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빼앗긴 위만조선의 영토를 회복하여
고구려 비상의 토대를 다진 미천 임금에 대한 평전 나와
서기 404년. 후에 ‘국강상광개토호태왕’으로 불리게 되는 고구려의 임금 담덕(談德)은 지금의 하북성 일대로 추정되는 후연(後燕)의 연군(燕郡)에 기습 공격을 가하였다. 그의 군대는 신속하게 연군을 유린하고 적 수백 명을 살상하였다. 담덕의 이 연군 공격에는 영토 확장이라는 목적 외에도 또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수십 년 전 고구려를 충격으로 몰아간 파렴치한 한 행위에 대한 복수였다. 전화 속에서 잿더미로 화한 연군의 사당의 주인은 모용황이라는 전연(前燕)의 통치자였다. 그는 과거 고구려를 침공하여 수많은 고구려 사람들을 납치하고 환도성을 불태운 인물이다. 이 같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모용황은 고구려 역습을 두려워하여 당시 고국원 임금의 아버지인 미천 임금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도굴해 갔다. 고구려로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전화로 불타는 연군을 바라보며 담덕은 자신에게 증조부가 되는 미천 임금의 통한을 떠올렸을 것이다. 책의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연군 전장에서 담덕이 떠올렸을 증조부 미천(美川) 임금은 고구려 제15대 임금으로 고구려의 국가체제를 정비한 소수림왕이나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광개토호태왕 등에 비한다면 일반에게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의외로 저평가되어 온 인물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혜안에서 이번에 출간한 『태왕의 꿈-고구려 중흥의 군주 미천왕 평전』(저자 이성재)은 300년에 즉위한 이래 331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하여 중국 서한(西漢)에게 빼앗겼던 위만조선의 영토를 4백여 년 만에 완전히 회복했을 뿐 아니라 고구려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던 강적 모용선비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그들의 도성에까지 진공하는 등 평생 고구려의 세력 확장에 힘써 고구려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미천 임금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미천 임금의 이름은 을불(乙弗)이다. 임금에 즉위하기 전의 을불에 대해서는 기록이 영성하여 추측에 의지해야 하는데, 추정컨대 289년경 서천왕의 아들 돌고의 아들로 태어나 다섯 살 나던 해인 293년 아버지 돌고가 역적 혐의로 살해당하자 궁에서 탈출하였다. 이후 실정을 거듭하는 봉상 임금을 축출한 국상 창조리(倉助利)에 의해 임금으로 즉위할 때까지 그는 살해의 위험 속에서 머슴살이를 하기도 하고 소금장수 같은 저자의 거친 일을 하는 곤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창조리가 그를 찾아내어 즉위시키기까지의 상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을불의 이후 행보는 숨찬 것이었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302년에 벌써 현도군을 공격하여 적 8천 명을 포로로 잡은 이래 331년 사망할 때까지 쉬임없는 대외전쟁을 통해 고구려 영토를 넓히고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힘을 배경으로 을불 시대 때 ''태왕''의 칭호도 확립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태왕(太王)이란 본래 황제라는 의미의 고구려식 표현인데, 일찍이 건국 초부터 고구려의 군주는 황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무신 임금이 부여에서 투항해 온 부여 왕족을 ''왕''으로 봉한 것도 그 한 예라 하겠는데, 을불의 아들인 고국원 임금은 대외적으로 황제를 칭하고 안으로는 태왕을 칭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고구려 비상의 기틀을 마련하고 미천의 들에 묻힌 후에도 을불은 편히 잠들 수 없었다. 342년 전연의 군대가 고구려를 침략한 후 고구려의 보복을 우려하여 을불의 무덤을 도굴하여 시신을 훔쳐가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343년 고국원 임금이 많은 공물을 바치고서야 그의 시신을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고구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고구려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는데 4세기의 국제 정세가 그만큼 절박하고 급박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저자 이성재는 우리 역사에서 그의 극적인 삶에 비길 만한 군주로는 궁예나 견훤 정도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궁예와 견훤이 한 나라의 창건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미천 임금의 삶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요 근래 한국인의 뿌리에 대한 깊어진 관심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반감 등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전문서와 교양서를 막론하고 고구려에 대한 저서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나와 있는 기왕의 고구려사 관련 서적들도 내용이 너무 간략하거나 특정 시기에 편중되어 고구려 역사의 세부적인 전개 과정을 파악하는 데는 여간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속에서 4세기 전환기의 급박한 국제정세와 고구려의 내부 정세에 대한 분석까지 아우른 미천 임금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 나온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성재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1~2002에 청소년 신문에서 역사 칼럼을 연재하였다. 저서로는 『잃어버린 나라 낙랑』, 『대무신왕 무휼』이 있다.
