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그 마지막 장면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과 서늘한 문장의 장관,
그 속에서 빛나는 날카로운 통찰
인류사의 가장 문제적인 사건 십자군 전쟁에서
궁극의 외교론과 공생론을 배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필생의 역작이자 2011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독자들을 흥분시켰던 장대한 시리즈가 완간되었다.
인류 역사상 2백 년이라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치러진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한 인류 역사의 대사건, 십자군 전쟁.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십자군 전쟁. 현대의 다양한 문화산업에서 변형되어 재생산되는, 상상력의 원천인 십자군 전쟁. 하지만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기존의 연구서들은 서구 중심 혹은 이슬람 중심의 시각틀 내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시각틀에 갇혀 그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전쟁을 실제로 일으키고 그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움직였던, 그리하여 그들 각자의 독특하고도 다른 개성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또다른 국면을 만들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했던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상과 욕망, 성공과 좌절의 명암을 통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십자군 전쟁을 새롭게 조명해낸다. 시오노 나나미에 의해 십자군 이야기가 9백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현대적 이야기로 부활한 것이다.
1권에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위력적인 한 마디로 촉발된 유럽의 봉건제후와 주교, 수도사와 기사, 그리고 빈민들로 구성된 제1차 십자군의 결성과 그들에 의해 십자군 국가가 성립하는 20여 년의 과정을 다뤘다.
2권에서는 십자군의 제1세대가 모두 역사에서 퇴장한 뒤,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으로 등극하는 1118년부터 시토파의 수도사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제창에 의한 제2차 십자군의 결성과 퇴각(1146~1148),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십자군 시대 이전으로 되돌리는 1187년까지, 이슬람의 대반격이 시작되는 제2차 십자군 전후의 70여 년의 기간을 다뤘다. 이제 완결편인 3권에서는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격돌한 하틴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뒤 십자군 국가가 성도 예루살렘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토를 잃은 채 안티오키아와 트리폴리, 티루스 일대로 축소되자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유럽에서 속속 일어났던 3차에서 8차까지의 십자군 원정과 십자군 국가에 남겨진 최후의 도시 아코에서 벌어진 공방전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진 기사단의 운명까지 1백여 년 동안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압도적인 필력은 『십자군 이야기』3권에서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그 순간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박진감이 넘치는 묘사와 서슴없이 핵심을 파고드는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문장 속에서 십자군 전쟁의 영웅들이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나 우리 앞으로 걸어나온다.
병원 기사단의 기사들은 리처드의 명령대로 방어에만 전념하려 했다. 하지만 이날은 적의 기병부대의 맹공을 버텨내는 사이에 앞서 기병에 추월당했던 적의 보병부대까지 전투에 가세했다. 이슬람 보병은 접근전이 되자 우선 화살을 쏘는 각도를 바꾸었다. 위를 형해 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측 기병의 말을 겨냥한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잃고 보병이 된 기병을 향해, 활과 화살을 등뒤로 메고 이번에는 못 박힌 곤봉을 휘두르며 돌격해왔다. 이 곤봉의 위력은 원시적인 형태만 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힘껏 휘두르면 강철 갑옷이나 투구도 찌부러졌다. 뿐만 아니라 부서진 갑옷의 파편이 몸에 파고들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희생자가 속출하는 것을 본 병원 기사단의 단장은 부하 한 명을 리처드에게 보냈다. 반격을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리처드는 허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끝까지 방어로 일관하며 행군을 계속했지만, 병원 기사단 기사들에게 퍼붓는 살라딘군의 공격은 갈수록 심해져 마치 도망치는 양의 엉덩이 살을 뒤에서 물어뜯는 늑대 떼와 흡사했다. 이번에는 단장이 직접 말을 달려 리처드를 찾아가 반격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처드는 허락하지 않았다. 자기 부대로 돌아온 기사단장이 목격한 것은, 이대로 계속 당하기만 한다면 명예가 더럽혀진다고 외치는, 피투성이가 된 동지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그들에게 두 번에 걸친 리처드의 거절은 잔혹함 그 이상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결국 기사단장 가르니에는 리처드의 명령을 거스르더라도 반격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내내 참아온 기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병원 기사단 전원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반격을 시작했다. 이를 본 리처드는 곧바로 전술을 변경했다. 뛰어난 무장은 미리 생각한 전술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적당한 파도가 다가오면 주저하지 않고 올라탈 줄 안다. 자기 중대를 이끌고 격전이 벌어지는 후위로 달려간 리처즈는 선두에 서서 적진 깊숙이 쳐들어갔다. 그러자 리처드가 움직인 것을 안 다른 장수들도 각 중대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이리하여 행군의 후위는 가장 심한 전투의 장이 되었다. (132~136쪽)
그 어떤 누구도 십자군 전쟁과 그 주인공들을 이처럼 생동감 있게, 박력 있게, 매력적으로 그려낸 적이 없었다. 3차부터 8차 십자군,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종결된 이후 새로운 존재 이유를 찾아나서는 기사단의 후일담과 템플 기사단의 비극적 최후까지 1백 년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의 운명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온다. 과연 십자군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제3차 십자군
이슬람교도가 붙여준 별명 ‘사자심왕 리처드’로 유명한 영국 왕 리처드 1세. 그는 하틴 전투로 십자군 국가를 궤멸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간 살라딘에 맞서 뛰어난 전략과 타고난 용맹성으로 아코에서 아스칼론에 이르는 항구도시를 되찾는다. 성도 예루살렘을 코앞에 두고 살라딘과 협상을 시작하여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공존하는 도시로 만든다.
