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서양 고대사를 둘러싼 세계적인 논쟁 그 두 번째 라운드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1120년 이전 청동기 시대 그리스는 이집트나 페니키아로부터 도래한 다나오스나 카드모스 같은 사람들이 세운 왕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마틴 버낼은 『블랙 아테나 I』에서 1800년경까지만 하더라도 서양학계에서 그리스 신화가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역사로서 받아들여졌는데, 이후 역사가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로 몰리게 된 유럽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헬레니즘의 대두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종주의의 부상(浮上). 당대 서양문명의 뿌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헬레니즘이 19, 20세기의 서양인이 보았을 때 인종적으로 열등한 오리엔트인들, 특히 이집트인들의 문화가 미케네 문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말하는 그리스 신화를 더 이상 역사로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버낼은 설명한다.
『블랙 아테나 II』는 그리스 신화의 구체적인 내용뿐만이 아니라, 신화의 내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동지중해권의 히타이트, 페니키아, 이집트 같은 나라들의 문헌 증거와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블랙 아테나 II』는 12장으로 구성된 아주 두툼한 책이다. 너무 오래 전의 역사인데도, 1장부터 12장까지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양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는 지리적으로는 동지중해권 전체, 시기적으로는 청동기 시대(BC 3300년-BC 1100년) 전체를 꿰는 큰 흐름이 무엇인가를 버낼이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농업상의 풍요와 그 풍요를 기반으로 삼은 세련된 이집트 문명이 크레타,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를 포함하는 에게해 문명의 발생·유지·발전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인식이다. 이집트의 밀(小麥)과 이집트의 문화가 동지중해권의 왕궁을 중심으로 한 문명들의 밑받침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버낼의 진정한 천재적 창조성은 수많은 학자들의 개별적이고 흩어져 있는 연구결과들을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나의 긴 이야기로 엮어낸 데에 있다. 사실 버낼이 그 방대한 책의 내용을 자신의 직접적인 연구를 통해 채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버낼의 주장은 1900년경과 20세기 중반에 유럽중심주의가 성할 때 집필활동을 하였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극소수의 학자들인 베라르, 푸카르, 고든, 애스터 같은 선배 역사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자신의 주제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학자들의 연구를 재해석하여 사용한다. 물론 근원적으로는 역사 또는 사료로서 그리스 신화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말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는 1차 사료인 문헌 증거와 고고학, 그리고 자신의 연구에 관련된 논문이나 책들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연구사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고대 오리엔트에 관한 다른 책을 참고하지 않고서도 이 책만으로도 그의 논지를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 문제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어떻게 차이나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부각시킨다.
1991년 『블랙 아테나 II』가 출간된 이후 버낼에 대한 학계의 비판은 격렬해졌다. 이제 그가 미케네 그리스와 이집트 및 레반트 사이의 관계사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 증거라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내놓자 그 증거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논쟁의 장이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랙 아테나 II』를 비평한다면, 그의 방대한 저서 속에 담겨 있는 적지 않은 부분들은 논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 그리스가 동지중해권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버낼 주장의 큰 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박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스탠리 버스틴(1941년 출생)은 『블랙 아테나』가 공헌한 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블랙 아테나』가 결점을 지녔다고 해서, 당대 그리스인들의 역사서술의 신빙성을 보이려는 버낼의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 그리스인의 역사서술을 진지하게 읽어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건성 읽기는 『블랙 아테나』 식의 사료 읽기를 견디어낼 수 없을 것이다. 『블랙 아테나』 식의 사료 읽기 하나만으로도 버낼은 모든 사람들의 감사를 받을 만하다. 또한 그는 그리스 문명의 기원에 관한 의문을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학의 화두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감사를 받을 만하다.” 『블랙 아테나』에는 한 학자의 학문적 진정성과 열정과 꿰뚫어보는 안목과 역사적 진실을 향한 용기가 담겨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저자 마틴 버낼(Martin Bernal)
유대계 영국인으로, 193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1957년, 캠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에 입학한 후 캠브리지대학 동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캠브리지 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중국현대사를 강의하였고, 1972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정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코넬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1987년, 서양 고전 문명에 대한 통념을 뒤흔든 책 『블랙 아테나』제1권(The Fabrication of Ancient Greece 1785~1985)을 출간하였다. 이어 1991년에는 『블랙 아테나』제2권(The Archaeological and Documentary Evidence)을 출간하며 학문적 논쟁을 촉발시켰다. 2001년에는 『블랙 아테나의 답장 : 비평가들에 대한 마틴 버낼의 반론』을 출간하며 논쟁을 더욱 생산적으로 이끌었다. 2006년 『블랙 아테나』제3권(The Lunguistic Argument)을 출간하였고, 『블랙 아테나』제4권(Solving the Riddle of the Sphinx)을 집필하고 있다.
