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962년 3월 1일 윤보선 대통령은 남자현에게 독립유공자 건국공로훈장 복장(?), 2등 훈장)을 수여한다. 복장은 모두 58명이 받았으며, 이 중에는 신채호, 이봉창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 중에서는 남자현이 유일했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훈장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현은 3?1 만세 운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관순 열사보다 더 높이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184쪽). 그러나 유관순 열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만주에서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불린 남자현을 모른다.
경북 영양군에서 자란 남자현은 양반집의 며느리였다. 그녀는 20대에 의병 전투를 치르던 남편을 잃고, 38세에 나라를 잃었다. 남편 없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녀는 47세의 나이에 만주로 향한다. 만주에서 그녀는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의 해결부터 시작했다. 독립운동의 분파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벌였으며, 자신의 손가락 3개를 베어 가며 혈서를 쓴다. 그녀가 국제연맹으로 혈서와 베어낸 손가락을 보낸 뜻은 대한의 여성이 이토록 치열하게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염원의 강렬함을 확인시켜주고자 함이었다. 그녀는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서울로 잠입했지만, 저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61세의 나이에도 그녀는 만주국의 일제 실세인 전권대사를 죽이러 간다. 만약 상황이 도와주었다면, 우리는 안중근, 이봉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일제의 거물을 암살한 ‘위대한 여성 의거’를 역사에 기록해놓았을 것이다.
거의 없다시피 한 남자현에 대한 기록과 그녀가 남긴 글, 유품의 부재(- :)는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더불어 그 사후조차도 안타깝게 하였다. 남자현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 행적과 삶의 의미를 기리는 일은, 그녀의 후손들에게 영광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지역 관광 사업을 돕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적 진실을 찾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책무이며, 어떤 경전이나 시문보다도 빼어난 가르침을 한 인물의 삶을 통해서 되찾는 일이다. 남자현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 후손들에게 추앙받기를 원한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녀가 목숨을 걸고 살아낸 삶과 공훈이 우리 겨레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야 할 것은 더욱더 아닐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상국
본명보다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빈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빈섬''은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은 히트 블로그의 운영자인 그의 아이디이다. 빈섬이라는 아이디는 사랑이 지나가는 허탈(빈)과 사랑 한복판의 고독(섬)을 뜻한다. ''빈섬''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한 때 ''이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추사가 태어난 지(1786년 6월3일) 175년 1개월째 되던 날, 빈섬은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추사가 태어나던 날 우물물이 마르고 예산 오석산과 팔봉산의 나뭇잎들이 일시 시들었다고 하는데, 빈섬이 태어나던 저녁답은 경주 남산이 표정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모친의 꿈에 봉황이 집 앞의 오동나무에 앉았다가 무지개를 타고 붉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추사는 예산 화암사를 드나들었지만, 빈섬은 경주 불무사佛無寺에 이름을 올렸다. 한 스님이 와서 어린 빈섬을 보고 불문佛門에 들면 한몫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0세 때 추사는 박제가를 스승을 삼아 북학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 빈섬은 초등학교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김무열 선생을 만났고 그림과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추사가 연경에 가던 25세 때 빈섬은 군에서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서 연애에 빠졌다. 그가 초의를 만나던 30세 때, 빈섬은 결혼을 했고 신문사를 옮겼다.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하던 31세엔 빈섬은 언론의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32세 때 4월 29일 추사가 경주에 와서 무장사비 비편을 발견하던 날, 빈섬은 서울에서 신문사 야근을 하느라 바빴다. 추사가 규장각 대교가 되는 38세에 빈섬은 호암아트홀에서「세한도」를 만나고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추사는 두 번 결혼을 하고 첩을 하나 두었으나, 빈섬은 한 번 결혼을 해서 그 아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추사의 인생시계로 보자면 지금은 효명세자 시절 피어났던 그의 정치적 꿈이 좌절된 뒤, 재기를 모색하는 때이다. 부친이 귀양을 간 뒤 그는 궁궐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억울함을 알리는 꽹과리를 울렸다. 그런 오기와 격정의 시대에, 빈섬은 신문의 위기를 맞아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와 역사를 공부하고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잠을 줄여 글을 쓰면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벼르고 있다. 그리고 김노경이 풀려나는 9월 이전에, 빈섬은 추사를 쫓아다닌 10년의 흔적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있으리라.
