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일선동조론’ 對 저자가 말하는 ‘한일동족론’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일본이 한일합병을 합리화하기 위해 들고 나온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또는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이 떠오른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이론인데, 마치 이웃나라 간에 형제애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일본은 본가(本家), 조선은 분가(分家) 또는 일본은 형, 조선은 동생이라는 일본 우위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살림이 넉넉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본가(일본)가 야만의 상태인 분가(조선)를 흡수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한다. 결국 일선동조론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서 벌인 식민지 침탈과 동화정책, 황국신민화, 민족말살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일선동조론에서 정치적 의도를 걷어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한 것이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의 저자가 주장하는 ‘한일동족론’이다. 한 예로 야마토 왕국(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으로, 3세기 말에서 7세기까지 일본을 지배했고, 일본의 古代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의 무덤에서 나온 치아나 골격을 비교했더니 현대 일본인들보다도 현대 한국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 일본인의 유전자를 조사했더니 토착민이 30%, 도래인 70%라고 한다. 즉 전체 인구의 70%가 한반도에서 이주해 왔다는 말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말해주는 근거는 수없이 많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일동족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여사의 비밀을 찾아서
우리는 한일동족론을 통해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부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부여(夫餘)에 대해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고조선(古朝鮮) 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지금의 북만주 일대에 웅거한 부족 국가.” 부여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멸망의 원인과 시기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와 적대관계였던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크게 위축되고, 41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대대적인 정벌에 이어 결국 494년 고구려에 의해 패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만주에서 부여가 사라지는 시기에 한반도에 부여가 등장한다. 바로 남부여(백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한국 사학계가 백제에 매달려 부여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부여는 태양을 상징하는 불(fire)에서 나온 말로, 태양족 또는 천손(天孫)족이라는 의미다. 즉, 부여라는 명칭은 처음부터 하나의 나라라기보다 전체적인 부여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세부적인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은 같다. 부여의 시조인 동명(東明)은 고리(?離: 저자는 고리의 원 발음이 까우리 또는 까오리이며 여기서 고려, 코리아라는 명칭이 나왔다고 추정한다)국 왕의 시녀가 낳은 아들로, 동명이 고리국을 탈출하여 현재의 아무르 강 지류인 쑹화 강, 즉 하얼빈 부근에 세운 나라가 부여다.
고구려도 부여와 마찬가지로 동명을 시조로 모셨는데, 고구려가 부여의 별종(夫餘別種)이라는 것은 《삼국지》 《후한서》《위서》 등 여러 사서에도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반도에 세워진 백제도 실제 나라를 세운 사람을 두고도 동명을 시조로 모셨고, 백제 왕의 성(姓)이 부여 씨였다는 것이다.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라는 기록도 여러 사서에 나타난다.
이 상황을 정리해보자. 부여, 고구려, 백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나라다. 그러나 부여족에서 갈라져 나와 고구려를 세운 것은 기존 부여의 중심세력과는 다른 세력(고씨)으로 이들은 고구려 건국 후 부여와 치열하게 패권다툼을 벌였다. 결국 요동, 만주 일대에서 세력이 궤멸된 부여계가 남으로 이동하여, 그 이전에 한강 유역에 정착한 부여계 소국들을 정벌하여 남부여(반도부여=백제)를 세우고 부여계의 회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더욱 강해진 고구려가 계속 남하하자 이들이 다시 선택한 땅이 열도(일본)였다. 475년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죽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곤지 왕자(개로왕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아버지. 일본에서 15년간 머물다가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웅진으로 천도하는 국난을 당하자 귀국하여 내신좌평에 올랐다고 한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열도부여의 건설을 추진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494년 고구려의 침공으로 부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여계는 만주에서 궤멸되어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반도로 이주했고, 그러다가 다시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남하를 시작하자 열도 개척에 박차를 가해 4세기 말, 늦어도 5세기 말까지 열도에서 통일된 세력을 구축한다. 그것이 야마토 왕조다. 결국 열도(일본)는 부여의 나라다. 그리고 백제(반도부여)와 일본(열도부여)은 한 나라나 다름없는 일종의 국가연합, 즉 범부여 국가연합(United States of Buyou)으로 보아야 한다.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는 문헌적 사실과 고증을 바탕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밝혀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628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인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는 먼저 부여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백제는 실존하지 않았음을 설명하며, 대신 원부여―반도부여(백제)―열도부여((일본)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한일 역사의 쟁점을 10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했다.
