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위기의 역사학, 경계에 대해 묻는다.
'분단의 역사학'을 넘어 '평화시대의 역사학',
그 중심에는 생활영토(경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가로 놓여있다.
평화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 생활영토는 확대될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강토를 한반도 내부로 축소시킨 '반도사관'을 넘어, 생활영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청한다.
그 인식의 핵심에는 우리 통일 강토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고려의 국경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고려의 국경이 한반도 내부가 아니라 요녕성에까지 미쳤으며,
국경의 역할을 했던 압록강(鴨綠江) 또한 요하(遼河)임을 밝힌다.
또 이 책은 문헌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과 종합조차 없이,
일제의 '반도사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한국 역사학계를 질타한다.
평화시대의 도래와 함께 역사학계에서는 커다란 논쟁이 부상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간의 세기적 정상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적 질서가 급격히 소멸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생활영토를 둘러싼 논쟁이 역사학계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강토(疆土)가 어디까지였으며, 또 앞으로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전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냉전이 한반도에서 소멸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점차 평화가 정착되고 있는 방향을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며, 이 같은 흐름과 함께 우리 민족의 생활영토가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가게 될 것이다. 한반도 남쪽에 갇혀 있던 우리 생활영토는 남북을 넘어 동북아지역 전반으로 확장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 북한에 의해 막혀있었던 중국의 동북지역 등이 우리의 생활영토로 새롭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 강토를 새롭게 획정하려는 노력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고려 국경에서 평화시대를 묻는다』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노력의 결과이다. 이 책은 고려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강토가 한반도 내부에 갇혀 있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고 요하(遼河)를 경계로 하는 요녕성(遼寧省)으로 확장하고 있어, 앞으로 역사학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왜 지금 국경이 문제인가
이 책을 쓴 윤한택 박사는 오랫동안 고려시대 토지를 연구해왔던 국내 최고의 고려 전문가이다. 고려 토지제도를 통해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토대가 있었음(맹아론)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주체적 발전이 저해·왜곡되었음을 밝히기 위해 중세시대였던 고려시대 토지의 소유제도를 연구했다. 청명(靑溟) 임창순 문하에서 한문을 배운 윤박사는 이 연구를 위해 고려사를 비롯한 관련 문헌자료를 섭렵하는 등 고려시대 연구에 독보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
윤박사는 우리 역사발전의 정체성(停滯性)론과, 그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식민지 지배가 불가피하다는 타율성(他律性)론을 극복하기 위해 토지소유에서 주체적 발전가능성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놀랍게도 우리 역사학계가 일제가 우리 역사적 강토를 한반도에 제한해둔 지정학(地政學)을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윤박사는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극복하고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주체적 발전전망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작업 또한 정작 우리 민족의 지정학을 복원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른다. 다시 말해 주체적 발전 전망이라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담는 국경의 문제에서 일제의 ‘반도사관’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형식 없는 맹목적 내용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도사관’의 근거이자 극복의 출발점, 고려
우리 민족의 강토를 획정하는데 고려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물론 고조선과 고구려, 그리고 발해로 이어지는 역사적 강토 또한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고려가 중요한 이유는 통일된 우리 민족의 강토에 대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갈 때 검증 가능한 가장 오래된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이 바로 고려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반도사관’의 문헌적 근거로 삼고 있는 것도 고려였다. 고려의 주요 지명과 수도, 그리고 군사행정 편재의 위치를 반도 내부로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민족 강역을 한반도 내부에 제한하려 했고, 이를 근거로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주장했으며, 나아가 대동아공영권론을 정당화했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륙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인 한반도를 확보한 이후, ‘반도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일제는 을사조약으로 설치한 통감부 주도 아래 대륙경영 동맥을 구축하기 위해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고, 그 소속으로 만주역사조사부를 설치해 고려의 영역을 한반도 내부로 제한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고려사』를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그 근거를 삼았다.
따라서 ‘반도사관’을 극복하는 일도 결국 고려 국경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박사는 『고려사』뿐만 아니라 『요사(遼史)』,『금사(金史)』를 비롯하여 중국의 정사(正史), 중국과 한국의 관련 지리지(地理志), 문집, 금석문 등을 통해 고려 국경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녕성의 요하 강변이었음을 논증하고 있다.
고려 영토는 어디까지였나
윤박사는 이 같은 자료를 통해 기존의 고려 국경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 5편의 논문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의 국경으로 여겨왔고, 또 지금도 우리의 국경이라 생각하는 의주(義州)-압록강(鴨綠江)은 왜곡된 것이며, 고려의 국경은 요녕성 요하를 경계로 그어졌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을 위해 윤박사가 강조하고 있는 근거는 압록강의 위치이다. 윤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두 개의 압록강이 있었으며 그것은 국경으로서의 압록강(鴨?江)과 후방기지로서 압록강(鴨綠江)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그 주변 도시들을 검토한 결과 당시 국경은 현재 요하의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의 압록강(鴨綠江) 국경설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소속 만주역사조사부가 간행한 『조선역사지리』에서 국경으로서의 압록강(鴨?江)과 후방기지로서 압록강(鴨綠江)을 의도적으로 혼돈한 결과임을 밝히고 있다.
