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기존의 식민지 인식 지형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위치
이 책은 1980년대의 ‘민중사학’과 2000년대 중반의 ‘뉴라이트 역사학’을 각각 비판하면서 대두한 ‘탈근대ㆍ탈민족주의 역사학’의 입장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이를 식민지 조선에 관한 이론적ㆍ실증적 연구로 전개한 것이다.
저자도 공동편자로 참여한 『근대를 다시 읽는다』1ㆍ2(2006)에서 편자들은 ‘탈근대ㆍ탈민족주의 역사학’을 표방하면서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들은 ‘민중사학’의 관점을 대표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뉴라이트 역사학’을 표방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간의 대립이 표면적으로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대립’, ‘근대와 탈근대적 입장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지만, 양자 모두 ‘근대주의를 공유하면서 민족과 국가를 각각 선택적으로 특권화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편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1권에서는 ‘식민지 근대’, ‘대일협력’, ‘국민국가의 형성과 균열’이라는 문제의식으로, 2권에서는 ‘문화연구’, ‘근대 담론 비판’, ‘하위주체와 기억의 재현’이라는 방법적 시도로 드러냈다.
『식민지 조선, 오래된 미래』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에서 포괄적이고 집단적으로 제시된 문제의식과 방법적 시도를 식민지 전공자의 손으로 경험적ㆍ구체적 연구 수준에서 전개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관점과 방법론을 식민지 연구에 단순히 확대ㆍ적용하는 작업이 아니라, 저자의 독특한 식민지 인식과 분석 방법을 계발하는 과정이었다. 저자의 인식은 이 책의 1부 「식민지시대를 다시 읽는다」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에서 취하는 ‘식민지 근대’의 입장, 즉 ‘식민지를 공시적, 통시적으로 확장해서 인식’하는 것과 ‘식민지 民들이 전개한 저항과 협력의 축은 “민족”이 아니라 계급ㆍ성ㆍ인종ㆍ문화ㆍ언어 등 다양한 축으로 확장했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이처럼 식민지 인식의 확장과 그에 따라 식민지 경험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려는 저자의 입장은 책의 제목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식민지 근대’의 입장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 근대’와 더불어 새로운 식민지 인식으로 대두하고 있는 ‘(새로운) 민중사’의 입장도 적극 흡수하면서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들’의 관점을 제기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가 주로 방법론 차원에서 취급하거나 해방 이후의 국민형성 문제에서 간접적으로 다룬 ‘하위주체’의 문제의식을 식민지 연구에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는 의의를 가진 것이다. 즉, ‘식민지 근대’의 인식은 저항과 협력의 축을 ‘일제 식민지기’의 ‘민족’ 주체로 제한해서 보던 기존 인식을 다양한 축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확장한 데 비해, 저자는 그러한 다양한 축의 내부에는 ‘하위주체’와 지식인 간의 긴장, ‘하위주체’의 일상과 그것의 운동적 결집 사이의 긴장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기했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식민지 경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방향이 ‘식민지 근대’가 제시한 ‘식민지 인식의 외연적 확장’을 넘어 ‘식민지 인식의 내포적 확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다.
2. 이 책은 개념ㆍ표상 분석을 통해 식민지 경험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있는가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식민지 인식을 역사이론적 차원에서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방법론을 활용하여 독자적인 연구대상과 분석과정을 개척한 데에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저자는 책의 부제에서 ‘개념과 표상으로 식민지시대 다시 읽기’로 표현했다.
우선 그는 언어와 역사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에 주목하여 궁극적으로는 근대성 성찰을 지향하는 개념사 연구방법론의 입장을 적극 받아들여 ‘종교’ 개념을 두고 천도교단과 좌익 언론 간에 벌어진 의미론적 투쟁이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는 양자의 의미론적 투쟁 속에는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과 대립뿐만 아니라 서양의 계몽주의적 사유를 비판하는 공통의 입장이 잠재되어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그는 개념에 관한 의미투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상호소통의 역설적 계기를 현재적 관점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그의 개념 연구는 어휘통계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더욱 확장되었다. 신문기사의 제목을 대상으로 ‘국민’ㆍ‘인민’ㆍ‘민중’ㆍ‘대중’의 용례 양상과 시계열적 변화 등을 분석하여 네 용어의 시기별, 지역별 분포 양상에 나타난 식민지적 특징을 규명했다. 나아가 주요 잡지에 사용된 ‘대중’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공시적ㆍ통시적으로 관찰하여 이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된 좌우 정치세력의 갈등양상과 도시대중문화의 성장이라는 일상 차원의 변동양상을 종합적으로 포착했다.