1.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왜
2. 임나일본부
3. 진구 황후의 실체
4. 야마토 왕조를 일으킨 근초고왕
5. 베일에 쌓인 곤지왕
6. 곤지왕과 현대 일본 천황가의 개조인 게이타이 천황
7.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 되는 백제의 성왕
7. 왜 5왕
9. 부여계 일본의 전개과정
10. 한일동족론과 일선동조론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뿌리 깊은 역사전쟁을 종식시키고, 동북공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일 양국의 뜨거운 이슈인 독도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저자 김운회)
▣ 작가 소개
저 : 김운회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양대학교 경영관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고대사 연구에 나선 것은 2000년대에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이 본격화된 이후부터다. ‘역사의 상실은 민족의 소멸’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한·중, 한·일 간 역사적 논쟁들을 정사(正史)를 중심으로 문헌적으로 고증하고 정면으로 파헤쳐서 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4년 1월부터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삼국지 바로 읽기’를 연재해 10만여 명에 달하는 《삼국지》 마니아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한국인이 널리 읽는 《삼국지》가 중화주의의 산물임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고구려 역사를 찾아냈다.
2006년에는 《대쥬신을 찾아서1,2》를 통해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문헌적으로 고증하여 국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책 역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북방 유목민을 중심으로 한 한국사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학계는 북방사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인식을 하게 되었고, 동이족 전반의 관계사에 대한 지평이 확대되었으며, 신라의 흉노 기원설이나 부여사의 종합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몽골과의 친연성도 다시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검토되고 있다.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는 2008년 인터넷에 연재한 것을 수정·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나는 수백 년에 걸친 한일 고대사의 여러 쟁점들을 해명하고자 했다. 2008년 이 글의 일부가 번역되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현재 김운회 교수는 요하문명론의 우실하 교수, 몽골사의 박원길 교수 등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민족적 기원과 이동 및 문화적 원형 찾기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우실하 교수와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 밖에 주요 경력으로 새교육공동체 위원회(문민 정부: 전문가로 참여), 국민경제자문회의(국민의 정부: ‘지역균형 발전기획단’ 전문가로 참여), 교육인적자원부 대학 육성위원, 한국사이버대학 창립위원,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 문화관광부 민족문화원형발굴사업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 주요 목차
한일 고대사를 다시 쓰며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둘 사항들
1장 다시 보는 일선동조론
들어가는 글 불함문화론
01 일선동조론: 일본은 본가, 한국은 분가 | 02 “여기서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
2장 도래인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연오랑·세오녀
01 열도를 뒤덮은 한국 이름 | 02 한일동족론
3장 태양의 아들, 부여
들어가는 글 프리기아와 부여
01 부여의 새벽: 발, 박, 백에서 부여까지 | 02 부여의 아들, 고구려와 백제
4장 백제는 신화다
들어가는 글 역사가 된 신화
01 백제의 산화 | 02 일본(日本), 왜(倭)를 정벌하다
5장 안개 속의 그 이름, 백제와 구다라
들어가는 글 왕비의 꽃밭
01 고도(Godot)를 기다리며 | 02 위례로 가는 길 | 03 백제의 근거지 요서 지역 | 04 구다라, 곰나루인가 스마트 빌딩인가
6장 끝없는 전쟁의 시작
들어가는 글 닮은 그대, 주몽과 김누루하치
01 쥬신류어와 까오리류어 | 02 쥬신 분열의 시작, 씨앗 싸움 | 03 고구려와 부여, 끝없는 전쟁의 시작 | 04 부여계 토착화의 진통
7장 압록강을 건너 한강으로
들어가는 글 어디로 가는가 구름들이여
