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고객평점
저자B. H. 리델 하트
출판사항사이, 발행일:2010/08/10
형태사항p.350p. 국판:23CM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317807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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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한니발을 이기고도 역사적으로 폄하당한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로마제국〉, 〈로마문명〉의 창시자로 평가받지만
조국 로마에게 배신당하며 은둔생활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지휘관.
이제 그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롭게 복원시킨다!

한니발의 그늘에 가려 역사적으로 과소평가된 스키피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을 패배시켜 아프리카와 지중해를 정복하면서 위기에 처한 조국 로마를 〈세계제국〉의 위치로까지 올려놓은 로마의 젊은 지휘관 〈스키피오〉를 새롭게 조명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사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한니발의 극적인 패배와 비극적 삶에 가려 로마와, 역사로부터 외면당해온 스키피오를 객관적으로 복원시키려는 이 책은 20세기 군사 전략가이자 군사 역사가로 널리 알려진 B. H. 리델 하트가 집필한 것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중심으로 스키피오의 활약상과 한니발과의 대결을 통해 지휘관이자, 정치가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살펴본다. 특히 저자는 〈에필로그〉에서고대의 세 명장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한니발 등과의 객관적 비교를 통해 그의 진가를 확인한다.
역사의 천칭을 바로잡기 위하여
저자는 스키피오를 평가하는 〈역사의 천칭〉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말한다. 아홉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국을 등진 뒤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36년 만에 조국 카르타고로 돌아와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스키피오에게 패배한 한니발의 인생이 너무도 극적이었기에 사람들은 스키피오의 승리를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이는 끈질긴 성취보다는 극적인 패망을 미화시키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스키피오는 그의 라이벌들 손에 폄하를 당했는데, 올바른 지식과 군사적 평가를 더해 그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저자는 고대 문헌과 기록들을 주요 참고 자료로 활용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와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의 기록을 참고하여 역사적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으려 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스키피오가 아버지를 따라 17세의 나이에 참전한 로마군과 한니발군의 첫 대결인 티치노 전투 장면에서 시작하여 에스파냐의 카르타헤나 공격, 바이쿨라 전투, 일리파 전투, 아프리카의 자마 전투, 시리아의 안티오코스와의 전투에 이르기까지 그가 펼친 전투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그의 지휘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패자에 대한 관용〉으로 〈온건한 제국〉을 지향하며 세계 공동체의 실현을 주장한 뛰어난 정치가로서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후 로마 원로원의 질시와 탄핵에 의해 결국 은둔생활을 하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담고 있다.

40컷에 이르는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들
이 책은 특히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모습뿐만 아니라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과 지도가 40여 컷 담겨 있는데, 그가 티치노 전투에서 아버지를 구하는 장면, 카르타헤나 공격 장면, 한니발이 코끼리부대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넘는 장면, 자마 전투에 앞서 회동하는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모습, 한니발의 죽음의 장면 등을 담은 그림들이 함께 실려 있다.

-1-
“한니발, 당신은 어떻게 승리하는지는 정말 잘 압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이용하는지는 모릅니다.”(본문 87쪽)

스키피오는 누구인가?
기원전 235년에 태어난 스키피오의 원래 이름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였다. 그는 24세에 에스파냐 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100년이 넘게 걸린 포에니 전쟁 중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는 8년간의 원정 중 적진으로 뛰어들어 로마를 코앞에서 위협하고 있는 한니발을 아프리카로 유인하여 전쟁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명장끼리의 대결로 유명한 자마(Zama)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당대 최고의 명장이자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적장 한니발을 무찌른 이 전투의 승리로 〈아프리카를 정복한 자〉라는 의미의 별칭인 〈아프리카누스(Africanus)〉가 붙여지면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로 더 알려졌다. 그는 역사상 자신이 정복한 지역의 이름으로 불리는 최초의 장군인 셈이다. 그는 기원전 183년 52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또한 아프리카, 그리스, 아시아로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지리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창시자로, 동시에 그리스 문학과 철학에 대한 식견과 열정을 바탕으로 위대한 지적 문화를 소유한 자로 인식되면서 문화적으로 〈로마문명〉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젊은 나이�에도 자기절제와 평정심, 자기희생, 뛰어난 외교술, 패자에 대한 관용, 평화 지향, 온건함 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적으로도 뛰어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34세의 나이로 이룬 거대한 성취, 그러나 결국 탄핵과 은둔생활로…
젊은 나이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 스키피오는 원정 내내 로마 내부의 정치적 장애물과 싸워야 했으며, 심지어 원정 중에 자신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위원회의 방문도 받게 된다. 또한 로마 본국으로부터 제때 지원도 받지 못했다. 또한 조국 로마를 위기에서 구했지만, 그는 결국 전쟁배상금 횡령과 뇌물혐의로 탄핵을 당해 망명생활을 하면서, “배은망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며 삶을 마감했다. 같은 해 한니발도 생을 마감함으로써 고대사의 진정한 명승부를 펼쳤던 두 위대한 라이벌 장군이 동시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두 국가는 그들의 최고지휘관들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을
최근에 거의 동시에 입증했다. 그러나 둘 중 로마가 더욱 감사할 줄 몰랐다.
왜냐하면 카르타고는 정복된 뒤에 패배한 한니발을 망명시켰다.
그러나 로마는 승리에 차 있을 때 정복자 아프리카누스를 추방했다.”(본문 301쪽)