역자 : 오흥식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서양고대사를 전공하고, 1995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투기디데스의 티케(우연)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대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강대, 성균관대, 서울대에서 서양고대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원죄론과 오레스테이아」(『역사와 문화』5, 2002),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탈옥을 거부하게 한 자들」(『서양고전학 연구』24, 2005), 「유럽중심주의의 극복과 사료로서의 그리스 신화」(『서양사론』95, 2007) 등이 있다. 함께 지은 책 『서양고대사강의』(한울 아카데미, 2011, 개정판)와 옮긴 책 『블랙 아테나 I』(소나무, 2006)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과 감사의 글
서론
수정 고대모델을 선호하는 내재적인 근거
이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
각 장의 개요
제1장 왕궁기 이전의 크레타, 기원전 7000~2100년
전파론 대 고립론
기원전 21세기 이전의 크레타
신석기 크레타, 기원전 7000~3300년
전기 청동기시대, 기원전 3300년경~2000년
전기 청동기시대 크레타의 종교
결론
제2장 기원전 3천년기 보이오티아 및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 I
-숭배적·신화적·전설적 증거-
세멜레와 알크메네
보이오티아의 아테네 시市와 아테나 여신
오기고스, 오그, 고그
알랄코메네
치수자 네이트
네이트 대對 세트의 싸움과 아테나 대 포세이돈의 싸움
포세이돈/세트
델포스와 아누비스
멜라이나/네프티스
아레이온과 페가수스
리비아와의 관련성과 말(馬)
노바타이
세트와 포세이돈, 네브티와 넵튠
포세이돈, 틸푸사, 리비아
아르카디아의 텔푸사
네이트/아테나 그리고 네프티스/에리니스
아누키스/옹카
네이트/아테나 그리고 아누키스/옹카
아테나 옹카와 아테나 알랄코메나
아테나 알랄코메나 그리고 알크메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수메르 원형과 셈 원형
헤라클레스의 이집트 기원
헤라클레스, 헤리셰프 그리고 레셰프
헤라클레스, 콘수, 슈
헤라클레스와 중왕국의 파라오
치수자로서의 헤라클레스
보이오티아에 있었던 중왕국 파라오로서의 헤라클레스
결론
제3장 기원전 3천년기 보이오티아와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 II
-고고학적 증거-
스파르타 고고학: 알크메네의 분묘
암피온과 제토스의 무덤
코파이스의 배수
곡물창고
아르골리스에서의 관개와 정착
아르카디아의 배수와 관개
보이오티아 지명과 아르카디아 지명 사이의 유사점
전기헬라스 시기 그리스의 사회·정치적 구조
에게해권에 남긴 고왕국 이집트의 또다른 고고학적 흔적
전기 청동기시대 ‘높은’ 문화의 끝
결론
제4장 크레타의 옛 왕궁기와 이집트 중왕국, 기원전 2100~1730년
전기미노아 III: 전前왕궁기
납과 나선무늬
크레타의 왕궁들
크레타의 문자체계
전기 왕궁기 크레타의 숭배 상징물
황소 숭배의 아나톨리아 기원론의 가능성
천둥과 성性: 민, 판, 붸제
민과 미노스
이집트의 영향에 반대하는 경우
몬트와 라다만티스
황소 숭배의 존속: 크레타의 보수성
결론
제5장 세소스트리스 I
-그의 정복을 뒷받침하는 그리스의 고고학 및 문헌 증거-
미트 라히네 비문의 발견
중왕국 시기 아시아까지 뻗힌 이집트 제국을 말하는 증거로서 비문의 중요성
센워스레와 세소스트리스
마네토의 세소스트리스
헤로도토스의 세소스트리스
디오도로스의 세소스트리스
세소스트리스 이야기의 사실과 허구
중왕국 이집트의 군사력
배경
기원전 4천년기·3천년기의 이집트 연표
이집트 고왕국의 연표
에블라의 연표
고왕국 이전의 이집트 연표
중왕국의 연대 책정
메소포타미아의 연표
원정을 말해주는 고고학적 증거
초기 아나톨리아: 역사 개요
아나톨리아의 파괴: 퀼테페 II 시기와 카룸 카네시
세소스트리스는 파괴자였는가
토드의 보물
트라키아 및 스키티아의 세소스트리스?
