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로의 시간 여행 - 새롭게 쓴 실크로드 여행가 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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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임영애 외
출판사항사계절, 발행일:2018/07/13
형태사항p.319 국판:22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60943801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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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중아아시아사 대표 연구자들의 최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복원한 실크로드 여행가들의 여정

이 책은 한반도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지나 유럽에까지 이르는 광활한 길,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가 가시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과거 그 길 위에서 펼쳐졌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해보려는 시도이다. 현재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지역은 각국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무분별한 개발이 진행되고, 역사가 새로이 발굴되거나 다시 쓰이는 등 격변을 겪고 있다. 유목제국사, 불교미술사, 고고학 등 각자의 분야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을 연구해온 여섯 필자들은 이 지역의 현재를 만든 오랜 역사와 더불어 그 역사가 현재의 격변 속에서 재해석되고 있는 양상을 함께 살펴보았다.
유라시아 대륙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옛 실크로드는 현대의 철도와 도로처럼 단선으로 연결된 길이 아니라, 사막길과 초원길, 산악길과 밀림, 바닷길 등이 서로 교차하며 연결된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이동했던 이들의 목적도 정치적 교섭, 무력 정복, 경제적 이익, 선교와 구법, 20세기 제국주의자들의 탐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과 물자와 문명이 교차했던 이곳의 역사는 대단히 복잡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물 이야기, 즉 실크로드 여행가들의 일대기와 구체적인 여행 경로를 통해 이곳의 역사와 지리를 알아가는 길을 택했다.
군사 동맹을 위해 서방으로 향했던 한나라의 장건,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인도를 순례했던 현장, 의정, 혜초 등의 구법승들,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카안을 만나고 돌아온 마르코 폴로, 그리고 20세기 초 서구의 탐험가들 등 이미 잘 알려진 인물들은 오해를 바로잡거나 현재적 의미를 새로이 제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티베트 불교 연구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봉사라는 두 가지 목적이 혼재된 채 티베트에 다녀온 일본 승려 타다 토우칸, 몽골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수사 랍반 사우마,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실크로드 연구에 가려져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 실크로드 연구의 선구자 프르제발스키, 최초의 여성 실크로드 탐험가 포타니나 등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해 소개했다.

과거를 재해석하는 현재의 권력에 대한 비판적 서술

이 책은 여섯 명의 필자가 자신의 전문 연구 분야를 바탕으로 다각도에서 중앙아시아 역사를 조망하고 있지만, 전체를 흐르는 한 가지 공통된 관점이 있다. 바로 중국의 자국중심주의적 역사관과 이미 한 세기 이상 이어져온 서양 중심적 시각 등 당대의 권력이 현재 혹은 미래의 이익을 위해 과거를 임의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분별해내고 비판하려는 것이다. 일례로 1950년대 영국의 한 중국학자가 주장했던 ‘로마 용병 중국 거주설’이 그 빈약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살아남아 2015년 성룡 주연의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의 모티프가 되었던 이유는 ‘실크로드의 주인공은 로마(서양)와 중국’이라는 관점이 지금껏 강력하게 버텨왔기 때문이다.

서양인 우월주의는 지난 100여 년간 내내 실크로드 연구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 수천 년의 실크로드 역사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대부분 서쪽에서 사람들이 왔다거나 그들이 서양인 계통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중략) 실크로드를 따라 유라시아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이들은 ‘죽음을 각오한 서양인 여행가들’로 표현된다. 하지만 반대로 동양인이 유라시아를 건너가면 ‘악마의 자손(아틸라)’, ‘황화yellow peril’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중략)
하지만 실크로드의 진정한 주인공은 5000년 전 황량한 이 땅을 개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목축이라는 새로운 경제에 기마술이라는 기술을 장착하고, 사막에 거점을 만들고, 교류의 길을 이었다. 20세기 서양의 팽창으로 윤색된 ‘로마와 중국의 실크로드’라는 이미지는 중국에 간 로마 병사들이라는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_ 27~29쪽

티베트는 현재의 권력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현대 중국에서는 7세기 티베트의 송첸감포 왕과 결혼하기 위해 당나라를 떠났던 문성공주의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현재의 중국-티베트 관계를 바라보는 틀로 이용하고 있다. 문성공주가 티베트로 향했던 길을 복원하면서 여러 가지 유적과 기념물을 만들고, 문성공주를 중국과 티베트의 우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애국적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 면이 많고, 티베트의 기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중국의 일방적 해석이다. 이 책에서는 양측의 기록을 두루 살펴 과거 중국과 티베트의 상호 영향 관계를 분명하게 제시하며 중국의 역사 왜곡을 지적하고 있다.