한니발은 누구인가?
카르타고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의 맏아들로, 로마를 자신의 최대의 적으로 여기며 당시 로마가 장악하고 있던 해상로를 피해 육로를 통해 코끼리부대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그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로마를 사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칸나에 전투에서의 대승 이후 로마로 바로 진격하지 않는 전략적 실수를 범함으로써 결국 패하게 된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전쟁을 하는 것만이 로마의 물적, 인적 자원의 공급을 근본적으로 마비시킴으로써 로마를 패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신념을 항상 견지했던 그는 스키피오의 아프리카 침략 소식에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자마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로마의 승리로 끝내게 한다. 이후 시리아의 안티오코스에게 이탈리아 원정을 제안하며 다시 로마 정복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하자 로마 자객이 오기 전에 늘 지니고 다니던 독약을 마시며 삶을 마감했다. 이때 그의 나이 64세였다.

스승 한니발 vs. 제자 스키피오
한니발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병력의 배치와 운용의 묘에 관한 전쟁의 기술을 로마인들에게 가르쳤다. 일단 로마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 활용할 줄 알게 되자 한니발의 성공은 한계를 갖게 되었다. 더구나 그 제자가 스키피오였다.
한니발은 역사상 최고의 전술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공성작전〉은 그의 약점이며, 또 승리를 이용하고 완성하는 〈추격전의 부재〉는 그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다. 이는 전략적 차원의 추격전이 없었다는 것으로, 그는 전술가로서는 너무나 위대하지만, 전략가로서는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 스키피오
스키피오는 많은 것을 한니발에게서 배웠다. 즉 스키피오의 전략과 전술은 한니발의 약점을 보완해가며 훌륭히 응용, 발전시킨 것이다. 한니발은 본의 아니게 스키피오의 스승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었다.
그는 전쟁터를 적진 한복판으로 옮긴 점, 적의 주력군 대신 본거지를 직접 공략하는 전략, 로마군의 전통인 보병 중심에서 탈피하여 기병의 기동력을 활용한 기습작전, 이중사선작전, 갑작스런 병력배치의 변경, 전쟁의 완성을 의미하는 성공적인 추격전,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수많은 책략 등, 한니발보다 더 뛰어난 전술을 펼쳐 보이며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전략의 개념을 활용할 줄 알았던 스키피오
그는 전략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거대 전략(grand strategy)〉의 원리를 이미 파악하고 실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술이 무장한 집단의 운용에 집중하는 반면, 거대 전략은 그들 뒤에 놓인 정신적, 물질적 요소들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통찰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쟁 이후에 오는 평화를 제1의 목표로 삼았다. 스키피오는 전략과 전술에서 동시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거의 유일한 예라고 저자고 평가한다.

-2-
만약 스키피오가 패한다면,
그들은 적의 땅 한가운데서 고립무원의 지경에 빠져 전멸할 것이고,
카르타고의 마지막 보루인 한니발이 진다면,
그것은 카르타고의 최후일 것이다.
이런 결전 앞에서 흔들림 없이 있을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 그 배경과 과정
기원전 3세기 신흥국가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대치한다. 먼저 기선을 제압한 것은 카르타고였는데, 이탈리아 중부의 조그만 도시국가로 출발한 젊은 로마의 급격한 팽창이 카르타고를 위협하면서 두 나라 간의 전쟁인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판정승으로 끝났고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다,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년-201년)이 터졌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이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을 통해 전체 포에니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제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149년-146년)이 터졌고 카르타고는 마침내 최후를 맞게 된다.