콜키스의 세소스트리스?
미트 라히네 비문이 말하는 세소스트리스 ‘정복’의 증거
결론
제6장 세소스트리스 II
-숭배적·신화적·전설적 증거-
이집트의 전승
세소스트리스 그리고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레반트와 아나톨리아의 전승
트라키아와 스키티아
콜키스: 이집트의 식민지인가
이아손과 황금양털: 콜키스의 흑인 인구에 대한 증거
영적인 지리학
K?S와 콜키스: 이집트어의 파생어인가
콜키스와 엘람의 흑인들
이집트가 콜키스를 식민화했다는 것에 대한 논쟁의 요약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멤논에 관한 그리스 전승과 아나톨리아 정복
멤논의 부모
멤논과 오시리스
저울에 놓인 영웅
이집트의 영혼과 그리스의 영혼
멤논의 북서 아나톨리아와의 연계
멤논의 이집트적 정체성
기원전 1900년경 이집트의 트로이 정복을 지지하는 논거
세소스트리스와 아메넴하트의 정복: 증거의 요약
제7장 테라 폭발: 에게해에서 중국까지
연대 설정에 대한 논쟁
방사성 탄소의 도전
수령연대학의 증거
테라 폭발과 중국
폭발 연도 재측정
연대 재설정의 의미
테라와 칼리스테
「출애굽기」의 화산 비유
멤블리아로스와 어둠의 장막
아틀란티스 신화
아틀란티스와 ‘대서양’
아틀란티스, 아틀라스, 아틀라스 산(맥)
아틀라스와 오션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와 테라의 폭발
아이슬란드의 헤클라 폭발
중국: 역사 서술상의 충격
기축시대의 오류
하 왕조와 상 왕조의 연대기
테라 폭발의 종교적 충격
정치적 충격: 천명
테라 폭발의 세계적 충격
결론
제8장 힉소스
제13왕조의 연대기: 이집트의 혼돈기
제15왕조의 연대기: 힉소스 통치의 시작
텔 엘 다바에 있는 힉소스의 수도
400주년 기념 석비와 세트 신전
연표 요약
힉소스는 어떤 사람들인가
힉소스의 기원과 도래에 관한 다른 견해들
다민족 연합으로서의 힉소스
말과 전차: 후루인과 아리아인
후루인과 힉소스
후루인의 존재를 보여주는 고고학적·언어학적 증거
힉소스와 물질문화
이집트에서의 힉소스와 성서적 포로생활 또는 체류
결론
제9장 기원전 18·17세기 크레타, 테라, 미케네 문화의 탄생
-힉소스의 침입이 원인인가-
크레타의 새 왕궁들
중기미노아 III, 크레타의 무기들
검과 단도에 관한 아프리카아시아어의 어휘
각궁, 말, 전차
천마, 스핑크스, 그리핀
기원전 1730년경 힉소스의 크레타 침입이 있었는가
테라 섬의 힉소스 흔적?
테라에서 나온 고고학 증거
테라 섬의 프레스코
미케네 문명의 기원
수갱묘, 톨로스(돔식 무덤), 투물루스(능)
매장과 부장품
전기 미케네 그리스의 물질문화의 기원
침입에 관한 아리아주의자의 모델
그리스 용병
인도유럽인
아리안모델과 고대모델 사이: 프랭크 스터빙스
결론: 고대모델의 수정
제10장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레반트가 에게해와 접촉하다
-문헌 증거-
에게해를 언급하는 이집트어 지명
멘웨스와 미노스
케프티우, 카프투, 크레타
와즈 웨르 그리고 하우 네부: 에게해와 미케네인
다나안의 어원
후기 청동기시대 이집트와 에게해권의 관계를 보여주는 문헌 증거
이집트 비문과 묘실 벽화에 나타나는 정확성과 혼종
왜 크레타의 군주는 이집트로 공물을 가져갔을까
미케네가 크레타를 지배한 연대
크레타와 미케네가 이집트로 사절을 파견하다
아멘호테프 3세 조각상의 기단
제18왕조 후기부터 제19왕조까지 이집트의 에게해권 접촉
이집트 문헌과 그림의 증거 요약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 문헌
에게해권 문서
선형문자 B
결론
제11장 이집트와 레반트가 에게해권과 접촉하다, 기원전 1550~1250년
―고고학적 증거―
후기 미케네 그리스
기원전 1550~1470년, 에게해권의 상대적인 고립
이집트의 팽창, 기원전 1520년경부터 1420년경까지
펠롭스와 아카이아인: 아나톨리아로부터의 증거
펠롭스, ‘왕세자’?