제4차 십자군
이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교도와의 전쟁으로의 방향 전환을 주도하고 황위 자리가 빈 비잔틴제국을 대신하여 라틴제국을 세운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 세계사 교과서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기록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 조정된 프랑스 제후들의 원정 참여로 시작되었으나 술탄 알 아딜과의 불가침협정을 맺은 베네치아의 참전으로 행선지가 변경되어 10개월에 이르는 공방전을 통해 천 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라틴제국이 건설된다.
제5차 십자군
‘불신앙의 무리’와의 타협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도의 피로 성도 예루살렘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슬람측에 대한 유리한 협상 시점을 놓쳐 버리고 결국 원정을 실패로 이끈 교황 대리 펠라조. 십자군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교황 호노리우스 3세는 ‘교황 대리’ 펠라조를 십자군 원정에 참여시킨다. 이슬람측의 사각지대였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의 항구도시 다미에타를 공략하는데 성공하지만 불리한 상황에 있던 이슬람측의 강화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성도 예루살렘을 피를 흘리지 않고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제6차 십자군
심리전을 방불케 하는 교묘한 외교 전술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지 예루살렘을 수복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자신이 지배하는 시칠리아에서 이슬람교도들의 무에진 소리가 울려퍼질 수 있도록 허락한, 중세 유럽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 인물은, 살라딘의 아우이자 술탄이 된 알 아딜과 그를 이은 알 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에 그리스도교 순례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강화조약이 지속되도록 하고 그리스도교도의 숙원인 예루살렘도 되찾는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으로부터 두 번이나 연거푸 파문을 받고, ‘불신앙의 무리’와의 교섭을 통해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했다는 이유로 그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다. 성도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피를 흘리며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황에 의해 ‘그리스도의 적’으로까지 선언되었다.
제7차와 제8차 십자군
무참한 실패로 귀결되었으나 십자군 원정을 두 번이나 이끌어 교황청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된 프랑스 왕 루이 9세. 사자심왕 리처드와 프리드리히 2세와는 달리 이슬람의 중심인 이집트를 공략한 루이는 나일강의 삼각주 지대에 있는 도시 다미에타 공략에는 성공하지만 결국 몰살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십자군 전체가 포로가 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20년 뒤 다시 한 번 원정을 나서지만 튀니지아에 상륙하자마자 루이 자신이 역병에 걸려 죽음으로써 두번째의 원정도 실패하고 만다. 이교도로부터 성도를 되찾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두 번이나 치른, 그리고 참담한 패배자가 되어 ‘순직’한 이 왕은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군 원정에 참가한 그 어떤 왕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던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3차 십자군에서 새롭게 등장한 튜턴 기사단과 여전히 십자군 전력의 주축을 담당한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의 후반 한 세기에 주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 기간 내내 출신과 스타일의 차이와 라이벌 의식 때문에 협동해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던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이지만, 1291년 팔레스티나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리스도교의 도시 아코에서 벌어진 공방전 그 최후의 날에 두 기사단의 단장은 마치 등을 맞대고 싸우듯 함께 분투하다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명맥을 유지하는 튜턴 기사단이나 병원 기사단과는 달리 템플 기사단은 교황과 프랑스 왕에 의해 조직 자체가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 한 마디에 고무되어 고국을 떠나 먼 팔레스티나에 와서 다른 어느 기사단보다 맹목적이고 광신적으로 이슬람교도를 공격하는 일에 앞장섰던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 이단 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짐으로써 템플 기사단은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지도자 살라딘과 알 아딜, 알 카밀은 살라딘의 냉철함과 합리성 그리고 관용 정신을 이어가고 이슬람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자심왕 리처드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협상을 통해 성도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공생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고, 이 협상을 신뢰의 약속으로 계속 유지시켜나가도록 한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를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집어삼킨 몽골제국은 이슬람의 빛나는 수도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마저 폐허로 만들고, 이 몽골의 서진을 노예 출신의 장수 바이바르스가 막아내 새로운 술탄의 자리에 오른다. 그 포악함으로 서유럽 세계를 떨게 했던 술탄 바이바르스는 “그리스도교도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중해에 처넣어주겠다”고 선언하고, 마침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그리스도교도를 일소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장대한 시리즈의 완결편에서 십자군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역사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지, 이 시대에 필요한 궁극의 외교론과 공생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강화로 끝난 이 제3차 십자군에 대해, 현대의 많은 연구자들은 상황이 그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평한다.