로마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떠나는 8년간의 원정
스키피오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을 때는 한니발군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이룬 연전연승으로 로마는 코앞까지 위협당하고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는 전쟁의 진짜 열쇠는 아프리카에 있다고, 즉 적의 주력군 대신 적의 본거지, 배후기지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의 승패를 가르고자 했다. 이에 대해 퀸투스 파비우스, 칸토 등 당시 로마 원로원들은 다음과 같이 그의 아프리카 원정을 반대했다.

“왜 그대는 한니발이 있는 곳에서 전쟁을 하려 하지 않고, 그대가 아프리카로 건너가면
한니발이 뒤를 따를 것이라는 가정 하에 우회적인 방법을 쓰려 하는가?
자신의 힘은 절반으로 줄고 적의 힘은 엄청나게 보강되는 곳에서 싸우기를 원하는
그대의 계획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본문 119-121쪽)

결국 그는 로마 원로원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그저 원정의 허락만 받은 채 자원병들로 이루어진, 패배감에 찌들어 있던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원정을 떠나게 된다.

스키피오와 한니발, 두 명장의 최초이자 최후의 사투 〈자마 전투〉
조국의 부름에 카르타고로 달려온 한니발은 스키피오와 강화협상을 맺기 위해 회동한다. 전투에 앞서 두 명장이 직접 만나 평화협상안을 논의하나 결국 회담이 결렬되면서 그 유명한 자마 전투가 시작된다.

그러나 한니발은 자마에서 기병의 우세가 전투의 관건이라는 선견지명을 가진 인간, 외교적 재능으로 자신의 기병의 원천을 빼앗아간 인간, 전략적 통찰력으로 그의 새로운 무기인 단검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고 수적인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싸움터로 적을 유인할 수 있는 인간, 적의 눈앞에서 갑자기 병력배치를 바꾸어 코끼리가 오히려 한니발군을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전술의 귀재를 만남으로써 패배하게 된다. 이 전투로 지중해의 향방이 결정되었다.

-3-
전술이 부재한 아시아 부족들을 상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달리,
오합지졸의 야만족을 상대한 카이사르와 달리,
전례 없이 와해된 로마를 상대한 한니발과 달리,
서른다섯의 나이로 당대 최고의 세력인 카르타고의 심장을 겨눠
명장 한니발을 무릎 꿇게 한 로마의 젊은 지휘관 스키피오.

알렉산드로스 대왕, 한니발, 카이사르와의 비교를 통해 본 스키피오(에필로그 참조)
저자는 특히 〈에필로그〉에서 스키피오를 고대사의 가장 뛰어난 세 장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한니발, 카이사르와 객관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지휘관으로서, 정치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스키피오의 역량과 위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세워놓은 군사적 기반을 활용할 수 있었고, 한니발은 그의 아버지 하밀카르,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의 기반을 이어받았으나, 스키피오는 로마의 기초가 적에 의해 뿌리째 흔들릴 때 등장해 재난 위에서 모든 것을 다시 건설해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승리는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전술적 능력이 부재했던 아시아의 부족들을 상대로 획득한 것이었고, 카이사르는 오합지졸의 야만족들을 상대로 싸웠으며 스스로도 말했듯이 “에스파냐에서는 장군 없는 군대와 싸우고, 동쪽에서는 군대 없는 장군과 싸웠다.” 스키피오와 한니발만이 끊임없이 잘 훈련된 적군의 지휘관들과 싸웠는데, 둘 사이의 조건은 한니발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스키피오의 승리는 모두 일급의 적들을 상대한 것들이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는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군대와 자원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특권적 힘〉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산을 갖고 누렸다. 본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던 한니발조차도 스키피오가 후에 씨름해야만 했던 자잘하고 끊임없는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나, 그것은 그의 죽음과 함께 붕괴되고 말았다. 반면 스키피오는 로마를 위해 대서양에서 흑해와 타우루스 산맥에 이르는 제국을 세웠고, 이것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번성했다.
마지막으로 〈카이사르와 스키피오를 비교〉하는 글에서 저자는 이렇게 분석을 내린다.