아카이아인과 다나오이인
아카이아인에 관한 고고학적 흔적
미케네인과 히타이트인
우가릿과 키프로스
미케네의 팽창과 투트모세 3세의 정복
후기 청동기시대 지중해의 상인들?
배스의 도전
뮬리의 응답
야나이의 부정적인 종합
카쉬 난파선: 선원들
이집트의 테베와 미케네, 기원전 1420~1370년
터 매장물: 미케네의 이집트 신전 숭배?
무역 순항 항로
무역의 어휘
에게해권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력 쇠퇴, 기원전 1370~1220년
Φ형 및 Ψ형 도기 조각상과 청동퇴로 내려치는 신들
가나안 항아리
상아
결론
제12장 영웅시대의 영웅적 종말
―기원전 1250~1150년 테베, 트로이, 미케네의 종말―
원통형 인장
보이오티아의 테베와 페니키아인의 도래
고대의 연표들
카드모스와 알파벳
카드모스와 다나오스: 힉소스의 지배자들
선형문자 B 쓰기의 문제점
카드메이온의 보물
카시트와의 연계
테베의 파괴
트로이 역사의 개요
트로이 전쟁의 연대
테베와 트로이
미케네 문명의 붕괴
결론
총결론
부록
고대 문자의 알파벳 표기와 소리값
이집트 상형문자의 한글 음역
연표
지도와 도표
역자 도표
역자 해제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양 고대사를 둘러싼 세계적인 논쟁 그 두 번째 라운드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1120년 이전 청동기 시대 그리스는 이집트나 페니키아로부터 도래한 다나오스나 카드모스 같은 사람들이 세운 왕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마틴 버낼은 『블랙 아테나 I』에서 1800년경까지만 하더라도 서양학계에서 그리스 신화가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역사로서 받아들여졌는데, 이후 역사가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로 몰리게 된 유럽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헬레니즘의 대두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종주의의 부상(浮上). 당대 서양문명의 뿌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헬레니즘이 19, 20세기의 서양인이 보았을 때 인종적으로 열등한 오리엔트인들, 특히 이집트인들의 문화가 미케네 문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말하는 그리스 신화를 더 이상 역사로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버낼은 설명한다.
『블랙 아테나 II』는 그리스 신화의 구체적인 내용뿐만이 아니라, 신화의 내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동지중해권의 히타이트, 페니키아, 이집트 같은 나라들의 문헌 증거와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블랙 아테나 II』는 12장으로 구성된 아주 두툼한 책이다. 너무 오래 전의 역사인데도, 1장부터 12장까지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양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는 지리적으로는 동지중해권 전체, 시기적으로는 청동기 시대(BC 3300년-BC 1100년) 전체를 꿰는 큰 흐름이 무엇인가를 버낼이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농업상의 풍요와 그 풍요를 기반으로 삼은 세련된 이집트 문명이 크레타,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를 포함하는 에게해 문명의 발생·유지·발전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인식이다. 이집트의 밀(小麥)과 이집트의 문화가 동지중해권의 왕궁을 중심으로 한 문명들의 밑받침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버낼의 진정한 천재적 창조성은 수많은 학자들의 개별적이고 흩어져 있는 연구결과들을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나의 긴 이야기로 엮어낸 데에 있다. 사실 버낼이 그 방대한 책의 내용을 자신의 직접적인 연구를 통해 채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버낼의 주장은 1900년경과 20세기 중반에 유럽중심주의가 성할 때 집필활동을 하였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극소수의 학자들인 베라르, 푸카르, 고든, 애스터 같은 선배 역사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자신의 주제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학자들의 연구를 재해석하여 사용한다. 물론 근원적으로는 역사 또는 사료로서 그리스 신화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말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는 1차 사료인 문헌 증거와 고고학, 그리고 자신의 연구에 관련된 논문이나 책들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연구사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고대 오리엔트에 관한 다른 책을 참고하지 않고서도 이 책만으로도 그의 논지를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 문제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어떻게 차이나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부각시킨다.
