 당대 체제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의 여행기에서 약소민족에 대한 연민은커녕 강자의 경멸어린 시선을 목격하게 되면,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법칙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진 뿌리 깊은 유럽 중심주의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회진화론은 나라를 잃어버린 한국의 ‘전통문화’에 주목하거나 그것을 근대화와 대조시키는 인식 틀에서도 작용한다.
강제병합 직후에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일제의 동화 정책으로 말살되어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존할 의도에서 글을 쓰고 다시 방문하여 무성영화까지 촬영했다. 베버 신부의 이러한 선의와 열정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이긴 하지만, 식민지란 우승열패의 귀결일 뿐이라고 설파하는 제국주의적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아니었다.
벽안의 폭력성에 가슴을 가려야 했던 조선 아낙네
이방인의 눈으로 조선을 관찰하는 행위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과 지도, 사진 같은 시각 자료에 잘 구현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그 사례로 일본과 중국에서 그린 조선 지도와 구한말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발행된 여행 기념 사진엽서를 다뤘다. 줄기에 매달린 오이 형상에서 근대의 정교한 지도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이 그린 조선 모습의 변천을 쫓아가다보면 조선이 동아시아와 세계 전체라는 상상적 공간 속에서 부여받은 위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심상지리의 역사를 알게 된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풍속과 산하, 도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는 기록과 시선이 교차하는 이미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것이 대중적으로 향유·소유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알려준다. 사진엽서는 그 탄생과 활용부터 조선을 미개한 사회로 보거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는 이방인의 시선 아니면 지배와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역사적 맥락과 무관한 방식으로 피사체가 선택되거나 배제되고 때로는 연출이 작용하기도 하는 사진엽서 속의 사진은 그야말로 근대 초 조선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공장 같은 매체였다.
▣ 주요 목차
규장각 교양총서를 발간하며
머리글 | 조선을 만난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기록
1장 권력과 자존심과 탐학의 여행길
- 중국 칙사들의 조선 사행 | 한명기·명지대 교수
2장 정묘호란이 끝나자마자 조선에 와서 상경한 일본인들
- 17세기 초 일본 관료들이 본 조선 |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
3장 군인, 신부, 포로, 조선 땅에 발을 내딛다
- 귀화인 김충선과 천만리의 조선 생활 |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4장 36명 네덜란드인의 조선 생존기
- 하멜 일행의 표류기 |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5장 줄기에 매달린 오이 형상에서 근대의 정교한 지도까지
- 이웃 나라가 그려낸 조선의 이미지 | 오상학 제주대 교수
6장 프랑스 이방인의 조선 관찰기
- 극동지역에 파견된 선교사 이야기 | 조현범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7장 “나는 한국에서 살인충동을 느꼈다”
- 좌파 작가 잭 런던이 본 대한제국의 몰락 | 조형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8장 유럽 몰락 귀족이 조선 관료가 된 까닭
- 묄렌도르프, 조선에서 참판이 되다 | 김현숙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전임연구원
9장 이탈리아인의 독특한 오리엔탈리즘
-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가 담아낸 서울 | 전우용 전 서울대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
10장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에 대한 인상비평
- 사진과 영상물로 남긴 베버 신부의 조선 여행 기록 | 김태웅 서울대 교수
11장 일본 문화재학 대부의 ‘시선視線의 정치학’
-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고적 조사 | 목수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12장 스웨덴 동물학자의 조선생물 탐사기
스텐 베리만의 탐험과 수집의 여행 | 문만용 한국과학기술원 연구교수
13장 사각형 종이 속에 담긴 욕망의 이미지
100년 전 사진엽서로 읽는 조선이란 나라 | 김수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그들은 왜 조선을 찾아왔는가
그들의 여행엔 어떤 숨은 목적이 있었을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조선 및 식민지근대 탐방기를
철저한 사료 검토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되살렸다
청나라 사행들이 벌인 조선에서의 은사냥
정묘호란이 끝나고 기어코 한양 상행을 감행한 일본 사행
36명 네덜란드인이 펼친 조선에서의 혹독한 생존기
좌파 작가 잭 런던은 왜 한국인을 보고 살인충동을 느꼈나
유럽 몰락 귀족에게 기회의 땅이 된 대한제국
일본 문화재학 대부가 조선 고적조사를 벌인 진짜 이유
규장각 교양총서 6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조선 땅 밟은 외국인 여행기록 유형별 망라
규장각 교양총서 제6권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조선초기부터 근대시기까지 조선을 다녀간 이방인들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세종 시기 명나라 칙사들부터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사행과 같은 국가간 사신 왕래들부터 하멜로 대표되는 표류, 학술조사 차 배를 타고 건너온 학자들의 여행까지 다양한 형태의 여행기록을 전문가들의 꼼꼼한 사료검토와 풍부한 상상력 및 관련된 도판으로 입체적으로 다루었다.
