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99%의 아테네 시민은
1%의 귀족층이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상태에서,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는가?
“감히 말하건대 평범한 시민이 명문거족을 눌러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함선들을 추진시키고 도시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 아니던가?” 웅변가 크세노폰의 이 같은 연설은 그가 아테네 태생이었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해 보인다. 아테네는 왕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던 이웃 나라들과 달리, 민회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안이 결정되는 최초의 민주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숙이 파고들면 초기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로마의 공화제보다도 민주적이지 못했다. 시민들은 법이 정한대로 민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공직 진출은 금지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소한 일상에 얽매여 민회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사이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 직과 ‘장군’ 직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었고, 최상위 귀족 계층으로 구성된 ‘아레오파고스(귀족회의)’는 500인회와 민회의 힘을 지속적으로 침해하였다.
당시 아테네 시민은 가장 부유한 300여 명의 귀족층과 1,200명의 기사, 1만여 명의 중장보병(호플리테스)과 시민의 대다수를 이룬 2만 여명의 테테스(노동자 계층)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1%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층 300명이 99%에 해당하는 나머지 3만 여명의 시민을 제치고, 부와 권력을 거머쥔 채 아테네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1%에게 집중되었던 부와 권력이 서서히 99%의 시민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 일에 얽매인다고 하기보다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페리클레스의 말이 단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테네는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황금기를 이룩하게 된다.
어떻게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가능했을까? 무엇이 아테네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눈부신 위업을 달성하도록 이끌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아테네 해군’에 있었다.
저자 존 R. 헤일은 그간 누구도 주목하지 못한 아테네 ‘해군’을 통해,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강대국의 위협 속에서도 문명을 꽃피우고,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세계 최강의 해상 제국으로 거듭난 아테네의 역사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현대 국가들이 직면하는 것과 똑같은 문제, 즉 동과 서, 진보와 보수, 과학적 탐구와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 아테네인들의 기지는 물론, 작은 도시국가를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변모시킨 비결이 숨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아테네의 위대함을 나날이 주목하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뒤에는 아테네를 위대하게 만든 게 다름 아닌 모험심 넘치고, 자신들의 할 일을 알고, 일정 기준에 미달되는 것을 수치로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아테네의 역사는 곧 시민 개개인이 일군 역사였다. 자유·평등·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묵묵히 걸어온 아테네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는 바다에서 비롯되었다!
해상 제국 아테네는 지중해 150여 개의 섬과 도시국가를 거느린 광대한 나라였다. 흥미로운 건 이 놀라운 업적이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아테네 해군력은 여러 척의 삼단노선에서 비롯되었고, 이 배에는 오직 아테네 시민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함선도 노를 저을 시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기에, 해군력은 그들의 힘과 땀에 의존하였다. 해군력과 함께 시민의 힘이 커지자 소수의 귀족층으로 집중되었던 권력도 자연히 다수의 시민들에게 넘어갔고, 이는 결국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아테네 황금기였던 기원전 5~4세기는 서양 문명의 뼈대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 1위에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이 지어졌고, <페르시아인들>, <안티고네> 등 현대 연극의 기원이 된 유명한 그리스 희·비극이 창작되었다. 서양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의술의 전통을 수립한 히포크라테스, 최초의 도시 건설자 히포다모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도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났다.