1991년 『블랙 아테나 II』가 출간된 이후 버낼에 대한 학계의 비판은 격렬해졌다. 이제 그가 미케네 그리스와 이집트 및 레반트 사이의 관계사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 증거라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내놓자 그 증거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논쟁의 장이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랙 아테나 II』를 비평한다면, 그의 방대한 저서 속에 담겨 있는 적지 않은 부분들은 논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 그리스가 동지중해권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버낼 주장의 큰 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박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스탠리 버스틴(1941년 출생)은 『블랙 아테나』가 공헌한 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블랙 아테나』가 결점을 지녔다고 해서, 당대 그리스인들의 역사서술의 신빙성을 보이려는 버낼의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 그리스인의 역사서술을 진지하게 읽어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건성 읽기는 『블랙 아테나』 식의 사료 읽기를 견디어낼 수 없을 것이다. 『블랙 아테나』 식의 사료 읽기 하나만으로도 버낼은 모든 사람들의 감사를 받을 만하다. 또한 그는 그리스 문명의 기원에 관한 의문을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역사학의 화두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감사를 받을 만하다.” 『블랙 아테나』에는 한 학자의 학문적 진정성과 열정과 꿰뚫어보는 안목과 역사적 진실을 향한 용기가 담겨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저자 마틴 버낼(Martin Bernal)
유대계 영국인으로, 193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1957년, 캠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에 입학한 후 캠브리지대학 동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캠브리지 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중국현대사를 강의하였고, 1972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정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코넬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1987년, 서양 고전 문명에 대한 통념을 뒤흔든 책 『블랙 아테나』제1권(The Fabrication of Ancient Greece 1785~1985)을 출간하였다. 이어 1991년에는 『블랙 아테나』제2권(The Archaeological and Documentary Evidence)을 출간하며 학문적 논쟁을 촉발시켰다. 2001년에는 『블랙 아테나의 답장 : 비평가들에 대한 마틴 버낼의 반론』을 출간하며 논쟁을 더욱 생산적으로 이끌었다. 2006년 『블랙 아테나』제3권(The Lunguistic Argument)을 출간하였고, 『블랙 아테나』제4권(Solving the Riddle of the Sphinx)을 집필하고 있다.
역자 : 오흥식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서양고대사를 전공하고, 1995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투기디데스의 티케(우연)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대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강대, 성균관대, 서울대에서 서양고대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원죄론과 오레스테이아」(『역사와 문화』5, 2002),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탈옥을 거부하게 한 자들」(『서양고전학 연구』24, 2005), 「유럽중심주의의 극복과 사료로서의 그리스 신화」(『서양사론』95, 2007) 등이 있다. 함께 지은 책 『서양고대사강의』(한울 아카데미, 2011, 개정판)와 옮긴 책 『블랙 아테나 I』(소나무, 2006)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과 감사의 글
서론
수정 고대모델을 선호하는 내재적인 근거
이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
각 장의 개요
제1장 왕궁기 이전의 크레타, 기원전 7000~2100년