한편, 저자에게서 개념사가 가진 접근방법, 즉 언어ㆍ텍스트를 통해 언어와 역사적 사건ㆍ구조 간의 상호작용을 고찰하고 언어 행위를 둘러싸고 전개된 주요 사회세력 간의 갈등과 경합 양상을 드러내는 접근방법은, 이미 표상과 번역에 관한 연구에서 선취되고 있었다. 저자는 매체를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로 취급해 온 역사학계의 오랜 관행이나, 매체보다는 그 속에 실린 작품 연구에 치중한 국문학계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매체연구의 대열에 동참했다. 특히 그는 『개벽』의 표지와 목차를 ‘표상공간’으로 명명하고 이를 이미지로 취급ㆍ분석하여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벽』 주도층과 사회주의 세력 사이의 긴장관계를 규명했으며, 나아가 이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 지형에 효과적으로 개입했다. 또한 식민지에서 번역이 가진 문화사적 의미를 『개벽』에 실린 개조론 사조의 번역 및 소개 기사를 통해 특징과 의미를 드러내고, 이를 『개벽』 주도층의 러셀 사회개조론 수용’이 가진 사상적 의의를 규명하는 데로 진척시켰다.
3. 이 책에서 새롭게 규명한 사실들
첫째, ‘농민운동’이라는 특화된 주제를 대상으로 한 「농민 : 초월과 내재의 경계」에서, ‘민중사학’이 부각시킨 일제하 혁명적 농민운동에 관한 역사상이 1980년대 진보적 학술진영이 내건 ‘아젠더’의 산물이라고 하여 그 역사적 한계를 지적했다.
둘째, 『개벽』의 표지와 목차를 ‘표상공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나름대로 분석한 「표상공간 속의 쟁투」에서, 『개벽』 후반부 논조의 사회주의화 경향에 대해 저자는 『개벽』 외부의 사회적 상황을 주요 변수로 보는 입장이나 이와 반대로 『개벽』 주도층의 능동적 대응 및 사회주의의 적극 수용을 강조하는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절충적 관점과 동태적 파악을 중시했다.
셋째, ‘버트란트 러셀’의 사회개조론 수용에 초점을 둔 「제3의 길」에서 저자는 『개벽』주도층의 러셀 수용을 근거로 이들의 정치사상적 입장이 「동아일보」 계열이나 사회주의 세력과 각각 구별된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근대사상사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하는 기존의 이해방식을 비판하고자 했다. 또한 러셀의 개조론을 수용한 결과 나타난 『개벽』 주도층의 지향이 ‘자본주의 비판의 非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띤다는 점에 착안하여, 특정한 역사적 시간대에 존재했던 이러한 경향이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나타난 다양한 대안사회적 흐름과 연계된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했다.