현재 한국언론재단의 편집 전문 교수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편집 강의를 맡았고, 2009년 하반기부터 건국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다. 현재 중앙일보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고, 월간중앙의 기획 취재와 편집을 맡아서 하고 있다. 신문사의 컨설팅도 하러 다니고, 블로그네이버''옛날다방''http://blog.naver.com/isomis에 글도 부지런히 쓴다. 같은 경주 출신인 아내와 재기 발랄한 딸 둘, 속이 넓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저서로 『누드김밥의 노래』,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이상 산문집), 『옛 공부의 즐거움』, 『추사에 미치다』, 『눈물이 빗물처럼』(역사서), 『신문, 세상을 편집하라』,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열며
‘여자 안중근’과의 만남 8
논어와 근사록을 읊조리는 소녀 29
의병 남편의 죽음과 유복자 아들 20
24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48
23년간 ‘보통 여인’으로 살기 61
1919년 그 짧은 혁명 71
47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80
만주, 투쟁의 땅 희망의 벌판에 서서 87
동향사람, 이상룡과 김동삼 98
만주에 여걸이 나타났다 106
서울 혜화동, 권총을 든 여인 121
도산 안창호를 구출하다 130
만보산 사건, 그리고 김동삼 구출작전 137
무명지를 자르며 141
일본 전권대사 무등을 암살하라 155
임종, 위대한 유언 163
차 례
61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168
이봉창, 신채호와 같은 급의 훈장을 받다 184
부록 하나
Interveiw One 친손자 김시련 190
Interveiw Two 친정 손자 남재각 202
회고담 장남 김성삼 209
여협 남자현전 (조소앙 지음) 211
부록 둘
‘조선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220
‘이등박문의 양딸이 된 흑치마’ 배정자 239
독자들에게 쓰는 편지
왜 이토록 역사는 남자현을 지워버렸는가 262
1962년 3월 1일 윤보선 대통령은 남자현에게 독립유공자 건국공로훈장 복장(?), 2등 훈장)을 수여한다. 복장은 모두 58명이 받았으며, 이 중에는 신채호, 이봉창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 중에서는 남자현이 유일했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훈장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현은 3?1 만세 운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관순 열사보다 더 높이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184쪽). 그러나 유관순 열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만주에서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불린 남자현을 모른다.
경북 영양군에서 자란 남자현은 양반집의 며느리였다. 그녀는 20대에 의병 전투를 치르던 남편을 잃고, 38세에 나라를 잃었다. 남편 없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녀는 47세의 나이에 만주로 향한다. 만주에서 그녀는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의 해결부터 시작했다. 독립운동의 분파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벌였으며, 자신의 손가락 3개를 베어 가며 혈서를 쓴다. 그녀가 국제연맹으로 혈서와 베어낸 손가락을 보낸 뜻은 대한의 여성이 이토록 치열하게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염원의 강렬함을 확인시켜주고자 함이었다. 그녀는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서울로 잠입했지만, 저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61세의 나이에도 그녀는 만주국의 일제 실세인 전권대사를 죽이러 간다. 만약 상황이 도와주었다면, 우리는 안중근, 이봉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일제의 거물을 암살한 ‘위대한 여성 의거’를 역사에 기록해놓았을 것이다.