전파론 대 고립론
기원전 21세기 이전의 크레타
신석기 크레타, 기원전 7000~3300년
전기 청동기시대, 기원전 3300년경~2000년
전기 청동기시대 크레타의 종교
결론
제2장 기원전 3천년기 보이오티아 및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 I
-숭배적·신화적·전설적 증거-
세멜레와 알크메네
보이오티아의 아테네 시市와 아테나 여신
오기고스, 오그, 고그
알랄코메네
치수자 네이트
네이트 대對 세트의 싸움과 아테나 대 포세이돈의 싸움
포세이돈/세트
델포스와 아누비스
멜라이나/네프티스
아레이온과 페가수스
리비아와의 관련성과 말(馬)
노바타이
세트와 포세이돈, 네브티와 넵튠
포세이돈, 틸푸사, 리비아
아르카디아의 텔푸사
네이트/아테나 그리고 네프티스/에리니스
아누키스/옹카
네이트/아테나 그리고 아누키스/옹카
아테나 옹카와 아테나 알랄코메나
아테나 알랄코메나 그리고 알크메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수메르 원형과 셈 원형
헤라클레스의 이집트 기원
헤라클레스, 헤리셰프 그리고 레셰프
헤라클레스, 콘수, 슈
헤라클레스와 중왕국의 파라오
치수자로서의 헤라클레스
보이오티아에 있었던 중왕국 파라오로서의 헤라클레스
결론
제3장 기원전 3천년기 보이오티아와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 II
-고고학적 증거-
스파르타 고고학: 알크메네의 분묘
암피온과 제토스의 무덤
코파이스의 배수
곡물창고
아르골리스에서의 관개와 정착
아르카디아의 배수와 관개
보이오티아 지명과 아르카디아 지명 사이의 유사점
전기헬라스 시기 그리스의 사회·정치적 구조
에게해권에 남긴 고왕국 이집트의 또다른 고고학적 흔적
전기 청동기시대 ‘높은’ 문화의 끝
결론
제4장 크레타의 옛 왕궁기와 이집트 중왕국, 기원전 2100~1730년
전기미노아 III: 전前왕궁기
납과 나선무늬
크레타의 왕궁들
크레타의 문자체계
전기 왕궁기 크레타의 숭배 상징물
황소 숭배의 아나톨리아 기원론의 가능성
천둥과 성性: 민, 판, 붸제
민과 미노스
이집트의 영향에 반대하는 경우
몬트와 라다만티스
황소 숭배의 존속: 크레타의 보수성
결론
제5장 세소스트리스 I
-그의 정복을 뒷받침하는 그리스의 고고학 및 문헌 증거-
미트 라히네 비문의 발견
중왕국 시기 아시아까지 뻗힌 이집트 제국을 말하는 증거로서 비문의 중요성
센워스레와 세소스트리스
마네토의 세소스트리스
헤로도토스의 세소스트리스
디오도로스의 세소스트리스
세소스트리스 이야기의 사실과 허구
중왕국 이집트의 군사력
배경
기원전 4천년기·3천년기의 이집트 연표
이집트 고왕국의 연표
에블라의 연표
고왕국 이전의 이집트 연표
중왕국의 연대 책정
메소포타미아의 연표
원정을 말해주는 고고학적 증거
초기 아나톨리아: 역사 개요
아나톨리아의 파괴: 퀼테페 II 시기와 카룸 카네시
세소스트리스는 파괴자였는가
토드의 보물
트라키아 및 스키티아의 세소스트리스?
콜키스의 세소스트리스?
미트 라히네 비문이 말하는 세소스트리스 ‘정복’의 증거
결론
제6장 세소스트리스 II
-숭배적·신화적·전설적 증거-
이집트의 전승
세소스트리스 그리고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레반트와 아나톨리아의 전승
트라키아와 스키티아
콜키스: 이집트의 식민지인가
이아손과 황금양털: 콜키스의 흑인 인구에 대한 증거
영적인 지리학
K?S와 콜키스: 이집트어의 파생어인가
콜키스와 엘람의 흑인들
이집트가 콜키스를 식민화했다는 것에 대한 논쟁의 요약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멤논에 관한 그리스 전승과 아나톨리아 정복
멤논의 부모
멤논과 오시리스
저울에 놓인 영웅
이집트의 영혼과 그리스의 영혼
멤논의 북서 아나톨리아와의 연계
멤논의 이집트적 정체성
기원전 1900년경 이집트의 트로이 정복을 지지하는 논거
세소스트리스와 아메넴하트의 정복: 증거의 요약
제7장 테라 폭발: 에게해에서 중국까지
연대 설정에 대한 논쟁
방사성 탄소의 도전
수령연대학의 증거
테라 폭발과 중국
폭발 연도 재측정
연대 재설정의 의미
테라와 칼리스테
「출애굽기」의 화산 비유
멤블리아로스와 어둠의 장막
아틀란티스 신화
아틀란티스와 ‘대서양’
아틀란티스, 아틀라스, 아틀라스 산(맥)
아틀라스와 오션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와 테라의 폭발
아이슬란드의 헤클라 폭발
중국: 역사 서술상의 충격
기축시대의 오류
하 왕조와 상 왕조의 연대기
테라 폭발의 종교적 충격
정치적 충격: 천명
테라 폭발의 세계적 충격
결론
제8장 힉소스
제13왕조의 연대기: 이집트의 혼돈기
제15왕조의 연대기: 힉소스 통치의 시작
텔 엘 다바에 있는 힉소스의 수도
400주년 기념 석비와 세트 신전
연표 요약
힉소스는 어떤 사람들인가
힉소스의 기원과 도래에 관한 다른 견해들
다민족 연합으로서의 힉소스
말과 전차: 후루인과 아리아인
후루인과 힉소스
후루인의 존재를 보여주는 고고학적·언어학적 증거
힉소스와 물질문화
이집트에서의 힉소스와 성서적 포로생활 또는 체류
결론
제9장 기원전 18·17세기 크레타, 테라, 미케네 문화의 탄생
-힉소스의 침입이 원인인가-
크레타의 새 왕궁들
중기미노아 III, 크레타의 무기들
검과 단도에 관한 아프리카아시아어의 어휘
각궁, 말, 전차
천마, 스핑크스, 그리핀
기원전 1730년경 힉소스의 크레타 침입이 있었는가
테라 섬의 힉소스 흔적?