분명히 십자군측은 예루살렘을 수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를 목표로 내세우고 원정을 시작했던 제3차 십자군은 군사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리처드와 살라딘이 성립한 이 평화는 강화 조문에 명기된 3년 8개월이라는 기한을 훌쩍 넘어, 간혹 사고는 있었지만, 1218년까지 26년 동안 이어졌다.
26년이라는 세월이 짧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가령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26년간의 평화가 성립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기 중근동의 십자군 세력을 생각하면, 이 26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던 것이다.
1218년은 알 아딜이 죽은 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평화가 깨진 것은 그리스도교측이 제5차 십자군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206쪽)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쟁은 인류 최대의 악업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도무지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승패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후 얼마나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단기간의 평화를 쌓아가는 식으로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제3차 십자군은 그리스도교측과 이슬람측이 정면으로 충동해, ‘꽃의 제3차’로 불릴 정도로 매우 치열하게 싸웠던 십자군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 리처드와 살라딘이 체결한 강화는 그후로 사반세기나 이어진다. 그리고 제5차 십자군으로 인해 3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8년간 이어졌다. 모두 합치면 33년이다.
물론 이슬람측에 살라딘, 알 아딜, 알 카밀이라는 현명하고 현실적인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이 이어진 것의 이점이 컸다. (…)
만약 이 33년을 더 연장하고 싶다면, 그리스도교측에는 “불신앙의 무리와의 강화는 절대 안 된다”거나 “성도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피를 흘려 탈환해야 한다”는 등의 과격한 발언에 영향받지 않을 지도자가 나와야 했다.(335~336쪽)
야파, 즉 텔아비브는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이스라엘 제일의 도시다. 한편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가자는 팔레스티나 사람들의 자치지구이자, 파타하보다 과격한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 지구’의 중심적인 곳이다. 가자 역시 정치 기능이 집중된 도시라 할 수 있다.
텔아비브에서 가자까지의 거리는 불과 17킬로미터 안팎이다. 21세기인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는 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미사일을 쏘아대고 다른 한쪽은 공중폭격으로 대응하며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서, 지금으로부터 8백 년쯤 전인 1228년에서 1229년 사이는,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 공생을 실현하기 위한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그리스도교 세계 속계의 일인자인 황제와 이슬람 세계 속계의 일인자인 술탄, 즉 정상 중의 정상들이.(382~383쪽)
이 장대한 시리즈의 완결편은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560쪽)
십자군 전쟁이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옳은 전쟁’이란 무엇이고 과연 그 ‘옳은 전쟁’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 작가 소개
저 : 시오노 나나미
Nanami Shiono ,鹽野七生,しおのななみ
1937년 7월 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3년 가쿠슈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도쿄대학 시험에 떨어진 후 가쿠슈인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열풍처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 후 1964년 『일리아드』의 고향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4년 뒤인 1968년,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5년에 걸쳐서 로마인 이야기를 1년에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표했던 시오노 나나미는 무엇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이다.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현장을 발로 취재하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3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30여 권에 이르는 저작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초기작인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해,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20여 권의 중세 르네상스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로마 제국 흥망성쇄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남자들에게』 『사일런트 마이너리티』 등 그 특유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성적 에세이류가 그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힘을 숭배하는 보수적인 작가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마음을 열고 어떤 일에든지 개방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면 인생은 굉장히 유익하고 즐거워진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줄 안다. 그것은 시오노 나나미를 오늘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서도록 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인 『로마인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의 철학과 좌표를 제시하는 동양인이 쓴 서양사이다. 이 작품은 방대한 자료를 취재 · 정리해가면서 엮어간 거대한 로마 통사이면서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지침서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인에 의해 씌어진 서양서보다 서양의 역사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시하여 의문조차 갖지 않는 사실들에 대해 집요한 의문을 가지면서 크나큰 역사적 의문을 풀어가는 작가 특유의 방법이 서양문화에 속하지 않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저작들을 읽는 데 훨씬 도움을 준다. 그녀의 작품들은 각자의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15세기 피렌체의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탐구하여 『마키아벨리 어록』과 함께 내놓은 책으로,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인 「군주론」「전략론」「정략론」「피렌체사」에서 그의 언어들을 그대로 발췌하여 수록함으로써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의 작품으로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은빛 피렌체』, 『주홍빛 베네치아』, 『황금빛 로마』,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 그리고 전쟁 이야기를 다룬 『로도스섬 공방』, 『전레판토해전』 등의 작품이 있다. 그밖에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을 서술한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하)』, 『문학의 탄생』, 그리고 『침묵하는 소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사랑의 풍경』, 『살로메 유모 이야기』,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1·2) 등의 에세이가 있다. 현재 현재까지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집필중이다.
