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박물관을 통해 보는 동남아,
오늘의 동남아를 읽는 박물관
― 박물관에서 읽는 기억의 문화정치
동남아를 읽는 또 하나의 창, 박물관 읽기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우리는 버릇처럼 박물관에 들른다. 어느 곳에든 그 나라가 공식 지정한 기념물이나 박물관이 있기 마련이고, 대표적인 박물관의 구성이나 전시물의 배치 등이 의도하는 바를 통해 그곳을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 박물관은 한 사회의 문화적 역량과 함께 해당 시기 역사 인식과 문화적 정체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문화 기관이다. 대개 신생 국가들은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박물관의 건립과 확충에 관심을 기울이며, 박물관을 통해 국민국가의 영토와 경계를 넘어서는 지역과 국가의 상호관계를 상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특정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사건을 기념하는 공간인 박물관은 정치적인 문화 기관이며, 국가나 지배 집단의 목적과 의도를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정치적 표상이자 텍스트다. 군부독재와 민주화를 거쳐온 한국에서 지금도 다양한 기념관과 상징물을 둘러싼 투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역사, 동아시아 미술사, 동남아 지역 전공 연구자들이 현지 조사를 통해 동남아의 박물관을 각국의 역사적 역동성과 사회·정치적 질서의 실제 작동 방식과 관련해 연구한 결과가 동남아시아의 박물관 ― 국가 표상과 기억의 문화정치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동남아의 박물관이라는 창을 통해 동남아, 그리고 동남아 관계 맺고 있는 우리를 들여다보려는 새로운 시도다.
박물관, 국가 표상 그리고 기억의 정치
동남아시아의 박물관은 식민주의의 역사와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 밀접히 관련된다. 식민주의 담론과 오리엔탈리즘을 계승하거나 식민 시대 박물관의 형태를 유지하기도 하고, 식민주의 유산에 맞서 대결하거나 단절을 모색하기도 한다. 또한 대개의 동남아 국립박물관은 독립국가의 새로운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련되어 있고,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지배적 집단 기억과 개인적 기억 등 박물관 밖의 모순과 갈등이 투영되는 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사례 연구들은 식민주의, 근대성, 오리엔탈리즘, 종족 정체성, 사회적 기억, 영토의 경계와 지역 개념 등에 관한 이론적 논의에 기대고 있다.
동남아시아 박물관의 역사와 정치 ― 이론과 실제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박물관과 기념물의 역사와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 식민 시대에 만들어진 박물관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식민 통치와 행정에 봉사했다. 그러나 박물관은 탈식민 시기에 더욱 번성하는데, 제국주의의 식민 영토를 이어받아 탄생한 동남아 국가들은 제국이 박물관을 통해 선전한 영토적·정치적 통일성을 선전해야 했다. 제국이 박물관을 통해 자신의 식민 영토를 상상하던 방식을 이어받아 독립국가들이 국가와 민족을 상상하는 매개체로 삼은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국가나 민족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공표되는 문화 기관이다. 따라서 박물관은 권력의 통제 대상이며, 탈식민주의 국민국가의 문화정책과 긴밀히 연관된다. 이런 과정에서 박물관과 인류학의 역사적 관계를 살피는 것도 중요한데, 지배 종족과 소수 종족의 관계뿐 아니라 전통과 정체성, 기억의 정치 등도 박물관과 관련된 중요한 연구 주제다. 동남아 각국의 박물관과 국가 표상을 역사적, 문화적, 정치사회적 배경과 연관시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정치학 ―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표상된 오리엔탈리즘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투영된 식민 내러티브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것이 실제의 역사나 독립한 뒤의 국가적 내러티브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본다. 1945년 독립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많은 종족을 공화국 체제에 묶으려고 ‘다양성 속의 통합’을 상징하는 ‘판짜실라(Pancasilla)’ 이데올로기를 확립했다. 또한 국민국가 내러티브를 구성해 교육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민족주의 담론을 주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물관이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의 전시 형태를 분석한 저자는 종족적 다양성이 공화국의 제도적 통일성 안에 한정돼 표출되도록 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식민 시대의 유물과 전시 형태를 계승하면서 오리엔탈리즘도 답습했다고 비판한다. 성공적인 ‘상상의 공동체’의 이미지 이면에는 식민주의의 유산, 내부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와 현재가 실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라이언과 박물관 ―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는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가 정체성 아닌 ‘관제 국가 만들기’의 전형을 싱가포르에서 찾는다. 국가 상징물과 박물관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의 형성과 국민 통합을 위해 어떤 ?할과 기능을 하는지 분석한 이 글은, 머라이언을 비롯해 싱가포르의 다양한 상징물, 박물관, 전시관이 모두 국가 정체성을 환기하고 다민족 통합 국가라는 지향에 맞게 고안됐다고 주장한다. 1965년 다종족 국가로 독립한 싱가포르의 다양한 박물관은 역사적 전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현대적 기법을 통해 싱가포르 국민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표상하는 장치다. 싱가포르의 박물관들은 마치 싱가포르가 근대 이전부터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계승한 국가인 것처럼 꾸민 이미지 전시관이라는 것이다.