티베트의 기록에 따르면, 문성공주는 티베트 고원을 통일한 위대한 제왕이자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송첸감포 왕의 여러 부인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티베트에서는 문성공주 및 치준공주와의 정략결혼을 송첸감포 왕이 중국과 인도까지 아우르는 드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위대한 제왕이었음을 드러내고, 관세음보살과 타라, 브리쿠티로 구성된 관음삼존觀音三尊의 화현이 실제 역사에서 이루어져 티베트 불교의 세계관이 완성되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략)
그 옛날 힘없는 여성의 신세를 한탄하며 티베트로 시집갔을 문성공주는 이제 현대 중국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 아래서 위대한 애국적 영웅이자 사랑과 종교적 열정으로 충만한 낭만적인 여성으로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매서운 검열 속에서 고산병과 싸우며 티베트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현대 중국이 그려내고 있는 문성공주 이야기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으로 포장되어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_ 77~80쪽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된 ‘롭 노르 호수 이동설’이 한국의 실크로드 관련 서적들에는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 실크로드의 낭만적 이미지와 함께 왜곡되어 전해지는 정보들도 꼼꼼하게 바로잡고 있다. 이런 잘못된 정보가 수정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실시한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구 중심적 연구 풍토 때문이라는 것도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다.

주요 내용

1장 다른 세계를 향한 호기심
1장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 실크로드 일대에 유입된 유목민들을 시작으로 흉노를 제압할 동맹 세력을 찾아 서방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장건, 거대한 유목제국을 형성했던 돌궐의 행정, 외교 등을 맡으며 동서 교역을 주도한 소그드 상인, 위구르의 수도 카라발가순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남긴 아랍 여행가 타밈 이븐 바흐르, 정치적 목적에 따라 티베트로 보내진 당나라의 문성공주와 금성공주 등 다른 세계와의 만남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이용되었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장건의 ‘착공’, 흉노의 역할
장건의 세 번에 걸친 파란만장한 서방 여행에 대해 거의 동시대인인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구멍을 뚫었다(착공鑿空)”고 평가했다. 이는 장건과 그의 부하들이 가지고 온 다양한 정보를 통해 이제까지 닫혀 있던 서방 세계와의 연결 통로가 열렸다는 점을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여행 이후 한나라는 서방의 여러 나라와 ‘공식적인’ 교류를 시작했다. (중략)
최근 중국 정부가 ‘신실크로드’라 불리는 대외 확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장건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이 동서 교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드러내기에 장건의 이야기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실크로드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인 양 독점하고 정책에 활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실크로드 노선에 자리했던 수많은 오아시스의 역사적 의미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오아시스는 단순히 전달자나 매개체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써왔다. (중략)
흉노는 단순히 초원을 차지한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초원을 중심으로 400년 넘게 아시아 내륙을 지배하는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다. 흉노는 중국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동서 교통로를 장악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을 취하며 성장했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이 동서 교류를 크게 촉발시켰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_ 38~41쪽

돌궐과 소그드인이 함께 형성한 자유무역지대
동서가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은 자유로운 왕래와 안전한 교역이 가능한 새로운 통합 체제, 즉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라고 부를 만한 거대 통상권이 중앙아시아 초원과 오아시스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인위적 장벽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던 ‘초원길’이 중국의 주요 수출품인 비단이 유통되는 ‘비단길’로서 본격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초원의 안정이 동서 교류를 폭발적으로 확대한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돌궐은 물자 공급지인 중국을 출발해 거대한 중앙아시아 초원을 거쳐 서방의 페르시아와 비잔티움으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독점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들어냈다. 이에 동조한 소그드 상인은 외교적 협상력,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통망 운용 경험, 국가 내에서 이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행정 능력 등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했다. 마니악처럼 유목 권력과 결탁한 정상政商들에 대해서는 단편적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들의 역할과 비중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_ 51쪽


2장 진리의 법을 찾아 떠난 구법승
2장에서는 전교와 구법을 목적으로 실크로드를 여행한 다섯 승려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 승려 최초로 중앙아시아를 횡단하여 인도의 불교 성지들을 순례하고 돌아온 법현,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 17년간 걸어서 110개국을 방문하고 『대당서역기』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긴 현장, 페르시아 상인들의 무역선을 타고 바닷길을 이용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의정,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 승려 혜초, 달라이 라마와의 교류를 통해 일본 티베트학을 이끌었던 타다 토우칸 등이 그들이다.