역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환상의 빛』, 『탐구 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유럽 근대문학의 태동』, 『세계지도의 탄생』, 『십자군 이야기』 등이 있다.
감수 : 차용구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파사우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중세 유럽 여성의 발견』이, 옮긴 책으로 『중세의 빛과 그림자』가 있고 「중세 문화 속의 그리스 신화」「필립 아리에스의 죽음관에 대한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 주요 목차
제1장 | 사자심왕 리처드와 제3차 십자군
‘성도’를 잃다
영국
프랑스
리처드와 필리프
황제 ‘붉은 수염’
티루스 공방
몬페라토 후작 코라도
아코 탈환전
살라딘, 전장으로
전방의 적과 후방의 적
‘붉은 수염’의 최후
두 명의 젊은 왕
키프로스 섬
전장에 들어서다
탈환하다
프랑스 왕의 귀국
‘튜턴 기사단’의 탄생
리처드 대 살라딘
대결 제 1전 ‘아르수프’
싸움이 끝나고
야파 수복
‘성도’로 가는 길
불리한 현실
그래도 앞으로
모국에서 온 나쁜 소식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대결 제2전 ‘야파’
강화를 향하여
살라딘의 리처드 평
그후의 리처드
제2장 |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4차 십자군
수재 교황의 등장
도제 단돌로
술탄 알 아딜
프랑스의 젊은 제후들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의 참전
프랑스에서는
집결지 베네치아에서
출진
자라 공략
비잔틴제국 황자
행선지 변경
콘스탄티노플 공략
‘라틴제국’
‘지중해의 여왕’
제3장 | 로마 교황청과 제5차 십자군
‘성지’의 상황
‘소년 십자군’
왕들은 움직이지 않고
‘교황 대리’ 펠라조
다미에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강화 제안 (1)
강화 제안 (2)
제5차 십자군의 최후
제4장 | 황제 프리드리히와 제6차 십자군
남쪽 섬 시칠리아
황제 즉위
원정은 언제?
사라센 거류지
나폴리 대학
살레르노 의학교
예루살렘 왕으로
적과의 접촉
교황 그레고리우스
첫 번째 ‘파문’
두 번째 ‘파문’
출발
아코 도착
접촉 재개
텔아비브와 사자 사이에서
강화 체결
반대의 소용돌이에서
‘성도’ 방문
교회와 모스크
‘그리스도의 적’
귀국
‘평화의 키스’
제5장 | 프랑스 왕 루이와 제7차 십자군
이상적인 군주
화려한 출진
이집트 상륙
강경한 진군
만수라의 참극
철수
미증유의 패배
제7차 십자군의 ‘성과’
제6장 | 최후의 반세기
몽골의 위협
몰골 대 맘루크
성왕 루이와 제8차 십자군
항구도시 아코
‘그리스도교도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중해에 처넣어주겠다’
표적은 좁혀졌다
아코 공방전
최후의 날
제7장 | 십자군 후유증
‘로도스 기사단’에서 ‘몰타 기사단’으로
템플 기사단의 최후
‘아비뇽 유수’
이탈리아의 경제인들
성지순례
맺음말
연표
참고문헌
도판 출처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그 마지막 장면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과 서늘한 문장의 장관,
그 속에서 빛나는 날카로운 통찰
인류사의 가장 문제적인 사건 십자군 전쟁에서
궁극의 외교론과 공생론을 배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필생의 역작이자 2011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독자들을 흥분시켰던 장대한 시리즈가 완간되었다.