종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 ― 베트남 민족학박물관 건립 과정의 문화정치는 베트남 국립박물관의 건립을 둘러싼 문화 정치라는 주제를 통해 박물관의 활동과 관련된 국가의 역할과 민족학 분야의 주요 논쟁을 다루고 있다. 1997년에 개관한 베트남 민족학박물관은 54개 종족 집단의 ‘공동체’ 또는 ‘가족’으로 표현되는 베트남에서 관련 담론을 지지하고 심화하는 가장 강력한 기관이다. ‘문화적 뿌리’를 보존한다는 국가 담론과 통합된 국민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정책이 상호작용한 결과인 민족학박물관은 민족학 분야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종족을 분류하는 방식과 문화적 유산을 재현하는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런 베트남의 사례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국가 정체성과 종족 정체성, 권력 엘리트와 학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 논쟁과 타협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뚜얼슬렝 학살박물관 ―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기억 공간은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과 국가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재현되는지 탐색한다. 크메르 루주 정권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국가가 재정립한 ‘공식 기억’은 다양한 제도와 장치를 통해 지속되고 확산됐다.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기억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 기억’ 개념에 기대어, 악명 높은 ‘S-21 감옥’에 만든 뚜얼슬렝 학살박물관은 국민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관광객들에게는 홀로코스트를 상기시키는 공간으로 자리하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집권 세력의 이데올로기와 내러티브로 수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광산업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 중 하나인 캄보디아에서 박물관은 학살의 역사를 기억의 정치로 재현하는 무대가 된다. 과거의 기억이 구성되는 과정에 수반되는 현대 캄보디아 사회의 기억의 정치에서 박물관은 국가 내러티브의 표상이자 관광 자원인 셈이다.
동남아시아 박물관에 표상된 국가 너머의 세계는 국립박물관이 내러티브, 시각, 상징의 측면에서 국가라는 관념을 구축하는 기능 이외에 지역과 지역 너머의 세계에 대한 관념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박물관이 지도나 전시물을 통해 들려주는 국가 너머의 세계는 국가라는 틀에 맞춰 표상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동남아의 국립박물관들이 각국의 다양한 민족주의적 상상의 틀을 통해 어떻게 동남아와 그 너머의 세계를 표상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베트남 등 7개국 13개 국립박물관을 비교한다. 지도와 박물관이 국가적 경계를 상상하게 하는 정치적 구성물이라고 한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과 통차이(Winichakul Thongchai)의 ‘지리적 신체(geo-body)’ 개념을 차용해 저자는, 국립박물관에서 타자에 대한 다양한 관념들이 모두 ‘우리’가 인식되는 방법을 통해 창조됨으로써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도 제작은 권력의 근대적 형태이며, 국민과 국가를 둘러싼 경계를 그리는 프레임 만들기라는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최호림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남대학교 연구교수, 호주국립대학교 객원연구원, 한국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전통의례, 문화정책 등 베트남 사회문화에 관한 연구와 이주, 관광, 전쟁기억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주요 논저로는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2010, 공저) 등이 있다.