넷째, 「집합적 주체들의 향방」에서는 어휘통계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국민’, ‘인민’, ‘민중’, ‘대중’ 네 개념의 시계열적 변화를 추적한 결과 일제 식민지 하에서는 ‘국민’이나 ‘인민’보다는 ‘민중’과 ‘대중’ 개념을 선호했다는 사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 또한 「개념에 비친 식민지 사회」에서는 ‘대중’ 용례의 통시적 변동과 공시적 분포 양상을 분석한 결과, 여기에는 기존의 신간회 연구 등 민족해방운동사적 관점에서 주목하던 현상도 포함되는 반면, ‘식민지 근대’의 관점에 입각한 최근 연구가 주목하는 도시대중문화의 동향도 반영되어 있음을 살펴보았고, 나아가 이러한 자료를 통해 양자의 상관관계, 즉 후자에서 주목하는 ‘대중문화’ 관련 용례보다는 전자에 해당하는 ‘사회운동’적 용례가 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도 종합적 견지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허수
1967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일제하 이돈화의 사회사상과 천도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과 이후에 수정·보완한 내용을 엮어서 『이돈화 연구-종교와 사회의 경계』를 펴냈다. 해방공간의 사회경제사로 역사 연구에 입문하여 일제 식민지기 사상사 분야로 관심을 넓혔다. 새로운 역사인식의 형성과 한국 근현대사학사에도 관심을 가져 『근대를 다시 읽는다』1~2권의 편집에 참여했으며, 역사대중화 작업의 일환으로 『근현대 속의 한국』의 필자,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5권의 기획자 및 필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로 활동하면서 개념사 연구방법론을 통해 한국 근대사 연구를 새롭게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역사적 제약과 주체의 초월의지 간에 상존하는 긴장과 균형에 관심이 많은데, 식민지 경험을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면서도 종합적 시각을 견지하려 한 이 책은 그러한 감각의 산물이다.
▣ 주요 목차
서문
제1부 식민지 시대를 다시 읽는다
1.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들
-''식민지 근대''와 ''민중사''를 넘어서
2. 농민: 초월과 내재의 경계
-일제 하 농민운동 연구 검토
제2부 표상과 반역의 매체 공간
1.표상공간 속의 쟁투
-《개벽》의 표지ㆍ목차 분석
2. 모방과 차이로서의''번역''
-《개벽》주도층의 근대사상 소개
3. 제3의 길
-《개벽》주도층의 버트란트 러셀 수용
[보론]매체 연구의 도달점
-최수일의 《《개벽》연구》서평
제3부 개념에 비친 식민지 사회
1. ''대중''을 통해 본 식민지의 전체상
-주요 잡지의 ''대중''용례 분석
2. 집합적 주체들의 향방
-''국민ㆍ인민ㆍ민중ㆍ대중''을 중심으로
3. ''종교''개념을 둘러싼 충돌
-1930년대 천도교와 좌익 언론의 사상 논쟁
주석
찾아보기
1. 기존의 식민지 인식 지형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위치
이 책은 1980년대의 ‘민중사학’과 2000년대 중반의 ‘뉴라이트 역사학’을 각각 비판하면서 대두한 ‘탈근대ㆍ탈민족주의 역사학’의 입장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이를 식민지 조선에 관한 이론적ㆍ실증적 연구로 전개한 것이다.
저자도 공동편자로 참여한 『근대를 다시 읽는다』1ㆍ2(2006)에서 편자들은 ‘탈근대ㆍ탈민족주의 역사학’을 표방하면서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들은 ‘민중사학’의 관점을 대표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뉴라이트 역사학’을 표방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간의 대립이 표면적으로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대립’, ‘근대와 탈근대적 입장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지만, 양자 모두 ‘근대주의를 공유하면서 민족과 국가를 각각 선택적으로 특권화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편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1권에서는 ‘식민지 근대’, ‘대일협력’, ‘국민국가의 형성과 균열’이라는 문제의식으로, 2권에서는 ‘문화연구’, ‘근대 담론 비판’, ‘하위주체와 기억의 재현’이라는 방법적 시도로 드러냈다.