“나를 아테네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세계 시민이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탄생에 기여를 한 ‘해군’은 시인, 예술가, 극작가, 역사가, 정치가, 철학자, 법률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학자들은 노의 메커니즘, 풍향과 별의 움직임을 연구했으며, 정치 이론가들은 해군이 아테네인들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된 연극에도 비극, 희극 가릴 것 없이 항해에 관련된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군이 평범한 아테네인들을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활동적이고, 모험적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는 진정한 시민으로 성장하였다. 소크라테스가 “나를 아테네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세계 시민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해군이 넓혀 놓은 지평 덕분이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들은 타고 난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해군은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들의 양성소였다. 아테네 지도자들은 ‘메티스’라는 특유의 지략을 갖고 있었고, 해전을 치를 때에도 폭력보다는 술책과 간계를 이용하여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냈다. 테미스토클레스만 해도 거짓 정보를 흘려 페르시아 함대를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였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키몬은 그리스 함선과 선원을 페르시아 기장으로 위장하여 적군을 기습했고, 트라실로스는 삼단노선 두 척을 한 쌍으로 묶어 선단의 규모를 작아 보이게 하는 속임수로 적군을 꾀어 들이는 전법을 사용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아테네 지도자들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으며 영광의 자리에 올랐다. 반면 적군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할 경우, 지도자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처벌을 받거나 해외로 추방당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끊임없이 정적들의 방해를 받았고,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는 민회에서 안건을 발표하여 시민들의 동의를 얻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는 다수의 지배자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나 스파르타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왕이나 귀족처럼 타고 난 이들이 아닌, 철저한 노력으로 실력을 검증 받은 이들이 나라를 이끌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작지만 ‘큰’ 차이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완벽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
존 R. 헤일은 이 매력적인 역사서를 통해 문명의 동력이 되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에 힘을 부여하고, 평범한 시민을 탐험으로 이끌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아테네 해군에 주목한다. 그는 학자적 통찰력과 이야기꾼의 육감으로 해상 제국과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재조명하며, 아테네의 영웅들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고, 그들이 수행한 대 장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아테네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둔 위대한 승리와 눈부신 업적 뒤에는 뼈아픈 패배와 숱한 실패의 과정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아테네가 진정 위대해질 수 있었던 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나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는 데 있었다.
아테네는 완벽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벽해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였다.
우리가 한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그들의 실수를 타산지석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는 오늘날 우리를 비추어 주는 최고의 거울이다.
- 해외 서평
헤일의 단순하면서도 힘찬 문장은 첫 페이지부터 읽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드와이트 가너, <뉴욕타임스>
처음 몇 구절만 읽어도 푹 빠져들게 되는 책.
진 두바일,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
재기가 번득이는 이 역사서는 아테네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들을 위한 보석 같은 작품이다 .
<쿠리어 저널>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두 분야에서 쌓은 탄탄한 내공으로, 아테네의 황금기와 민주주의가 해군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논증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내용이 충실하면서도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는,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워싱턴 타임스>
고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충분한 재미와 교훈을 느낄 수 있는 수작!
<히스토리 뉴스 네트워크>
아테네 해군의 흥망사를 물 흐르듯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 역작이다. 격조를 갖춘 의미심장한 책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피레우스와 그곳의 선박 보호소, 고대 아테네인들의 역동적인 삶을 총체적으로 묘사한 탁월한 작품! 이 책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박식함으로 현지 조사와 사료 분석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걸작이다.
<월드 아키올로지 매거진>
아테네 황금기를 지탱시킨 힘은 민주주의ㆍ은(銀)ㆍ이성ㆍ권력이었다. 그 시대가 건축ㆍ철학ㆍ연극ㆍ정치의 면에서 현대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된, 세계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대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이면에는 아테네 해군이 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전투와 선원 생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아테네 해군의 흥망성쇠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독자들은 탁월한 감각과 빼어난 문장으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솜씨 있게 풀어낸 존 R. 헤일의 역작에서, 역동적인 집단의 힘뿐 아니라 작금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초 단계의 투쟁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는 역사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아담 니콜슨, <하느님의 비서>와 <불을 잡는 자>의 저자
▣ 작가 소개
저자 : 존 R. 헤일
‘함선’과 ‘해군’에 통달한 미국의 고고학자 겸 역사학자. 1973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켄터키 주 루이빌 대학에서 현장 고고학자로 유적 발굴 조사를 벌이다가 1983년부터 루이빌 대학의 고고학과 강사 겸 인문과학 대학 학장보를 지냈다. 이후 1988년부터 지금까지 동 대학의 교양학부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는 기원전 483년 함대 건설로부터 기원전 322년 마케도니아에 패하기까지 1세기 반에 걸쳐 진행된 아테네 해상 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존 R. 헤일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7년의 연구 기간 동안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면밀히 검증하고, 도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곳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던 몇몇 점들을 바로잡기도 하였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 전설을 흥미롭게 엮은 바탕 위에 위대한 영웅과 총명한 악당이 활약한 고대 세계를 생생하게 재현한 이 작품은 독자에게 웅장한 서사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저자는 이 책 외에도 다수의 학술 논문을 작성하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고문을 발표하였으며, 디스커버리 채널과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한 고고학 유적 발굴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역자 : 이순호
전문 번역가. 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주립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살라딘>, <타타르로 가는 길>, <미국에 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인류의 미래사>,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중세 유럽의 풍경> 등을 번역하였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서론
1부 자유
1. 한 사람, 하나의 비전 (기원전 483년)
“나는 하프나 리르를 탈 줄은 모르지만, 작은 도시를 위대하게 만드는 법은 알고 있습니다.”