현장의 서역 기행, 걸어서 110개국
현장의 『대당서역기』는 법현의 『불국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3대 여행기로 손꼽힌다. 세 구법승 가운데 가장 오래 여행하고,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한 인물이 바로 현장이다. 그는 자신이 돌아본 7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대불에 관한 기록이다. 이 석불은 불행히도 2011년 탈레반의 폭파 만행으로 지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대당서역기』는 그 바미얀 대불을 최초로 기록한 문헌이다. 중국을 떠난 지 3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 현장은 바미얀 국왕의 왕궁에서 공양을 받으며, 여러 불교사원지를 방문했다. 그는 15일 동안 머물면서 자신이 직접 본 높이 38미터와 55미터의 금빛 대불을 기록으로 남겼다. 55미터라면 지금으로 치면 20층 아파트 높이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을 이 거대한 금빛 불상은 현장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_ 102~104쪽

의정과 해상 실크로드의 시대
의정의 책에는 각 구법승들의 서역 입국 경로가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당시 구법승들은 해로를 이용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육로를 이용할 때는 당나라의 화번공주들이 살고 있던 티베트를 거쳐 네팔을 통해 인도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책에는 중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지역에서 온 구법승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날란다 사원에 모여 지내던 구법승들의 다양한 국적은 당시 날란다 사원이 국제적인 불교 교학의 장소 혹은 국제대학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국적과 상관없이 광범위한 지역의 불교도들이 구법 순례 여행에 나섰음을 알려준다. _ 121쪽


3장 세계 체제의 전주곡
3장에서는 13~14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해 이른바 ‘대여행의 시대’를 열었던 몽골제국 시기를 전후하여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실크로드를 횡단했던 여행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13세기 초 서방 원정에 나선 칭기스 칸의 초청을 받아 북중국의 격전지를 뚫고 힌두쿠시 산맥의 파르완까지 이동했던 전진교의 교주 구처기,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을 방문해 교황의 편지를 전하고 카안의 답신을 가지고 돌아간 프란체스코파 수도사 카르피니, 쿠빌라이 카안 시기의 몽골제국을 방문해 몽골의 역사와 카안의 궁정에 관한 상세한 기록인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 몽골제국의 수도 대도를 출발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몽골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수사 랍반 사우마, 명나라 영락제의 7차에 걸친 남해 대원정을 수행하며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라비아, 아프리카까지 다녀온 정화 등의 활약상을 실감나게 전한다.

교황의 편지, 카안의 답신
구육 카안은 카르피니 일행에게 사람을 보내 교황 옆에 타타르(몽골)인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카르피니는 없다고 답하고는 그들이 타타르어로 쓴 다음 사라센어(페르시아어)로 번역해서 주면, 우리는 그 번역된 글을 다시 우리의 문자(리틴어)로 옮겨 편지 원문과 번역본을 모두 교황께 드리겠다고 말했다. 11월 11일 카르피니 일행은 다시 소환되었고 카닥, 친카이, 발라 등의 서기들이 편지를 한 단어 한 단어씩 페르시아어로 번역해주었다. 카르피니 일행이 그것을 라틴어로 옮겨 쓰자, 그들은 그것을 다시 타타르어로 번역하게 했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몽골인들은 이 편지를 다시 한 번 페르시아어로 옮겨 썼다. (중략)
카르피니는 새롭게 대칸이 된 구육이 기독교에 호의를 보이기는 해도 몽골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그는 교황에게 보내는 구육 카안의 답신을 받았을 때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교황은 몽골을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고 외교 사절을 파견한 것인데, 몽골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골의 ‘세계정복선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답신을 읽은 카르피니와 교황은 분명히 몽골이 다시 유럽을 공격해 오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_ 171~180쪽