01 부여의 세 차례 남하 | 02 험난한 부여의 여정 | 03 압록강을 건너 한강으로
8장 근초고왕, 야마토 왕조를 열다
들어가는 글 진구 황후의 두 얼굴 192
01 진구 황후, 고구려와 신라를 정벌하다 | 02 야마토 왕조의 시조, 근초고왕
9장 부여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부여와 곰 고을의 사람들
01 고마와 담로 | 02 부여의 나라, 일본: 범부여 연합국가의 성립
10장 한 줄기, 두 연꽃
들어가는 글 새롭게 열리는 일본의 역사
01 열도로, 열도로 | 02 무령왕과 닌도쿠 천황 | 03 오진 천황은 곤지왕? | 04 다시 안개 속으로
11장 의문의 고리, 곤지왕
들어가는 글 왕의 부인과 결혼한 곤지 왕자
01 곤지와 개로왕의 관계 | 02 열도로 간 곤지
12장 곤지왕이 유라쿠 천황인 까닭
들어가는 글 한눈으로 보는 백제사
01 곤지왕과 왜 5왕 | 02 왜 왕 무=유라쿠 천황=곤지왕
13장 개로왕을 위한 만사(輓詞)
들어가는 글 개로왕을 위하여
01 현 일본 천황가의 개조, 개로왕 | 02 게이타이 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 03 베일에 싸인 천황가
14장 안동장군 신라제군사 왜국 왕
들어가는 글 대국 왜의 정체
01 안동대장군 왜 국왕/ 02 부여계 내부의 권력투쟁 | 03 부여의 대고구려전 군사전력 | 04 반도에서 열도로, 헤게모니의 이전
15장 우리의 이름, 왜(wa)
들어가는 글 광개토대왕비의 답답한 해석
01 왜, 한국인들의 이름 | 02 광개토대왕비의 왜
16장 왜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글 한족(漢族)의 나라 일본?
01 왜의 뿌리를 찾아서 | 02 고대 사서에 나타난 왜의 실체 | 03 왜, 쥬신의 또 다른 이름
17장 야마토 다마시
들어가는 글 한국과 일본, 갈 수 없는 나라
01 기마민족국가와 범부여연합 | 02 일본의 시작, 야마토의 실체 438
18장 백제 성왕이 긴메이 천황
들어가는 글 “사실 우리 조상은 백제인입니다”
01 성왕, 두 얼굴의 대왕/ 02 성왕, 성명왕 긴메이 천황
19장 성왕과 가야(임나) 삼총사
들어가는 글 미소라 히바리의 꿈
01 임나 삼총사: 성왕, 소가씨, 긴메이 천황 | 02 모쿠마치의 후예, 천황 위에 군림하다
20장 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키오오가미
들어가는 글 비다쓰 천황의 비밀
01 백제 성왕, 천황가의 조상신 | 02 부여계의 성지 히라노 신사 | 03 성명왕의 후예들
21장 미녀와 영웅
들어가는 글 아지매, 오세요
01 아스카 문화의 스이코 천황에서 사이메이 천황까지 | 02 백제 구원의 여신, 사이메이 천황|03 영웅의 등장, 덴지 천황
22장 덴지 천황과 덴무 천황
들어가는 글 진신의 쿠데타
01 백강 전투를 위해 태어난 덴지 천황 | 02 덴지와 난무, 난형난제 | 03 덴무 천황의 비밀
23장 덴무, 세상을 속이다
들어가는 글 “폐하, 논어(論語)라도”
01 천황의 탄생 | 02 우지노카미와 무쿤다 | 03 《일본서기》의 역사적 의미
글을 마치며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일선동조론’ 對 저자가 말하는 ‘한일동족론’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일본이 한일합병을 합리화하기 위해 들고 나온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또는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이 떠오른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이론인데, 마치 이웃나라 간에 형제애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일본은 본가(本家), 조선은 분가(分家) 또는 일본은 형, 조선은 동생이라는 일본 우위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살림이 넉넉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본가(일본)가 야만의 상태인 분가(조선)를 흡수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한다. 결국 일선동조론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서 벌인 식민지 침탈과 동화정책, 황국신민화, 민족말살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일선동조론에서 정치적 의도를 걷어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한 것이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의 저자가 주장하는 ‘한일동족론’이다. 한 예로 야마토 왕국(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으로, 3세기 말에서 7세기까지 일본을 지배했고, 일본의 古代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의 무덤에서 나온 치아나 골격을 비교했더니 현대 일본인들보다도 현대 한국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대 일본인의 유전자를 조사했더니 토착민이 30%, 도래인 70%라고 한다. 즉 전체 인구의 70%가 한반도에서 이주해 왔다는 말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말해주는 근거는 수없이 많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일동족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여사의 비밀을 찾아서