2. 함대 건설 (기원전 483~481년)
삼단노선 100척을 한꺼번에 건조하는 일은,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이나 감당할 수 있는 대역사였다.
3. 목재 담장 (기원전 481~480년)
“설령 아티카 안의 모든 것을 빼앗긴다 해도, 제우스 신께서는 아테나 여신에게 목재 담장을 주실 것이로다.”
4. 통로를 막아라 (기원전 480년 여름)
페르시아 제국에 맞선 테르모필라이의 저항으로 그리스군에서는 최초의 영웅적인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5.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여름의 끝)
아테네의 미래, 아니 어쩌면 그리스의 자유는 크세르크세스의 반응을 테미스토클레스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2부 민주주의
6. 그들만의 리그 (기원전 479~463년)
아테네는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그들은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재건해야 했다.
7. 끝없는 야망 (기원전 462~446년)
“이들은 키프로스, 이집트, 페니키아, 하일레이스에서 같은 해에 전몰한 사람들이다.”
8. 아테네 황금기의 선원들 (기원전 5세기 중엽)
그들은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고, 위험에 직면하여 악전고투한 끝에 동료들과 무사히 귀환한 그 시대의 오디세우스였다.
3부 제국
9. 아테네 제국의 해군 (기원전 446~433년)
“만일 아테네가 점증하는 크세르크세스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껴 나라를 포기했거나 혹은 그리스에 머문 채로 페르시아에 항복했다면…….”
10. 전쟁과 역병 (기원전 433~430년)
아테네인들에게는 모든 일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알고 보면 피레우스에는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11. 행운은 용감한 사람 편이다 (기원전 430~428년)
“강대했던 나라가 훗날 작은 나라에 패하는 것은 기술과 용기의 부족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2. 희극의 탈, 지휘관의 탈 (기원전 428~421년)
클레온은 페리클레스와 같은‘ 민중의 지도자’로 행세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보다 더 비민주적인 사람도 없었다.
13. 시칠리아 원정 (기원전 415~413년)
그들은 선발 함대와 조우한 뒤에야, 최악의 적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거대 병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4부 재앙
14. 악당의 귀환 (기원전 412~407년)
“아테네인들은 그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같이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또 그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15. 영웅과 사약 (기원전 407~406년)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돈으로 사들인 최고의 노잡이들과, 기병·평민·재류 외국인·해방 노예들로 구성된 아테네 선원들 간의 해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6. 하데스의 궁전으로 (기원전 405~399년)
“피레우스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통곡 소리는 장성을 따라 퍼져 나가다 이내 도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5부 부활
17. 횃불을 넘기며 (기원전 397~371년)
제2차 해상 동맹 헌장에는 새로운 진보주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었다.
18. 아틀란티스의 삼단노선들 (기원전 370~354년)
아테네는 실패도 자주 겪고 그것으로부터 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치욕은 낯설었다.
19. 해군의 대변자 (기원전 354~339년)
“무모한 제안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것은 머지않아 일어날 일이고, 그에 대한 심판자는 바로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20. 마케도니아의 그늘에 가려 (기원전 339~324년)
알렉산드로스는 부친의 군대와 더불어 동방을 정복하려고 한 그의 꿈도 함께 물려받았다.
21. 최후의 전투 (기원전 324~322년)
“아테네인들은 목숨·재물·함선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리스 공통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겼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연표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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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아테네 시민은
1%의 귀족층이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상태에서,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는가?