유럽과 아시아의 상호 인식
랍반 사우마의 방문은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사우마에게서 동방의 사정을 전해들은 교황은 서신을 통해 아르군이 이슬람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요청에 따라 쿠빌라이가 머물고 있는 대도에 가톨릭 선교사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후 아르군은 유럽에 다시 서신을 보내 다마스쿠스를 협공하자고 제의했으나, 훌레구 울루스의 대외 정세가 어려워져 실현되지는 못했다. 사우마의 성과를 한 가지 더 든다면, 그의 방문을 계기로 로마 가톨릭 교단과 네스토리우스파 동방 교회 사이의 오해와 불신이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랍반 사우마의 방문을 계기로 유럽인들이 ‘아시아인’이라는 실체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유럽 기독교 세계는 자신들과 교리가 다른 동방의 기독교를 접했고, 동방의 정세를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무시무시한 징벌자’ 혹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동방의 ‘프레스터 존’으로 막연히 상상해오던 몽골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랍반 사우마의 여행은 두 세계의 화합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_ 199~201쪽


4장 제국주의와 실크로드
4장에서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식민지 확장에 혈안이 되어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땅을 두고 경쟁을 벌인 제국주의 세력과 그러한 흐름 속에서 실크로드 지역을 조사한 탐험가들을 소개한다. 서유럽 탐험가들에 앞서 최초로 실크로드 일대를 전면적으로 조사했던 러시아의 프르제발스키, 미란, 누란, 단단윌릭 등 실크로드상의 고대 유적을 직접 발굴하고 돈황석굴 장경동에 숨겨져 있던 고대 문서와 유물을 수집해 서구에 공개한 스타인, 실크로드의 여러 석굴들에서 벽화를 무분별하게 절취해 간 독일 탐험대, 최초의 여성 실크로드 탐험가로서 몽골, 알타이, 티베트 등지를 다니며 현지인들의 풍습과 생활문화를 섬세하게 기록한 포타니나, ‘실크로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리히트호펜, 사라진 고대 왕국 누란을 발견하고 온갖 어려움 끝에 티베트 탐사에 성공한 스벤 헤딘, 일본의 중앙아시아 탐험대를 조직하고 후원한 오타니 고즈이 등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스타인, 희대의 도굴꾼? 성실하고 열정적인 학자?
중국에서는 장경동 유물을 대량 반출해 가져간 스타인, 펠리오 등을 문화재 도굴꾼이자 제국주의의 스파이라고 비난했지만, 스타인이 탐사할 당시 그들이 타림분지 일대의 실크로드 고대 문명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스타인이 아니었다면 장경동의 문서와 유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 (중략)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은 ‘스타인 컬렉션Stein Collection’의 상당수를 소장하고 있는 영국 학계의 활동이다. 1994년 영국도서관의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는 국제돈황프로젝트International Dunhuang Project(IDP)를 발족하여 영국, 중국, 러시아, 인도, 독일, 미국, 프랑스, 헝가리, 일본, 한국 등에 분산되어 있는 돈황 관련 문헌과 문화재들을 온라인상에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http://idp.bl.uk/ 참조). 이는 돈황 관련 문화재를 소장한 각각의 기관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연구 기반 조성 사업이다. 현재 영국,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프랑스 등 6개국이 참여하여 총 51만 점 이상의 전산 자료가 공유되고 있다. (중략)
현대 중국의 신실크로드 정책 및 폐쇄적인 문화재 보호 정책과 가상세계에서 자유롭게 학문의 길을 이어가는 영국 학자들의 국제돈황프로젝트는 모두 실크로드의 사라진 고대 문명을 재발견한 스타인의 업적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서로의 방향성과 진행 방식은 스타인에 대한 상반된 평가만큼이나 대조적이다. _ 244~247쪽

조작된 스벤 헤딘의 1차 탐험 이야기
헤딘의 1차 탐험은 (중략) 한마디로 처참한 실패였다. 그런데도 그의 회고록은 현지 가이드를 맡은 메르케트 마을 출신의 욜치(우즈벡어로 일꾼이라는 뜻으로 본명은 카심 아쿤)에 대한 악평으로 가득 차 있다. 물을 충분히 준비해 오지 않은 욜치가 탈진해서 낙타와 양의 피를 먹었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물을 몰래 훔쳐 먹다가 천벌을 받아 고통 속에 죽어갔다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간 헤딘을 다룬 모든 책에서 이 회고록 내용을 마치 진실인 양 그대로 인용해왔다. (중략)
실패의 원인을 현지 주민에게 돌리는 그의 서술은 전형적인 인종차별주의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시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헤딘이 서술한 욜치 이야기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1990년대 후반 브루노 바우만Bruno Baumann(1955~)이라는 탐험가가 헤딘의 발자취를 따라 같은 코스를 답사한 적이 있다. 바우만은 헤딘과 똑같은 날짜에 출발하여 그의 자취를 따라가는 답사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헤딘이 그렇게 욕을 했던 욜치가 탐험 당시에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메르케트 마을에서 욜치의 손자 투르숨을 만났다. 투르숨에 따르면, 욜치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촌장을 지냈다고 한다. 바우만은 투르숨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서 마을의 연장자들을 만나 교차 검증을 했는데,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욜치는 오히려 헤딘을 도왔다는 이유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는 헤딘과의 탐험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훗날 정권을 잡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발각되어 서양인에게 부역했다는 이유로 재산을 압류당했다고 한다. _ 276~277쪽