거의 없다시피 한 남자현에 대한 기록과 그녀가 남긴 글, 유품의 부재(- :)는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더불어 그 사후조차도 안타깝게 하였다. 남자현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 행적과 삶의 의미를 기리는 일은, 그녀의 후손들에게 영광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지역 관광 사업을 돕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적 진실을 찾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책무이며, 어떤 경전이나 시문보다도 빼어난 가르침을 한 인물의 삶을 통해서 되찾는 일이다. 남자현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 후손들에게 추앙받기를 원한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녀가 목숨을 걸고 살아낸 삶과 공훈이 우리 겨레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야 할 것은 더욱더 아닐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상국
본명보다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빈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빈섬''은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은 히트 블로그의 운영자인 그의 아이디이다. 빈섬이라는 아이디는 사랑이 지나가는 허탈(빈)과 사랑 한복판의 고독(섬)을 뜻한다. ''빈섬''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한 때 ''이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추사가 태어난 지(1786년 6월3일) 175년 1개월째 되던 날, 빈섬은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추사가 태어나던 날 우물물이 마르고 예산 오석산과 팔봉산의 나뭇잎들이 일시 시들었다고 하는데, 빈섬이 태어나던 저녁답은 경주 남산이 표정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모친의 꿈에 봉황이 집 앞의 오동나무에 앉았다가 무지개를 타고 붉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추사는 예산 화암사를 드나들었지만, 빈섬은 경주 불무사佛無寺에 이름을 올렸다. 한 스님이 와서 어린 빈섬을 보고 불문佛門에 들면 한몫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0세 때 추사는 박제가를 스승을 삼아 북학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 빈섬은 초등학교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김무열 선생을 만났고 그림과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추사가 연경에 가던 25세 때 빈섬은 군에서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서 연애에 빠졌다. 그가 초의를 만나던 30세 때, 빈섬은 결혼을 했고 신문사를 옮겼다.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하던 31세엔 빈섬은 언론의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32세 때 4월 29일 추사가 경주에 와서 무장사비 비편을 발견하던 날, 빈섬은 서울에서 신문사 야근을 하느라 바빴다. 추사가 규장각 대교가 되는 38세에 빈섬은 호암아트홀에서「세한도」를 만나고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추사는 두 번 결혼을 하고 첩을 하나 두었으나, 빈섬은 한 번 결혼을 해서 그 아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추사의 인생시계로 보자면 지금은 효명세자 시절 피어났던 그의 정치적 꿈이 좌절된 뒤, 재기를 모색하는 때이다. 부친이 귀양을 간 뒤 그는 궁궐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억울함을 알리는 꽹과리를 울렸다. 그런 오기와 격정의 시대에, 빈섬은 신문의 위기를 맞아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와 역사를 공부하고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잠을 줄여 글을 쓰면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벼르고 있다. 그리고 김노경이 풀려나는 9월 이전에, 빈섬은 추사를 쫓아다닌 10년의 흔적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있으리라.
현재 한국언론재단의 편집 전문 교수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편집 강의를 맡았고, 2009년 하반기부터 건국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다. 현재 중앙일보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고, 월간중앙의 기획 취재와 편집을 맡아서 하고 있다. 신문사의 컨설팅도 하러 다니고, 블로그네이버''옛날다방''http://blog.naver.com/isomis에 글도 부지런히 쓴다. 같은 경주 출신인 아내와 재기 발랄한 딸 둘, 속이 넓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저서로 『누드김밥의 노래』,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이상 산문집), 『옛 공부의 즐거움』, 『추사에 미치다』, 『눈물이 빗물처럼』(역사서), 『신문, 세상을 편집하라』,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열며
‘여자 안중근’과의 만남 8
논어와 근사록을 읊조리는 소녀 29
의병 남편의 죽음과 유복자 아들 20
24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48
23년간 ‘보통 여인’으로 살기 61
1919년 그 짧은 혁명 71
47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80
만주, 투쟁의 땅 희망의 벌판에 서서 87
동향사람, 이상룡과 김동삼 98
만주에 여걸이 나타났다 106
서울 혜화동, 권총을 든 여인 121
도산 안창호를 구출하다 130
만보산 사건, 그리고 김동삼 구출작전 137
무명지를 자르며 141
일본 전권대사 무등을 암살하라 155
임종, 위대한 유언 163
차 례
61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168
이봉창, 신채호와 같은 급의 훈장을 받다 184
부록 하나
Interveiw One 친손자 김시련 190
Interveiw Two 친정 손자 남재각 202
회고담 장남 김성삼 209
여협 남자현전 (조소앙 지음) 211
부록 둘
‘조선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220
‘이등박문의 양딸이 된 흑치마’ 배정자 239
독자들에게 쓰는 편지
왜 이토록 역사는 남자현을 지워버렸는가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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