이방인들에게 조선과 식민지 근대는 어떤 나라였을까?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조선에 와서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그들의 기록엔 우리의 어떤 모습이 그려져 있을까? 이번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에서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인조차 함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되었고, 합법적으로 우리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의 범위도 제한되어 있었지만, 조선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외교와 문화 전파의 통로이기도 했던 중국의 칙사와 일본 통신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독해하여 명나라와 청나라 칙사들의 유형과 방문 행태, 그리고 조선 측의 접대 방식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중화 체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면, 임진왜란 직후에 굳이 한양에 입성하겠다는 일본 사신 일행에 대해 책임지고 접대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적국에 대해서도 예를 다하는 조선의 문화를 발견하게 된다.
조선이라는 ‘엘도라도’에 은 사냥 오기 위해 막대한 뇌물까지 바쳤던 청 환관들
무엇보다 조선을 가장 많이 다녀간 이들은 중국 사신들이었다. 학계에서는 1392년부터 1634년까지 명이 사신을 파견했던 횟수를 188회라고 추산하며, 청은 많이 잡아 245회 칙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당연히 국왕을 만나 외교업무만 보고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조선 땅을 여행했으며, 거기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교류의 반대편에는 임진왜란처럼 적대적인 전쟁 상황에서 조선을 찾은 이방인의 모습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로 티베트, 미얀마군까지 조선에 들어왔음을 알 수는 있으되 그들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적국의 군인 신분으로 조선 땅을 밟아 귀화한 김충선을 비롯한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확인할 따름이지만, 그 행간에서 성리학적 화이론으로 묶인 동아시아 삼국 간의 전쟁이 갖는 복잡한 면모를 맛보게 된다.
일반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은 훨씬 세밀하고, 지배층에 대한 반감 훨씬 커
17세기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 이외의 이방인도 눈에 띈다. 방문 목적이 아닌 풍랑으로 인한 표류로 조선 땅을 밟게 된 하멜 일행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인 하멜 일행은 이를테면 조선인 최부 일행이 제주 바다를 못 넘어가고 중국 연안 방향으로 떠내려간 것과 반대로,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항해하다가 폭풍우에 휘말려 제주도로 떠내려왔다. 최부 일행이 왜구의 혐의를 벗고 한양으로 돌아오기까지 반년이 걸린 데 비해, 하멜 일행은 조선 정부의 감독과 관리를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또한 최부 일행은 전원이 생존하여 귀향했으나 하멜 일행은 절반 정도만 귀향했다는 점이 다르다. 하멜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래는 본문에 나오는 몇몇 대목을 정리한 내용이다.
19세기 중엽 천주학이 금지된 조선에 죽을 각오로 몰래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에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문화권에 비교적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 사회의 속살을 만난 이방인이 가질 수 있는 다층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유럽 중심적인 시각에서 조선의 정치제도와 문화는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따뜻한 가족 사랑과 이웃의 정을 보여주는 이교도의 생활 풍습은 기독교도인 유럽인으로서 당혹스러운 자기 성찰의 계기였다.
1884년 조선이 세계 각국에 문호를 개방해 서양인의 입국과 거주가 허가된 뒤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방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외교관은 물론이고 성직자, 기자, 기업인, 의사, 군인, 학자, 여행가, 사진가, 상인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서로 다른 깊이로 조선 사람과 문화를 만났다. 더욱이 일본에 강제병합된 후에는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은 물론이고 학생이나 문인,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조선을 다녀갔고, 식민 통치를 위한 각종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고자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듯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은 상당수였고, 이들이 남긴 기록물 또한 방대하다. 백과사전류, 동양학서지, 여행안내서, 지도첩, 한국 방문자들의 전기, 선교활동, 선교문학 등 종류 또한 다양하다.
다양한 배경과 여행 목적 지닌 사람들의 기록 선별
이 책에서는 개항 이후 조선에 온 이방인 중에서 이사벨라 비숍여사처럼 일찍이 알려진 인물을 제외하고 다양한 배경과 여행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록을 선별했다. 조선 정부가 채용한 최초의 서양인이자 거주가 허용된 최초의 서양인인 독일 사람 묄렌도르프의 사례를 통해 19세기 유럽을 강타한 동양학 열풍의 배경을 알게 된다. 동양 식민지와 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엘리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부와 명예와 출세를 보장하는 기회의 땅이었던 것이다.
1880년대부터 약 30년간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남긴 100권이 넘는 박물지적 저서 중 대표격은 카를로 로제티의 저서 『꼬레아 꼬레아니』이다. 그는 1902년 불과 8개월간 주한 이탈리아 총영사로 근무했을 뿐인데 수백 쪽에 달하는 한국 종합안내서를 발간했다. 이 『꼬레아 꼬레아니』를 통해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근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대한제국 정부가 남긴 여러 면모를, 그러나 오늘날 없어져 볼 수 없는 대한제국 수도 서울의 풍경을 읽어볼 수 있다.