저자 : 송승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와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동남아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도네시아 소수 종족으로 최근 한글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찌아찌아족과 그 사회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논저로 「박물관의 정치학: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표상된 오리엔탈리즘 연구」(2011), 「인도네시아 아쩨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역사해석」(2010), 「인도네시아 도덕경제 시스템의 유래와 현황」(2008)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강희정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한 바 있다. 주요 논저로는 「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의 새로운 모색 」(2011),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유적 」(2009, 공저), 「6세기 扶南과 山東의 사르나트 양식 불상」(「중국사연구 」 67, 2010), 「머라이언과 박물관: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 」(「동아연구 」 30권 1호, 2011) 등이 있다. 불교미술과 관련된 근대 담론을 비롯하여 불교미술을 통한 문명의 교류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남방 해로를 통한 불교미술의 동전(東傳)에 초점을 두고 동남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자 : 부경환
아주대학교에서 미디어학과 사회학(부전공)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킬링필드’의 기억과 재현」으로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캄보디아 따께우(Takeo) 주 쁘레이꺼바(Prey Kabbas) 군에서 한국어 자원교사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보조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현대사와 사회·문화를 연구 중이며, 특히 1970~80년대 내전과 대량학살 이후 기억의 정치와 국가 만들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저로 「인류학도가 본 베이징 일주일 」(2009)이 있다.
저자 : 에릭 C. 톰슨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류학, 젠더 연구, 도시 연구 및 연구방법론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동남아의 초국가적 네트워크, 젠더, 도시 문제, 문화 이론, 아세안 지역주의(ASEAN regionalism)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American Ethnologist, Urban Studies, Political Geography, Asian Studies Review, Contemporary Sociology, Contemporary Southeast Asian Studies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대표 저서로 Unsettling Absences: Urbanism in Rural Malaysia(NUS Press, 2007)가 있다.
▣ 주요 목차
발간사서강동연 HK학술총서를 발간하며
서장 동남아시아 박물관의 역사와 정치 ― 이론과 실제최호림
1장 박물관의 정치학 ―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표상된 오리엔탈리즘송승원
2장 머라이언과 박물관 ―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강희정
3장 종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 ― 베트남 민족학박물관 건립 과정의 문화정치최호림
4장 뚜얼슬렝 학살박물관 ―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기억 공간 부경환
5장 동남아시아 박물관에 표상된 국가 너머의 세계 에릭 C. 톰슨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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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통해 보는 동남아,
오늘의 동남아를 읽는 박물관
― 박물관에서 읽는 기억의 문화정치
동남아를 읽는 또 하나의 창, 박물관 읽기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우리는 버릇처럼 박물관에 들른다. 어느 곳에든 그 나라가 공식 지정한 기념물이나 박물관이 있기 마련이고, 대표적인 박물관의 구성이나 전시물의 배치 등이 의도하는 바를 통해 그곳을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 박물관은 한 사회의 문화적 역량과 함께 해당 시기 역사 인식과 문화적 정체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문화 기관이다. 대개 신생 국가들은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박물관의 건립과 확충에 관심을 기울이며, 박물관을 통해 국민국가의 영토와 경계를 넘어서는 지역과 국가의 상호관계를 상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특정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사건을 기념하는 공간인 박물관은 정치적인 문화 기관이며, 국가나 지배 집단의 목적과 의도를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정치적 표상이자 텍스트다. 군부독재와 민주화를 거쳐온 한국에서 지금도 다양한 기념관과 상징물을 둘러싼 투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역사, 동아시아 미술사, 동남아 지역 전공 연구자들이 현지 조사를 통해 동남아의 박물관을 각국의 역사적 역동성과 사회·정치적 질서의 실제 작동 방식과 관련해 연구한 결과가 동남아시아의 박물관 ― 국가 표상과 기억의 문화정치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동남아의 박물관이라는 창을 통해 동남아, 그리고 동남아 관계 맺고 있는 우리를 들여다보려는 새로운 시도다.
박물관, 국가 표상 그리고 기억의 정치
동남아시아의 박물관은 식민주의의 역사와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 밀접히 관련된다. 식민주의 담론과 오리엔탈리즘을 계승하거나 식민 시대 박물관의 형태를 유지하기도 하고, 식민주의 유산에 맞서 대결하거나 단절을 모색하기도 한다. 또한 대개의 동남아 국립박물관은 독립국가의 새로운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련되어 있고,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지배적 집단 기억과 개인적 기억 등 박물관 밖의 모순과 갈등이 투영되는 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사례 연구들은 식민주의, 근대성, 오리엔탈리즘, 종족 정체성, 사회적 기억, 영토의 경계와 지역 개념 등에 관한 이론적 논의에 기대고 있다.