▣ 주요 목차
간행사
글 싣는 차례
고구려 임금 계보
모용선비 임금 계보
미천 임금 시기의 관위 및 관직
참고 지도
여는 글_불파는 연군
1.고난의 어린시절
2.소용돌이치는 동북아
3.을불의 등극
4.패권 전쟁
5.볼모가 된 주검
6.을불의 업적과 평가
닫는 글_최후의 승자
부록_미천 임금(재위 300~331) 시대의 세계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빼앗긴 위만조선의 영토를 회복하여
고구려 비상의 토대를 다진 미천 임금에 대한 평전 나와
서기 404년. 후에 ‘국강상광개토호태왕’으로 불리게 되는 고구려의 임금 담덕(談德)은 지금의 하북성 일대로 추정되는 후연(後燕)의 연군(燕郡)에 기습 공격을 가하였다. 그의 군대는 신속하게 연군을 유린하고 적 수백 명을 살상하였다. 담덕의 이 연군 공격에는 영토 확장이라는 목적 외에도 또 다른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수십 년 전 고구려를 충격으로 몰아간 파렴치한 한 행위에 대한 복수였다. 전화 속에서 잿더미로 화한 연군의 사당의 주인은 모용황이라는 전연(前燕)의 통치자였다. 그는 과거 고구려를 침공하여 수많은 고구려 사람들을 납치하고 환도성을 불태운 인물이다. 이 같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모용황은 고구려 역습을 두려워하여 당시 고국원 임금의 아버지인 미천 임금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도굴해 갔다. 고구려로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전화로 불타는 연군을 바라보며 담덕은 자신에게 증조부가 되는 미천 임금의 통한을 떠올렸을 것이다. 책의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연군 전장에서 담덕이 떠올렸을 증조부 미천(美川) 임금은 고구려 제15대 임금으로 고구려의 국가체제를 정비한 소수림왕이나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광개토호태왕 등에 비한다면 일반에게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의외로 저평가되어 온 인물이기도 하다. 도서출판 혜안에서 이번에 출간한 『태왕의 꿈-고구려 중흥의 군주 미천왕 평전』(저자 이성재)은 300년에 즉위한 이래 331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하여 중국 서한(西漢)에게 빼앗겼던 위만조선의 영토를 4백여 년 만에 완전히 회복했을 뿐 아니라 고구려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던 강적 모용선비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그들의 도성에까지 진공하는 등 평생 고구려의 세력 확장에 힘써 고구려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미천 임금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미천 임금의 이름은 을불(乙弗)이다. 임금에 즉위하기 전의 을불에 대해서는 기록이 영성하여 추측에 의지해야 하는데, 추정컨대 289년경 서천왕의 아들 돌고의 아들로 태어나 다섯 살 나던 해인 293년 아버지 돌고가 역적 혐의로 살해당하자 궁에서 탈출하였다. 이후 실정을 거듭하는 봉상 임금을 축출한 국상 창조리(倉助利)에 의해 임금으로 즉위할 때까지 그는 살해의 위험 속에서 머슴살이를 하기도 하고 소금장수 같은 저자의 거친 일을 하는 곤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창조리가 그를 찾아내어 즉위시키기까지의 상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을불의 이후 행보는 숨찬 것이었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302년에 벌써 현도군을 공격하여 적 8천 명을 포로로 잡은 이래 331년 사망할 때까지 쉬임없는 대외전쟁을 통해 고구려 영토를 넓히고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힘을 배경으로 을불 시대 때 ''태왕''의 칭호도 확립된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태왕(太王)이란 본래 황제라는 의미의 고구려식 표현인데, 일찍이 건국 초부터 고구려의 군주는 황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대무신 임금이 부여에서 투항해 온 부여 왕족을 ''왕''으로 봉한 것도 그 한 예라 하겠는데, 을불의 아들인 고국원 임금은 대외적으로 황제를 칭하고 안으로는 태왕을 칭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고구려 비상의 기틀을 마련하고 미천의 들에 묻힌 후에도 을불은 편히 잠들 수 없었다. 342년 전연의 군대가 고구려를 침략한 후 고구려의 보복을 우려하여 을불의 무덤을 도굴하여 시신을 훔쳐가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343년 고국원 임금이 많은 공물을 바치고서야 그의 시신을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고구려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고구려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는데 4세기의 국제 정세가 그만큼 절박하고 급박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저자 이성재는 우리 역사에서 그의 극적인 삶에 비길 만한 군주로는 궁예나 견훤 정도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궁예와 견훤이 한 나라의 창건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미천 임금의 삶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요 근래 한국인의 뿌리에 대한 깊어진 관심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반감 등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전문서와 교양서를 막론하고 고구려에 대한 저서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나와 있는 기왕의 고구려사 관련 서적들도 내용이 너무 간략하거나 특정 시기에 편중되어 고구려 역사의 세부적인 전개 과정을 파악하는 데는 여간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속에서 4세기 전환기의 급박한 국제정세와 고구려의 내부 정세에 대한 분석까지 아우른 미천 임금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 나온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성재
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1~2002에 청소년 신문에서 역사 칼럼을 연재하였다. 저서로는 『잃어버린 나라 낙랑』, 『대무신왕 무휼』이 있다.
▣ 주요 목차
간행사
글 싣는 차례
고구려 임금 계보
모용선비 임금 계보
미천 임금 시기의 관위 및 관직
참고 지도
여는 글_불파는 연군
1.고난의 어린시절
2.소용돌이치는 동북아
3.을불의 등극
4.패권 전쟁
5.볼모가 된 주검
6.을불의 업적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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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_미천 임금(재위 300~331) 시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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