“한 마리당 10엔 주겠다”하자 결혼식 하객과 신랑까지 나서서 북새통
우리 땅에서 멸종하고 탈취된 식물과 동물의 종류와 모양 그리고 그들과 얽혀 산 조선의 풍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은 스웨덴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의 『한국의 야생동물지』에서다. 식민지와 미개발된 지역의 자연을 자신들이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조선총독부의 협조를 받아 관찰활동과 조사 연구를 수행하고, 수백 가지의 동식물 표본과 박제를 가지고 간 베리만의 활동은 제국주의적 박물학 연구의 생생한 사례다.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열다섯 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문화유산 조사보고서인 『조선고적도보』를 남긴 일본의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의 활동은 더욱 체계적이고 방대하다. 이 보고서는 1902년부터 1934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조선 여행과 답사를 기록하는 성실한 조사의 결과이며 6300여 장의 사진을 실은 귀중한 자료의 보고寶庫이지만, “이 문화를 일구고 가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지 않은 사진 (…) 다만 다스리게 된 땅의 ‘물건’을 재고 기록한 엄정한, 그렇지만 차가운 눈이 있을 따름”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하다.
진보작가 잭 런던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와 자살하고 싶은 욕구”에서 갈등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모든 서양인이 공유하던, 나아가 조선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개화지식인들까지 적극 동참한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사회진화론이다. 잭 런던처럼 당대 체제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의 여행기에서 약소민족에 대한 연민은커녕 강자의 경멸어린 시선을 목격하게 되면,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법칙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진 뿌리 깊은 유럽 중심주의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회진화론은 나라를 잃어버린 한국의 ‘전통문화’에 주목하거나 그것을 근대화와 대조시키는 인식 틀에서도 작용한다.
강제병합 직후에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일제의 동화 정책으로 말살되어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존할 의도에서 글을 쓰고 다시 방문하여 무성영화까지 촬영했다. 베버 신부의 이러한 선의와 열정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이긴 하지만, 식민지란 우승열패의 귀결일 뿐이라고 설파하는 제국주의적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아니었다.
벽안의 폭력성에 가슴을 가려야 했던 조선 아낙네
이방인의 눈으로 조선을 관찰하는 행위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과 지도, 사진 같은 시각 자료에 잘 구현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그 사례로 일본과 중국에서 그린 조선 지도와 구한말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발행된 여행 기념 사진엽서를 다뤘다. 줄기에 매달린 오이 형상에서 근대의 정교한 지도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이 그린 조선 모습의 변천을 쫓아가다보면 조선이 동아시아와 세계 전체라는 상상적 공간 속에서 부여받은 위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심상지리의 역사를 알게 된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풍속과 산하, 도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는 기록과 시선이 교차하는 이미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것이 대중적으로 향유·소유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알려준다. 사진엽서는 그 탄생과 활용부터 조선을 미개한 사회로 보거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는 이방인의 시선 아니면 지배와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역사적 맥락과 무관한 방식으로 피사체가 선택되거나 배제되고 때로는 연출이 작용하기도 하는 사진엽서 속의 사진은 그야말로 근대 초 조선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공장 같은 매체였다.
▣ 주요 목차
규장각 교양총서를 발간하며
머리글 | 조선을 만난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기록
1장 권력과 자존심과 탐학의 여행길
- 중국 칙사들의 조선 사행 | 한명기·명지대 교수
2장 정묘호란이 끝나자마자 조선에 와서 상경한 일본인들
- 17세기 초 일본 관료들이 본 조선 |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
3장 군인, 신부, 포로, 조선 땅에 발을 내딛다
- 귀화인 김충선과 천만리의 조선 생활 |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4장 36명 네덜란드인의 조선 생존기
- 하멜 일행의 표류기 |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5장 줄기에 매달린 오이 형상에서 근대의 정교한 지도까지
- 이웃 나라가 그려낸 조선의 이미지 | 오상학 제주대 교수
6장 프랑스 이방인의 조선 관찰기
- 극동지역에 파견된 선교사 이야기 | 조현범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7장 “나는 한국에서 살인충동을 느꼈다”
- 좌파 작가 잭 런던이 본 대한제국의 몰락 | 조형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8장 유럽 몰락 귀족이 조선 관료가 된 까닭
- 묄렌도르프, 조선에서 참판이 되다 | 김현숙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전임연구원
9장 이탈리아인의 독특한 오리엔탈리즘
-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가 담아낸 서울 | 전우용 전 서울대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
10장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에 대한 인상비평
- 사진과 영상물로 남긴 베버 신부의 조선 여행 기록 | 김태웅 서울대 교수
11장 일본 문화재학 대부의 ‘시선視線의 정치학’
-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고적 조사 | 목수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12장 스웨덴 동물학자의 조선생물 탐사기
스텐 베리만의 탐험과 수집의 여행 | 문만용 한국과학기술원 연구교수
13장 사각형 종이 속에 담긴 욕망의 이미지
100년 전 사진엽서로 읽는 조선이란 나라 | 김수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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