“카이사르는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훈련시켰지만, 스키피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로마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다. 카이사르는 동포들에 대한 승리로 명예를 얻었고, 스키피오는 자신들을 침략한 적장들을 정복함으로써 영광을 안았다.
카이사르의 성취는 로마의 내리막과 몰락의 길을 닦았다. 반면 스키피오의 성취는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하면서도 독립적인 자치권을 유지하는 활기찬 국가들이 세계 공동체가 되는 가능성을 열었다. 한 사람은 로마 문명의 세계지배시대를 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문명이 쇠퇴로 향하는 길을 닦았음에도, 카이사르의 업적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스키피오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름 정도만 알려져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에필로그 중에서(본문 340-341쪽)

-4-
“배은망덕한 로마여,
그대는 내 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

한니발보다 더 비참한, 말년의 스키피오
이제 로마는 의심할 여지없이 전체 지중해 세계의 패권자였고, 그 지평선엔 어떤 잠재적인 경쟁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전 로마사에서 가장 엄청난 세력 팽창을 보여준 때이며, 이것은 직접적으로 스키피오의 업적과 그의 영향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질투와 시기심에 불타는 경쟁자들,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근시안적인 정치가들, 그리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군사적 편협함은 스키피오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의 온건하고 거시적인 정책이 오히려 그의 정치적인 파멸을 초래했다. 그의 경쟁자들은 스키피오에게 전쟁배상금의 횡령혐의와 뇌물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이에 대해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다음과 같이 스키피오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저 위대한 아프리카의 정복자 스키피오가 그대들, 호민관들의 발밑에 서야만 합니까?
겨우 이것을 위하여, 그는 에스파냐에서 네 명의 가장 출중한 카르타고 장군들과 그들의 군대를 패배시켰습니까? 겨우 이것을 위하여, 그는 시팍스를 사로잡고, 한니발을 격파하고, 카르타고가 그대들에게 공물을 바치도록 만들었습니까? 겨우 이것을 위하여, 그는 병든 몸으로 아시아까지 원정하여 안티오코스를 타우루스 산맥 저편으로 물리쳤습니까? 그런 그가 이제 고개를 숙여야만 하겠습니까? 그대들은 그런 스키피오에게 손바닥만한 승리를 획득해야만 하겠습니까? 이것은 그 개인보다도 우리 로마인들의 치욕입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연설 중에서(본문 306-307쪽)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은둔지에서 보냈고, 다시는 로마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죽어가며 그의 시체를 그곳에 묻도록 지시했고, 그의 장례식도 감사할 줄 모르는 조국에서 치르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향한 배은망덕은 강한 민족들의 특성이다.”
그리고 로마인은 세계를 제패한, 고대의 가장 강한 민족이다.”(본문 310쪽)

맺음말
스키피오는 로마의 영광을 위해 일했으나, 편협한 애국자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정치가였다. 그는 로마의 영광을 넘어 가장 포괄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서 초민족주의자였다는 평가를 내리며 저자는 글을 맺는다. 그런 스키피오를 제대로 된 사실을 바탕으로 그에게 역사적으로 정당한 위치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 이 책 저자의 의도이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역사는 왜 천재 한니발을 이긴 스키피오를 외면해 왔는가

제1장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다
인간 본성을, 다룰 줄 알다

제2장
로마의 패자부활전
패배의 후유증을 털어내고 / 폭풍전야

제3장
카르타헤나의 폭풍
산호초와 썰물을 이용한 기습 / 적의 주력군이 아닌, 적의 본거지를 공격하라.

제4장
바이쿨라 전투
새로운 위협

제5장
일리파 전투
새로운 동맹을 위해

제6장
폭동과 반란
로마군의 폭동 / 에스파냐 부족의 반란

제7장
아프리카를 향한 첫 걸음
시칠리아를 향하여 / 왜, 스키피오의 어려움은 외면하는가!

제8장
정치적 장애물
청문위원회 / 스키피오를 지원하지 않는 로마

제9장
카르타고의 공포
기습 화염공격 / 대평원과 바다 위에서의 전투 / 시팍스, 마시니사, 그리고 소포니스바

제10장
깨어진 평화협정
휴전의 파기 / 한 명의 위대한 장군, 한 명의 위대한 인간 / 승리의 여신은 한니발에게

제11장
오! 자마
두 명장의 회담 / 최후의 결전, 자마 전투! / 용맹한 자와, 더 용맹한 자

제12장
자마, 그 이후
평화협정 / 아프리카누스의 탄생

제13장
시에스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 다시 결전을 준비하는 두 장군 / 새로운 전쟁의 임박

제14장
마지막 축배
아시아 원정 / 안티오코스의 패배

제15장
배은망덕한 로마

에필로그
다시, 스키피오를 조명하다
옮긴이의 글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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