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일왕과 그의 아들은 왜 죽어야 하는가?
일제의 법정이 묻고, 식민지 조선 청년이 답하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26년, 도쿄 한복판에서 이상한 재판이 벌어졌다. 한 조선 청년이 조선의 임금 옷을 입고 피고석에 선 것이다. 청년의 죄목은 ‘대역죄’. 일본의 왕과 왕세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무시무시한(?) 혐의였다. 당시 일본에서 대역죄는 무조건 사형이었다. 하지만 ‘대역죄’로 피고석에 선 청년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피고가 아니다. 나는 조선을 대표하여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피고에게 어쩐 일인지 판사며 간수들이 쩔쩔 맨다. 어찌된 일일까? 심지어 이 뻔뻔한(?) 청년을 판사는 ‘피고’가 아니라 ‘그대’라고 높여 부른다.
『나는 박열이다』는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기이했던 재판 풍경을 ‘주문 세팅’한 패기만만한 독립운동가 박열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다.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왕 부자를 폭살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정에 서고, 증거 없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남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8,091일 동안 감옥살이를 한 뜨거운 심장의 혁명가, 그의 치열했던 삶과 피처럼 붉은 사랑 이야기를 당시 신문보도와 심문조서 등 자료를 토대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복원해냈다.
무엇이 청년 혁명가로 하여금
23년의 감옥살이를 마다하지 않게 했는가?
지은이가 보기에 박열(朴烈, 1902~1974)은 무엇보다도 도쿄의 재판정을 호령하던 당찬 독립운동가였다. 22년여의 길고 혹독한 감옥살이를 견뎌낸 의지의 혁명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진 ‘불운한’ 혁명가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로 감형되어 일수로 8,091일, 연력으로 22년 2개월하고도 하루 동안의 혹독한 일본 감옥생활을 견딘 ‘운명의 승리자’인 그는 왜 정작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워졌는가? 그것은 우리 현대사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그는 ‘지배권력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아나키스트였고,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갔으며 24년 만에 전해진 소식이 ‘부음’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박열이다』는 ‘어느 잊힌 혁명가의 삶의 기록’이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지은이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 몇 명에게 그의 이름을 댔다. 지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를 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는 역사교육과 독립운동사 기술에 책임이 없지 않다. 경직된 반공 이데올로기의 교육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을 것이며, 비슷하게 경직된 지성 풍토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단지 아나키스트라는 이유로,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그는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진, 기피 인물이 되었다.”
‘일본 국민의 고혈을 갈취하는 존재’,
일왕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런데 박열은 왜 일왕을 노렸는가? 사실 ‘일왕을 폭살하려 했다’며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히게 했던 박열 사건은 정작 폭탄 한 개도, 계획서 한 장도 없는, 말하자면 ‘증거 없는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오로지 피고의 증언에 의해 죄가 성립되는 불안하고 이상한 재판에서 박열은 오히려 재판정을 전략적으로 사상 선전의 장으로 적극 활용한다.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의 법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어필하고, 조선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리는 ‘법정전투’를 벌인 것이다.
“나는 일본의 천황, 황태자 개인에 대해서는 어떤 원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일본의 황실,
특히 천황, 황태자를 대상으로 삼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일본 국민에게 있어서 일본의 황실이
얼마나 일본 국민에게서 고혈을 갈취하는 권력자의 간판 격이고, 또 일본 국민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고
신성시하는 것, 신격화하는 것의 정체가 사악한 귀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리고, 일본 황실의 진상을 밝
혀서 그 신성함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조선 민족에게 있어서 일반적으로 일본 황실은 모든 것의 실권자이며 민족의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 황실을 무너뜨려서 조선 민족에게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
- 박열의 심문조서(제10회) 중에서
“황실을 무너뜨려서 조선 민족에게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 일왕 폭살을 꾀했다는 독립운동가 박열. 그의 이름이 몇 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에 귀환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토록 멋지게 싸운 독립운동가임에도 단지 정권의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히 거부당하고 지워졌던 이름이 뒤늦게나마 돌아온 것이다. 그의 이름과 더불어 모든 지배권력을 부정하며 오로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싸운 그의 삶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여전히 묵직하고 유효하다.
작가 소개
저 : 김삼웅
현대사연구가 및 정치평론가. 1943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소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석사 및 하버드대학교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다.《민주전선》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인간 냄새나는 우리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들의 삶’을 평전을 통해 전하고자 『백범 김구 전집』(전12권 공저),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박열 평전』, 『녹두 전봉준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안중근 평전』, 『장준하 평전』, 『리영희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독부 이승만 평전』, 『박현채 평전』,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 『저항인 함석헌 평전』 등을 썼으며, 책을 읽고 모으는 “가장 고귀한 재미”에 대해 쓴 『독서독본』을 비롯해 『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필화사』,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 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 『왜곡과 진실의 역사』,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 『위서』, 『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 (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친일정치 100년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녹두 정봉준 평전』『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등을 썼다.
목 차
서론 - 박열의 민족주의와 아나키즘
제1장 아나키스트의 길
시골 소년, 경성에 가다
제국의 심장부 도쿄에서 항일 단체를 조직하다
최악의 지진, 뒤틀린 운명
제2장 나 박열은 피고가 아니다
왕세자를 암살하라
‘폭탄을 구하라’ - 대역 사건의 진상
법정을 뒤흔든 사상범
위풍당당한 수감생활과 판사의 회유
제3장 제국의 법정에서 벌어진 사상전쟁
가네코 후미코, 강한 아름다움
“황태자 한 마리를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동아일보」의 박열 옥중면담기
첫 번째 공판, 법정의 ‘신랑 신부’
‘그대’라고 불린 피고인, 조선어로 말하다
제4장 8,091일의 감옥생활
사형선고에 “만세!”로 답하다
가네코의 죽음, 자살이냐 타살이냐
못 다 핀 혁명의 꽃
한 장의 사진, 일본 열도를 뒤집다
8,091일의 감옥생활, 그리고 납북
부록 1 박열의 ‘대일 격문’ 두 편
부록 2 『신조선혁명론』 발췌
부록 3 박열의 심문조서(총 21회) 주요 대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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