“감히 말하건대 평범한 시민이 명문거족을 눌러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함선들을 추진시키고 도시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 아니던가?” 웅변가 크세노폰의 이 같은 연설은 그가 아테네 태생이었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해 보인다. 아테네는 왕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던 이웃 나라들과 달리, 민회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안이 결정되는 최초의 민주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숙이 파고들면 초기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로마의 공화제보다도 민주적이지 못했다. 시민들은 법이 정한대로 민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공직 진출은 금지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소한 일상에 얽매여 민회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사이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 직과 ‘장군’ 직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었고, 최상위 귀족 계층으로 구성된 ‘아레오파고스(귀족회의)’는 500인회와 민회의 힘을 지속적으로 침해하였다.
당시 아테네 시민은 가장 부유한 300여 명의 귀족층과 1,200명의 기사, 1만여 명의 중장보병(호플리테스)과 시민의 대다수를 이룬 2만 여명의 테테스(노동자 계층)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1%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층 300명이 99%에 해당하는 나머지 3만 여명의 시민을 제치고, 부와 권력을 거머쥔 채 아테네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1%에게 집중되었던 부와 권력이 서서히 99%의 시민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 일에 얽매인다고 하기보다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페리클레스의 말이 단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테네는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황금기를 이룩하게 된다.
어떻게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가능했을까? 무엇이 아테네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눈부신 위업을 달성하도록 이끌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아테네 해군’에 있었다.
저자 존 R. 헤일은 그간 누구도 주목하지 못한 아테네 ‘해군’을 통해,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강대국의 위협 속에서도 문명을 꽃피우고,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세계 최강의 해상 제국으로 거듭난 아테네의 역사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현대 국가들이 직면하는 것과 똑같은 문제, 즉 동과 서, 진보와 보수, 과학적 탐구와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 아테네인들의 기지는 물론, 작은 도시국가를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변모시킨 비결이 숨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아테네의 위대함을 나날이 주목하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뒤에는 아테네를 위대하게 만든 게 다름 아닌 모험심 넘치고, 자신들의 할 일을 알고, 일정 기준에 미달되는 것을 수치로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아테네의 역사는 곧 시민 개개인이 일군 역사였다. 자유·평등·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묵묵히 걸어온 아테네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는 바다에서 비롯되었다!
해상 제국 아테네는 지중해 150여 개의 섬과 도시국가를 거느린 광대한 나라였다. 흥미로운 건 이 놀라운 업적이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아테네 해군력은 여러 척의 삼단노선에서 비롯되었고, 이 배에는 오직 아테네 시민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함선도 노를 저을 시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기에, 해군력은 그들의 힘과 땀에 의존하였다. 해군력과 함께 시민의 힘이 커지자 소수의 귀족층으로 집중되었던 권력도 자연히 다수의 시민들에게 넘어갔고, 이는 결국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아테네 황금기였던 기원전 5~4세기는 서양 문명의 뼈대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 1위에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이 지어졌고, <페르시아인들>, <안티고네> 등 현대 연극의 기원이 된 유명한 그리스 희·비극이 창작되었다. 서양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의술의 전통을 수립한 히포크라테스, 최초의 도시 건설자 히포다모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도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났다.