또 개경(開京)과 함께 고려의 서쪽 날개 역할을 했던 서경(西京, 서쪽 수도)의 원래 위치와 변화를 추적하여 ‘서경 대륙 위치설’을 논증하고 있다. 고려 초기 서경의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한국사의 강역을 결정하는 핵심적 쟁점이었다. 기존의 연구는 한반도 내부에 있는 현재의 평양이 바로 그곳이라는 주장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일반적 주장과 달리, 윤박사는 서경이 현재의 요녕성 요양 부근이었으며, 거란 1차 침입에 즈음하여 현재 한반도 내부의 평양에 후방기지를 설치한 것임을 추론하였다.
윤박사가 이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조선역사지리』에서 ‘반도사관’의 원형을 제시한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글을 비판적으로 역주한 것이다. 필자는 쓰다의 이 같은 오류가 제대로 비판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하고, 지금도 이 같은 오류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공식입장이라 할 수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조선사』에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수주의라는 비판으로 역사학의 위기를 넘어갈 수 없다
필자가 쓰다의 글을 비판적으로 역주한 것은 한국 사학계가 아직 쓰다의 글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분석 비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데 커다란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우리 역사학계의 게으름을 질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료비판과 종합’이라는 역사학의 원칙만 충실하게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강역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우리 역사학이 무려 1세기가 넘도록 이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면서 이 자료를 번역,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공개하고, 이는 역사학계의 책임방기 이외에 그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윤박사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수주의라는 비판으로 ‘사료 비판과 종합’이라는 역사연구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윤박사의 비판을 역사학계가 과연 피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윤박사가 워낙 탄탄한 검증자료들을 토대로 역사학계의 게으름을 질타하고 있는 만큼, ‘국수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비판은 더 이상 학문적 담론으로 영향력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비판이 아니라 ‘사료 비판과 종합’에 입각해 윤박사가 제시한 주장과 논거를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역사학계도 윤박사의 탄탄한 연구를 마냥 이데올로기적 비판으로만 대응할 수만은 없을 것이며, 그럴 때에만 역사학도 이 시대에 의미 있는 담론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시대의 역사학’에서 ‘평화시대의 역사학’으로
물론 이후에 더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단순히 고려시대 생활영토의 ‘광활함’만을 주장한다면, 언제나 국수주의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것이 국수주의가 아니라 오늘날 평화시대의 생활영토에 유의미한 대답을 전하고자 한다면, 아직 해명해야 할 주제들이 많이 널려있다.
가령, 당시 국가의 성격은 어떠했고 그 주체인 민중의 삶의 조건은 어떤 상태였는지, 나아가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경계(즉 국경)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구체적 성격과 조건들이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록 사실일지라도 영토의 ‘광활함’에만 집착한다면,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했던 국수주의와의 차별이 잘 설명될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분단사학’을 넘어 ‘평화사학’으로 진화하는 결정적 지점이 될 수도 있다. 평화시대에는 국가의 성격과 민중의 역할,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국경(영토)이 새롭게 규정될 수밖에 없다. 만약 고려 국경 연구가 이 같은 새로운 인식을 구축하는데 어떤 상상력과 통찰을 제공한다면, 이는 단순히 영토의 확장을 꿈꾸며 국가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국수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평화시대의 사학’을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한택
부산 출신
서울대학교 경제학사
고려대학교 문학박사(고려시대사)
청명 임창순 문하 한문 수학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현)
『고려전기 私田연구』
『고려 양반과 兩班田연구』
『사회과학개론(공저)』
『바로 보는 우리 역사(공저)』
『근대 동아시아 외교문서 해제』
목 차
책머리에
평화시대의 역사학을 위하여
제1장
토지소유의 강제성을 폭로함
1. 들어가며
2. 또 다시 소유의 지평에 서서 - '세계사의 기본법칙'의 행방
3. 연구 수행 시대의 새 지평- 일신, 물신, 당위
4. 연구 대상 시대의 새 지평 - 가치, 잉여가치, 경제외적 강제의 향방
5. 나가며-경계의 역사로 소유의 지평을 넓히며
제2장
고려국 북계 봉강에 대하여
1. 서론
2. 책봉, 지리지, 축성 기사 검토
3. 경제 기사 검토
4. 결론
제3장
고려 서북 국경에 대하여
1. 머리말
2. 대요 시기
3. 대금 시기
4. 맺음말
제4장
고려 보주 위치에 대하여
1. 머리말
2. 대요 시기
3. 대금 시기
4. 맺음말
제5장
고려초기 서경고
1. 서론
2. 명칭과 기구
3. 위치
4. 행차 기타
5. 결론
부록
반도고려에서 복원고려로
1. 청천강 이남의 영유(태조 시대)
2. 청천강 유역의 점령(성종 11년 이전)
3. 압록강 동쪽의 점령(성종 12년 이후)
4. 압록강 가의 퇴각·이양(현종 6년 이후)
5. 의주 방면의 회복(예종 11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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