인류 역사상 2백 년이라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치러진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한 인류 역사의 대사건, 십자군 전쟁.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십자군 전쟁. 현대의 다양한 문화산업에서 변형되어 재생산되는, 상상력의 원천인 십자군 전쟁. 하지만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기존의 연구서들은 서구 중심 혹은 이슬람 중심의 시각틀 내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시각틀에 갇혀 그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전쟁을 실제로 일으키고 그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움직였던, 그리하여 그들 각자의 독특하고도 다른 개성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또다른 국면을 만들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했던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상과 욕망, 성공과 좌절의 명암을 통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십자군 전쟁을 새롭게 조명해낸다. 시오노 나나미에 의해 십자군 이야기가 9백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현대적 이야기로 부활한 것이다.
1권에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위력적인 한 마디로 촉발된 유럽의 봉건제후와 주교, 수도사와 기사, 그리고 빈민들로 구성된 제1차 십자군의 결성과 그들에 의해 십자군 국가가 성립하는 20여 년의 과정을 다뤘다.
2권에서는 십자군의 제1세대가 모두 역사에서 퇴장한 뒤,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으로 등극하는 1118년부터 시토파의 수도사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제창에 의한 제2차 십자군의 결성과 퇴각(1146~1148),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십자군 시대 이전으로 되돌리는 1187년까지, 이슬람의 대반격이 시작되는 제2차 십자군 전후의 70여 년의 기간을 다뤘다. 이제 완결편인 3권에서는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격돌한 하틴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뒤 십자군 국가가 성도 예루살렘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토를 잃은 채 안티오키아와 트리폴리, 티루스 일대로 축소되자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유럽에서 속속 일어났던 3차에서 8차까지의 십자군 원정과 십자군 국가에 남겨진 최후의 도시 아코에서 벌어진 공방전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진 기사단의 운명까지 1백여 년 동안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압도적인 필력은 『십자군 이야기』3권에서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그 순간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박진감이 넘치는 묘사와 서슴없이 핵심을 파고드는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문장 속에서 십자군 전쟁의 영웅들이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나 우리 앞으로 걸어나온다.
병원 기사단의 기사들은 리처드의 명령대로 방어에만 전념하려 했다. 하지만 이날은 적의 기병부대의 맹공을 버텨내는 사이에 앞서 기병에 추월당했던 적의 보병부대까지 전투에 가세했다. 이슬람 보병은 접근전이 되자 우선 화살을 쏘는 각도를 바꾸었다. 위를 형해 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측 기병의 말을 겨냥한 것이다. 그리고 말을 잃고 보병이 된 기병을 향해, 활과 화살을 등뒤로 메고 이번에는 못 박힌 곤봉을 휘두르며 돌격해왔다. 이 곤봉의 위력은 원시적인 형태만 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힘껏 휘두르면 강철 갑옷이나 투구도 찌부러졌다. 뿐만 아니라 부서진 갑옷의 파편이 몸에 파고들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희생자가 속출하는 것을 본 병원 기사단의 단장은 부하 한 명을 리처드에게 보냈다. 반격을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리처드는 허락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끝까지 방어로 일관하며 행군을 계속했지만, 병원 기사단 기사들에게 퍼붓는 살라딘군의 공격은 갈수록 심해져 마치 도망치는 양의 엉덩이 살을 뒤에서 물어뜯는 늑대 떼와 흡사했다. 이번에는 단장이 직접 말을 달려 리처드를 찾아가 반격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처드는 허락하지 않았다. 자기 부대로 돌아온 기사단장이 목격한 것은, 이대로 계속 당하기만 한다면 명예가 더럽혀진다고 외치는, 피투성이가 된 동지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그들에게 두 번에 걸친 리처드의 거절은 잔혹함 그 이상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결국 기사단장 가르니에는 리처드의 명령을 거스르더라도 반격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내내 참아온 기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병원 기사단 전원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반격을 시작했다. 이를 본 리처드는 곧바로 전술을 변경했다. 뛰어난 무장은 미리 생각한 전술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적당한 파도가 다가오면 주저하지 않고 올라탈 줄 안다. 자기 중대를 이끌고 격전이 벌어지는 후위로 달려간 리처즈는 선두에 서서 적진 깊숙이 쳐들어갔다. 그러자 리처드가 움직인 것을 안 다른 장수들도 각 중대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이리하여 행군의 후위는 가장 심한 전투의 장이 되었다. (132~136쪽)
그 어떤 누구도 십자군 전쟁과 그 주인공들을 이처럼 생동감 있게, 박력 있게, 매력적으로 그려낸 적이 없었다. 3차부터 8차 십자군,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종결된 이후 새로운 존재 이유를 찾아나서는 기사단의 후일담과 템플 기사단의 비극적 최후까지 1백 년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의 운명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온다. 과연 십자군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제3차 십자군
이슬람교도가 붙여준 별명 ‘사자심왕 리처드’로 유명한 영국 왕 리처드 1세. 그는 하틴 전투로 십자군 국가를 궤멸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간 살라딘에 맞서 뛰어난 전략과 타고난 용맹성으로 아코에서 아스칼론에 이르는 항구도시를 되찾는다. 성도 예루살렘을 코앞에 두고 살라딘과 협상을 시작하여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공존하는 도시로 만든다.