『식민지 조선, 오래된 미래』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에서 포괄적이고 집단적으로 제시된 문제의식과 방법적 시도를 식민지 전공자의 손으로 경험적ㆍ구체적 연구 수준에서 전개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관점과 방법론을 식민지 연구에 단순히 확대ㆍ적용하는 작업이 아니라, 저자의 독특한 식민지 인식과 분석 방법을 계발하는 과정이었다. 저자의 인식은 이 책의 1부 「식민지시대를 다시 읽는다」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근대를 다시 읽는다』에서 취하는 ‘식민지 근대’의 입장, 즉 ‘식민지를 공시적, 통시적으로 확장해서 인식’하는 것과 ‘식민지 民들이 전개한 저항과 협력의 축은 “민족”이 아니라 계급ㆍ성ㆍ인종ㆍ문화ㆍ언어 등 다양한 축으로 확장했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이처럼 식민지 인식의 확장과 그에 따라 식민지 경험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하려는 저자의 입장은 책의 제목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식민지 근대’의 입장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 근대’와 더불어 새로운 식민지 인식으로 대두하고 있는 ‘(새로운) 민중사’의 입장도 적극 흡수하면서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들’의 관점을 제기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가 주로 방법론 차원에서 취급하거나 해방 이후의 국민형성 문제에서 간접적으로 다룬 ‘하위주체’의 문제의식을 식민지 연구에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는 의의를 가진 것이다. 즉, ‘식민지 근대’의 인식은 저항과 협력의 축을 ‘일제 식민지기’의 ‘민족’ 주체로 제한해서 보던 기존 인식을 다양한 축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확장한 데 비해, 저자는 그러한 다양한 축의 내부에는 ‘하위주체’와 지식인 간의 긴장, ‘하위주체’의 일상과 그것의 운동적 결집 사이의 긴장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기했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식민지 경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방향이 ‘식민지 근대’가 제시한 ‘식민지 인식의 외연적 확장’을 넘어 ‘식민지 인식의 내포적 확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다.
2. 이 책은 개념ㆍ표상 분석을 통해 식민지 경험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있는가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식민지 인식을 역사이론적 차원에서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방법론을 활용하여 독자적인 연구대상과 분석과정을 개척한 데에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저자는 책의 부제에서 ‘개념과 표상으로 식민지시대 다시 읽기’로 표현했다.
우선 그는 언어와 역사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에 주목하여 궁극적으로는 근대성 성찰을 지향하는 개념사 연구방법론의 입장을 적극 받아들여 ‘종교’ 개념을 두고 천도교단과 좌익 언론 간에 벌어진 의미론적 투쟁이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는 양자의 의미론적 투쟁 속에는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과 대립뿐만 아니라 서양의 계몽주의적 사유를 비판하는 공통의 입장이 잠재되어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그는 개념에 관한 의미투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상호소통의 역설적 계기를 현재적 관점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그의 개념 연구는 어휘통계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더욱 확장되었다. 신문기사의 제목을 대상으로 ‘국민’ㆍ‘인민’ㆍ‘민중’ㆍ‘대중’의 용례 양상과 시계열적 변화 등을 분석하여 네 용어의 시기별, 지역별 분포 양상에 나타난 식민지적 특징을 규명했다. 나아가 주요 잡지에 사용된 ‘대중’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공시적ㆍ통시적으로 관찰하여 이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된 좌우 정치세력의 갈등양상과 도시대중문화의 성장이라는 일상 차원의 변동양상을 종합적으로 포착했다.
한편, 저자에게서 개념사가 가진 접근방법, 즉 언어ㆍ텍스트를 통해 언어와 역사적 사건ㆍ구조 간의 상호작용을 고찰하고 언어 행위를 둘러싸고 전개된 주요 사회세력 간의 갈등과 경합 양상을 드러내는 접근방법은, 이미 표상과 번역에 관한 연구에서 선취되고 있었다. 저자는 매체를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로 취급해 온 역사학계의 오랜 관행이나, 매체보다는 그 속에 실린 작품 연구에 치중한 국문학계의 관행을 비판하면서 매체연구의 대열에 동참했다. 특히 그는 『개벽』의 표지와 목차를 ‘표상공간’으로 명명하고 이를 이미지로 취급ㆍ분석하여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개벽』 주도층과 사회주의 세력 사이의 긴장관계를 규명했으며, 나아가 이를 둘러싼 현재의 논의 지형에 효과적으로 개입했다. 또한 식민지에서 번역이 가진 문화사적 의미를 『개벽』에 실린 개조론 사조의 번역 및 소개 기사를 통해 특징과 의미를 드러내고, 이를 『개벽』 주도층의 러셀 사회개조론 수용’이 가진 사상적 의의를 규명하는 데로 진척시켰다.
3. 이 책에서 새롭게 규명한 사실들
첫째, ‘농민운동’이라는 특화된 주제를 대상으로 한 「농민 : 초월과 내재의 경계」에서, ‘민중사학’이 부각시킨 일제하 혁명적 농민운동에 관한 역사상이 1980년대 진보적 학술진영이 내건 ‘아젠더’의 산물이라고 하여 그 역사적 한계를 지적했다.