테라에서 나온 고고학 증거
테라 섬의 프레스코
미케네 문명의 기원
수갱묘, 톨로스(돔식 무덤), 투물루스(능)
매장과 부장품
전기 미케네 그리스의 물질문화의 기원
침입에 관한 아리아주의자의 모델
그리스 용병
인도유럽인
아리안모델과 고대모델 사이: 프랭크 스터빙스
결론: 고대모델의 수정
제10장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레반트가 에게해와 접촉하다
-문헌 증거-
에게해를 언급하는 이집트어 지명
멘웨스와 미노스
케프티우, 카프투, 크레타
와즈 웨르 그리고 하우 네부: 에게해와 미케네인
다나안의 어원
후기 청동기시대 이집트와 에게해권의 관계를 보여주는 문헌 증거
이집트 비문과 묘실 벽화에 나타나는 정확성과 혼종
왜 크레타의 군주는 이집트로 공물을 가져갔을까
미케네가 크레타를 지배한 연대
크레타와 미케네가 이집트로 사절을 파견하다
아멘호테프 3세 조각상의 기단
제18왕조 후기부터 제19왕조까지 이집트의 에게해권 접촉
이집트 문헌과 그림의 증거 요약
메소포타미아와 우가릿 문헌
에게해권 문서
선형문자 B
결론
제11장 이집트와 레반트가 에게해권과 접촉하다, 기원전 1550~1250년
―고고학적 증거―
후기 미케네 그리스
기원전 1550~1470년, 에게해권의 상대적인 고립
이집트의 팽창, 기원전 1520년경부터 1420년경까지
펠롭스와 아카이아인: 아나톨리아로부터의 증거
펠롭스, ‘왕세자’?
아카이아인과 다나오이인
아카이아인에 관한 고고학적 흔적
미케네인과 히타이트인
우가릿과 키프로스
미케네의 팽창과 투트모세 3세의 정복
후기 청동기시대 지중해의 상인들?
배스의 도전
뮬리의 응답
야나이의 부정적인 종합
카쉬 난파선: 선원들
이집트의 테베와 미케네, 기원전 1420~1370년
터 매장물: 미케네의 이집트 신전 숭배?
무역 순항 항로
무역의 어휘
에게해권에 대한 이집트의 영향력 쇠퇴, 기원전 1370~1220년
Φ형 및 Ψ형 도기 조각상과 청동퇴로 내려치는 신들
가나안 항아리
상아
결론
제12장 영웅시대의 영웅적 종말
―기원전 1250~1150년 테베, 트로이, 미케네의 종말―
원통형 인장
보이오티아의 테베와 페니키아인의 도래
고대의 연표들
카드모스와 알파벳
카드모스와 다나오스: 힉소스의 지배자들
선형문자 B 쓰기의 문제점
카드메이온의 보물
카시트와의 연계
테베의 파괴
트로이 역사의 개요
트로이 전쟁의 연대
테베와 트로이
미케네 문명의 붕괴
결론
총결론
부록
고대 문자의 알파벳 표기와 소리값
이집트 상형문자의 한글 음역
연표
지도와 도표
역자 도표
역자 해제
참고문헌
찾아보기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