제4차 십자군
이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교도와의 전쟁으로의 방향 전환을 주도하고 황위 자리가 빈 비잔틴제국을 대신하여 라틴제국을 세운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 세계사 교과서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기록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 조정된 프랑스 제후들의 원정 참여로 시작되었으나 술탄 알 아딜과의 불가침협정을 맺은 베네치아의 참전으로 행선지가 변경되어 10개월에 이르는 공방전을 통해 천 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라틴제국이 건설된다.
제5차 십자군
‘불신앙의 무리’와의 타협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도의 피로 성도 예루살렘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슬람측에 대한 유리한 협상 시점을 놓쳐 버리고 결국 원정을 실패로 이끈 교황 대리 펠라조. 십자군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교황 호노리우스 3세는 ‘교황 대리’ 펠라조를 십자군 원정에 참여시킨다. 이슬람측의 사각지대였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의 항구도시 다미에타를 공략하는데 성공하지만 불리한 상황에 있던 이슬람측의 강화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성도 예루살렘을 피를 흘리지 않고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제6차 십자군
심리전을 방불케 하는 교묘한 외교 전술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지 예루살렘을 수복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자신이 지배하는 시칠리아에서 이슬람교도들의 무에진 소리가 울려퍼질 수 있도록 허락한, 중세 유럽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 인물은, 살라딘의 아우이자 술탄이 된 알 아딜과 그를 이은 알 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에 그리스도교 순례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강화조약이 지속되도록 하고 그리스도교도의 숙원인 예루살렘도 되찾는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으로부터 두 번이나 연거푸 파문을 받고, ‘불신앙의 무리’와의 교섭을 통해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했다는 이유로 그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다. 성도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피를 흘리며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황에 의해 ‘그리스도의 적’으로까지 선언되었다.
제7차와 제8차 십자군
무참한 실패로 귀결되었으나 십자군 원정을 두 번이나 이끌어 교황청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된 프랑스 왕 루이 9세. 사자심왕 리처드와 프리드리히 2세와는 달리 이슬람의 중심인 이집트를 공략한 루이는 나일강의 삼각주 지대에 있는 도시 다미에타 공략에는 성공하지만 결국 몰살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십자군 전체가 포로가 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20년 뒤 다시 한 번 원정을 나서지만 튀니지아에 상륙하자마자 루이 자신이 역병에 걸려 죽음으로써 두번째의 원정도 실패하고 만다. 이교도로부터 성도를 되찾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두 번이나 치른, 그리고 참담한 패배자가 되어 ‘순직’한 이 왕은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군 원정에 참가한 그 어떤 왕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던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3차 십자군에서 새롭게 등장한 튜턴 기사단과 여전히 십자군 전력의 주축을 담당한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의 후반 한 세기에 주역으로 활동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 기간 내내 출신과 스타일의 차이와 라이벌 의식 때문에 협동해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던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이지만, 1291년 팔레스티나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리스도교의 도시 아코에서 벌어진 공방전 그 최후의 날에 두 기사단의 단장은 마치 등을 맞대고 싸우듯 함께 분투하다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명맥을 유지하는 튜턴 기사단이나 병원 기사단과는 달리 템플 기사단은 교황과 프랑스 왕에 의해 조직 자체가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 한 마디에 고무되어 고국을 떠나 먼 팔레스티나에 와서 다른 어느 기사단보다 맹목적이고 광신적으로 이슬람교도를 공격하는 일에 앞장섰던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 이단 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짐으로써 템플 기사단은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지도자 살라딘과 알 아딜, 알 카밀은 살라딘의 냉철함과 합리성 그리고 관용 정신을 이어가고 이슬람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자심왕 리처드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협상을 통해 성도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공생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고, 이 협상을 신뢰의 약속으로 계속 유지시켜나가도록 한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를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집어삼킨 몽골제국은 이슬람의 빛나는 수도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마저 폐허로 만들고, 이 몽골의 서진을 노예 출신의 장수 바이바르스가 막아내 새로운 술탄의 자리에 오른다. 그 포악함으로 서유럽 세계를 떨게 했던 술탄 바이바르스는 “그리스도교도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중해에 처넣어주겠다”고 선언하고, 마침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그리스도교도를 일소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장대한 시리즈의 완결편에서 십자군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역사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지, 이 시대에 필요한 궁극의 외교론과 공생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강화로 끝난 이 제3차 십자군에 대해, 현대의 많은 연구자들은 상황이 그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평한다.