둘째, 『개벽』의 표지와 목차를 ‘표상공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나름대로 분석한 「표상공간 속의 쟁투」에서, 『개벽』 후반부 논조의 사회주의화 경향에 대해 저자는 『개벽』 외부의 사회적 상황을 주요 변수로 보는 입장이나 이와 반대로 『개벽』 주도층의 능동적 대응 및 사회주의의 적극 수용을 강조하는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절충적 관점과 동태적 파악을 중시했다.
셋째, ‘버트란트 러셀’의 사회개조론 수용에 초점을 둔 「제3의 길」에서 저자는 『개벽』주도층의 러셀 수용을 근거로 이들의 정치사상적 입장이 「동아일보」 계열이나 사회주의 세력과 각각 구별된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근대사상사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하는 기존의 이해방식을 비판하고자 했다. 또한 러셀의 개조론을 수용한 결과 나타난 『개벽』 주도층의 지향이 ‘자본주의 비판의 非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띤다는 점에 착안하여, 특정한 역사적 시간대에 존재했던 이러한 경향이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나타난 다양한 대안사회적 흐름과 연계된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했다.
넷째, 「집합적 주체들의 향방」에서는 어휘통계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국민’, ‘인민’, ‘민중’, ‘대중’ 네 개념의 시계열적 변화를 추적한 결과 일제 식민지 하에서는 ‘국민’이나 ‘인민’보다는 ‘민중’과 ‘대중’ 개념을 선호했다는 사실을 규명할 수 있었다. 또한 「개념에 비친 식민지 사회」에서는 ‘대중’ 용례의 통시적 변동과 공시적 분포 양상을 분석한 결과, 여기에는 기존의 신간회 연구 등 민족해방운동사적 관점에서 주목하던 현상도 포함되는 반면, ‘식민지 근대’의 관점에 입각한 최근 연구가 주목하는 도시대중문화의 동향도 반영되어 있음을 살펴보았고, 나아가 이러한 자료를 통해 양자의 상관관계, 즉 후자에서 주목하는 ‘대중문화’ 관련 용례보다는 전자에 해당하는 ‘사회운동’적 용례가 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도 종합적 견지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허수
1967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일제하 이돈화의 사회사상과 천도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과 이후에 수정·보완한 내용을 엮어서 『이돈화 연구-종교와 사회의 경계』를 펴냈다. 해방공간의 사회경제사로 역사 연구에 입문하여 일제 식민지기 사상사 분야로 관심을 넓혔다. 새로운 역사인식의 형성과 한국 근현대사학사에도 관심을 가져 『근대를 다시 읽는다』1~2권의 편집에 참여했으며, 역사대중화 작업의 일환으로 『근현대 속의 한국』의 필자,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5권의 기획자 및 필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로 활동하면서 개념사 연구방법론을 통해 한국 근대사 연구를 새롭게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역사적 제약과 주체의 초월의지 간에 상존하는 긴장과 균형에 관심이 많은데, 식민지 경험을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면서도 종합적 시각을 견지하려 한 이 책은 그러한 감각의 산물이다.
▣ 주요 목차
서문
제1부 식민지 시대를 다시 읽는다
1. 서로 경합하는 공공영역들
-''식민지 근대''와 ''민중사''를 넘어서
2. 농민: 초월과 내재의 경계
-일제 하 농민운동 연구 검토
제2부 표상과 반역의 매체 공간
1.표상공간 속의 쟁투
-《개벽》의 표지ㆍ목차 분석
2. 모방과 차이로서의''번역''
-《개벽》주도층의 근대사상 소개
3. 제3의 길
-《개벽》주도층의 버트란트 러셀 수용
[보론]매체 연구의 도달점
-최수일의 《《개벽》연구》서평
제3부 개념에 비친 식민지 사회
1. ''대중''을 통해 본 식민지의 전체상
-주요 잡지의 ''대중''용례 분석
2. 집합적 주체들의 향방
-''국민ㆍ인민ㆍ민중ㆍ대중''을 중심으로
3. ''종교''개념을 둘러싼 충돌
-1930년대 천도교와 좌익 언론의 사상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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