우리는 한일동족론을 통해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부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부여(夫餘)에 대해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고조선(古朝鮮) 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지금의 북만주 일대에 웅거한 부족 국가.” 부여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멸망의 원인과 시기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와 적대관계였던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크게 위축되고, 41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대대적인 정벌에 이어 결국 494년 고구려에 의해 패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만주에서 부여가 사라지는 시기에 한반도에 부여가 등장한다. 바로 남부여(백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한국 사학계가 백제에 매달려 부여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부여는 태양을 상징하는 불(fire)에서 나온 말로, 태양족 또는 천손(天孫)족이라는 의미다. 즉, 부여라는 명칭은 처음부터 하나의 나라라기보다 전체적인 부여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세부적인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은 같다. 부여의 시조인 동명(東明)은 고리(?離: 저자는 고리의 원 발음이 까우리 또는 까오리이며 여기서 고려, 코리아라는 명칭이 나왔다고 추정한다)국 왕의 시녀가 낳은 아들로, 동명이 고리국을 탈출하여 현재의 아무르 강 지류인 쑹화 강, 즉 하얼빈 부근에 세운 나라가 부여다.
고구려도 부여와 마찬가지로 동명을 시조로 모셨는데, 고구려가 부여의 별종(夫餘別種)이라는 것은 《삼국지》 《후한서》《위서》 등 여러 사서에도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반도에 세워진 백제도 실제 나라를 세운 사람을 두고도 동명을 시조로 모셨고, 백제 왕의 성(姓)이 부여 씨였다는 것이다.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라는 기록도 여러 사서에 나타난다.
이 상황을 정리해보자. 부여, 고구려, 백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나라다. 그러나 부여족에서 갈라져 나와 고구려를 세운 것은 기존 부여의 중심세력과는 다른 세력(고씨)으로 이들은 고구려 건국 후 부여와 치열하게 패권다툼을 벌였다. 결국 요동, 만주 일대에서 세력이 궤멸된 부여계가 남으로 이동하여, 그 이전에 한강 유역에 정착한 부여계 소국들을 정벌하여 남부여(반도부여=백제)를 세우고 부여계의 회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더욱 강해진 고구려가 계속 남하하자 이들이 다시 선택한 땅이 열도(일본)였다. 475년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죽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곤지 왕자(개로왕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아버지. 일본에서 15년간 머물다가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웅진으로 천도하는 국난을 당하자 귀국하여 내신좌평에 올랐다고 한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열도부여의 건설을 추진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494년 고구려의 침공으로 부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여계는 만주에서 궤멸되어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반도로 이주했고, 그러다가 다시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남하를 시작하자 열도 개척에 박차를 가해 4세기 말, 늦어도 5세기 말까지 열도에서 통일된 세력을 구축한다. 그것이 야마토 왕조다. 결국 열도(일본)는 부여의 나라다. 그리고 백제(반도부여)와 일본(열도부여)은 한 나라나 다름없는 일종의 국가연합, 즉 범부여 국가연합(United States of Buyou)으로 보아야 한다.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는 문헌적 사실과 고증을 바탕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밝혀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628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인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는 먼저 부여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백제는 실존하지 않았음을 설명하며, 대신 원부여―반도부여(백제)―열도부여((일본)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한일 역사의 쟁점을 10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했다.