작가 소개

저 : 강인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석사학위를 받은 후,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부경대 사학과를 거쳐서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북방 지역 고고학으로 매년 러시아, 몽골, 중국 등을 다니며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도쿄대, 베이징대, 스탠퍼드대, 노보시비르스크대 등에서 방문학자로 강의 및 연구를 했다.
주요 저서로 『시베리아의 선사고고학』, 『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 『춤추는 발해인』, 『유라시아 역사기행』 등이 있으며 역서로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외 다수가 있다. 연구 논문과 전문서 집필 외에도 대중 강연과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즐거움과 의미를 두고 있다.

 

저 : 임영애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동양 및 한국 불교미술사 전공.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섬유예술학 및 미술사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서역불교조각사』, 『동양미술사』, 『교류로 본 한국 불교 조각』 등이 있으며, 한국 및 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불교미술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 : 정재훈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중앙아시아학회 회장, 고대 유목제국사 전공.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위구르 유목제국사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돌궐 유목제국사』, 『위구르 유목제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공역) 등이 있다.

 

저 : 김장구

가톨릭관동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동국대학교 유라시아실크로드연구소 전문연구원, 몽골제국사 전공 및 몽골문 사료와 불경 연구.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몽골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중국 역사가들의 몽골사 인식』(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몽골 세계제국』(공역), 『몽골의 역사』(공역), 『역주 몽골 황금사』 등이 있다.

 

저 : 주경미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강사, 동양미술사 전공.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고대 불사리장엄 연구』, 『대장장』 등이 있고, 한국 및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불사리장엄구 및 금속공예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저 : 조원

세종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 몽골제국사 전공.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몽골제국 시기의 다루가치 제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제국과 변경』(공저)이 있고, 「大元제국 다루가치체제와 지방통치: 다루가치의 掌印權과 職任을 중심으로」, 「『飮膳正要』와 大元제국 음식문화의 동아시아 전파」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목 차

서문 | 유라시아 실크로드로의 시간 여행 … 정재훈

1장 다른 세계를 향한 호기심
실크로드 5000년의 여행자들 … 강인욱
흉노를 넘어 저 멀리 서쪽으로 가는 길을 뚫은 장건 … 정재훈
자유무역지대를 꿈꾼 소그드 상인 마니악 … 정재훈
위구르의 수도를 방문한 아랍 여행가 타밈 이븐 바흐르 … 정재훈
티베트 왕과 결혼한 당나라의 문성공주 … 주경미

2장 진리의 법을 찾아 떠난 구법승
설산과 대양을 건너 붓다의 계율을 찾아간 법현 … 주경미
현장의 서역 기행, 걸어서 110개국 … 임영애
의정과 해상 실크로드의 시대 … 주경미
신라승 혜초가 인도로 간 까닭은 … 임영애
타다 토우칸과 근대 티베트 불교 … 주경미

3장 세계 체제의 전주곡
칭기스 칸을 알현한 중국인 도사 장춘진인 … 조원
몽골제국의 수도를 찾은 수도사 카르피니와 루브룩 … 김장구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쿠빌라이 카안 … 김장구
몽골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수사 랍반 사우마 … 조원
쿠빌라이의 계승자 영락제와 정화의 남해 대원정 … 김장구

4장 제국주의와 실크로드
러시아 실크로드 연구의 선구자 프르제발스키 … 강인욱
고대 실크로드 문명의 재발견과 영국의 오렐 스타인 … 주경미
벽화 절취의 달인, 독일 탐험대의 그륀베델과 르 콕 … 임영애
최초의 여성 실크로드 탐험가 포타니나 … 강인욱
실크로드의 발견과 제국주의의 그림자, 리히트호펜과 헤딘의 1차 탐험 … 강인욱
사라진 오아시스 누란을 발견한 집념의 탐험가 스벤 헤딘 … 조원
오타니 고즈이와 오타니 탐험대의 수집품 … 주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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