“나를 아테네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세계 시민이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탄생에 기여를 한 ‘해군’은 시인, 예술가, 극작가, 역사가, 정치가, 철학자, 법률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학자들은 노의 메커니즘, 풍향과 별의 움직임을 연구했으며, 정치 이론가들은 해군이 아테네인들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된 연극에도 비극, 희극 가릴 것 없이 항해에 관련된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군이 평범한 아테네인들을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활동적이고, 모험적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는 진정한 시민으로 성장하였다. 소크라테스가 “나를 아테네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세계 시민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해군이 넓혀 놓은 지평 덕분이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들은 타고 난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해군은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들의 양성소였다. 아테네 지도자들은 ‘메티스’라는 특유의 지략을 갖고 있었고, 해전을 치를 때에도 폭력보다는 술책과 간계를 이용하여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냈다. 테미스토클레스만 해도 거짓 정보를 흘려 페르시아 함대를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였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키몬은 그리스 함선과 선원을 페르시아 기장으로 위장하여 적군을 기습했고, 트라실로스는 삼단노선 두 척을 한 쌍으로 묶어 선단의 규모를 작아 보이게 하는 속임수로 적군을 꾀어 들이는 전법을 사용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아테네 지도자들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으며 영광의 자리에 올랐다. 반면 적군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할 경우, 지도자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처벌을 받거나 해외로 추방당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끊임없이 정적들의 방해를 받았고,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는 민회에서 안건을 발표하여 시민들의 동의를 얻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는 다수의 지배자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나 스파르타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왕이나 귀족처럼 타고 난 이들이 아닌, 철저한 노력으로 실력을 검증 받은 이들이 나라를 이끌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작지만 ‘큰’ 차이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완벽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
존 R. 헤일은 이 매력적인 역사서를 통해 문명의 동력이 되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에 힘을 부여하고, 평범한 시민을 탐험으로 이끌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아테네 해군에 주목한다. 그는 학자적 통찰력과 이야기꾼의 육감으로 해상 제국과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재조명하며, 아테네의 영웅들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고, 그들이 수행한 대 장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아테네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둔 위대한 승리와 눈부신 업적 뒤에는 뼈아픈 패배와 숱한 실패의 과정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아테네가 진정 위대해질 수 있었던 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나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는 데 있었다.
아테네는 완벽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벽해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였다.
우리가 한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그들의 실수를 타산지석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는 오늘날 우리를 비추어 주는 최고의 거울이다.
- 해외 서평
헤일의 단순하면서도 힘찬 문장은 첫 페이지부터 읽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드와이트 가너, <뉴욕타임스>
처음 몇 구절만 읽어도 푹 빠져들게 되는 책.
진 두바일,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
재기가 번득이는 이 역사서는 아테네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들을 위한 보석 같은 작품이다 .
<쿠리어 저널>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두 분야에서 쌓은 탄탄한 내공으로, 아테네의 황금기와 민주주의가 해군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논증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내용이 충실하면서도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는,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워싱턴 타임스>
고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충분한 재미와 교훈을 느낄 수 있는 수작!
<히스토리 뉴스 네트워크>
아테네 해군의 흥망사를 물 흐르듯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 역작이다. 격조를 갖춘 의미심장한 책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피레우스와 그곳의 선박 보호소, 고대 아테네인들의 역동적인 삶을 총체적으로 묘사한 탁월한 작품! 이 책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박식함으로 현지 조사와 사료 분석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걸작이다.
<월드 아키올로지 매거진>
아테네 황금기를 지탱시킨 힘은 민주주의ㆍ은(銀)ㆍ이성ㆍ권력이었다. 그 시대가 건축ㆍ철학ㆍ연극ㆍ정치의 면에서 현대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된, 세계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대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이면에는 아테네 해군이 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전투와 선원 생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아테네 해군의 흥망성쇠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독자들은 탁월한 감각과 빼어난 문장으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솜씨 있게 풀어낸 존 R. 헤일의 역작에서, 역동적인 집단의 힘뿐 아니라 작금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초 단계의 투쟁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는 역사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아담 니콜슨, <하느님의 비서>와 <불을 잡는 자>의 저자
▣ 작가 소개
저자 : 존 R. 헤일
‘함선’과 ‘해군’에 통달한 미국의 고고학자 겸 역사학자. 1973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켄터키 주 루이빌 대학에서 현장 고고학자로 유적 발굴 조사를 벌이다가 1983년부터 루이빌 대학의 고고학과 강사 겸 인문과학 대학 학장보를 지냈다. 이후 1988년부터 지금까지 동 대학의 교양학부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는 기원전 483년 함대 건설로부터 기원전 322년 마케도니아에 패하기까지 1세기 반에 걸쳐 진행된 아테네 해상 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존 R. 헤일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7년의 연구 기간 동안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면밀히 검증하고, 도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곳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던 몇몇 점들을 바로잡기도 하였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 전설을 흥미롭게 엮은 바탕 위에 위대한 영웅과 총명한 악당이 활약한 고대 세계를 생생하게 재현한 이 작품은 독자에게 웅장한 서사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저자는 이 책 외에도 다수의 학술 논문을 작성하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고문을 발표하였으며, 디스커버리 채널과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한 고고학 유적 발굴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역자 : 이순호
전문 번역가. 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주립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살라딘>, <타타르로 가는 길>, <미국에 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인류의 미래사>,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중세 유럽의 풍경> 등을 번역하였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서론
1부 자유
1. 한 사람, 하나의 비전 (기원전 483년)
“나는 하프나 리르를 탈 줄은 모르지만, 작은 도시를 위대하게 만드는 법은 알고 있습니다.”