1.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난 왜
2. 임나일본부
3. 진구 황후의 실체
4. 야마토 왕조를 일으킨 근초고왕
5. 베일에 쌓인 곤지왕
6. 곤지왕과 현대 일본 천황가의 개조인 게이타이 천황
7.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 되는 백제의 성왕
7. 왜 5왕
9. 부여계 일본의 전개과정
10. 한일동족론과 일선동조론
“이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뿌리 깊은 역사전쟁을 종식시키고, 동북공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일 양국의 뜨거운 이슈인 독도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저자 김운회)
▣ 작가 소개
저 : 김운회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양대학교 경영관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고대사 연구에 나선 것은 2000년대에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이 본격화된 이후부터다. ‘역사의 상실은 민족의 소멸’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한·중, 한·일 간 역사적 논쟁들을 정사(正史)를 중심으로 문헌적으로 고증하고 정면으로 파헤쳐서 사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4년 1월부터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삼국지 바로 읽기’를 연재해 10만여 명에 달하는 《삼국지》 마니아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한국인이 널리 읽는 《삼국지》가 중화주의의 산물임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고구려 역사를 찾아냈다.
2006년에는 《대쥬신을 찾아서1,2》를 통해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문헌적으로 고증하여 국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책 역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북방 유목민을 중심으로 한 한국사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학계는 북방사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인식을 하게 되었고, 동이족 전반의 관계사에 대한 지평이 확대되었으며, 신라의 흉노 기원설이나 부여사의 종합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몽골과의 친연성도 다시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검토되고 있다.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는 2008년 인터넷에 연재한 것을 수정·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나는 수백 년에 걸친 한일 고대사의 여러 쟁점들을 해명하고자 했다. 2008년 이 글의 일부가 번역되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현재 김운회 교수는 요하문명론의 우실하 교수, 몽골사의 박원길 교수 등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민족적 기원과 이동 및 문화적 원형 찾기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우실하 교수와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 밖에 주요 경력으로 새교육공동체 위원회(문민 정부: 전문가로 참여), 국민경제자문회의(국민의 정부: ‘지역균형 발전기획단’ 전문가로 참여), 교육인적자원부 대학 육성위원, 한국사이버대학 창립위원, 문화관광부 정책자문위원, 문화관광부 민족문화원형발굴사업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 주요 목차
한일 고대사를 다시 쓰며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둘 사항들