분명히 십자군측은 예루살렘을 수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를 목표로 내세우고 원정을 시작했던 제3차 십자군은 군사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리처드와 살라딘이 성립한 이 평화는 강화 조문에 명기된 3년 8개월이라는 기한을 훌쩍 넘어, 간혹 사고는 있었지만, 1218년까지 26년 동안 이어졌다.
26년이라는 세월이 짧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가령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26년간의 평화가 성립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기 중근동의 십자군 세력을 생각하면, 이 26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던 것이다.
1218년은 알 아딜이 죽은 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평화가 깨진 것은 그리스도교측이 제5차 십자군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206쪽)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쟁은 인류 최대의 악업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도무지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승패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후 얼마나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단기간의 평화를 쌓아가는 식으로 달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제3차 십자군은 그리스도교측과 이슬람측이 정면으로 충동해, ‘꽃의 제3차’로 불릴 정도로 매우 치열하게 싸웠던 십자군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 리처드와 살라딘이 체결한 강화는 그후로 사반세기나 이어진다. 그리고 제5차 십자군으로 인해 3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8년간 이어졌다. 모두 합치면 33년이다.
물론 이슬람측에 살라딘, 알 아딜, 알 카밀이라는 현명하고 현실적인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이 이어진 것의 이점이 컸다. (…)
만약 이 33년을 더 연장하고 싶다면, 그리스도교측에는 “불신앙의 무리와의 강화는 절대 안 된다”거나 “성도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피를 흘려 탈환해야 한다”는 등의 과격한 발언에 영향받지 않을 지도자가 나와야 했다.(335~336쪽)
야파, 즉 텔아비브는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이스라엘 제일의 도시다. 한편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가자는 팔레스티나 사람들의 자치지구이자, 파타하보다 과격한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 지구’의 중심적인 곳이다. 가자 역시 정치 기능이 집중된 도시라 할 수 있다.
텔아비브에서 가자까지의 거리는 불과 17킬로미터 안팎이다. 21세기인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는 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미사일을 쏘아대고 다른 한쪽은 공중폭격으로 대응하며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서, 지금으로부터 8백 년쯤 전인 1228년에서 1229년 사이는,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 공생을 실현하기 위한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그리스도교 세계 속계의 일인자인 황제와 이슬람 세계 속계의 일인자인 술탄, 즉 정상 중의 정상들이.(382~383쪽)
이 장대한 시리즈의 완결편은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560쪽)
십자군 전쟁이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옳은 전쟁’이란 무엇이고 과연 그 ‘옳은 전쟁’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 작가 소개
저 : 시오노 나나미
Nanami Shiono ,鹽野七生,しおのななみ
1937년 7월 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3년 가쿠슈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도쿄대학 시험에 떨어진 후 가쿠슈인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열풍처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 후 1964년 『일리아드』의 고향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4년 뒤인 1968년,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5년에 걸쳐서 로마인 이야기를 1년에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표했던 시오노 나나미는 무엇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이다.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현장을 발로 취재하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해석과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운 필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3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로 알려진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으로 1970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30여 권에 이르는 저작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초기작인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해,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20여 권의 중세 르네상스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로마 제국 흥망성쇄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그리고 『남자들에게』 『사일런트 마이너리티』 등 그 특유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감성적 에세이류가 그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영웅들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힘을 숭배하는 보수적인 작가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마음을 열고 어떤 일에든지 개방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면 인생은 굉장히 유익하고 즐거워진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줄 안다. 