2. 함대 건설 (기원전 483~481년)
삼단노선 100척을 한꺼번에 건조하는 일은,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이나 감당할 수 있는 대역사였다.
3. 목재 담장 (기원전 481~480년)
“설령 아티카 안의 모든 것을 빼앗긴다 해도, 제우스 신께서는 아테나 여신에게 목재 담장을 주실 것이로다.”
4. 통로를 막아라 (기원전 480년 여름)
페르시아 제국에 맞선 테르모필라이의 저항으로 그리스군에서는 최초의 영웅적인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5. 살라미스 해전 (기원전 480년 여름의 끝)
아테네의 미래, 아니 어쩌면 그리스의 자유는 크세르크세스의 반응을 테미스토클레스가 얼마나 정확히 예측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2부 민주주의
6. 그들만의 리그 (기원전 479~463년)
아테네는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그들은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재건해야 했다.
7. 끝없는 야망 (기원전 462~446년)
“이들은 키프로스, 이집트, 페니키아, 하일레이스에서 같은 해에 전몰한 사람들이다.”
8. 아테네 황금기의 선원들 (기원전 5세기 중엽)
그들은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고, 위험에 직면하여 악전고투한 끝에 동료들과 무사히 귀환한 그 시대의 오디세우스였다.
3부 제국
9. 아테네 제국의 해군 (기원전 446~433년)
“만일 아테네가 점증하는 크세르크세스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껴 나라를 포기했거나 혹은 그리스에 머문 채로 페르시아에 항복했다면…….”
10. 전쟁과 역병 (기원전 433~430년)
아테네인들에게는 모든 일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알고 보면 피레우스에는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11. 행운은 용감한 사람 편이다 (기원전 430~428년)
“강대했던 나라가 훗날 작은 나라에 패하는 것은 기술과 용기의 부족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2. 희극의 탈, 지휘관의 탈 (기원전 428~421년)
클레온은 페리클레스와 같은‘ 민중의 지도자’로 행세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보다 더 비민주적인 사람도 없었다.
13. 시칠리아 원정 (기원전 415~413년)
그들은 선발 함대와 조우한 뒤에야, 최악의 적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거대 병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4부 재앙
14. 악당의 귀환 (기원전 412~407년)
“아테네인들은 그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같이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또 그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15. 영웅과 사약 (기원전 407~406년)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돈으로 사들인 최고의 노잡이들과, 기병·평민·재류 외국인·해방 노예들로 구성된 아테네 선원들 간의 해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6. 하데스의 궁전으로 (기원전 405~399년)
“피레우스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통곡 소리는 장성을 따라 퍼져 나가다 이내 도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5부 부활
17. 횃불을 넘기며 (기원전 397~371년)
제2차 해상 동맹 헌장에는 새로운 진보주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었다.
18. 아틀란티스의 삼단노선들 (기원전 370~354년)
아테네는 실패도 자주 겪고 그것으로부터 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치욕은 낯설었다.
19. 해군의 대변자 (기원전 354~339년)
“무모한 제안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것은 머지않아 일어날 일이고, 그에 대한 심판자는 바로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20. 마케도니아의 그늘에 가려 (기원전 339~324년)
알렉산드로스는 부친의 군대와 더불어 동방을 정복하려고 한 그의 꿈도 함께 물려받았다.
21. 최후의 전투 (기원전 324~322년)
“아테네인들은 목숨·재물·함선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리스 공통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겼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연표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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