동남아시아 박물관의 역사와 정치 ― 이론과 실제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박물관과 기념물의 역사와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 식민 시대에 만들어진 박물관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식민 통치와 행정에 봉사했다. 그러나 박물관은 탈식민 시기에 더욱 번성하는데, 제국주의의 식민 영토를 이어받아 탄생한 동남아 국가들은 제국이 박물관을 통해 선전한 영토적·정치적 통일성을 선전해야 했다. 제국이 박물관을 통해 자신의 식민 영토를 상상하던 방식을 이어받아 독립국가들이 국가와 민족을 상상하는 매개체로 삼은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국가나 민족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공표되는 문화 기관이다. 따라서 박물관은 권력의 통제 대상이며, 탈식민주의 국민국가의 문화정책과 긴밀히 연관된다. 이런 과정에서 박물관과 인류학의 역사적 관계를 살피는 것도 중요한데, 지배 종족과 소수 종족의 관계뿐 아니라 전통과 정체성, 기억의 정치 등도 박물관과 관련된 중요한 연구 주제다. 동남아 각국의 박물관과 국가 표상을 역사적, 문화적, 정치사회적 배경과 연관시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정치학 ―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표상된 오리엔탈리즘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투영된 식민 내러티브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것이 실제의 역사나 독립한 뒤의 국가적 내러티브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본다. 1945년 독립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많은 종족을 공화국 체제에 묶으려고 ‘다양성 속의 통합’을 상징하는 ‘판짜실라(Pancasilla)’ 이데올로기를 확립했다. 또한 국민국가 내러티브를 구성해 교육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민족주의 담론을 주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물관이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의 전시 형태를 분석한 저자는 종족적 다양성이 공화국의 제도적 통일성 안에 한정돼 표출되도록 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식민 시대의 유물과 전시 형태를 계승하면서 오리엔탈리즘도 답습했다고 비판한다. 성공적인 ‘상상의 공동체’의 이미지 이면에는 식민주의의 유산, 내부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와 현재가 실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라이언과 박물관 ―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는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가 정체성 아닌 ‘관제 국가 만들기’의 전형을 싱가포르에서 찾는다. 국가 상징물과 박물관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의 형성과 국민 통합을 위해 어떤 ?할과 기능을 하는지 분석한 이 글은, 머라이언을 비롯해 싱가포르의 다양한 상징물, 박물관, 전시관이 모두 국가 정체성을 환기하고 다민족 통합 국가라는 지향에 맞게 고안됐다고 주장한다. 1965년 다종족 국가로 독립한 싱가포르의 다양한 박물관은 역사적 전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현대적 기법을 통해 싱가포르 국민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표상하는 장치다. 싱가포르의 박물관들은 마치 싱가포르가 근대 이전부터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계승한 국가인 것처럼 꾸민 이미지 전시관이라는 것이다.
종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 ― 베트남 민족학박물관 건립 과정의 문화정치는 베트남 국립박물관의 건립을 둘러싼 문화 정치라는 주제를 통해 박물관의 활동과 관련된 국가의 역할과 민족학 분야의 주요 논쟁을 다루고 있다. 1997년에 개관한 베트남 민족학박물관은 54개 종족 집단의 ‘공동체’ 또는 ‘가족’으로 표현되는 베트남에서 관련 담론을 지지하고 심화하는 가장 강력한 기관이다. ‘문화적 뿌리’를 보존한다는 국가 담론과 통합된 국민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정책이 상호작용한 결과인 민족학박물관은 민족학 분야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종족을 분류하는 방식과 문화적 유산을 재현하는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런 베트남의 사례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국가 정체성과 종족 정체성, 권력 엘리트와 학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 논쟁과 타협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뚜얼슬렝 학살박물관 ―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기억 공간은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과 국가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재현되는지 탐색한다. 크메르 루주 정권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국가가 재정립한 ‘공식 기억’은 다양한 제도와 장치를 통해 지속되고 확산됐다.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기억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 기억’ 개념에 기대어, 악명 높은 ‘S-21 감옥’에 만든 뚜얼슬렝 학살박물관은 국민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관광객들에게는 홀로코스트를 상기시키는 공간으로 자리하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집권 세력의 이데올로기와 내러티브로 수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광산업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 중 하나인 캄보디아에서 박물관은 학살의 역사를 기억의 정치로 재현하는 무대가 된다. 과거의 기억이 구성되는 과정에 수반되는 현대 캄보디아 사회의 기억의 정치에서 박물관은 국가 내러티브의 표상이자 관광 자원인 셈이다.