그것은 시오노 나나미를 오늘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서도록 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인 『로마인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의 철학과 좌표를 제시하는 동양인이 쓴 서양사이다. 이 작품은 방대한 자료를 취재 · 정리해가면서 엮어간 거대한 로마 통사이면서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지침서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인에 의해 씌어진 서양서보다 서양의 역사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시하여 의문조차 갖지 않는 사실들에 대해 집요한 의문을 가지면서 크나큰 역사적 의문을 풀어가는 작가 특유의 방법이 서양문화에 속하지 않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저작들을 읽는 데 훨씬 도움을 준다. 그녀의 작품들은 각자의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15세기 피렌체의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탐구하여 『마키아벨리 어록』과 함께 내놓은 책으로,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인 「군주론」「전략론」「정략론」「피렌체사」에서 그의 언어들을 그대로 발췌하여 수록함으로써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의 작품으로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은빛 피렌체』, 『주홍빛 베네치아』, 『황금빛 로마』,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 그리고 전쟁 이야기를 다룬 『로도스섬 공방』, 『전레판토해전』 등의 작품이 있다. 그밖에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을 서술한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하)』, 『문학의 탄생』, 그리고 『침묵하는 소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사랑의 풍경』, 『살로메 유모 이야기』,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1·2) 등의 에세이가 있다. 현재 현재까지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집필중이다.
역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환상의 빛』, 『탐구 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유럽 근대문학의 태동』, 『세계지도의 탄생』, 『십자군 이야기』 등이 있다.
감수 : 차용구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파사우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중세 유럽 여성의 발견』이, 옮긴 책으로 『중세의 빛과 그림자』가 있고 「중세 문화 속의 그리스 신화」「필립 아리에스의 죽음관에 대한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 주요 목차
제1장 | 사자심왕 리처드와 제3차 십자군
‘성도’를 잃다
영국
프랑스
리처드와 필리프
황제 ‘붉은 수염’
티루스 공방
몬페라토 후작 코라도
아코 탈환전
살라딘, 전장으로
전방의 적과 후방의 적
‘붉은 수염’의 최후
두 명의 젊은 왕
키프로스 섬
전장에 들어서다
탈환하다
프랑스 왕의 귀국
‘튜턴 기사단’의 탄생
리처드 대 살라딘
대결 제 1전 ‘아르수프’
싸움이 끝나고
야파 수복
‘성도’로 가는 길
불리한 현실
그래도 앞으로
모국에서 온 나쁜 소식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대결 제2전 ‘야파’
강화를 향하여
살라딘의 리처드 평
그후의 리처드
제2장 |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4차 십자군
수재 교황의 등장
도제 단돌로
술탄 알 아딜
프랑스의 젊은 제후들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의 참전
프랑스에서는
집결지 베네치아에서
출진
자라 공략
비잔틴제국 황자
행선지 변경
콘스탄티노플 공략
‘라틴제국’
‘지중해의 여왕’
제3장 | 로마 교황청과 제5차 십자군
‘성지’의 상황
‘소년 십자군’
왕들은 움직이지 않고
‘교황 대리’ 펠라조
다미에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강화 제안 (1)
강화 제안 (2)
제5차 십자군의 최후
제4장 | 황제 프리드리히와 제6차 십자군
남쪽 섬 시칠리아
황제 즉위
원정은 언제?
사라센 거류지
나폴리 대학
살레르노 의학교
예루살렘 왕으로
적과의 접촉
교황 그레고리우스
첫 번째 ‘파문’
두 번째 ‘파문’
출발
아코 도착
접촉 재개
텔아비브와 사자 사이에서
강화 체결
반대의 소용돌이에서
‘성도’ 방문
교회와 모스크
‘그리스도의 적’
귀국
‘평화의 키스’
제5장 | 프랑스 왕 루이와 제7차 십자군
이상적인 군주
화려한 출진
이집트 상륙
강경한 진군
만수라의 참극
철수
미증유의 패배
제7차 십자군의 ‘성과’
제6장 | 최후의 반세기
몽골의 위협
몰골 대 맘루크
성왕 루이와 제8차 십자군
항구도시 아코
‘그리스도교도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중해에 처넣어주겠다’
표적은 좁혀졌다
아코 공방전
최후의 날
제7장 | 십자군 후유증
‘로도스 기사단’에서 ‘몰타 기사단’으로
템플 기사단의 최후
‘아비뇽 유수’
이탈리아의 경제인들
성지순례
맺음말
연표
참고문헌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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