1장 다시 보는 일선동조론
들어가는 글 불함문화론
01 일선동조론: 일본은 본가, 한국은 분가 | 02 “여기서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
2장 도래인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연오랑·세오녀
01 열도를 뒤덮은 한국 이름 | 02 한일동족론
3장 태양의 아들, 부여
들어가는 글 프리기아와 부여
01 부여의 새벽: 발, 박, 백에서 부여까지 | 02 부여의 아들, 고구려와 백제
4장 백제는 신화다
들어가는 글 역사가 된 신화
01 백제의 산화 | 02 일본(日本), 왜(倭)를 정벌하다
5장 안개 속의 그 이름, 백제와 구다라
들어가는 글 왕비의 꽃밭
01 고도(Godot)를 기다리며 | 02 위례로 가는 길 | 03 백제의 근거지 요서 지역 | 04 구다라, 곰나루인가 스마트 빌딩인가
6장 끝없는 전쟁의 시작
들어가는 글 닮은 그대, 주몽과 김누루하치
01 쥬신류어와 까오리류어 | 02 쥬신 분열의 시작, 씨앗 싸움 | 03 고구려와 부여, 끝없는 전쟁의 시작 | 04 부여계 토착화의 진통
7장 압록강을 건너 한강으로
들어가는 글 어디로 가는가 구름들이여
01 부여의 세 차례 남하 | 02 험난한 부여의 여정 | 03 압록강을 건너 한강으로
8장 근초고왕, 야마토 왕조를 열다
들어가는 글 진구 황후의 두 얼굴 192
01 진구 황후, 고구려와 신라를 정벌하다 | 02 야마토 왕조의 시조, 근초고왕
9장 부여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부여와 곰 고을의 사람들
01 고마와 담로 | 02 부여의 나라, 일본: 범부여 연합국가의 성립
10장 한 줄기, 두 연꽃
들어가는 글 새롭게 열리는 일본의 역사
01 열도로, 열도로 | 02 무령왕과 닌도쿠 천황 | 03 오진 천황은 곤지왕? | 04 다시 안개 속으로
11장 의문의 고리, 곤지왕
들어가는 글 왕의 부인과 결혼한 곤지 왕자
01 곤지와 개로왕의 관계 | 02 열도로 간 곤지
12장 곤지왕이 유라쿠 천황인 까닭
들어가는 글 한눈으로 보는 백제사
01 곤지왕과 왜 5왕 | 02 왜 왕 무=유라쿠 천황=곤지왕
13장 개로왕을 위한 만사(輓詞)
들어가는 글 개로왕을 위하여
01 현 일본 천황가의 개조, 개로왕 | 02 게이타이 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 03 베일에 싸인 천황가
14장 안동장군 신라제군사 왜국 왕
들어가는 글 대국 왜의 정체
01 안동대장군 왜 국왕/ 02 부여계 내부의 권력투쟁 | 03 부여의 대고구려전 군사전력 | 04 반도에서 열도로, 헤게모니의 이전
15장 우리의 이름, 왜(wa)
들어가는 글 광개토대왕비의 답답한 해석
01 왜, 한국인들의 이름 | 02 광개토대왕비의 왜
16장 왜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글 한족(漢族)의 나라 일본?
01 왜의 뿌리를 찾아서 | 02 고대 사서에 나타난 왜의 실체 | 03 왜, 쥬신의 또 다른 이름
17장 야마토 다마시
들어가는 글 한국과 일본, 갈 수 없는 나라
01 기마민족국가와 범부여연합 | 02 일본의 시작, 야마토의 실체 438
18장 백제 성왕이 긴메이 천황
들어가는 글 “사실 우리 조상은 백제인입니다”
01 성왕, 두 얼굴의 대왕/ 02 성왕, 성명왕 긴메이 천황
19장 성왕과 가야(임나) 삼총사
들어가는 글 미소라 히바리의 꿈
01 임나 삼총사: 성왕, 소가씨, 긴메이 천황 | 02 모쿠마치의 후예, 천황 위에 군림하다
20장 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키오오가미
들어가는 글 비다쓰 천황의 비밀
01 백제 성왕, 천황가의 조상신 | 02 부여계의 성지 히라노 신사 | 03 성명왕의 후예들
21장 미녀와 영웅
들어가는 글 아지매, 오세요
01 아스카 문화의 스이코 천황에서 사이메이 천황까지 | 02 백제 구원의 여신, 사이메이 천황|03 영웅의 등장, 덴지 천황
22장 덴지 천황과 덴무 천황
들어가는 글 진신의 쿠데타
01 백강 전투를 위해 태어난 덴지 천황 | 02 덴지와 난무, 난형난제 | 03 덴무 천황의 비밀
23장 덴무, 세상을 속이다
들어가는 글 “폐하, 논어(論語)라도”
01 천황의 탄생 | 02 우지노카미와 무쿤다 | 03 《일본서기》의 역사적 의미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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