동남아시아 박물관에 표상된 국가 너머의 세계는 국립박물관이 내러티브, 시각, 상징의 측면에서 국가라는 관념을 구축하는 기능 이외에 지역과 지역 너머의 세계에 대한 관념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박물관이 지도나 전시물을 통해 들려주는 국가 너머의 세계는 국가라는 틀에 맞춰 표상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동남아의 국립박물관들이 각국의 다양한 민족주의적 상상의 틀을 통해 어떻게 동남아와 그 너머의 세계를 표상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베트남 등 7개국 13개 국립박물관을 비교한다. 지도와 박물관이 국가적 경계를 상상하게 하는 정치적 구성물이라고 한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과 통차이(Winichakul Thongchai)의 ‘지리적 신체(geo-body)’ 개념을 차용해 저자는, 국립박물관에서 타자에 대한 다양한 관념들이 모두 ‘우리’가 인식되는 방법을 통해 창조됨으로써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도 제작은 권력의 근대적 형태이며, 국민과 국가를 둘러싼 경계를 그리는 프레임 만들기라는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최호림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남대학교 연구교수, 호주국립대학교 객원연구원, 한국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전통의례, 문화정책 등 베트남 사회문화에 관한 연구와 이주, 관광, 전쟁기억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주요 논저로는 동남아의 초국가적 이슈와 지역 거버넌스(2010, 공저) 등이 있다.
저자 : 송승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와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동남아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도네시아 소수 종족으로 최근 한글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찌아찌아족과 그 사회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논저로 「박물관의 정치학: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표상된 오리엔탈리즘 연구」(2011), 「인도네시아 아쩨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역사해석」(2010), 「인도네시아 도덕경제 시스템의 유래와 현황」(2008)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강희정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조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한 바 있다. 주요 논저로는 「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의 새로운 모색 」(2011),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유적 」(2009, 공저), 「6세기 扶南과 山東의 사르나트 양식 불상」(「중국사연구 」 67, 2010), 「머라이언과 박물관: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 」(「동아연구 」 30권 1호, 2011) 등이 있다. 불교미술과 관련된 근대 담론을 비롯하여 불교미술을 통한 문명의 교류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남방 해로를 통한 불교미술의 동전(東傳)에 초점을 두고 동남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자 : 부경환
아주대학교에서 미디어학과 사회학(부전공)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킬링필드’의 기억과 재현」으로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캄보디아 따께우(Takeo) 주 쁘레이꺼바(Prey Kabbas) 군에서 한국어 자원교사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HK보조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현대사와 사회·문화를 연구 중이며, 특히 1970~80년대 내전과 대량학살 이후 기억의 정치와 국가 만들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저로 「인류학도가 본 베이징 일주일 」(2009)이 있다.
저자 : 에릭 C. 톰슨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류학, 젠더 연구, 도시 연구 및 연구방법론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동남아의 초국가적 네트워크, 젠더, 도시 문제, 문화 이론, 아세안 지역주의(ASEAN regionalism)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American Ethnologist, Urban Studies, Political Geography, Asian Studies Review, Contemporary Sociology, Contemporary Southeast Asian Studies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대표 저서로 Unsettling Absences: Urbanism in Rural Malaysia(NUS Press, 2007)가 있다.
▣ 주요 목차
발간사서강동연 HK학술총서를 발간하며
서장 동남아시아 박물관의 역사와 정치 ― 이론과 실제최호림
1장 박물관의 정치학 ―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표상된 오리엔탈리즘송승원
2장 머라이언과 박물관 ― 싱가포르의 국가 만들기강희정
3장 종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 사이 ― 베트남 민족학박물관 건립 과정의 문화정치최호림
4장 뚜얼슬렝 학살박물관 ―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기억 공간 부경환
5장 동남아시아 박물관에 표상된 국가 너머의 세계 에릭 C.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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